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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근거로 부활을 믿을 수 있나?

LNCK 2014. 12. 29. 16:54
 
 
◈무엇을 근거로 부활을 믿을 수 있나?       눅24:13~35        2013.03.31 설교스크랩                                                                                                  *원제목 : 마음에 더디 믿는 자

 

 

▲‘서류에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어떤 일이 미처 마무리되기도 전에 새로운 일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그러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의 충격이 미처 가시기도 전에,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슬픔을 미처 실감하기도 전에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고 하지만 시간을 따지면 37시간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은 충분히 슬퍼할 시간을 갖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기뻐할 여력도 없었습니다. 우리는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약속이나 한 듯이 “예수님 부활하셨대! 할렐루야!” 이렇게 기쁘고 흥분스럽게 반응했으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랬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들은 서로 눈만 꿈뻑거리고 기뻐해야 되는 것인지 어찌된 영문인지 서로 얼굴만 바라봤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자들이 어떻게 반응을 하던, 예수님은 당신의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정대로 전진해 옵니다. 우리는 우리의 미련을 빨리 떨쳐버리고 하나님의 나라에 합류할 수 있어야 됩니다.

 

버스가 정류장에 섰을 때 사람들이 다 탈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아니고 사람이 준비하고 있다가 빨리 타야지, 그러지 않으면 버스는 떠나가 버립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가 전진할 때 우리가 준비하고 합류해야지 머뭇거리면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은 바람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우리는 성금요일이 되면 검정색 옷을 입고 애통하다가 부활절 아침이 되면 흰색 옷으로 갈아입고 부활절 찬송을 부르면 기쁨이 올 줄로 생각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사람의 의지대로 따라주는 것이 아니에요. 슬픔은 그래도 느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기쁨은 사람 마음대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연기자들이 우는 연기는 잘하지만, 웃는 연기가 부자연스러운 것과 같습니다. 경건한 날이라고 경건한 감정이 생긴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저도 주일 아침이라고 평소보다 더 거룩한 마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에요. 그런 마음이 생기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왜냐하면 의인은 믿음으로 사는 것이지 감정으로 사는 것이 아니에요. 감정의 여부와는 상관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서면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감동을 느낄 수도 있고, 평강을 느낄 수도 있고 능력을 경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제일 우선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다음에 따라가는 것이 믿음이고 그 다음에 성령의 역사가 따르고 그 다음에 감정이 역사합니다.

 

말씀이 먼저고, 그 다음이 믿음이고, 그 다음이 성령이고, 그 다음이 감정이에요.

 

‘믿는 자에게는 이러한 표적이 따르리라’고 했습니다. 표적이 따라옵니다. 믿는 자를 따라옵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믿음을 붙잡고 서는 법을 배우면 그 외의 모든 것은 따라오게 돼 있습니다.

 

☞여주봉 올바른 기독교 신앙을 갖기 위한 4가지 근거

 

▲예수님의 부활소식을 제일 먼저 접한 사람은 베드로도 아니고 요한도 아니고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이 자체가 의미하는 것이 많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회는 여자를 사람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사람 숫자를 셀 때 여자를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다 했을 때 그것은 남자의 숫자만을 센 것이지 여자와 아이는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취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법정에서 여자의 증언을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남자의 증언만이 효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목격한 사람이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어요. 막달라 마리아가 먼저 예수님을 보고 그리고 베드로와 요한에게 이 소식을 전해서 베드로와 요한이 그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을 조작한 것이라면 미쳤다고 여자가 먼저 예수님을 목격했다고 말했겠습니까. 남자, 믿을 수 있는 남자가 먼저 예수님을 봤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제일 먼저 예수님을 목격한 사람이 여자였다고 말한 이유는 그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입니다.

 

▲요즘에는 컴퓨터 게임이라든가 인터넷의 성인물이 해로운 것이라고 보지만 제가 어렸을 때는 만홧가게를 해로운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는데 만화가 아무런 교육적인 가치가 없는 해로운 서적이라고 봤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도 몰래 만화 가게에 갔다가 어머니께 호되게 야단맞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이후에도 몰래 만화를 빌려 봤습니다.

 

그런데 만화가 해로운 이유 이 만화의 황당무계함의 전형적인 케이스가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스토리가 만화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이야기가, 만화가 아니라, 성경에 등장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만이 그것을 믿기 어려워하는 것이 아니고 옛날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울이 아테네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말을 듣고 사람들이 기롱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조롱했다, 말이 안 된다고 거부했다는 얘기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이라고 이런 소식을 우리보다 더 쉽게 받았으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그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었어요.

 

심지어 제자들 중에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성경이 솔직히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는 줄을 알면서도 그것을 각오하고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전했던 이유는 그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에요.

 

예수님을 그저 존경 내지 흠모의 대상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굳이 부활을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부활이 없어도 예수님은 얼마든지 훌륭한 스승이 될 수 있고 정신적인 지주가 될 수 있습니다.

 

부활이 없어도 예수님은 얼마든지 사람들의 존경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부활이 없어도 예수님의 가르침은 얼마든지 세계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도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가장 우선적으로 전한 이유는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에요.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부활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을 근거로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을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이미 우리는 믿는 사람들이에요. 그럼에도 믿음의 근거를 확인하는 것은 유익한 일입니다.

 

우리가 고려시대 이전의 역사를 무엇을 근거로 알 수 있습니까. 고조선이든 삼국시대든 통일신라든 이 모든 역사를 알 수 있는 근거는 삼국사기라는 한 권의 책이 있기 때문입니다.

 

삼국사기, 김부식이 쓴 한 권의 책이 있기 때문에 고려시대 이전의 역사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더 많은 자료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나마 한 권의 책이라도 남아있기 때문에 우리가 삼국시대에 대해서 알고 사극도 만들고 영화도 만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영화 트로이를 보신 분이 계실 텐데 트로이가 실제로 존재했다는 것을 밝힌 사람이 슐리만이라는 사람이에요. 슐리만은 어렸을 때부터 호머의 일리아드를 읽으면서 트로이 전쟁이 신화가 아니고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슐리만은 그 증거를 찾아 나서서 터키에 트로이의 성터라고 믿어지는 잔해를 발굴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트로이 전쟁이 신화였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성터를 발견한 후에 거기에 역사적인 근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사실이냐, 신화냐 이것을 분별하는 기준은 우리의 의지에 따르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소원에 따르는 것도 아니고 역사적인 증거에 좌우되는 것입니다.

 

▲testimony. 법조인들은 누구보다도 이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백만 개의 이론보다 한 사람의 증언이 더 위력 있고 더 믿을만하고 더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이유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증인들의 증언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증언을 글로 기록한 것이 신약성경이에요. 신약성경은 철학을 말하는 책도 아니고 교리를 모아놓은 책도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과 십자가의 수난과 부활과 승천과 성령의 강림과 사도들의 증언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누가복음 첫 장 첫 구절에 뭐라고 쓰고 있느냐면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사실이라는 말을 썼어요.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목격자라는 말이 또 등장합니다. eyewitness.

 

그것을 생각해 낸 것이 아니고, 누가 고안해 낸 것이 아니고, 목격한 사람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내력을 그대로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성경의 기록을 다른 고대 문서와 비교해 보면 비교의 여지가 없습니다. 삼국사기는 김부식이 주후 1145년에 쓴 책인데 삼국사기의 내용이 1145년부터 12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고조선, 고구려, 그러니까 멀리는 1200년 전, 가까이는 120년 전의 이야기를 썼다는 얘기에요. 그러니 과연 삼국사기의 정확성을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다는 얘기입니까.

 

신약성경을 여기에 비교하면 신약성경의 가장 일찍 쓰인 책이 데살로니가전서인데 데살로니가전서가 기록된 연도가 주후 50년이에요. 예수님이 승천하셨을 때가 주후 30년경이라고 본다면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20년 만에 신약성경의 첫 책이 기록됐다는 얘기입니다.

 

바울서신은 일찍 기록됐습니다. 그리고 복음서 중에 제일 먼저 기록된 마가복음의 연대가 주후 70년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40년 만에 첫 번째 복음서가 기록됐다는 얘기인데 사십년 전이면.. 그리 먼 기간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삼국사기 같은 신화가 아니라, 증인들의 목격담인 것입니다.   40년 전이면, 제가 중학생 때인데, 저는 중학생 때 일어난 일을 생생하게 기억하는데 마가가 복음서를 썼을 때, 증인들이 생생하게 예수님을 기억했어요. 그것을 글로 남겼어요.

 

여러분, 그러므로 성경의 증언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지적으로 정직하지 못한 것이고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 신뢰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제자 두 명이 이름은 말하고 있지 않은데 베드로나 요한은 아닌 것으로 생각되고, 제자 중에 베드로와 요한 말고 따로 또 자신의 자긍심을 갖고 있는 제자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엠마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동행하셨어요. 그런데 예수님인줄 알아보지 못했다고 했어요. 외모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얘기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예수님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안다고 생각합니다. 젊은 남자가 수염만 있으면 예수님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예수님의 얼굴이 눈 위에 나타났다느니, 구름에 나타났다느니…. 예수님이 어떻게 생긴 지 안다는 얘기입니까.

 

우리는 더 이상 외모로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삼년 반을 함께 한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외모로 알아보지 못했는데. 신령한 것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한다고 했습니다.

 

부활하신 이후 예수님은 더 이상 외모로 알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영적으로라야 분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들과 대화하시면서 당신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증거를 보여줌으로 확신시켜 주시려고 하지 않았어요. 내 손의 못자국을 보라든가 옆구리의 창자국을 보라든가 내 가시면류관 모습을 보라 이렇게 하시지 않고

 

예수님은 어떤 방법으로 당신의 부활을 확신시키려고 하셨느냐면 성경말씀을 그들에게 풀어주었다고 했습니다. 성경말씀을 풀어주었다.

 

27절을 보면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예수께서 당신의 부활을 확신시키기 위하여 다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성경말씀을 설명하셨다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어떤 주관적인 기적을 경험함으로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성경의 기록을 통하여 예수님의 부활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기적도 어떠한 체험도 성경의 증언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확신하려면,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 삼아야 됩니다. 그럼 개인적인 영적 체험은 불필요하다는 얘기냐. 그건 아니에요.

 

엠마오 도상의 제자들도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 나타나시는 영적인 체험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영적인 체험이 성경말씀을 더 신뢰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영적인 체험의 귀중함은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성경말씀을 더 신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이미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에요. 듣지 못한 사람이 아니에요. 본문을 보면 어떤 여자들이 무덤이 비어있었다더라, 부활하셨다는 말을 했다더라, 남이 얘기한 것처럼 말했지요.

 

그러나 예수님이 성경말씀을 풀어 설명하신 것을 들은 다음에는 이들이 34절에 뭐라고 말하느냐면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조금 전에는 사람들이 무덤이 비었다고 하더라, 예수님이 부활했다고 하더라, 이렇게 말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예수님이 과연 부활하셨다! 이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요즘도 남의 얘기하듯이 ‘예수님이 사흘 만에 살아났대.’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 많아요. 그건 기독교인이 아니에요.

 

기독교인은 예수님이 과연 살아나셨다, 정녕 살아나셨다, 본인도 그렇게 믿는 것뿐만이 아니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확실하게 전할 수 있는 사람이 기독교인이에요.

 

예수께서 그들에게 성경을 풀어 설명하실 때 32절에 ‘저희가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성령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실 때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뜨거워짐을 통해서 이전에는 남의 얘기하듯이 마음이 차갑고 확신이 없고 능력이 없던 사람들이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을 경험한 다음에는 이제는 과연, 과연 예수께서 부활하셨다! 나의 믿음의 증거인 것뿐만이 아니고 이것을 사람들에게 담대히 말하고 거기에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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