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5

요셉, 대지의 배꼽 옴팔로스

LNCK 2015. 5. 21. 10:38

요셉, 대지의 배꼽 옴팔로스          41:17~57         15.02.15.스크랩, 출처

 

이 설교의 주제는, 요셉이 세계사의 중심인 옴팔로스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여러 옴팔로스 증후군

 

여러분! 옴팔로스 증후군(omphalos Syndrome)이라는 것이 있는데,

어디를 가든지 나 자신이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세계관을 말합니다.

 

옴팔로스 증후군은 역사적으로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중해라는 바다의 원래 이름은 우리의 바다였습니다.

 

그 우리의 바다로 불리던 바다가 갑자기 지중해로 바뀐 이유는,

라틴어로 마레 노스트룸(Mare Nostrum)’이라고 하는데

마레(Mare)는 바다(marine)라는 뜻이고, 노스트룸은 우리의라는 뜻인데,

 

고대 로마 역사가인 솔리누스(Gaius Julius Solinus)에 의해서

지중해(지구의 중심에 있는 바다)로 바뀌었는데,

로마가 번영할 때에 로마 중심의 세계관이 반영된 것입니다.

 

이런 옴팔로스 증후군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 이 세상에는 중심이 여러 군데가 있습니다.

 

일본에서 만든 영화중에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라는 영화를 보셨거나

들어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영화의 배경으로 호주의 울룰루(Ullullu)가 나오는데 바위의 이름입니다.

 

바위의 크기가 해발고도 867m이고 지상에서의 높이는 348m이며 둘레가 9km가 넘습니다.

단일 바위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바위인데,

사람들은 이 바위 울룰루가 지구의 배꼽이고 세상의 중심이라는 수식어를 붙입니다.

그 모양도 마치 배꼽처럼 툭 불거져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진짜 재미있는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는 이 세상의 중심은, 그리스에 있는 델포이라고 하는 도시입니다.

델포이에는 아폴론 신전이 있는데 거기에 얽힌 신화가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세상을 다스리는 주신이 제우스신인데,

제우스신이 자기가 다스리고 지배하는 세상의 중심이 어디인지 궁금했습니다. 신화는 신화입니다.

 

그 중심을 알아보기 위해, 독수리 두 마리를 자기가 있는 곳으로부터 지구의 반대방향으로 날립니다.

지구가 둥그니까 독수리가 반대방향으로 날아가서 서로 만나는 곳이 중심이지 않겠습니까?

 

그 중심이 바로 아테네의 120km 북서쪽에 있는 델포이라고 하는 도시였고,

델포이가 이 지구의 배꼽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고,

이 델포이라는 도시에 파르나소스 산이 있는데, 그 정상에서 두 독수리가 만나게 되어서

자기 아들이 머물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여 아폴론의 신전을 만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모든 신화의 내용을 함축해서 상징적으로 나타낸 조형물이 하나 있는데,

그 아폴론 신전 밑바닥에 조그마한 구멍이 하나 파여 있습니다.

그 구멍의 이름이 바로 옴팔로스(omphalos)입니다. 그리스어로 배꼽이라는 뜻입니다.

 

아폴론 신전 밑바닥에 구멍을 파서 옴팔로스라는 배꼽을 만들어 놓고,

사실은 그 배꼽에 끼워 맞출만한 돌을 대리석으로 만들어 놓았었는데

지금은 없어지고, 지금 있는 것은 후대에 추가적으로 다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옴팔로스-대지의 배꼽이라는 것입니다.

 

배꼽이 신체의 중심이라서 세계의 중심을 배꼽으로 표현하고,

그 배꼽이 바로 독수리 두 마리가 만난 델포이의 파르나소스 산의 아폴론 신전 밑바닥에 있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세계의 중심이고 대지의 배꼽이라는 말에 걸맞은 일과 현상이 무엇일까요?

 

델포이 신전은 그리스에서 아테네보다 가장 유명한 곳이었는데,

바로 아폴론 신의 신탁 때문이었습니다.

 

신탁이란, 신의 조언을 받아서 인간에게 전해주고,

인간의 필요를 중간에 사제가 신에게 전합니다.

그렇게 해서 신의 응답, 신의 소리, 신의 의견, 신의 조언을 받는 게 신탁입니다.

 

이 세상의 중심인 대지의 배꼽에서 일어난 일이

아폴론 신의 음성과 조언을 듣는 일이었기 때문에,

온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 전역에서 세상의 중심이자

대지의 배꼽인 아폴론 신전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일이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중심이라고 부르는 곳은 곳곳에 있습니다.

호주에는 울룰루가 있고, 그리스에는 델포이 신전이 있고,

 

그 밖에도 잉카 제국의 수도인 쿠스코라는 곳도, 그 뜻은 세계의 중심이라는 뜻인데,

세계의 중심이라는 쿠스코를 설계 할 때에, 그들은 하늘을 지배하는 것은 독수리이고,

땅을 지배하는 것은 퓨마라고 생각해서

땅을 지배하는 신인 퓨마의 모습으로 도시를 만들고,

이 쿠스코라는 도시의 핵심 기능은, 퓨마의 신을 섬기는 것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세상의 중심이라는 것이 이집트 신화에도 나옵니다.

 

이집트 신화에 보면 헬리오폴리스라는 도시가 나오는데,

이 헬리오폴리스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라는 곳입니다.

 

본문에서 바로가 요셉의 짝을 정해주는데 온 제사장의 딸과 맺어줍니다.

이 바로 헬리오폴리스인데, 이 도시를 이집트 사람들은 세계의 중심이라고 불렀습니다.

바로 여기가 태양신 숭배의 중심지이기 때문에

태양신의 다스림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또한 배꼽이라고 하는 뜻의 옴팔로스의 구멍에 넣었던 돌이

그리스 곳곳에서 발견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을 뜻합니까?

그곳에서 신탁을 받는 종교행위가 일어났다는 것을 뜻합니다.

신의 소리를 듣는 곳이 있었다는 것이고,

 

다시 말해서 사람들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곳은

요즘처럼 군사 강대국이라든지 돈이 많은 나라가 아니라,

신의 음성이 들리는 곳을, 바로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에게 세상의 중심은 어디입니까?

 

호주의 울룰루나,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이 대지의 배꼽이라고 하는 것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적어도 내가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과의 삶의 영역에서 중심이 어디입니까?

 

삶이 돌아가고 세상이 돌아가는데, 도대체 어디가 중심이 되어서 이 삶은 돌아가고 있는 것일까요?

돌아가는 모든 물체나 현상은 중심이 있는데 그 중심이 어디일까요?

 

이것이 오늘 본문을 통해 대답되고 있습니다.

 

적어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이집트와 이 팔레스타인까지 포함되는 근동 전체지역의 중심은 요셉입니다.

요셉이 바로 옴팔로스-대지의 배꼽이었던 것입니다.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이 세계의 중심이었던 이유는,

독수리 두 마리가 만났기 때문이 아니라

실제로 거기에서 가장 유명한 신탁이 전해졌기 때문이고,

사람들은 그곳을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 38절에 바로가 그의 신하들에게 이와 같이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찾을 수 있으리요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신에 감동 된 자, 하나님의 의견이 들리는 자,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있게 된 자의 자리가 옴팔로스-대지의 배꼽인 것이고,

이 세상의 삶이 돌아가게 되는 삶의 중심점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은 자기가 중심이 되겠다는 생각을 갖지 않았고

중심이라는 의식이 없었기에 옴팔로스 증후군에 걸렸던 것은 아닙니다.

 

요셉이 한 것은 오직 마음을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두고,

그 하나님의 의견과 생각과 계획과 말씀을 듣는 것에 인생 전부를 걸었던 것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의 소통이 현재진행 될 수 있도록 유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인 사람이었습니다.

 

적어도 이집트와 팔레스타인 전체를 포함하는 이 중동의 넓은 대지에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의견을 땅 위에 있는 사람이나 장소 중에서 내려 보낼 수 있는

유일한 곳이 그 당시에는 요셉 밖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 중심이 되어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곳으로 요셉이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요14:10절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이 대지의 배꼽이시고, 지구의 배꼽이신 것입니다.

 

이 지구가 돌아간다는 것은 자전으로 24시간이 지나간다는 것이고,

공전할 때에 1년이 지나가는 것입니다.

지구가 돌아가면서 삶이 돌아가고, 세상이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상이 시간을 중심으로 돌아갈 때에

이 세상의 중심인 지구의 배꼽은 바로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시는 동안이

하나님의 의견이 가장 완벽하게 이 땅에 표현되고 있는 곳이고,

하나님의 소통이 현재진행형으로 표현되고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중심일 수밖에 없고 지구의 배꼽인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인은 무엇을 하는 사람들입니까?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주님을 마음속으로 보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

 

그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보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지구의 중심을 보고 계시고 가장 소중한 것을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십자가를 보면 하나님과 시선이 마주치며 소통이 시작됩니다.

 

그리스 곳곳에 옴팔로스-대지의 배꼽이라는 구멍들이 발견 되고

거기에 집어넣는 돌이 발견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십자가를 마음에 품게 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과의 소통이 이루어집니다.

그 소통이 이루어지는 곳이 바로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적어도 이 지구라는 유라시아 대륙과 북미 대륙과 오세아니아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을 포함하는 세계의 중심은 주님이시라는 이야기를

우리가 신앙적 차원에서 할 수 있는데, 우리가 체감을 할 수가 없어요.

 

그러면 우리는 체감할 수 있는 삶의 영역에서 인간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데

가정, 직장, 단체, 나라의 차원에서는 누가 중심이 됩니까?

십자가를 생활화하는 자들이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

 

 

당시 세상의 중심, 요셉

 

오늘 본문을 보면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습니다.

칠년 풍년 뒤에 칠년 흉년이 오게 됩니다.

 

한 해에 애굽 사람들 전체가 먹고 살 수 있는 양을 1이라고 봤을 때에,

칠년이면 7개가 필요하고, 십사 년이면 14개가 필요합니다.

앞에 칠년 동안에 7개 이상을 주시고, 뒤에 칠년 동안에는 기근이 있으니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면 이 계획에 맞추어서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찾다보니, 요셉이 나타난 것이겠습니까?

아니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요셉을 염두에 두시면서 세우신 계획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이 하나님과의 소통을 현재진행형으로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형들이 요셉을 판 것, 애굽의 친위대장인 보디발의 집에 감옥을 가지고 있었던 것,

보디발의 아내가 못되게 요셉을 유혹해서 그 감옥에 들어간 것,

감옥에 두 관원장이 들어와서 꿈을 꾼 것, 바로가 꿈을 꾼 것,

이 모든 역사를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시면서 주관하셨습니다.

 

때로는 악한 마음을 허락하시고, 때로는 당신께서 강압적으로 이끌어 가시고 역사하시면서

섭리를 진행시키신 이 모든 하나님의 계획은 요셉을 염두에 두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만약 제가 중남미의 대통령의 아들이라고 칩시다.

 

그럼 제가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마다

입시제도가 바뀌어서,

가장 가까이 있는 자기 아들을 위해서, 자기 아들에게 맞는 법(규례)으로 자꾸 바뀌는 겁니다.

이것은 옴팔로스 증후군을 쉽게 설명하기 위해, 부적절한 예를 든 것입니다.

 

그만큼 아버지는,

자기와 가까운 아들을 위해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아들 중심으로, 역사가 진행되어져 간다는 내용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지구를 창조하실 때는, 아들과의 기쁨에 참여시킬 수 있기 위해서,

아들의 자리에 사람들이 설 수 있도록, 지구를 창조하신 것입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아들 중심으로 이 세상을 돌리실 수밖에 없었는데,

그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음으로 인해 아들과 연합할 수 있는 기회를 모든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아들을 마음에 기억하는 모든 자가 부활하고 승천하는 길을 따라서

예수님의 마음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아버지가 가장 가까운 곳에 계시게 되는 것이고,

가장 가까운 곳에 계시니 적어도 내 삶의 영역은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나를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설계하시고

섭리해 나가실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빼놓고서

그 사람이 포함 된 삶의 영역을 진행하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적용

 

내가 어느 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그 회사에서 아무도 십자가를 생활화하는 자가 없다면,

십자가를 생활화하는 내가 승천하신 주님 안에 마음이 가 있고 가장 가까운 자가 됩니다.

 

그럼 나를 뺀 상태에서, 그 회사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주권이 적용될 수 있겠습니까?

 

내가 그 회사의 사장보다도 먼저 하나님과 만나지기 때문에

나를 중심으로, 나를 배려하며 회사가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회사가 망했다면 나 때문에 망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나라는 선민이 하나님의 섭리의 중심점이 되어서, 나로 하여금 다음 단계로 가게 하시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회사를 흥하게/망하게 하실 수도 있는 것입니다.

 

칠년 풍년과 칠년 흉년이 오는데, 이집트를 포함한 근동 지방에서

하나님께 마음이 가장 가까이 있는 자가 요셉입니다.

인구가 얼마나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그 많은 인구 중에서 요셉이 가장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 요셉을 중심으로 전체를 섭리하시고 계획하시고 이끌어 가실 수밖에 없는데,

그 이끌어 가심이 날씨와 기후에까지 나타나는데, 칠년 풍년과 칠년 흉년으로까지 나타납니다.

이게 믿어지십니까?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 당신의 아들을 두신 곳이 십자가인데,

십자가 사건은 갈보리라는 장소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내가 죽은 것이라며 고백하며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현재의 사건으로 작용합니다.

 

마치 제우스가 아들인 아폴론이 있는 곳을 세상의 중심이라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유일하신 독생자가 죽은 십자가를 마음에 품는 자들을 중심으로

그 삶 전체와 주변의 삶의 영역들에서 그 사람을 첫 번째로 배려하면서, 이끌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그 가까움이 더 밀착될수록 중심점으로서의 역할과 기능과 효과는 점점 더 커집니다.

 

지금 박 근혜 대통령이 있고 여당과 야당이 있습니다.

그들 모두가 다 하나님과의 소통의 현재 진행형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고,

쉽게 말해서 십자가를 생활화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그들을 중심으로 이 나라를 이끌고 나가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전라남도 끝의 여수에 산다고 해도

십자가를 생활화함으로써

이 땅에 대해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 안에 항상 머물러 있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중심점에 놓고 그 사람 때문에 대한민국을 이끌어 가십니다.

이게 바로 우리의 신앙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중심이 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과의 소통을 현재진행형으로 유지하려면,

십자가 생활화밖에는 없는데 십자가 생활화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예수를 바라보고 예수와 함께하라고 하는데 예수와 어떻게 함께 합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 이름을 부르면 함께하는 겁니까? 뭘 함께 하라는 거예요?

함께 하라는 설교만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내가 먹고 마셔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죠.

십자가 생활화를 모르니 중심에 설 수 없는 것입니다.

 

요셉이 중심에 서게 됨으로써, 바로 왕조차도 제3자가 되어버립니다.

꿈도 자기가 꿨는데 자기는 제3자의 자리로 물러나고 요셉이 중심이 되어서,

전 세계 사람들이 기근 때문에 곡식을 꾸러 바로에게 왔을 때에

바로는 요셉에게로 가라고 하며 요셉이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합니다.

 

마치 아폴론 신전을 찾아서 그리스 전역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처럼,

요셉에게로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이 사건이 뜻하는 바는,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이 소통의 현재진행형을 유지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생활화하고,

하나님과 시선을 마주치며 기도함으로써 하나님과 내 마음이 서로 교류하며,

하나님의 뜻과 의견과 평강이 내 마음에 주어져서 삶을 살아갈 때에,

 

요셉 한 사람이 중심이 되어서 근동 전체의 사람들을 구원하듯이,

나 한 사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덕을 보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어떻게 잘 사느냐가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하나님아버지! 우리 모두가 세상의 중심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품어서

하늘 아버지의 의견이 이 땅에 내려오는 통로가 되어서

적어도 내 삶의 영역에서는 중심이 됨으로 수많은 사람을 기근으로부터

구원해내는 역사가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