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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David Pawson's Unlocking the Bible

민수기 1 / David Pawson

LNCK 2015. 6. 17. 18:02

vimeo.com/470777729

◈민수기 1                                         영어 녹취록

 

인구조사    

 

민수기라는 책명부터가 이상한 것은,

물론 히브리 성경에는 그런 제목이 아니었죠.

히브리 성경은, 책명을, 모두 책의 시작 첫 단어로 부르는데,

그것은 여호와께서 이르시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책명은 여호와께서 이르시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은 히브리 책명을 광야에서’(브미드바르)라고 합니다.

 

하지만 히브리어 성경을 희랍어로 번역할 때, 반드시 새로운 책명을 정해야 해서

그때 책명을 Arithmoi 라고 하였어요. ριθμοί,

 

여러분이 이 희랍어의 뜻을 짐작했을 것입니다.

영어의 계산이라는 단어가, 여기서 온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Arithmetic

그래서 이 책을 ‘Numbers(숫자세기)’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 책의 시작과 끝이, 모두 두 번의 인구조사로 되었기 때문이지요.

 

(저는 인구조사 census 이 단어의 복수가 뭔지 정확히 모르겠군요. 어쨌든)

 

두 번의 인구조사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민수기 시작에 나와있고, 다른 한번은 민수기의 마지막에 나와있지요.

 

두 번의 인구 조사는 모두 군사 목적으로 하였는데,

바로 군인 징병에 편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래서 싸울 수 있는 20세 이상의 남자만 계산했던 것입니다.

 

두 번의 인구조사 결과, 남자만 모두 약 60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총 인구가 200만이 넘는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여자와 20세 이하의 아이들까지 다 합치면 총 인구가 약 200만 이상이 되는데요.

그 중 전쟁에 나갈 수 있는 남자는 60만 명이었습니다.

 

때때로 저는, 그와 같이 20세 이상의 숫자로, 교회의 건강성을 측정합니다.

그 교회에 주님을 위해 싸울 수 있는, 20세 이상의 남자가 얼마나 되는가요?

이것은 교회의 역량을 테스트하는데 있어서, 나쁜 방식은 아닙니다.

 

그럼 인구조사 내용을 한 번 살펴보십시다.

1장에 인구 조사 결과는 603,550명입니다. 이것은 시내산을 떠날 때의 조사입니다.

민수기 마지막에 또 한 번 인구조사를 했는데, 결과는 601,760명이었습니다.

남자가 1,800명이 줄었습니다.

 

기억하십시오. 이 두 번의 인구조사의 사이에는, 40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민수기가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책은 숫자를 얘기하는데, 인구조사 그 일 자체는 틀린 게 없지요.

 

어부마다 모두 숫자를 계수하지요.

그래서 오순절 날에 어떤 사람은 사람 수를 계산했을 거예요.

2997, 2998, 물고기 숫자 세듯이 2999, 3000. *셈이 정확하다는 뜻인 듯

 

수를 계수하는 일은, 아무 잘못이 없지요.

목자는 반드시 양 숫자를 세어야 하며, 어부는 반드시 고기 숫자를 셉니다.

외팔이 어부가 아주 큰 물고기를 잡은 이야기 모두 들어보셨지요?

*어쨌거나 어부나 목자가, 수를 헤아려보는 것은, 아주 일상적인 일입니다.

 

숫자 계산은 무슨 잘못된 게 없는데, 그 동기가 교만일 때는 문제가 됩니다.

다윗 왕이 이 잘못을 저지르다가, 그걸 중단했지요.

 

다윗 왕이, 당시 싸우기 전에 응당 인구를 계수해야 했는데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인구를 계수하였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시기를, 전쟁하러 가기 전에 먼저 앉아서,

자신들의 군대 숫자가 적의 숫자를 초과하는 지를, 반드시 계수해 보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싸우기 전에, 먼저 자신들의 군사 숫자가 얼마나 되는가를 세어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의심을 품는 것은, 조사된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과장됐다고 의심합니다.

나중에 이스라엘이 왕국시대에, 인구가 130만명 뿐이었는데요..

 

또 신명기에서 말하기를, 당시 이스라엘의 숫자가, 가나안 사람보다 많이 적다고 했습니다.

그럼 당시 가나안 인구가 얼마나 되었을까요? 수백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벌써 2백만?

 

당시 그들이 70명만 애굽으로 왔습니다.

그 숫자가 이렇게 많은 자손을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의심하는 사람들은, 그 많은 사람이 시내산과 광야에서 생존할 수 없다고 하지요.

거기에는 그들을 다 수용할만한 그리 큰 계곡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이유를 대면서, 민수기 내용에 반박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다고 말합니다.

또 제가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해서 드리는데,

여러분은 반드시 믿을 것인지/ 믿지 않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저는 그분이 하나님이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숫자라도,

살아남게 하시면, 살아남게 되리라고 믿습니다.

 

40년이라는 간격이 있었는데도, 인구수가 여전히 비슷한 것을 유의해서 보십시오.

40년 후인데도 1,800명 차이 밖에 없잖아요.

총 인구 200만 명, 또는 60만 장정이 있었는데도, 인구가 전혀 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이 애굽에 있을 때는, 4백년 동안 생육하고 번성해서

70명 가족에서 200만으로 변했습니다.

 

40년이, 4백년의 10분의 1시간이고,

그래서 인구비율로 10분의 1만큼이라도 늘어나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 점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한 지파는 오히려 37,000명이 줄었습니다. 다른 한 지파가 20,500명이 늘어서, 손실을 메운 셈이지요.

그래서 40년 후의 인구가, 40년 전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축복을 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축복 하시는 곳은 생육하고 번성합니다.

만약 하나님이 어떤 교회를 축복하면, 그 교회 숫자가 증가하게 되지요.

만약 그분이 축복하지 않으시면, 숫자가 그대로가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많은 열매를 맺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민수기에서는, 풍성한 열매의 축복을 보지 못하는데,

아마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중요한 점 하나를 지적하자면, 민수기 마지막의 60만은,

시작 때의 60만과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숫자는 같지만, 질적으로 다릅니다.

두 사람만 예외이고요. 60만 그들은, 완전히 다른 무리의 사람들입니다.

 

그 때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60세였습니다. 일반 사람들은 60세밖에 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모세와 여호수아는 120세까지 살았는데, 이는 대단한 것이지요.

 

당시 남자들의 평균 수명이 60세밖에 되지 않았어요.

20세 이상 남자들 60만 명이, 40년 후에 모두 죽었습니다. *그래서 인구가 늘지 않았습니다.

다만 2명 만 살았는데, 바로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우리는 이 책을 읽을 때, 40년이 한 세대가 아니라, 한 세대는 30년 입니다.

다만 두명만 살아남았다는 것은, 이 책 내용 중 가장 큰 비극입니다.

 

저는 이 책이, 구약 성경에서 제일 슬픈 책이라고 봅니다.

혹시 여러분은 <예레미야애가>가 제일 우울한 책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야기의 스토리 측면에서 볼 때는, 이 책이 제일 슬픈 책입니다.

 

민수기의 내용 중에 3분의 2, 본래 없어야 하는 내용이며,

일어나지 말아야 했을 사건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것을, 결코 목적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민수기가 이렇게 쓰여질 것을, 결코 의도하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이 책이 사건 그대로 기록된 것은,

성경은 매우 정직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38년의 지체       

 

그래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그들이 시내산을 떠나서 가데스 바네아까지 왔는데, 여기서 비극이  일어났지요. *정탐꾼의 부정적 보고

 

여기 가데스 바네아는 남쪽 사막을 지난 첫 오아시스인데,

광야 통과 후 제일 처음 만나는 생기가 있는 땅이요, 약속의 땅 가나안의 입구입니다.

 

시내산에서 가데스까지 걸어서 11일이면 됩니다. 두 주도 안 되는 11일이면 됩니다.

그리고 그들이 본래 만나를 먹으며 고생할 필요 없이, 젖과 꿀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결국 그들은 11일이면 될 것을, (가데스 바네아에서 진입하지 못하고) 13,780일만에 약속의 땅에 도착했습니다.

지도에서 보면, 이 길로 직접 가면 11일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들이 가데스를 떠나 아주 깊은 협곡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이 협곡은 아프리카로 계속 뻗어 나가며, 세계에서 제일 큰 협곡입니다. *화면에 ////

 

 

 

그들이 협곡을 통과해서, 에돔 산지 맞은 편에 도착하고,

마침내 요단강 동편 길을 따라 모압에 도착했습니다.

 

만약 (시내산에서 가데스까지) 11일만에 도착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가데스에서 모압까지도) 2주가 안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40년이 걸렸고, 정확히 말하면 38년 몇 개월입니다.

 

이렇게 긴 기간이 소요된 것은, 이 루트가 걷기에 특별히 힘들었습니까?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앞장서 가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매번 조금씩 가시고, 한 곳에 도착하면 오랫동안 머무셨습니다.

하나님이 움직이지 않으시니, 그들도 감히 못 움직이는 것입니다.

 

구름기둥은 즉 하나님은, 선민들의 여행이 40년이 걸리도록 지체하셨고,

하나님은 그 지체 이유를 이렇게 알려 주셨습니다.

나는 너희 남자들이 모두 죽을 때까지 발걸음을 느리게 할 것이다.'

단 두 명만 예외였는데, 여호수아와 갈렙 이었습니다.

 

이것은 꽤 괴로운 일이었습니다. 한 세대 전체가, 자기 남은 생애 전부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지내는 것 말입니다.

평생 아무 데도 못 가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지요.

이것은 아주 엄한 형벌인데, 여러분 우리가 그걸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없어도 된다. (손이 남아돌므로)

당신은 죽을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말라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당신은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잘 때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사람이 황폐되겠지요?

그런데 이게 하나님이 정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가데스에서 도대체 무슨 죄를 범하였기에 이러한 벌을 받게 되었습니까?

당신이 만약 성경을 잘 안다면,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아실 것입니다. *부정적 보고, 악평, 불신

하나님이 그들에게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라고 했을 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기회를 놓치고 말았지요.

 

비극은, 내 인생에 어떤 기회가 몇 차례 찾아오는데, 한번 놓치면 다시 갖지 못합니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만약 당신이 붙잡지 못하면,

하나님이 두 번 다시 그 기회를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를, 심각하게 맞이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움직이라고 하실 때, 반드시 움직이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지요.

 

하나님이 가서 무엇을 취하라고 하면, 가서 취하십시오.

아니면 당신은 남은여생을, 광야에서 허비하게 될 것입니다. 아무데도 가지 못합니다.

 

이런 곳은 어중간해서 너무 힘듭니다. 요크셔 사람들 말로 여기도 아니고, 거기도 아닙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애굽에 있는 것도 아니고, 가나안에 들어간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수많은 크리스천들은 대단히 불쌍하게 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중간에 어중간하게 끼여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죄를 떠났기 때문에, 다시는 죄악의 낙을 누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복도 받지 못하고, 복을 받아 낙을 누리는 것도 없습니다.

 

이미 떠나왔으나, 딱히 갈 데가 없는 사람처럼 불쌍한 사람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남은 일생동안, 그 힘든 광야에 갇혀서, 거기서 고통 하다가 죽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이야 말로 큰 비극입니다. 예수 더듬하게 믿으면 이렇게 되는, 우리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민수기의 3분의 2분량이, 가데스 바네아(12정탐꾼 보고지역)에서

모압(요단강 건너편)까지의 이스라엘의 여정을 논하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없었어도 될 시간/사건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민수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반면교사 적입니다. *잘못을 보고 교훈을 배움

성경이 아주 정직한 책이라서 감사드립니다.

성경은, 그들의 성공과 덕을 사실대로 기록하였습니다.

반대로 그들의 실패와 악도 사실대로 기록하였습니다.

잘된 일만 기록한 것이 아니고, 동시에 잘못된 일도 똑같이 기록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쓸 때도 민수기를 얘기했습니다. 바울이 말하기를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고전10:6

 

그런 일들이 그들에게 일어났고, 성경에 기록된 것은

우리에게 경고를 주기 위함이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민수기의 목적을 똑똑히 가리키고 있습니다.

이 책이 혹시 많은 사람에게 유명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아마 당신이 읽기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대단히 중요한데, 왜냐하면 당신이 역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그 잘못을 똑같이 되풀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 친구가 이런 짧은 시를 썼어요.

역사는 반복된다.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특히 이스라엘의 역사를 읽는 것은 더욱 중요합니다.

만약 당신이 그걸 잘 읽는다면, 그들과 똑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민수기는, 그들의 실패, 어리석음, 실수까지 다 기록하였습니다.

심지어는 모세마저도 잘못을 범하여, 그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결국 가나안에 들어갔습니다. 수 세기 후에

변화산에서 예수님과 대화를 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그가 많은 세기 이후에 들어갔습니다.

왜냐하면 모세도 아주 중대한 순간에서, 잘못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살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민수기를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잘못에서 배워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잘못이, 우리에게 교훈이 될 필요가 아예 없어야 합니다. *우리가 너무 바르게 살아서

그러나 우리는 잘못을 범하기에, 민수기의 교훈을 받게 되지요.

 

 

구조 및 단락 구분      

 

민수기에는, 이야기율법이 뒤섞여서 나타납니다.

 

출애굽기는 전반부 모두가 이야기/스토리로 기록되었고,

후반부 전부가 율법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 민수기는, 이야기 한 단락, 율법 한 단락, 이렇게 섞여 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이야기 단락이 나오고, 다시 율법 단락이 나옵니다.

 

율법에서, 모든 율법의 저자는 모세가 아니고 하나님입니다.

민수기에는 80번이나 하나님이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가 나옵니다.

뒤이어 율법 한 단락이 주어집니다.

그들이 살아야 할 방식을 일러주신 것입니다.

 

이야기 단락은, 모세가 여호와의 분부대로 이스라엘이 행한 여정을 상세히 적은 것입니다.

모세는 여호와의 전쟁기라는 다른 책을 썼는데, 21:14

이 책에서 그들과 다른 민족이 전쟁한 상황을 기록했습니다.

그들이 전쟁 때, 군인들을 싸우러 내보낼 때, 인구조사가 사용되었습니다.

 

민수기는 모세 오경 중의 한 책입니다.

이 책에는 이야기 서술과 율법이 서로 교차해서 나타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먼저, 이 책과

모세가 일생 동안 벌어진 사건을 기록한 다른 4권의 책과,

어떻게 잘 조화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모세가 백성을 인도해서 애굽을 떠나, 요단 계곡을 거쳐 모압 평지까지 왔는데요,

아쉽게도 요단강 동쪽 길을 따라 왔습니다. *가나안 건너편

 

5권에는 모세의 일생이 포함되었습니다. 그 중 민수기가, 모세의 일생 중 아주 큰 덩어리를 차지합니다.

민수기에 모세가 광야에서의 40년 대부분 사건을 기록하였습니다.

 

 

 

여기 표에 홍색, 녹색, 홍색, 녹색, 녹색과 홍색으로 표시한 것을 보십시오.

홍색은 그들이 진 치고 발걸음을 멈추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녹색은 그들이 여행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그들이 진을 쳤다가 여행하고, 진을 쳤다가 여행했던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율법 모두가 하나님께서 그들이 진을 칠 때 주신 것입니다.

(반대로) 그들이 여행했을 때는, 율법을 위반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진을 치고 발걸음을 멈출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행할 길을 가르쳐 주셨고,

그러다가 그들이 길을 떠날 때는, 하나님의 길을 위반한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치 여러 겹의 샌드위치와 같은 구조입니다.

   

1~10.       

출애굽기1-11장에는 그들이 애굽에 머문 것을 기록했고,

12-18장에는 그들이 시내산으로 옮긴 것을 기록했고,

19-40장에는 그들이 시내산에 머무른 것을 기록하였습니다.

레위기1-27장에는 그들이 여전히 시내산에 머문 것을 기록했고,

 

민수기1-10에는 그들이 아직도 시내산에 머물러 있는 것을 기록하였습니다.

이때까지 계속 전진하지 않고 머물러 있었지요. 그래서 많은 율법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멈추어 있을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율법들을 주셨습니다.

 

그들은 가만히 머물러 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듣고,

그러고 나서, 일어나 하나님의 길로 (들었던 대로) 행해야 했는데,

보통은 그대로 행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원리는 이렇습니다. 먼저 가만히 앉아서 하나님으로부터 듣고,

그러고 나서 일어나서, 명하신 대로 걸어야/행해야 하는 것이죠.

*현대인들이 먼저 가만히 머물러 하나님께 듣지 않고, 무조건 행한다는 것을 지적하는 듯

 

민수기10-12에 이르러 그들은 시내산에서 가데스로 또 출발합니다.

거기까진 11일의 여정이었지요. *1:2, 열하룻길 이었더라

 

하지만 가데스에서 한 가지 위기가 발생했는데, *정탐꾼을 보내고, 부정적 보고 발생

하나님이 가데스에서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게 13-20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잠시 후 우리가 주의 깊게 살피겠습니다.

하나님이 가데스에서 도대체 무슨 중요한 말을 하셨는지요?

 

다음으로 그들이 계속 움직입니다. 다음 두 장인 20-21에서

가데스에서 모압까지의 일정을 기록하였습니다.

길다면 긴 여정이, 2장으로 짧게 기록된 것을 눈여겨보십시오.

 

이 일정이 하나님께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이 두 장에서 어떤 것들을, 우리가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제 마침내 그들이 최종 여정 모압에 도착했는데,

그들이 두 번째로 맞이하게 되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경계선 지점입니다.

 

그들이 처음에 가나안 경계선에 도착했을 때, 거기서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38년전 가데스 바네아

지금 다시 한 번 가나안의 경계선에 왔습니다. *지금은 모압 평지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과 약속의 땅 사이에 물살이 센 요단강이 있었습니다.

그런 압박하는 장애물을 만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터인데요. *첫 번째에 진입했더라면

 

민수기 22-36, 그들이 가나안 진입을 앞두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한 것입니다.

신명이 1-34장까지 전부는, 똑같은 기간에, 즉 모압 평야에 머물러 있을 때, 주신 말씀들입니다.

 

그래서 사실 민수기에는, 그들의 수많은 행진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에는 그런 행진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출애굽기에는, 전반부(1~18)에만 행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명백한 하나의 패턴을 보게 됩니다.

백성들이 발걸음을 멈추었을 때, 하나님이 그들에게 말씀하셨지요.

이것이 너희가 살아야 될 합당한 길이니라

 

하지만 그들이 일어나 움직이기만 하면, 말썽을 일으켰습니다.

주님의 길이 아닌, 자기의 길로 행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율법 수여       

 

지금부터 민수기에서의 율법제정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부분이 비교적 재미가 없어서 제가 먼저 강의 하겠고요,

다음으로 이야기 부분을 보겠는데, 여기엔 아주 흥미로운 내용도 들어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민수기의 율법을 살펴보겠는데,

이 책에 나오는 율법은, 소위 도덕법, 시민법,

혹은 소위 말하는 사법부의 법이나 범죄에 관한 법이 아닙니다.

 

출애굽기의 율법은 범죄와 연관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민수기의 율법은, 대다수가 의식법입니다. 즉 예배에 관한  법입니다.

 

모세 율법에는 각종 다른 율법들이 모두 함께 혼합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범죄 관련 법, 교회 관련 법, 이렇게 구분하지만,

당시에는 어떤 뚜렷한 구분이 없었습니다.

당시 그들에게는, 거룩과 세속의 구별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관점에는 삶 전체가 전체적(전인적)입니다.

그래서 도덕 율법이든, 사법부의 법이든, 시민법이든, 의식법이든

모든 율법은 모두 함께 혼합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구분하거나 분류하는 삶을 아주 좋아하지요.

그래서 우리는 사법부의 법, 종교관련 법으로 구분하지만, 당시 그들은 그렇게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삶/생명의 전체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셨다고 80번이나 언급합니다.

입과 입을 맞대어, or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라는 표현은, 아주 친밀한 관계를 말합니다. *12:8, 5:4

 

모세가 하나님과 일대일로 대면하여, 하나님이 직접 모세에게 이 율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모세가 산 아래로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에 빛이 났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여전히 그의 얼굴에 남아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하나님을 대면하는 친밀함 가운데,

하나님이 그에게 성막을 어떻게 지을지에 관한 나머지 지시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부터 백성들 중에 거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산 아래로 내려오셔서, 백성들 한가운데 성막에 거하실 때

한 가지 큰 위험이 있는데, 이는 바로 하나님이 백성들과 너무 가깝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고,

과도하게 친밀하게 느낄 위험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과도히 친밀하게 느끼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과 존경심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너무 가깝게 되면,

사람의 죄성과, 하나님의 거룩 사이의 갭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이 부분이, 오늘날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아주 필요한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당연히 가까이 계시는 분이라 여긴다면,

맞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운데 계시긴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너무 과도하게 친밀함을 느끼게 되는데요.

 

그때 우리는, 그분의 거룩하심을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 그분의 긍휼, 그분의 친절, 그분의 선하심 등만 생각하는 가운데,

그분의 거룩을 소홀히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하나님과 우리를 구별짓게 합니다.

 

여러분, 민수기의 모든 율법을 주신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잊지 말라는 목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이 율법을 세 종류로 나누었는데, 모두 이것을 마음에 단단히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종류의 율법은 조심하라’.

둘째 종류의 율법은 깨끗하라’.

셋째 종류의 율법은 ‘값을 지불해야 한다’.

민수기의 율법을 이렇게 세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실 때, 우리는 반드시 이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 조심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 앞에 올 때 깨끗하여야 합니다.

셋째, 만약 당신이 거룩하게 되려면, 값을 치러야 합니다.

 

 

 

지금부터 민수기에서 이 3가지 사항을 자세히 살펴봅시다

 

1. 조심.

첫째 그들이 진을 칠 때, 반드시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장막 사면에, 반드시 정해진 장소에 진을 쳐야 합니다.

여러분, 이 그림이 모세의 책 중에 나오는, 진을 치는 질서입니다.

 

 

 

 

 

매 지파마다 성막과 성막 입구를 중심으로, 모두 고정적인 장소를 할당 받았습니다.

보통 제일 중요한 장소는 성막 입구, 바로 정면입니다.

그래서 유다 지파는 매번 진을 치는 장소가, 바로 하나님 성막 입구 정면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유다 지파에서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다 지파는 반드시 여기 정면에 진을 쳐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지파는, 각 지파의 중요성에 따라, 시계 반대 방향으로

성막을 돌아가며 진을 쳐야 했습니다.

먼저 중요한 네 지파가, 동서남북 네 면에 진을 쳐야 합니다. *유다, 에브라임, 루우벤, 단 지파.

다른 지파는 다시 각 지파의 중요성에 따라, 시계 반대 방향으로 진을 쳐야 했습니다.

 

12지파사이에도 질서가 있었습니다. 12지파가 서열 순으로 아래로 내려옵니다.

이러한 서열은 하나님이 세우신 순서입니다.

 

여러분, 이 중요한 네 지파를 보았는데, 그들은 동서남북에 진을 쳤고,

그들 4지파는 장막 사면과 제일 가까운 위치를 점했고,

또한 모퉁이에 진을 친 지파는, 성막에서 멀리 떨어진 지파입니다. *, 아셀, 잇사갈, 시므온 

 

하지만 12지파 장막과 하나님 성막 사이에는, 레위 지파가 장벽처럼 진을 쳤습니다.

레위 지파 안에 또한 세 계열로 나누었는데, 각 계열마다 정해진 위치가 있었습니다.

 

모세, 아론, 그리고 제사장이 반드시 성막 입구를 지켜야 했기 때문에,

그들의 텐트는 반드시 여기(성막 출입구)에 진을 쳐야 했습니다.

 

성막에는 성소 입구와 지성수 입구의, 두 입구가 있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 의해, 겹겹의 호위를 받으셨습니다.

 

여러분, 고고학자들은 아주 재미있는 사실 한 가지를 발견했는데,

고대국가의 군대가 어떻게 진을 쳤으며,

애굽 바로의 보병과 기병이, 각각 특성에 따라 다르게 진을 배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진을 친 이러한 형식은, 고대 애굽의 군대가 진을 친 형식과 똑같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대학공부 할 때, 이런 진 배치 형식도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내 백성은 군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모세 교육보다, 하나님이 알려주신 방식입니다.

군대의 주둔지(캠프)가 보호되듯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진을 떠날 때는, 조금 복잡하지만, 환상적인 질서가 있었습니다.

민수기에 그 규례를 자세히 읽을 수 있습니다.

어떤 지파는, 하나님 장막을 메고 가는 사람들보다, 앞서서 가야 했고,

다른 지파 모두는, 하나님의 장막 뒤에서 따라가야 했습니다.

 

3시 방향에서, 시계 바늘 돌듯이, 안에서 밖으로, 차례로 출발하였습니다.

이러한 순서대로 한 지파 또 한 지파씩 행진했고,

그래서 진을 쳐야 하는 곳에 도착하면,

바로 거기서 12지파가 쉽게/도착 순서대로 (안에서 밖으로) 진을 칠 수 있었습니다.

 

모든 일을 아주 상세히 지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장막 설비와 가구는 누가 들어야 하고,

커튼은 누가 운반하며, 어떤 순서로 운반해야 하는지까지, 상세히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아주 상세하고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까다롭게 느껴질 만큼 상세히 지시하였을까요?

이런 방식은, 군사 작전에 있어서 매우 효과적일 뿐 아니라

실제로 진을 치고 야영을 할 때도 매우 효율적입니다.

 

(이렇게 세밀하게 지시하신 이유는)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의 진 안에서는 부주의하게 굴지 말고, 주의 깊게 살아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거룩 때문

그 안에서, 부주의한 태도는 아주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잘 쓰는 표현으로 말하면 편하게/아무렇게나입니다.

옛적 방식은 무조건 다 버려버리고, 세상 문화가 가는 방향을 따라서

교회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식도, 점점 캐주얼하게(편하게, 아무렇게나) 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소한 일이긴 하지만, 예배를 언제 시작하는지도 모릅니다. *찬양 부르다가..

심지어 예배를 시작했는지/아직 시작하지 않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현대음악 찬양을 비판하시는 듯

 

제가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게 말씀하신 이 모든 것(특히 민수기)을 생각해 볼 때,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더러 조심하라고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시오니 너희들은 조심하여 일을 하고, 마음대로 하지 말고,

경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수기에는, 사람이 진지하지 못하여, 경솔해서 지은 죄들이 나옵니다.

진지하지 못하여 안식일을 범한 것은, 죽임 당할 죄에 해당했습니다.

고의적(의도적)이 아니고, 경솔만 했는데요, 벌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옷에 반드시 술을 매달아, 기도를 기억나게 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한 맹세에 대해 진지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맹세한 것을 더욱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합니다.

 

사사기에서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맹세했지요. 그가 승리해서 돌아올 때

자기 집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것을 하나님께 드리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자기 딸이 가장 먼저 나와서 환영했습니다.

하나님께 이미 맹세한 것이라서 반드시 지켜야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부주의 careless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민수기에서 어느 맹세에 재미있는 한 가지 조건이 덧붙여져 있는데,

만약 아내가 하나님께 맹세하면, 남편이 24시간 동안, 아내의 맹세에 동의 할지/말지를 고려합니다.

 

남편이 동의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저는 아주 중요하게 봅니다. *아내의 맹세가 효력이 없어짐

 

많은 크리스천 자매들은, 남편이 주님을 믿지 않지요.

가끔 자매들이 우리 사역에 헌금을 보내는데, 저는 매번 물어보기를

이 헌금에 남편의 동의를 구했어요? 당신의 남편이 허락했습니까?’

이렇게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그래서 아내의 맹세는, 반드시 남편의 인준을 거쳐야 효력을 발생하며,

그래서 남편에게 24시간 조용히 고려할 시간을, 율법에 주고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가 하나님께 한 맹세를 동의 할지/안 할지를 생각해보는 시간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은 얼마나 조심스럽게 율법을 주셨는지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가져야할 태도는 조심!” 입니다.

 

2. 두 번째로, 율법은 <깨끗>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 안에서는 반드시 불결 하나 없이 깨끗해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구에 대한 규례도 아주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대변을 볼 때도, 삽을 들고 광야에 가서, 구멍을 파서 해결하고 묻어야 합니다.

주님을 위해, 진 안을 깨끗하게 유지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더러 이렇게 하라고 분부한 것은, 위생 또는 병균의 이유만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결하신 분이시고, 그 분이 진 가운데 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진을 청결케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입니다.

 

교회가 만약 소홀히 하여, 교회당을 더럽게 방치한다면,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모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몸의 배설물을 어떻게 처리하라는 율법 규례를 주신 것입니다.

다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이 시내산에서 떠나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사람마다 반드시 목욕하여 자기를 정결케하라고 하나님이 명령하였습니다.

 

그래서 옛날 신자들은, 주일날에 깨끗한 옷을 입고 교회에 갔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신약의 우리는, 이러한 옷을 빠는 규례의 구속을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배에 나오는 마음은 진지하게 가졌다 하면서도,

자기가 입은 옷이, 자기의 진지한 마음을 정반대로 나타내 보일 수 있으므로 조심합시다.

제 말뜻을 이해하시지요?

 

 

당연히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지요. 그분은 우리 마음속의 정결을 요구합니다.

이것이 우리 몸의 깨끗함 보다 더욱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단에게 묶인 사람은 외적으로도 항상 불결합니다. 당신은 주의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하지만 그런 사람이 예수를 믿으면 누구 뭐라고 하지 않아도

자기 스스로 자신을 깨끗하게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외적 태도로 그 사람의 내적 상황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거룩하면 그 다음으로 정결해 진다는 것입니다.

민수기에서 너의 진 안을 깨끗이 유지하라고 명확히 말하고 있습니다.

 

 

3. 세 번째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죄인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제사 드리는 것을 보면, 돈을 얼마나 많이 써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사장은 매일, 매주, 매월마다 반드시 백성을 위해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매일 바깥 뜰에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 외 그들이 또한 매주 한번씩 제사를 드려야 하고,

매월 한번씩 특별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제사를 이렇게 자주 드리니 짐승도 자주 죽임을 당하지요.

이러니 얼마나 많은 돈이 지불되겠습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피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죄 사함 받자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감사한 것은 우리는 그분이 이미 모든 값을 지불했기에

다시 대가를 치를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우리도 그 때 살았으면 많은 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항상 제일 좋은 짐승을 드려야 했고, 또한 제사장의 생활비도 부담해야 했습니다.

 

제사장과 레위 지파의 생활비는 다른 지파들이 부담하였던 것입니다.

다른 지파들은 그들더러 하나님의 장막을 보호하라고 돈을 지불하였는데,

이는 많은 돈을 지불해야 했습니다.

반드시 십일조를 해야 했고, 일반 감사를 드려야 하며, 또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나님을 우리 중에 모실 수 있습니다.

민수기에 기록한 율법이 사실상 아주 깊은 영적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반의식 anti-ritural 문화속에서 자라서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가 갈수록 마음대로이고, 경솔하다고 저는 봅니다.

 

민수기는 우리더러 이렇게 하면 틀린다고 깨우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응당 적합한 태도로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말하면, 내가 지금 하나님 앞에 나와 그분과 가까이 하려고 할 때

다시는 양이나 비둘기를 가지고 올 필요 없이, 제사를 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또한 내가 아무 제물도 가지고 올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닙니다.

제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은, 신약 시대도 구약 시대와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제가 말하는 것은, 또한 십자가가 아닙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우리는 찬양의 제사를 드려야 하고, 감사의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합니다.

 

왜 이것들을 제물이라고 합니까?

이러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제가 한 말을 이해합니까?

우리는 예배를 위해 반드시 제물을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린양을 준비할 필요 없지만, 하지만 우리는 찬양은 준비할 필요 있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이  이번에는 시간이 없어서 예배준비가 되지 않아서
그래서 그냥 성령님께 맡기고 성령의 인도로 하자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제가 인상을 찌푸립니다. 결과적으로도 성령이 그 예배를 인도하시지 않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형식을 소홀히 합니다.

저는 예배를 위해 완전히 준비하지 않은 것을 동의하지 않고,

또한 한 사람만 준비하는 것도 동의하지 않습니다.

 

저는 매 사람마다 모두 잘 준비되어서 하나님께 경배 드리리라고 믿습니다.

내일 아침 우리 형제가 예배를 인도할 때

모두 예물을 준비하여 하나님 앞에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혹 어떤 분은 찬양, 어떤 분은 감사, 어떤 분은 본문 동독,

어떤 분은 시와 찬송을 맡을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 말하기를 모임을 할 때 사람마다 모두 시와 찬양이 있고,

가르침이 있고, 계시가 있고, 방언과 방언 통역도 있다고 합니다.

 

기다리면 있게 될 것이라는 것이 아니고, 사람마다 모두 있어 진다는 것입니다.

제물을 준비하여 하나님의 뜰에 들어오라고 합니다. 이것이 민수기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와 경배 할 때, 반드시 준비하여 오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사전에 준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경배를 드릴 때 항상 20분 동안 몸을 풀지요.

준비를 하는데 대가가 필요하고, 시간이 필요하고, 생각 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경배하면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가 아닌 우리가 좋아하는 대로 변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는 시와 찬양을 좋아하고, 나는 성시를 좋아한다고 하는데,
이것들 모두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이냐입니다.

 

무엇이 그분을 기쁘게 합니까? 예배드릴 때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분을 송축하는가입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그래서 하나님이 민수기에서 말씀하시기를;

이렇게 경배하라, 조심하고정결하고 대가를 치르라.

나는 백성들 중에 거하고 있는 거룩한 하나님이시다. 너희는 반드시 이러한 태도를 구비하여라.

 

여러분, 만약 우리가 이렇게 할 수만 있다면

신약 성경에서 말하기를 우리의 경배는 향기로운 제사로 변하여

하나님이 흠향하고 아주 기뻐하신다고 하였습니다.

 

전에 그분이 양고기 구운 냄새를 좋아한다고 했지요. 저도 양고기 구운 냄새를 좋아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냄새를 매우 좋아합니다.

 

우리의 찬양 제사도 하나님이 아주 기뻐하실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 말하기를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감사와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라고 하였습니다.

당신이 아마 이것은 구약 성경의 말씀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사실 이것은 신약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는 당연히 새 시대 방식으로 뛰며 찬양하며 경배하지요.

하지만 중점은 하나님이 우리더러 어떻게 그분께 경배하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한가지를 아주 명확하기 말씀하셨는데,

바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경배하기 전에 준비를 잘 하라는 것입니다.

몸만 오면 되는 것이 아니고 준비하여 오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응당 찬양과 감사의 제사를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내일 아침 기회가 있는데

우리가 이렇게 (준비)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여러분, 다음 단원은 민수기의 이야기의 진술 부분입니다.

 

*초벌번역 : LCY

*영어타자 : Chris

*교정 및 자막 :  Ji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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