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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내 몸에서 존귀케 되기를 P2 / 레이븐힐

LNCK 2014. 10. 24. 13:42

https://www.youtube.com/watch?v=pIAk8frBvR8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내 몸에서 존귀케 되기를 P2          1:20-21

  P1 바로가기 -클릭- 

레너드 레이븐힐

 

제 아들 폴이 오늘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기가 읽고 있던 잔느 귀용 부인의 책이, 최근 미국에서 재 출판되었다고 합니다.

 

    한 프랑스 성경 교사가, 제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오늘날 신자들 가운데 극히 소수만이, 귀용 부인같이

    하나님과 살아있는 관계를 갖고 산다는 것이.. 지금 우리의 힘겨운 현실입니다.

    우리는 발목 까지만 담근 체 살아갑니다.

    사랑의 임재가운데 수영을 하지 못합니다.”

 

저 레븐힐은, 여러분의 설교 따위는 듣고 싶지 않고,

하나님이 여러분께 직접 역사하시는 것을 보고 싶습니다.

 

바울도 뛰어난 설교자였지만, 신학자에 더 가깝고,

화술로 보면, 아볼로가 더 뛰어난 설교자로서, 그는 초대교회의 웅변가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설교에 있어서, 내 말이나 지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요즘 우리는 은사에 파묻혀 버렸습니다.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은사를 높입니다.

예언과 그 해석을 높입니다.

주님보다, 은사와 예언과 그 해석을 더 높이고 있습니다.

 

부룩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 목적은 하나님 그분 자신입니다. 평강이나 기쁨이나 축복이 아닙니다.”

 

저 레븐힐은, 교회에 초청받아 가거나, 집회 강사로 가면, 꼭 이 질문을 합니다.

지난주에, 수 백 명의 목회자가 모인 집회에서도, 제가 물어봤습니다.

 

이 집회에 참석하신 여러분은, 오늘 이곳에 정말 하나님을 만나러 오셨습니까?

 

99%의 미국인, 영국인들은, 교회에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관한 설교를 들으려고 갑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내려오심, 임재하심을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복 주시려고, 임하시기도 하시며

반대로 징계하시려고, 임하시기도 하시는데..

 

문제는, 대부분의 신자들이, 그 분의 임재를 환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괜히 자기들이 잘 살고 있는데, 귀찮고 불편하다는 뜻이지요.

 

그들은 설교말씀이, 자신들 안에 있는 타락과 부패를 드러내 보여주는

거울이 되어주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괜히 말씀에 은혜를 받아서

강대상 앞에 나와서 엎드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라고 부르짖을까봐

그들은 염려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부르짖어야 합니다.

 

대신에 그들이 교회에 나와서 고작 드리는 기도란

주님, 저는 약하니 저를 도와주세요

헌금을 잘 내도록, 제 직장/사업을 도와주세요

이런 연약해빠진 기도를 합니다.

 

개인적 부흥을 가져오는 두 가지 간절한 기도제목은

-자신이 죄로 망하게 되었다는 것과

-자신이 불결하다는 각성에서 오는.. 간절한 기도입니다.

 

그런 각성이 있어야, 자기의 신앙생활이 심각해지며, 영적 수술을 받기 시작합니다.

이런 자신에 대한 절망적인(간절한) 기도가, 이 절망적인(희망 없는) 시대에서는 꼭 필요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누가 이 사망에서 나를 건져내랴!’ 하는 기도 말입니다!

 

빌립보서를 봅니다.

사도바울의 기도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리스도가 내 몸에서 존귀케 되도록 기도해주시오.’

 

그는

주여, 제가 더 매력적인 목회자가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또는 주님, 제가 더 심오한 사역을 하고, 더 많은 기적을 나타내게 하소서

또는 자기가 스타 설교자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로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한때는 스타 강사가 되려고 했던 적이 잠시 있었습니다.

설교자들 간에도 경쟁심이 있는데, 저는 잠시 어리석게도 그런 덫에 걸렸었습니다.

 

그러나 곧바로 거기에서 자유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부터, 제게 대한, 사람들의 평가 따위는 무시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가 내 몸에서 존귀케 되게 하라.’

바울은 여기서, 자신의 의견 opinion 을 말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의 원칙 principle 을 말하고 있습니다.

 

1:20-21절입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리스도안에서 죽으면.. 유익하지만,

죽지 않으면.. 지옥과 같습니다.

우리 안에 육적인 죄성은, 모두 살아서 활동할 것입니다.

 

 저는 살다가 어느 날 한 순간에 지상에서 하늘로 이동되어 천국에 가도

 그때 전혀 당황하지 않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나는 늘 주님을 찬양하며 살아야 하고,

 나는 매일 순결한 마음을 갖고 있어야합니다.

 나는 내 삶을 더럽히는 모든 악한 영향력을 다 거부해야 합니다.

 

 어쨌든 우리는 이 지상을 떠나야 하는 존재이며

 죽는 순간을 미리 통지 받는 게 아니니, 매일 깨어서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이 저는 오늘 주님이 오시기를 기대합니다!’라는 말을 하면

저는 그들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정말 주님이 오늘 당장 오신다고 믿으면, 그는 많은 사람에게 전화해서 화해하고

자기 삶에 여러 가지 잘못된 것들을, 바로 잡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자기를 고쳐달라고 기도하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머물라고 합니다.

히브리서와 서신서들을 읽어 보십시오.

우리가 지켜야 하는 명령들이 아주 많습니다.

구원받은 성도의 반응으로써, 우리가 해야 될 자기 몫도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모든 희생을 다 치루셨습니다.’ 맞습니다.

내 행위가, 주님의 구원사역에 뭔가 부족한 게 있어서, 보태드리는 게 아닙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성도, 은혜 받은 성도는,

반드시 그 구원의 은혜에 반응을 나타내게 되어 있습니다.

 

보혈로 우리를 구속하신 것은, 그 죄의 대가를 다 치룬 것이 진리이지만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반응을 뜻하는 것입니다.

 

모든 쾌락과 교만을 포함한 세상을.. “내가버려야합니다.

기도만 하고, 기도로 다 맡긴다고 말하면서, 자기는 슬그머니 빠져버리면 안 됩니다.

자기도 주님의 십자가 은혜에.. 반응해서 순종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열정적인 설교자 바울

 

바울을 보십시오!

본문 빌1:20-21()이, 바울의 자기 삶의 목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빚진 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바울처럼 땀 흘리고 노력하고 일하고 싶습니까?

아무것도 바울의 마음을 흔들리게 할 수 없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자아의 죽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로마서1:14절은, 그의 열정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전에도 말했지만 설교는 전문가적 유창함이 아니라, 열정이고, 성령에 붙잡히는 일입니다.

 

저는 열정적인 설교자 바울을 사랑합니다.

그가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그는 설교하면서 울었습니다.

울지 않는 설교자는 파면 시켜야합니다.

 

제가 발송하는 편지마다, 동봉하는 작은 쪽지에, 이런 글이 적혀 있습니다.

당신의 목회자가 당신들을 위해 울지 않는다면

그 목회자를 위해 울며 기도할, 기도회를 조직 하십시오.’

예수님도 우셨고, 바울도 설교하면서 울었습니다...

 

경험도 없는 사람이, 한 번 은혜를 받았다고, 자기 세상 직업을 그만두고,

당장 설교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의 소식을 들으면.. 저는 걱정이 됩니다.

 

저 레븐힐은, 신자가 구원 받고 10년이 지난 후에야, 설교단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젊음이들 가운데, 자기가 지금 나가서 설교를 해야겠다는 편지를 보낸 청년들이 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이렇게 답장을 보내줍니다.

 

   예수님도 30년 동안 목수, 잡일을 하시며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30년의 훈련을 받았고, 세례요한은 30년 동안 광야에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7장을 읽어보세요.

   모세는 부름을 받기 전에, 이미 말과 행사에 능한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는 한 국가의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광야의 뒤편으로 보냈습니다.

   40년을 광야에 있었습니다.

 

핏속으로 스며든 경험 없이, 그저 성경을 읽어준다고, 설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하라고 지시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감옥에 갇혔고, 연약해 졌고, 지친 경험을 통과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고난들이, 그를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의 목적은,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는 것이고,

그는 빚진 자의 열정을 갖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설교는, 열정에 의해, 마치 신들린 것처럼 붙잡히는 것입니다.

열정이 없으면, 열정이 생길 때까지는, 설교하지 마십시오.

지금 제 안에 불이 없는데, 여러분 안에 어떻게 불이 지펴지겠습니까?

 

이런 관점에서 보면,

대부분의 설교자들이 하는 것은, 설교가 아닙니다.

 

   여기 참석한 여러분 중에, 장차 설교자가 되고자 하는 분은 손들어 보세요!

   여러분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은 최소 한 먹고, 최소 한 자고, 가능한 오래 기도하고, 많이 공부하십시오.

 

지난 금요일은 제가 설교를 한 50년 되는 주간이었습니다.

저는 전 세계에서 설교를 했습니다.

 

제 안에 거듭나지 않는데, 어떻게 여러분을 거듭나게 하겠습니까?

제 배가 아닌, 제 가슴에 불이 있어야합니다.

제가 불타오르지 않는다면,  

제 설교를 듣고, 여러분이 불타오르길 어떻게 기대하겠습니까?

 

제가 울지 않는다면, 여러분이 왜 울겠습니까?

제가 대가를 지불할 각오가 없다면, 여러분에게 어떻게 희생을 요구하겠습니까?

저는 절대로 위선자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기이한 사람 바울을 봅시다.

그의 목적과 열정은 알게 되었으니, 그의 기쁨이 무엇이었는지 봅시다.

고린도후서12:9-10

나에게 이르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네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중국에 부흥을 일으킨 놀라운 사람 허드슨 테일러에게

영국의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있고, 수천 명의 탁월한 성경 교사가 있는데

왜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용하셨는가.. 물으니, 그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랫동안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사람을 찾다가 찾다가.. 찾지 못하고

    마침내 나를 찾으시고 사용하신 것입니다.”

 

허드슨 테일러는, 중국에 거대한 하나님 나라를 건설했습니다.

이와 같이 바울도, 자기 연약함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저를 몇 번이나 치유해서 살리셨습니다.

저는 사망의 골짜기를 몇 번이나 지났습니다.

 

의사가 흰 천을 제 머리 위로 덮어주고, 몇 분 안에 죽을 거야라고 하는 말을

제가 듣고 말했습니다.

내가 죽을 거라는 것입니까?’

듣고 있었네요.’

내 말을 하는데 듣는 게 당연하죠, 그런데 나는 안 죽습니다.’

 

저는 불타는 호텔에서 추락했는데, 땅에 몸이 부딪치기 전에 (허공에서) 주님이 말했습니다.

너는 죽지 않고 살 것이다.’

 

새벽 4시에 토저 박사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병원으로 달려왔습니다.

저는 불에 그슬렸고 피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토저 박사에게 제가 말했습니다.

주님이 약속하시길 죽지 않고 살 것이며, 주님은 완전하셔서, 실수하지 않으신다고 하셨네.’

 

   미국에서 가장 탁월한 목회자가, 하루는 저를 만나러 왔습니다.

   ‘이 도시를 지나는 길에, 자네를 만나러 왔네.’

 

   저는 그 몇 달 전에, 그의 교회에서 설교한 적이 있었습니다.

   "레븐힐 형제님, 당신이 지는 이런 짐을 나는 약해서 질 수가 없기에

   주님이 내게는 주지 못 하실 겁니다."

 

여러분이 가장 어렵고 힘든 시기를 지날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신뢰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바울은 말합니다.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는 기적이 아니라, 성령이 내주하심을 더욱 강해지기를 원했습니다.

 

저는 '왜 내가 마셔야 하는가?' 질문하지 않았고,

주님이 주신 잔을 마셨습니다.

 

저는 바울이 한번도 왜 해야 하는가?’ 질문하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났을 때, 바울은 "왜"냐고 묻지 않았고,

이 모든 일이 "무엇에" 관한 것인가.. 즉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받는 대가가 무엇입니까?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역설적이죠. 기독교의 많은 진리가 역설적입니다.

높아지려면 낮아지라고 하셨습니다.

높아지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낮추실 것이나, 낮아지면 높이신다고 하셨습니다.

무엇인가 되려하면, 아무것도 아닌 자가 되어야합니다.

 

당신의 약함을, 그분의 강함과 바꾸십시오.

당신의 공허와 그분의 충만을,

 

‘내 몸에서, 오직 그리스도가 존귀케 되게 함이라

저는 이 말씀이 참 좋습니다.

 

바울의 생애를 보면

그는 고난과 고문과 유혹과 시험을 받았고, 감옥에 수감되었지만

모든 상황 속에서 완전히 승리했습니다.

 

로마에 사는 사람들은, 

굶주려 죽이려 해도 신음하지 않는 이 사람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으로, 모든 환란과 고난과 비극적사건 속에서도

넉넉히 승리했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기독교의 초대형 스타라고 생각하지만

이것은 정상적인 기독교인의 삶입니다.

정상적인 기독교인의 삶입니다.

 

 

 

 

마지막으로 저 레븐힐은

But none of these things move me '이 모든 것은 나를 요동치게 하지 못한다'는  행20:24a

말씀이 좋습니다.

 

이런 것들이

즉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하는 것들이  행20:23

그를 흔들지를 못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의 중심을 잡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오래되지 않아 체포되고

사형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바울은, 전화를 걸어서 자신이 핍박을 받게 되었으니

기도회를 조직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바울 같은 사람 옆에 있으니, 제가 참 초라해집니다.

그의 놀라운 지적 능력 때문이 아니라

그가 주님과 가진 관계 때문에, 저는 주눅이 듭니다.

 

그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했습니다.

십자가로 가는 사람은 많지만, 올라가서 죽는 사람은 적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주님이 자신에게 나타나셨다고 했지만

나중에는 자신 안에 계시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방언을 하고, 병자를 치유한다고 해도

여러분의 삶이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이것을 금하고, 저것은 허락하고.. 이런 말들을 교회 안에서 많이 하는데

기독교인의 진정성에 대해, 거리의 부랑자와 공장 노동자들이 잘 알고 있습니다.

 

많은 위선과 말들을 많이 들었지만, 그들은 진정한 기독교인을 보면 알아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면 알아봅니다.

 

그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불만이나 분쟁 없이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불편하고 취미에 어긋나는 일이라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마귀에게, 탓을 돌린 적이 없습니다.

그는 마귀가 자신을 감옥에 넣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가이사가 자신을 투옥 시켰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복음으로 인해, 사슬에 매인 죄수가 되었다' 라고 했습니다. 엡6:20

 

로마서8:28의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구절은

아름다운 시의 구절이 아닙니다.

나는 악취 나는 감옥에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것을 통해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로마 시내를 휘젓고 다닌 것은 아니지만, 로마 시민들은 바울에 대해 듣게 되었습니다.

1장에서, 가이사 집안의 사람들이 성도 중에 있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어떻게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까?

 

바울은 모든 것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잃어 버렸습니다.

살아도 주를 위해 사니 유익이고, 죽어도 유익이라는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 유익한 것입니다. 동전의 양면 중 어느 쪽도 유익합니다.

이런 삶에서는 어떤 것도 잃어버릴 것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 땅에서가 아니라, 심판대 후에 상급을 주십니다.

 

   목회자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사도 바울 옆에 즐거운 마음으로 설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의 설교 ,열정에 대해 말했는데, 그의 기도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어떤 목회자가 주일날 50명에게 설교하든, 5,000명에게 설교하든.. 저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 숫자가 아니라, 

   어떤 목회자도, 딱 자신의 기도 생활만큼만, 탁월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