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을 기대하는 인생은 다르다 고전9:24~27 11.11.27.설교녹취
‘상’은 궁극적으로 영원한 천국에서의 상이지만, *<절제>관련글 보기
이 땅에서의 상도 부가적으로 따라옵니다.
◑1. 상을 기대하는 성도로 삽시다.
바울은 우리의 신앙을 달음질로 비유를 합니다. 달음질 한다. 달리기 한다.
이렇게 비유를 많이 하고 또 이 자신의 삶을 달음질로 비유를 하면서
항상 따라오는 것이 뭐냐 하면 상을 받는 것입니다.
달음질을 경주하는 경주자로, 또 거기에 따른 상을 바울이
그의 서신서에서 굉장히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왜 달릴까요? 달음질하고 왜 경주를 하고 힘겹게 땀을 흘리며 경주를 하는가요?
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바울의 서신서에서 굉장히 중요하게 다루는 말씀인데요.
‘달린다’ 라는 그 표현이 아마 많은 이유는
그 당시에 로마나 고린도 도시 같은 곳에는 마라톤이 유행했습니다.
바울은 그런 것들을 염두에 두면서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치 마라톤과 같다..
단거리가 아니고 긴 레이스를 뛰는 마라톤과 같다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초점은 뭐냐 하면 상을 받는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상이 분명히 있다.
그 이야기를 오늘 본문에서도 하고, 그의 서신서에 여러 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 상을 좋아하지 않는 분 계세요? 한 분도 없을 거예요.
공부를 열심히 했던 학생들도, 연말이 되면 무엇을 기대해요? 상을 기대합니다.
국가적인 상도 있죠. 국민 훈장이나 노벨상 같은 여러 가지 상들이 있습니다.
올림픽처럼 메달을 주는 상. 다 상이죠.
또 그 상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서 눈빛이 달라지죠.
그 상에 사람들은 굉장히 열광하고 열정이 생기고 동기부여가 되고
할 의욕이 생기고 그러는 것이죠.
▶상을 기대한 바울
고전9:24절,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 하라’
여러분 이 말이 뭐냐 하면 성도들이 상을 기대하라는 거예요.
상을 놓치지 말라는 거예요. 상을 분명히 약속하면서,
우리의 달음질이 신앙의 경주가 결단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바울 자신도 이 상에 대한 확고한 그런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의 말년 노년에 마지막에 기록했던 딤후4:7~8절을 보면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내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이니라’ 라고 그랬어요.
이렇게 바울은 그 상에 눈을 떼지 않았어요.
빌3: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그러니까 바울은, 신앙의 경주를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추지 않고 달음박질했던 이유는
분명한 상을 보았던 것이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들을 보면 무엇인가 본 것이 있는 거예요.
마지막 날에 무언가 자기에게 주어질,
여러분 이 마라톤에 승리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월계관은 생애 최고의 순간이고
국가적 영웅이 됩니다.
왜 사람들이 그토록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연습을 해서 출전하는가요?
영광의 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사력을 다해 연습을 하고
출전을 하는 사람들은 그 한 가지에 꽂힌 것이죠. 영광의 순간에 대한 기대입니다.
모든 수고와 고통과 그 동안에 겪었던 수없는 애환을
한 순간에 날려버릴 수 있는 그런 상, 그 영광의 순간을 꿈꾸는 것입니다.
◑2. 상을 기대하는 사람은.. 절제 합니다.
여러분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 가운데 겨우 수업 일수를 채우고자 하는 학생과
학교에서 최우수상을 받고자 하는 학생은, 어떻게 삶의 태도가 다르겠습니까.
삶의 질이 다른 것이죠.
히11:6절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찌니라’
여러분 세상에 모든 상은 다 썩습니다. 세월 지나면 다 빛이 바래요.
여러분들도 다 한 두 개씩 받으셨죠?
저도 몇 개 받은 적이 있는데 어디 있는지도 기억이 안나요. 잊혀지고 만다고요. 빛이 바래요.
뭐 노벨상도 대단한 것이지만, 역사에 뭐 기억할 사람 몇 명이나 됩니까.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상은 아니라는 거예요.
오늘 여기에 보니까 분명히 구별이 되는데, ‘시들지 않는 면류관’이라는 거예요. 벧전5:4
영원한 영광이라는 거예요.
한 순간에 스쳐지나가는 그냥 박수로 끝나버리는 아주 짜릿한 한 순간의 영광이 아니라,
영원한 영광이라는 것이지요. 바울은 거기에 미친 거예요.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이 상을 기대해야 하고 또 받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지금 각자가 달려 나가야 할 라인이 있어요.
다 자기가 뛰어야 할 라인을 배당받은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현역 선수들이에요.
인생은 대리운전이 없어요. 신앙의 경주를 대신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성적표를 들고 하나님 앞에 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았는가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받게 되는 그 날이 오는 것입니다.
▶상을 얻기 위해 중요한 것은 “절제 훈련”이 필요합니다.
고전9: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을 절제하나니’
바울은 절제 훈련이 중요한 것을 강요합니다.
그런데 그냥 절제가 아니라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랬어요.
고린도교회는 자유라고 하는 미명 하에 방종하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자유를 오해한 것이죠. 이 죄인의 특성이 뭐냐 하면 자유를 오용하는데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사는 사람들! 이것이 죄인의 특성입니다.
‘각기 제 갈 길로 가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힘을 갖고자 하는지 아십니까?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그 욕망이 밑에 깔려있는 것입니다.
태릉선수촌에 선수가 한 번 입소 하면, 자기 마음대로 행동을 할 수가 없어요.
이제 국가의 몸이에요. 국가의 명예를 위해서. 외출 함부로 할 수 없어요.
데이트도 못해요. 밤에 라면 끓여먹으면 안돼요. 모든 제한을 받습니다.
여러분 육상 선수들을 보면 비만이 없습니다. 뛰는데 출렁거리면 어떻게 뛰겠어요.
하나도 없어요. 완전 슬림 해요. 가장 기본적인 몸만 있는 거예요.
그리고 옷도 육상 선수가 뭐 바바리코트 입고 뛰겠습니까.
거의 남녀가 다 수영복 수준이에요. 아무 군더더기가 없는 거예요.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지 못해요. 유혹에 대한 단호한 거절을 하는 거예요.
▶본문 27절에 보니까 ‘내가 내 몸을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하게 한 후
자신이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 내 몸을 처 복종하게 한다는 이 말은 복싱 용어입니다.
그 자기 몸을 스스로 KO 시킬 정도로, 절제한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유능한 선수는, 몸이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놓은 룰을 따라서 움직입니다. 여기서 아마추어와 프로가 결정되죠.
몸은 햄버거 먹고 싶어 해요. 콜라도 마음껏 마시고 싶어요.
만약에 자기의 몸에 원하는 대로 한다.. 그러면 아웃인 것이죠.
여러분 운동선수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어떤 분야에 던지 두각을 내는 사람들을 보면, 그 안에 비장함이 있는 것입니다.
비밀이 있습니다. 바울은 신자인 우리로 하여금 긴장하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빌2:12절에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그랬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 그 날까지
우리의 구원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의 구원이 필요한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한 성숙한 삶을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냥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죠.
“항상 복종함으로 두렵고 떨림이 있는 긴장감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승리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 여정이 간단하지 않음을 말씀합니다.
마음대로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은 순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결심을 해도 훈련되지 않으면, 날마다 실패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신자다운 삶을 살려면, 절제훈련을 제대로 해야 합니다.
절제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삶을 가볍게 만드는 훈련입니다.
삶을 가볍게 만들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으며, 순종에 옮기기가 쉬워져요.
나비를 보면, 내려앉고 날아오를 때 보면, 꽃잎 하나가 흔들림이 없어요.
왜요? 몸이 가볍기 때문입니다.
비행기를 탈 때 반드시 짐의 무게를 측정합니다.
이코노미 클래스를 타면 20kg정도만 가지고 가야 되요.
자기가 가져가고 싶은 것을 다 가져가면, 비행기가 뜰 수가 없잖아요.
인생은 나그네입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 같지만 자세히 바라보면
인생의 무거운 짐이 되어 있는 것들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너무 과하게 짐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부담이 되는 집을 많은 융자를 얻어 장만했다고 생각을 해봅시다.
그 다음부터는 삶에 여유가 없어져요. 거기에 메인 것입니다.
웃을 수 있는 자유를 행사할 수가 없어요. 집에 메여 꼼짝을 못하는 것입니다.
호주에도 보면, 이민을 와서 집부터 장만하는 가정들이 많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또 집에 대한 집착이 상당하잖아요. 그래서 집을 하나 삽니다.
그 때문에 융자를 얻었습니다. 이제 이것을 평생 갚아나가야 되는 거예요.
거기에 메여있는 것이죠. 사람노릇도 하기 힘든 거예요.
우리의 인생도 그런 것 같아요. 불필요한 짐 때문에 움직일 수가 없어요.
꼼짝을 못해요. 순종할 수가 없어요.
뭔가 내 뜻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가 없도록
내 삶을 칭칭 감고 있는, 무거운 짐들이, 내 인생을 사로잡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꽃잎도, 조그마한 물방울이라도 금방 떨궈내서 자신을 가볍게 합니다.
공중에 나는 새를 보세요. 뼛속까지 비워서 자신을 날게 합니다.
새들은 뼛속도 비어있다 합니다. 그렇게 몸을 가볍게 해서 날아요.
우리는 자주 정기적으로, 나의 삶을 무겁게 만드는 것을 과감하게 떨쳐내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나 혼자 몸도 가누기 힘들다면, 내가 누구를 도울 수가 있겠습니까.
내 삶에 집착하고 있다면, 그것에 메여 산다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영적 삶의 추구를 어떻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절제를 통해서 얻는 축복은 자유예요. 신앙에 날개를 다는 것입니다.
▶절제를 하는 이유는, 절제를 하는 만큼 파워가 생깁니다.
여러분 댐에 물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그것을 그냥 모으면서 적절할 때 방출할 때
그것이 파워가 되는 거예요.
절제할 때 말씀대로 살 수 있는 에너지가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죠.
절제하는 삶을 살아가는 훈련을 하다보니까
나도 모르게 순종의 능력이 배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이 재미있어져요.
그래서 정기적으로, 특히 연말/연초에 우리 삶을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히12:1절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
여러분 신앙의 세계 안에 무언가 진도가 나고 있습니까?
영적인 삶의 달음질에 뭔가 속도가 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냥 그 자리에 서 있습니까?
만약 1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그런 모습으로 그냥 반복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모두 쓸데없는 군더더기들을 과감하게 제거해야 합니다.
아닌 것에 대해서는 잔인할 정도로 잘라내야 합니다.
어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불러주는 데로 다 가고,
박수친다고 모든 일에 다 참여하고, 모든 사람들에게 다 인정을 받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목적지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을 받는 것과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나를 붙들고 있는 것들이 많다면, 내 삶에 무거운 짐들을 떨궈내지 못한다면
아무리 깨달아도, 아무리 말씀에 감동을 받아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입니다.
움직일 수가 없도록 내 삶을 무겁게 짓누르는 그것을
내가 통제하지 않는 한 결심뿐인 것이죠.
그래서 “바보는 늘 결심만 한다..” 그런 말이 있어요.
불순종하고 싶어서 불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언제나 자신의 삶에 무거운 짐을 떨구는
자기 절제의 훈련이 되어져있지 않을 때
말씀은 말씀대로만 읽는 것이고, 내 삶에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에 적합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혹시 무엇에 애착을 그렇게 느끼고 계십니까?
무엇에 내 삶의 힘들 빼고 있습니까?
신앙은 기대만으로 되지 않아요. 훈련이 필요합니다. 자기 절제에요.
힘을 쓸데 쓰고. 뺄 때 빼는 완급 조절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삶에 방만함들을 정리하고, 내가 진짜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상을 기대하는 사람은.. 성실 합니다.
▶영적 경주에서 단기 속성과는 없어요. 성실함이 중요한 것입니다.
경기장에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어요. 그러나 상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세상에 저절로 되는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영적인 성숙,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피트니스 센터에 그 비싼 돈을 들여서 회원권을 사는 사람은 많은데
제대로 운동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주인에게 물어보니까, 회원 등록한 사람 중에 20%만 열심히 운동을 한다고 해요.
그리고 80%은 왔다가 안 왔다가 한다고 해요.
등록한 사람 100%가 다 오면, 장소가 너무 좁아서 안 된다고 해요.
그런데 감사하게도 80%가 안 와주니까, 사업체가 돌아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80%가 그 돈을 대주고, 20%가 혜택을 누리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주일 날 교회에 예배에 출석 도장만 찍는 것으로
우리의 신앙의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마땅히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
오늘 바울은 달음질을 이야기 합니다. 마라톤처럼, 꾸준히 성실히 뛰는 것입니다.
여러분 서신서를 통해서 드러난 바울의 영적 태도는 눈물겨워요.
그는 천천히 산책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달음박질 친다”고 말하는 것이죠.
본문 27절에 “내 몸을 쳐 복종시키다”는 것이죠.
십자가를 통과하는 이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는 이 노력을,
이런 표현들 속에서
바울이 자신의 삶에 달음박질에 얼마나 치열한 싸움을 했는가를, 우리들에게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자칫하면 여러분, 우리도 무너질 수 있다는 이야기에요.
내 몸을 쳐서 복종 안 하면, 내가 남에게는 전파하지만
도리어 나는 버림을 받지 않을까 두려워한다는 거예요.
신앙의 어떤 긴장감을 말씀해주는 것입니다.
자칫하면 내 신앙이 타락에 빠질 수 있고, 기본도 유지할 수 없다는 말이에요.
사실 기본만 유지하는 것도 쉽지가 않아요.
비행기가 공중에 떠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신앙이 날마다 진보하고 진도가 나가고
속도가 나가고 달음박질을 쳐서 결승선 골인지점까지 점점 더 가까이 가고
주님이 정말 기뻐하시는 사람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이라고 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오늘 바울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절대 중도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긴 마라톤 경주에서 찾아오는 유혹은 무엇일까요.
마라토너들에게 끊임없이 찾아오는 유혹은 그만두고 싶다는 것이에요.
믿음의 삶을 현실 속에서 살아낸다는 것은 어려운 거예요.
주일날 예배를 드리거나 집회에 와서 은혜를 받았을 때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백성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그러나 현실의 삶에 딱 부딪치면
하나님의 말씀과 이 현실 사이에 갈등을 하면서
그냥 다 내려놓고 그냥 눈 감고 순간적으로 세상과 타협하고
믿음의 백성인 것을 다 잃어버린 채
하나님의 말씀을 다 그냥 묻어버리고, 자기가 살고 싶은.. 유혹이 생기잖아요.
여러분 우리는 신자의 길이라는 것을 쉽지 않잖아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 번 살려고 작정하는 순간에
우리는 숫한 세상의 저항에 맞바람에 쓰는 것이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해 보려고 하면
많은 손해 보는 일이 있고
내 삶에 정말 억울함들이 생기고
내가 죽을 것 같고 밥도 먹지 못할 것 같은.. 그런 유혹들이 우리의 삶 속에 찾아오잖아요.
그래서 전쟁이죠. 신앙이라는 것은.
▶저는 목사는 여기서 말씀을 선포하지만
오늘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 평신도들의 생활이 얼마나 처절한가는
저는 어느 정도 알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함부로 말씀을 전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이 약속 하셨지만, 그 약속이 우리의 현실에 이루어지기 까지는
시간의 간격이 있고, 그 시간의 싸움은, 나의 쉽지 않은 싸움이라는 것이죠.
그럴 때 우리는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그리고 스스로를 합리화 하고,
‘하나님 나도 먹고 살아야죠. 하나님 내 형편 아시잖아요. 나 할 만큼 했잖아요.
나 여기에서 그만 눈 감고 적당히 살고 싶습니다.’ 이런 유혹이 생깁니다.
올림픽에 이 금메달을 따는 사람들이나 큰 상을 받는 사람들을 보면
참 그 모습을 보면 너무 감동적이죠.
몇 년 전에 김연아 선수도 벤쿠버에서 상을 받을 때 막 울잖아요.
그 어린 소녀가 온 국민이 같이 우는 거예요. 울면서 우리는 무엇을 느껴요.
‘저 어린 소녀가 저 자리에 서기까지 얼마나 많은 힘든 순간들이 있었을까.
다 포기해버리고 싶은 그 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하나의 테크닉을 습득하는데도, 수 천 번을 엉덩방아를 찧고 눈물의 세월을 보냈잖아요.
그녀가 이겨낸 것은 무엇일까요? 포기하고 싶다는 유혹을 이겨낸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 후회의 지점을 가보면,
분명히 만나게 되는 것이 하나 있어요. 그게 뭐냐 하면 포기한 거예요.
조금만 더 했더라면. 거기에서 포기하지 않고 조금만 더 갔더라면.
후회하지 않았을 텐데.
▶여러분 우리의 신앙의 경주에도 마찬가지에요.
숫한 유혹이 오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달리고, 너무 이른 포기를 하면 안 됩니다.
믿음의 길에서 내가 바른 선택을 했다면, 포기하지 않아야 돼요.
그 길이 선한 길이라면, 물러서지 말아야 합니다.
내가 봉사하기로 했다면, 이 일이 아름다운 헌신의 일이라면
내 일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그 길이 좋은 길이었다면
끝까지 완주하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끝을 바라보는 거예요. 끝을 보아야 되요.
쉽게 도중에 하차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 지점은 후회가 찾아오는 지점인 것이죠.
◑4. 마지막으로 경주에서 중요한 것은 정확한 방향입니다.
고전9: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마라톤은 산책과 다르죠. 향방이 분명하고 싸움의 대상이 너무 뚜렷합니다.
권투선수가 허공을 향해 주먹을 치면 안 되죠. 타겟이 정확해야 하는 것입니다.
‘싸우기(권투)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아니하여’
▶시시한 인생의 특징이 있습니다.
시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특징, 눈동자가 풀려있는 거예요.
시선이 분산되어 종잡을 수 없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초점을 잃는 순간 삶을 방황하게 됩니다.
집중력을 잃어버리면 삶은 머뭇거리게 되고 삶의 파워가 나오지 않죠.
그러면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훌륭한 선수들의 특징은 고도의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입니다.
농구 시합을 할 때도 상대편의 시선을 교란하기 위해서 관중석에서
막 반대편의 사람들이 흔들잖아요. 진짜 헷갈리겠더라고요.
그런데 유능한 선수는 결단코 교란하는 그 청중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고
골대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소한 것에 여러분들의 시선이 빼앗기게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사소한 것에 집착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신앙은 집중력이 중요한 것이죠.
주변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평정심을 유지하지 않는 집중력,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산을 바라본 사람이 산을 오릅니다. 목표가 없는 사람은 이룰 것이 없습니다.
삶을 수동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인생에 목적이 분명하지 않아요.
구체적인 목적이 없기 때문에 시시한 유혹에도 넘어가는 것입니다.
내가 스스로 정한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감동으로 내게 주신 목표와 목적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킵니다.
여러분 내가 살려고 하는 인생이 없는데, 어찌 내 안에서 열정이 일어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자칫하면 길을 잃어버릴 수가 있어요. 목표점을 그러므로 계속 확인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아비 집을 떠나 텐트를 치며 옮겨 다니지만, 그는 방황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그는 언제나 돌아갈 본향을 사모했다고 말합니다.
요셉은 이국의 땅에서 노예였습니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는 꿈으로 하나님이 주신 그 꿈으로 그는 길을 잃지 않고
애굽의 총리까지 오릅니다.
모세가 사람을 죽인 후에 광야에서 양을 치며 정처 없이 떠돌아다녔습니다.
그러나 타는 가시떨기 가운데서 찾아온 하나님을 만난 이후에 그의 방황은 끝이 났습니다.
그의 목표는 가나안이었습니다.
다윗 그 역시 인생의 처절한 순간을 맛보며 왕이 되기까지
끝없이 광야로 피신하여 다녔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방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자신의 삶에 주어진 목표에
정확하게 시선을 맞추며 살아왔습니다.
▶여러분 인생은 무한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택과 집중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내가 무엇을 붙들며 살 것인가. 무엇을 위해 살 것인가.
내가 과연 지금 있는 곳이 서 있어야 할 곳인가.
그 이유를 수도 없이 물어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추구해야 할 목표를 분명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장로님은 평생을 우표를 수집하는 일에 애정을 다 했어요.
얼마나 우표를 애지중지하고, 책자를 만들고, 돈을 들이고, 외국에 가던지 기념우표,
돈이 막 얼마든지 사서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만족하고 그러다가
은혜를 깊이 체험하고 나니까.. 그것이 헛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여러분 미국에서 해마다 먹기 대회를 하는데
어떤 한국 자매 한 사람이 햄버거를 막 수 십 개를 먹어요.
계란을 수 백 개를 먹는 거예요. 이제 나중에 막 뛰면서 먹더라고요.
저는 그것을 보면서 얼마나 슬펐는지 몰라요. 먹다가 죽겠어요.
어쩌면 인생이 거기에 목을 매달아요. 그 상 얼마나 된다고...
다른 것 하면 훨씬 더 나을 텐데... 그게 무슨 면류관이에요. 무슨 상이겠어요?
어떤 TV에 보니까 어떤 연세도 지긋이 들었던데
뭐든지 모서리로 막 세우는 거예요. 의자도 세우고 냉장고도 세우고
뭐 전부 다 그렇게 물건을 세우는데, 온 힘을 다 하는 사람. 너무 안타까워요.
헛된 방향이잖아요. 헛된 추구잖아요. 아무 의미 없는 것이잖아요.
여러분 그것 만일까요?
내가 왜 돈을 버는지, 이 돈을 버는 이유가 무엇인지,
이 돈을 어디에 써야 되는 것인지. 내가 무엇 때문에 땀을 흘리는지,
내 인생이 왜 존재하는지, 여러분 인생의 본질과 분명한 초점을 놓치면
하염없이 인생은 초라해져요.
우리는 승리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쇠하지 않을
불멸의 면류관을 추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무턱대고 땀을 흘리며 연습하는 사람은 없어요.
구원은 믿음으로 주어졌지만
장차 우리에게 주어질 상은 우리의 땀과 피와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는 상을 얻기 위해서
억지로 인위적으로 고행하듯이 예수를 믿을 필요는 없어요.
복음의 능력 안에서 복음을 경험하는 사람은
기쁨으로 어려운 일도 감당하게 하는 능력이 그 안에 있는 것입니다.
절제도 억지로 하는 고행자가 아니에요.
복음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이 죄도 억지로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넉넉하게 이기는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이고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헌신의 삶이라도 순종하는 능력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피 땀을 흘릴만한 가치가 있는 목표에
내 인생을 정조준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정조준하세요.
가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절대가치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가치를 추구하지만 그냥 상대적 가치를 추구하잖아요.
날마다 추구하지만 또 다른 사람이 나오면 한 순간에 무너져버릴 가치가 아니라
절대적 가치,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후회하지 않을 절대적 가치,
그것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원한 것. 영원한 것이란 무엇일까요?
성경은 눈에 보이는 것은 영원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어요.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영원한 것이 없어요.
성경에는 딱 세 가지. 하나님이 영원하신 분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하고 그 말씀으로 구원한 영혼이 영원일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뭘까요.
영혼을 살리는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이 구원의 사역,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던 그 궁극적인 목적의 우리의 삶을 올려드릴 때
우리의 삶이 영원한 일이 될 줄로 믿습니다.
그 때 우리는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생명을 살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고 세워가는 일들을 위해서 우리의 삶을 산다면
우리는 결단코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삶의 모든 것은 언젠가 평가받게 되어 있어요.
우리 모두는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서게 되어 있습니다.
대충 편안하게 눈치껏 예수 믿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믿을 바에는 제대로 본격적으로 믿는 것 같이 믿는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학생이 학교에서 가장 신나게 즐겁게 공부하는 방식은, 공부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 안에 깊숙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시간이 금방 가요.
여러분, 신앙의 한 가운데로 들어오시게 되기를 바랍니다.
한 발만 걸쳐놓으신 분이 계신다면
믿음의 경주에 여러분 달음박질에 다시 한 번 전환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보상은 충분히 주어질 것입니다.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영광이 주어지게 될 것입니다.
▶벌써 우리는 연말을 맞았습니다. 평가의 계절입니다.
인생의 마지막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인류의 종말도 가까워져 오고 있습니다.
허공을 치는 삶을 단 한 순간도 살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늘의 영광을 추구하시고 영원한 것에 집중하시고, 절대가치에 생명을 거시기를 바랍니다.
상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산책하는 삶이 아니에요. 달음박질치는 사람들입니다.
상을 기대하시고 나에게 주어진 거룩한 레이스에 최선을 다하여, 전력질주 하셔서
마지막 날에 승리하시고 영원히 쇠하지 않는 하늘의 면류관으로
주님 앞에 서는 영광이 여러분들 모두에게 있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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