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방해물 제거의 함정 창4:8~15 2014.11.17.설교스크랩, 출처
내가 내 인생여정에서 만나게 되는 방해물이나 방해꾼이 있을 수 있지요.
이때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이러한 방해물이나 방해꾼을 과도히/억지로/인위적으로 제거하려고 할 때
나는 내 인생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함정에 갇혀버리고 만다.. 이런 얘기입니다.
◑내게 목적/목표가 생기면, 방해꾼이 눈에 보입니다.
▶사례1.
최근에 대전에서 한 아들이 어머니를 죽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수면제를 먹고 잠든 사이에, 강도로 위장해서
집으로 들어와 볼링공으로 어머니를 세 차례 위에서 가격을 합니다.
볼링공을 떨어뜨리는 거예요.
원래는 어머니의 척추부위를 가격하려고 했는데
그만 잘못돼서 어머니의 가슴에 이 볼링공이 맞게 됐다는 겁니다,
죽이려는 의사가 없었다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늑골 여섯 대가 부러지면서 흉간에 과다출혈이 일어나서 어머니가 숨지고 맙니다.
도대체 왜 그랬느냐?
어머니가 십여 년 전에 보험설계사로 생활하고 계실 때,
스스로 보험에 가입을 한 모양이에요.
그 보험이 척추장애 보험입니다.
즉, 척추에 문제가 생기면 보험금 5천만 원을 타는 거예요.
그 5천만 원을 타려고, 어머니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척추를 가격하려고 했다가,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된 겁니다.
이러한 보험범죄가 잦아요, 특별히 생명보험.
남편의 이름으로 생명보험을 들었습니다, 그 보험금의 수혜자가 아내입니다.
이럴 경우에 아내가 남편을 죽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거꾸로도 가능하지요.
이런 비슷한 예로, 유산에 마음을 두는 순간, 아들에게 아버지의 존재가 방해가 됩니다.
왕위에 마음을 두는 순간, 세자에게는 선왕의 존재가 방해가 됩니다.
여기서 인생의 원칙이 하나 생깁니다.
마음이 무엇인가를 갖기 원하는 것이 생기게 되면,
방해꾼과 방해물이 생겨납니다.
이상한 거지요?
남편보다 생명보험금에 마음이 먼저 가닿으면, 남편이 방해꾼이 되고,
유산에 마음이 먼저 가닿으면,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가
내가 그 유산을 갖게 되는 데에 방해꾼이 됩니다. 그러니까 아버지가 빨리 죽어야 되는 거예요.
왕위에 마음을 두면, 선왕이 방해꾼이 돼버립니다.
▶내 삶에서 방해꾼을 만난다는 것, 내가 방해물을 느낀다는 것,
주변상황이나 주변인물이 내 마음에 방해꾼으로 느껴진다는 것은
마음이 무엇인가를 강하게 갖고 싶은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무엇인가 강하게 그곳으로 도달하고 싶은 상태나 위치가 생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방해물이 느껴지는 거예요, 방해꾼이 느껴지는 거예요.
마음에 생명보험금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안 생기면,
남편은, 그냥 사랑하는 남편이고 배우자입니다.
그런데 보험금을 갖고 싶다는 마음이, 남편이라는 존재를 넘어서
먼저 보험금에 도달하게 되면,
아니 그렇게 사랑하고 평생을 같이하던 남편이, 갑자기 방해꾼으로 변해버려요.
유산이라는 것에 눈을 뜨자마자,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낳아주신 아버지는 방해꾼이 돼버린다는 거예요.
이때 우리가 하는 일이 뭡니까?
방해물 제거작업에 들어갑니다.
이 방해물 제거작업이 반드시 내 인생을 함정에 빠뜨린다는 거예요.
▶사례2.
제가 하루는, 서울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데,
내가 탄 버스가 오른쪽 선으로 가고 있는데
버스 왼쪽 차선에 승용차가 있고, 그 앞에 트럭이 한 대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승용차가 신경질적으로, 버스 차선으로 들어서면서
버스 옆구리를 받아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버스가, 자기 옆에 있는 걸 못 본 겁니다.
트럭이 늦게 가니까, 자기에게 방해가 된 거죠.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있고, 빨리 가고 싶은데, 앞 차가 방해가 되니까
그 방해물을 제거하려고, 옆으로 팍 튀어나오다 버스에 부딪친 겁니다.
너무 화가 나서, 못 본 겁니다.
그 트럭은 가버리고, 승용차 운전자는 젊은 여자였는데 낭패를 만난 거지요.
화가 나고, 분이 나가지고, 방해물을 제거하려고 하는 순간에
반드시 문제가 생깁니다.
인생의 함정에 빠진다는 거예요.
▶8절에 ‘가인이 아벨에게 고하고…’ 뭘 고했겠어요?
그냥 들판으로 나가자고 했던 것 같아요.
거기서 아벨을 쳐 죽입니다.
이게 바로 인류 역사상 <방해물 제거>의 첫 번째 현장인 것이죠.
아벨로 인해서 도대체 가인이 방해를 받는 게 뭡니까?
아벨이 무슨 방해를 했어요? 방해한 게 없잖아요.
근데 방해를 느끼는 겁니다.
생명보험금 10억이 마음에 가 닿자마자
그동안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남편이, 방해물로 느껴지기 시작하는 것처럼,
아벨이 방해를 한 게 아니라, 가인 스스로 아벨이 방해물로 느껴진 거예요.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마는 아벨의 경우나,
위에서 예로 든 남편의 경우나/ 선왕의 경우나/ 모친의 경우는
방해를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냥 자기가 방해물로 느끼는 거 아닙니까.
아벨이 방해물로 느껴진 거예요.
아벨의 경건한 제사가, 가인에게는 일종의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된 고발입니다.
그래서 제거해버리는 겁니다.
(중략)
이 방해물을 제거해서, 이 땅에서 편안하게 살고, 자기 목적을 성취하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유리방황하게 됩니다.
더 큰 함정에 빠져버리고 마는 거예요.
◑그러면 복음 안에서의 삶이란 어떤 삶이냐?
희한해요, 방해꾼이 없어요, 방해물이 없어요, 방해 free life입니다.
복음 안에서는 방해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삶이 주어진다는 거예요.
아벨의 제사가 바로 그것을 예표하고 있는 겁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납니까?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덕목으로서 기리고, 모든 사람에게 권하는
아름다운 인격적 항목이 있습니다.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라는 거예요.
목적지가 있을 때 그 앞에 놓인 산을 넘고 강을 건너고 광야를 지나서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 이게 훌륭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산과 강과 광야가, 방해가 되는 이유는 뭡니까?
그 너머에 있는 목적지를 마음에 두고 있기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굉장히 긍정적이고 좋은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꼭 부정적인 의미에서 보험금을 타먹으려고 남편을 죽이는 그런 범죄행위가 아니라도
긍정적인 면에서, 방해물을 제거하고 장애를 극복하면서 이루려고 하는 목표에 도달하는 것,
얼마나 아름다운 거라고 생각합니까.
긍정적인 도전 정신이고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게 다 원죄의 열매들이고, 가인의 후예들입니다.
이 땅에서 이룰 목적에 마음이 가닿는다는 것 자체가
원죄에 먹혀있는 상태라는 거예요.
▶죄가 뭡니까?
7절에 보면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죄가 원한다는 건 죄가 나를 쇄도해서 들어온다는 거예요.
그러니 죄를 다스려야 된다는 겁니다.
마음이 첫 번째로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들에게 주어지는 게 죄입니다.
히브리어로 죄를 말할 때도 헬라어의 죄와 똑같이 과녁을 빗나간다는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마음이 첫 번째로 가닿아야 될 대상이 하나님인데,
하나님 말고 다른 것에 닿는 게,, 죄에요.
다른 것에 가 닿으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방해물이 생겨납니다.
방해물을 제거하려고 할 때, 죄가 가중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죄를 다스리라'고 그런 거예요.
죄가 도사리고 있으면서 너를 향해 쇄도하려고 한다,
그때 너는 죄를 다스려야 한다!
왜냐하면 마음이 첫 번째로 하나님 말고, 다른 것에 가서
그것을 갖고 싶어 하는 게 죄인데, 빗나간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엄청난 범죄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겁니다.
다스리지 못하면, 죄에 먹히게 되고, 죄에 먹힌다는 것은
방해물을 제거작업에 들어간다는 거예요.
내 마음에서 원하고 붙들었던 그것들을 이루기 위해, 전진해 가려고 하는데
방해하는 것들을 제거하려는 것이
바로 죄를 다스리지 못하고 죄에 먹혀버린 상태라는 겁니다.
▶그러면 아벨의 제사로 예표 되고 있는 십자가사건이 복음인데,
그 복음을 받아들이면, 왜 방해가 없어지는 겁니까?
복음사건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과 땅에서
우리 마음이 가닿아야 할 대상을 찾는, 원죄적 체질이 죽어버리는 겁니다.
그 유전 죄의 경향이 죽는 거예요.
유전 죄에 먹혀버린 나의 인격이 죽어버리는 거예요.
유전 죄와 원죄가 나타날 때의 특징이 뭡니까?
하나님 말고, 자꾸 이 세상에서 마음이 가 닿아서 그걸 갖고 싶어요. 그걸 원하게 돼요.
이게 유전 죄의 경향이라는 거예요, 빗나간 성향이 나타난다는 거예요.
이게 십자가에서 죽어버리는 겁니다.
죽어버리면 그냥 끝나느냐?
세상에 대해서 죽은 마음이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부활하고 승천해서 하나님께로 갑니다.
이건 반드시 매일 이루어지고, 매일 말씀에 근거돼야 되고,
매일 기도를 통해 이루어져야 되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마음이 하늘로 올라가버리면
이 땅에서 마음이 가닿아서 이루고 싶은 것이 없어지기 때문에,
그리고 상 주심을 믿는다는 말처럼 하늘에서 이미 내 마음은 다 충족되고
상을 받아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이 땅에서는 갖고 싶은 것이 없어서 방해꾼이 없습니다.
잘 살던 남편과 아내가 생명보험금에 마음이 닿으면 방해물로 변해버려요.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선왕이 내 마음이 왕위에 먼저 가닿으면
방해꾼으로 바뀌어버려요.
근데 내 마음이 이 세상에서 가닿을 대상이 없어요.
그러므로 방해꾼이 없어지는 겁니다.
아! 요거 신기하지 않아요, 여러분?
방해가 없는 삶을 사는 거예요.
▶예를 들면, 예수님은 얼마나 방해꾼이 많았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그 많은 방해꾼들, 바리새인과 대제사장들,
그리고 가장 심각한 방해꾼이 누굽니까? 가룟유다에요.
가룟유다가 방해를 한다고 끼어들었지만 방해가 효과를 내지도 못합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가룟유다와 함께 예수님의 생애를 방해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눈곱만큼도 예수님의 생애를 방해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방해를 통해서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삶에 원래 갖고 계시던
하나님의 계획은 완전하게 이루어지고 맙니다.
이상한 거예요.
스테반이 돌에 맞아 죽었어요.
가인과 비교해봅니다.
가인은 아벨을 돌로 쳐 죽였어요,
돌에 맞아 죽는 스테반의 모습과 돌로 쳐 죽이는 가인의 모습을 비교하면,
가인은 돌로 쳐 죽이면서도 분하고 억울하고 화를 내고 있습니다.
스테반은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억울함이 없고 화가 없고,
오히려 돌로 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요?
가인은 괜히 억울한 거예요.
동생의 제사를 가만히 보니 하나님이 받으셨어요.
그러니까 제사를 통해서, 동생이 간접적으로 형을 자꾸 고발하는 겁니다.
‘형이 잘못됐어, 이 세상에서 농사지어서 부자 되겠다는 그 마음이
제사를 드리면서 죽어야 돼! 형이 곡식을 얻어서 하나님께 드릴 때,
곡식을 갈아서 내가 갈려 죽는다는 생각으로 드려야 돼!’ 자꾸 얘기를 하는 거예요.
화가 납니다, ‘그럼 내가 농사를 잘 지어서 부자 되지 말라는 얘기냐?’
그러니까 아벨의 제사가 얘기합니다,
‘부자 되지 말라는 얘기다, 왜 곡식 부자 돈 부자가 되려고 하느냐,
하나님 부자가 돼야지!’ 자꾸 얘기합니다.
하나님 갖기 위해서 다 버려야 된다, 그런데 버리지도 못해요, 체질이에요.
하나님 말고 다른 걸 붙들려고 하는 내가 죽어야 된다고 자꾸 얘기를 하는 거예요.
화가 납니다, 이런 방해꾼이 어디 있습니까?
▶근데 복음 안에서 사는 사람 스테반은
자기를 돌로 치는 자들을 방해꾼이라고 생각하지를 않는 거예요.
예수님도 가룟유다가 방해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방해꾼을 제거하려고 한 적이 없어요, 오히려 그 방해꾼이 예수님을 제거하려 한 거죠.
제거하려고 하셨다면 못하셨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사는 자들입니까?
날마다 기도하면서 말씀을 붙잡고, 말씀을 붙잡는 게 왜 필요하나 하면,
2006년 11월부터 2014년 10월까지 시즌 1이 끝났습니다,
그리고도 계속하는 얘기는 십자가 얘기에요,
다 알아요, 다 아는데 왜 말씀을 자꾸 하느냐 하면,
말씀이 전해지는 사건 안에서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계심을 아는 것 가지고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국이 있는 것을 믿는 것과 천국이 있는 것을 아는 것은 차이가 있고,
이 있는 것을 믿는 믿음으로 우리 마음을 이끌어가는 일이 말씀이에요.
여러분은 다 알아요, 아는데
마음은 이 세상에서 자꾸 하나님 말고 다른 것들에 끌려갈 겁니다.
근데 말씀을 들으면 조금 옮겨지는 것 같아요.
그리고 기도해야 돼요.
그 말씀에 근거해서 기도하면서 우리 마음이
끌려가는 이 세상으로부터 십자가에서 죽어야 돼요.
죽고 하나님께 마음을 드리면 이제부터는 방해가 없어요.
▶그러면 어떻게 사느냐?
방해꾼들이 득실거려요,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신다는 시편 23편의 다윗의 노래처럼,
방해꾼들이 많고 원수들이 많다고 칩시다.
그래도 내 마음이 방해를 느낄 필요가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 원수들로 인해 이루어야 될 것을 못 이루는 일은 없기 때문에.
원수들은 땅에서밖에 방해를 못해요.
내 마음이 십자가 붙잡고 하나님께 가는 것을
방해할 수 있는 원수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건 마귀가 하는 일이고, 우리가 마귀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그렇게 한다고 그러면
이 땅에서 사람과 사물과 상황 중에서는 아무도 우리를 방해할 자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그냥 원수들이 득실거리고 방해꾼이 득실거리는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하라고 하는 일을 하늘에서 얻은 마음의 기쁨을 가지고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내가 이 세상에서 목표를 가질 때는 방해물이 생길 수밖에 없지요.
거기에 도달하려는데 자꾸 끼니까.
그러나 위에서부터 내려오면 고공낙하를 하게 되는 자에게는
산도 강도 광야도 방해가 아닌 거예요.
그냥 하나님께서 오늘 하루 내게 낙하하라고 하는 그 장소에서 낙하해가지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나님과 함께 하면 내 하루는 끝이고,
그 다음 날 또 우리 마음은 하늘로 올라가서
제일 처음에 하나님께 마음을 드려서 하나님으로 마음을 채운 다음에
(기도 없이는 안 돼지요) 하나님이 낙하시키시는 지점에 가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면 되는 거예요.
▶그 다음에 아벨이 죽은 것을 누가 따지고 듭니까? 아벨 자신이 아니잖아요.
하나님이 따지고 듭니다.
무슨 얘깁니까?
방해꾼은 하나님께서 마음에 두신다는 얘기에요.
우리 마음에는 있으면 안 돼요, 우리 마음에 방해꾼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 말고 첫 번째로 내가 마음을 딴 데 줘서 하나님 계심을 믿는 게 아니라,
딴 거 계심을 믿는 상태니까요.
우리 마음이 있어서는 안 되는 거죠, 그러나 하나님이 기억하십니다.
억울해 할 것도 없어요, 억울한 감정이 드는 것도 엄밀히 말하면 죄입니다.
왜냐하면 천국이 계심을 믿을 때 이 세상에서 나를 죽이는 자들이 고맙지요,
왜 그들에게 억울한 느낌을 갖겠습니까?
이 땅에서 오래 살고 잘살도록 나를 돈으로 밀어서 도와주는 사람이
내게 도움이 됩니까, 나를 죽여서 천국에 가도록 하는 원수가 나에게 도움이 됩니까?
나에게 돈으로 밀어주는 사람이 도움이 돼요?
그게 도움이 된다고 하는 이유가 뭡니까?
내 마음에 좋은 것이 이 땅에 있기 때문에 그래요.
원수가 나를 도와주는 사람보다 더 도움이 되는 이유는 천국이 있음을 믿기 때문에요.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거기에 가있기 때문에요.
▶참으로 신앙이라는 게 역설적이지요.
하여간 방해꾼 제거하려다 함정에 빠집니다.
방해꾼이 느껴진다면 내가 이 땅에서 뭔가에 마음을 두었기 때문이고,
그것은 원죄의 활발한 성과 덕분입니다.
내가 십자가에서 죽어야 됩니다.
방해물 없는 인생을 사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아버지, 주님의 십자가에서 아벨의 제사가 원형적으로 날마다 드려짐으로써,
방해물과 방해꾼을 전혀 느끼지 못한 채로 하늘의 기쁨을 안고 살아가는 자들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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