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과업의 완수를 위하여 행20:17~32 출처보기
오늘 저한테 주어진 주제가 <선교 종결 시대의 선교 운동>입니다.
2008년 미션 달라스 세계선교 대회 아침 시간에
지금 이 선교의 큰 메가 트렌드의 중요한 한 꼭지가
‘남은 과업을 완수’하는 일종의 종결 운동이라는 개념입니다.
마지막 추수를 향해서! 이것은 종결을 의미하지요.
▶선교는 인간적으로 볼 때 처음부터 불가능한 미션 임파서블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지금도 마찬가지지요. 계란으로 바위를 깬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너무나 어울리는 일이.. 해외선교입니다.
제가 선교 동원가이지만, 그렇지만 솔직히 저는, ‘해외선교 라는것이
인간적으로 될만한 일을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연약한 제 고백이 생기는 이유는,
회교권/ 불교권/ 힌두권 나라들을 다닐 때마다
마치 철벽 앞에 서 있는 그런 느낌.
정말 우리가 이걸 제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인가? .. 라는 생각이 들죠.
맞습니다. 일반 역사가들도, 역사 속에서 가장 우스꽝스러운 사건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명령을 거론한다는 것 아십니까?
2천 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너무나도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말도 안 되는 명령을 주님이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그렇지만
현실의 눈으로 보면,
그 시대에 나라를 잃은 형편없는 한 팔레스타인의 구석에, 그것도 시골에,
사투리를 쓰시던 예수님.
(그 지역의 말투를 듣고 ‘너 갈릴리 사람이지?’ 했지 않습니까.)
그 주님이. 그 분이 끌고 다니던 떼거리를 한 번 보십시오.
정말 한심한 거지 집단도 아니고,
주님이, 당대의 학문도, 철학도 모르는 일자무식의 그 사람들에게
그 옛날 헬라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나 소크라테스나
그 당시의 철학을, 지금도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사람들에게 그러지 않습니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
현실의 눈으로 보면 포복절도할 일입니다. 미션 임파서블!
▶그 당시에 예수님의 지상 명령을, 이렇게 우리가 패러디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미션 달라스 대회’에 참석하면서, 날씨가 더우니까 음료수가 많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요즘 환경문제 때문에, 종이컵을 하루에 하나씩만 씁시다.. 라는데요,
저도 종이컵 잘 안 버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합니다.
‘종이컵 있지?’ ‘예, 있습니다.’ ‘가지고 따라와.’ 지금 제가 지상 명령을 패러디하고 있습니다.
따라갔는데 먼 길을 가십니다, 이 앞에 멕시코 만이 보이느냐?
‘종이컵으로 여기 바닷물을 퍼라.’ ‘예?’
‘퍼라고.’ ‘예?’
‘퍼란 말이야. 이걸 다 퍼면 내가 다시 오리라.’
그런데 놀라운 일이 뭐냐면, 지난 2천 년간 교회는 펐어요.
정말 정신 나간 일이죠. 우리는 퍼면서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이걸 제정신으로 하는 거야?’
이해가 되어서가 아니라, 주님의 명령이기에. 무모한 일을 시도한 겁니다.
‘우리가 지금 미친 짓을 하는 거지?’ 하면서 2천 년 동안을 퍼 올린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밑바닥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죠.
‘선교 종결의 시대’, 그것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2007년 말에 저는 한국에 잠시 들렀습니다.
저는 선교를 선동/동원하는 사람입니다. 동남아에 갈 때는 꼭 한국을 거칩니다.
여러분 잘 아시는대로 서해안에서 끔찍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07.12.07.
기름이 유출되어서, 서해안이 완전히 기름 바다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 기사를 볼 때, 어떤 느낌을 받았습니까?
그 기름이 그 서해안을 뒤덮었을 때, 그걸 닦아낸다는 게 뭘 의미하는 것일까요?
불가능한 일이죠.
‘저걸 과연 닦아낸다고 되겠나?’ 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성탄절을 지나자마자, 곧 한국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저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기 전에 태안군청에 전화를 했습니다. 가장 필요한 곳이 어디입니까?
그랬더니 어떤 바다를 알려줘서, 거길 찾아갔습니다.
여러분, 그 걸레를 가지고 바닷가에 가서, 그 돌을 한 개씩 닦는 겁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세요. 이게 가능한 일입니까?
그런데 저는 정말 놀랐습니다. 돌을 닦다가, 도道를 닦았습니다.
사람 손이 무섭더라구요. 도저히 불가능한 그 일이
사람들이 너도 나도 가서 닦기 시작하니까, 되는 거 있죠?
우리 가족이 거기에 갔을 때는, 누군가가 닦아내지 못한 돌이 없었습니다.
누군가가 벌써 거의 다 닦아놓았더라고요.
▶선교 종결의 시대, 남은 과업을 완수한다는 게 뭘 의미할까요?
여러분. 주님께서 하라고 했으니까,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하는 것입니다.
‘남은 과업을 완수한다!’
지난 19세기 말부터 지난 100여년 동안, 우린 ‘종결’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달려왔습니다.
선교는 끝이 있는 과업이죠. 남은 과업이 어떻게 완수될 수 있을까요?
남은 과업을 완수한다는 것은, 장난이 아닌데
대충 낭만적인 분위기로,
이번 대회가 잘 진행되었습니다. 여러분 상당히 업 되어 있을 겁니다.
그래서 이 분위기, 열 받은 김에 나가서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이 남은 과업을 어떻게 잘 끝낼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필요한데.
성경의 종결의 한 예를 보면서
우리가 우리의 시대적 사명을 생각해봅시다.
그것은 사도행전 20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라는 당시의 미전도 지역에 가서,
거기서 어떻게 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기에
그 손을 떼는 시점에, 그 지역이 다 복음화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는 이 기사를 통해서 선교사가 어떤 자세로
어디까지 일을 해야하는 것인지 배우게 됩니다.
그리고 어떤 것이 종결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20장 17절부터 제가 몇 절 읽겠습니다.
17.바울이 밀레도에서 사람을 에베소로 보내어 교회 장로들을 청하니
18.오매 저희에게 말하되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가 항상 너희 가운데서 어떻게 행한 것을 너희도 아는바니
19.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20.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
21.유대인과 헬라인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을 증거한 것이라
22.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23.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24.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25.보라 내가 너희 중에 왕래하며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였으나
지금은 너희가 다 내 얼굴을 다시 보지 못할줄 아노라
26.그러므로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내가 깨끗하니
27.이는 내가 꺼리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28.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29.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30.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니
31.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남은 과업’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피자를 시키면 피자를 8등분해서 먹습니다.
아무나 와서 남은 것을 먹는 것, 그런 식의 남은 과업일까. 그건 아닐 겁니다.
여러분 한 번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남은 과업은 엄밀히 말하면 남겨진 과업입니다. 그런데 무슨 말이냐면
우리가 대충 낭만적 분위기에 젖어서 가면, 할 수 있는 일이 남아있을까요?
남은 과업을 완수한다는 것은 심각한 일입니다.
우리 선배들이 마음이 좋아서, 자 우리가 가서 그냥 주 예수를 믿으라하면
3천 명씩 믿는 그런 지역은, 우리 후배님들이 즐겁게 할 수 있도록 놔두고
정말 힘든 곳을 우리가 하자, 그랬을까요? No.
남겨진 과업이란, 여러분 어려운 과업이 많습니다.
2천 년동안 교회가 성실하게 컵으로 멕시코만을 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아있는 과업은 장난이 아닌 게 남아있죠.
쉽게 말하면 애물단지가 남아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정말 장난이 아닌 과업만 남아있는 거예요.
‘남은 과업’의 개념을 질문할 때
여러분이 이해할 것은, 정말 힘든 과업이 남아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게 뭘 의미할까요?
우리가 선교 대회를 하면서 분위기를 살려서
그냥 저지르면 되는 게 아닌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죠.
만일 남아있는 과업이 그렇게 쉽다면
2천 년동안 그 수많은 피를 흘리면서도
지금도 그렇게 많은 과업이 남아있을 리는 없을 겁니다.
▶‘2천 년 선교’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릴레이와 같습니다.
내가 백미터를 혼자서 뛰는 그 스프린터가 아니고,
베이징 올림픽 보면 릴레이(이어 달리기)가 있습니다.
400미터, 1600미터 계주가 있습니다.
선교는 2천 년을 면면이 이어 온 릴레이입니다.
그 2천 년의 릴레이에 맨 마지막, 마지막 추수, 파이널 스프린터들이 있는데,
릴레이의 마지막 주자는, 통상적으로 가장 탁월한 주자가 맡는 것입니다.
남은 과업의 난이도로 볼 때. 옛날에는 컵 하나만 들고 가도 퍼올 수 있었으나
이제는 여기저기에 웅덩이가 남아 있고, 이제는 두레박이 필요하고
두레박은 혼자 못 쓰기에 여러 사람이 협력해서 퍼야 합니다.
‘미션 달라스’와 같은 대회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어떤 대단한 교단도, 남은 과업을 혼자서 끝낼 수 없기 때문에
남은 과업은, 우리보다 훨씬 크기에
이제는 싫어도 좋아도 손을 잡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고도의 협력 기술이 필요합니다.
지금이 그런 시대입니다.
▶기름누출로 오염된 태안반도를 닦는 것은, 저도 닦을 수 있었으나
진짜 문제는 여기 있었습니다. 정말 대한민국 대단합니다. 정말 자랑스러웠습니다.
우리 집에서 안 입는 면티 같은 거, 열심히 가지고 갔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어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그런 걸 가지고 와서
저는, 이름도 모르는 어떤 사람들이 가져다 놓은 메리야스underwear로 저는 닦았습니다.
진짜 도전은 서해안에 있는 무인도들입니다.
거기는 보통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이죠. 거기는 해병대들이 닦으러 갔습니다.
한 번 해병이면 영원한 해병이죠. 거기는 위험합니다. 파도에,
여러분 갯바위 낚시하다가 많이 죽지 않습니까. 남은 과업도 그렇게 어렵습니다. 특공대가 가야 합니다.
우리 한민족 교회가 선교에 열심인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또 한 가지 있어요. 오늘 본문에
여기 에베소에서 확실하게 선교를 한 지역 안에서 끝낸 모델에서 보여주는 바울의 탁월함.
바울은 자기가 직접 사역했던 사람들 앞에서, 그 사람들 앞에서 얘기했는데,
없는 곳에서 이야기하긴 쉬워요.
저도 마찬가지로, 제가 직접 사역했던 사람들 앞에서
제가 어떻게 영웅적으로 선교를 했는지 이야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그들의 면전에서 힘차게 이야기합니다.
▶마지막 주자, 마지막 일 자체도 만만치 않죠.
그 마지막 일이 탁월한 일꾼들을 요구합니다.
직전 시간에, 여기서 우리는 산드라의 간증을 들으면서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저 자매가 아이비리그를 나와서가 아니라, 저 자매가 어떻게 헌신했는지 여러분 보았습니다.
그 헌신이 필요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충족성, 여러분 찬송했잖아요 아까 손 들고.
비록 무화과 나무에 과일이 없고 포도 나무에 소출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해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라. 그렇게 찬송했잖아요.
정말입니까. 그 사람이 필요합니다. 올인한 사람 필요합니다. 올인.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만족할 수 있는 사람. 여기 바울이, 그래서 이야기한 것입니다.
바울이 자기의 그 학벌과 지연과 종교성과 그 모든 것을 버린 게 위대한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밸류를 알았다는 것이 위대한 것이죠.
▶남은 과업은요, 양이 아닙니다. 질입니다.
다시 말씀드릴게요.
저는 이번에 한인 선교사들이 모인 모임에서도.
우리가 지금 2만 명이라고 자랑하고 있어요.
So what? (그래서 어쨌다는 겁니까?)
2만 명이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IMB(침례교단 선교부)의 한 사람이라고 기억하는데요,
<미션 프론티어>에 아주 담대한 글을 썼습니다.
"만일 전세계 선교사들의 인사권을 내게 준다면,
나는 현직 선교사의 삼분의 일을 돌려보내겠다고 썼어요."
▶여러분, 그 남은 과업, 무인도의 기름을 닦으려면 면티 몇 개 가지고 되는 게 아니에요.
이건 엄청나게 헌신이 필요한 겁니다,
지난 3년 동안 내가 너희들에게, 밤낮으로 눈물로,
이 바울의 중심을 보십니까?
목회자들의 입장에서도 너무나 중요한 모델이구요.
근본적으로 복음 사역을 하겠다는 사람들의 근본적인 자세죠.
이 사람의 올인한 자세가 구체적으로 나오죠. 교만하지 않고.
아까 산드라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았다.
맞습니다. 산드라가 하나님을 위해서 포기한 거 하나도 없구요.
제가 감히 말씀드립니다.
작년 아프간 사태 때 배형규 목사, 잃은 것 없습니다.
심성민 형제, 아무 것도 잃은 것 없습니다. 주님을 가졌습니다.
주님을 가졌으니까. 오직 내 안에 사는 분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우리 말에는 "유익함"이라 그랬는데, 죽는 것도 "얻는 것 gain"이에요.
이 복음의 패러독스를 이해한 사람이, 남은 과업을 완성할 것입니다.
▶아침 강의 때 제가, 달라스 윌라드의 책 <잊혀진 제자도>를 소개했습니다.
제자도에 관한 결정판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책의 영어 제목이 <The great a omission>(큰 누락)입니다.
지상명령이 The great commission인데, (c 하나 차이네요)
Great Commission(지상 명령)이 완수되지 않는 중요한 이유가,
Great omission(큰 누락) 때문이라고 말하죠.
뭐가 누락되었다는 뜻인가요?
제자가 없다..는 말입니다. 제자도가 누락되었다는 뜻입니다.
요즘처럼 제자 훈련이라는 프로그램이 많을 때가 없을 겁니다.
제자 훈련은 많은데, 제자가 없는 것이죠. 심각한 일입니다.
▶바울 서신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서신 중 하나가 빌립보서입니다.
작년에 배형규 목사나 심성민 형제는, 쉽게 순교해서 천국 간 것입니다.
여러분, 기회가 되면 로마에 가서 바울이 갇혀있던 감옥을 한 번 가보시죠.
그 바울의 목을 베었을 거라고 추정되는 그 통나무를 저는 보았습니다. 끔찍했습니다.
그 바울이 말하는 것입니다. '죽는 것도 얻는 것이다.' 대차대조표를 그는 쓰는 것입니다.
여러분. 잃고 얻는 것의 이슈는 가치관의 이슈이기에, 복음을 만난다는 것은 가치관의 변화죠.
내가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내가 그렇게 원했던 것들이 있죠.
이 세상의 가치들입니다. 내 목숨을 포함해서.
태양을 만난 사람이 촛불에 연연하지 않듯이.
소작을 하던 사람이 땅뙈기 하나 얻기 위해서 평생을 노력하다가.
거기서 어마어마한 보화를 발견하고. 눈이 뒤집히는 것이죠.
가치관이 그 순간에 변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헌신합시다' 라고 조를 필요가 없는 거예요.
누가 그 사람에게 가서 보화가 중요하냐,
이것은 환산이 안되는 빌게이츠나 워런 버핏도 상대가 안 되는
어마어마한 보화를 발견한 사람에게 설득할 필요가 있을까요.
문제는 어디 있느냐면 이 복음의 가치에 완전히 팔린 Sold out된 사람이 없다는 것이죠.
이게 비극이죠.
▶그래서 제자도 앞에 붙는 가장 적절한 형용사는 Radical입니다.
여러분 Radical이라고 할 때 행동을 과격하게 하라는 게 아니라
가치관에 있습니다. 가치관을 과격하게 바꾸라는 것이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기 때문에 아무 것도 잃은 게 없어요.
C. T. Studd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WEC의 창립자죠
"만일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 분이 정말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어느 누가 어떤 일을 해도 그것을 희생이라고 말하지 마라.."
저는 선교사님들에게도 그렇게 말합니다.
지난 달에 선교사님들 모임에 갔습니다. 정말 힘든 곳에서 선교하는 분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짓눌려 있는, 그 회교권에서
파키스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실정법상 안되는 그 곳에서.
저는 그 분들에게 이 말을 해야만 했습니다.
여러분 중 만일, 내가 주님 때문에 정말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그만두시라고.
왜냐면 여러분은 희생하고 있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즘 중국도 어렵습니다. 저는 지난 달에 중국갈 계획 취소했습니다.
선교사님, 희생하시는 거 아닙니다. '예수님 때문에 아무 것도 잃은 것 없죠. 오히려 얻었습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이해할 수 없고, 세상이 감당할 수도 없죠. 바울 말입니다.
여러분, 성령께서 힌트를 주시는데도 성령도 못 말리는 사람.
각 성에 갈 때마다 야 바울아, 너 예루살렘에 가면 너 죽어.
나 같으면 성령이 말씀 안하셔도 성령이 말씀하신 것처럼
스스로 느끼고 싶어서 막 한 다음에 이렇게 말할 겁니다.
여러분 지금 이 상태에서 바울이 1차 2차 3차 선교 여행 다 마친 상태에서,
보통 선교사들이 세 텀 끝나면 은퇴합디다.
여기서 바울이 은퇴한다고 아무 누구도 바울에게 손가락질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이죠.
‘너 가면 잡히고 죽어.’ 그것도 한 번만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두 번까지는 참았다. 저 같으면 두 번까지는 그래도 할래요, 했을 것 같은데
‘아 이건 가지 말라는 말이구나.’ 라며 단념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 뒤에 보세요 계속 성도들이 비슷한 계시를 받았어요 성령께.
빌립의 딸들이 띠를 이렇게 묶고 성령께서 나에게도 그렇게 말씀하셨다.
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바울이 말하죠.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마치려함에는
(이 구절에서 ‘선교 종결’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바울과 같은 마음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선교 종결이요? 그 종결을 위해서 올인하실 수 있겠습니까?
나의 생명을 조금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복음을 향한 밸류, 참 중요한 이 최종 주자 파이널 스프린터로서 가져야 할.
근데 이거 어렵지 않습니다. 감히 말합니다. 복음을 알면 돼요. 주님을 가지면 돼요.
C.S. 루이스가 주님을 위해서 어마어마한 일을 한.
이 시대의 C.S. 루이스만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공을 세운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요.
엊그제 필립 얀시도, 자기가 신앙이 이 성숙되는 과정에서
C.S. 루이스가 자기한테 어떤 임팩트를 줬는지 글을 썼습디다.
그 C.S. 루이스가. 자기가 그렇게 사랑하는 아내 하나,
병 좀 고쳐달라고 그렇게 했는데, 주님이 안 고쳐주신 건 또 뭐에요.
고통스럽게 아내가 죽는 것을 보면서. ‘나의 가치를 주님께서 테스트하셨구나.’ 라고 그는 말하죠.
바울도 목숨을 내놓고 말하잖아요. You never know.
복음이 나에게 삶과 죽음의 이슈가 될 때까지. You never know!
그래서 C.S 루이스는 자기 아내를 보낸 다음에, 하나님으로 족합니다.
‘내 아내도 하나님께 속했고 저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에 연연하지 말자..
하나님을 가져버렸으면 됐다. 주시는 분. The giver를 가졌으면,
선물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합니다.
Radical disciple. 가치가 완전히 뒤집힌 사람.
많은 분들이 말합니다. ‘적당히 믿으라.’
그런데 그 사람들을 통해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들께 Radical하게 직업을 내놓고 아프리카로 가라는 말이 아니라,
여러분의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죠.
여러분이 복음이라는 지고의 가치에 Sold out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감히 세상을 바꿀 생각하지 마십시오. 세상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이미 다 알아버렸어요. 우리의 얄팍함을 세상이 이미 다 알아버렸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에 나오는 그 사람들!
주님 덕분에 팔자 고치는 사람도 좋지만,
주님 때문에 복음 때문에 망하는 사람도 나와야 합니다.
이건 악담 아닙니다. 그 사람은 세상이 감당 못하기 때문에.
세상이 볼 때는 망했지만 본인은 망한 게 아닙니다.
The giver를 가졌으니. 그 분이 주시는 것gift을 다 받은 사람들 있죠?
그 사람들이 하나님만 가지고 다른 것 하나 아무 것도 가지지 못하는 사람과
차이가 없다고 C.S. 루이스는 말합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이 신앙생활 하는데, 왜 저 사람은 기도하는 족족 응답해주시고,
나는 기도에 응답을 주시지 않느냐.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C.S. 루이스는 그렇게 말합니다. 아무 차이가 없다고.
그 사람이 그 탁월한 태양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건 숨길 수가 없어요.
그 광채를 숨길 수가 없어요.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가 없어요.
표정 관리가 안 되지요.
‘이런 사람들이 이 시대에 없다.’ 달라스 윌러드의 분석입니다.
바울이 지금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죠.
▶마지막 결론입니다. 바울이 얼마나 전염성 있었는지 보게 되죠.
여러분 에베소라는 곳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어떤 곳인지 아시죠.
다이애나라는 음란한 여신상이 지금도 있는 곳.
그 온 도시가 요즘 못지 않게, 인터넷만 없지 음란했던 곳.
그 곳에 복음의 광명한 빛이 들어가죠. 윤리 도덕적인 덕담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이 온통 사람을 바꿔놔 버린 그거 말이에요.
그 에베소 교회를 책임질, 3년 만에,
지금 여기 바울의 고별설교를 듣고 있는 그 사람들 말입니다.
여러분의 질그릇 안에 담겨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화가 너무 탁월해서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그 사람들이 거기에 데지 burn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려야 해요.
그러면 남은 과업이 완수될 것이다. 여러분이 다 할 필요는 없습니다.
릴레이기 때문에. 이것을 선교사의 역할과 한계라는 말을 씁니다.
선교사의 역할이라는 말을 쓰지만, 한계라는 말을 배워보셨습니까. 한계.
선교사의 역할과 한계. 바울은 자기 한계를 이해했습니다. 중요합니다.
한민족 선교, 가부장적인 선교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이 정말 재밌게 할 수 있는데, 떠나는 것입니다. 아쉽게도. 문제 때문에 떠나는 게 아니죠?
내쳐지는 상황이 아니잖아요. 껴안고 울잖아요. 가지 말라고. 그래도 헤어지죠.
여러분의 자녀들이 젖을 떼고 성장해서
시집 장가가서 그들이 손주를 낳아야지
가끔 주책없는 부모들이 자기가 손주까지 낳겠다고..
곤란한 이야기죠!
지역 교회 아래서
이러한 사람들이 길러져야 한다 그 말이죠.
30년, 40년, 50년을 목사님이 주는 젖을 계속 받아먹는 이런 건 곤란하다 이겁니다.
여러분이 제자 삼는, 그 한 사이클까지는 가셔야 된다 그 말입니다.
그 기본기가 있어야 합니다. 전 세대 선교사들이 아우성을 합니다.
남은 과업을 완수하려면, 이런 대물림이 되지 않는 한,
이 호수 전체를 술렁거리게 하려면 돌 하나만 있으면 됩니다.
제자 삼는 제자 말이에요. 그 기본기를 가지고 있는지 물어야 합니다.
복음에 Sold out 되어 있고, 제자 삼는 제자. 어떻게 제자 삼는지를 바울이 보여주죠.
우리 한민족에 처음 선교사가 와서 했던 방식.
선교사가 없어도 되도록 하는. 선교사에게 기대는 선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위에 튼실하게 세우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
남아있는 과업을 향해서, 뭔가를 여러분들이 해야 하는데.
이 중에 단 한 사람도 남아있는 6천개의 미전도 종족과,
방금 자매가 간증한대로. 2천개의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네 언어로 없는 종족.
최소한 여러분이 가슴에 품어야 합니다.
그게 여러분의 고민이 되어야 하고, 여러분이 그것 때문에 잠을 못 자야 합니다.
남은 과업은 누군가의 전유물이 아니죠. 남은 과업은 여러분의 문제죠.
여러분의 이슈죠. 여러분이 끌어안아야 하죠.
그 미전도 종족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서는 것은 여러분의 이슈입니다.
끌어안아야 합니다. 단 한 사람도. 이 남은 과업에서 제외되선 안됩니다.
제가 돌을 닦다가 도를 닦은 것처럼. 여러분도 한 몫을 하셔야 합니다.
주님이 주신 은사를 따라서 벽돌 한 장을 쌓아도 돼요.
자갈 하나를 가져가도 됩니다. 여러분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네 손에 뭐가 있느냐.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손에 쥐어주신 그걸 가지고 와야 합니다.
타자 J.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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