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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워셔 2013년 한국 사경회 4-1강

LNCK 2014. 11. 4. 15:25

 

◈폴 워셔 2013년 한국 사경회 4-1강                 롬3:23         인터넷에서 스크랩, 정리



◑서론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롬3:23



▶저는 여러분에게, 얼마나 자주 위 말씀을 기초로 설교하는 말씀을 들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이 분문의 말씀을 기초로, 설교하는 것을 들은 마지막이 언제입니까.

이 본문의 말씀을 깊이 있게, 여러분 스스로 공부하거나 묵상한 적이 있으십니까?



제가 이것을 묻는 이유는 이것입니다.

지난 교회 역사를 통해서

많은 신학자들과 설교자들이, 이 본문 말씀이,

모든 성경 가운데, 제일 중대한 말씀이라고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찰스 스펄전과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님이, 본문의 말씀을 가리켜서

‘기독교신앙의 강력한 요새 fortified city of the Christian faith’라는 표현으로,

그 중대성을 설명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본문 말씀을, 어디를 가든지, 아주 강조해서 설교합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현대 기독교와 복음주의가, 지나간 세대의 기독교와 복음주의가

판이하게 상이하다는 것을 알려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과거 시대에 가장 중대하게 강조되었던 하나님의 말씀(죄와 그 결과에 대한 강조)이

지금 시대에 선포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대단히 걱정스럽게 만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간에, 롬3:23~31절의 이 본문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다시 한 번 점검하기를 원합니다.



그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설명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 구절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 역사를 보십시오. 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질문해 보십시다.

‘내가 과연, 과거 교회역사에 존재했었던 경건했던 남자,

경건했던 여자들과, 동일한 경건한 신앙의 사람으로 간주되고 있는가?

아니면 그 경건한 계보에서 이탈해 있는지..

내가, 역사적이며 성경적인 기독교로부터 혹시 이탈하지는 않았는지..

세밀히 살펴보기 바랍니다.



제 예상으로는 이 본문을 가지고, 2강, 내지 3강의 시간을 갖기 원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믿기로 이 본문 말씀이야말로

‘복음의 심장 heart of the gospel’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스펄전과, 다른 모든 신학자들과 목사님들과 함께

이 본문 말씀이야말로 ‘기독교인의 강력한 요새’라고 믿습니다.



제가 아주 열정적으로 설교하던 지난 시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감정을 이용해서 여러분들을 조작하거나 여러분들을 움직이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상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은, 이 본문 말씀을 한 절 한 절 한 단어 한 단어 해설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진실로 여러분이 이 말씀을 이해하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본문 말씀이야말로 복음이 어떠한지 여러분이 깨달아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를 위해 기도하시고 여러분 자신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진실되게 선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본론/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라고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모든” 이라는 단어를 강조하고자 합니다.

한사람도 예외 없이 “모든 사람”입니다.

죄의 보편성 universality of sin 을 말하는 것이죠.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만난 가장 큰 난제입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이 가진 모든 문제들은, 바로 이 한 가지 문제(자기 죄)로부터 시작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 신화를 잘 아시겠지만, ‘판도라의 상자’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녀가 판도라의 상자를 열자, 세상의 모든 악이, 세상으로 뛰쳐나왔습니다.

어쩌면 이것은 ‘판도라의 상자’에 빗대어 말하자면, ‘아담의 상자’가 되겠습니다.



그는 에덴동산에서 타락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아담 안에서’ 정죄를 받았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급진적으로 철저하게 타락한 본성을 가지고 출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바울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기에 all have sinned”

라는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위 롬3:23절 말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이 말씀이, 당신을 소스라치며 놀라게 만듭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반드시 소스라치며 놀라야 합니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누구도, 이 말씀에, 두렵고 떨지 않습니다.

저는, 그 누구도, 이 말씀을 듣고서,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저 폴 워셔는, 이 본문 말씀을 통해서

이 세상에서 흘려진 그 모든 눈물보다 더 많은 눈물이

흘러나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세상의 모든 비극, 모든 전쟁,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모든 죽음과 사망이, 영원히 운명 지어지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는 참으로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이것의 실상을, 우리 인간이, 제대로 묘사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이 죄가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제대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심지어 바로 오늘도, 수 천 수 만의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하고, 지금 죽어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죄는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이 죄를 특별히 무서워해야 하는 이유는,

죄가 사람에게 지은 것이기 보다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대해 짓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욕이라도, 친구에게 한 욕설과

옛날 군주시대에, 왕에게 내뱉은 욕설은.. 그 처벌이 다르겠지요?



마찬가지로, 죄가 그토록 무서운 이유는

내 죄가, 바로 영원토록 무한하신 하나님을 상대하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지은 범죄이기 때문입니다.



이 이유 때문에 우리가 그토록 더럽고 역겨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죄는, 지극히 선하신 하나님에게 범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경배와, 영광과, 순종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경배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하는 대신에

오히려 우리는 하나님께 반역과, 증오와, 불순종을 드리고 말았습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우리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모든 피조물들까지도, 인간의 타락에 영향을 받아서, 환경의 고통을 당하게 되었고,

그들은 지금, 모든 피조물들이그 탄식가운데서, 구속받을 날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봅니다.

천지창조의 때에, 하나님께서는, 별들을 향해서

우주의 각각의 자리에서, 각자 위치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자 모든 별들이 하나님께 절하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행성들을 향하여서,

일정한 자기 궤도를 돌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러자 행성들은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산들을 향해서, 솟아나라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계곡들을 향해서는, 내려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자 산과 계곡,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이 대양을 바라보셨습니다.

대양들은 여기까지만 오고, 물이 더 이상 넘치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큰 대양들은, 그 하나님께 경배하고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여러분(사람들)을 향해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사람들)은 ‘아뇨, 못 갑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저는 절대로 하나님께 가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말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죄에 대해 생각해보길 원합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짓는 행위를 한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어떤 것, 즉 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기 때문에, 우리가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속사람, 그 심성 자체가, 죄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겉으로 나오는 우리의 말, 행동, 감정이.. 모두 죄인 것입니다.



우리는 아예 피붙이로 태어날 때부터

부패하고 타락한 백성으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을 혐오하고 증오하는 사람으로 태어났습니다.

아담의 죄성을 유전해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사람에 대해 묘사하고 있는 말씀들입니다.



창세기 6: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이 성경 말씀을 보십시오.

‘사람의 마음에 모든 생각과 계획이 악하다’고 했습니다.



한 가지 예화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만약 여러분의 마음을 꺼내서,

그리고 여러분이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모든 생각들을

영상으로 전부 다 복원해서

그 모든 생각들을, 제가 DVD에 담아서 만들었습니다.



그 DVD를, 지금 이 예배당의 스크린에 틀어서 공개한다고 가정합시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은, 이 자리에서 도망쳐 나가서,

다시는 이 자리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이지 않습니까?



만약 여러분의 생각을 모니터에 틀어놓으면, 여러분은 절대 안 된다고 할 것입니다.

심지어 여러분은 저와 싸울 것입니다.

저의 손에서 그 DVD를 빼앗아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바닷가로 달려가서, 깊은 바다 속으로 던져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죄를 지어서 구원에서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상태.. 이것이 바로 우리의 실상입니다.

우리는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8:21절을 봅니다. 이것은 노아의 홍수 이후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여러분 노아의 홍수 이후에도, 사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를 통해서 이 세상을 깨끗하게 하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홍수가 사람의 마음까지 깨끗이 하지는 못했습니다.



여러분 그것은 노아의 홍수보다도, 더 큰 어떤 일이 되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보십시오.

‘사람이 어려서부터 계획하는 바가 항상 악하다’고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출생부터 말입니다.

그래서 엄마의 모태에서 나오자마자, 아기는 자기 본성으로, 죄를 짓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종종 어린 아이들의 순진무구함에 대한 노래를 듣습니다.

어떤 노래가사는 이렇습니다.

‘오직 어린 아이들이 우리를 인도한다면, 우리는 세계 평화에 이를 것이다.’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 어린 아이들이 우리를 인도한다면

우리는 내일 제 3차대전을 맞이하게 될지 모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4살짜리 아이에게, 여러 종류의 장난감들을 줘서, 가지고 놀게 합니다.

장난감이 너무 많아서, 아이는

어떤 장난감은 가지고 놀지만, 어떤 장난감은 손도 대지 않습니다. 자기 관심밖엔 것이지요.



그런데 여러분이, 그 아이가 한쪽에 치워놓았던 장난감을

다시 그 아이에게 권해 보십시오.

그는 다시 옆으로 치울 것입니다. 그는 그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가 이 장난감을 원할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또래의 다른 아이를 데려와서, 그가 버렸던 장난감을 줘 보십시오.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아십니까? 제3차 세계대전입니다.



이것(타고난 타락한 죄성)이 바로, 인간의 살인의 이유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상호 미움과 증오의 원인입니다.



이것이 바로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의 원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원래 모습입니다.



▶신학자들은 이것을 가리켜 ‘전적 타락 total depravity’ 이라고 칭합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이것을 가리켜 ‘급진적 타락 radical depravity’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존재하고 행하는 모든 것들이, 다 더럽고 타락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행위만 타락한 것이 아니라, 마음속 근본 동기까지 다 타락하고 부패했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하는 일은, 계속해서 죄를 짓는 것이고

그 결과,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히틀러를 생각해보십시오. 그 사람이 아주 특별하고 이상합니까?

보통 사람보다 더 특별하게 악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히틀러를 본다면, 여러분은 거울로 자기 모습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히틀러보다 더 나쁘지 않은 유일한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악을 제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십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은혜를 거두어 가신다면

만약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악을 제어하지 않으시면, 세상은 넘치는 죄로 폭발할 것입니다.

그리고 구속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지나간 역사를 통해서, 엄청난 죄악들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그 악들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제어하지 않으셨다면, 더 엄청난 악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세상의 악을 제어하십니다.

살후 2:6절과 7절에 '막고 계신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구속 역사를 이루어가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래서 죄인들을 구원해 가시고, 그들을 점점 더 변화시켜 가십니다.



그래서 지금 세상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이런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은 넘쳐나는 죄악으로 스스로 폭발해서 해체되었을 것이며,

아니면 그런 죄인들을 제어할, 강력한 폭군의 억압이 아니면, 절대로 질서가 유지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 모든 이유가

‘모든 사람이 지를 지었으니..’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목사님 왜 이렇게 심한 말을 하십니까?’



실제로 어떤 기자가 제게 물었습니다.

‘왜 이런 부정적인 말들을 하십니까?’



제게는, 두 가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첫 번째는,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길 원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복음을 감사하고 이해하기 바랍니다. ★★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복음을 감사할 수 있습니까?



제가 앞서 3강에서 설명 드린 예화를 기억하십니까?

여러분이 부자에게 조그만 음식을 갖다 주면, 부자는 음식을 내던져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그 음식을 거지에게 준다면, 거지는 당신의 손에 키스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그렇게 가난한/비참한 상태인 것을, 우리가 절실히 깨달을 때,

우리가 가진 복음이.. 정말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휴머니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모든 판단의 척도’라고 하는 사회에 사고 있습니다.



그런 휴머니즘은, ‘인간은 기본적으로 선하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반드시 선한 인간을 구원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가 깨달을 때,

우리가 모든 종류의 정죄를 받기에 마땅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우리가 당해야만 하는 마땅한 결과가, 심판을 받고 지옥에 떨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바로 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면..

우리는 놀라움과 경이로움에 가득찰것입니다.

우리는 감사로 충만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 분 구원자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될 것입니다.



▶설교자가 죄에 대해 설교하는 것을 거절할 때,

그것은 회중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복음을 감사하게 될 기회를 뺏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설교자가 죄인에 대해 설교하는 것을 거절할 때

결코 백성들은 그리스도에게 감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다른 세상적인 것들을 추구하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면 번영 같은 것 말입니다. 집, 토지 같은 것 말입니다.

자동차, 존경, 명예 같은 것 말입니다.

그리스도를 영원히 즐거워하는 것 대신 말입니다.



여러분, 마약 중독자들이나 창기들이 구원 받는 모습을 본 적 있습니까?

그들이야말로 정말 구원의 감격으로 충만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감격을 깨닫기 위해서

보통 사람이, 일부러 마약중독자나 창기가 될 필요는 없지만,



마치 그들이 느끼는 구원의 감격 이상으로,

세상의 모든 크리스천들이, 그 죄악에서 구원된 감격을 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접체험으로 깨닫는 것이 낫죠. 직접체험보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 구절을, 우리는 뼈저리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64:6절 말씀입니다.



‘대저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filthy rag 같으며

우리는 다 쇠패함이 잎사귀 같으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 가나이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문둥병에 걸렸습니다.

과거에 문둥병은, 불치병이었습니다.

그 환자들은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정도가 아닙니다.

냄새가 정말 지독합니다. 상처에서 피도 흐릅니다.



여러분 지금 이 순간 제 옆에 한 문둥병자가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서,

이 문둥병자를, 아름답게 꾸며서 훌륭한 외모로 변신시킨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은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비단을 사 올 것입니다.

그래서 아름답고 찬란한 멋있는 비단옷 지어서 입혔습니다.



그리고 비단으로 이 문둥병자를 휘감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뒤로 물러서서, 우리가 변신시킨 그 사람을 쳐다봅니다.



그가 정말 훌륭하게 변신했습니까?

그렇습니다. 단, 잠시 동안만 그렇습니다.



자신의 육체를 썩게 만드는 그것이, 바로 그 비단옷을 적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운 비단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더러움과 부패함과

썩어져가는 베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 한센병 환자를 지목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자연인의 실상이 그렇다는 뜻입니다.)



저는 방금 세상의 타종교인이, 이 사람을 어떻게 구원할지에 대해 묘사해드렸습니다.

그의 최고의 선한 행위는 그저 썩은 옷 filthy rag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내면이, 문둥병처럼 부패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그저 평범하지 않은, 사악한 어떤 사람을 묘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회심하기 이전의 나의 모습이요, 여러분의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출생한 모습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고 죄 가운데 출생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죄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죄는 실수가 아닙니다.

죄는 반역입니다. 죄는 하나님을 미워하고 혐오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미워하도록 태어난다고 묘사한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잠시 생각해봅시다.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혐오하고 미워한다. 하나님을 혐오한다..

하나님과 대적한다.. 왜 그렇습니까?



도대체 왜 우리가 선하신 하나님을 미워합니까? 한 가지 이유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미국의 고등학교에 다닐 때,

저는 그 학교에서 상당히 골칫거리였습니다.

그 학교에서 어떤 학생이 자신의 숙제를 다하고

선생님께 순종하는 것을 제가 본다면

저와 함께 나머지 친구들이 그 친구를 괴롭힙니다. 왜 그렇습니까?



나는 선하지 않는데, 선한 친구를 보면, 짜증이 나고, 미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는 정말 선한 일을 행하고 있지만, 우리가 그 모범생을 미워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선을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인인 자연인이,

지극히 선하신 하나님을 미워하는 이유요,

지금 세상 사람들이, 안티 기독교인이 되는 자연스런 이유입니다.



▶여러분이 숲에 간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통나무가 그 숲길의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쓰러져 있습니다.

여러분은 길을 트기 위해서, 그 쓰러진 통나무를 치울 것입니다.



그 순간, 통나무 밑에 있던 모든 곤충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들은 순식간에 숨으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어둠을 사랑합니다.

그들은 빛을 혐오합니다.



왜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계명을 혐오합니까?

왜냐하면 우리가 악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저는 세속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대단히 공격적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를 싫어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계명의 말씀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 가운데 한 학생이 매우 화났습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이 모든 계명을 혐오합니다. 그것들은 전부 억압적이고 폭압적입니다.

그것들은 우리의 모든 자유를 빼앗아갑니다.

그 계명들이 우리를 압박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어떤 계명 말입니까? 어떤 율법이 당신의 마음을 억누릅니까?’



제가 몇 가지 리스트를 드릴 테니 그 중 어떤 것인지 말하십시오.

‘간음하지 말지니라’ 이 계명이 당신의 마음을 속박합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이, 다른 남자의 아내를 원하고 있다는 사실 아닙니까?



‘이웃에게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당신에게 공격적입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거짓 증거자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당신이 늘 정직하다면, 그 계명에 거리낄 게 없습니다.



‘술 취하지 말라’는 말씀은 어떻습니까. 그것이 당신의 마음을 속박합니까?

그 이유는, 당신이 친구들과 오늘 밤에

토할 때까지 술을 마시려는 것 아닙니까?



어떻게 이런 방식으로, 여러분이 계명을 미워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악하기 때문에,

이런 계명들을 싫어하고,

그런 계명을 주신 하나님을, 거부하고 반역하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여러분, 이것이 우리의 본래 모습입니다.

구원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과거의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과 그 계명에 반역했습니다.



자연인이, 이런 반항적 자세를 갖는 것이 너무 당연합니다.

롬3: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복음과 하나님의 성령만이

그런 죄인의 모습을 변화시키고 깨뜨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설교자들이, 이런 죄인의 실상을, 피상적으로 다룬다면 큰 잘못입니다.

이것은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오직 참된 복음만이 이것을 깨뜨릴 수 있는 유일한 메시지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조직신학이 없습니다.

그러나 가장 조직신학적인 책이라면 그것은 로마서입니다.



바울은 매우 신중하게 자신의 기독교 복음 교리들을,

로마서를 통해 서술하고 있습니다.

로마서는 총 16장입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 교인들에게, 자신이 무엇을 믿는지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흥미로운 사실입니다.

그러한 바울이 로마서 1장과, 2장과, 3장의 전장을 통해서

“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전체 중에서 4분의 1정도를 할애해서, 죄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죄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기독교 신앙과 신학의 모든 것을 이해하기 위한

근거와 기초와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날 설교자들은

실제적으로 전혀 이 “죄에 대해” 설교하지 않습니다.

기초가 부실한 건물을, 높이 쌓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거의 검사와 같은 자세를 가지고, 이 죄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바울은 자기 능력과 지혜를 총 동원해서

“자연인은 저주 아래 있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설복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3:9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다음 호에 계속) 위 화면의 20분20초까지 살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