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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번지점프 1

LNCK 2014. 12. 29. 16:54

믿음의 번지점프 1            창12:1~3, 합3:19        2013.06.30. *원제목 : 떠남의 선교

 

 

 

 

◑호숫가를 거닐며 묵상

 

제가 몽골에 있는 동안에 홉수굴이라는 한 호수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호숫가를 거닐었습니다. 그때 23일 일정으로 좀 쉬면서 기도해야겠다 해서 갔는데

거기는 5월인데도, 아직 호수가 얼어있었습니다.

 

그곳은 굉장히 추운지역입니다. 순록을 키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영하5도만 되어도 ! 날이 따뜻해졌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추운 아침에 일어나서 산책을 했습니다.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동네 강아지 한 마리가 보였습니다.

강아지가 하품을 하고, 연신 기지개를 켜며, 데굴데굴 구르면서 배를 긁고 그러다가

저희를 쳐다봤습니다.

 

그렇지만 저희는 신경쓰지 않고, 산책 길을 계속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이, 갑자기 눈이 반짝하더니, 저희를 따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강아지가 그날 하루, 자기 삶의 목적을 잃고 헤매고 있다가

그날 하루, 재미있는 뭔가를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저희를 따라오기 시작합니다.

 

저희는 계속해서 걸었고, 강아지는 계속 따라왔습니다.

그러다가 저희가 한 곳에 멈춰서, 사진을 계속 찍었습니다.

사진을 찍고 있는 동안에 이 강아지가 저희를 지나서 한참을 가다가

 

제가 사진을 찍다말고 '강아지 어디 갔나?' 한번 봤더니

저기 한 50미터쯤 앞에 가서, 딴 데를 보는 척 하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는 가만히 앉아있었어요.

 

그런데 저희가 일어나서 걸으니까, 또 그 녀석도 같이 갑니다.

멋쩍으니까 저희한테 붙지는 않았는데, 일정한 간격을 두고 계속 따라옵니다.

얼마나 그렇게 했느냐? .. 두시간 반 정도를 그렇게 산책했습니다.

 

그때 제가 하나님께 하나님, 선교가 뭐죠?’ 하고 질문을 하고 있었는데

제가 그 강아지를 통해서 답을 얻었습니다.

 

! 이거구나.’

 

뭐였냐면...

제가 만약 이 강아지를 목줄로 묶어서 너 나 좀 오늘 따라다녀야겠어.’ 하고 끌고 다녔다면

이 강아지가 두시간 반 동안이나 잘 끌려 다녔을까요?

 

아니죠. 이 강아지는 그저 그날 하루 목적이 필요했습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지 몰랐기 때문에, 심심해서 하품하며 몸을 긁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저희를 보는 순간, 그날 하루의 갈 길의 방향을 결정합니다.

저희는, 따라오라고 말한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 녀석이 우리를 관찰하면서, 계속 따라 붙더라구요.

 

아하, 어쩌면 이게 선교인지 모르겠다.’

삶의 걸음걸음에서 나오는 그 영향력. 그 영향력은 심지어 강아지를 움직입니다.

 

    그러므로 선교사가, 뭘 목줄을 매서 끌고 갈 수도 없고, 또 끌려오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영향력을 있을 때는, 현지인들이 그저 따라붙는 것입니다. 선교사를요!

 

▲본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제가 생각해보면, 아브라함은 선교사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왜 '선교사적'이라고 하느냐고요?

 

아브라함은 파송해 준 단체가 없습니다. 파송해 준 교회도 없습니다. 파송장도 없구요.

요즘은 선교 사회에 들어가려면, 그런 게 다 필요한데 그런 게 없었습니다.

그리고 후원 조직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볼 때는, 아브라함은 선교사의 어떤 원형을 갖고 있었어요.

 

하나님께서 이 땅을 구원하고자 하는 계획을 가지신 다음에

한 민족을 일으키시려고 했을 때

그것을 한 사람에게서부터 시작해야겠다.’라고 생각하십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 아브라함을 택하시는데

그 아브라함을 택하신 후에 하신 첫마디가 있습니다.

 

너는 본토 친척 고향집을 떠나서,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12:1

 

여기서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에 대한 선先이해가 없었던 아브라함이, 그 말씀에 순종했다는 겁니다.

 

그 당시 중동에서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적에게 공격받을 수 있는 환경 속으로, 제발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 당시 중동 사회는 부족중심의 사회였습니다.

부족을 떠난다는 것은, 아무런 자신의 안전을 보장해줄 수 있는 장치를

가지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그것을 요구하셨고, 아브라함은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당시에 성경책도 없었습니다.

성경공부란 걸 해본 적이 없었고, 선교훈련을 받아본 적도 없었습니다.

신앙서적을 읽어보거나, 그런 것들을 해본 적이 없었을텐데.. 순종했던 것입니다.

 

제가 믿음이 뭔가 생각을 하다가,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 신앙생활이란 뭔가?’

 

   오늘 제가 여기 예배실에 들어와서 앞을 보니까

   ‘하늘의 능력을 다운로드하라.’ 이런 표어가 있는데요. 딱 답이 보이더라구요.

 

   여러분, 다운로드할 수 있는 제일 쉬운 방법이 뭔지 아세요?

   여러분이 알지만 하기는 싫으실 겁니다. 문제는 하기 싫다는 거예요.

   가르쳐드려도 하지 않으실 거라는 것.

 

   그게 뭐냐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얻게 된 삶의 통찰력

 

제가 몽골에서 경험한 것이 있어요.

제가 어느 날 강을 봤습니다. 강이 흘러가는데 똑바로 가지 않더라구요.

그게 저한테는 좀 충격이었습니다.

 

그곳의 삶은, 제가 그동안 알아왔던 삶과는 굉장히 다른 삶이었습니다.

제가 알았던, 한국과 미국에서 지향했던 삶은

고속도로 <직선코스>를 달리는 그런 삶이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서울에서 부산까지 간다고 하면, 어느 길이 최단 코스인가를 먼저 살펴봅니다.

그리고 그 코스로 가야합니다.

조금이라도 돌면 , 손해봤다!’ 하는 것이 저의 삶의 방향이었어요.

 

그런데 몽골에서는 그게 안되요.

황량한 광야에, 포장된 직선 길이라는 것이 아예 없어요.

그러면서도, 사람은 길을 가야 하잖아요.

 

제가 그 구불구불하게 돌아서 흐르는 강의 길을 보면서

어쩌면 이게 우리의 인생과 더 가까운 모습일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즉, 우리가 가는 인생은 길은.. 직선 길이 아닙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경험하는 거잖아요.

 

그걸 저는, 몽골에서, 강을 쳐다보면서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강은, 구불구불 돌아서 가더라고요!

  

아무 목적없이 가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저한테 탁 깨달음이 왔습니다.

! 목적이 없는 것이 아니다. 방향성이 있다.’

 

이 강이 어디를 향해서 가고 있냐하면

낮은 곳을 향해서 가고 있더라구요.

동서남북이 아니라 낮은 곳.

 

그런데 그 강의 흐름을 따라서 주변이 푸르러지더라구요.

그것은 제가 그동안 알고 있었던 삶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강이 돌아가면 갈수록 더 많은 곳이 푸르러 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돌아가지만.. 주위가 푸르러지는 삶.

 

우리 인생이, 그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조건 직선으로, 빨리 가는 길이 아니라,

낮은 곳을 향해 가며, 심지어는 구불구불 돌아가지만,

주위가 푸르러지고, 주위를 살리는 인생.. (겔47:7 참조)

 

    모두가 똑바로 직진하기를 바라지만,

    우리 삶의 실제 모습은 이리저리 구불거리면서 사는 삶이예요.

    그러나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높은 사람이, 낮은 곳에 처할 때..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합니다.

 

제가 어느 날 인도네시아의 한 도시에서, 목회자들을 섬기고 나서

잠시 시간이 있어서, 그 근처에 있는 폭포를 보러 갔습니다.

 

그 폭포에 들어가는 입구부터, 소리가 굉장히 요란했습니다.

제가 가서 그 폭포를 봤는데, 물보라가 막 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놀란 것은, 떨어지는 물의 양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어요.

물의 양 자체는 많지 않았는데, 워낙 낙차가 크다보니까,

워낙 높은 곳에서 떨어지니까, 물보라가 마구 일어납니다.

그 모습이 장관이었습니다.

 

아하, 저에게 또 깨달음이 옵니다.

'물의 양이 많지 않아도, 낙차가 크면, 거기서 발생하는 에너지가 생기는구나.'

 

제가 볼 때 하늘의 능력이라는 게 그런 것 같아요.

떨어지는 낙차의 힘.

 

여러분, (과학에서 이야기하는)원자가 전자들을 가지고 있죠?

전자가 에너지 레벨을 낮추면, 거기서 엄청난 에너지가 나옵니다.

그것이 바로 원자력입니다.

 

빛을 흡수하려고 하는 삶은, 끊임없이 에너지를 자기에게로 끌어당깁니다.

우주에서 가장 그러한 존재가 바로 블랙홀입니다.

블랙홀이란 존재는, 생명을 가만두지 않죠. 주위의 모든 빛을 흡수합니다.

 

우리에게 두 종류의 삶의 가능한 것 같습니다.

 

   한 종류의 삶은...

   나에게 천만 원이 있다고 할 때

   좀 더 무리를 해서 천오백만 원짜리 차를 사는 경우가 있고,

 

   거기서 오백만 원짜리 차를 사고 나머지 오백만 원으로

   좀 더 의미있는 일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가 낮출 때 오는 '잉여 에너지'라는 것이 있습니다.

   거기서 발행하는 힘이 엄청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아브라함에게

, 너 복이 있는 땅으로 가라.” 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당시 중동지역에서 가장 경제력이 좋았던 지역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입니다.

아브라함의 고향입니다.

 

그리고 당시 제2의 경제력을 가지고 있었던 지역은 애굽지역인데

하나님은 그를 애굽으로 보내신 것도 아닙니다.

 

어디로 보내셨느냐?

그 가운데 가장 덜 발전된 지역 그곳으로 보내십니다.

가나안 땅입니다.

 

   '가나안'이란 말은, 그 당시 어떤 느낌을 주고 있었냐하면...

   그 자체가, 어감이 좋지 않았습니다.

 

   가나안은 저주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노아의 아들 중에 셈, , 야벳이 있었죠?

   그 중에 함이 아버지의 하체 벗은 것을 비웃다가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는데

   그 진노가 누구에게로 옵니까? 함의 아들들 중에 가나안에게로 옵니다.

   그 가나안이 가서 그 자손들과 함께 정착했던 땅이 가나안입니다.

 

하나님은 복 있는 땅으로 가라고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뭐라고 하십니까?

그 저주의 땅, 가나안 가운데서 

네가 복이 되는 것이다.”

 

네가 복이 되어서, 복 없는 자들의 땅으로 가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에겐, 번지 점프와 같은 낙차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엄청난 에너지가 발생합니다.

인도네시아의 폭포에서 느꼈던 것 처럼요!

 

 

◑신앙은.. 번지 점프와 같습니다.

 

이게 우리에게 도전입니다.

제가 '신앙이라는 게 뭘까?' 생각해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냐하면...

번지점프 같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번지점프 아시죠? 다 아실 겁니다. (몽골이라면 다 설명해줘야 합니다. )

 

저는 직접 번지점프를 해보지는 못했지만

이 번지점프를 해 본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떨어질 때의 느낌보다, 더 자기를 오싹하게 하는 순간이 있답니다.

 

그 때가 언제냐 하면, 끝까지 쭈욱 떨어지고 난 다음에

다시 위로 팍 튀어오를 때

왜 그런지 아세요?

 

   오늘 오전에, 맹인선교 하시는 안요한 목사님이라고...

   맹인 분들을 위해서 말씀을 전했는데,

   맹인 분들이 힘든 게 뭔지 아세요?

 

   누군가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혼자서 서기 어렵다는 거예요.

   그리고 때로는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나를 끌고가는 사람에게 이끌려가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 상황은, 어떻게 보면 신앙을 받아들일 수 있는

   굉장히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냥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인도 받는 대로.. 믿고, 따라가기만 하면 되니까요. 

 

, 번지점프에서 뛰어 내렸는데 제일 힘든 상황이 뭐냐면...

뭔가의 힘에 의해서 탁 튀어 오를 때

내가 조종할 수 없는 방향과 방식으로 튀어오른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 순간을 불편해합니다. 그렇죠?

내가 모르는 힘에 의해서 내가 어디론가 막 이끌려갈 때,

그리고 다시 내동댕이쳐지는 느낌. 그것이 반복됩니다. 그러다가 멈춥니다.

 

그런데, 여러분.. 어디로 가야될지 모를 때.. 너무 불편해 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주님을 믿으십시오. 아브라함처럼! 

 

▲근데, 제가 <영적인 번지점프>를 몇 번 해봤습니다.

다른 말로 <모험으로 사는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번지 점프'를 너무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번지점프를 하는 신앙인이.. 더 성숙하고, 더 귀한 사명을 감당하게 되니까요!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 맡기고, 훌쩍 그 안전지대에서 뛰어내리십시오!

 

제 목숨이나, 인생이나, 삶의 여정이나 이런 것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겨버리고, 확 뛰어내렸던 순간들이 몇 차례 있었어요.

 

그런데 그 경험을 하고 나서 보니까, 어땠냐하면...

분명 떨어졌는데.. 한참 있다 보니까.. 제가 번지점프대 보다 더 위에서, 아래를 조망하고 있는 겁니다.

 

그 때 떠오르는 성경구절이 있어요.

여호와께서 내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높은 곳을 다니게 하시는도다.’ 합3:19

 

이때의 높은 곳은 지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이때의 높은 곳은... 제가 볼 때는

적이 어디에 있는지, 물이 어디에 있는지, 양식이 어디에 있는지를 볼 수 있는 곳 이예요.

소위 지혜를 가지는 자리입니다.

 

뛰어내렸는데.. 떨어져서 죽는 게 아니라, 

더 높은 곳에서, 아래를 조망한다는 사실이예요.

 

성경에 보니까 요셉의 삶이 그렇습니다.

요셉이 내동댕이쳐졌어요. 어디로? 구덩이로.

그 다음에는 애굽으로 팔려갔어요.

그런데 다시 올라가요. 그 집의 가정 총무가 됩니다. 보디발 집에서요.

 

그러고는 다시 내동댕이쳐집니다. 어디로 가요? , 감옥으로 갑니다.

다시 올라갑니다. 예전의 자리가 아닌 또 다른 자리로.

떨어졌는데.. 자꾸 이전보다 더 높은 자리로, 계속 올라갑니다.

 

   근데 제가 이걸 보면,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인생의 방식이, 자꾸 위로 올라가기만 하지 않습니다.

 

   위/아래로 심히 반복되는 번지점프의 모습을 그립니다.

   떨어지는 순간이 필요하더라고요.

 

제가 위에서 조망하게 된다는 얘기는 어떤 이야기나면...

 

제가 몽골에 있었을 때 환경적으로 충격이 있었어요.

그러다보니까 가끔씩 꿈에 제가 미국 보스턴에서 살았던 환경이 나온 적이 있었어요.

찰스강변에서 달리기하고.. 그랬던 기억들이 가끔 꿈에 몇 번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제가 언젠가 보스턴 땅을 다시 밟은 적이 있었어요.

하나도 변화된 것이 없더라구요. 건물 하나만 바뀌고.

그러고서는 제가 그곳을 산책하고 있는데.. 제게서 어떤 고백이 나왔냐면...

 

하나님, 이곳은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너무 작네요.

하나님, 저를 이곳에 가둬두지 않으신 것을 인하여 참 감사합니다.’

 

제가 한국에 나와 있는 동안에...

저는 가진 게 없어요. 내세울 것도 없구요. 특별히 뭐 하고 있는 일도 없었어요.

그냥 인도네시아 동네 아저씨예요. 몽골에서도 동네 아저씨였지만...

 

근데 이 흔히 볼 수 있는 이 아저씨가 이 한국에 와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위로해야하는 자리에 있게 되더라구요.

 

위로해야 하는 분들 중에는

많은 사람들이 , 참 부럽겠다!’ 라고 생각하는 연예인들도 있었구요.

의사, 교수, 이런 분들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그들을 봤을 때 너무 불쌍해 보이는 거예요.

그리고 뭔가를 주고 싶은 거예요.

 

실은 제가 병원에 입원해있으면서도,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위로해야했어요.

병원에 입원해있는 제가, 병원 밖에 있는 분들에게

나눠줄게 더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떨어지는 삶

여기서 나온 능력으로,

떨어진 제가, 오히려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신자들은, 뛰어내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보니까, 많은 교회들에 어떤 어려움이 있냐면,

다들 번지점프대 위에는 올라가있어요.

 

다들 성경공부하고, 훈련하고, 번지점프가 주는 유익함에 대해서 충분히 나누고

장비 매는 법 같은 걸.. 다 익힙니다. 장비도 진짜 좋아요.

 

   한국 분들은 어디 나가면, 옷은 최고로 입고 다니시더라구요.

   제가 옛날처럼 등산하러 갔더니, 주변 분들이 저를 보면서

   '웬 파자마를 입고 나왔나' 하듯이 저를 쳐다보시더라고요. 그렇게 복장들이 다 좋아요.

 

근데 문제는, 뛰어내리는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여러분, 많은 훈련이 우리를 바꿔줄 것이라고 우린 착각합니다.

 

재밌는 것은... 한국에선 10여년 신앙생활해도 그다지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지만,

몽골에서는 한 6개월 정도 신앙생활을 한 사람들이

열정을 가지고 고향에 내려가서 교회를 개척합니다.

 

그 중에 어떤 사람은 고비사막 자기 고향에 내려갔는데

그 마을 오천 명 주민 중에 천 명이 모이는 교회를 개척했어요.

 

실은 이게 몽골만의 이야기가 아니예요.

 

물론, 그 가운데 하나님께서 어떤 부흥의 물꼬를 열어주셔야만 가능한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우리가 많은 것을 배워야 더 잘 섬길 수 있는 것은 "아니겠다" 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남미의 목회자들은 여러분들보다 성경지식이 없습니다. 대부분이.

그래도 열정적으로 하십니다! 

 

많은 분들이 뛰어내리지 않아요.

다들 어떻게 하고 있냐면...

 

안에서 이야기하다가 좀 지루해지면

한 사람이 몸을 풀면서 좀 해볼까?” 하면서

한 발을 들고 뛰어내리는 시늉을 하면서

우와! 이거 엄청난 걸! 굉장한 스릴이야!” 이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뒤에서 누가 도와주겠다고 손으로 떠밀어주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 고마워!” 하고 뛰어내릴까요?

반응이 어떨까요?

뒤로 확 물러나면서, “아이 씨! 장난치지 마. 떨어질 뻔했잖아!!”

 

무슨 얘기예요?

여러분, 그걸 알아야해요.

한 발을 땅에 디디고 있다는 것은, 처음부터 뛰어내릴 생각이 없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그러시잖아요.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그런데 그게 겸하여 섬기면 안된다가 아니라

 

“You can not.”

그렇게 할 수가 없다는 거예요. 왜요?

발을 땅에 대고 있는 사람은, 처음부터 떨어질 생각이 없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신 것이 있습니다.

   “번지점프해라.”

 

   아브라함은

   “, 알겠습니다.” 라고 말하고, 걍 뛰어 내렸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이 단계를 못 넘어 갑니다.

 

 

◑제 개인적 간증

 

제 인생 가운데도 번지점프를 하게 하시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어요.

제 번지점프의 여정이 시작된 첫 번째 예를 들면, 제 전공이 바뀌게 된 사건입니다.

 

저는 중국사를 너무 좋아했어요.

중국어도 열심히 공부하고 일본어도 열심히 하고... 그러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걸로 많이 준비를 해서 유학을 가더라도 그 분야로 가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무슬림권으로 계속해서 끌어가셨어요.

그래서 석사를 중국의 무슬림을 갖고 했고 박사과정에선 다시 한번 방향을 트셨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대학원에 있으면서 저희 교회 중고등부 수련회를 따라 갔었는데

그때 기도원 원장님이 기도해주시는 시간이 있었어요.

 

제 머리에 손을 얹으셨는데, 그때 제 안에 굉장히 강한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있었습니다.

그 분도 특별한 경험을 하셨고, 저도 그랬어요.

근데 이 분이 저를 위해서 기도하시는데, 제가 마음속에 갖고 있던 기도제목을 기도하셨어요.

 

제가 굉장히 놀랬어요. 그 내용이 뭐였냐면,

이 학생이 학문의 길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인도해주십시오.

유학의 길이 열리게 해주십시오.“

 

이분이 어떻게 내 상황을 알지?’

제가 당혹스러워서 끝난 후에 선생님들이 모인 자리에서 물어봤어요.

선생님들, 이 가운데 제 애기 저 분께 하신 분 있으세요?”

그랬더니 다들 저를 쳐다보시더라구요. ‘너가 뭐길래...’ 라는 눈빛으로...(^^;)

 

그리고 난 다음에 어떻게 되었냐면

그 분이 떠나기 전에, 한 번 더 기도하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저를 부르셨습니다.

 

그래서 같이 기도하는데, 굉장히 많은 기도가 오고갔는데, 그 중에 한 부분에서 딱 물으시는 거예요.

학생, 어디로 유학가고 싶은가? 어느 나라로?”

전 미국으로 가고 싶습니다.” 그랬는데

미국도 좋지만 영국도 좋겠네.” 라는 말씀을 던졌을 때 제가 좀 의아해했어요.

 

? 중국사를 하는데 왜 영국이지? 미국으로 가야지.’

, 이분이 안전빵으로 좀 괜찮은 나라를 하나 더 이야기하셨나보다.’

그러고서 저는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학 준비가 어느 정도 되고 난 다음에

교수님께 유학가고 싶다고 애기했을 때, 교수님이 굉장히 노여워했어요.

저를 아마 그 밑에 두고 싶으셨던 마음도 있으셨던 것 같아요.

 

유학 갈 필요가 없지 않냐고, 네 분야는 굳이 갈 필요가 없다고,

마땅한 선생이 없다고 딱 자르셨어요. 보낼만한 선생이 없다하시면서 자르셨어요.

 

그러시면서 논문이나 잘 쓰고 있어.” 하시고는 독일로 들어가셨어요. 안식년으로.

저는 남아있으면서 너무 당황했습니다.

 

그 당시에 제가 생각한 것이 교수님이 가지 말라면 못가나보다.’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가면 안되겠구나...

 

우리가 많은 경우...

내 인생은 하나님 것입니다. 하나님이 마음대로 사용하십시오.’

이런 기도를 합니다. 그렇죠?

근데 정말 그런지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많은 경우 우리가 말로만 하는 경우가 있어요.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이 여러분을 이끄시고 사용하시기를 원하시는가?

 

, 보세요.

지금 여러분이 공부하는 것, 여러분이 사업하는 것, 여러분이 직장 다니고 있는 현장에서

완전히 실패를 경험해서 쫓겨나게 되는 그 상황이 되었을 때, 떠오르는 얼굴이 있을 겁니다. 그렇죠?

 

실은 그 얼굴들이 여러분을 움직이고 있는 Driving Force(나를 움직이는 힘)입니다.

실은 하나님이 아닐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 가정은 하나님만 섬깁니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의 주인입니다.” 라고 얘기합니다.

근데 많은 경우 착각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그렇다면 가정의 주인이

그 가정의 구성원이 몇 명이 될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나요? 없나요?

권한이 없나요?

 

... 여러분은 다른 주인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 솔직한 게 중요합니다.

 

저에게는 선생님의 인정이 굉장히 중요했었던 것 같습니다. 남들의 인정이.

 

그렇게 유학을 못 가게 되는구나 싶었는데

저희 교수님이 놀랍게 독일에 있는 동안 교회를 다니시기 시작하셨어요.

그 분께 심령의 변화가 왔습니다.

나중에는 성령세례도 받으셨는데,

이분이 돌아오셔서 잠시 귀국하셨을 때 저를 부르셨어요.

 

자네 어디로 유학가고 싶은가? 혹시 전공을 바꿔볼 생각 없나?

중동 지역사를 연구하면 새로운 영역이고 내 밑에 있을 이유도 없고 명분도 있는데

그 분야를 좀 개척해보면 어떻겠나?“ 그러시면서

이 분야를 공부한다면 미국도 좋지만 영국도 좋겠는데...” 이러시는 거예요.

 

아 뭐가 있구나 싶었어요.

 

하지만 그건 굉장한 모험이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중국사만 공부했던 사람이 어느 날 전공 바꿔서

박사과정을 중동사를 간다고 했을 때... 언어도 하나도 모르는데 받아줄 학교가 있을까?

또 하나는 언어도 짧은 사람이 거기 가서 버텨낼 수 있을까?

 

어쨌든 하나님이 힌트를 주셨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영국도 좋겠는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말씀 한 구절을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았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다는 말씀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 , 이것이 믿음이구나.

 

여러분,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나는 게 믿음이더라구요.

저에게 있어서 번지점프 가운데 이런 상황이 몇 번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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