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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교회를 만나는 복

LNCK 2015. 4. 12. 16:44

◈적절한 교회를 만나는 복               요10:1-18                     2014.07.13. 출처보기

                                                                                                       *원제목 : 교회와 성도 -믿을거리(12) 

 

 

 

◑가톨릭과 개신교의 서로 배울 점

 

원래 기독교란 이름은 개신교와 천주교를 아우르는 것입니다. 크리스트교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기독교의 역사를 말할 때에 천주교를 떠나서 말할 수가 없습니다.

천주교와 개신교는 서로에게서 배워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천주교가 개신교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innovation. 혁신입니다.

개신교는 얽매일 데가 없다보니깐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innovation이 가능합니다.

 

여러분, 대한민국의 어느 성당이 지하 2층 볼링장에서 개척했다는 말 들어보셨습니까?

하지만 개신교는 그것이 가능합니다.

 

또 성당이 예배 순서를 바꾸는 것은 상상할 수 없지만

개신교는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찬양 예배, 구도자 예배, 전통적인 예배, 등등

 

▲반대로 개신교가 천주교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교회에 대한 존중과 순종입니다.

천주교인들이 반드시 매 주일 성당을 충실히 출석하지 않더라도

교회에 대한 존중, 교회에 대한 순종만큼은 절대적입니다.

 

또 성직자에 대한 존경과 순종도 절대적입니다. 신부님의 권위는 목사의 권위 저리가랍니다.

신부보다도 성경을 잘 가르치고 찬양도 잘하는 사람들이 많을 수 있지만

미사를 집전할 수 있는 권한은 신부에게만 있습니다.

 

예수께서 천국의 열쇠를 베드로에게만 주셨다고 믿기 때문에

가톨릭 신부들은 그야말로 미사를 통하여, 천국의 열쇠를 휘두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개신교 목사들은 말씀의 검을 휘두른다면, 천주교 신부들은 천국의 열쇠를 휘두릅니다.

 

존 윔버 목사님이 과거에 풀러신학교에 와서 강의하실 때

당신이 많은 사람들을 많은 교역자들을 위해서 기도를 해 보았는데

상대적으로 잘 낫는 사람과, 잘 낫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했습니다.

 

상대적으로 잘 안 낫는 사람들은 누구냐?

보수신학을 가진 개신교인들이 잘 낫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잘 낫는 사람들이 있는데,

초신자나 가톨릭 신자들이 잘 낫는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분석을 해 봤더니

초신자들이 잘 낫는 이유는 아는게 없기 때문에 선입관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가톨릭신자들은, 평소에 교회와 성직자에게 순종하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입니다.

신부님이 이렇게하라 저렇게 믿어라 순종해 버릇한 것이

병 낫기를 위해 기도할 때도 금방 믿고 순종하더라하는 것입니다. 결과로 병이 더 쉽게 낫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믿습니다.

 

기독교인들 믿을 거리 중에 하나가 교회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믿습니다.

사도신경에도 포함돼 있습니다.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고 고백을 합니다.

 

교회에 대한 믿음은, 곧 교회의 권위에 대한 믿음입니다.

교회의 당위성에 대한 믿음입니다. 교회의 귀중함에 대한 믿음입니다.

교회의 역할, 교회의 진리, 그리고 교회의 궁극적인 승리에 대한 믿음을 모두 포함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교회를 필요로 하고, 교회를 떠나서는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수가 없고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교회를 통하여 신앙이 성장합니다.

교회가 예수님은 아니지만, 교회를 통하여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개신교가 이런 식으로 가르치면 이건 아전인수격이다. 엎드려 절받기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교회에 대한 믿음이 손상이 되면, 누가 손해를 입느냐.. 성도들이 손해를 입습니다.

마귀는 교회와 성도간에 이간질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그 속임수에 넘어가면 성도들에게 손해가 될 뿐이에요.

 

교회와 성도는 어떤 관계인가? 이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까.

 

가톨릭교회는 가장 보수적이고 엄격한 교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교회는 뭐와 같으냐? 노아의 방주와도 같습니다.

교회 밖에 있는 자는, 방주 밖에 있는 자와 같습니다. 그에게는 구원이 없습니다.

방주 안에 들어와야 구원을 받습니다.

 

가톨릭 성도들에게는, 교회가 없는 구원은 상상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개신교는 그렇게까지 가르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교회 밖에서도 얼마든지 회심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교회 제도 내에 들어와야만 회심하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건 아니에요.

성 어거스틴은 개인의 모습으로 있을 때, 회심을 했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도 아직 교회에 속하지 않고 교회를 핍박하다가

다메섹 도상으로 가는 중에 주님을 만나고 회심했습니다.

 

저도, 교회 프로그램을 통하여 거듭난 것이 아니고

17살 나이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책을 읽다가 거듭났습니다.

 

교회 제도만이, 예수님의 구원의 은혜를 사람들에게 중재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신앙을 보존하고 키우고 격려하는 것은,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양의 우리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1절에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요 강도며

여기에서 양은 믿는 사람들을 뜻하고 우리는 교회를 뜻합니다.

 

16절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아주 상징적인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목자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우리pen란 교회를 가르칩니다.

양은 모여 있어야 됩니다. 무리를 이루어야 됩니다. 한 무리가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 양들을 헤치는 이리들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2절에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성도들을 헤치려는 이리가 있습니다. 만일 누가 나는 얼마든지 혼자 신앙생활 할 수 있고,

나 혼자 성경을 공부할 수 있고, 기도하고, 내가 혼자 인터넷으로 설교를 들으면 된다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목자장인 예수님은 우리가 한 우리에 있기를 바라십니다.

 

8절에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양이라고 말씀하지 않고 '양들' 복수로 말씀하셨습니다

양들은 모여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목회자의 역할은 무엇이냐? 목회자는 작은 목자 예수님이 목자장이시고 목사들은 작은 목자입니다.

성도들에게는 목사가 있어서 그들을 지키고 돌아보는 필요가 있습니다.

 

벧전 5장에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쫒아 자원함으로 하라

양을 돌보는 목자의 역할은 교회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러 교회로 다양하게 나눠진 것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하나님이 나를 어떤 특정 교회에 인도하리라고 믿기가 어려운 이유는

길모퉁이마다 교회가 있고, 사방에 보이는게 교회 십자가 탑이요.

성도들이 교회를 바꾸는 것은, 철마다 옷을 바꾸는 것보다도 쉬운 이 시대에

이와 같은 교회와 성도의 관계를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와 성도 간에는 신기한 관계가 존재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임의로 교회를 선택하는게 아니고,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교회로 인도하십니다.

별 생각 없이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은, 아마 편의 위주로 교회를 갈 것입니다.

 

가까운 교회, 집 앞에 있는 교회, 또 사람들 가운데 편하게 묻어서 다닐 수 있는 교회

아니면 친구나 친척이 다니는 교회, 이런식으로 별 생각 없이 편의 위주로 교회를 다니는 사람도 있지만

 

사람이 자신의 신앙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정말로 하나님 위주로 신앙생활을 하기를 원한다면

성령이 그 사람을 적절한 교회로 인도하십니다.

 

그 교회가 가깝든/ 멀든, 차를 타고 두 시간을 가야되든, 그건 문제가 되지 않아요.

세상의 교회가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로 내게 적절한 교회를 찾다보면 별로 없습니다.

세상의 목회자들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정말로 나의 목자가 되어 줄 사람을 찾으면 적습니다.

 

교회와 성도간에는 신랑과 신부와 같은 관계가 있습니다. 서로 맞아야 됩니다.

서로 영적으로 맞아야 됩니다. 그건 다른 방도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천주교에는 획일적으로 한 교회, 한 제도를 운영하지만

개신교가 여러 교단이 있고, 여러 교회로 나누어진 것은

그만큼 서로 다른 여러 종류의 사람들을 표현하고 섬기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인지도 모릅니다.

 

행복한 교회생활을 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여러분 목회자에 은사가 있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가 있는지 아십니까?

평소에 친구와 친지와의 관계를 오랜 세월동안 잘 유지할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목회자의 은사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와 성도의 관계는 long time relationship. 장기간에 이루어진 관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행복한 교회생활을 하는 사람은, 평생에 걸쳐 교회에서 삶을 나눌 줄 아는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주일학교를 다니고 교회에서 결혼을 하고

교회에서 자녀 유아세례를 받게 하고 교회에서 자녀의 결혼식을 거행하고

그리고 죽을 때 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러 주는 사람. 그것이 행복한 교회생활이에요.

 

그러므로 제가 여러분의 장례식을 치러 드리든, 여러분이 저의 장례식을 치러 주실 것입니다.

만일 후자가 된다면 목사님 천국 갔다고 그냥 기뻐만하지 마세요.

'목사님 천국 갔으니 할렐루야!' 이렇게 하지 말고, 슬픈 시늉이라고 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그게 교회의 생활이에요. 목회와 성도들은 장기적으로 성도의 교제를 나누면서 이루어집니다.

 

여러분 그것이 교회 생활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다 양과 같고 예수님이 우리의 목자장이 되시고

우리를 우리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예수님은 당신의 양을 돌보기를 원하시고

교회는 우리의 우리요. 우리의 집인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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