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내 몸에서 존귀케 되기를 P1 고후5:14 설교 녹취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시도다.’ 고후5:14
저 레븐힐은, 이 구절을 보면, 언제나 구세군 창시자 윌리엄 부스의 장녀인 마타숄이 생각납니다.
그녀는 제가 담임하던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녀는 크고 장대한 체격에, 볼품없는 외모를 가졌지만,
수많은 영혼을 구원한 강력한 사역자였습니다.
그녀가 쓴 찬송가의 가사는 이렇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해, 잃어버린 자들을 찾게 한다.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나는 순종 하겠다.
마가 다락방에 떨어진 그 불이, 내 위에도 임해 있기에
모든 육신적인 것과, 두려움과 낙망을 쫒아낸다.
내 안에 주신 하나님의 생명은 강해서
슬픔의 파도가 몰려오는 바다를 거뜬히 항해 한다.
그녀는 놀라운 가문에 속해 있어서, 20세가 되기 전 파리에 가서
복음으로 파리를 뒤집어 놓았고, 그 결과 감옥에 잠시 수감되었습니다.
그녀는 스위스도 복음으로 침략했고, 그 결과 거기서도 감옥에 갔습니다.
그 초기 구세군들은, 복음으로 인해 늘 고난을 겪었습니다.
마타숄은 아버지 윌리엄 부스처럼, 성령의 불로 늘 가득 찼었습니다.
그 초기 구세군들은, 이렇게 기도했고, 찬송했습니다.
정결케 하는 거룩한 불이신 주님,
당신의 피로 산 영혼들에게, 오늘밤 그 불을 내려주십시오.
여기 기다리는 무리를 보시고, 약속하신 성령의 불을 보내주소서.
당시 구세군은,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도 잘 몰랐지만, 전 세계로 나갔습니다.
그들은 70년 동안, 90개 도시가 아니라 90개국으로, 복음을 들고 나갔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하는 것처럼,
전도지 몇 장을 나눠주는 휴가를 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향해 불 타 올랐습니다.
▲성령에 대한 그들의 강조점은 ‘능력 power’이 아니라, ‘순결함 purity’이었습니다.
구세군은 아직도 ‘주를 위해 불타오르리라’는 결심이 적힌
붉은 깃발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에겐 또 다시 오순절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정녕 오순절을 간절히 원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우리에게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가 정말, 부흥을 위한 대가를 기꺼이 지불하려고 할지는 의문입니다.
그러나 오래지잖아 제가 확신하건데 어떤 중대한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하신다’고 했는데
같은 맥락으로 빌립보서에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하나니..’ 빌1:20
빌립보는 알렉산더의 아버지 빌립이 세운 도시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두 번째 선교 여행 때 세워졌습니다.
신약은, 지도를 보지 않고는 잘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지도를 보면, 사도바울이, 교통시설도 불편했던 그 시절에
얼마나 광범위한 지역을 다니면서, 전도에 힘썼는지.. 그 수고를 알게 됩니다.
바울은 1차선교 여행 때는 소아시아(터키)에 다녔습니다.
비행기나 차도 없이, 그가 얼마나 멀리 여행했는가를 보십시오.
지금은 선교회에서 가도록 허용하지도 않는 험악한 곳을,
그는 배나 도보로 여행 했습니다.
여러 번 죽을 뻔했고, 자주 굶주렸고, 고통을 당했다고 말한 것이 당연합니다.
그는 열댓 명보다 많은 사역을, 자기 혼자서 감당했습니다.
▲저 레븐힐은, 하나님께, 바울의 열정과 비전과 기름부음의 1%만이라도 달라고
기도하고는 합니다.
그는 다른 누구보다 많이 기도했고, 많이 설교했고,
많이 금식했고,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리스도가 내 몸에서 영광스럽게 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주셨습니다.
주님은 더 적게도 아니고, 더 많이도 아니고,
여러분에게 주신 바로 그만큼을, 여러분에게 요구하십니다.
그 분은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그 골고다 십자가를, 나를 위해 지셨습니다.
그 모든 고통을 기꺼이 참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그 많은 수고를 감당하면서도,
자신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고,
그리스도가 내 몸에서 영광스럽게 되기를 원한다고 고백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복음을 전하는 중에 혹시 사도바울처럼 고난을 겪는다 하더라도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하나니..’ 빌1:20
라고 고백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하나님은
산 사람은 사용하지 않으시고, 항상 죽은 사람만 사용하십니다.
바울은 늘 ‘십자가에서 죽는 경험’을 했습니다.
빌립보서에는 놀라운 말씀이 있습니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한 번도 ‘죄’라는 단어를 거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는 악취 나는 감방에서 글을 썼습니다. 바울은 최악의 감방에 있었지만
14번이나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기뻐하라. 기뻐하라.’
데살로니가서에서 바울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다고 했습니다. 살전2:2
좋은 일을 해도 감옥에 가고, 나쁜 일을 해도 감옥에 가는 이 세상은
이상한 세상입니다.
몇 해 전에, 영국에서 한 침례교 목사가 감옥에 갔습니다.
그를 풀어 달라는 기도를,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길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감옥에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던지.. 그는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쉽게 풀려나오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게 ‘목사님, 제 짐을 벗겨달라고 기도해주세요’ 라고 부탁하지만
당신이 그 짐을 계속 지고 있는 것이, 주님의 뜻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십자가의 실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원한다면, 그 짐을 계속 지십시오.
존 번연도14년 동안 감옥에 있지 않았습니까.
거기서 그는 <천로역정>을 썼습니다.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옥중서신서>를 썼던 것처럼, 말입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주안에서 기뻐하라. 또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작은 고난을 당하면서도, 왜 고개를 땅에 처박고 다니십니까?
왜 기뻐하지 못하십니까?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하려 하나니’ 라고 했고
연이어서 ‘이는 내가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고 했습니다. 빌1:21
다시 말해 자신이 살아있는 것이 하나님께 유익하다면,
그것이 자신이 사는 유일한 이유라는 것입니다.
저는 비행기를 탄다거나 할 때, 죽음의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정말 원하실 때는, 저를 집으로 부르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레븐힐이 지상에서 쓸모가 없어질 때, 저를 집(천국)으로 부르실 것입니다.
저는 그 전에는 가고 싶지 않습니다.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그 전에는, 살아서, 제 몸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리기 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몸에 관해 많은 말을 했습니다.
롬12:1-2,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라고 권면했지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 세대를 본받고 있습니다. 이 세대의 가치관에 순응합니다.
갈라디아서 6:14절을 보겠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17절입니다. ‘이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행17장에서 바울은, 아덴에서 철학자들, 스토아학파들을 만났는데
그 만남을, 자기 지식으로, 완전히 지배했습니다.
저는 모든 인류 중, 예수님 외에는, 바울이 가장 명석한 두뇌를 가졌지 않는가 생각합니다.
모든 철학적 이론으로도, 그들을 지배했으니.. 말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을 자랑치 않고, 대신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베냐민 지파에 속했고,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또한 바리새인으로.. 내 가문과 신분을 자랑 삼을 수 있지만
자기는 그런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런 모든 것에 죽었고, 아무것도 자랑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십자가에 달린, 자기 속에 살아계신 그리스도만 자랑한 것입니다.
자신에 대해 완전히 죽은 사람이었죠.
그래서 하나님은, 산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을 쓰십니다.
▲‘이후로는 아무도 나를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내 몸에 그리스도의 흔적이 있습니다’ 갈6:17
역사의 아버지라고 불린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의하면
바울 시대에 노예가 자유케 되는 방법 중에 하나는
신전으로 도망가서 신전에서 24시간 불타오르는 제단에서
짐승에게 낙인을 찍듯, 낙인 찍는 사람에게 가서
어떤 신이든 선택해 낙인(불도장)을 받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자기 발바닥에 낙인을 찍고, 토가(모자가 달린 로마시대의 옷)를 내리고
자기 이마나 목에 낙인을 받습니다.
즉 자기 머리도 낙인 받은 신의 것이고, 발도 낙인 받은 신의 것이라는 것입니다.
비슷하게 바울은, 자신의 몸에 ‘그리스도의 낙인’이 찍혀 있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그리스도의 노예이므로,
이제는 아무도, 자기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나는 오직 그리스도에게만 속해 있다는 뜻이지요.
▲영국에서 부르던 아름다운 찬양이 있습니다.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네.
주님께 내 모든 존재를,
내 모든 생각, 나의 말, 내 행동, 내 모든 날들과, 내 모든 시간을
그분의 것으로, 낙인 찍힌 내 손은 주님을 섬기리라.
내 발은 그분을 향한 경주를 하리라.
나의 눈은 오직 주를 바라며, 내 입은 오직 주를 찬양하리.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드리네.
모든 것을 주님께, 놀랍고 놀라우신 왕 중의 왕께,
영광스러운 예수님 왕 중의 왕이신 그분이, 낮고 비천한 나를 부르셨네.
나를 그 분의 사랑하는 자라고 부르셔서, 그분의 날개 아래 쉬라 하시네.’
바울은 오직 한분을 위해, 오직 한사람 그리스도를 위해 산다고 했습니다.
자기는 죽든지 살든지 상관없다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그가 나를 십자가에 보내시면, 기꺼이 가겠다는 것입니다.
악취 나는 감옥에 보내시면, 기꺼이 그곳에 머물겠다는 것입니다.
바울 같은 사람을 감옥에 보내는 것은, 가장 어리석은 자들이 하는 짓입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풀려났지만, 감옥은 지진으로 무너졌습니다.
▲빌립보서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진실하여’는 희랍어로 ‘왁스가 섞이지 않은’이란 뜻입니다.
그리스에서 대리석으로 조각을 만들다가, 귓부리 같은 곳이 떨어져 조각이 망가지면
돌가루를 내어, 거기에 왁스를 섞어서 살짝 갖다 붙였습니다.
그런데 햇볕이 내려 쬐이기 시작하면, 왁스가 녹아 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진실하여’는, 어떤 위선도 이중성도 없이 순수하라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감옥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이런 말을 합니까?
서신서를 쓰는 것 외에,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밖에는 할일이 태산입니다.
바울은 죽은 자를 일으키는 치유 사역자인데, 지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선교여행 중에, 다른 여러 나라에서
죽음과 마귀와 의심과 흑암을 다스리는 권세를 행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로마감옥에 갔고
그 안에서 서신서들을 써서 수많은 사람들을 축복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사람이 원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은 그 일을 통해, 더 엄청난 열매를 거두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의 옥중서신(엡, 빌, 골, 몬)들을 통해, 받는 은혜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뿐만 아닙니다. 빌1:13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그는 지금 갇혀 있으나, 갇힌 상태에서
로마 왕궁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지금, 로마 황제의 시위대에 의해 감금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영향력이) 모든 시위대에 그 밖의 많은 사람에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 결과는 빌4:22절입니다.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우리 생각에는, ‘가이사의 집안은 지옥 옆에 있을’것 같습니다.
(마치 김정일 집안이 예수 믿는다는 생각과 비슷하지요)
감옥에 갇혔던 바울의 간증이, 로마 궁전으로 전해져서
로마의 통치자 가이사의 집안 사람들도 변화 시킨 것입니다.
작은 부흥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이번 주에 어떤 분이 제게 보낸 감동적인 글에 의하면
한 크리스천이 세상에서 최악의 장소인 시베리아에 보내졌다고 합니다.
가장 춥고, 어두운 겨울이 오래 지속되는 그곳, 겨울엔 음식을 구하기가 별 따기인 그곳에
그 크리스천 노인은, 성경책 딱 한 페이지를 가지고, 그곳의 수십 명을 회심시켰다고 합니다.
공산주의 지배 하에서 그곳은, 성경책을 못 가지게 되어 있으니까,
한 페이지만 찢어서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과 저는, 온전한 성경책을 가지고도,
그것도 10개의 다른 번역본을 갖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천국에 가서 받을 심판의 근거는, 바로 이 성경책이 될 것입니다.
성경을 갖고 있으면서도, 성경대로 못 살았으니까요.
여러분이 천국에 가시면, 성경지식을 많이 배웠다는 사실을 후회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높은 지식을 뽐냈지만,, 비천하게 살았다.
너의 지식은 저 위에 있었지만.. 너의 삶은 저 밑바닥을 기었다.
너는 자유를 말했지만.. 갇혀서 살았고,
순결을 말했지만 불결했다.’ 라고 할 것입니다.
▲저는 제 서재를 방문했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서재에는, 책이 많지 않습니다.
나는 좋은 책만 골라서 1~2백권 정도만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나와 똑같은 크기의 성경 한 권을 갖고 있었습니다만,
이런 심오한 진리에 대한 책을 쓸 수 있었습니다.
책을 많이 가진 것으로, 여러분의 자랑을 삼지 마십시오.
책을 몇 권만 가진 사람도, 심오한 진리를 쓸 수 있었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은, 내적인 깊은 지식을 갖기 바랍니다.
외적인 화려한 서재가 아니라요.
일례로, 귀용 부인을 들 수 있습니다.
귀용 부인은 처참한 감옥에서, 사도바울처럼, 아름다운 글을 썼습니다.
그녀가 갇혔던 감옥은, 지금은 없어졌습니다.
잔해만 남아있는데, 그 벽이 9미터 두께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감옥에 그녀를 가두고, 성경책을 보지 못하게 하고 누
구도 만나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안에서 그녀는 개선하는 군대처럼 노래했습니다.
‘들판에 자유롭게 날던 작은 새가 평생을 갇힐 새장에서 만족하네.
나를 이곳에 가둔 하나님을 찬양하네.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가두시길 기뻐하셨으니, 나는 기쁘게 수감 생활을 하려네.’
하나님께서 그 온유하고 명석하고 은혜로운 여성을
몇 년 동안 감옥에 가두기를 기뻐하셨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그런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을까요?
감옥 안에서 귀용 부인은,
단 한 번의 불평도 없이, 주님을 더욱 더 사랑했습니다.
‘주님의 놀라운 사랑, 하나님의 사랑’ 하며, 오히려 찬양했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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