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워셔 2013년 한국 사경회 5-1강 시5;5, 시50:16, 21, 렘9:23 영어로 듣기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힘으로 당신 앞에 놓였습니다.
하나님, 우리는 이 본문 말씀이, 전체 성경 가운데 가장 중대한 말씀임을 깨닫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지성의 문을 열어주시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그 진리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를 소망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복습 / 다른 복음
지난 4강 설교는, 복음에 관한 개념이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성경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중대한 것인지 살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성경적으로 선포하고 설교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배웠습니다.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의 메시지는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인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장 악독스럽게 행할 수 있는 것은
그 성경의 복음을 잘못 선포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장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거기서 사도 바울이
‘만일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받을 것이라’고 말씀한 것을 보았습니다. 1:6
그리고 현재 복음주의 교회 안에서,
얼마나 ‘다른 복음’이 유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이 기독교의 역사를 잘 이해한다면
그리고 교회 역사가 알았던 위대한 설교자들의 복음 메시지를 여러분이 들어본다면
아마 여러분들은 현대 복음주의가 설교하고 있는 그것이
얼마나 옛 복음주의와 다른 것인지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만약에 교회가, 거룩과 의로움 안에서 진정으로 성장하기 바란다면,
우리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재발견해야만 합니다. ←사경에 전체 주제
우리는 우리의 문화에 기초해서, 성경 복음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것을 멈추어야 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그 자체로 연구해야만 합니다.
성경의 가장 위대한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고
그 분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이 일을 행하신 것은, 우리의 물질적 번영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하신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한국과 미국에서,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다른 이유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이번 주일에도 많은 미국인들이, 교회에 다닐 것입니다.
한국의 교회 안에도,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들어올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오는 것은, 그리스도가 선포되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축복받고 번영을 누릴까 기대하기 때문이죠.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수 있을까를 추구합니다.
이 모든 것은 쓰레기에 불과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가 아닌 지식에 비교해볼 때,
이 모든 것들은 쓰레기(배설물)들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으로 인해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현존이시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추구하고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성장하고 닮아가기 위해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직전 회 4강에서 우리는 로마서 3장 23절을 살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고 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하나님의 율법을 어겼기 때문만이 아니라
본성적으로 전적 타락한 죄인이라고 살펴보았습니다.
인간은 시작부터 본성적으로 악하게 태어났고,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을 혐오하고 미워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문제가, 그의 외적인 행동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내면에 타락한 본성과 관계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인류의 가장 큰 난제입니다. 중대한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문제 제기
이렇게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의로워 질 수 있는가?
그것을 이 시간에 살펴보겠습니다.
위대한 칭의 교리에 관한 것입니다.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롬3:24절 (칭의에 관한) 말씀을 살펴보기 전에,
우리는 무언가 대단히 중요한 것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칭의’를 바로 알려면, ‘죄의 무게’를 먼저 알아야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시는지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시고, 하나님은 반드시 복수하시고, 보수하시는 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이 주제를 설교하는 것을 시작하기 위해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 아주 중대한 것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건 ‘죄를 아주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 즉 거룩하신 성품입니다.
▶먼저 여러분은, ‘하나님은 죄인을 사랑하시지만, 그러나 죄를 미워하신다’
는 말을, 자주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 말은, 일부 사실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이 말은 오해될 요지가 많습니다.
시편을 찾아봅시다.
시5:5.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여러분 이 구절을 잘 보십시오.
하나님이 죄인을 사랑하지만, 죄는 미워한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No.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노가, 이 죄인에게 직접적으로 향하고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대단히 중대한 진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여전히 죄 가운데 거하면서도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셔!’ 라고 믿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십니다. 세상은 죄인들로 가득하지 않습니까?
요한복음 3장 16절도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이 아닙니까?’
물론 하나님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신 일은.. 맞지요.
그러나 세상의 죄를 미워하시기 때문에, 심판을 보내십니다.
우리는 성경의 양면을, 동시에 봐야 합니다.
▶여기에 바로, 오늘날 현대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는 요즘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거의 설교 듣지 못합니다.
현대 교회 안에서 아주 적은 사람만이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공부합니다.
*하나님의 속성 attribute of God : 하나님의 영원성, 하나님의 편재성 등의 비공유적 속성을 다 포함해서
하나님의 사랑, 거룩, 심판, 자비, 진노, 의로우심 등 하나님의 도덕적(공유적) 속성에 관한 모든 영역을 일컫는 말.
여러분 가운데 얼마나 많은 분들이,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공부한 적 있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 아닙니까?
우리는 교회에 다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여러분 대부분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따금 저는 목회자들에게 말합니다.
심지어 저는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들에게 이런 말들을 합니다.
당신들이 신학대학에서, 몇 년 동안 공부했습니까?
보통` 3~5년 공부했다고 답합니다.
그 동안 당신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얼마나 많이 공부하셨습니까?
그들은 보통 이렇게 말합니다. ‘반 학기 정도 했을까요?’
여러분 신학대학을 졸업한 다음, 목회학 석사 과정에 다시 공부하러 가죠?
그렇게 신학대학원에서 또 2~3년 공부했다고 말합니다.
그 목회학 석사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당신은 ‘하나님에 관해’ 공부했습니까?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제가 연구하는 주제의 분야(전공)가 아닙니다.
그런데 석사학위를 받은 사람은
또 박사 과정을 밟고, 박사 학위를 받습니다.
몇 년이 걸렸습니까? 보통 3~4년 걸립니다.
‘그 기간 동안 당신은 얼마나 신론 Doctrine of God 에 대해 공부했습니까?’
‘글쎄요, 저는 그런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당신들은 지금 목사 아닙니까?’
‘맞습니다.’
‘몇 년 동안 목회했습니까?’
‘10년동안 했습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얼마나 당신의 교우들에게 설교했습니까?
‘하나님의 속성’들을 모두 설교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까?
‘저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럼 제가 화가 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겁니까?’
당신이야말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옳게 행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고작 당신이 신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 물질적 축복입니까?
신학교에서 박사학위까지 10년,
또 목회 경력 10년,
지난 20년 동안, 그러니까 약 40세까지,
방향을 엉뚱하게 잘못 잡고 나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무지합니다.
왜냐하면 목회자들이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해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목회자들 자신이 ‘하나님에 대해’ 공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교회가 서커스단과 비슷하고, 교회 같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에, 오늘날 신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자들이 하나님을, 산타클로스 같은 분으로 인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영광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신자들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기 때문에 멸망을 당하고 있습니다. 호4:6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이후에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가장 큰 소원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 풍성함과, 그 영광이, 그 은총이
모두 그리스도 안에, 하나님 안에 감춰져 있으니까요.
데렉 프린스가 그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 그 십자가의 공로는, 영단번에 얻어진 것이지만,
그 은총과 영광을 우리가 누리는 데는,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은
on going process이다.
우리가 계속 성숙하는 만큼, 우리가 더 많이 누리게 된다. 우리 것이 된다’고 했습니다.
◑진노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구원을 갈구하게 됩니다.
▶예레미야 9:23절을 살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의 지혜를 자랑하지 말라.
용사는 그의 용맹을 자랑하지 말라 부자는 그의 부함을 자랑하지 말라.
24.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만약 미국이나 한국에서 오늘날 이러한 기독교 컨퍼러스를 한다면
아마 그러한 것은 모두 축복에 관한 것들일 것입니다.
축복과 번영과 능력과 같은 것들을 가르치는 목사들과 설교자들을 통한 집회 말입니다.
우리는 아주 거대한 콜로세움과 같은 성전에 사람들을 가득 채울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하나님의 속성에 관한 컨퍼런스를 한다면
과연 신자들이 몇 명이나 참석하겠습니까?
제가 가진 의문은, 심지어 얼마나 많은 목사들이 참석하겠습니까?
(목회자들마저도, 그런 복음적 주제에 대해서는, 관심 없어 합니다.)
▶다시 시편 5장 5절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설교하는 것은
설교자가 가진 가장 위대한 특권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은 여러분이 과장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주제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여러분의 인생을 통해서
하나님의 진노와 하나님의 가증히 미워하시는 것에 대한 설교를 들어본 적 있습니까?
시편 5장 5절만 읽었는데, 성경에 그런 구절이 ‘하나님의 축복’보다
서너 배로 더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은, 누가 이러한 성경 내용을 설교한 것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 역시 죄인들에게 선포되어져야 하겠지만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진노 역시 우리들에게 선포되어야 할 진리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죄인 위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 죄인은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진노에 진멸되고 말 것입니다.
▶잠깐만요, 폴 목사님,
하나님이 죄인을 미워하신다는 것 과 사랑하신다는 것이 어떻게 조화됩니까?
그건 모순이네요.
둘 다 진리이기 때문에, 둘은 분명히 이렇게 조화됩니다.
아주 사악한 죄인이 하나님께 대적하고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하나님이 이 죄인을 보실 때,
하나님의 거룩이 하나님의 진노를 통해서 그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그 죄인의 죽음과 사형을 선고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다른 손이 하나님의 진노를 억제시킵니다.
다른 한 손은 그 죄인에게 하나님의 자비로 나오라고 초청합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 초청의 손을 거두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를 억제시켰던 자비의 손길도 거두십니다.
바로 그 때, 악과 마귀를 대적하신 하나님의 진노가, 그 죄인을 소멸시킬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선포하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손, 진노의 손.. 둘 다 갖고 계시지, 한 손만 갖고 계시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몇 가지를 심사숙고하시기 바랍니다.
제가 언젠가 하나님의 노여워하심에 대해 설교한 적 있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저희를 미워하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죠.’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반드시 죄와 죄인을 미워하셔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 홀로코스트에 대해 들어본 적 있죠?
6백만의 유대인들이 학살당했습니다. 또한 1백5십만의 집시들이 살해당했습니다.
제가 어느 날 여러분들게, 홀로코스트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볼 때,
만약에 여러분이 ‘저는 그게 별로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혹은 ‘저는 유대인과 나치 사이에 중립입니다’ 라고, 만약 여러분이 말한다면,
저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당신이야말로 히틀러나, 그 같은 괴물과 다를 바 없군요!’
어떻게 그런 문제에 중립을 지킵니까?
만약 당신이 의로운 사람이라면, 그 사건이 당신을 슬프게 만들지 않겠습니까?
그 사건이야말로 당신을 화나게 만들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신문을 펼쳐보십시오.
어떤 사람이 작은 어린 아이를 납치한 사건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5년 동안 지하실에 감금한 채, 이 아이를 학대했습니다.
여러분이 그 사건의 기사를 읽을 때 어떤 느낌을 받습니까?
중립의 위치를 지키겠습니까?
‘글쎄요, 그건 그 사람의 성향이 아니냐’고 말하겠습니까?
당신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습니다. 화가 날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과 제가 이런 방식으로 죄를 미워할 수 있다면
무한하시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미워하시는 것은 당연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심판의 손길로 우리에게 다가오실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되심은, 당연하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노아의 홍수 사건이 실제로 발행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잠깐만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덟명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을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죽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자를 죽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어린 아이들을 죽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어떻게 세상에 임했는지.. 여러분 실감하십니까?
만약 우리가 복음을 진정으로 설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을 설교해야 합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거룩과 하나님의 의로우심 역시 설교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남자와 여자에게, 어린이들에게도,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하실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선포해야 합니다.
이때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사람들은, 멸망당할 것입니다.
여러분, 잠깐 동안이라도 이것을 생각해보십시오.
얼마나 많이 여러분들이 이 성경의 하나님을 알고 계십니까?
이것이 정말 우리 인간이 반드시 설교해야할만한 하나님의 지식 아니겠습니까?
▶오늘날 많은 교회들와 신자들이
그저 하나님을 예배(경배와 찬양 같이 열렬한 찬양예배)하는 것을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것을 압니다.
그 교회 가운데 어떤 일부 교회들은, 예배당이라기보다 무슨 음악 콘서트장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을 아십니까?
여러분이 만약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책을 쓴다면
아마도 그 책의 50퍼센트는 시편에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시편이야말로 성경의 찬송가 hymn book of the Bible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성경보다 시편만큼 하나님의 속성이나
신론 doctrine of God에 대해 더 많이 가르치는 성경도 없습니다.
*즉 진노하시는 하나님이, 시편에 많이 나옵니다.
왜 이것이 중요합니까?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가장 사악한 죄악 가운데 하나는
‘거짓된 하나님을 섬기는 것’ 또는 ‘하나님을 거짓되게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가장 나쁜 일은
<사람의 지성이 창조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지식을 가져야만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산타클로스인 것 처럼 경배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자판기처럼 사용합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며 기도를 넣어드리고, 무언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구원 때문에, 예배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에 예배합니다.
하나님의 속성과 거룩과 의로우심 때문에 예배합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에 예배합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 때문에 예배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러한 지식을 가르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이 소유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지식을, 가로채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거짓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화가 있으리라’고 저주했습니다. 갈1:9
그리고 우리는 그들을 가장 위험한 길로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를 때, 설교자에게 발생하는 일이 무엇이겠습니까?
갈1:9절 같은 저주가, 그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시50:16, 악인에게는 하나님이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악인은, 설교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시50:21.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지금 시편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어기는 백성들에게/설교자에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선포되지 않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같은 자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상상을 동원해서 하나님을 만들어냅니다.
우리가 만든 그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다시 말하면 ‘풍요와 쾌락의 신’이신 하나님을 가르칩니다.
그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저주하십니다.
시50:21.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그렇기에 우린 반드시 성경적인 신론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폴 목사님 잠깐만요,
저는 오늘밤 당신이 칭의 교리에 대해 설명하는 줄 알았는데.
저는 그러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에 관해 신론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절대로 칭의 교리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계속) 5-2강 보기 cl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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