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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세 가지 선물

LNCK 2014. 12. 29. 16:52

아주 특별한 세 가지 선물 - 권세, 자격, 특권            요1:12               11.12.10.설교 녹취

 

 

 

▲우리가 평소에는 사느라고 정신없이 쫓기고 삽니다.

일상에 고지서 납부하고 또 뭐 먹고 사는 일들 때문에 그냥 세월이 흘러가다보면, 그냥 훌쩍 1년이 지나고 맙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번쯤은 가끔 우리에게 중대한 질문을 던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에 근원적인 질문, 중대한 질문들을 우리 자신에게 던져 보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부터 왔고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 내가 누구인지,

또 내가 지금 추구하고 있는 이 노력과 애쓰는 모든 일들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이런 어떤 중대한 질문들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먹고 살기도 바쁜데, 무슨 그런 철학적인 질문을 하느냐.. 라고 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이런 질문들이 추상적이거나 비실제적인 것이 아니고, 사실은 현실적인 질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디에서부터 출발하고 어디로 갈 것인지.. 이런 부분은 택시만 탔을 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문제에 실제로 일어나는 일입니다.

 

언젠가 갑자기 다가오는 우리의 죽음 앞에, 내 인생을 어떻게 살아 왔는지, 또 후회 없이 살아 왔는지,

또 이 인생이 끝인지, 그 다음에 사후의 세계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우리가 죽음에 직면할 때, 우리는 중대한 그 질문에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이죠.

 

▲본문 요1:12은 우리가 잘 아는, 크리스천이라면 잘 암송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오늘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자세히 살피기 원합니다.

거기엔, 하나님이 주신 아주 특별한 세 가지 선물이 담겨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의 아주 특별한 선물들인데,     ←설교 제목

우리의 삶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는 키워드, 아주 축복된 말씀들이라고 믿습니다.

    

 

◑1.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권세"를 얻는 것입니다.. 신분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뭐 동사무소를 드나드는 것을 권세라고 할 수는 없겠죠.

그러나 청와대를 드나든다면, 그것은 권세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라는 말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이것은 뭔가 독특한, 흔히 얻을 수 없는 귀중한 것이라는 것이죠.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 그 자녀로써 주어지는 권세란 어떤 것인가.

이것을 세 가지로 나누면서,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축복이고 어떤 선물인가 하는 것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신분이 참 중요하죠. 신분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정체성이다. 라고 표현하죠.

내가 누구인가.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가. 그 의미가 정체성이고 우리의 신분입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자신들에게 당신은 누구입니까. 라고 물어볼 때, 나는 대답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라는 질문 앞에, 자기 스스로 '나는 누구입니다.' 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하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질문을 던지면 자기 이름을 대는데요. 자기 이름이 자기는 아니죠.

"이규현입니다."

그런데 질문은, 이규현이 어떤 사람입니까. 어떤 존재입니까. 그런 것이죠.

 

어떤 사람은 물으면, 자기 직업을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어느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입니다. 또 직급은 무엇입니다."

그러나 그 직급과 회사의 어떤 소속되어 있는 것이, 나의 진정한 정체성이라고 볼 수는 없어요.

 

어떤 사람은 자기를 소개하기를 "나는 내 남편이 누구입니다."

자기를 남편으로의 자기의 존재를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죠.

 

반대로 아내가 유명한 경우에는 "제 아내가 누구입니다."

자기 존재의 설명을 자기 스스로는 할 수 없고, 어떤 잘 나가는 자기 아내의 이름으로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죠.

 

또 어떤 분들은 이런 분들이 있어요. 자기를 소개하지는 않고 유명한 누구를 이야기해요.

"그 사람이 내 친구입니다."

자기의 존재를 설명하려고 하는데, 자기 신분 됨을 자기 스스로 내놓을 것이 아무 것도 없으니까

다른 사람의 이름을 가지고 오는 것이죠.

 

여러분, 오늘 어떤 사람은 뭐 외형적인 것으로 나를 소개하려고, "나는 키가 큰 뭐 사람입니다." 합니다. 

자기의 어떤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자기를 표현하고, 자기의 존재를 설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주어지는 그런 정체성들은 한시적인 것들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직장에 어떤 포지션에 어떤 기업에 어떤 직급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영원한 명함은 아니잖아요. "왕년에.." 언젠가는 또 지나가는 것들입니다.

 

내가 직업으로 나의 정체성을 설명하려고 할 때, 내가 그 직업을 잃고 은퇴하고 사라져버렸을 때

나는 도대체 누구이냐,

내가 그렇게 믿고 그 남편으로 인하여 내 존재를 설명하려고 했는데,

남편이 죽고 나면 나는 누구냐..

 

그것으로 인하여 그것으로 집중하고 그것으로 내 존재를 설명하려고 했던 그것이 사라지고 나면

나는 도대체 뭐냐.. 라고 하는, 크나큰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여러분 교회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직분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지만

   사실은 한시적으로 제도적 교회 안에서 기능적인 그 일을 감당하도록 주어진 것이지

   그것이 영원한 것이 아니잖아요.

 

   여러분들도 뭐 천국 가서도 "목사, 장로, 권사" 직분으로 부를 것 같아요? 직분은 천국 가면 없어지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지상에서 어떤 기간 동안에, 제한적으로 주어진 기능을 감당하도록 준 것이란 말이에요.

 

그 직분 자체가 나의 정체성으로 소개하려고 하면, 나중에 공허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에요.

결국은 우리의 삶에 어떤 것도 다 사라져버리고 마는 것이에요.

 

그렇다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아니 내가 이 지상에서 뿐만 아니라

영원의 세계까지 붙들 수 있는 나의 존재됨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렇게 물을 때, 주님이 한 가지 주신 기가 막힌 이름이 있죠.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거예요.

 

여러분 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이 신분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하여 주어질 때

이 신분은 어떤 경우에도 사라지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뭐 현재 어떤 현직에서 물러나도, 하나님의 자녀 됨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죠.

그래서 오늘 만약에 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이 신분 됨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우리는 다른 것으로 포장하고 요란하게 나를 꾸미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내 존재를 자꾸 돋보이게 하려고 하고, 그것을 인정을 받으려고 하니까, 불안해지잖아요.

그래서 많은 것을 가져오는 거예요.

 

제가 명함을 받은 것 중에 진짜 어떤 분은 앞 뒤를 빽빽하게 채운 분이 있더라고요.

이것이 스스로 자기가 공허하다는 표현이겠죠.

 

여러분 오늘 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딱 하나에요.

우리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우리의 신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사실 에베소서 2에 보면 우리는 하나님과 가까이 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의 신분이 뭐냐 하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고 합니다.

과거에 우리의 신분이 뭐냐, 우리의 정체성은 본질상 진노의 자녀에요.

 

로마서 5에 보면 우리는 어떠한 자들이냐 하면, 죄인 된 우리는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도무지 가까이 할 수 없었던, 하나님과 전혀 거리가 먼 진노 아래에 있었던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그런 놀라운 권세를 주셨다는 거예요.

 

이것이 복음이죠. 그래서 이 신분을 우리가 붙잡으면 우리가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도 우리의 이 신분은 사라지지 않는,

지금부터 영원까지 우리의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당당함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신분이 자신감이에요. 그 사람의 신분에 따라서 자신감을 가질 수도 놓칠 수도 있고

당당함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

그래서 어떤 세속적 신분은 가지고 있었을 때 당당함이 있었는데, 

자기가 퇴직하고 나서는, 그 당당함이 사라져버리고, 자신감이 없잖아요.

 

내가 그 직장이 평생직장인 줄 알았는데, 거기에서 퇴출을 받았을 때

내 정체성이 사라져버리고, 할 일이 없고, 내가 누구인지조차 알 수 없을 때,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갑자기 힘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런데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이것은 사라지지 않는, 영광스러운 당신의 백성들에게 주신 칭호인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날들 중에, 우리가 기죽을 일이 없어요.

이 땅에 살아가는 날들 중에, "왕의 자녀"가 되었다는 말이에요.

 

우리 아버지가 누구예요. 만왕의 왕이시잖아요. 통치자시고 창조주시잖아요.

그래서 그 분이 우리의 아버지고 우리가 자녀라고 할 때, 이것은 큰 파워/권세죠.

 

그래서 이 신분 됨. 그것을 굳게 붙잡는 자, 내가 하나님의 자녀다, 왕의 자녀다.

이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해외에 사는 사람들은 머리는 까만데, 거기서 태어났습니다.

자신이 정체성이 아메리칸이냐/ 코리안이냐.. 혼란이 와요.

 

처음에 미국에서 태어나면 자기가 아메리칸인 줄 알아요.

그런데 자라면서 이제 어느 날 길거리 갔는데 '네가 어디에서 왔느냐?' 이렇게 묻는 거예요.

거기에서 정체성이 혼란이 오고 갈등이 와요.

 

우리는 영원한 이 땅에 나그네 같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확실하게 준 정체성이 있다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 내가 왕의 자녀에요. 우리는 로열 패밀리가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자녀. 이것이 우리를 당당하게 하는 것이고, 우리의 자신감의 근거인 줄로 믿습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다른 말로 하면 "자격"이라는 거예요.

 

오늘 날 우리가 자격의 시대인데, 뭔가 자꾸 따야 되고 청년들도 스펙을 쌓아야 하는데

이 자격을 가져야, 지식이 되고, 먹고 살 수 있다는 거예요.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보니까 요즘 아파트 들어가는 것만 해도, 자격이 있어야 되더라고요.

요즘에는 뭐 미국에 입국 비자 받는 것이 쉽지만, 전에는 어려웠잖아요.

그래서 뭐 서울에 가서 대사관에 아침부터 줄을 서야 비자를 받았어요.

 

외국에 사는 사람들은 영주권이 있느냐/ 없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우리 여기 사는데 뭐 주민등록증 별 것 아니지만

외국에 살면 영주권이 있는가/없는가.. 대단히 중요합니다. 

 

누구나 먹고는 살아요.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 병원에 간다 던가 학교에 간다 던가

한국에 부모님이 돌아가셨던가 하면.. 영주권이 없으면, 마음 놓고 나갈 수가 없는 거예요.

 

우리의 삶에서는 평소에는, 그냥 그것(자격, 하나님의 자녀 신분, 천국 시민권)을

우리가 중요하게 다루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러나 인생에 문제가 생길 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 없는가,

아주 중요한, 아니, 제일 중요한 문제입니다.

 

여러분 기도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자녀들이 할 수 있는 그런 자격이에요.

누구든지 우리들의 문제를 아뢸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것이잖아요.

 

그 자격이 없는데, 뭐 아무나 하나님 앞으로, 기도로 나아갑니까. (No) 

왜 사람들이 다리 위에서 뛰어 내리고, 절벽 위에서 뛰어 내리고,

왜 자기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서 극단적인 방법을 취합니까?

 

자기가 앞으로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잖아요.

문제가 일어났는데 아뢰고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존재가 없으니까.

막다른 골목에서 자기의 생애를 끊는, 그런 극단적 방법을 취하는 것이죠.

 

여러분 기도가 무엇입니까? 자격을 얻는 것이죠.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자격을 얻는 것입니다.

누가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인 것이죠.

 

비행기를 타고 그냥 뭐 클래스가 있잖아요. 비즈니스가 있고. 이코노미가 있고.

이것이 뭐 휘장이 쳐져 있어서 이코노미에서는 좀 힘들고

그런데 비즈니스로 넘어가면 그쪽은 비유하자면 클래스가 틀려요.

 

휘장 안으로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어요. 대우가 완전히 다르잖아요.

그런데 안에서는 클래스가 있지만, 비행기에서 내리면 똑같이 줄을 서요.

 

퍼스트 클래스는 무조건 통과, 그런 것 없어요. 다 도장을 확인 받아요.

입국 자격을 확인 받아요.

 

여러분 우리는 지금 이 땅에 살면서, 우리는 다 똑같아 보여요.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는 분명히 차이가 납니다.

 

사는 동안에는 부자냐, 가난한 자냐, 공부를 많이 했냐, 조금 했냐, 다 구분이 되지만

하나님 앞에 서는 날이 와요.

 

우리의 생명의 마지막 날. "자격"이 있느냐..

그래서 요1:12절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자격"을 주니까요!

 

여러분 구약 시대도 자격이 중요해요.

아무나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어요. 제사장이 하나님 앞에 백성들을 대신해서 나가요.

지성소에 아무나 들어갈 수 없어요. 경계선이잖아요. 자격이에요.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도 마찬가지에요.

우리는 그냥 교회를 막 다니지만, 마지막 순간에는 분명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있어요.

 

목회자들은, 임종을 맞이하는 인생에 마지막 순간에 처해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죠.

여러분 가족 중에 어른들이 돌아가실 쯤에, 온 가족들이 한 가지 관심만 있어요.

 

그것이 뭔지 아세요? 돈을 얼마나 벌어 놓았는가, 그것이 아니에요.

그 분이 얼마나 도덕적으로 깨끗이 살았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이 분이 지금 천국에 갈 수 있느냐?

그곳에 들어갈 신분과 자격이 있느냐.. 그게 인생 최대의 문제인 거죠!

 

▲본문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뭘까요?

아버지 집에 들어갈 자격.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라고 부르며

그의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었다고 하는 말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천국에 입성하는 자격을 얻은 특권이고, 권세라고 믿습니다.

 

 

◑세 번째는 특권이에요. 자녀의 권세를 얻었다는 말은 "특권"을 얻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특권이에요. 여러분 길거리를 떠돌던 아이가 부잣집에 입양을 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이제는 그 집에서 누리는 거예요.

더 이상 주우러 다닐 필요도 없고, 염려할 필요 없고, 아버지의 것이 다 자기의 것이 되는 거예요.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이 세상에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권 중에 특권인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될 때 주어지는 축복이라고 하는 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너무도 놀라운 것이기 때문에, 사실 측량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의 그 특권이라고 하는 것은, "누리는 자의 것"이에요.

특권이 중요한 것은 누려야 되요. 누리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에요.

특권을 누리는 만큼만 내 것이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자녀로써의 특권을 신앙생활 얼마큼 누리느냐에 따라, 우리의 신앙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특권도 못 누리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어떤 분은 전망이 좋은 집에 사는데, 뭐 남편은 아침부터 바빠서 새벽 같이 나가고

부인도 아침부터 바깥으로 나가고, 저녁에나 와서 쓰러져서 자고

다음 날 아침에는 또 회사를 가고.. 낮에나 파출부가 딱 전망을 즐기고 있어요.

 

누구 것이에요? 파출부의 것입니다. 별장이 있다고, 별장의 주인이 아니에요.

매달 관리비만 꼬박꼬박 내고, 1년에 한 두 번 갈까요?

거기서 별장을 누리는 자(관리인)의 것이에요.

 

여러분 소유의 개념은, 들고 있는 재산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누리는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자녀는 특권을 누려야 하죠.

 

특권이 무엇입니까. 그냥 즐기는 것이에요.

뭐 그냥 아버지께 용돈을 구하면서 꼭 갚을게요. 그럴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그냥 누리는 것이죠.

우물쭈물 주저할 필요가 없어요. 너무 당당해요.

 

요즘 자녀들 보니까 진짜 당당해요. 저도 두 아들 보니까 가정경제에 한 푼도 동참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강력하게 요구하는지. 자녀의 권세. 특권이에요.

 

성경을 보면 너는 내게 구하라. 아무나 라고 하지 않았어요.

너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너는 내게 구하라. 구하면 주겠다고 하는 거예요. 너는 받을 권리가 있다는 거예요.

 

성경에 수도 없이 말하고 당신들의 백성들에게, 수도 없이 주겠다고 말하고 있어요.

이것이 자녀의 특권이에요.

 

여러분 뭐 아버지 보면서 "몇 시에, 언제 만나도 될까요?" 라고 묻나요.

그냥 문 쾅 열고 들어오잖아요.

 

여러분 이런 일화가 있잖아요. 케네디가 대통령이 되었는데 젊은 날에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에

그 아이들이 굉장히 어렸어요. 그런데 그 백악관 집무실 책상 아래에 장난치고 있는 꼬마 아이의 그 사진을

여러분들이 본 적이 있을 거예요.

 

백악관.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것이죠. 출입증을 가지고 허가를 받았다고 해도 제한된 곳만 다닐 수 있는,

대통령을 아무도 쉽게 만날 수 없는, 심지어는 그의 집무실을 누가 들어갈 수 있겠어요?

그런데 그의 아이들은, 그 안에서 장난을 치고 있는 것이죠. 이게 특권이라는 거예요.

 

하나님 아버지의 특권. 그래서 여러분 오늘 이 세상에 두 클래스가 있어요.

-하나님 자녀로 특권을 가지고 사는 사람과

-고아로 사는 사람.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에 그 특권을 누리며 사는 사람과, 고아처럼 사는 사람은 너무 달라요.

고아는 아침부터 일어나면 걱정을 해야 되요. 먹을 것을 걱정 하고 하루를 지낼 걱정을 해야 되요.

 

그래서 여러분 마태복음 6장을 보면 이런 말씀을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 너희들은 염려하면 안 된다.

염려는 누가 하는 것이냐. 이방인들이 하는 것이다..

 

공중에 나는 새를 봐라. 들의 백합을 봐라. 내가 먹이고 입히지 않느냐.

하물며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를 입히고 너희를 기르지 않겠느냐. 염려하지 말아라. 너희들이 할 것은 딱 하나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기만 하면 된다. 하나님만을 구해라. 염려하지 말아라..

여러분 진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그 분의 자녀로 살아가는 사람은 염려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을 한 번 체험해 보아야 '내가 고아가 아니구나..'

왜 여러분 염려가 생기는가 하면, 내가 하나님을 내 아버지로 모시지 않고

내 인생을 그냥 내가 책임지려고 하니까, 염려가 오는 거예요.

 

오늘 이 시간에 여러분들에게 염려가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그 하나님 자녀로써의 특권. 이것을 마음껏 즐기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원망과 불평을 할 이유가 없어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특권을 마음껏 누리며

하나님의 그 모든 것들을 마음껏 즐기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고아로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자수성가를 해서 자기 힘만으로 하나님의 도움 없이 자기 힘만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그 안에 상처가 있고 독기가 있고 그래요. 그 안에 자유함이 없어요.

욕심만 부리고. 고아처럼 살면, 성공해도 독기가 있어요. 그 안에 불안함이 있고 두려움이 있어요.

내가 내 것을 지켜야 되는..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된다면 자유해요.

나누어줄 수 있는 이유가 뭘까요. 하나님의 공급이 늘 있기 때문에. 축복의 통로로 쓰여질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 아버지의 자녀 됨에 권세는 특권인 줄로 믿습니다. 특권은 누리는 만큼 내 것인 줄 믿습니다.

 

상속권자가 누리는 특권은 뭐예요. 미래를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아버지의 재산이 다 내 것이고 물려질 텐데 뭐 아버지 회사의 잔고를 탐낼 이유가 없잖아요.

때가 되면 다 내 것이 될 텐데..

 

자 그러면 누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을 수 있습니까.

영접하는 자, 그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 하나님의 권세를 주십니다.

 

여기에서 영접한다, 믿는다, 라는 표현은 같은 말입니다.

'영접한다'는 말은 시각적인 표현입니다.

우리가 손님을 영접해드리는 것, 정중히 모시는 것. 믿음이란 그런 것이죠.

 

그래서 믿음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거부하는 것.

오늘 요1장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아요.

참 빛으로 오셨는데 깨닫지를 못해요. 완악함과 악독함과 미련함으로

참 된 빛으로 오신 진리이신 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그 거부하는 문화 속에서 오늘 이 표현을 쓰신 거예요.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