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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또한 지나가리라

LNCK 2014. 10. 20. 13:23

www.youtube.com/watch?v=U5o9RuXD0WE&feature=youtu.be

◈이 또한 지나가리라              12:1~7            모두 스크랩            신앙생활묵상글

   

혹독한 대가를 치른 후에 깨달은 제 신앙의 노하우

 

언젠가 젊은 시절, 제 하늘만 온통 잿빛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마치 깎아지르는 낭떠러지 사이로 난 좁은 외길을 걷는 것처럼

불안하고 초조하던 시절이었지요.

 

저는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상황을 반전시켜보려고

발버둥을 칠수록 여건은 더욱 어려워져만 갔습니다.

 

그리고 제게 남은 것이 두려움이었습니다.

"이런 나를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는데서 오는 두려움,

"나 자신을 나도 잘 모르겠음"에서 오는 두려움,

시시각각으로 죄어오는 듯한 죽음의 그림자에 대한 두려움,

너무나 무거울 것만 같은 십자가에 대한 두려움...

 

모든 것이 다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이러다 내가 제 명대로 못살지"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결국 기진맥진해져 자포자기한 상태에 도달해서야,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바닥까지 내려가서야

하나님께서는 제게 한 가지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 깨달음은.. 대가를 톡톡히 치른 후에 얻게 된 깨달음이었기에

제게는 너무나 소중한 깨달음이었지요.

 

그것은 다름 아닌 "모든 것은 지나간다. 하나님만이 영원하시다"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었습니다.

 

"사랑도 지나가고 미움도 지나간다. 행복도 잠시 지나가고 불행도 잠시뿐이다.

영원할 것만 같은 우리의 인생도 한 순간이기에

견딜 수 없는 죽음과도 같은 고통도 잠시면 지나간다.

만사가 지나가지만 하나님만이 영원하시다"는 진리를 조금이나마 알게 되면서

천천히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될 수가 있었습니다.

 

결국 인간 존재란 다른 모든 피조물과 다를 바 없이

어느 순간 이 세상에 왔다가 어느 순간 자취도 없이 사라지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돌아보니 세상 모든 것이 지나가는데, 어느 정도 세월이 흐르면

다들 자취를 감추는데 나만 영원히 살겠다는 이기심이 두려움의 근원이었습니다.

 

"나는 언제까지나 약해져서는 안 되고, 병들어서는 더욱 안 되며,

그로 인해 죽어서는 죽어도 안 된다. 자존심 상하는 일은 내 사전에 있을 수 없다"라는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 결국 두려움의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약해지는 모습을 죽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입니다.

존재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은 참으로 큰 것입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모든 것은 지나갑니다.

일출의 장엄함이 아침 내내 계속되지 않으며 일몰의 아름다움이 한밤중까지 이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존재하십니다."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요소 중에 가장 두드러진 요소 가운데 하나가

자기 존재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두려움은 우리 자신의 내면 안에서 일어나는 심리적인 변화인데,

결국 우리 자신이 스스로 선택해서 화를 초래하지요.

 

두려움은 두려움 자체로 끝나지 않습니다.

두려움은 또 다른 두려움을 낳고 두려움은 또 다른 두려움을 가져옵니다.

그 결과 심신이 약해지고 삶은 고통 그 자체가 됩니다.

 

이런 우리 인간들의 근본적인 취약점을 잘 파악하고 계셨던 예수님이셨기에

"두려워하지 마라"고 당부하십니다.

 

오늘 하루 하루에 가장 큰 의미를 두고 최선을 다하면 좋겠습니다.

내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면 더욱 좋겠습니다.

 

나 역시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

세월에 묻혀 바람에 날려 흩어져갈 유한한 존재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고

마음 편히 먹고 겸손하게 살아가면 좋겠습니다.

 

매일의 성서 말씀을 충실히 묵상하면서 말씀 안에서 살고자 노력할 때,

말씀에서 나오는 생명의 에너지는

우리가 담대하게 두려움에 맞설 수 있도록, 충분한 힘을 주실 것입니다.

 

고뇌의 시간에, 구원의 주님을 만납니다.

 

복음이.. 정말 나에게, 구원의 복음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나 아닌 누구에게는 구원이 발생하는 복음이지만

나에게는 전혀 구원이 발생하지 않고 지나쳐가는 소리일 뿐이지요.

 

저에게도 20대 중반까지는 복음이 전혀 구원의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예술 지상주의적이었던 제 20대 초반에는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같은 책이 저를 사로잡았고,

 

도스토예프스키, 괴테, D. H 로렌스 같은 소설가들이

그때그때 새로운 물줄기를 싱싱하게 저에게 대 주었습니다.

 

사상, 종교 면에서도

저는 (성경보다) 세속의 철학자들의 책을 더 많이 읽었고

노자 류의 책을 더 많이 읽었습니다.

 

그러던 저에게, 복음이 정녕 구원의 복음이 되게 된 것은

고뇌의 젊은 시절 그 중에서도, 절망의 3년을 거치면서입니다.

 

제가 추구하던 것들이 제 욕심만큼 되지 않고

무엇보다도 완전한 인간을 꿈꾸던 제가 군대 생활을 경험하면서

그것이 불가능하고 나에게는 어림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

저는 군 생활 3년을 절망 상태에서 보내고 제대를 하였습니다.

 

제대하고도 한 동안 그 상태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

그때 복음은 저에게 구원의 복음으로 다가왔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불이 꺼졌을 때, 하늘의 별이 빛을 내듯

세상에 대한 희망도

나에 대한 희망도 모두 사라졌을 때..

그 어두운 심연에서 하나님의 빛이 복음을 통해서 나타났습니다.

 

세상에 대한 희망이 사라졌을 때,

이때가 하나님께 대한 갈망이 시작되는 때요

나에 대한 희망이 사라졌을 때,

이때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시작되는 때인 것입니다.

 

복음의 제자들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타나시는 때가 있습니다.

밤새도록 풍랑과 싸워 기진맥진해 있을 새벽녘,

밤새도록 고기를 잡았지만 한 마리도 못 잡은 그 새벽녘,

예수님은 꼭 이때 나타나십니다.

 

왜 더 일찍 나타나시지 않고, 이렇게 새벽녘에야 나타나시는 것일까?

그것은 내가 한 모든 것이 허사가 되었을 때,

있는 힘을 다 쏟아 기진맥진, 더 이상 아무 힘도 없을 때,

이때가 갈망의 때요, 영의 때이기 때문입니다.

 

성 프란치스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최초의 하나님의 개입을 체험하고도 3년여가 흘렀지만

아직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지 못하고 있을 때

 

그래서 내 마음의 어둠을 밝혀주소서.”하고 기도할 수밖에 없을 때

복음을 듣게 됩니다.

 

이 복음은 이때 처음이 아니라 전에도 많이 듣던 복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이 복음이 구원의 빛을 비추었습니다.

 

전기 작가, 토마스 첼라노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이 말씀을 듣고 거룩한 프란치스코는

즉시 하나님의 영 안에서 기뻐 외쳤다.

이것이 바로 내가 찾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온 정성을 기울여 하고 싶어 하던 바다.’

 

그러므로 지금 여러분이 혹시 겪고 있을지도 모를

그 절망의, 캄캄한 암흑의 시간을.. 너무 비관적으로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광명의 주님을 만날 시간, 야곱의 얍복강의 체험이 곧 다가오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