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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5

그리스도께 드리는 헌신과 경배 2 / Paul Washer

LNCK 2014. 12. 29. 16:54

www.youtube.com/watch?v=P5iRmqlYXJA

폴 워셔, 그리스도께 드리는 헌신과 경배 - YouTube

리스도께 드리는 헌신과 경배 P2            욥기28:1-11        출처 (17분58초~끝) 

원제목 : "True Worship and Devotion to Christ" by Paul Washer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1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하는 이유 : 하나님의 자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라.. 이러한 동기부여는 어디서 찾아야 합니까?

왜냐하면 진리를 얻는 것은 쉽지만, 습득한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은 힘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이러한 급진적인 희생 제사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유는,  어디서 오는 걸까요?

이것이 이 설교의 남은 시간에,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건 바로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권하노니   by the mercies of God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무슨 뜻입니까?

바울사도가 이 구절 앞에서, 즉 롬1~11장에서 묘사한 것이 무엇입니까?

죄인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에 대하여 설교했습니다.

 

죽어 마땅한 그런 죄인이, 하나님의 자비로 구원을 받았으니,

자기를 산 제물로 드림이 마땅하다.. 는 논리입니다. 

 

▲여러분이 설교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사람들에게, 그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이야기 할 것입니다.

그때, 강요나 의무만으로 그들에게 말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산 제물로 그들의 몸을 드려야 함을 이야기 할 때

그들은 '좋아요 우리는 그것에 동의합니다. 전적으로 그러고 싶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행할 수 있는 동기를, 어디서 얻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게 알려주십시오.’ 이렇게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여기서 그 대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거듭 태어난 영혼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얻게 된 "긍휼"이, 더욱 자기 마음을 뜨겁게 타오르게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진정으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더 많은 지식을 가지게 될수록, 더 하나님을 싫어하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심령이 변화된 사람은,

   그 "긍휼"(본문에 자비하심, mercy, pity, compassion) 에 감격해서,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하고 싶어하고,

 

   또한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자기를 위해 행하신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 더 공부하도록 이끌리게 됩니다.

 

그래서 구원을 주신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사랑은

그들의 마음에서 더욱 흘러나오게 되고, 주님을 향한 그들의 열정은 더욱 타오르게 됩니다.

 

그 열정은 그들의 의지에 영향을 주게 되고

그들로 하여금, 기쁨 속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기꺼이 따르도록 이끌게 됩니다.

 

▲그러면 설교자들의 주된 임무는 무엇입니까?

롬1~11장을, 부지런히 가르치는 것입니다.

 

즉 죄인의 절망적 상태와,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와,

그걸 값없이 베푸시는 하나님의 긍휼, 하나님의 속성에 관해서.. 부지런히 가르치면..

성도들은, 그 구원의 은혜에 감격해서..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아주 건강한 복음적인 교회에 가서,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당신들은 지난 몇 년 동안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공부했습니까?’라고 물으면

대부분은 명쾌하게 대답하지 못합니다.

목회자들에게도 '얼마나 많은 해를 두고, 하나님에 대해 공부하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글쎄요 우리는 스케줄 상, 한 분기에 2주 정도 공부하는 거 같습니다.’라고 답합니다.

 

   여기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보이십니까?

   설교자가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최상의 지식이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즉 복음에 대한 지식입니다.

 

   제 말뜻은, 부자는 자신의 부를 자랑하고, 건강한 사람은 자신의 건강을,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지혜를 자랑하는 것처럼, 우리는 무엇을 자랑합니까?

   우리 목회자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그분을 안다는 것을 자랑합니다.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회심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무신론자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배우지/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많은 시간,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

즉 "복음"에 대한 선포를 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교훈적/윤리적인 내용을.. 주로 가르쳐 왔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설교자 당신들의 의무입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지 말하십시오.

   이것은 바울 사도가 한 것입니다.

 

   즉 롬1~11장을 부지런히 연구해서, 열심히 가르치십시오.

   물론 로마서 뿐만 아니라, 모든 66권의 성경 속에, 구원과 복음의 도리, 십자가의 비밀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만약 제가 빌게이츠에게 샌드위치를 잔뜩 쌓아주어도, 그는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일했던 제3국의 어느 가난한 나라에서, 그들에게

빌 게이츠에게 주었던 샌드위치의 절반 만 주어도

그들은 저의 손에 감사의 입맞춤을 하고, 이웃사람들에게 뛰어가서, 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줄 것입니다.

 

부자는.. 음식에 시큰둥하지만

배고픈 자는.. 너무 감격한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성경과, 복음과, 구원의 도리를 가르쳐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사람들이 '자신의 비천함, 가난함, 자신이 처한 멸망과 저주'를 깨닫게 되고,

복음의 빵을 받았을 때.. 감사하고, 감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아주 화가 난 크리스천 기자가 제게 와서

   ‘왜 당신은 이 모든 시간을 사람의 "전적인 타락"에 대해서만 이야기 하느냐?’ 고 화를 내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기 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자신의 죄 사함이, 얼마만큼의 무게(소중함)를 가지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당신에게 당신이 얼마나 부패한 죄인인지.. 정확하게 말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 외 다른 모든 것들은, 다 대체물입니다. 본질적이 아닙니다.

 

지금 당신의 삶을 산제사로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이 원리에 맞추어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본질이고.. 그 외 모든 것은, 대체물에 불과합니다.

 

▲저는 젊은 크리스천 여러분들께 감사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추구하는 모든 기독교적인 회복에 대해,

즉 더욱 개혁주의적 신앙, 더욱 성경적인 진리, 청교도 정신의 회복, 초기 복음주의로의 회복 등

이 모든 것을 위해 노력하는 젊은 크리스천 여러분들에게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젊은 청년 여러분, 여러분은 이렇게 개혁과 회복을 외치면서도,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본질(롬12:1)을 빠뜨린 채,

그저 개혁주의적 신앙, 더욱 성경적 진리, 청교도 정신의 회복, 복음주의로의 회복.. 등을 붙들 때

그건 아무 것도 아닌 것입니다. 

 

   교회지도자들이, 교회 정책을 구성하고, 계획하는 것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러한 본질을 빠뜨리고, 외적 성장 위주로 계획한다면.. 다 어리석은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개인적으로도 그렇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 더욱 진실히 알게 될수록

당신은 더욱 이러한 '어리석은 생각'들을 내려놓게 될 것입니다.

교회 성장, 교회 전략, 문신 새김, 멋진 안경, 물 빠진 청바지 등등 말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설교하지 않는

즉 소수의 설교놀이를 하는 젊은이들에 의해 세워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전쟁무기는, 진리의 선포(위에서 얘기헀지요), 끊임없는 기도의 수고, 희생적 사랑입니다.

그 외의 모든 것은, 다 대체물입니다.

 

 

욥기 28장을 보겠습니다.     

 

저에게 항상 경종을 울리는 구절을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설교 서두에 모세와 엘리야가 하나님을 대면했다고 말씀드린 것처럼,

여러분도, 자기 혼자만의 묵상 시간이나, 서재에서 성경을 깊이 연구하시라고..

무릎 꿇고 기도하시라고.. 이 말씀을 드립니다.

이것은 진실한 설교자와 예언자로서의 최소한의 의무입니다.,

 

 

욥기28:1-3

‘은이 나는 곳이 있고, 금을 제련하는 곳이 있으며,

철은 흙에서 캐내고, 동은 돌에서 녹여 얻느니라.

사람은 어둠을 뚫고 모든 것을 끝까지 탐지하여,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있는 광석도 탐지하되’

 

저는 이 구절을 새벽 430분에 제 자신에게 적용합니다.

새벽 어두움 속을 뚫고 들어가면서, 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4절, 그는 사람이 사는 곳에서 멀리 떠나 갱도를 깊이 뚫고, 발길이 닿지 않는 곳 사람이 없는 곳에 매달려 흔들리느니라.

 

(이런 보석을 캐는 광부의 열심이, 오늘날 말씀의 금맥을 캐는 목회자들에게, 절실히 필요합니다.)

 

제가 처음 사역에 부르심을 받았을 때, 구식이었던 저희 목사님께서 저를 보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젊은이 자네는 홀로 있을 수 있겠나?"

 

그 말을 들었을 때, 저는 처음에

'제가 진실된 설교를 하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미움을 받아서, 왕따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한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젊은 설교자들이 모두 모여 흥겨운 노래를 부르고 게임을 할 때, 너는 오직 홀로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있느냐?'

는 것이었습니다.  

 

'누구도 함께 하지 않지만, 네가 있는 장소에서, 너 홀로 하나님의 임재와 함께 할 수 있냐?

그리고 젊은이 이것은 위태롭고 위험한 일이라네!' 는 것이었습니다.

 

시대 유행에 함께 흔들리는 것은, 위험하고 불안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머물기를 힘쓰십시오. 그분의 말씀을 공부하십시오.

 

위대한 멘토, 굉장한 종교적 의무 등을 내려놓고 (이것들도 필요하지만)

먼저는, 말씀 연구와 기도의 골방을 가지십시오.

마치 광부가 어두운 갱도에서, 돌 속에 묻힌 보석을 캐듯이.. 말입니다.

 

세심한 주의를 가지고 이러한 것을 행하십시오.

굉장한 즐거움이 아닌, 굉장한 주의를 가지고 행하십시오.

 

▲5‘음식은 땅으로부터 나오나, 그 밑은 불처럼 변하도다.

그 (땅 속) 돌에는 청옥도 있고, 사금도 있으며,

 

알렉산더 맥클레인은 대단한 설교자입니다.

그는 성경의 먼지까지도, 귀중한 금과 같다고 했습니다.

 

6~11절  ‘그 길은 솔개도 알지 못하고, 매의 눈도 보지 못하며, 용맹스러운 짐승도 밟지 못하였고

사나운 사자도 그리로 지나가지 못하였느니라.

사람이 굳은 바위에 손을 대고 산을 뿌리까지 뒤엎으며, 반석에 수로를 터서 각종 보물을 눈으로 발견하고

누수를 막아서며 나가지 않게 하고, 감추어져 있던 것을 밝은 데로 끌어내느니라.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자신에게 적용할지 보이십니까?

여기서는 광산에서 보석을 채굴하는 사람들에 대한 것을 묘사하면서,

욥은 여기서,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 보석처럼 감춰져 있으며,

우리가 그 말씀의 보화를 캐내는 일은, 광산의 광부처럼 고된 일 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욥기 28장 쉬운 주해

 

이 광부 일이, 여러분 신학생들의 놀라운 marvelous 의무이고, 동시에 고된 terrible 의무입니다.

이것은 당신에게 굉장한 속박 obsession 이 되어야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침상에서 쉬는 동안, 당신은 밤을 새는 파수꾼이어야 합니다.

당신은 하나님과 홀로 있어야합니다.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을 배워야합니다.

당신이 말씀을 공부할 때, 스스로 깊이 말씀에 들어가야 합니다.

 

광산 일, 그것은 고상한 일이 아니라서, 자존심을 가진 사람은 갈 수 없습니다.

세속적 일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당신은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단지 강해설교하는 이상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당신의 모든 것을 대가로 지불해야만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결코 사역을 해 본적이 없는 박사에게서 나온 교회전략을 배우기 위해

당신의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에, 당신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주의 깊게 연구해야 합니다.

 

그런 말씀의 연구자가, 설교 시간에 강대상에 서서, 입을 열어 말하게 될 때면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입에서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말이 아니라요!

 

 

◑여러분, 신학생들께 부탁합니다.

 

제가 이 학교나, 다른 학교의 캠퍼스를 걸어 다닐 때, 많은 학생들이 제 근처에서 이렇게 수근대는 것을 듣습니다.

‘저 사람은 굉장히 지적이야. 저 사람은 헬라어도 잘 알고 있데.

저 사람은 모든 것을 아주 정확하게 따져서 논리적으로 설교한데. 저 사람은 아주 똑똑하데’ 등등

(다 쓸데 없는 피상적인 이야기들을, 제게 대해서 말하고, 정작 중요한 것들은 언급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스펄전에 대해서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요.

만약 스펄전의 전기를 쓴 사람들이, 그들이 천국에 가서 스펄전을 실제로 만나면,

아마 스펄전은, 그들을, 멀리 할 것 같습니다.

자기 전기에 중요하지도 않은, 피상적인 것만 잔뜩 써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스펄전의 마음가짐, 뛰어난 기억력, 어떠한 설교노트도 없이

즉각적으로 많은 사람이 모인 거리에서 설교할 수 있는 그의 능력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이건 중요한 게 아니고요)

 

정작 중요한 것은, '설교의 황태자'라는 스펄전 자신이, 뭐라고 말했는지 아십니까?

이것을 주의해서 듣지 않는다면, 당신이 배운 모든 것은, 당신에게 전혀 도움을 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주의해서 들으십시오.

 

스펄전은 "10명에게 설교를 가르치기 보다는, 단1명에게 기도를 가르치겠다"고 했습니다.

“I would rather teach one man to pray than teach ten men to preach.”

이것이 가장 위대한 설교자 중 한 명(스펄전)이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 신학생들이, 여기서 공부를 마쳤을 때, 다시 말하지만 저는 그저 잡담으로 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신중한 마음으로, 여러분께 조언을 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여기 신학교에서 졸업하면, 당신은 모든 공부를 마쳤다고 생각합니까?

아닙니다. 당신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이 학교에서 무엇을 얻었습니까?  

하나님께 대한 지식만 가지고는, 에베레스트 산의 초입, 즉 등산로 입구에 겨우 도착한 것입니다.

 

당신의 조직신학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공부하고

그것이 지금 당신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든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것으론 턱도 없습니다.)

 

로 스쿨(법대)에서는, 그들은 법 자체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학생들에게, 법을 찾는 법, 그 법을 적용하는 방법을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친다는 뜻이지요)

 

즉 여기 신학교에서, 당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 드립니다.

여기서는, 말씀 자체를 배운다기 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지, 또한 그것을 어떻게 선포할 지를 배우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씀을 다 배우는 게 아니라, 말씀을 스스로 연구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신학교를 떠날 때,

당신이 여기서 배우고 습득한 모든 지식적 도구를 가지고,

이제 실제로 당신의 길고 긴, 말씀연구 여정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제 욥기 28장을 직접 살아가게 됩니다. 금맥을 캐는 광부와 같은 자세로요.

 

▲지금 이 세상은, 누구를 필요로 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더 이상 활동가나 선동자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영리한 사람이 필요치 않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떤 전략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지금은 기독교 역사상 그 어떤 시대보다도 많은 선교사역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만,

만약 선교지에서 진정한 복음이 선포되지 않는다면, 그 많은 선교활동들은, 그저 어릿광대의 활동에 불과합니다.

선교사의 의무는 목사의 의무와 같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일이 우선입니다.

 

이것은 단지 지식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은 성령의 힘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선교지에서, 철저한 복음 설교가 되어지지 않는다면, 그 많은 외적 활동들은.. 광대짓에 불과합니다. 

 

   오늘날의 많은 잘못된 예언자들의 예언에 혹하여, 여러분 자신을 허비하지 마십시오.

   성령님에 대한, 너무 많은 모욕과 무례함이 말하여지고 있습니다. (함부로 성령님을 언급하며 예언합니다.)

   이러한 것을, 당신의 소중한 시간에 허용하지 마십시오.

 

   여러분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성령님의 권능에 의해서입니다.

   여러분 젊은 형제나 자매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당신은 반드시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예수님은 '용기를 잃지 않고 항상 기도하라(눅18:1)고 "제안"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는 영적 성장 원리를 "제시"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 분은 우리에게 "명령"하셨습니다. command

예수님의 말씀은 명령이며, 명령이란.. 우리가 반드시 따라야 된다는 뜻입니다. 

 

저는 여러분께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하시고, 기도에 헌신된 삶을 사십시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다 한 때 깨어졌지만, 결국은 모자이크처럼 다시 조합된 사람입니다.

그들은 갈기갈기 찢어졌지만, 용접으로 다시 붙여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깨어진 모든 조각들은 부서지고 다시 또 조합된 스테인드 그라스처럼,

그렇게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의해 그렇게 부서진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은 이 사실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온전히 당신을 비우고, 당신을 깨뜨리기 위해 역사하십니다. 

 

그래서 성령님이 오셔서, 생기를 불어넣어주시지 않으면

여러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에서 예언할 때,

생기가 사방에서 불어와서, 마른 뼈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었습니다. 겔37:1~10

 

대부분의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성령님이 설교자들 가운데서 가장 강력하게 일하실 때는,

그들이 복음에 의해, 채찍질 당해서 쓰러질 때라는 사실입니다.

 

비록 당신이 모든 힘을 다해 성경을 해석하고, 모든 책을 공부하고, 모든 주석서를 살펴보고,

그래서 정통(올바른) 신학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만약 여러분의 무릎에 흉터가 없다면, 저희 교회에는 부임하지 마십시오, 

저희 교인들을, 그런 사역자에게는 맡기고 싶지 않습니다.

 

젊은 사역자들이 때로 나에게 와서 ‘폴 목사님, 나는 당신의 설교를 좋아합니다.

당신의 설교는 열정적이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 설교는

바로 제가 원하는 그런 설교입니다’라고 합니다.

 

저는 그에게 말합니다. ‘젊은이, 자네의 바지를 걷어 올려서, 무릎을 보여주게,

자네의 깨어진 부분을 말이야. 자네가 나에게 보여줄 상처난 무릎이 없다면, 말을 그만 하게’

사역자는, 기도로, 성령에 의해 다스림 받아야 합니다.

 

여러분, 왜 이렇게 어리석게 행동하십니까? 왜 바보같이 사울의 갑옷을 입고 거추장스럽게 움직입니까?

당신은 '갑옷'이 아니라, 선지자의 '겉옷'을 입으셔야 합니다. (엘리사가 엘리야의 겉옷을 받았던 것에 비유)

 

당신들은 가장 위대한 일(말씀연구)을 부지런히 살피도록 부름 받았고,  벧전1:10

여러분은 가장 숭고한 복음을, 듣는 사람들에게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령님의 권능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입니다.

그것은 당신이 기도의 사람이 되지 않으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제가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 보다, 약한 사람이기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보다, 더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이기에,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 저의 시계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제 신발 끈도 제대로 매지 못함으로 인해, 주님을 찬양합니다.

(저는 좀 뒤떨어진 사람이라는 뜻인듯) 

 

당신의 약함은 문제가 아닙니다. 자신의 약함을 깨닫지 못하는 것이, 바로 문제입니다.

당신이 자신의 약함을 발견하면, 그 약함으로 당신을 낙심케하려는 사단에게 틈을 주지 말고

그 약함으로 인해 그리스도께 더욱 매달리십시오. 고후12:9

 

▲마지막으로 이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께 집요하게 끈질기게 매달리는 사람입니다.

 

오늘날 세상 문화에서, 강한 사람이란

자신의 강한 의지를 가지고, 단호하게 결단하여, 자신의 꿈을 성취해 나가는 사람입니다만,

저는 그런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몸집이 큰 세 명의 청년을 고르십시오.

그리고 그 힘센 사람들을 세우고, 저를 그들과 싸우도록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예상하듯, 저는 앰뷸런스에 실려갈 것이고, 저를 싸움터에서 끄집어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결과를 말할 수도 있습니다. 비록 제가 40kg 밖에 나가지 않더라도

그 건장한 세 명의 사람들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떻게요?’ 하고 물으시겠죠?

 

저를 바다에 던져보십시오.

저는 수영을 할 줄도 모르고, 그래서 떴다/가라앉았다 할 것입니다.  

그런 죽음의 목전에 이를 경우, 저는 무자비하게 강해질 것입니다.

이것이 약함에서 오는 강함이며, 두려움에서 오는 필사적/초인적 힘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붙잡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당신들 강한 세 명이 수영을 하며, 제 곁을 지나가 보십시오.

그들이 서핑 보드를 탓을 지라도, 저는 그들을 (악으로, 깡으로) 넘어뜨릴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을 결사적으로 붙잡을 것이고, 바다에 익사시킬 것입니다.

이것은 제 필요 때문이지, 결코 나의 힘 때문이 아닙니다.

살기 위한 나의 몸부림입니다. (죽음 앞에서, 부족함 가운데서, 초인적 힘이 나오는 것이지요) 

 

제가 기도합니다. 여러분이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인격을 강력히 붙잡게 되기를요.

 

당신이 성령님께 전적으로 의지함으로써, 당신이 진정 자신의 기본적인 의무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의무란, 광부처럼, 하나님을 아는 지식(말씀)의 금맥을 캐어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일인데, 그 일은 꿇어서 상처난 무릎으로 가능합니다.

 

지금 미국에 절실히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선교지에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아주 단순합니다.

 

저는 지금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기독교 사역 활동들을,

모조리 배에 실어서,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도에 갖다버리고 싶습니다.

 

지금 미국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이른 아침 가장 중요한 시간에, 자기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묵상하는 사람들입니다.

저는 그런 한 사람을 만나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 시간에 발견한 말씀의 금맥을, 기도로 얻어진 하나님의 권능으로,

나가서 전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전하는 사람, 희생적인 사랑을 가진 사역자

그 한 사람을, 저는 만나기 원합니다.

 

오늘날 세상의 어두움은, 너무나 큽니다.

만약 당신이, 당신을 집어삼키려는 그 악과 마귀를 업신여긴다면,

그것은 순식간에 당신을 삼켜 씹으려고 합니다.

 

당신은 그것에 대항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능력 안에서, 말씀의 채찍으로 자기를 때리면서,

담대함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겸손함으로 살면,

저 산을 명령하여 바다에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 뒤에 숨지 마십시오. (주권에 핑계 대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권능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침노할 것이고, 나라들은 그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주권입니다. 그 비전을 붙잡고 전진하십시오.

기도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