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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 자기 사명을 재점검 할 때입니다

LNCK 2015. 5. 14. 10:43

기독교인이 자기 사명을 재점검 할 때입니다                           편집장 칼럼

 

 

매 시대마다, 매년마다 늘 있는 일이긴 하지만,

최근 일어나는 정신 이상적 사회 현상에 대해, 우려감을 가짐과 동시에

이 시점에 기독교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1. 사실 그런 사회적 정신 이상을 막을 수 있는 단체는.. 기독교 말고는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기독교가 자기 본연의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면,

이런 정신 이상적 발작현상은 앞으로도 계속 더 확대될 것입니다.

 

1980~90년대에, 옥 목사님이 설교하실 때

당시 크게 대두되었던 비행 청소년 문제대하여, 이렇게 설교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기독교)가 그들에 대한 전도를 포기하면,

그들이 커서, 나중에 우리에게 칼을 겨눌 것입니다.’

 

비행 청소년 문제.. 내 일이 아니라고 덮어 두었다가는,

미래에, 자기가 바로 그 강도의 피해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거지요.

 

기독교가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사명을 성실히 감당하지 않으면,

이 사회는, 계속 억눌린 자들의 보복 범행을 당하게 될 것이고,

 

정말 오늘 내 주변의 약자들을 돌보지 않으면,

그들은 나중에, 결국 사회에 묻지마 보복을 할 가능성이 큽니다.

직접적인 내 일이 아니니까, 무관심하게 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보복을 두려워 해서 라기 보다는, 일차적으로 그게 예수님의 명령이요, 성경의 가르침이니까요!

 

그런데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는

돈 많이 벌어라, 성공해라, 업적과 성장을 이루어라고 독려합니다.

그게 사회의 문화요, 철학이요, 주류 사상이니까요.

 

사랑해라. 약자를 보듬어라, 품어라는 교훈은

기독교가 아니고서는, 들을 데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회적 보복 범죄가 자주 일어난다고 하면,

그 사회의 주류 종교/기독교가, 또한 내가,

자기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각성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제대로 관심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2. 주변의 한 사람을 돌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적 약자는, 세상에 너무나 많은데,

기독교가 그 많은 분들을 다 돌보지 못하잖아요!

라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더 테레사가

손을 잡아 주는 행려인은, 하루에 한 두 명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한 좁은 지역에 불과 합니다

 

그런데 그가 잡아준 한 명의 행려인은,

수 천~수 만 명의 다른 행려인들에게 파급효과를 미칩니다.

 

세상의 수많은 절망에 처한 행려인들에게,

나를 품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도 있구나!’하는 어떤 희망을 줍니다.

 

예를 들어, 한 저명인사가

한 양로원을 방문해서, 병약한 노인의 손을 잡아주고, 정성스레 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그 소식은 뉴스를 타고,

전국의 병약한 노인들에게 한 줄기 삶의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나를 품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도 있구나!’하는 어떤 희망을 줍니다.

이런 분들은, 절대 극단적 행동을 취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자기 주변의 사회적/정신적 병약자 1사람을 돌보는 것은,

어쩌면 한강에 돌 하나 던져넣는 식의, 아무런 사회적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거기서 파장이 일어나서 퍼져 나가는 겁니다.

 

그 교회 근처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기독교의 도움을 직접적으로 전혀 받고 있지 않지만,

 

자기 같은 처지의 사람이, 이웃 사람이,

그 지역 기독교의 도움을 받는 그 이웃 사람을 보면서,

자기 마음에도 위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해! 완전히 썩지는 않았어!’ 한다니까요!

 

그런 사람은, 자살이나 타살, 방화 등

극단적 선택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제가 너무 크다고, 그래서 할 수 없다고 덮어두면 안 되고,

내가 만나는,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작은 사랑과 관심을 베푸는 것이 필요합니다.

따뜻한 미소, 손 잡아줌(사실 손 잡아줌을 기다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따스한 대화 등요!

물질은 차제의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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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최근에 간통법이 위헌이 아니라고, 대법원에서 통과되었습니다.

 

세계적인 추세이며,

우리나라는 신정국가도 아니고, 가톨릭 국가도 아니므로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성경적/신학적 입장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성경은 말세에 일어날 무법한 자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법이 있는데.. 위반하는 것과

아예 법이 없어서, 위반이 죄도 안 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을, 최근 간통법 폐지를 보면서, 극명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말세에 유행하는 무법한 자(클릭)’를 참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