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이 자기 사명을 재점검 할 때입니다 편집장 칼럼
매 시대마다, 매년마다 늘 있는 일이긴 하지만,
최근 일어나는 ‘정신 이상적 사회 현상’에 대해, 우려감을 가짐과 동시에
이 시점에 기독교의 역할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됩니다.
1. 사실 그런 사회적 정신 이상을 막을 수 있는 단체는.. 기독교 말고는 없습니다.
지금이라도 기독교가 자기 본연의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면,
이런 ‘정신 이상적 발작’현상은 앞으로도 계속 더 확대될 것입니다.
1980~90년대에, 옥 목사님이 설교하실 때
당시 크게 대두되었던 ‘비행 청소년 문제’ 대하여, 이렇게 설교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만약 우리(기독교)가 그들에 대한 전도를 포기하면,
그들이 커서, 나중에 우리에게 칼을 겨눌 것입니다.’
비행 청소년 문제.. 내 일이 아니라고 덮어 두었다가는,
미래에, 자기가 바로 그 강도의 피해를 당하게 될 것이라는 거지요.
기독교가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사명을 성실히 감당하지 않으면,
이 사회는, 계속 억눌린 자들의 ‘보복 범행’을 당하게 될 것이고,
정말 오늘 내 주변의 약자들을 돌보지 않으면,
그들은 나중에, 결국 사회에 묻지마 보복을 할 가능성이 큽니다.
직접적인 내 일이 아니니까, 무관심하게 되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보복을 두려워 해서 라기 보다는, 일차적으로 그게 예수님의 명령이요, 성경의 가르침이니까요!
그런데 학교에서나 사회에서는
‘돈 많이 벌어라, 성공해라, 업적과 성장을 이루어라’고 독려합니다.
그게 사회의 문화요, 철학이요, 주류 사상이니까요.
‘사랑해라. 약자를 보듬어라, 품어라’는 교훈은
기독교가 아니고서는, 들을 데가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회적 보복 범죄가 자주 일어난다고 하면,
그 사회의 주류 종교/기독교가, 또한 내가,
자기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각성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제대로 관심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2. 주변의 ‘한 사람’을 돌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적 약자는, 세상에 너무나 많은데,
기독교가 그 많은 분들을 다 돌보지 못하잖아요!
라는 현실적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마더 테레사가
손을 잡아 주는 행려인은, 하루에 한 두 명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한 좁은 지역에 불과 합니다.
그런데 그가 잡아준 한 명의 행려인은,
수 천~수 만 명의 다른 행려인들에게 파급효과를 미칩니다.
세상의 수많은 절망에 처한 행려인들에게,
‘나를 품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도 있구나!’하는 어떤 희망을 줍니다.
예를 들어, 한 저명인사가
한 양로원을 방문해서, 병약한 노인의 손을 잡아주고, 정성스레 식사를 같이 했습니다.
그 소식은 뉴스를 타고,
전국의 병약한 노인들에게 ‘한 줄기 삶의 희망’을 주는 것입니다.
‘나를 품어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도 있구나!’하는 어떤 희망을 줍니다.
이런 분들은, 절대 극단적 행동을 취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기독교가,
자기 주변의 사회적/정신적 병약자 1사람을 돌보는 것은,
어쩌면 한강에 돌 하나 던져넣는 식의, 아무런 사회적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거기서 파장이 일어나서 퍼져 나가는 겁니다.
그 교회 근처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들은 기독교의 도움을 직접적으로 전혀 받고 있지 않지만,
자기 같은 처지의 사람이, 이웃 사람이,
그 지역 기독교의 도움을 받는 그 이웃 사람을 보면서,
자기 마음에도 위로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해! 완전히 썩지는 않았어!’ 한다니까요!
그런 사람은, 자살이나 타살, 방화 등
극단적 선택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과제가 너무 크다고, 그래서 할 수 없다고 덮어두면 안 되고,
내가 만나는,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 작은 사랑과 관심을 베푸는 것이 필요합니다.
따뜻한 미소, 손 잡아줌(사실 손 잡아줌을 기다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따스한 대화 등요!
물질은 차제의 일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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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최근에 간통법이 위헌이 아니라고, 대법원에서 통과되었습니다.
세계적인 추세이며,
우리나라는 신정국가도 아니고, 가톨릭 국가도 아니므로
어쩔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에 대해, 성경적/신학적 입장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성경은 ‘말세에 일어날 무법한 자’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법이 있는데.. 위반하는 것과
아예 법이 없어서, 위반이 죄도 안 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을, 최근 ‘간통법 폐지’를 보면서, 극명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자세한 내용은
‘말세에 유행하는 무법한 자(클릭)’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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