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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David Pawson's Unlocking the Bible

레위기 P2 / David Pawson

LNCK 2015. 6. 13. 15:16

vimeo.com/470370540

◈레위기 P2                                         영어 녹취록                            source  

 

지금부터 여러분과 함께 유대인의 시각에서 레위기를 살펴보겠습니다.

계속해서 모세 율법의 몇 가지 특징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이 율법들은 전체가 일체 The law 이고, 나누어서 보시면 안 됩니다.

모든 율법은 일체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하다는 뜻은 바로 완전한 사람이 되어라는 것이고,

전체 율례와 규례는, 한 세트의 완전한 율법을 이룹니다.

그래서 그 중 어느 한 가지를 범하면, 전체를 범한 것이 됩니다.

 

그래서 마치 여인의 목걸이마냥, 한 군데서 끊어지도, 모든 구슬이 땅에 떨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한데, 대부분의 법규만 지키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에 제가 공군에서 군목으로 있을 때, 거기 병사들 놀리기를 참 좋아했어요.

그들이 생각하는 크리스천의 정의는, 바로 십계명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제가 십계명을 다 지키는 사람, 손들어 보세요?’라고 물으니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들은 목사님도 아마 다 지키지 못하실 걸요?”

그러면 제가 크리스천이 되려면, 10개중 몇 개 정도 지키면 될 것 같습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들은 거의 대답하기를 “10개 중에 6가지 정도 지키면 될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절반 이상 이면 만족?)

 

흥미로운 것은, 대다수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생각하지요.

될 수 있도록 많이 지켜야 하지만, 학생들은 6가지만 지키면 된다고 합니다.

 

사실 모든 율법은 한 덩어리라서, 어느 한 곳이 깨어지면, 전체 덩어리가 깨어진 것과 같습니다.

*거룩이란, 삶의 전 영역에서 전부 온전하게 사는 것인데, 그게 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고,

계속해서 2강에서, 두 가지를 더 얘기 할게요.

 

◑1. 첫째, 모든 율법마다 왜 지켜야 하는 이유를, 하나님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왜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아야 하고,

왜 가축을 다른 종류와 교미시키지 말아야 하며,

왜 한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아야 하는지요?

 

하나님은 정결함을 좋아하시고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이나, 두 종자나, 다른 종과 교미한 짐승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순결하고 거룩하시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더 이상 자세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현대인들은 범사에 모두 원인을 알고 싶어 하지요.

왜 하나님께서 그들더러 이러한 일을 못하게 하셨지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떤 규례는 그 원인이 아주 명확하지요. 위생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화장실에 관한 규례인데, 그런 규례를 주신 이유는, 분명 위생과 연관 있지요.

 

또 예를 들면, 어떠한 음식물이 부정해서 먹지 않도록 금하신 이유는

당시 그 지역의 그 기후에서는, 돼지고기가 특별히 아주 쉽게 질병을 일으키거든요.

 

우리는 범사에 모두 원인을 알고 싶어 하지만, 제가 강조하고 싶은 점은,

하나님은 자세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이 왜 내가 그 일을 금지한 이유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점이 아주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왜 당신에게 어떤 규례를 주셨는지, 그 이유를 반드시 알려고 한다면,

당신은, 누구(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싶지 않다는.. 뜻이 됩니다.

모든 이유를 다 알겠다는 사람은, 마치 자기 이성이 하나님이 된 사람입니다.

 

저희 부부가 저희 자녀들에게 말하기를

왜냐하면 아빠가 그렇게 말씀했기 때문이야라고 말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여러분, 반드시 그 원인을 알고 나서야, 그 명령을 따른다면

당신은 복종하는 자녀가 아닙니다.

이것은, 명령을 내리신 분을 믿지 못한다는 자세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이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모세 율법의 대부분은, 왜 어떠한 명령을 해야 되고/또한 하지 말아야 되는지

그 원인을 설명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네가 나를 믿느냐?' 하십니다.

 

만약 내가 너더러 가서 어떤 일을 하지 말라고 금하면

내가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네게 금하는 것을 믿느냐?

 

네가 반드시 먼저 이유를 알고서, 순종하겠다고 하겠느냐?

아니면 내가 모든 것을 가장 잘 안다는 사실을, 네가 믿으므로,

네가 나를 충분히 신뢰하기 때문에, 내 명령에 이유를 몰라도 기꺼이 순종하겠느냐?

 

여러분, 우리 현대인들 대부분은, 하나님이 징계하시는 이유를 알고 싶어 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어떠한 일의 이유를 알고 싶어 합니다.

 

만약 하나님 당신이, 나를 설득하여, 그게 나에게 좋은 것이라는 확신이 들면,

내가 순종하겠다고 하는데,

이러한 사람은, 자기가 하나님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입니다.

 

마치 옛날에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분별하는 나무의 과실을 먹었듯이,

우리는 자신이 결정하고, 자신이 경험하고, 자신이 스스로 자기를 위해 해결하고 싶은 생각이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이 주시는 계명의 모든 배후 원인을 끝까지 알려고 한다면

당신은 그분을 믿지 못하는 것이고, 또한 복종하는 자녀가 아닙니다.

 

그래서 전체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알려주고 있는 것 같아요.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했기 때문에!” *더 이상 토를 달지 마세요.

 

당신은 아버지를 얼마나 믿습니까?

하늘의 아버지께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걸로 끝입니다.

 

이 점이 아주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순종하고, 자기를 신뢰하는 자녀들을 원하십니다.

 

내가 그 이유를 알고 나서야, 그 일에 순종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하나님이 무슨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명하시겠지요!’ 라고 말하는 자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일들에 대해, 우리에게 원인을 알려 주시지 않으며,

우리에게 그 이유를 설명할 의무도, 하나님께는 없습니다.

 

혹시 당신과 당신 가정에,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당신이 그분을 믿습니까?

 

그분이 당신에게,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허락하신 것은,

그분의 아주 선한 이유가 있다고 믿으십니까?

아니면 당신은 하나님, 왜 입니까?’ 라고 자꾸 따지십니까?

 

지금까지 이것이 하나님의 율법의 첫째 특징입니다.

그분은 원인을 알려 주시지 않으십니다.

 

 

◑2. 그러나 제재는 분명히 시행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율법에 불순종하는 자에게 분명히 벌을 내리십니다.

 

(율법을 주신 후에) 순종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 따르는 벌도, 레위기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신이 주신 명령을 왜 따라야 하는지, 이유를 가르쳐주지는 않으셨지만,

불순종에 대한 징벌은 확실히 가르쳐주셨는데, 아주 무서운 형벌입니다.

 

다시 말하면 레위기 26장에는, 순종에 따르는 많은 축복들을 열거했습니다. 26:1~13

하나님께 (율법에) 복종하고 신뢰하는 자는, 보상을 받고, 또한 복도 받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복종하지 않는 자는, 그만큼 저주를 당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유대인이라고 가정하여 레위기를 읽어요.

만약 제가 이 명령을 위반하면, 어떤 결과가 있을까요?

 

여러분, 크게 세 가지 결과가 나타납니다. (26:14~끝절)

첫째, 아마 제가 저희 가정과, 집을 잃을 수 있습니다.

둘째, 아마 제가 시민권과 여권(주민증)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셋째, (끝까지 불순종하면) 아마 제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레위기에 15가지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가 설명되어져 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당신이 만약 레위기의 명령을 지키지 못하면

집도 잃고, 시민권도 없어지고, 심지어 생명까지 잃게 된다는 것을 안다면

레위기를 읽을 때, 더욱 진지해지지 않을까요?

 

그래서 여러분이 유대인의 시각으로 이 책을 읽고,

여러분의 집, 시민권, 목숨이,

레위기의 율법을 지키는 그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그 준수 여부에 따라, 3가지를 모두 다 잃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레위기는 더욱 한걸음 나아가, 이스라엘 나라가(아까는 개인)

만약 이 명령을 지키지 않는다면

특별히 2가지를 잃게 된다는 것을, 명확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는, 타국의 침입으로 인해, 자유를 잃게 될 것이며,

나중에 사사기를 보면, 그때 이러한 일들이 실제로 발생한 것을 봅니다.

이스라엘 나라 전체가 레위기를 경시했다면, 이것이 첫 번째로 받게 되는 징벌입니다.

 

두 번째 징벌은, 그들이 토지를 잃고, 그 땅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포로로 붙잡혀갑니다)

 

첫 번째 징벌은, 적의 침입으로 땅을 점령당해서, 자유를 잃게 되지만

두 번째 징벌은, 자기 나라에서 쫓겨나 타국에 노예가 됩니다. 이건 모든 걸 다 잃는 최악이지요.

 

후에 이 두 가지 징벌이 모두 이스라엘에 임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게임하듯이 대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나를 믿고 복종하는 자는 복을 받으리라.

하지만 나를 믿지도 않고, 내 법을 위반하는 자는 반드시 징벌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만약 당신이 유대인이라면, 아마 조심 또 조심해서 이 책을 읽을 것입니다.

(물론 우리도 그렇게 읽어야 합니다. 특히 레26장을 읽어보십시오.)

 

 

사실 거룩하게 사는 길이, 진정 행복하게 사는 유일한 길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거룩과 행복은 서로 뗄 수 없고, 붙어 다닙니다.

그래서 거룩함이 부족한 사람은, 불행하게 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 세상에서 거룩하게 살면

참 행복은 저 천국에 가서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고, 천국에서 거룩하게 살려고 하는데,

그건 순서가 거꾸로된 방식입니다.

 

그런 소원을 품는 것은, 이해는 할 수 있지만, 그건 우리 육신의 소원에 불과합니다.

(성경적 원리와는 거꾸로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뜻은, 여기서는 거룩하게 살고, 나중에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당신 스스로 선택하십시오. 이 생애에서 거룩하게 살려면 고통을 이겨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불행한 일들이, 당신과 당신 가족에게 닥치는 것을 허락하시는데,

그 고통이, 당신을 더욱 거룩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사실 언제 당신이 가장 거룩해질까요?

당신이 안락하고, 즐겁고, 모든 일이 잘 돌아갈 때인가요?

 

아니면 일이 힘들어지고,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하게 되고,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면서,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투신할 때가 아닙니까.

 

언제 당신의 성품이 성장합니까?

모든 일이 잘 될 때 입니까? 아니면 일이 잘 안 될 때 입니까?

 

레위기 말씀에, 하나님은 그의 사랑하시는 자를,

이 세상/생애에서 징계하시고,

하나님 말씀에 반응하지 않는 자들은, (내버려뒀다가) 저 세상에서 벌주십니다.

그래서 이 생애를 거룩하게 살면, 영생에서 기쁨을 얻습니다.

 

 

◑구약에서 배우는 2가지 - 구속, 공의        

 

우리는 지금가지 유대인의 시각에서 레위기를 읽었는데,

지금부터 신약 크리스천의 각도에서 레위기를 보겠는데,

이 책은 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알려줍니까?

 

설마 이젠 이 (두 재료로 섞어 짠) 브랜드 양복을 입지 말아야 합니까?

만약 집에 병균()이 있으면, 집을 불태워야 합니까?

우리는 이러한 레위기의 명령에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여러분, 먼저 바울이 디모데에게 하신 말씀을 봅시다.

"디모데야,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한다".

 

간단히 말하면, 바울은 언급한 성경, 구약성경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바울이 이 서신을 쓸 때 아직 신약 성경이 없었고,

신약성경 중에 언급된 성경은 모두 구약 성경을 가리켜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너희는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성경이 바로 나에 대해 증거하는 것이다".

여기 나오는 성경레위기를 포함하는 구약성경입니다.

 

위 구절에서 바울은,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두 가지를 배운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는 '구속'이고, 다른 하나는 '공의'라고 합니다. 딤후3:15~16 *위에서 <>표 참조

우리는 레위기에서 이 두 가지를 배우게 되는데요..

 

이것이 구약 성경을 읽는 두 가지 이유입니다.

첫째, 당신의 눈을 열어서, 구원을 알게 하고,

당신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셔서, 당신이 어떻게 하면 구원을 얻게 되는 가를 알게 합니다.

 

둘째, 당신의 눈을 열어서, 공의를 알게 하여

어떻게 사는 것이 공의로운/선한 삶인지 알게 합니다.

구약에는 이 2가지 목적이 아주 뚜렷합니다.

 

▲몇 해 전에 어떤 목사님에 저에게 요청하기를

데이빗 목사님, 사순절 기간에 설교를 해주세요.

주중 모임이고, 부활절 직전까지 총 다섯 번입니다.”

 

제가 '좋습니다. 제가 무슨 설교를 하면 좋겠습니까?' 라고 되물었어요.

 

그 목사님은 '부활절 전이니까, 십자가 설교를 하여 주세요'.

우리 성도님들이 십자가의 도를 잘 알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5일 5번의 설교를, 모두 십자가를 주제로 해 주세요

 

그래서 저는 '좋습니다' 라고 하였지요.

 

그분이 저에게 '그럼 이번 다섯 번 설교의 제목을 주십시오'라고 해서,

저는 그 다섯 번 설교 제목은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입니다라고 하였어요.

 

그분이 저보고 '아뇨, 십자가 설교를 해 달라고 했잖아요.'

제가 ', 십자가 설교를 할 겁니다.

저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십자가를 설교할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무슨 설교를 했는지 아십니까?

 

창세기를 설교 하면서, 어떤 한 사람이 있었는데, 30살 되는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아브라함이고, 그의 아들은 이삭이었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30대 초반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아들을 모리아산으로 데리고 갔는데,

그 산은 나중에 골고다 또는 갈보리로 불려졌지요.

 

그는 거기서 자기 아들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지요.

하나님은 그 아들이 죽기 일보 직전에, 숫양이 준비된 것을 보여주셨고,

근처에서 숫양은 그 뿔이 가시떨기나무에 걸려 있었지요.

아브라함이 그 곳을 '여호와 이레'라 칭하고, 이는 하나님은 준비하신다는 뜻입니다.

 

계속해서 저 파슨은 설교하기를, 거기가 바로 십자가가 예표된 곳입니다.

이삭은 늙은 아버지를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나이였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아버지께 복종했습니다.

 

저는 또 출애굽기에서 설교하기를, 유월절 어린양이 오후 3시경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그 양의 피가 어느 집에 발라져 있으면, 죽음의 천사가 그 집을 넘어 갔습니다.

 

레위기는 조금 있다가 강의하도록 하겠습니다.

 

민수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한번은 광야에서 하나님께 죄를 범하자

하나님이 뱀을 그들 가운데 보냈습니다.

그들이 뱀에게 물려 생명이 위급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이 모세더러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게 하였고,

뱀에게 물린 자마다 언덕 위의,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한번만 쳐다보면 살아났습니다.

 

여러분 모두 요한복음3:16절을 아시죠?

그럼 요한복음 3:15절은요?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 3:15

 

계속해서 신명기인데, 신명기에 십자가는 어디에 있지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3장에서 이 저주를 다시 언급하지요.

 

 

이제 다음으로 레위기를 살피겠는데, 제가 그 사순절에 무엇을 설교했겠습니까?

바로 희생양입니다.

 

저는 홀맨 헌트의 그림을 아주 좋아합니다.

바로 이 그림인데, 저는 그가 그린 중에서, 이 예수님의 묘사한 그림이 제일 좋은 작품이라고 봅니다.

 

다른 한 가지 그림은, 제가 좋아하지 않는데,

여러분도 <세상의 빛>이란 제목의 그림을 보셨을 겁니다.

예수님이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시는 그림이지요.

 

그림 속에 세 여자가 나오는데, 한 여자는 몸체를 그렸고,

다른 한 여자는 얼굴만 그렸고, 또 다른 한 여자는 머리카락을 그렸고,

예수님은 주교의 복장을 하시고, 곡식 창고 문밖에 서 있는 그림입니다.

 

그 그림은, 계시록3:20절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이 구절에서 예수님은, 밖에서 교회의 문을 두드린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제가 홀맨 헌트의 작품 중 제일 좋아하는 한폭의 그림입니다.

그가 사해 해변에서 18개월을 지냈는데, 거기는 도둑떼들이 횡행하는 지역인데도,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그는 이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그림에서) 여기에 모압 산지가 보이고, 해질 녁에 그쪽 하늘은 확실히 그 색입니다.

(그림에서) 여기는 느보산인데, 모세가 여기서 죽었지요.

(그림에서) 이것은 이스라엘 모든 죄를 짊어지고 죽어 가는 희생양이며

(그림에서) 옆에 뼈는, 지난해에 죽은 희생양이 잔해입니다.

 

이 양의 눈빛을 보시면 감동적이지요?

여러분이 선라잇 항구 미술관에 가시면, 이 사진의 원본 그림을 보실 수 있는데

아주 감동적인 한 폭의 그림이지요. 그 희생양은 바로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유대인들 가운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아십니까?

예수님 죽임을 당하던 그 해에, 그 놓아주었던 희생양이,

놀랍게도 도시 중심으로 되돌아왔는데, 전가된 모든 죄를 가지고 되돌아왔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은 이러한(희생양) 방식으로 너희의 죄를 해결하지 말라.

이제부터는 내가 새로운 방식으로 새로운 희생양을 줄 터인데,

그 양이 진 밖(골고다)에서 고난을 받을 것이다.”

 

 

신약에서 자주 인용된 레위기      

 

여러분, 우리는 레위기에서 많은 놀라운 것들을 배웁니다.

하지만 지금부터 신약 성경이 어떻게 레위기를 사용하는지 보겠습니다.

신약이 어떻게 구약을 인용하는지 자세히 연구하면, 많은 깨달음의 빛을 얻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신약성경에 구약이 드러나고,

구약성경에 신약이 숨겨져 있다고 말합니다.

신약과 구약은 갈라놓을 수 없이, 서로를 지지하고, 서로를 설명합니다.

 

신약성경 몇 곳에, 레위기의 구절을 직접 인용하였는데

그 중 두 구절이 가장 특별하고, 자주 인용되지요.

한 구절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이고,

또 한 구절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이 두 구절이 신약 성경에서 끊임없이 나타나지요.

그래서 크리스천들은 레위기를 주의 깊게 읽어야 하는데요.

 

그러나 그 외에도 레위기의 다른 여러 구절들이 신약에 두루 인용되었는데,

특별히 히브리서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레위기를 먼저 읽어야, 이해가 잘 됩니다.

 

성경을 창세기부터 순서대로만 읽지 마십시오.

성경은 연대 순서로 배치된 것이 아닙니다.

앞서 성경을 연속적으로 읽으라고 했는데, 한 권을 1장부터 끝장까지 연속해서 읽으시라는 뜻.

 

당시에 성경의 순서를 배치한 사람은, 같은 장르 안에서 분량이 큰 책을 앞에 두고,

분량이 적은 책을 뒤에 두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선지서를 보더라도, 분량이 많은 3권이 앞에 배치되어 있고,

분량이 적은 12권이 뒤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바울 서신도 마찬가지인데, 로마서가 앞에 배치되었고,
빌레몬서가 뒤에 배치된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 책들을 연대순서로 편집하여 배치한 것 아니니, 만약 성경을 앞에서 뒤로 순서대로 읽으면,

뜻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구약과 신약을 번갈아 오가며 읽기를 추천합니다.

만약 그렇게 읽게 되면, 레위기와 히브리서를 같이 읽는 식입니다.

레위기와 히브리서는, 서로를 지지하므로,

만약 먼저 레위기를 읽지 않고 히브리서를 읽으면, 아마 그 내용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저는 신약성경의 90여 곳에서, 레위기가 인용된 것을 발견했어요. 무려 90여 곳입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이라면, 레위기를 읽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구약의 율법, 신약에서 어떻게?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하여야 모세 율법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모세 율법은 10개 뿐만 아니고 총 613가지입니다.

우리는 10개만 항상 교회 벽에 붙여 놓는데, 사실 총 613가지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지만, 모든 율법을 다 지킬 필요는 없는데, 그럼 몇 가지를 지키면 됩니까?

 

조금 후에 안식교 사람들이 와서, 이 장소에서 예배드릴 것입니다.

그들은 제 4계명을 엄격히 지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금요일) 저녁 6시에 안식일을 시작하여, 내일 저녁 6시에 끝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어 중생하여 구원 얻은 크리스천이지만, 율법을 엄격히 지키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교회들이 십일조를 가르치는데요.

저는 신약성경에서 이것을 지키라는 명령을 찾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많은 교회들에서, 교인에게 십일조를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안식일은요? (십일조를 강조하면, 안식일/토요일도 똑같이 강조해야지요)

일요일에 가게 문을 열어도 되는가 하는 얘기인데,

이 문제에 대해서, 크리스천들은, 인간의 현실적 필요에 따라,

자기 편리대로 결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 인간의 현실로 볼 때,

모세 율법에 명시된 안식일을 그대로 지키는 것을 무시해 버리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을 어떻게 다 지킬 수 있느냐는 논리이지요.

 

모든 크리스천들은 이러한 문제들을 반드시 대면해야 하고,

이 일들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면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고, 율법을 완전케 (fulfil, 성취) 하려 함이라.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거든요. 5:17~18

 

율법에는 도덕법, 의식법, 시민법으로 3구분 되는데,

대부분 신자들은, 도덕법은 유효하지만, 의식법 및 시민법은 끝났다고 봅니다. 그런 신학을 갖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모세 율법을 (예수님 말씀 마5:17처럼) 어떻게 ‘성취할 수 있을까요?

그걸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어떤 율법은, 분명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영원히 성취 되었어요.

그래서 당신이 주일마다 예배하러 갈 때, 비둘기나 양을 가지고 갈 필요가 없는데,

이러한 율법은 이미 성취(fulfill, 개역엔 '온전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마5:17

 

그리고 또 모든 율법은 장차 온전케/성취 될 것입니다.

안식일 율법도, 우리를 위해 과거에 이미 성취 되었다고,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주중이라도 매일,  자신이 하던 일을 멈추고
하나님의 일을 하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위해 예비해 놓은   *히4:9~11
안식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당신이 7일 중 어느 하루를 선택해서 지키든지,

아니면 매일(7일 모두)을 주일로 보내면 좋겠습니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지 당신의 자유입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주일 성수를 억지로 짐지우지 말아야 하며,

믿지 않는 사람은 더욱 말할 것 없고요,

왜냐하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인입니다.

 

 

중요한 것은, 각 율법이 어떻게 완전히 성취되는지를,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신약 성경에서 십계명 중 9개는,

구약 성경에서 지키라는 것과 똑같이 지킴으로써, 그 율법이 완전히 성취 fulfill’ 됩니다.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fulfill’ 하려 함이라. 5:17

 

 

도적질 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같은 계명들인데요.

그런데 안식일 법을 지키는 것은, 조금 다른 방식입니다.

 

이렇게 모세 율법 중, 많은 계명이, 신약 성경에서 지키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율법을 폐하지 않고, 완전히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5:17

 

예를 들어, 소를 이용해서 곡식 타작을 하는데요,

소가 돌면서 발굽으로 밀을 까부르지요.

이때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일하는 소가, 먹을 권리가 있다는 율법이지요.

 

너희는 타작하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이 구약의 율법을, 신약성경에서는 어떻게 완성하라고 하시는지 아십니까?

 

목사에게 합리한 사례비를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고전9:9

바울이 이 구약의 율법을 지켰지만,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온전히 이룬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율법을 한 가지 한 가지씩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구약 율법들이 신약 성경에서 어떻게 더욱 의미있는 방식으로 온전히 이루겠는가하는 것입니다.

 

 

<저 파슨은 레위기에서 4가지 사실을 배웠습니다.>   

 

4가지 사실은, 시대가 변해도 절대 변하지 않으며,

그래서 구약 성경과 마찬가지로 신약 성경에서도 똑같이 아주 중요합니다.

이 점을 레위기에서 특별히 더 많이 강조하였는데요.

 

1. 첫째, ‘하나님의 거룩성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거룩성을 레위기보다 더 강조하는 책은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이 사실을 잘 잊어버리는데요.

 

제가 책을 한권 썼는데, 아시다시피 그 제목은 <지옥으로 가는 길>입니다.

출판 후 갑자기 많은 지역 방송국에서 제게 인터뷰를 요청했어요.

인터뷰에서 그들은 똑같은 질문을 제게 던졌습니다.

이는 바로 사랑의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지옥으로 보냅니까?’ 이었습니다.

 

너무 많이 물어 와서, 제가 지루하다는 느낌이 생겼어요.

저는, 그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제가 그들에게 되묻는 형식으로 대답했습니다.

이렇게 공을 상대방에게 넘기는 대화법은, 제가 예수님께 배운 기교입니다.

 

그래서 제가 질문하기를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이,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압니까?’

그들은 저의 그런 질문에, 모두 당황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제가 그랬어요. ‘맞습니다. 하지만 예수님도 지옥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지요.’

 

당신이 만약 예수님을 믿으려면, 그분의 하신 말씀을 취사선택 할 수는 없지요.’

예수님이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진리를 말씀하셨고, 당신이 그걸 받아들였다면,

그분이 지옥에 대해서 말씀하신 것도, 당신이 똑같이 받아들여야지요.

 

당신이 예수님 하신 말씀을 취사선택해서, (지옥 같은) 어떤 말씀은

예수님보고 거짓말 한다고 그러고,

다른 말씀은, 또 진짜라고 받아들이고.. 하면 안 되지요.

그렇게 하면 당신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재판관이 되는 셈입니다.

 

계속해서 제가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도,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사랑은, 우리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과 개념이 좀 다르지요.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은 감정적인 사랑이고, 하나님은 거룩한 사랑을 하십니다.

우리 중에 소수만, 악을 미워하는 거룩한 사랑을 합니다.”

 

당신이 레위기를 통해서, 무엇이 하나님의 거룩인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당신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즉 거룩한 두려움으로 예배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오늘 날 우리의 예배/경배에는, 한 가지 크게 결여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입니다.

하나님과 너무 친근하다 보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부족해졌습니다. (둘은 균형을 이루어야지요)


 

제가 작년에 시실리 섬에 갔을 때, 에트나 산을 등산하기 원했습니다.

그 산은 유럽에서 제일 큰 활화산이지요.

지금까지도 여전히 용암을 분출해서, 그게 산 아래 마을까지로 흘러갑니다.

하지만 당시 눈이 너무 많이 쌓여서, 산에 올라가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시실리 카타니아 공항에서 영국항공을 타고 떠날 때

조종사가 기체를 경사지게 하여, 에트나 화산의 상공을 날았는데

우리 바로 아래에, 분화구가 보였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당시에 찍은 사진입니다.

 

비행기가 경사지게 비행하니, 우리가 분화구를 잘 볼 수 있었습니다.

마침 제가 창문 쪽에 앉았고, 그래서 바로 아래에 용암이 끓어오르는 가마솥을 볼 수 있었지요.

 

그때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정말 멋지군. 그런데 빨리 비행기가 수평을 유지해서,

런던으로 돌아갔으면 좋겠군!’ *무서웠지요.

 

화산이 만약 그 때 폭발하면, 우리는 끝장이지요.

그 생각을 하니, 그걸 쳐다보는데 제 속에서 울렁거리기 시작했어요.

 

어느 해에, 필리핀 화산 폭발 직전에, 제가 마지막 비행기를 타고 거기서 떠났어요.

그리고 화산재가 너무 많이 분출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비행기 운항이 중지되었지요.

 

비행기 안에서, 우리 발 아래에, 어떤 거대한 힘이 느껴졌어요.

여러분도 화산폭발을 경험해보시면, 똑같이 느끼실 것인데, 아마 무서운 느낌이 들게 될 것입니다.

 

히브리서가 무어라고 하는지 들어보세요.

히브리서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경외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기자.

왜냐하면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기 때문이다라고 합니다. 12:28~29

 

이것은 직접 레위기에서 인용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레위기를 읽을 때, 하나님의 거룩성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라는 것만 알지 말고요,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은 좋으신 분이라고만 말합니다.

이러한 관점만 있으니까, 기독교를 오해하는 것입니다.

 

부정함이 하나도 없는 깨끗한 사람만, 하나님의 존전 앞에 나옵니다.

깨끗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오지 못하고,

거룩한 것을 만지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더욱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오지 못하고,

다만 깨끗한 사람만,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여러분, 이것이 바로 레위기가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하는 하나님의 거룩성입니다.

 

2. 둘째, 레위기는 하나님의 거룩성을 강조할 뿐 아니라 인간의 죄성도 강조합니다.

 

레위기는 아주 현실적인 책이라서, 이 세상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속지 않으시지요.

그래서 레위기는 어른들이 보는 책이라서, 주일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지요.

 

타락한 인간은 본성적으로 수간, 근친상간, 각종 미신, 모든 추악한 일들을 저지르는데,

이것은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것들이지요.

 

가증, 히브리어로는 아주 강력한 단어인데, *토에이바, 18:22,26,27,29,30, 20:23

영어 abomination 로는 제대로 전달이 안 됩니다.

이 단어의 뜻은 사람을 토하게 만들고, 구역질나고 역겹게 한다는 뜻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감정을 전달하고 있는 책인데, *지식전달만 아니라요

제가 abomination 말고 다른 단어로 번역해보면,

loathsome(역겨운), repulsive(뒤쫓아버리는), abhorrent(몹시 싫은) 등인데

하지만 모두 원어(토에이바)만큼 의미가 강력하지 못합니다.

 

가증이라는 단어가 히브리 원어에서는 아주 강력한 단어이지요.

하나님이 사람의 죄악을 보시고 참지 못하여 구토나오려 하십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악은, 정결을 오염시킬 뿐 아니라, 거룩함까지도도 더럽히는데요,

물론 사람이 함부로 헛맹세 할 때 그렇게 됩니다.

 

사람이 일상에서 헛맹세/거짓말을 쉽게 하는 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거룩한 두 가지 관계,

즉 하나님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이고, 다른 하나는 부부 관계를 더럽힙니다.

 

아마 90%의 헛맹세/거짓말이 이 두 관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한 관계를 모독하고, 깨끗한 관계를 더럽힙니다.

 

여러분, 이 세계는 계속 이 두 가지 관계를 더럽히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악이, 깨끗한 것을 더럽힐뿐 아니라

거룩한 것은 일상적인 것으로 전락시킵니다.

거룩한 것은, 거룩하게 대해야 합니다.

 

 

3. 제가 레위기에서 배운 세 번째는, 크리스천은 그리스도처럼 온전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깨끗/온전해지는 길을 우리에게 이미 제공하셨어요.

 

하나님의 난제는, 공의긍휼을 어떻게 둘 다 동시에 나타내는가 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이 응당 공의의 속성으로 우리를 징벌해야 하겠습니까?

아니면 긍휼의 속성으로 우리를 용서해야 하겠습니까? *둘은 모순이지요

 

하나님은 공의와 긍휼의 하나님이고,

그분은 반드시 이 두 가지 속성을 겸하여 시행하시는 방법을 찾으실 것입니다.

 

죄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도 하나님을 가까이 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길을 열어 주셨어요.

그것은 무죄한 생명을, 죄 있는 생명을 대신하는 것입니다.

 

오직 이 방법만이, 공의와 긍휼을 둘 다 만족시킵니다.

레위기에서 제사()법이, 바로 그런 방식임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대속(대신 지불)’이란 단어, 또한 란 단어가 레위기에 매우 자주 나타나는데,

왜냐하면 피는, 바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생명을 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는 피흘리는 제사는 레위기의 강조점입니다.

 

그래서 이 피흘리는 각각의 제사는, (처음에 언급했던 5대 제사를 기억하시지요?)

크리스천의 삶에 적용되는데요,

 

여러분, 전에 얘기했던 그 제사 아직도 기억하십니까?

매 제사마다 모두 그리스도인의 삶에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번제는, 신자가 자신의 전부를 드려 헌신해야 함을 가리키고,

-소제는, 신자의 섬김과 봉사를 가리키고,

-화목제는,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얻는다는 것을 가리키는데,

하나님의 평안은 사람이 이해를 초월합니다.

이것이 구원 받은 사람이, 마음으로 감사하며 드려야 할, 3가지 제사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속죄, 속건 제사에서, 우리는 그분의 희생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드리는 제사는, 찬양과 감사의 제사이지요.

그 제사가 하나님께 잘 준비되어 드려져야 합니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속죄, 속건 제사는, 예수님을 통해 드려지는 것입니다.

속죄제는, 무죄한 생명이, 죄인을 대신하는 것이고,

속건제는, 인간끼리 지은 죄를 속하는 제사를 드려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에서 아주 명확하게 이 점을 가리키는데

대가/대속을 치름으로써 율법의 요구를 만족하게 하는 것입니다.

 

 

4. 경건한 신자의 삶   

 

제가 레위기를 공부하면서 배운 4번째는, 하나님의 거룩성과, 인간의 죄성과,

또한 나의 모든 거룩의 필요를 만족해주는 그리스도의 온전함에 이어,

마지막 네 번째로, 경건한의 신자 삶입니다.

 

레위기는 우리더러 삶의 모든 방면에서 거룩하라고 가르칩니다.

유대인의 기도문 중에서 화장실에 갈 때 사용하는 기도문이 있는데, 아주 좋은 기도문이지요.

 

몸이 정상적으로 유지되게 해 주셔서 주님을 찬양,

변이 원활하게 해 주셔서 주님을 찬양,

잘 배출하고, 화장실을 나오면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서방 신자들은 이렇게 하는 것이 정신 이상처럼 보이지요. 그런 건 영적이지 않다고 봅니다만,

제가 한번은 어느 화장실에 갔었는데, 벽에 성경 구절이 꽉 차게 붙어있었습니다.

또한 옆에는 경건서적들이 쌓여 있었는데,

 

그래서 용변을 보는 동안, 딴 생각이 들게 하려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어떻게 해서든지 저더러, 제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잊게 하여

영적인 일에만 집중하게 만들려는 것 같았지요.

 

여러분, 우리 모두 항상 이러지요.

우리는 우리 삶의 작은 영역에서도, 항상 영적인 삶을 유지해야 합니다.

 

제가 알려주겠는데 당신이 나중에 나이 드신 후 대소변이 힘들어 질 때,

전에 몸이 정상적이었을 때, 왜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하였지?’라고 후회할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우리 몸이 쇠하여져 가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는 늙어갈수록, 겸손해 질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삶의 모든 부분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아십시오.

거룩은, 삶의 모든 면에서 온전함입니다.

 

그러니 레위기에서는, 삶의 모든 방면을 아주 자세하게 다룹니다.

거룩이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다 적용되는 것임을,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거룩/경건한 삶이란, 삶의 모든 영적에서 계속적으로 온전하게 사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거룩/경건한 삶이 아닙니다.

 

 

하지만 구약의 거룩과, 신약의 거룩에는, 두 가지 큰 전환이 있습니다.  

 

앞서 우리는 거룩, 정결, 더러움, 3가지의 차이를 논했는데

3가지가 신약 성경에서도 여전히 적용됩니다.

 

구약과 신약의 거룩에 대한 본질은 같지만, 그 적용에 있어서 전환이 있는데요.

 

1. 첫째는, 거룩의 관점이 물질적 측면에서 도덕적 측면으로 전환되는데,

이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에 마치 아이들과 같아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식으로 그들을 가르쳤는데,

그래서 음식 중에도,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일일이 구분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신약의 크리스천에게는, 깨끗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의 차이가 없습니다.

베드로가 전에 욥바에서, 이 사실을 아주 수고스럽게 배웠지요.

 

여러분, 예수님은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지요.

 

아주 오래전에 어떤 설교자가 어린 아이들에게 설교했는데,

저도 그 어린아이들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묻기를 깨끗하지만 더러운 것, 깨끗하지 못하며 더러운 것, 무슨 차이가 있지요?”

 

아이들 모두가 침묵했는데, 그 설교자는

깨끗하면서 더러운 것은 너희들 밖에 있는데,

이것은 비누와 따뜻한 물로 씻으면, 쉽게 깨끗해 져요.

 

하지만 깨끗하지 못하며 더러운 것, 너희들 안에 있는데,

깨끗하게 씻기가 너무 어려워요.” 우리 모두가 알아들었어요.

 

이 두 개(물질적/ 도덕적 정결)는 너무 큰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의 중점은, 옷과 음식이 깨끗한가/못한가 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신약성도의 중점은, 도덕적으로 깨끗한가/못한가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물질에서 신약의 도덕으로 전환!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신약 신자는, 옷과 음식의 규례를 지킬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도덕적으로 어떻게 거룩함을 지켜야 하는지의 문제입니다.

 

2. 구약에서 신약으로 두 번째 큰 전환은

보상과 징벌이, 바로 이 현실 세상에서 다음 세상으로 전환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상벌이 현실에서 시행되었습니다만, 신약은 내세로 전환.

 

거룩한 사람은, 이 현실 세계에서, 상보다 오히려 고난을 당하고, 보상도 없습니다.

신약시대에 이르러, 전환된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는, 시간적으로 긴 안목을 갖게 되었습니다. 현실세계가 전부가 아닙니다.

 

이 현실 생명은, 내세의 긴긴 생명을 위해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은 '너희 큰 상은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니 구약의 거룩, 깨끗함, 더러움의 차이는, 신약에서도 여전히 적용되지만,

다만 도덕적 영역에 적용되지, 물질적 영역에 적용되지는 않습니다.

 

-다음으로, 도덕법에 복종하는 자는 상을 받고, 복종하지 않는 자는 징벌을 받지만,

그 상벌이 이생에서 영생으로 전환됩니다.

 

이렇게 레위기에서는 2가지 중대한 전환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 이 책을 읽으면, 아주 큰 유익을 얻게 됩니다.

 

레위기가 우리에게 4가지 중점을 알려 주는데,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거룩성,

-인간의 죄악성,

-그리스도의 대속의 온전함,

-신자의 경건한 삶입니다.

여기서 마칩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번역 LCY, KJ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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