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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의

LNCK 2015. 5. 10. 09:17

자기 의                       갈6:13~14                   2015. 03. 25. 스크랩, 출처

 

 

 

※아래에 '부모가 가지는 자기 의'가 나옵니다. 꼭 보시기 바랍니다. (찾기 쉽게 갈색 처리)

 

지난 주일부터, 주님이 겸손을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왜 주님은 우리에게 겸손하라고 말씀을 하실까요?

성경에 모든 계명은, 우리를 사랑해서 주시는 계명이거든요.

겸손이 우리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사랑 때문에 주시는 아버지에 권면인데, 안전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겸손의 자리가 안전하기 때문에. 여러분 사람이 위로 올라 갈수록 위험한 거 아시죠?

낮은데서 넘어지면, 무릎정도만 깨지지만, 옥상에서 떨어지면, 죽는 거죠.

 

주님은 겸손한 곳에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이 함께 하셔서, 보호하세요.

겸손한 곳이 주님께 보호받는, 주님이 지키시는, 안전한 자리고요,

 

교만으로 높이 올라갈수록, 사탄과 가깝고,

교만으로 올라갈수록, 주님의 보호가 사라지기 때문에, 위험한 자리예요.

 

여러분 천국의 특징이 어떤 곳일까요? 주님께서 말씀하셨죠.

제자들이 서로 막 높아지려고 할 때, 주님께서 제자들을 모으신 다음에,

어린 아이를 세우시고, 천국은 이 어린 아이처럼, 자기를 낮추는 곳이다.

천국은 겸손한 곳이라는 거에요.

 

천국에서 누가 높냐? 지금 이 자리에서, 맨 끝에 있는, 가장 말석에 있는 사람이,

천국에서는 높은 사람이다.. 천국에 특징은 겸손으로 이루어진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겸손한 자리가 천국입니다. 내가 낮은 마음이 있는 그 곳이 천국이고,

천국은 누가 가냐? 겸손한 자가 가요. 교만한 자가 천국을 간적이 없어요.

겸손한 곳 천국. 겸손한 곳, 안전한 곳.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

교만한 자리, 사탄과 가까운 자리. 교만한 자리, 위험한 곳. 교만한 자리 지옥이겠죠.

 

사도바울의 예를 들면, 참 그 부분에 대해서 주님이, 얼마나 심각하게 다루는지를 아는데요,

사도바울 안에 사탄에 가시가 있어서, ‘주님 왜 이렇습니까?’라고 고백할 때,

이렇게 주님이 응답을 하셨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큼으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에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후12:7

 

여러분 지금 이 대상이 누굽니까? 사도 바울인거 아시죠.

우리 같이 신앙이, 그럭저럭인 사람이 아니라,

기독교 역사에 가장 존경받고, 영적으로 가장 최고의 인물에게,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너 왜 지금 고통당하는지 아니? 너 지금 그 질병이 왜 있는지 아니?

너한테 준 은혜가 너무 크다. 너한테 준 계시가 너무 크다.

너는 이것을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교만해지지 말라고, 내 은혜가 네게 머물게 하려고..‘

 

전무후무한 최고의 신앙인인데, 그 높은 하나님의 축복을, 그 높은 위치를 주시고는,

사탄의 가시로 치지 않으면, 사도 바울조차도 감당이 안 된다라는 거예요.

주님이 너 그러다 교만해진다면..’

 

사람은 교만해지는 거잖아요. 사람은 백프로 교만해지니까,

주님이 어쩔 수 없이, 바울에게 고통을 주신 것입니다. 그를 낮추신 거예요.

왜요? 하나님에 쓰시려고 하는 그러한 축복들이 머물게 하려면,

자신의 약함을, 자신의 낮음을, 그 가시를 통하여, 깊이 깨달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참 바울은 대단하게요, 이것이 깨달아지자마자, 사도 바울이 갑자기 자랑하기 시작했습니다.

뭐를 자랑합니까?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력 받는 것과, 가난한 궁핍과,

박해받는 것과,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본인이 비로소 알았어요.

아 이게, 내가 낮아지는 게 축복이군요.

그러면, 저의 기쁨은, 주님 제가 낮아지는 겁니다.

내가 가난한 것 감사합니다. 내가 핍박 받는것 감사합니다.

하나님 내가 당하는 모든 환난 감사합니다.

 

내가 낮을수록 안전하고, 낮을수록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낮을수록 은혜가 넘치고, 낮은 자리가 천국이기 때문에,

주님 나는 그것을 기뻐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러한 마음을 갔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 지금 위치가 고난입니까? 어렵습니까?

내가 사람 모이면, 내 친척 가운데 예전에는 잘나갔는데, 지금은 나는 참 부끄럽다..’라고 여겨집니까?

감사하셔야 합니다. 그 자리가 가장 안전한 자리인 거예요.

 

자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주신 이 특별한 시간에 계속해서 교만함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더 세밀하게 같이, 구석 구석 청소를 하듯이, 저희 교회도 이제 부활절을 앞두고,

교회 대청소를 한번 하려고 하는데요,

 

평상시에 토요일마다, 우리 교회 미화 우리 담당 분들이 열심히 섬기세요.

하지만 그렇게 청소하면서도, 저 구석구석에는 안 닦이는 부분이 있잖아요.

 

저희 교회 대부분들은 다 은혜 받고, 다 성령으로 충만하고, 다 겸손하신 분들이지만,

우리 안에 더 깊은 곳에 들어가면, 거기에 묵은 때가 있습니다. 굳어져 있는 것이 있어요.

나도 모르게. 그게 위험한 겁니다.

 

내가 아는 것은, 우리가 처신을 하는데요,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있는 게 있어요.

이 부분이 은밀한 곳이, 말씀에 비춤으로, 드러내는 것이 그게 축복입니다.

 

그래서 시편에 보면, “주님 내 은밀한 허물을 들어내소서라는, 다윗에 고백이 있거든요.

내가 몰랐어요. 근데 주님께서 어느 날 은혜를 주셔서, 그 부분을 비추실 때,

주님은 우리를 더 깨끗함으로 이끌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인 것입니다.

 

자 오늘 그런 부분들을, 한 가지를 살펴 볼텐 데요.

자 오늘은 제일 우리가 빠지기 쉬우면서, 제일 모르는 영역입니다.

자기 의입니다. 자기 의. 뭐라고요? 자기 의.

 

우리가 신앙적으로 열심히 하려고 하면, 우리는 다 의로움을 추구해요.

이거는 나쁜 건 아니에요.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자기 의가, 요렇게 조금만 돌아가면, 교만이 됩니다. 자기 의가.

 

그러면 의로움을 추구하지 말아야 되냐? 아닙니다.

우리는 의로움을 추구해야 되요. 거룩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이게 외줄 타듯이 바르게 가지 않으면, 그 자기 의가 교만함이 되어버려서,

영적문제를 일으킵니다. 바리새인이 그랬잖아요.

 

바리새인들은요, 하나님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고, 결단한 사람들이예요.

처음에는 잘 갔습니다. 근데 그 자기 의가 어떻게 갔냐면, 예수님을 못 박는 걸로 가버린 거에요.

그리고 교만해져 버렸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 보면, 바리새인들에 기도가 나오죠.

내가 저들처럼 죄인이 아닌 것을 감사합니다. 나는 일주일에 금식하고, 십일조를 내고,

안식일을 지키고, 하나님 나는 이렇게 신앙생활 잘 하게 함을 감사합니다.

 

저 구석에서는 세리와 죄인들이 가슴을 치면서, 고개를 못 들고,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근데 주님의 말씀은,

바리새인들보다 세리와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더 의로움을 얻었다.. 무슨 이야기입니까?

 

주님은 자기 의를 혐오하신다.. 라는 거예요.

오히려 가슴을 치는, 그러한 마음을 더, 주님은 더 받아들이신다라는 거예요.

 

우리도 인간적으로 보면, 자기 의가 강한 사람이, 어떤 면에서는 거북스럽습니다.

나는 뭐를 했구요, 나는 이런 것을 할 줄 알구요, 나는 이런 것 잘하구요

그런 말 자꾸 들으면, 인간인 우리들도 마음이 닫쳐요.

자기 의는 본인은 좋을지 몰라도, 이렇게 관계에서도 어려워요.

 

그런데 겸손하게,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나는 부족해요, 나는 죄가 많아요,

나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런 사람들이 오히려, 인간적인 마음도,

더 긍휼히 여겨지고, 열려 지잖아요.

 

자 자기 의가 무엇인지, 또 내안에 자기 다 있지요.

그게 어떠한 부분인지 한 번 살펴보면요, 공로의식입니다. 공로의식.

내가 뭐를 했다.’ 이게 자기 의입니다.

내가 뭔가 공로가 있다.. 이것은 모든 영역에서 나타납니다.

 

1) 우리 부모님들은 자녀에 대하여, 자기 의가 있지요?

내가 너를 낳았다. 이 놈 자식아, 나를 이렇게 네가 힘들게 할 수가 있냐?

내가 얼마나 너를 고생하면서 낳았는데..’

 

특히 어머님들, ‘얼마나 배가 아픈 줄 아느냐, 별이 보였다.

근데 공부도 안하고, 이 놈 자식아하면서, 희생했다. 희생했다.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희생했는지 아느냐?

 

2) 부부사이에서도 자기 의가 다 있죠.

여자분은 내가 당신 만나서, 미스터 김, 미스터 박, 다 포기하고, 내가 진짜 실망했다.’ 그런 말.

이렇게 부부사이에서도 자기 의가 있어요.

 

남자는 그래도, ‘내가 돈벌어주고, 내가 진짜 밤늦게까지 일하면서, 손님 막 접대하느라고 힘든데,

당신은 이렇게 안 알아 주는 거냐?’

이렇게 부부관계에서 자기 의가 얼마나 많은지요.

 

3) 뭐 교회에서, 참 얼마나 많습니까?

나는 그래도 내가 담임으로 개척해서, 일구었다 이런 마음, 가질 수 있겠죠?

 

나는 이렇게 교회에서 봉사했는데, 나는 이만큼 뭔가를 했는데, 나는 그래도 이런 공로가 있는데’,

이런 게 얼마나 많아요, 우리 안에. 뭐 겉으로는 표현 안 해도 깊은 마음 안에,

난 그래도 이렇게 희생했는데, 나는 뭔가 최선을 다했는데..’

이런 자기 스스로, 나는 뭐를 했다고 하는, 공로주의. 이게 자기 의의 대명사이구요.

 

4) 또 하나 대표적인 대명사는, ‘내가 누구다라고 하는 신분입니다.

나는 목사다. 장로다. 권사다..

집사는 자격이 없습니다. ‘나 집사인데요’, 보통은 집사 이야기하면, 긁적거려요,

이렇게 나이롱인데, 이렇게 말하는데,

 

그래도 난 권산데, 이렇게. 나는 장론데. 나는 교역잔데. 담임목산데.

또는 뭐 세상적으로 학교 출신. 나는 SKY대 출신인데.

나는 그래도 이런 지위가 있는데. 이런 신분의식!,

 

5) 어저께 영적 교만함 이야기 했는데요. 경건한 영역에서도, 본인의 자기 의가 있죠.

나는 이렇게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인데..’

나는 이렇게 설교를 잘 하는데..’

 

여러분, 그 제가 영적 교만함 부분을 이렇게 살펴보느라고, 신약성경을 읽다가,

제가 근래에 눈이 열려진 부분이 있었어요. 오늘 본문과도 연결되는데,

6:13절 한번 읽어 보실까요?

할례를 받는 그들이라도, 스스로 율법은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하려 하는 것은, 그들이 너희의 육체로 자랑하려함이라

 

자 여기에, 할례 받는 자들에 대한 바울의 책망이 나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 바울서신서를 보면요, 할례파에 대한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육체로 자랑하는 할례파.

 

왜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왜 할례 받는 그들을 책망 했냐면요, 이런 거예요.

그 당시에 막 기독교가 이렇게 막 확산되면서, 예수님이 유대인이잖아요.

복음이 유대인으로부터 이렇게 출생을 했잖아요.

 

그러니까 이방인들은 어떤 면에서는, 이제 서자 비슷한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리고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우월하게 보여 지는 거예요.

 

근데 그들의 자랑은 뭐냐 하면, ‘우리는 할례 받았다.’

우리는 예수님도 믿지만, 모세에 할례를 받았다

 

여러분 구약성경에서 할례가 얼마나 중요합니까? 하나님 백성, 성민의 표잖아요.

우리는 유대인이다. 우리에 몸에는 하나님의 표식인 낳을 때부터, 할례가 있다.

근데 너희들은 뭐냐? 이방인, 어 옛날엔 개처럼 취급받았는데,

어떻게 은혜로 구원 받은 것 인정한다..

 

이것이 유대인 크리스천들의 생각이었습니다. 교만했지요.

인정은 한다. 근데 할례 안 받으면, 조금 이거는 서자야, 왜 할례가 얼마나 중요한데?’

 

이방인 그리스도인이 처음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에 구원받아, 십자가 자랑하고, 그리고 정말 나 같은 죄인 그 십자가로 구원받았구나, 이런 마음을 가졌다가,

갑자기 할례 받아야 돼. 나도 몸에 뭔가 표식이 있어야 돼하고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할례를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어요.

 

그때 바울이 아주 강하게 책망을 합니다.

여러분들 왜 그딴 식의 일을 하냐? 육체를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예수 외에 인간적인 뭔가를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

 

그러면서 바울이 고백하기를, 6:14절에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십자가외에는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

내 자랑은 할례를 받고, 내가 뭐 사도고, 내가 뭐 어떤 업적을 이루고,

내가 무슨 뭐 어떤 공로를 이루고, 그 모든 인간적인 자랑, 자기 의는 십자가와 함께 못 박혔다..

 

그럼 할례가 무슨 세상이겠습니까?

할례는 어떤 면에서는, 다 경건한 표식이잖아요.

근데 왜 사도바울이 세상이라고 이야기했냐면,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것 외에는, 다 세상 자랑입니다.

 

경건한 자랑도, 세상적 자랑이에요. 다 인간적인..

나는 기도를 얼마큼하고, 나는 성경을 얼마큼 알고, 나는 어떤 공로가 있고,

나는 교회의 개척 멤버고, 나는 담임목사고 하는,

그것이 인간적인 자랑으로 들어가 버리면, 그것은 세상적 자랑이 됩니다.

 

나는 그 모든 것이 십자가에 못 박혀 졌고, 오직 내가 자랑하는 것은,

나 같은 죄인을 건지신, 나는 예수님만 자랑한다. 그게 빌립보서에도 나오지요.

 

사도바울의 고백이 나는 벤냐민지파요, 나는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요,

나는 바리새인이요, 율법에 의로써는 흠이 없지만,

거기에 나의 의를 찾으면, 나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는 자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뭐로 여긴다고 했지요? 똥으로 여긴다.

 

내가 오직 붙잡는 것은, 그리스도!

그리스도 안에서 의를 얻고, 그리스도만을 더 알기 원하고,

그리스도만을 더 자랑하기 위하여, 내가 한 것 엄청난 업적을 이뤘지만,

내가 그것 붙잡히면, 내가 오히려 타락할까봐, 그 모든 것 잃어버리고,

오직 나는 예수님만 붙잡는 그 마음으로, 달려가노라고 이야기합니다.

 

여러분 이 측면에서, 우리의 내면을 비추어보면요, 우리가 얼마나 똥을 붙잡는지 몰라요.

얼마나 우리가 예수님 외에 붙잡는 자기 의, 이런 것들로 얼마나 우리가 포장하고 있는지 몰라요.

 

목사인 저도 마찬가지죠. 여러분 얼마나 인간적인 것들을 우리가 붙잡으려합니까?

여러분 자기 의에 빠지면 일어나는 문제가 있습니다.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해요.

왜 내 의가 있기 때문에.

 

나 그 했는데’, 이 말은 뭡니까? 알아달라는 말이에요.

내가 뭔가를 했기 때문에, 알아줘야 되지 않냐. 왜 안 알아주냐?’

이게 인간적으로 보면, 뭐 당연한 거지만, 우리가 오늘 복음의 원리에서 봐서는요,

우리가 한 게 있습니까? 있어요? 없어요?

 

여러분 만약에 있다고 하면 죄입니다. 죄밖에 없어요.

내가 뭔가를 했다고 하면, 내가 한 거는요,

선한 것도 나의 의가 들어가 버리면, 악하게 됩니다.

? 육체에서부터 나오는 것은, 악한것 밖에 나오지 않아요.

 

우리는 오직 했다면, 그리스도에 은혜로 한 것만, 하나님께 영광이 되요.

이게 진리입니다. 주님의 은혜로 한 것만, 주께 열납 되는 거예요.

 

사도바울이 그러잖아요. 내가 죽도록 수고했지만,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한 거다. 주님을 자랑하게 되죠.

 

그런데 내가 했는데, 알아주지 않으면, 섭섭하구요.

내가 했는데 이런 것들이 잘 되지 않으면, 화가 나구요.

또 뭔가 대가를 마음속에 바라게 되구요. 우리 안에 인간의 자랑이 들어가는 거죠.

 

여러분 성경에, 고전1장 하시는 말씀이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인간적으로 봤을 때,

가장 천한 자들을 불렀다. 문벌 좋은 자 없고, 똑똑한 자 없고, 잘 난자 없다.

근데 왜 그런 자들을 불렀는지 아느냐?’ 라고 할때, 결론이 뭔지 아세요?

육체로 자랑하지 말게 하려함이라.’

 

자랑하는 자는 그리스도만을 자랑하는 거지요,

나 같은 죄인, 나 같은 천한 자, 나같은 세상에 우묵한 웅덩이에 빠진 자를,

그리스도의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으로 오셔서, 십자가로 건져주셔서,

이제 구원받고 씻김 받은 자들은, 자랑이 예수밖에 없어요.

 

나 같은 자가 구원받았고, 나 같은 자가 뭔데 은혜를 주셔서, 이렇게 섬기게 하시는지,

내가 뭔데 하나님 이렇게 나를 불러서, 나를 종으로 삼으시는지, 하나님 이거는 백퍼센트 주님의 은혜입니다.

 

자그마한 것 하나를 할지라도, 주님 내 힘으로 하면, 죄밖에 나오지 않으니까,

주님 도와주세요. 주님 은혜 주세요. 주님 한 다음에 이것은 주님이 하셨습니다.

주님만을 자랑하게 하려고 일부러, 낮은 자들을 택하셨다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낮은 자들이, 은혜로 주님을 섬기다가, 또 자기를 자랑해 버리면,

이게 주님의 마음과 안 맞는 거 잖아요.

여러분 우리의 인식은, 그리스도인의 겸손은요, 철저한 것입니다.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로 나는 없고, 십자가로 주님만 나의 구원자입니다.

나는 없고, 내안에 모든 것을 이루신분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영광과 나의 자랑과 나의 기쁨은 오직 그리스도예요.

 

이거는 좀 제가 불완전한 간증이지만, 조금 포함 되어 있는게 있어서, 잠깐 나눕니다.

3년전인가? 어떤 우리교회 아닌 다른 교회 형제에게 급하게 연락이 왔어요.

본인은 저를 안데 저는 몰라요. 그러면서 본인이 매우 어려운 처지에 있어서, 돈이 없는데,

적은 금액이 아니었습니다. 도와줄 수 있냐고..

 

근데 이렇게 보니까, 감사하게 그만한 금액이 있었어요.

그래서 기도하다가, 알겠다고 오시라고. 그리고 그 금액을 이렇게 드리면서,

아무튼 그 어려움 잘 해결하시라고,

 

갚겠습니다. 갚지 마시라고, 하여튼 주님의 은혜로 한 거니까, 신경 쓰지 마시라고.

그런데 봤더니 형제가 넘 산만해요. 막 눈이 막 왔다 갔다 하고 그래서,

아휴 다시는 만나지 말아야 되겠다.’ 그래서 불안전한 간증인 거예요.

 

그런데 몇 주 전에 전화가 왔어요. ‘저 기억하시겠습니까?’ ‘누구세요?’.

옛날에 그 빌렸던..’, ‘아 그러세요.’

한편으로 오면 안될 텐데’, 막 이런 생각이 있었는데, ‘돈은 갚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갚지 마세요.’ 주님이 통로로 하게 하신 거니까, 갚지 마세요.

아닙니다, 제가 조금 생겼는데, 그만큼이라도 마음에 보답하려고’,

하지마세요. 오시면 안 됩니다.’

그러면 빵이라도 사가면 안 됩니까?’

절대 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제가 불안전한 간증,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웠습니다.

또 막 이렇게 하면서, 막 우리 교회, 막 일 시켜 달라할까 봐, 그래서 오지마세요하고,

저 그런 얘기했습니다.

그런 마음 있다면, 당신도 갚을 것이 없는 자에게 드리세요.

 

성경에 갚을 것이 없는 자를 도와주고, 보답 받지 마라,

그래야 하늘나라 상이 있다했으니까, 갚을 것이 없는 자를 도와주면서,

제가 형제에게 했던 식으로, 형제도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세요. 그랬더니,

막 형제가 막 감동을 하더라구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거기에 십자가 은혜가 한 70%였고, 30%는 만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불안전한 간증인데,

근데 어제 말씀 준비하면서, 고 본질 안에 그 마음은 진심이었거든요.

이왕이면은, 받지 말자. 주님 영광 위해서 한 거니까,

주님만 자랑하고..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에, 자기 의가 없이, 자기 공로가 없이,

정말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주님만을 높이는 마음을 갖는다면, 얼마나 은혜롭겠습니까?

얼마나 안전하겠습니까? 하나님이 그 사람을 향하여,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그러나 내 의를 갖는 순간부터, 교만함이 들어갑니다.

내 의를 갖는 순간부터, 섭섭해요. 내 의를 갖는 순간부터, 불평스러워요.

감사가 안 나와요. 왜요?

 

내가 너한테 이렇게 했는데, 왜 이것밖에 안해주냐.

내가 고생하면서 너 낳았는데, 너는 이거밖에 안되느냐?

 

제가 예전에 어떤 대학 여자 교수님에, 자녀를 향한 그 고백을 듣고, 참 감사했습니다.

그 교수님은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였고, 어떤 가정에 관련된 교수를 하시는 분이였는데,

그 아들이 자기 다니는 교회에, 그 젊은이 교회에 청년이었어요.

 

참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저는 이 아이한테 감사한다고.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솔직히 부모가 자녀를 위해서 희생한게 큽니까?

아니면 자녀 때문에 얻는 기쁨이 큽니까?

 

나는 이 아이 때문에 훨씬 더 큰 기쁨을 누렸습니다.

저는 그래서 아이 때문에 감사합니다.

 

이 아이가 머리 파마를 했는데, 그걸 남자가 그 레게 파만가 빠글 빠글 빠글,

이렇게 막 그래도 이쁘데요, 그냥. 감사하데요. 그냥 마음이.

 

왜요? 나는 이 아이 때문에 받은 은혜가 크니까.

여러분 이게 공로주의가 없는 거예요.

 

내가 너를 낳았는데, 너는 그래도 이렇게 돼야 되고,

막 뭔가 의를 가지기 시작하면요, 감사한 게 별로 없습니다.

왜요? 자기 의 때문에, 보상심리 때문에,

 

다 뭔가 항상 거래에요. 그게 채워지면 좋지만,

채워지지 않으면 싫고,

 

인간이 나를 인정해주면, 쑥 올라가지만, 인정 안해주면, 섭섭하고

늘 사람 때문에 오르락 내리락 오르락 내리락 이 율법입니다. 율법.

 

그러나 오늘 말씀처럼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고,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만 알아주면 되고,

겸손하게 엎드려서,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그에게, 하나님은 한량없는 은혜를 부어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할례파 되지 맙시다. 할례파 되면 안 되요.

십자가만을 자랑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종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다시 한 번 14절을 읽고,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가슴에 새기면서, 이게 겸손이에요.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그러하니라.”

 

기도합시다. 하나님 십자가만을 자랑하고, 나의 의를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예수님만 영광 돌리는 겸손한 신앙인이 되게 해달라고,

주님을 크게 두 번 부르시고,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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