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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3

십자가와 자기 치유

LNCK 2015. 3. 7. 09:23

[2013 고난주간 특별예배] 십자가와 자기치유 (히10:19-25) - YouTube

 

십자가와 자기 치유        히10:19-25, 살전5:23               2013고난주간집회 스크랩, 출처

 

서론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신 십자가는

바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죽은 십자갑니다.

 

조금 전 우리가 들었던 찬송 가사처럼, ‘거기 너 있었던가 그때에

예수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때그 질문에 우리는 이렇게 대답해야합니다.

 

예 그렇습니다우리는 거기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 외치는 군중들의 음성 속에내가 있었습니다.

비겁한 빌라도의 모습 속에나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조롱하던 군병들의 모습 속에나도 그 곳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배반한 가룟유다에 모습 속에,

예수님을 시기하여 죽임에 넘겨준 유대 지도자들에 모습 속에,

그들의 죄악과 타협 속에우리도 그 곳에 있었습니다.

바로 나의 죄가 예수님을 십자가로 보냈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내가 그 곳에 있었다고 고백할 때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바로 나는 예수님 안에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내 옛사람이예수님과 함께’ 그 곳에서 못 박혔습니다.

 

우리는 두 가지 모습으로 그 곳에 있었던 것이지요.

예수님과 함께 우리가 죽고예수님과 함께 다시 살아나는 새 생명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죄를 이길 수 있게 됩니다죄로부터 해방되게 됩니다.

사단의 종노릇하지 않게 됩니다.

이제는 죄를 짓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우리 가운데 일어나는 것이지요.

 

뿐만 아닙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마음의 허물과 모든 상처와 아픔으로부터도

우리는 회복되고 치유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과 함께 죽는 자만이 경험할 수 있는새 생명의 열매요 역사인 것입니다.

마치 죽은 피부가 떨어져나가고새로운 새 생명의 피부가 일어나듯이

우리 가운데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죽었을 때

 

우리 가운데 새로 태어난 새 생명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제 과거에 아픈 상처는 깨끗이 씻어지고

 

현재 당하는 어떠한 고난과 아픔을 이겨나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생기게 되고,

미래의 다가올 어떤 불안과 염려도 이길 수 있는..

모든 상처를 치유 받는 놀라운 역사가 우리의 삶속에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치유의 역사는영과 혼과 몸 모든 영역에서 다 체험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3절에 말씀을 보면이런 역사가 있습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다 흠 없게 지켜 주시기를 빕니다

 

우리는 아담 안에서 허물과 죄로 죽은 존재로 태어나기 때문에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은, 모두가 흠 있게 태어난 존재들입니다.

 

인간을 영혼과 육체로 나눌 수도 있지만,

영과 혼과 몸으로도 구분할 수가 있지요.

 

예수님이 십자가로 구원하실 때우리가 예수님 다시 올 (재림)때야 비로소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온전케 되는 것을 계획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못 박혀 죽을 때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날 때

하나님 우리의 영과 혼과 몸이 온전케 되어서

매일 매일 우리의 삶속에 온전함을 체험하기를 원하신다는 거예요.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타락 이전에,

우리의 <>,

하나님을 인식하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우리의 모든 직관력과

우리의 양심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게.. 영이였죠.

 

우리의 <>우리의 정신세계로서자기 자신을 의식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관계를 맺을 수 있는

그러한 정신적인 영역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우리의 <육체는환경에서 적응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상황에 있지요.

 

우리의 영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하나님께 영이 움직여져질 때

우리의 혼은 그 영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그 우리의 몸은, 혼에 의해 움직여지는..

 

즉, 영이 혼을 움직이고혼이 몸을 움직이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조화로운 우리의 상태였던 것이죠.

 

그러나 인간이 사탄의 꾀임을 받고하나님께 불순종했을 때즉 타락 이후에는,

이 모든 것이 다 역전되어 버린 것이죠파괴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셔야 될 중심 자리에자기 자신의 자아가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영과 혼과 몸은 깨어지고 어긋나고 서로 통제가 되지 않는

그러한 상태에 도달하게 된 것이죠.

 

오히려 몸이영과 혼을 움직이고혼이 영을 움직이고..

이 무질서한 혼란의 상태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해야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됐고하나님을 피하게 됐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온전한 관계를 맺어야 될 <정신>의 세계는

온통 자기의 자신의 생각밖에 가득차 있지 않습니다.

또한 불필요한 공상이 일어납니다잘못된 상상을 하게 되죠.

 

그리고 그 '마음'은염려와 불안과 불신과 두려움과 우울증과 죄책감과

온갖 하나님의 뜻을 떠난 감정들로 가득 차 버리게 만드는 거죠.

 

우리의 <>에는 질병이 찾아왔습니다.

어느 의사의 말에 의하면우리 육신의 질병의 대부분은

우리 영혼의 상태가 잘못됐기 때문에 일어난 질병들이라는 거예요.

 

우리의 영이우리의 혼이하나님을 중심으로 해서 온전해진다면

우리의 육신에는그러한 질병이 찾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혹시 바이러스 등의 원인으로 찾아와도그 발병률은 현저히 낮아질 것입니다.

 

영이 망가짐으로 인하여혼이 깨어짐으로 인하여,

육신의 질병까지도, 우리의 몸을 망가뜨리게 되었다는 거예요.

 

이것이 우리의 인생 속에 찾아온 죄의 결과요,

죄의 심각한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의 영은, 하나님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었고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하게 되었고,

우리의 혼은,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가득하게 되었고

우리의 육체는, 잘못된 욕망에 사로잡히게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 어디에 있습니까?

중심에 계셔야 될 하나님이 계시지 않고,

이 중심에, 자기 자신이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까닭은 무엇입니까?

이 중심을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이 중심에 있는 자아를예수님의 십자가로 함께 못 박고

그 중심에 다시 하나님이 계시도록우리 인생에 찾아오신 사건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건인 것입니다.

 

이 자아는, 반성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심각하게 자기를 반성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자기를 분석하고 변화시키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 자아를 변화시키는 길은 단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죽음에 넘기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보내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음으로써

예수님과 죽임에 넘기울 때우리 가운데 태어나는 새로운 생명의 역사만이

우리는 과거의 모든 상처와 허물로부터 자유케 되고치유케 되는 역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설교의 주제

 

 

신자가 불안하고 불행한 이유 – 광야를 살기 때문

 

아담의 타락 이후로,

우리의 자아가있어야 있지 말아야 될 자리에 있게 된 겁니다.

이것이 우리의 근본 문제입니다.

 

우리의 중심에는 하나님이 계셔야합니다하나님이 계셔야합니다.

치유의 핵심은우리의 인생에 자아가 차지했던 그 중심에

 

다시 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는 겁니다우리 인생의 중심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회복의 출발점이죠.

 

많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지만

아직도 그 중심에 자아가 살아있기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방황하는 인생을 삽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으로 향했지만

그들이 광야에서 머물며 방황했던 것처럼..

 

여러분 광야를 지났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그 탄식을 보십시오.

그 불평을 보십시오그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보십시오.

 

우리의 인생에서 겪는우리의 감정에서 나타나는 많은 문제들은

다 광야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불신함으로써, 그 약속의 땅에 들어가라고 했지만

두려워하여 들어가지 못했습니다불안해 했습니다상황을 불평했습니다시기하고 질투했습니다.

 

광야에 나타난 이스라엘백성들의 모습은,

출애굽은 했지만즉 (칭의)구원은 받았지만,

아직 그들은 애굽(옛사람)의 습관에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장소로서는 애굽을 나왔지만사실 광야는 지나가는 땅이지머무르는 땅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왜 광야에 머물게 되었습니까?

그들이 애굽에서 나왔지만실상은 자기 안에 있는 애굽에 계속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애굽은 어떤 땅입니까종되었던 땅입니다노예가 되었던 땅입니다.

하나님을 몰랐던 땅입니다허물과 죄로 죽었던 땅입니다.

 

하나님이 놀라운 기적과 표적을 통해그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셨죠.

출애굽의 핵심은, 홍해의 기적이 아닙니다.

어린양의 피로 그 백성을 구속하셔서 이끌어 내셨다는 것이예요.

 

어린양의 피를 좌우 인방과 문설주에 바른 집마다

죽임을 보지 않고재앙이 넘어감으로써 그 민족을 구원하신 사건,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그 피로 피뿌림을 받은 가정마다 사람마다

구원하셨다는 그것이출애굽의 핵심이죠.

 

그 백성을 그 어린양의 피로 구속하셨지만그들은 여전히 애굽에 살고 있었던거예요.

자기 속에 있는 애굽에 살고 있었던 거예요.

 

그럼으로써 그들은 불평했고불만이었고시기하고질투했고,

두려워했고, 불안해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겪는 모든 상처들은다 광야에서 나타난 거예요.

그런 사실은그들이 광야에 들어갔기 때문에그들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기 쉬워요애굽에서는 괜찮았는데괜히 광야로 들어가니

그들이 그렇게 불평하고 두려워하고 불안하고 상처가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죄와 허물과 상처가

광야를 만나면서 드러나게 된 것이죠.

잠복된 것이수면 위로 비로소 드러난 것입니다.

 

사람과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아직 내안에 애굽이 있기 때문이예요.

내가 애굽 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이예요.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광야에 머물게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우리 안에 얼마나 무서운 애굽이 살아있다는 것내가 나 자신의 애굽에 살고 있다는 것,

애굽 속에 살던 인생이 아니라, 이제 내안에 애굽이 있다 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광야로 던지시는 거예요.

 

그 광야 속에서 우리는자신의 모순과 상처와 아픔이 다 들어나게 되는거예요.

 

우리가 흔히 상처받았다는 애기를 하죠.

실상 가만히 생각해보면상처를 받은 게 아니라

사실은 어떤 경우에는 이미 상처받을 준비를 늘 하고 있었던 겁니다.

내 안에 어떤 상처받을 요소가잠복되어 있었던 겁니다.

 

어떤 상황이 닥쳐와도 상처받을 준비를 하고 사는 사람이 있어요.

무슨 말을 해도 나는 상처받으리라.’

 

어쩌면 상처는 스스로 만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내 안에 내가애굽 속에 살아갈 때,

환경이 문제가 아니라어떤 사람이 나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애굽 속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에

내 인생 중심의 자아가옛 사람으로 살아있는 그 자아가 살아있는 한

우리는 이 죄와 허물과 상처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것이죠.

 

 

할례를 행하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나안땅으로 들어갈 때

여호수아 5장에서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러한 명령을 주시죠.

너희는 할례를 행하라.’

 

여리고성을 정복하기에 앞서왜 할례를 행하라고 말씀하십니까?

그때 길갈에서 할례를 행할 때길갈은 무슨 뜻입니까?

애굽의 수치를 물러가게 한다.’

끝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너희들이 광야에서 왜 방황하고 있느냐왜 상처와 아픔속에 헤메고 있느냐?

광야가 힘든 땅이기 때문이 아니라너희들이 아직 애굽의 수치속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애굽의 수치를 끝내야한다.’ 그래서 할례를 행하라는 거예요.

 

그것은 매우 상징적인 행동이요오고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우리 안에 있는 애굽의 수치를 끝내는 작업이 필요하다는 거죠.

 

어떻게 끝냅니까자기 십자가를 지는 수밖에 없어요자기 십자가를 지는 거예요.

내 인생에 중심이 되었던 이 자아를 끝내는 작업, '애굽의 수치'를 끝내는 작업을 해야하는 것이죠.

 

믿음으로 예수님과 함께내가 십자가에 못박힐 때

나의 옛 사람이 함께 못박혔음을 믿고주장하고간주하고믿음으로 선포하고/

순종하며 나아갈 때나의 옛 사람의 애굽의 수치는 끝나는 줄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있는 자아는 거부할 겁니다.

주인 자리에서 쉽게 내려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중심에 다시 찾아오시려고 할 때, 거부합니다.

자존심을 세우며 거부합니다그럴 필요가 없다 라고 거부합니다.

 

사실 우리가 십자가를 질 때우리에게 주어지는 고통은, 사실은 그 고통이예요.

내 인생의 보좌에서 내가 내려오는 그 고통!

 

여러분그 고통을 당하지 않으려고 할 때,

우리는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될 거예요끝까지 광야에 있게 될 거예요.

 

그러나 내 자아를예수님과 함께 못 박는 고통을 참고 견디고 순종하고

그것을 이겨내면우리는 광야를 지나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죠.

 

할례의 고통을 끝내면우리는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할례의 고통이 두려워서나 자신을 십자가에 예수님과 함께 넘기우지 않게 될 때

우리는 계속해서 광야의 방황시절을 보내게 되는 거예요.

 

우리 안에 있는 많은 부정적 감정과, 상처와, 허물들이 있습니다.

이 시간에 모든 치유적인 메시지를 다 설명할 순 없지만

가장 근본적이며 핵심적인 원리는,

바로 이 치유의 근본적인 원리도 십자가라는 거죠.

 

죄와 허물로 죽었던 옛 사람을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넘기울 때

우리 가운데 새생명의 역사로우리는 회복되는 역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미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마음의 할례에 대해서 이미 말씀하셨어요마음의 할례!

육신의 할례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는, 이 할례라는 단어가 굉장히 유행어였어요.

너희 귀에 할례를 받아야 된다너희 입에도 할례를 받아야 된다.’

신체 각 부분을 사용해서다 할례가 행해져야 된다는 거예요.

 

특별히 마음의 할례에 대해서 집중하고 있습니다.

10:16절 그러므로 너희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더 이상은 목이 곧은 사람들이 되지 말라.”

 

인간의 마음은 할례처럼 끊어내지 않으면 도저히 변화되지 않는 악이 있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애굽의 수치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광야에서 방황하게 되는 겁니다.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어떤 상처 주는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내 안에 마음의 할례를 행해야 한다는 겁니다.

 

미국의 어느 가정이 해변으로 여행을 갔는데

그 해변에서 우연히 물에 흠뻑 빠진아주 이 털이 쭈삣쭈삣하게 난 작은 개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주인 없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고아이들이 그 개를 집에 데려가자고 부모님께 졸라서

그 개를 이제 데려와서 깨끗이 씻겨서 이제 집에 두었다고 합니다.

 

이제 그 다음날 모든 가족들이 다 밖에 출근하고 학교에 가고

그리고 그 집안에 원래 있던 집 고양이 몇 마리와 함께 두고 갔는데,

저녁에 돌아와 보니 고양이가 다 죽어있는 거예요처참하게 죽어있는 거예요.

 

그 범인은 바로 그 개였던 거예요.

그 부모는 그 개를 수의사에게 데려가 검증했더니,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 개는 개가 아니라아프리카 설치류였다는 거예요.

이 해변에 배를 타고 어떻게 왔겠지요그러다가 탈출해 나왔는데,

개가 아니라 사실은 설치류였다는 거예요.

 

여러분 야생동물을 깨끗이 씻긴다고 개가 됩니까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우리 안에 있는 이 자아가, 무서운 이 설치류와 같은 존재라는 거예요.

 

이 자아를 교육을 잘 시키고목욕을 시키고깨끗이 하면 변화될 것 같습니까?

아니죠옛 자아는 끝내야 되는 거예요. ‘마음의 할례가 임해야 되는 거예요.

 

이 마음의 할례가 임하지 않으면우리 안에 있는 상처는 아무리 위로해주고

상담해주고, 격려해주어도 변화 되지 않습니다치유되지 않습니다.

 

성령에 수없이 많이 이 마음의 할례의 대해서 말씀하고 있죠.

2:11~12,

그리스도안에서 여러분은 육신의 몸을 벗어 버리는 그리스도의 할례,

곧 손으로 하지 않은 할례를 받았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됐고,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습니다.”

 

여기 구약과 신약을 함께 연결시키고 있죠.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약의 시대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모든 백성들이 행했던 그 할례가 바로,

예수님과 함께 장사되고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세례라는 거죠.

 

마음의 할례곧 그리스도의 세례이것은 사실 성령의 세례입니다.

우리 마음의 할례는 누가 행합니까성령님이 행하시는 거예요.

 

 

마음의 할례는곧 성령의 세례

 

여러분 성령의 세례는 언제 임하신줄 아십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힐 때

성령의 세례가 임하는 거예요바로 그 시점입니다.

 

에스겔 36장에서도 바로 그러한 말씀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36:25~27절까지입니다.

 

 

내가 너희 위에 깨끗한 물을 뿌릴것이니 너희는 깨끗해질 것이다.

 

내가 너희의 모든 더러움과 너희의 모든 우상들로부터너희를 깨끗하게 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로운 영을 줄 것이다.

 

 

내가 너희 육신으로부터 돌과 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너희에게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내 성령을 너희 안에 주어서너희로 하여금 내 법령을 따르며

 

내 규례를 지키고 행하게 만들 것이다.”

 

 

구약의 백성들에게 할례를 행하라는 말씀에 순종해서

신체의 일부를 잘라내어도 여전히 변화되지 않는 것이 율법의 한계였어요.

 

그러나 마음의 할례를 행하시는 성령의 세례그리스도의 할례를 우리가 받을 때

우리의 옛 사람이 끊어지는 역사애굽의 수치가 끊어지는 역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여러분 왜 우리의 마음에 그렇게 상처가 많습니까아픔이 많습니까?

사랑에 굶주려서 연애 중독에 빠집니까?

죄악된 습관에 빠져 허우적거리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끊임없이 일어나는 마음의 분노로부터 이겨내지 못합니까?

미움 속에아픔 속에 사무쳐있습니까?

우리 마음속에 왜 우울증, 불안이 찾아들어옵니까?

 

이 모든 옛 사람에 속한 것들이제는 그리스도의 할례손으로 행하지 않는

성령의 할례로 애굽의 수치를 다 끝내는 십자가의 그 체험만이

우리를 진정 자유케 하고치유하시는 역사가 일어나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이 성령의 세례를 우리는 사모해야 합니다.

주님 내가 예수님과 함께 믿음으로 십자가에 못 박혔음을 믿습니다.

나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 넘기웁니다성령님 도와주시옵소서.

애굽의 수치가 떠나가게 하여 주옵소서내 마음에 할례가 임하게 하여주옵소서.

 

주여 나를 새롭게 하옵소서새생명의 역사가 십자가로 말미암아 나타나게 하옵소서.

이 성령의 세례로 말미암아 우리를 괴롭히던 모든 마음의 질병들은 떠나가는 거예요.

 

 

히브리서 10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히브리서 10장에는

바로 예수님과 함께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난 이 새생명의 역사를 체험한 성도가 경험하는 치유를

십자가로 말미암아 치유된 영혼이, 어떠한 모습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첫째그 영혼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나아가는 담대함이 있습니다.

 

 

10:19~20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우리는 예수의 피로 인해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한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길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휘장을 통해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입니다.

 

그런데 이 휘장은 바로 그분의 육체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그 몸이 찢어지실 때, 동시에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했던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아래로부터 찢은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하나님이 길을 여셧다는 거죠.

 

대제사장도 그 지성소에 들어갈 때 두렵고 떨었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정하신 규례를 행하지 않을때, 그 대제사장도 죽임 당할수 있었기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공포에 사로잡혀 그 곳에 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바로 그 곳에 우리는 담대하게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지성소에 담대히 들어갈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의 피를 힘입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예수님의 보혈로 피뿌림을 받은 사람들은

바로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담대한 마음을 허락받은 거예요.

 

이 담대함은 어디서 나오는겁니까확신에서 나오는거예요.

하나님과의 친밀함에서 나오는것입니다용서받은 자의 그 기쁨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아바 아버지라 부를수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영혼에게서 나오는 것이죠.

여러분 이런 담대함이 있습니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이 '네가 어디에 있느냐?'할 때, 두려워 숨었습니다.

담대함을 잃어버렸습니다'하나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갈수 있는 확신을 잃어버렸어요.

그 하나님과 나눌수 있는 친밀함을 잃어버렸어요.

 

여러분 그냥 찬송을 부르때에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는거 말고잠시 기도할 때 그 하나님을 찾는거 말고,

정말 하나님의 임재가 온전히 임할 때, 두려움 없이 담대할 수 있습니까?

지성소로 담대하게 들어갈 수 있는 마음, 이것이 바로 십자가로 치유된 영혼의 모습이예요.

 

하나님을 피하고 하나님을 외면할 때, 놀랍게도 우리는 인간관계 마저도 망가지는 것 아십니까?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서 분노하고 있다는 것은, 그 이전에 하나님께 대하여 분노하고 있다는 걸 아십니까?

 

가인이 아벨을 왜 죽였습니까실상은 아벨이 미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미워서였습니다.

하나님앞에 담대하지 못할 때, 우리는 세상을 두려워하게  되고세상속에 숨게 되고,

우리의 상처 속에 숨게 되고우리의 아픔 속에 우리는 헤매게 되는거시죠.

 

지성소에 들어갈 담대한 마음 이것은 오직 예수의 피로만 가능한줄로만 믿습니다.

예수님의 피는 십자가에서 흘려졌을뿐만 아니라, 우리의 개개인의 마음속에 뿌려져야되는 거예요.

 

예수님의 피뿌림으로 우리는 성소에 들어가요. 지성소에 들어가는 담대한 마음을 갖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의 모든 죄가 상처와 아픔이 십자가에서 치유되어서

정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담대함이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나아갈 때, 조금도 두려움없이 담대할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8:1절에 악인은 쫒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느니라

쫒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는 이유가 뭘까요사실은 그 악인의 양심이 살아있는거죠.

양심이 죽은 사람은, 쫒아오는 사람이 있어도 도망 안갑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피하지않고 담대한 영혼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영혼,

그 영혼이 바로 치유받은 영혼인 줄 믿습니다.

 

▲두 번째치유된 영혼은 깨끗해진 양심을 회복합니다.

히10:22절 “우리가 죄악 된 양심으로부터 마음을 깨끗이 씻고, 맑은 물로 몸을 씻으므로,

확신에 찬 믿음과 참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악해졌던 양심이 깨끗해진다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우리의 옛 사람을 못박고우리를 자유케하고회복시키셨을 때

우리의 더러워진 양심악해진 양심화인맞았던 양심이

맑은 물로 깨끗이 씻어서, 양심이 제 기능을 할수 있게 되었다는 거예요.

 

깨끗해진 양심양심이란 무슨뜻입니까라틴어나 헬라어로 양심이란 뜻은 '함께 안다'는 뜻입니다.

누구와 안다라는것입니까자기 자신과 함께 안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양심이 무디어질때자신은 알지만 모른척 합니다점점 모른척하고, 모른척할 때 자기도 모른다고 해요.

 

우리 양심은 놀랍습니다점점 무디어지기도 하고점점 선해지기도 해요.

점점 악해지기도 하고점점점 깨끗해질수 있는거예요.

 

예수님은 양심을 눈eye과 같다 그랬어요우리가 계속 죄 가운데 있을때,

눈이 시력이 흐려지는 것처럼양심의 기능이 점점 약해진다는 거예요.

 

양심이 부패해질때 결국 양심이 화인 맞은 양심이 될 때,

여러분 피부가 화상을 입어서 그 신경세포가 죽었을 때는 아무 느낌이 없는것처럼,

양심의 느낌이 없는 상태에서, 두려워하게 된다는 거예요.

 

이사야 5장에서는 바로 그러한 악해진 양심의 상태의 사람들을 이렇게 고발합니다.

아 너희들에게 재앙이 있을것이다나쁜것을 좋다고 하고좋은 것을 나쁘다고 하는 사람들아

어둠을 빛이라고 하고, 빛을 어둠이라고 하는 사람들아쓴것을 달다고 하고 단것을 쓰다고 하는 사람들아

 

나쁜것을 좋다고 말하고, 좋은 것을 나쁘다고 말하는

어둠을 빛이라고 말하고, 빛을 어둠이라고 말하는 이 화인맞은 양심그러한 사람일지라도,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십자가에 못박히고 그 옛 사람이 죽고 다시 태어나면

그들의 양심이 빛을 빛이라 말하고,

좋은 것을 좋다 말하고, 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할수 있는 양심으로, 깨끗해진다는 거예요.

우리에게 있는 많은 상처는, 우리의 양심이 더러워졌기 때문에 생겨난 아픔입니다.

 

악한 양심 또 더러워진 양심의 몇가지 특징들이 있어요.

죄를 장난으로 여깁니다또 큰 죄와 작은죄를 구분해서 짓습니다.

이 정도는 내가 지어도 되고이 정도는 지으면 안되고,

너무나 분명한 진리에 대해서 논쟁하면 대든다고 합니다우리의 양심이 악해졌기 때문이예요.

 

C. S. 루이스의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에 보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사람은 선해지면, 자기안에 남아있는 악을 더 분명히 깨닫습니다.

반면에 악해지면 악해질수록, 자신의 악을 깨닫지 못합니다.

 

어느 정도 악한 인간은 자기가 그리 좋은 사람은 못된다는것을 잘압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악한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깨어있을 때는 잔다는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막상 자고 있는 동안에는 모르는 법입니다.'

 

선한사람은 선도 악도 다 잘 알지만, 악한사람은 선도 악도 다 모릅니다.

우리가 무엇으로부터 치유받아야 합니까?

더러워진 양심, 악한 양심으로부터 치유받고

우리의 양심이 선한 양심깨끗안 양심으로.. 십자가로 치유될 줄로 믿습니다.

 

약한 시력으로는 넘어질 수밖에 없고, 쓰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양심의 눈을 회복하고밝은눈을 회복하고옳은 것을 옮다하고틀린 것은 틀리다 말하고,

그리고 참된 것을 참되다고 말하고나쁜 것을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선한 양심,

십자가로 온전히 치유되는 역사가, 우리 가운데 있기를 축원합니다.

 

▲세 번째, 십자가로 치유된 마음은, 사랑과 선행으로 서로를 돌아보는 마음입니다.

히10:24~25절 또한 우리는 사랑과 선한 일들을 격려하기 위해 서로 돌아봅시다.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들 스스로 모이는 일을 소홀히 하지말고오히려 서로 권면합시다.”

 

서로 돌아보는 마음서로 권면하고, 사랑과 선행으로 격려할수 있는 그런 마음.

여러분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치유된 영혼은, 결코 자기 자신에게 머무는 삶을 살지 않습니다.

 

자아의 중심이 그리스도로 변화된 영혼은, 반드시 누군가를 돌아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축복하게 됩니다.

 

십자가의 치유는, 반드시 서로가 서로를 돌아보는 공동체를 형성합니다왜 그런줄 아십니까?

우리가 구원받을 때, 예수님과 함께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다시 살아 날때는

나 혼자만 살아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한 몸의 지체로서 살아난 것이기 때문이예요.

 

십자가로 치유된 영혼은, 반드시 어느 누군가와 함께 아름다운 교제의 관계를 나눕니다.

십자가의 피로 하나된 공동체를 이루는거예요.

서로를 돌아보며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십자가의 공동체의 한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의 공동체는, 바로 십자가의 피로 하나된 공동체예요서로가 서로를 돌아보는 공동체.

여러분 이런 공동체가 있습니까서로가 서로를 돌아보는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치유와 회복을 함께 경험하는 그런 관계를 나누고 있습니까?

 

예수의 피를 힘입어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앞에 지성소로 나아갈 담대한 마음을 얻었으며

또한 우리의 더러워지고 악한 양심이 깨끗함으로 말미암아

선과 악을 구별할수 있는 그런 양심의 눈을 회복하였으며

 

동시에 이제는 나밖에 몰랐던 인생에서,

내 주변에 나의 선행, 나의 사랑과 나의 격려와 나의 칭찬과 나의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돌보는,

영혼들을 돌아보는 마음으로 지체의식을 가진 영혼으로 변화된다는 거예요.

 

십자가로 치유된 영혼의 이 아름다운 축복을, 우리가 누릴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의 심령을 덮을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수 있는 영혼이 된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양심이 회복된 줄로 믿습니다.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누군가를 돌아보는 인생으로

함께 지체와 공동체를 잇는 인생으로

우리가 함께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로서 살아가는 인생이 된줄 믿습니다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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