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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노예 / John MacArthur

LNCK 2014. 12. 29. 16:52

[존 맥아더] 그리스도의 노예(Slaves for Christ) - YouTube

 

◈그리스도의 노예              갈1:10, 약4;13, 벧전1:18~19                 위 설교 녹취

 

존 맥아더                                                                                     

 

<종> 관련글 모음

 

◑본론/ 존 맥아더, 그리스도의 노예
 

당신이 노예라면 그 의미는 누군가 값을 지불하고 당신을 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가장 명확하게 노예를 규정한 것입니다

누군가의 소유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25장 21절을 아십니까? ‘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하인아 servant’

당신은 그렇게 성경에 쓰여 있다고 평생 동안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종/하인은, ‘둘로스’라는 희랍어로

하인이 아닌, 착하고 충성된 노예 slave 라고 해야 옳습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도록 초대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독립적 주권을 포기하라고 초대합니다.

 

‘자유를 포기하십시오.’

“타인의 의지에 순복하고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주님의 소유가 되고

그분의 통제를 받으라고 초대합니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복음입니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노예가 되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노예 slave라는 말을 거의 듣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자주 듣습니까?

노예는 시키는 대로 봉사를 해야 합니다. 자신이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던 봉사를 행해야합니다.

노예란 외부의 의지에 전적으로 속해있습니다.

소유자의 의지에 속해있고, 전적으로 소유자에게 의지합니다.

 

이것이 노에의 의미입니다. 이것이 노예라는 단어입니다.

우리가 이 말을 받아들이기 힘들다면

정말 노예제도가 있던 시대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었겠습니까?

 

사도들은, 노예제도가 중심적이던 당시 사회,

로마 제국에 1천만, 2천만의 노예가 있던 당시의 사람들에게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가 된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 노예가 된다는 것은, 우리에게처럼 모호하고 먼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정확하게 노예가 무엇인지 이해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 당시, 노예는 자유가 없었고, 권리도, 소유권도,

법정에서 청구권도, 법정에서 증인으로 증언을 할 수도 없었으며,

시민권도 없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었습니다.

 

아무도 노예에게 “노예 씨!” “당신이 성취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꿈을 가져보세요. 당신의 주인인 내가 그 꿈을 이뤄주도록..”

이렇게 말하는 것은 이상하지요.

 

노예는 시민도 될 수 없고, 군인도 될 수 없었습니다.

노예는 소유주에게 전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노예도 어떤 유익은 누렸습니다. 공급과 돌봄과 안전을 제공 받았습니다.

많은 경우 주인의 가족 안에서, 친절과 긍휼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런 당시 상황에서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어야합니다’ 라고 말한다는 것은

복음의 메시지를 믿게 하는데, 커다란 장애를 두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도 누군가의 노예가 되려고, 줄서서(애를 써서)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노예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노예slave와 하인servant의 차이점은 명백합니다.

 

하인은, 임금을 주고 고용된 사람이며 그만둘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봉사에 대한 대가를 받습니다.

 

그러나 노예는 소유되었고, 그만 둘 수 없었습니다.

도망가면 체포되어 매를 맞았으며 갖가지 방법으로 처벌을 받았고

많은 경우 공개적으로 십자가형에 처해졌습니다.

도망칠 경우 어떤 벌을 받아야하는지, 다른 노예들에게 경고를 주기 위해서, 그렇게 했습니다.

 

갈1:10절 마지막에서 바울은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한다면

그리스도의 노예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노예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오직 주인이 기뻐하는 일만을 한다.’ 이것이 노예의 단 하나의 초점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할 필요 없이, 단 한 사람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은유는,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를 이해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줍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개인적인 관계에서, 우리는 노예입니다.

이것이 그 관계에 대한 최상의 정의입니다.

 

바울은 이 말씀에서 ‘우리는 오직 주님만을 기쁘게 한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나는 주님을 기쁘게 하려는 소원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하라고 한 일을 하고, 그를 기쁘시게 할 일을 하라’ 

이렇게 간단합니다. 그것이 노예가 하는 일입니다.

 

그렇게 하는데 두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직접적인 명령이 있으면 우리는 순종합니다.

직접적인 명령이 없으면 주인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서 합니다.

그분께 순종하고 기쁘시게 해드립니다.

 

잘 아는 말씀입니다.

‘오늘이나 내일 어떤 도시로 가서 장사를 하여 이득을 벌자 하는 사람들아!

너희의 삶은 오늘 있다 사라지는 연기 같다는 것을 모르느냐?’ 약4:13

 

‘주님이 허락하시면 우리는 살 것이고, 이것을 할 것이라고 말하라’고 합니다. 약4:15

이것은 노예가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어제도 그분의 노예였고 내일도 그분의 노예며

천국에서도 그럴 것이라고, 요한계시록이 말씀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노예입니다.

언제나  하인은 고용 되었으며 그만둘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예는 소유됩니다.

 

첫째, 주님이 값을 치루고 샀기에 주님이 독점적인 소유권을 갖고 있습니다.

신약적인 이야기 같이 들립니까?

 

둘째, 노예는 완전하고 지속적으로 사용될 수 있고 복종해야합니다.

 

셋째, 단 하나의 타인에 복종해야합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고용인은 두 명의 고용주를 가질 수 있고, 낮 직업과 밤 직업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노예는 주인의 소유이기에, 두 명의 주인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그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구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완전하게 지속적으로 한 주인이 사용할 수 있도록 대기하고 있으며

온전히 그 주인에게 헌신하는 것이.. 노예입니다.


넷째, 노예는 모든 것을 주인에게 의지합니다. 모든 것을 전적으로!

 

다섯 번째, 모든 징계와 보상은 주인으로부터 받습니다. 이것이 노예입니다.

한 사람의 소유가 되어 전적으로 지속적으로 이용 가능해야 하며 순종해야합니다.

 

노예의 가장 중심적인 살아가는 하나의 목적은, 주인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노예는 그 주인에게 전적으로 모든 것을 의지해야합니다.

 

그리고 노예가 받는 모든 징계와 보상은, 그 주인의 재량에 달려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가 되는 것은, 이 모든 것에 직접적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값을 주고 사셨고, 그분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 한 주인이 우리를 전적으로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하고

우리는 그에게 순종해야 하는 위치에 있습니다.

 

"나의 뜻이 아니라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언제나 그래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단 한명의 주인 밖에 없습니다.

순종해야 할 다른 주인이 없습니다. 봉사해야 할 다른 주인이 없습니다.

 

그래서 신약에서 예수님은 너희는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다른 어떤 것도 겸해 섬길 수 없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큐리오스(주인)와 둘로스(종)는 관계의 두 가지 면을 설명합니다.

노예가 있다면 주인이 있습니다. 주인이 있다면 노에가 있습니다.

노예가 없다면 주인이 아니고, 주인이 없다면 노예가 아닙니다.

 

그래서 신약에서 이 개념을 전혀 변호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나오면, 주님이 그 사람을 다스린다는 것은 규칙상 명백했습니다.

당신이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할 때

당신 자신은 노예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르게 해석할 수가 없습니다.

큐리오스와 둘로스는 관계에 두 가지 면입니다.

노예는 그의 생명이 전적으로 다른 이에게 속해 있는 사람입니다.

전적인 소유권, 전적인 통제권과, 전적인 주권과, 전적인 복종, 전적인 충성, 전적인 의존,

 

▲노예에 대한 이런 여러 개념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영어 성경에는 많은 것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받아들이기가 어렵습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입니다.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의 보혈이라는 값이 지불 됐습니다.

 

벧전1:18~19절에는 금이나 은이 아니라 값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셨다.

계시록5:9절에도 ‘피로 사서’라고 했습니다.

 

당신에게 독립적인 권리가 없습니다. 노예에게 권리란 없습니다.

아무것도 갖지 못합니다. 자신의 재산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법적으로는 시민이 아니며, 공적지위를 가질 수 없습니다.

 

노예는 전적으로 주인의 재량에 따라야 하며

보호 받고, 공급 받고, 지켜지며, 학대를 받습니다.

 

▲그러나 매우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너그럽고 선하고 은혜롭고 친절하고 긍휼이 많은 사람이 주인이라면

그 아래 노예로 있는 것보다 나은 삶이 없습니다.

 

‘사람이 나를 따르려면 자신을 부인하고’ 라는 말씀도, 노예에 관한 말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너의 삶은 종말이다. 끝난 것이다.

너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이다.

 

이것은 괴로운 일이 아닙니다.

‘내 멍에를 지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워서 쉼을 얻을 것이다.’

 

당신은 누군가의 노예로 살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에겐가 노예가 되어 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로 산다는 것은,

잘 들으십시오!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며, 아들의 모든 권리를 갖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가족으로 입양하시고, 예수님과 함께 유산을 받는 상속자로 만드셨고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 가셔서 그분의 보좌에서 다스리고 통치하게 하시며

우리의 기쁨과 그분의 영광을 위해

그분이 갖고 있는 그 모든 호화로운 재산을 영원히 주실 것입니다.

 

그런 주인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무엇보다 주님의 노예가 된다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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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편집자 글

 

▲존 맥아더는, 성경에 나오는 ‘종(헬, 둘로스)’을, 영어 성경에 servant로 번역했는데,

그보다는 slave가 더 맞다고 주장합니다.

 

servant는 오늘날로 치면, 고용인, 돈 받고 일하는 사람, employee에 가까운 뜻이며,

slave는 ‘노예’인데, 주인의 소유물/재산입니다. 당연히 임금, 보수도 없습니다.

보통 고대사회에서는, 노예를 돈으로 사고, 팔고 했었죠.

 

존 맥아더는, 신자 각자는

자신을 “servant(집사, 청지기 같은 종)”로 여기지 말고,

자신을 “노예”로 여기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셨으니까요.

 

그런데 영어 성경에는, 헬라어 둘로스(종)를

slave보다는,

servant로 번역하고 있기에,

신자들이 많이 오해를 한다는 것이.. 존 맥아더의 주장입니다.

신자는, 자기를, 가차 없이 “노예”로 여겨야 한다는 거죠.

 

물론 여기서 말하는 ‘노예 slave’는,

완전히 짐승 취급을 받는 노예가 아니라,

구약에 나오는 ‘귀를 뚫은 종’처럼,

평생 주인의 집에서 섬기기를 원하는 ‘자원하는 종/노예’입니다. 출21:6

 

이런 주장의 진위성을 간단히 아래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헬라어 “둘로스(종)”는

렉시컨(헬라어 단어사전)을 찾아보니

1. slave

2. servant로, 둘 다 해석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둘로스(종)는,

slave(노예)를 뜻하지만,

servant (employee, 고용인, 월급 받고 일하는 자, 하인)로도 쓰여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영어 성경들이,

둘로스를 servant로 번역한 것은, 틀린 것은 아닙니다.

slave라는 의미가 더 강하지만 (렉시컨에 1차적 의미),

servant라는 의미도 있다는 겁니다. (렉시컨에 2차적 의미)

 

그럼 신약성경에서 “둘로스”가

slave로 쓰였느냐, servant로 쓰였느냐.. 간단히 살펴봅니다.

보니까, 둘 다 쓰였습니다.

 

▲“둘로스”가 - 노예 slave 의미로 쓰인 경우

요8:3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둘로스)이라

 

여기서 ‘종’은, 완전히 소유화되었다..는 뜻에서, slave에 가깝습니다. servant보다요.

 

막10:44.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둘로스)이 되어야 하리라.

 

둘로스가 ‘낮다’는 의미로 쓰였습니다. slave에 가깝습니다. servant보다요.

 

눅17:7.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여기서 종은 slave에 가깝습니다.

 

빌레몬서에 나오는 오네시모도, 주인의 소유인데, 도망친 노예였습니다. slave에 가깝습니다.

 

롬6:20, 너희가 죄의 종(둘로스)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죄에게 '소유되었다’는 의미에서 slave에 가깝습니다.

 

 

▲“둘로스”가 - 고용인/청지기/집사 servant 의미로 쓰인 경우

마8:9,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

 

백부장은, 자기 아래도 종(둘로스)이 있어서, 자기 명령을 따르는데,

그것은 내가 남의 수하에 있는 것과 같다.. 고 말합니다.

 

이건 아무래도 servant에 가깝습니다.

백부장과 그의 상관과의 관계, 백부장과 그의 종(하인 또는 군인)과의 관계는

‘소유’의 개념보다는 ‘고용인’의 개념에 더 가깝습니다.
‘둘로스’를 servant개념으로도 쓸 수 있다는 뜻이지요.

 

마10:24,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둘로스)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이 구절에서도, 둘로스는 servant 라는 의미입니다.

servant는 그 주인과 비교될 수 있는 존재이지만,

slave는 그 주인과 비교하기에는, 너무 급수가 낮기 때문입니다.

 

마10:25, 한 달란트,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의 비유

여기서 ‘종’(둘로스)은, 주인의 재산을 관리했습니다.

이런 경우는, 집사의 개념입니다. 이때도 slave 보다는, servant 의미입니다.

 

그러나 둘을 혼용해서, 구분 없이 썼을 수 있지요.

다만 오늘날의 영어적 개념으로는, slave 와 servant 는 차이가 있습니다.

존 맥아더는, 둘로스를, 오늘날 영어적 개념으로 slave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막10:34,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종에게 권한을 맡겼다는 의미에서, servant(집사)에 더 가깝습니다.

 

▲정리하면,

‘종’을 나타내는 헬라어 둘로스는, 신약성경에

slave(노예)와 servant(고용인) 둘 다 포함하는 포괄적 의미로 쓰였습니다.

영어성경에 servant로 번역한 것은, 오역은 아닙니다.

 

그런데 바울과 베드로를 위시한,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이

자기를 ‘그리스도의 종(둘로스)’으로 여겼다는 것은,

상징적인 의미에서

자기를 slave처럼 헌신하겠다.. 고 스스로 자원했을 것입니다. servant 보다는요!

 

더욱이 예수님은 자신의 피값으로 우리를 사셨습니다. 구속하셨습니다. 속량하셨습니다.

다 같은 뜻입니다. (피) 값을 치르고 샀다는 뜻이죠. 갈4:5 등

 

죄송한 표현이지만, 노예매매처럼

값을 치르고 샀기 때문에, ‘소유’ slave가 된 것은 확실합니다.

 

물론 짐승처럼 부리거나 학대받는 목적이 아니라,

‘자유하는 노예, 귀를 뚫은 노예’가 되는 셈이지요. 출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