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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LNCK 2014. 12. 29. 16:54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신30:11~16, 요일5:3    14.12.14.인터넷 설교 녹취

  

 

신30:11.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12.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

13.이것이 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의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도 아니라

 

14.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제목

15.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16.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

 

 

 

◑성경의 계명들은..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신명기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많은 명령들을

하라는 명령과, 하지 말라는 명령 614개를, 하나님이 모세오경에서 주셨는데,

 

이 모세오경에 614개의 명령이, 세월이 지나면서 신약까지 포함해서

좀 더 세밀히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마는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이 하나님이 주신 명령을

'이스라엘이 행할 수 있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행하는 것은 어려운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것도 아니다.. 라고 말씀합니다.

바다 끝에 있는 것도 아니고 하늘위에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일은 쉬운 일이다.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11:30절에서 예수님께서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볍다'고요.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에게 예수님이 지워준 그리스도인의 삶, 그걸 예수님께서 '내 멍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가정, 일터, 교회공동체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게, 그냥 자연인으로 사는게 아니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살려고 하니까, 우리가 져야할 멍에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멍애를 우리에게 지워놓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 멍에는 쉽다. 내 짐은 가볍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떻습니까?

 

신앙생활을 하시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부생활, 그리스도인으로서 부모노릇,

연세 드신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 만약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자기가 하고 싶은 데로 하면 됩니다.

그냥. 기분 나는 데로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말고, 성질나면 고함지르고, 집어 던져버리고,

그렇게 살면 되는데, 그게 바로 자기중심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가 내 삶의 주인이라고 고백한 사람들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지난 한 주간도 그리스도인으로서 한 주간 살아본 여러분의 소감이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쉽다" 그러시는데, 여러분은 그렇게 살아보니깐 쉽습니까? 어렵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신 데로 그렇게 살아보니까 "쉽다" 이렇게 마음에 답이 생기는 분이 계시다면

당신은 가장 큰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오늘 다시 한 번 이 말씀을 놓고,

아니 성경이 지금 한 두가지 명령을 하는게 아닌데,

이런 엄청난 말씀을 줘놓고,

하나님은 지푸라기 하나 우리 어께 위에 올려놓은 것처럼 이건 가볍다. 쉽다.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소리인가요?

 

이렇게 질문하는 분은 잘못된 사람이 아니라 지극히 상식적인 분입니다.

당연히 우리가 그런 질문을 하나님 앞에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쉽다'고 말씀하셨으므로, 쉽습니다. 

 

여러분,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답을 한번 간단하게라도 생각을 해보십시다.

먼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경험해보니깐 어렵더라. 그런데 하나님은 쉽다고 하신다.

그러면 내가 어느 쪽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것부터 결정해야 합니다.

 

-내가 경험해 보니깐 믿음으로 사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 사는 것이 어렵더라.

예 대부분 우리는 다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조금 쉬울때도 있는데, 그건 짧은 시간이고, 조금만 지나면 더 어렵습니다.

내가 예수만 안 믿으면 확 이혼을 해버릴 건데,

내가 예수만 안 믿으면 이놈의 회사를 뒤집어엎어 버릴 건데.. 이런 생각이 들지만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 고백하는 우리 예수님은, 이 사안에 대해 무엇이라 말씀하시는가?'

그걸 생각하고 그대로 살아보려고 하니까.. 분명 어렵습니다.

이 갈등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여러분 이중에서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습니까?

 

- <내가 경험해 보니깐 어렵더라.. 그러므로 이건 "어려운" 길이다!> 쪽을 선택하겠습니까?

- <내가 경험해 보니깐 어렵지만, 하나님은 쉽다고 하신다. 그러므로 이 길은 "쉽다"> 쪽을 선택하겠습니까?

 

여러분, 이것을 우리가 분명히 결정하지 않으면, 오늘 설교는, 성경말씀은 더 이상 들어볼 것도 없습니다.

우리 마음에, 이 시간에 분명히 결정하자는 겁니다.

 

 

하나님이 "쉽다" 그러시면.. 쉽습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억지로 시키시는 분이, 하나님이 아닙니다.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것은, 하나님도 못한다.(하나님도 나를 못 바꾸신다)'

그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셨지 않습니까?

 

교회를 세우면서, 마16장에서 우리 주님께서, 그 교회에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능력을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시간에 먼저 하나님 앞에 결단할 것은

내 경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고,

현실을 보면서 우리가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내 경험이 어렵다고 그러고, 현실 속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것을 우리가 보지만은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이 쉽다고 하니깐 이 길은 쉬운 길이다!' 그걸 믿고 우리가 가자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갖지 않으면 '뭐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야!'

그건 우리가 믿음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아얘 시도도 않겠다는 소립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원수는커녕, 가장 가까운 부부관계 속에서도 때로는 미울때가 있고,

자식이 때로 힘겨워서 다 그냥 내팽겨치고 싶을때도 있는게 인간의 연약함이고 죄성인데,

하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 이 계명을, 우리가 어떻게 받아드리냐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명령하시는 것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고,

우리가 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겠다는 약속과 함께 주시는 말씀이니까

내가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 들이겠다. 그게 바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은, 우리에게 "걸림돌"이 아니고, 무거운 짐도 아니고, 

오히려 우리의 "디딤돌"인것을 기억하십시다.

 

토마스 카알라일이 일찍이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길을 가다 돌이 나타나면, 약자는 그것을 걸림돌이라고 생각하고

강자는 그것을 디딤돌이라고 생각한다.'

 

세상 사람들이 믿음을 떠나서도, 이런 마음가짐을 얘기하는 겁니다.

마음가짐이 어떠하냐에 따라서, 왠만한 난관은 극복할 수 있다는 겁니다.

 

앞 길에 돌이 나타났는데 '어휴 이걸 어떡게하나' 그래서 주저앉는 사람은 약자가 될 수 밖에 없고

그러나 돌이 나타났지만은, '이게 내 삶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강자가 될 수 있다..

세상 사람들도 그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말을 해도, 우리가 넘어설 수 없는 벽이 많이 있습니다.

늙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없고, 병드는 것을 어떻게 할 수 없고, 죽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애벌레가 종말이라고 느끼는 그 순간이, 나비가 태어나는 순간인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건 도저히 할 수 없어' 그렇게 생각하는 옛 묵은 자아

그 자아를 우리가 벗어던지고

 

'하나님이 쉽다', '하나님이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셔서 '나도 그 계명을 지킬 수 있다'

우리가 이 새로운 모습을 덧입는 것이, 바로 나비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신앙고백한 그 신앙고백이, 바로 애벌레가 나비로 새롭게 태어나는 고백을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이, 애벌레로 우리가 꿈틀거리면서 세상을 살다가

나비처럼 훨훨 날 수 있는 이런 세상속으로 들어가는, 믿음의 진입로인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말씀을 가까이 하면, 말씀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생각해 봐야 될 것은, 하나님이 쉽다고그래서, 내가 쉽다고 믿기로 했는데

이게 진짜로 쉽게 되는냐.. 하는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쉽다 그래서,

내가 '좋다.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면 이 일이 쉽게 이루어 질 것을, 내가 기대해 보겠다.'

 

하늘을 쳐다보고, 입을 벌리고 있다고 해서, 내 입속에 사과가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쉽다고 했으면, 그 쉽게 만드는 하나님의 길을, 우리가 걸어가야 가능합니다.

 

본문 신30:14절에 보면, 그 길에 대해 두가지 말씀을 하십니다.

 

1) "네 입에 있으며"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이 내 입에 있다. 그리고 내 마음에 있다'라는 이 말을

우리가 마음속 깊이 담을 수 있길 바랍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임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말씀으로 우리 가운데 임재하는것입니다.

 

여러분 그 시대 사람들은, 말씀을 읽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말씀을 듣는것 또한 우리만큼 이렇게 흔하게 듣지 못했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이 말씀을 가지는 가장 중요한 방법은 입에 두는것입니다.

귀로 들을 말씀을 암송하는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태어날때부터 성경을 암송시킵니다.

왠만한 성경을, 유대인들이 통째로 암송하는 것은, 그 당시에는 흔한 일이었습니다.

 

시편이 얼마나 긴책입니까. 시편 119편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긴 장입니다.

근데 이게 암송 장들입니다. 199:1234절을 시작할 때 이게 알파벳순으로 되어있습니다.

 

1절은 알렙으로 시작합니다. 영어 A에 해당하는 단어입니다.

2절은 첫자가 베이트(B),

3절은 서두 첫 글자가 김멜(C)

 

이렇게 쭉 배열해서, 외우기 쉽도록 한 것이죠.

애당초 성경이 그렇게 쓰여졌습니다. 즉 외우는 것을 고려해서 쓰여진 것입니다.

 

이게 어릴적부터 아이들이 훈련을 받는 겁니다.

그래서 나이가 1012살 이렇게 흘러가면,상당한 성경 구절들이 머릿속에 들어있고,그 입에 있는겁니다.

 

'네 입에 하나님에 말씀을 두라'는 얘기는, 문자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암송한 그 말씀을, 안식일날 혹은 아침과 저녁에 부모와 함께

그 말씀을 계속해서 입으로 토해내면서, 나머지 사람들이 그 말씀을 "듣는" 것이  

그 시대 신앙생활 방식이 바로 그거였습니다.

 

2) "네 마음에 있은즉"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입에 두는 것만으로 충분치 못하다고 생각을 해서, 마음에 두라고 말합니다.

입으로 아무리 말씀을 외워도, 그 말씀이 내 마음을 움직이는 말씀이 되지 못하면

소용없다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실제로 광야에서 광야 40년동안 옷이 헤어지지 않았습니다. 신29:5

그러니깐 그들의 일상생활 자체가 기적이었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기적 속에서, 어릴 때부터 암송했던 하나님의 말씀을 상당히 머리에 입에 담고 있었고,

또한 만나를 먹었지 않았습니까.

 

그런 기적의 일상생활을 하고 있었어도 여러분 그 속에서 배신자들이 생겼습니다.

이게 단순히 성경지식의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마음"의 문제입니다.

 

 

◑계명은, 우리 행복을 위해 주신 것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의 말씀을 주신것도 신명기 1013절에 너의 행복을 위해서다.”

다르게 표현하면 너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너희가 일을 행할 수 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 근거해서, 애당초 계명을 주신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합니다.

 

구약이 39권인데, 39권의 구약 성경중에서 하나님의 "사랑"이라고하는 단어,

이게 나중에 아가페로 번역이 되는데

이 단어가 가장 많이 쓰인 책이 신명기(율법책)입니다.

 

우리에게 짐을 지어주고 막 부담이되서 어쩔줄을 몰라하는 이런 무거운 짐을 지워주는 책이

율법서가 아니고,

이 율법의 길을 따라 가면 너희가 가장 복된 자가 되고,

너희가 가장 뛰어난 자가 되고,

너희를 가장 사랑해서 이 말씀을 너희에게 준 것을 너희가 알게될 것이다. 너희는 이것을 행할수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가 느낄수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3절에서 우리 주님께서 신약에서 주신 말씀도 똑같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것들이 아니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이 우리를 힘들게 하기위해서 주신 계명이 아니고,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이 가장 복된길이기 때문에 우리를 사랑해서 주신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으면,

이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그렇게 힘든일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된다는것입니다.

 

스바냐 3:17절을 기억하십시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니라. 그 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여러분 이 말씀의 의미가 뭡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너무 착하고, 순종 잘하고,

그저 엄마 말만 떨어지면 뭐 싫어 소리 한마디 할줄 모르는 그런 아이들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런 모습으로 있는걸 보시고, 하나님께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시고

그 모습을 보는것만으로도 하나님이 좋아서 어쩔줄 몰라 하는, 부모같은 이런 모습이

위 본문이 말씀하는 진의가 아닙니다.

 

스바냐서의 배경은, 남북 왕조가 무너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간 것을,

하나님이 안타까워서 어쩔줄 몰라하면서도, 그들을 향해서 진노하시면서도

그 진노가 곧 사랑 때문에 하시는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 하나님이신 것을 우리가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하지만,

그 자식을 향한 하나님 마음속 깊은곳에 있는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가 말을 안들어도, 그 자녀의 대한 애뜻한 마음때문에

심지어 부모의 유산을 가지고 먼나라로 가서 그 많은 유산을 다 탕진해버린 그런 자식이여도

그 자식 걱정 때문에 잠을 깊이 자지 못하고, 거지가 되어 나타난 자식이 멀리 마을 입구에 들어섰는데도

그 아버지가 그 자식의 그림자만 보고도 아들인걸 알고 뛰쳐나가는

그 탕자의 아버지의 심정, 바로 그 사랑을,

하나님께서 이 스바냐 3:17절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다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앞에서 이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어렵지 않다. 우리가 이를 행할수 있다.

우리가 이렇게 우리의 길을 발견할수 있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를 깨닫을 때 가능하다는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셔서 이 말씀을 주셨다라 할 때

이게 무거운 짐이 아니고, 이게 축복이구나 하는 것을.. 우리가 느낄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희 장모님이 지금 아주 연로해 지셔서, 치매가 왔습니다.

근데 제 아이들을 비롯해서 이 아이들이 참 희한하게도

우리 아이들도 좋은일이 생기면

'엄마 아빠(나)가 기도해서 그렇다'는 말을, 제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고

 

항상 '할머니가 기도하셔서 이런 감사한 일이 생겼다'고.

그 애기를 지난 수십년 동안에 우리 아이들한테 많이 들었습니다.

 

뭐 누가 그렇게 가르친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할머니가 새벽마다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

그래서 무슨 좋은 일이 생기면 '할머니가 나를 위해 기도한 결과다.'

이렇게 손주들에게 존경을 받으신 분이 우리 장모님입니다.

 

삼십 수년전에 제가 그 집 맏사위로 처음 결혼을 했을 때, 저희 장모님이 장갑공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댁에 제가 처음 인사를 갔을 때, 잊을수가 없습니다. 공장이 복잡하기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뭐 제가 잠깐 밥을 밥상을 받아서 밥을 먹고 나왔는데, 그때 그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일이 얼마나 많은지.. 뭐 저와 잠깐 앉아 있는 동안에도, 직원들이 들어와서 어쩌구 저쩌구 하고,

장모님도 나갔다 들어오시고,

그렇게 바쁜데도 새벽기도 한번 빠지는법이 없는분이였습니다.

 

한 번은 제 아내가, 친정에 가서, 장모님하고 얘기를 하면서, 제가 옆에서 그 애길 들었습니다.

'어머니, 아이 셋 키우는게 너무 힘들어요' 그런 푸념을 친정 엄마한테 했는데

그때 장모님이 하신 말을 평생 잊을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얘기하시는 겁니다.

 

근데 그렇게 바쁘고 힘든 삶을 살면서

"나는 이렇게 살면서도, 너희들 밥상을, 식모한테 차리라고 말한 적이 없다. 사랑하면 다 할 수 있다."

아 제가, 그 말을 평생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면 할수 있다는것입니다.

우리가 할수 없다라고 느끼는 것은

내가 네 아내에게 네 남편에게 뭘 제대로 할수 없다고 느끼는 것은

첫째는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고,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지요. 

 

그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제대로 품고 있으면

내 배우자의 대한 사랑, 내 가족에 대한 사랑,

모두에 대한 사랑은 당연히 흘러나와야 하는데..

이게(사랑이) 잘 되지 않기 때문에.. 할수 없는 겁니다.

 

하나님 사랑을 우리가 느끼고, 그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내가 네 이웃을 사랑하고, 가장 가까운 이웃인 내 배우자로 시작해서

가장 멀리있는 원수까지 내가 사랑할수 있다면.. 그건 짐이 아닙니다.

그건 기쁘게 감당할수 있는 특권입니다.

 

여러분 신명기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이 말씀이

바로 이런 하나님의 사랑에서 시작된것임을 우리가 느끼면서

'지금 너희가 일을 행할수 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를 격려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격려는 그냥하는 격려가 아닙니다.

어제 우리 권박사님이 강의하면서 이런 예를 든걸로 아마 어제 강의 들으신분들은 기억날겁니다.

 

내가 누굴보고 청와대에 당신 한 자리 주겠다 그러면 청와대 아는 사람 하나 없고

그 한 자리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인데

 

만약에 대통령이 누군가를 보고, 내가 청와대에 자리 하나 마련해주마 그러면

그 말을 듣는 사람은 '아 정말 청와대에 내 자리가 하나 생기는구나'

대통령이 말을 함부로 할수도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 "너희가 이것을 행할수 있다"라고 지금 말씀하시는분이 누구십니까?

박목사가 하는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까지 내어주신 분,

우리를 위해서 어떤것도 하실수 있는 부모의 마음

그 마음을 가지신 분이 지금 우리에게 "너희가 이것을 행할수 있다."

 

이렇게 우리를 격려하실뿐 아니라

우리가 그 일을 행할수있는자로 세워지도록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면서

우리가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부부가 서로 격려해야합니다.

비난하고 비판하고 짖밞는 것이 아니고

서로 격려하고 자녀를 격려해주고 우리가 서로 격려하면서 이 길을 걸어가면

여러분 이 땅에 하나님의 교회가 영광스럽게 세워질것입니다.

우리의 가정이 흠도 티도 없는 그런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몸으로 세워질 것 입니다.

 

너희가 이를 행할수 있다

여러분 이 말씀을 우리가 왕부담으로 안고 무거운 마음으로 받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서 주시는 무한한 격려와 사랑의 말씀으로

우리가 다시 한번 닫으면서 믿음을 가집시다. 용기를 가집시다.

 

우리가 할수 있다 이 말을 하신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고 이 길을 가는자는 반드시 이 말씀의 성취를 맛보게 될 것을 우리가

이번 한주간도 기대하면서 이 믿음의 길을 잘 걸어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함께 찬송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