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는 시험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당시 광야로 이끌려 나가셔서, 6주 동안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아주 어려운 상황가운데서, 실질적인 테스트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아직 약속의 땅에 들어가신 것은 아니고,
애굽에서는 나왔지만, 그 중간에 처해 있습니다.
마치 약혼 상태와 같은데, 미혼과 기혼의 중간상태에서 시험받는 것과 같습니다.
이쪽 저쪽을 다 기웃거려 보지만, 아직 완전히 결정을 하지 않은, 시험의 상태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처한 광야도, 하나의 실제적인 시험 기간이었는데
아쉽게도 이스라엘이 이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시내산 이후에 언약적 관계에 들어감
▶이러한 사실을 생각하면서, 시내산을 떠난 후, (다시 지도를 보십시다)
이스라엘은, 과거와는 색다르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게 되었는데요,
그들은 시내산을 떠난 후에도, 과거와 똑같은 죄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과거와 달라진 점은, 이제 그들에게는 징벌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적 관계, 즉 결혼관계를 맺었기 때문에,
이제부터 죄를 지으면, 거기에 따르는 징벌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시내산 전에는, 그냥 사귀는 기간이었고, 그 후부터는 결혼을 한 단계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시내산 이전보다 더욱 엄격히, 그들을 다루시는 것입니다.
그들 자신도 하나님과의 계약을 지키겠다고 서약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순종하면, 시내산 이전보다 더욱 넘치는 복을 받겠지요.)
그래서 이제 그들은, 만약 순종하면 과거보다 더 큰 복을 받고,
거역하면 과거보다 더 큰 저주를 받게 되었지요. *결혼/언약 관계에 들어갔기 때문
그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하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부터 너희가 만약 올바르게 행하면 복을 받고,
잘못되게 행하면 저주를 받으리라. 너희는 이 조건을 받아들이겠느냐?’
그들이 대답하기를 ‘네 계약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올바르게 행하겠습니다.’
그런데 올바르게 행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은 쉽지만,
그 언약을 지키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였습니다.
어쨌거나 하나님은, 이제부터 그들과 2가지 방식으로 얽매이게 되었는데,
복을 주시든지, 아니면 벌을 주시든지.. 둘 중 하나였습니다.
시내산 결혼식 전에는 이렇게 할 필요가 없었지요,
하지만 지금은 언약을 맺은 상태여서, 하나님도 약속/맹세하신 것을 반드시 지켜야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이스라엘 그들에게 주신 율법에는 목적도 있고, 또한 한계도 있음을 봅니다.
율법의 목적은, 그들이 의/올바름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하지만 한계는, 그들이 율법을 지키지 못하였습니다.
율법은 그들이 의롭게 살도록 도울 수 없고, 율법은 여러분을 바르게 살게 도와 줄 수 없고,
율법은 당신에게 옳고 그름을 지도할 뿐, 당신이 바른 길로 사는 데는, 실제적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오순절 날에 주신 율법으로는 부족하여,
많은 세월 이후, 오순절에 다시 성령을 주실 필요가 있게 된 것이지요.
초자연적인 능력(성령)의 도움이 없으면, 우리는 율법을 지킬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지키겠다고 서약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지도자 세 사람의 실패
지금부터 이스라엘 지도자들이 어떻게 실패한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앞서 율법은 실패한다고 했지요?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사실 한 집안에서 나왔지요.
두 형제와 한 자매인데 참 재미있어요.
하나님은 한 집안 사람들을 사용하여, 한 민족, 한 나라를 이끌게 하셨지요.
모세, 아론, 미리암, 이렇게 두 형제와 한 자매입니다.
성경에는 그들의 잘한 점, 그리고 그들 성품상의 강점들을 언급하였습니다.
▶모세는 자신에 대해 기록할 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하였는데,
자신에 대해 스스로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주 대단하지요.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나는 우리 사무실/공장에서 제일 겸손한 사람이야’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모세는 확실히 겸손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해도 괜찮습니다.
예수님도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게 배우라’ 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그만큼 성숙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모세와 예수님은 그렇게 말해도 됩니다. 실제로 그랬으니까요.
모세는 참으로 온유한 사람인데, 그래서 그는 자신을 위해 절대로 변호하지 않았습니다.
모세의 제일 큰 장점은, 다른 사람들이 그를 비난해도, 부당하게 대우를 받아도,
그가 배신을 당해도, 그는 절대 스스로 방어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주님이 자기를 변호/방어해 주시도록 내어맡겼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응당히 배워야 할 점이지요. 이것이 바로 그의 온유함입니다.
이것은 연약한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변호하려 하지 않는 자세이지요.
모세는 선지자이고, 제사장이며, 그런데 왕이라고 해도 됩니다.
그는 이 3가지 역할을 겸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3가지 신분으로 불려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선지자가 분명하고, 선지자로 불렸는데,
그는 확실히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말씀을 들어서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백성들을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볼 때, 제사장 역할도 했습니다.
또한 그가 백성을 이끌고 전쟁터에 나가는 모습을 볼 때, 왕의 역할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공식적으로 왕이라고는 불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가 이 3가지 역할을, 모두 하셨다고 봅니다. *역할은 3가지를 다 했지만, 공식적 신분은 선지자
▶아론은 2가지 역할만 했는데, 모세의 선지자였고, 또한 제사장이었지요.
아론의 가문은 대대로 제사장 직분을 행했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모든 제사와 의식을 주관했습니다.
▶미리암은 여선지자였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선지자, 제사장, 왕의 3역할,
아론은 선지자와 제사장의 2역할,
미리암은 여선지자의 1역할,
이렇게 세 사람은 은사를 나누었는데, 흥미롭습니다.
여기서 여자도 선지자로 섬기는 것을 보는데, 구약 성경뿐 아니라 신약에서도
예언을 여자들도, 남자처럼 하는 것을 봅니다.
빌립의 네 딸도 예언했고요,
미리암의 예언 은사는 특별히 노래로 전달되었지요.
예언과 음악은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다윗이 선택한 성가대 지휘자는 언제나 선지자였는데
그는 이를 ‘선견자’라고 불렀지요.
바로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에스겔을 봐도, 음악과 예언은 연관성이 있습니다.
그는 종종 ‘음악을 연주하시오. 나는 예언을 하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음악에 어떤 힘이 있다는 점을 이해합니다.
경건한 음악이 나오면, 예언의 영이 보다 쉽게 활동하게 됩니다.
미리암에게도 이런 일이 있었잖아요.
▶1. 미리암의 실패
하지만 여러분, 이 세 명의 지도자들이 무슨 잘못을 범하였지요?
순서를 거꾸로 미리암부터 살펴봅니다. 미리암의 잘못은 질투심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존경 받기를 바랐고, 그 결과 나중에는 오빠 아론까지 끌어들이지요.
그래서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를 질투했는데, 이는 같은 집안에서
형제 중 누가 자기보다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면, 불편한 마음이 쉽게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가 중요한 지도자적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질투를 느낄 필요가 없었는데
아쉽게도 그만 질투하고 말았지요.
그래서 미리암은 ‘문둥병’이 생기는 징벌을 받았는데,
이것은 아마 한센병이기 보다는, 그냥 건선이나 어떤 피부병일 것이고,
하지만 고칠 약은 없는 질병이었지요. *문둥병(히, 짜라)은, 문둥병 또는 피부병을 뜻함. 민12;10
그가 회개하고 회복되기까지 7일동안 진밖에 있었지요.
후에 미리암은 가데스에서 죽습니다. 민20:1
그래서 더 이상 미리암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미리암은 이로써 사라진 것입니다.
▶2. 아론의 실패
두 번째로 사라진 지도자는 아론인데, 그의 문제도 모세처럼 존경을 받고 싶은 질투심이었습니다.
전에 아론이 미리암과 함께 모세를 비판했는데,
여러분, 질투하는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지 핑계를 찾아서 혹은 명백한 이유를 대면서 비판합니다.
사실은 아무 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그렇게 하지요.
두 사람이 비난한 이유는, 모세가 결혼한 여자 때문인데, 그들은 승인하지 않았습니다.
모세는 구스 여인과 결혼했는데, 출애굽 당시에 따라 나왔던 이방여인인데, 히브리인이 아니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모세를 비판하지 않았는데, 미리암과 아론은 그를 비난하였지요.
이것은 좋은 기회였습니다. 두 사람은 모세를 어쨌거나 반대하고 싶었는데,
이 일은 모세를 비판할 좋은 구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절대 그래서는 안 되네요. 지도자는 히브리인과 결혼해서
모범을 보여야지요.”라며 비판했지요.
그런데 아론도 곧 죽었습니다. 가데스(미리암 사망)와 그리 멀지 않는 호르 산에서 죽게 되지요. 민20:26
그래서 그들 두 사람은 질투하며 스스로 존경을 추구한지 얼마 안 지나서
둘 다 죽었는데, 아론이 죽을 때 100세가 넘었습니다.
▶3. 모세의 실패
이젠 모세 한 사람만 남게 되었는데, 아쉽게 모세도 잘못을 범하여 넘어졌어요.
그가 백성들에 대한 인내심이 없어졌는데, 그렇다고 우리 중에 누가 모세를 비방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도 똑같지요.
신약성경에서 말하기를 ‘그(하나님)가 광야에서 40년이나 백성들을 참았다’고 하였습니다. *행13:18
그런 일을 모세가 해냈습니다. 이 얼마나 막중한 임무였습니까!
200만 백성이 끊임없이 원망하며 불평하고, 또한 서로 싸우니, 그들을 중재해야 했습니다.
그들은 서로 머리가 터지게 싸웠습니다.
모세는 이런 백성들에게 질려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지도자가 만약 아래 사람들에 대한 인내심을 잃으면, 이와 같이 낭패를 당하게 됩니다.
모세가 후에 큰 잘못을 저질렀는데, 이는 바로 그가 지팡이로 석회암 반석을 내려 쳐
반석에서 물이 흘러 나와 백성들이 마신 사건입니다.
시내산의 석회석은 물을 저장하는 특성이 있어서, *지금도 그러합니다. 소위 암반수
그래서 시내산 광야에는 사실 지하에 많은 물이 저장된 저수지들이 있으며,
그 물은 보통 반석 안에 가두어져 있습니다.
모세가 당시 백성을 위해, 지팡이로 반석을 두드려서
물이 흘러 나와 백성들에게 마시게 하였습니다.
아쉽게도 두 번째 물이 부족한 상황이 닥쳤을 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모세야, 이번은 지팡이로 반석을 치지 말고, 그냥 명령만 하면 물이 나올 것이다.
네 말이 떨어지기만 하면, 반석에서 물이 나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지요.
그러나 모세는 불평하는 백성들을 참지 못해서,
하나님의 분부를 주의 깊게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너희들이 물을 마시려고 하느냐?’하면서, 지팡이로 반석을 두 번이나 내리쳤습니다.
하나님은 ‘네가 왜 나의 분부대로 하지 않았느냐?
네가 이일 때문에 약속의 땅을 보지(들어가지) 못하리라’라고 말씀하였어요.
이 징벌이 너무 심한 것 같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만약 지도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자세히 듣지 않으면
백성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생각해 보십시오.
모세가 백성들에게 화를 내고, 인내심이 고갈되었고, 자기의 혈기를 부리다가,
그런 일에 휩쓸리다 보니, 모세는 하나님이 명하신 바를, 똑똑히 듣지 못한 것입니다.
결국 이 일로 인하여, 모세는 이런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너는 약속의 땅을 바라보기는 하지만, 들어가지는 못할 것이다’
성경은 아주 정직하지요? 여기에 이스라엘 지도자인 두 형제와 한 자매가 나옵니다.
민수기에 보니까, 세 사람 모두가 죄를 범하였습니다.
우리 지도자들은 여기서 교훈을 얻어야 합니다.
하나님 백성을 인도하는 일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리더는 올바르게 행해야 하며, 하나님의 방식으로 리더해야 합니다. *아니면 징계가 따릅니다. 보시다시피요,
◑고라의 반역
(지도자의 잘못 말고) 민수기에 나오는 개인의 잘못을 지금부터 살펴봅시다.
그 중에 제일 드러나는 사람이 바로 고라였지요.
민수기 16-17장에서 고라가 반역을 주도하였다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아론과 그의 가족만 제사장 직을 독점할 수 있다는 규정에 화를 냈습니다.
‘왜 다른 사람은 제사장 직을 담당할 수 없느냐? 왜 아론만 그 직분을 가지느냐?’
이렇게 아론의 제사장직에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흥미로온 것은, 그가 불만을 표시하니, 다른 사람들도 덩달아 따라했습니다.
신기한 것은, 한 사람이 불만을 하니, 다른 사람도 본능적으로 따라서 불평한다는 것인데,
이 현상을 주의해 보셨습니까?
교회에서 이런 현상이 있고, 특히 초신자에게 이런 현상이 발생합니다.
한사람이 불평의 목소리를 내니, 다른 사람들이 즉시 거기로 모여든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거의 본능적으로, 자기와 비슷한 무리를 찾아내서, 서로 불평을 주고받습니다.
그래서 얼마 되지 않아서, 고라를 중심으로 250명이 합세하여,
모세의 권위와 아론의 제사장직분을 도전하였지요.
‘당신이 왜 리더십을 독점하느냐? 우리는 당신을 선출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이 임명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일어나 지도자에게 반항했습니다.
모세와 아론이 자기들 스스로 지도자로 임명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선택하여 지도자가 되게 했다는 것을 믿지 않았거니와
심지어 ‘너희는 대중을 데리고 약속의 땅에 들어갈 능력이 없다’라고 말했는데,
이런 말은 정말 역겨운 말이지요.
‘너희는 우리를 거느리고 약속의 땅에 들어갈 능력이 없고, 제사장 직분 또한 독점하였다’하기에
모세가 말하기를 ‘좋다, 그럼 우리 하나님이 도대체 누구를 지도자로 택하였는지 실험해보자’라고 하였지요.
그가 또 말하기를 ‘고라와 너희 무리는 저 덤불에 가서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오라.
아론도 저 광야 덤불의 나뭇가지 하나를 꺾어오시오.’
그리고 그들은 그 꺾은 나뭇가지들을 성소 하나님 앞에 놓고, 밤을 지냈습니다.
아침이 되니 한 나뭇가지에만 싹이 돋아났고, 그 위에는 꽃이 피었으며,
다른 나뭇가지는 모두 말랐지요. 그 싹이 난 가지는 아론의 것이었지요.
그날부터 그들은, 아론의 싹난 가지를 언약궤 안에 넣고 보관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이로 말미암아 증명하시기를, 아론은 내가 선택한 것이지
자체로 지도자가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고라의 반란은 이로써 끝났지요.
모세는, 회중에게 반역자들의 장막을 멀리하라고 말했어요.
그때 하늘에서 불과 번개가 내려와서 그들의 장막을 쳐서, 모두 멸망시켰지요.
고라와 일부 반역자들은, 놀라서 재빨리 도망갔지만,
진흙 늪mud flood에 빠져서 죽었습니다. *민16장에는, 고라가 먼저 땅이 갈라져 죽고, 후에 250인의 장막이 불에 탔다고 나옵니다.
진흙 늪mud flood는 시내광야에서 아주 위험한 자연 현상인데,
그 겉 표면 층은 아주 딱딱한데, 보통 땅 같아 보여요.
그러나 그건 마치 연못 위 얇은 빙판과 같습니다.
태양이 표면을 말려서 딱딱하지만, 표면 바로 아래는 무시무시한 진흙웅덩이가 있지요.
마치 모래로 된 늪과 같지요. *한 번 빠지면 못 헤어 나옵니다.
<아라비아의 로렌스> 영화에, 어떤 사람이 ‘진흙 늪’에 빨려 들어가는 장면이 나오지요,
고라와 그를 따르면, 번개에 맞아 죽든지, 결국은 땅이 갈라져 죽든지, 모두 이렇게 죽었지요.
만약 당신이 시편을 읽으면, 거기에 많은 시편이 고라의 자손이 썼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사랑스럽고 감동스런 시들이지요. 여러분은 그걸 생각해 보셨습니까? 슬프지요?
고라의 살아남은 자손들은 고라의 어리석음을 행하지 않고,
성전에서 찬양을 하는 사람들이 되었지요.
그의 자손은 구원 받았는데 하지만 그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신약성경 유다서에서 고라의 예를 언급하는데,
신자더러, '하나님의 세우심을 절대 의심하지 말고, 마음으로 질투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일반 백성들의 실패
▶그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체적으로 범한 죄는요?
제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실패했는데,
-먼저는 지도자들이 모두 실패한 것을 얘기했고, *미리암, 아론, 모세
-그리고 어떤 일부 중간 지도자급 백성들이 실패한 것을 지금까지 말씀드렸습니다. *고라 일당
이제부터 슬프게도 이 실패담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지요.
-민수기에는 두 사람만 제외하고,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200만중에서 단 두 사람만 죄를 범하지 않았다는 것은, 너무 작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몇 가지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는데,
사실 그 중 한 가지는 보편적인데, 그것을 범하고 또 범하곤 하였지요.
그 외 또한 특정한 3가지 특별한 잘못이 있었지요.
먼저 보편적인 잘못을 살펴보십시다.
백성들의 보편적인 문제는 원망불평 이었습니다.
원망불평이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아주 많습니다!
어떤 사람이 저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날씨를 불평하면,
하나님이 우주를 이렇게 관리하시느냐는 원망이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또 혹자는 말하기를 ‘원망불평에는 재능이 필요 없고,
원망불평에는 머리로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고,
원망불평에는 인격도 필요 없고, 어떤 자기부인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말 맞는 말이지요. 그렇지요?
세상에서 제일 하기 쉬운 일이 원망불평입니다.
이 원망불평이, 백성들의 가장 큰 실패요인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장막 안에서 불평했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듣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떤 분이 듣고 계셨는데,
바로 하나님이 듣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막 안에 계시지만, 또한 모든 곳에 편재해 계시므로
그들이 자기 장막 안에서 내뱉는 불평들을 다 들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자기들은 자기 장막 안에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자기들의 말하는 것을 모르실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그건 큰 실수였습니다.
백성들이 물이 없다고 원망했고, 언제나 늘 똑같은 음식에 대해 원망했는데,
그래서 그들은 마늘, 양파, 물고기, 오이, 멜론, 부추가 없다고 원망했습니다.
이런 음식들이, 그들이 제일 그리워한 것들이었지요.
한번은 제가 어느 선교사를 인터뷰했던 적이 있습니다.
‘선교사님이 남미에 있을 때, 제일 많이 생각나는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그분이 대답하기를 ‘영국의 효모 소스(Mermaid)’라고 하였습니다. 아주 정직하지요.
그들이 매일 먹은 것은 ‘이게 뭐냐(만나)’, ‘이게 뭐냐’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이게 뭐냐(만나)’뿐이었습니다.
그들이 옛날 음식 생각이 나서 원망과 불평이 연달아 나온 것이지요.
불만족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다른 어떤 죄보다 더 강한 해를 끼칩니다.
그 사실을 믿으십니까?
하지만 교회에서는 일반적으로 이러한 불만족/불평의 죄를, 교우들에게 정죄하지 않지요.
하나님은 그들의 불평을 들으셨고,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나를 열 번이나 시험하였노라’ 민14:22
그들이 적어도 열 번은 원망했고, 그때마다 문제가 되었지요.
하지만 백성들은 또 다른 3번이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데, 그래서 여정을 돌아가야 했지요.
▶1. 그 첫 번째는 가데스 오아시스에서 범했는데, 이것이 40년 중의 최악의 잘못이었지요.
이 오아시스가 지금도 그 자리에 있어요. 사해 남서쪽 66마일쯤 되는 곳인데
아주 아름다운 오아시스이지요.
거기서 조금 더 가면 또 사막이고, 그 다음이 바로 약속의 땅입니다.
그들이 네게브(남쪽이란 뜻) 사막의 마지막 오아시스에 도착했을 때,
거기서 각 지파에서 한 명씩 12정탐꾼을 보냈어요.
그래서 약속의 땅이 어떠한지를 보고 오라고 보냈지요.
그들이 40일간 정탐하는 동안, 몇 명은 가나안의 남쪽인 헤브론 쪽으로 갔고,
그 외 대부분은 북쪽 끝까지 갔는데, 그들이 거기서 아주 비옥한 땅을 찾았습니다. *샤론 평야
그러고 나서 그들이 돌아왔지요. (이 사진이 이스라엘에서 찍은 것인데,
이 그림이 포도주가 뚝뚝 떨어지는 땅 같지 않습니까?)
그들이 약속의 땅에서 이러한 포도송이를 메고 돌아왔어요.
하지만 그들은 '우리는 그 땅을 점령하지 못한다'고 말하였지요.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주 아름다운 땅이긴 하지만
아쉽게도 우린 영원히 거기를 점령하지 못합니다.
그 땅은 우리를 삼키는 땅이며,
우리가 그 포도열매를 삼키기는커녕, 그들에게 삼킴을 당할 것입니다.
다만 두 명의 정탐꾼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분이 이미 우리를 이렇게 먼 길도 데리고 나오셨는데,
우리를 광야에 버리지 않으실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들어갑시다!’
하지만 다른 10명의 정탐꾼은 말하기를 ‘안 됩니다.
우리가 애굽에서 나오지 말았어야 했는데요, 애굽을 떠난 것은 큰 잘못이었습니다.’
이 때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이 자기들을 이런 곳에 데리고 왔다면서
돌을 들어 모세와 아론을 쳐서 죽이려고 했지요.
지금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이 사건이 벌어진 때가,
애굽에서 떠나온 지 3개월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은, 자신들을 노예 생활에서 데려온 모세와 아론을 죽이려 할 만하지요.
참 비극적 상황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도, 그 땅은 성벽의 방비가 매우 견고하고,
그곳 백성들도 자기네들 보다 많이 거대하다는 사실에는 동의했습니다.
10정탐꾼들은 그 땅 백성들이 거인 같다고 강조했습니다.
거기에 거인들이 살고 있고,
애굽의 노예들이었던 자신들은, 체구가 작다는 것입니다.
옛적부터 보면, 거기에 거인들이 살았었고, *네피림같은
그래서 그들과 비교해 보면, 자기들은 작았지만, 가나안 사람들은 건장했습니다.
그보다 더 난관은, 그들 도시 주위에는 방어벽이 둘러 있었습니다.
이때, 여호수아와 갈렙, 그리고 모세는 백성들에게 아주 멋있는 말을 하였지요.
‘하나님이 우리를 그의 어깨에 메고 가실 것이다’.
*민14:8, 16, 24절에 ‘데려간다’는 히브리 동사 ‘보우’에는, ‘어깨에 메고 간다’는 뜻도 있음.
개역에는 ‘인도하여 들이신다’로 번역.
어릴 적에 아버지의 어깨에 타고 다니던 기억이 나는데, 그 때 저는 거인 같았습니다.
저는 모든 사람들보다 더 컸고, 그리고 높은 담장 너머도 볼 수 있었습니다.
모세가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들을 어깨에 메면, 너희들은 거인 같아서
그 거대한 성벽을 내려다 볼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믿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눈으로 본 상황과 사람의 말을 더 믿으려고 하였지요.
그들은 민주주의를 채택했고, 그래서 다수의 결정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민주제도를 채택하지 않으며,
또한 다수의 의견도 크게 틀릴 수 있지요.
여기서 10대 2로 그들이 다수의 의견을 믿었고, 이리하여 패배주의가 시작된 것입니다.
10명 정탐꾼과 2명 정탐꾼이 한 말은 아주 큰 대비가 있어요.
10명 정탐꾼이 말하기를 ‘우리는 그 땅을 점령할 수 없습니다.’
두 정탐꾼이 말하기를 ‘그렇지만 하나님은 할 수 있습니다.’
이 둘 사이에 모순은 없지만(둘 다 일면 틀린 말이 아니지만), 문제는 당신 마음에 어느 것을 믿느냐 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말하기를 ‘이것이 당신이 우리에게 들어가라는 그 땅이요.’
하지만 모세는 말하기를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땅입니다’.
우리는 쌍방의 의견이 아주 다르다는 것을 다시 볼 수 있어요.
백성들의 말에서 그들이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한때 우리 교회에서 장로회의 할 때 결정하기를,
회중들이 ‘문제’와 ‘어려움’이라는 두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어요.
대신에 이를 바꾸어서 ‘기회’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효과가 정말 너무 놀랍게 나타났어요.
어떤 사람이 즉시로 어떤 제안을 할 때, ‘제가 우리교회에서 어떤.. 기회(문제)를 보는데요..’
‘어려움’이란 말을 ‘기회’란 말로 바꾸니, 우리의 생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적극적 사고방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는 말에서, 우리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볼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항상 반응하기를 ‘제가 보기에 여기에 큰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 여기에 어려움이 아주 많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어떤 교우들은 항상 2가지 이유를 대면서, 새로운 일을 시도하는 것을 거부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이것은 제가 해 보았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더러 낙심케 하고, 원망과 불평이 일어나고,
부정적 생각을 갖게 하는데, 비관주의로 빠지게 되지요.
이때 모세가 중재하지만, 하나님은 맹세하시기를
이 세대 가운데 아무도 그 땅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맹세하시는 것은, 아주 엄중한 일이지요.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나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기를, 너희들은 저 땅에 절대로 들어가지 못하리라’ 민14:28~35
하나님은 맹세하실 때, 하나님이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십니다.
어떤 것도 하나님 자신보다, 높은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였는데,
(하나님은 여러 번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셨습니다.)
‘너희들은 절대로 저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내 자신을 가리켜 맹세하는데, 너희들은 나의 안식에 절대로 들어오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시95:11
우리는 하나님의 맹세를 엄숙히 보아야 합니다.
정탐꾼들이 40일 동안 그 땅을 정탐하고 와서,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 정탐한 날을, (너희가 부정적으로 결론내렸으니) 1일을 1년으로 계산하여
너희들은 광야에서 40년을 보내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목전에서 지은 죄악에 대한 징벌이였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은 민수기의 전환점이 되었는데요,
여기는 다만 여정의 삼분의 일(1/3) 지점이고, 나머지(2/3)는 자세히 여정을 기록할 필요가 없었어요.
그 나머지 부분은 광야에서 떠돌아다니다가 모든 남자들이 모두 죽었다는 것입니다.
*가데스는 시내산에서 모압(여정 끝)까지의 1/3
이것은 첫 번째 대 위기였고, 제일 엄중한 것이기도 합니다.
한 세대의 백성이 40년을 낭비했고, 아무 데도 갈 데도 없었습니다. 아주 슬픈 일이 아닙니까?
▶2. 다음 위기는 이스라엘이 깊은 협곡으로 내려왔을 때 일어난 일인데,
이 계곡은 세계에서 지표가 제일 크게 갈라진 곳입니다.
이 협곡/계곡은 갈릴리에서 시작해서, 사해를 거쳐, 다시 조금 솟아오른 후 다시 아래로 내려갔어요.
이 협곡은 계속 홍해로 이어져서, 에티오피아를 거쳐, 케냐의 대 협곡을 거쳐, 계속 아래로 이어지지요. *Great Rift Valley
그래서 지구 표면에서 제일 크게 갈라진 곳(협곡)으로 알려져있으며,
그 중 제일 낮은 부분이 바로 사해입니다.
만약 당신이 비행기를 조종할 수 있다면, 거기를 가면 해발 평면 아래로 비행할 수 있어요.
지중해보다 1600피트 낮은 아주 깊은 계곡입니다.
이스라엘 회중은 가데스에서 돌이켜 이 계곡으로 내려갔는데, 아라바 골짜기라고 부르지요.
그들은 계속 협곡을 따라 내려갔습니다.
그렇게 내려가다가 마침내 ‘전갈의 골짜기’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항상 많은 뱀과 전갈이 출몰하기 때문입니다.
이 때 그들이 다시 또 원망해서, 하나님이 뱀과 전갈을 보내서 그들을 징벌하셨어요.
그래서 백성들은 이 전갈의 골짜기에서, 뱀에 물려 죽게 되었지요.
여러분은 지금도 그 협곡을 가 볼 수 있어요. 무섭고, 건조하고, 어둡고
사방에 뱀들이 있는 곳입니다. 거기서 백성들은 뱀에 물렸습니다.
여기서 독사에게 물려 죽어가는 사람의 숫자가 통제할 수 없이 상승하여
당장 모두가 죽을 것 같았어요. 그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었고,
자신들이 하나님께 원망한 죄를 고백했습니다.
그들은 회개하며, 하나님께서 그 뱀들을 막아주기를 간구했는데,
하나님이 그 뱀들을 막아주시지 않고, 뱀에 물린데 치료법을 그들에게 주셨지요.
이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지요. 하나님이 뱀을 제거해 주신 것이 아니고
치료법을 알려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야, 장대에 놋뱀(사실은 구리뱀)을 매달아, 그것을 협곡이 내려다보이는 산 위에 세워라.
누구든지 뱀에게 물린 사람은, 산위 장대 위의 놋뱀을 쳐다보면,
단 한번만 장대의 놋뱀을 쳐다보면 죽지 않을 것이다. 이것이 나의 해독제이다.”
그것은 효과가 있었습니다.
이 사건의 메시지는 ‘네가 지금 위험 중에 있지만,
네가 반드시 행동을 취하여야 그 위험에서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네가 반드시 믿음으로 응답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faith + response
그들은 반드시 먼저 이 방법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방법에 코웃음을 칠 수 있었습니다. 저 놋뱀을 쳐다보면 뱀에 물린 자가 치료된다고?
그렇게 말한 사람들은, 다 죽었습니다.
누구든지 쳐다보는 자는, 자기 눈을 놋뱀에 고정하는 자는.. (살게 될 것이다)
후에 이것은 미신으로 변하여, 몸에 구리 장식 같은 것을 지니고 있으면, 치료 효과를 가져온다는..
그래서 구리 팔찌를 차는 등의 미신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그 놋뱀을 바라보아야 했고, 성경에 말씀하기를
놋뱀을 보는 자는 살아날 것이다. 이 점을 우리가 뒤에서 다시 자세히 나누겠습니다.
▶3. 세 번째 위기는 모압 평지에 왔을 때 만난 것인데, 이 위기가 마지막 위기입니다. 26:47~
그들이 여기까지 오는 길에서 몇 번 전쟁에서 승리하였지요.
에돔과 모압을 물리치고, 이로써 사기가 크게 증가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요단강 높은 곳에, 약속의 땅을 멀리서 바라보이는 곳에 진을 쳤습니다.
(여기에 사진이 한 장 있는데, 조금 있다 여러분에게 보여 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그들이 실패에 직면하게 되는데, 무슨 일이 발생한 것입니까?
이쪽에 거주하는 사람은 암몬 사람이지요.
여러분들, 요르단 나라의 수도가 ‘암만’인 것을, 모두 들어보셨지요.
암몬과 암만은 똑같은 단어입니다.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말하기를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우리 땅에 들어오지 못하게 합시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 땅을 차지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그들이 우리 주위에 있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하는 오늘날의 아랍국가들의 상황과 너무 비슷하지요.
그래서 그들은 수리아인 마법사 한명을 고용했는데,
그는 아주 먼 다메섹에서 왔고, 그는 유브라데강 쪽에서 살았지만,
당시는 수리아에서 살고 있었지요. 그는 마법사이며 점을 칩니다.
이 사람은 당나귀 같이 미련한 자이며, 또한 당나귀 한 마리를 가졌지요.
그의 이름은 발람입니다. 그래서 발람이 여기서 나타났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사람들의 전쟁이 오늘날과 똑같아요. 모두 하나님께 이기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마법사와 술사를 불러 적을 저주하게 했는데,
이렇게 하면 그들은 적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여러분, 사실 오늘날도 똑 같습니다. 몇 년 전에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연극을 한 편 봤는데요,
무대에는 독일군과 러시아 군인들이 서로 싸우는 내용이었습니다.
막을 열자, 바로 전쟁하는 장면이 나왔고, 무대 한쪽에는 어떤 독일 군목이 서 있었고,
그리고 반대쪽 무대에는 러시아 정교회 사제가 서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하나님께 승리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이 공연은, 전쟁 전에 기도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러시아가 풍자하는 장면입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은 여전히, 하나님이 자신의 편에 서 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마법사를 데려와서, 여러 다른 신들의 이름을 들어서, 상대편 적을 저주하게 했습니다.
▶이 부분은, 민수기에서 제일 기이한 이야기인데, 발람이라는 이방인 마술사가 등장합니다.
암몬과 모압은 이 사람을 불러서, 그에게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고 요청했습니다.
기이하게도 그가 그렇게 하였습니다. *당시에 마법사들은 여러 신들의 이름으로 저주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돈을 좋아했기 때문이지요. 단순한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갈수록 돈을 더 많이 제시하게 되었는데,
왜냐하면 발람이 매번 이스라엘을 저주한다는 것이, 매번 축복으로 바꾸어 졌기 때문입니다.
발람이 매번 입을 열어 저주를 선포하려고 하면, 이상하게 축복으로 변하였어요.
‘내가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너희들을 축복하노라.’ 이렇게요.
암몬왕과 모압왕은 몹시 화가 났지요.
발람이 말하기를 ‘제가 어떻게 도와드리지 못하겠군요.
제가 저주하려고 하면, 이상하게도 나오는 말이 모두 축복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발람에게 더 많은 돈을 주며,
발람을 이스라엘 진에 더욱 가까이 가게 하였습니다.
그가 처음 이스라엘을 저주할 때는 거리가 아주 멀었어요.
그때는 멀리서 바라보고 저주했지만 *그래서 저주가 효력이 없었는지요..
하지만 이젠 점점 더욱 가까이 다가갔어요.
이제는 그들이 몇 명이며, 그들의 장막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까지 가까이 다가갔어요.
거기서 그가 다시 그들을 저주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한 번은 거의 성공합니다. 하지만 이 때 그의 나귀가 나타납니다.
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지요. 발람이 나귀를 타고 어떤 좁은 길로 가고 있었는데,
두 돌벽 사이에 난 좁은 길이지요. 중동에는 이러한 좁은 길이 아직도 아주 많아요.
높은 양쪽 돌벽 사이에 좁은 길이 나 있어요.
이 때 나귀가 천사가 그 좁은 길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나아가려고 하지 않았아요.
발람은 천사를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귀를 때리며 가자고 하였어요.
하지만 나귀는 여전히 가려고 하지 않고, 그래서 그는 계속 나귀를 때리고, 또 때리고,
결국에 나귀가 머리를 돌려서, 발람을 향해 말을 했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어떤 사람들은 이것은 터무니없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동물이 악령에게 소유될 수도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한 영에 의해서도 소유될 수 있습니다.
바로 에덴동산에서 일어났던 일이지요.
또한 예수님이 당시 귀신을 돼지 떼에게 몰아넣은 것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선한 영이, 동물을 사용할 수 있고,
천사도 동물들을 시켜서 어떠한 일을 하게 합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보는 것은, 나귀의 감각이 발람보다 더욱 예민하다는 것입니다.
메시지가 동물에게 왔다는 것은, 동물이 더욱 예민하다는 것입니다.
때때로 동물은 사람보다 더욱 예민하게 느끼는 일이 있지요. *지진 등
이 이야기에서 발람은 바닥으로 추락합니다. 확실히 나귀보다 더 못하지요.
▶비느하스의 의분
이 이야기는 참으로 슬픕니다. 결말은 더욱 비참한데, 반드시 한번 꼭 읽어보십시오.
드디어 발람이 암몬왕과 모압왕에게 돈을 받을 수 있는 절묘한 방법을 찾았어요.
그는 말하기를 ‘저주가 그들에게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하나님은 제 말을 바꾸시거나, 제가 그들을 저주하는 막으셨습니다. 그는 그들을 저주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당신들에게, 어떻게 하면 그들을 무너뜨릴 수 있는 방법 한 가지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들이 물어보기를 ‘어떻게 하면 되냐?’
발람이 말하기를 ‘당신들 중의 아름다운 여자들을 그들의 진에 보내십시오. 그걸로 끝입니다.’
참으로 치명적인 것이었지요.
그들도 이 방법이 좋다고 여겨, 이번에는 발람에게 많은 돈을 주었습니다.
그들의 미녀들은 이스라엘 진에 들어왔어요. 여러분, 다음의 이야기는 아주 처참한 것입니다.
결국 한 이스라엘 남자가 하나님의 칭찬을 받았지요.
왜냐하면 그가, 한 쌍의 남녀가 성막 입구에서 관계하는 것을 발견하고
그 관계하던 자리에서 바로 창으로 찔러 죽였어요.
그들은 하나님의 성막 앞에서 음행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로 하여금 지극히 무서운 일이어서, 창으로 둘을, 그 자리에서 찔러 죽인 것입니다.
아쉽게도 이 한 사람만이, 유혹이 왔을 때, 거기에 항거하였지요.
그래서 이 사건이 이스라엘이 고통 받은 세 번째 큰 실패였습니다.
이 사건에서 발람은 비난을 받지만,
창으로 음행하는 남녀를 찔러 죽인 사람의 이름은 비느하스입니다.
그 후로 비느하스와 그의 후손들은 영원히 제사장 직을 수여받았어요.
그 한사람만이, 하나님의 목전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하나님의 집을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교훈인데, 그들이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때,
그 땅의 가장 나쁜 모습 중 하나가 부도덕이었습니다. *예방주사
거기는 다산 여신이 있었고,
남성의 생식기를 상징하는 조각물들을 세워 놓았던 것입니다.
요즘 베이싱스토크의 하이 거리에, 8피트 높이의 남성 생식기 조각을 세워 놓았습니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그게 이 시대에 되돌아왔어요.
다산을 상징하는 여신이, 음란의 바람을 몰고 다시 등장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이러한 시험에 직면했고, 넘어졌던 것이에요.
아주 심각한 문제 아닙니까? 그들은 아직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이 그들에게, 한 가지 교훈을 주셨던 것이지요.
◑우리는 민수기의 역사에서 무엇을 배웁니까?
이 책은 유대인 후손들을 위해 쓰여졌는데, 그들더러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라는 것이지요.
우리 크리스천을 위해서도 기록되었는데, 제가 믿기로는, 우리더러 그들의 실패를 통해서 배우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동생 유다가 쓰신 <유다서>에서 고라와 발람에 대해 언급하였습니다.
▶원망.
또한 신약성경 여러 곳에서 ‘원망하지 말라’고 언급하였습니다.
원망은, 옛날 이스라엘과 똑같이 신약의 여러 교회에서도 큰 문젯거리였습니다.
원망은 쓴 뿌리입니다.
만약 우리가 계속 원망하면 이 쓴 뿌리가 교회 안에서 성장합니다.
원망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교회를 항상 옮겨 다니지요.
만약 여러분이 새로운 교회를 개척할 때,
다른 교회에서 나온 원망하기 좋아하는 사람 한 무리 데리고 개척을 시작하면
당신은 큰 낭패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그런 낭패를 당해도 마땅한 사람입니다. *그렇게 하진 마십시오.
만약 당신이 새로운 교회를 개척할 때는, 새 신자들과 함께 시작하십시오.
새 벽돌로 건축해야지, 재활용 벽돌로 건축하지 마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살다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그들보다 더 중요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그저 숫자로만 기록되지 않고, 우리는 이름을 가진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인구조사의 숫자로가 아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카락의 숫자까지 세고 계십니다.
▶하나님 성품의 양면성
제가 민수기를 볼 때, 우선 이 책에서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묘사했는가에
깊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에는 양면성이 있어요.
바울은 이것을 제대로 설명했어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롬11:22
오늘날 교회에서는 항상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가르치지만
하나님의 준엄하심에 대해서는 거의 가르치지 않습니다.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치우치거나 제한된 시각을 갖게 되는데요,
그분은 인자한 모친이지만, 엄격한 아버지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주교가 말하기를, 하나님은 인자한 할머니와 같다는 것입니다.
저는 진지하게 말씀 드립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시고, 인자하심이 있지만, 동시에 준엄하기도 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기뻐할 뿐 아니라, 우리를 징계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앎에 있어서, 균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민수기>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하나님의 공급하심을 볼 수 있고,
그분의 보호하심과, 그분의 보존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균형적으로 하나님의 엄격한 징계도 볼 수 있어요.
그들의 기업계승권을 박탈하시고, 그들을 모욕하시고, 심지어 그들을 죽이기까지 하셨습니다.
우리는 민수기에서 두 가지 면을 다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똑같은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은 신약성경에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지만, 동시에 두려우신 분이십니다.
◑민수기에 나타난 예수님
<민수기>에서 예수님에 어떻게 언급했습니까? 아주 많이 언급했습니다.
예수님이 광야에서 40일간 시험을 받으셨는데요,
이 시험은 그분이 친히 통과하신 것이고, 그는 하늘에서 오신 양식입니다.
*구약 광야 40년의 실패를, 예수님이 대표로 신약에서 이기셨지요. 또한 만나도 예수님의 예표.
모두들 요한복음 3:16절을 아시지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하지만 16절 직전의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3:15
이 구절은 바로 민수기의 이야기입니다.
당신이 자세히 찾으면, 성경에 예수님이 모든 곳에 나타납니다.
히브리서에서 말하기를 “암송아지의 재가 죄 사함을 받게 한다면,
그리스도의 피는 더욱 어떠하겠는가?” 민19:2~5, 히9:13~14
위 구절 또한 예수님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민수기에서 가장 신기한 부분은, 발람입니다. 발람이 예언하기를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규가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민24:17
그 예언 후로, 경건한 유대인이라면 모두 왕의 별이 나타나기를 기대했는데,
그 구절이 동방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인도해 왔어요. 아주 놀랍지요?
발람의 예언이 세 박사를 베들레헴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아론의 축복
제가 여러분께 물어보겠는데, 민수기에서 어느 절이 제일 유명합니까?
그건 의문의 의지 없이 6장24절입니다.
“24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하라”
이것은 하나님이 아론에게 분부하여 백성들을 축복하라고 주신 것인데,
당시 이스라엘이 진을 거두고 다음 여정으로 출발할 때, 받은 축복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한 글자마다 영감을 주셔서 기록한 것이라 보는데,
그 이유는, 창세기 1장과 같이, 완벽한 숫자적 형태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매번 말씀하실 때면, 그 언어는 완벽한 숫자적 형태를 가집니다.
위 구절을 히브리어로 들어보십시오. 물론 영어가 아닙니다.
여기에 이렇게 3줄이 나오죠.
“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25.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찌니라 하라”
히브리어로 보면,
단어로는, 첫 줄에 3단어, 둘째 줄에 5단어, 셋째 줄에 7단어입니다.
글자 수로는, 첫줄이 15글자, 둘째 줄이 20글자, 셋째 줄이 25글자입니다.
히브리 음절로 말하면, 첫줄에 12개, 둘째 줄에 14개, 셋째 줄에 16개의 음절이 있습니다.
위 구절에서 ‘여호와’를 빼고 나면, 12개의 단어가 남습니다. *15-3=12
그래서 12지파는 각각 ‘여호와’를 갖게 되는 셈이지요. 제가 이런 숫자적 완벽성을 계속 설명할 수 있습니다.
위 구절은 숫자적 완벽성으로 구성되었고 *아무렇게나가 아니라
영어로도 보면, 점점 점층법적임을 느끼게 되지요? 한번 느껴 보세요.
매 줄마다 두 개의 동사가 나오는데, 두 번째 동사가 처음 동사를 더욱 확대 설명했습니다.
복을 주신다는 것은, 당연히 자녀, 재산, 토지, 건강, 안전을 가리키는 것이기에
그들이 보호와 공급을 받았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호와’는 히브리어로 ‘야웨’이고, 오늘날의 예수님이시지요.
여기에서 주신 두 가지 복은 은혜와 평안인데,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받아야 하는 복이고,
신약성경의 모든 서신서에서 모두 언급하였어요.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이 구절에서 ‘여호와’라는 말이 세 번 나오는데,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세 번의 여호와는 성부, 성자, 성령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실 저는 아직도 많은 것을 강의하고 싶은데, 시간이 부족합니다.
요지는, 위 축복(24~26절)이, 완벽하고 아름답게 숫자 공식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이 그러하듯이요.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는, 마치 음악과 같이, 모두 숫자적 완벽성이 있습니다.
음악은 숫자(박자)를 근거하지요.
그렇기에 여기 나온 그분의 축복은, 아름다운 음악적/숫자적 박자가 맞는 축복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을 끝마치고, 여러분이 여기서 떠나기 전에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샬롬 주시기를 원하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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