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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2

희석되지 않은 복음

LNCK 2015. 6. 22. 10:55

희석되지 않은 복음           2:17, 2:3, 5:10          출처

 

 


 

희석되어진 복음의 현실

 

일전에 주일날 제가 이런 제목으로 설교 드렸습니다. <문화적인 기독교와 성경적인 기독교>

그러면서 제가 유럽 교회가 왜 타락하고 유럽 교회가 왜 오늘날 이런 모습이 되었는가?’

생각해 보았는데요.

 

유럽은 교회를 나가는 사람이 5퍼센트 미만입니다.

한때 전 세계를 복음으로 뒤흔들었던 영국은, 주일 출석 통계가 5퍼센트도 안됩니다.

 

그런데 유럽의 뒤를 이어, 미국 교회가 그 뒤를 따르고 있고

멀찌감치 한국 교회가 뒤따라가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요?

 

그것은 성경적인 기독교를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적 기독교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요,

성경적 기독교에 대해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듣는 것은 전부 문화적인 기독교이지,

성경적인 기독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참 충격적인 사실은, 미국에서 문화적 기독교를 만들었던 장본인들이 몇 사람 있는데

프린스턴 초대 신학교장이었던 B. B. 워필드.

그 분은 성경의 모든 기적은 빼야 한다. 왜냐면 나는 기적을 경험한 적 없기 때문이다.’

자신이 모르기 때문에, 성경에서 기적을 빼야 한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런 복음을 듣고, 그런 기독교를 성경적 기독교라고, 일부 사람들은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문화적 기독교가 무엇인지 간략하게 말씀드리려 합니다.

 

문화적 기독교란 무엇인가요?

 

1) 문화적 기독교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가 원하는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Cultural Christianity means to persuade God we want instead of God who is.

 

내가 원하는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

, 자신이 만든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문화적 기독교는, 무능해져버린 기독교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겠죠.

Christianity mand impotent

 

3) 세 번째, 문화적 기독교는, 더 이상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나 신념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하는 기독교입니다.

It is Christianity gives no impact on the values and beliefs of our society

 

여러분, 오늘날 왜 기독교가 이렇게 전락했습니까?

성경적인 기독교와는 너무나 거리가 먼 기독교가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진정한 복음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복음 true gospel 을 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니 목사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그동안 복음을 얼마나 많이 들었는데요.

우리가 들었던 복음이 성경적 복음이 아니라는 말씀입니까?’

 

제가 이번에 한인세계선교대회KWMC에 간증하러 온 분을 통해서, 충격적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분은 20대 자매님인데, 하나님께서 그 분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You preach undiluted gospel!’

 

너는 희석되지 않은 복음을 전하라. 너는 타협하지 않은 복음을 전하라.

너는 묽어지지 않은 복음을 전하라.’ 그렇게 말씀하셨답니다.

 

그래서 이 분이 놀래서 하나님, 저는 희석되지 않은 복음이 뭔지 모르는데요.

묽어지지 않은 복음이 뭔지 모르는데요. 그게 무슨 뜻입니까?’

 

그렇게 물었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말한 것은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 복음을 전하라.’

 

그래서 그 분이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 복음을 전했더니, 기적이 일어나더래요.

성경이 말하는 대로 복음을 전했더니, 사람들이 변하더래요.

도시가 변하더래요. 나라가 주님께로 돌아오더래요.

 

그러면 무엇이 문제입니까?

오늘날 미국이 듣고 있는 복음은, 우리가 듣고 있는 복음은

어쩌면 여러분이 지금까지 들어왔던 복음은, 진정한 복음이 아닐 수 있다는 말이에요.

희석된 복음일수도 있다는 말이에요.

 

내가 듣기 편한 복음. 사람들이 좋아하는 인기 있는 복음.’

diluted gospel, convenient gospel, popular gospel!

과연 이러한 복음이 진정한 복음입니까. 여러분들이 오늘 확인해보시길 바라겠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기사를 좀 읽어드리겠습니다.

미국의 존 피셔라는 컨템프러리(현대적) 크리스천 뮤직을 쓰며

상당히 예배와 복음에 대해서 영향력을 미치는 분이 있어요.

 

그 분이 책을 쓰셨는데 한국말로 <험한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번역이 됐더군요.

(어느 기자가) 그 책의 내용을 요약해서 써놓은 기사를, 여러분께 읽어드립니다.

 

미국은 20세기 마지막 10년동안 십자가 없는 기독교를 만드는데 성공했다.

순수한 복음주의 열정에 불타는 사람들이,

많은 불신자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기 위해서

부지중에 십자가를 슬그머니 치워버렸기 때문이다. *부지:알지 못하는 사이

복음을 광범위하게 전파하는 일에 집중한 나머지, 복음의 심장이요 핵심을 놓쳐버린 것이다.

 

저자는 십자가를 역사의 중심이요 그리스도의 삶이 현장으로 되돌리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본래 기독교 메시지의 핵심인 십자가와 복음의 불일치를 해소하고

십자가의 중심성에 대해서 심도 있게 열정적으로 다룬다.

 

그렇다면 저자가 회복하고자 하는 십자가의 진정한 이상은 무엇일까?

우선 저자는 복음의 핵심을 십자가로 제시한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십자가의 고초를 지는 고통과 고난으로의 부르심을 상기하게 한다.

 

이 말이 걸림이 되는 그리스도인이 있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우리는 기독교를 대중화하기 위해, 희생을 거의 요구하지 않는

편리한 복음을 창조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복음의 좋은 부분만 전하려는 현대 기독교는

십자가의 고초를 뺀, 반쪽 복음을 널리 선전하고 있으며

현대 교회는 우리의 친구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고

사회 영향력을 끼치고자, 그 흐름에 맞는 매력적인 모습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그와 같은 교회는, 만물의 중심에 타협하지 않고 서 있는 그 십자가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오늘날 값싼 은혜와 나약한 복음 속에 빠진 그리스도인들이

왜 우리는 이토록 나약한가?’ 하고 묻는 헤프닝을 연출하게 되는 것이다.

 

저자는 복음주의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모든 것의 중심이라고 설파한다.

그리고 십자가를 단지,

하나님의 사랑의 노래로 전락시킨 기독교 현실을 직시하게 해준다.

 

십자가는 무엇인가? 십자가는 끔직한 죽음이다.

그리고 십자가는 최악의 공포도 견디고,

최고의 교만을 꺾었다.

그러므로 십자가 앞으로 나오는 사람은 겸손하게 되며, 성령은 이들을 높이신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에, 이러한 십자가가 없다면

또는 그 의미와 실제가 축소된다면, 바리새인과 우리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거칠고 투박하고 단단하고 꾸밈없는 십자가는,
인생의 방해물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험한 십자가는 능력이다. 이 십자가를 붙드는 자에게 능력이 흐른다.

그리고 소멸해가는 기독교에,

죽음을 통과한 생명을 주는 십자가의 사자가 될 것이다.

이제 우리 십자가로 돌아가자.” 이런 내용입니다.

 

진정한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진정한 복음은, 제가 아는 수많은 사람을 변화시켰습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진정한 복음을 들을 때, 변화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복음은, 도시를 변화시킵니다.

진정한 복음은, 한 국가를 변화시켜버립니다.

왜냐면 복음이 바로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16절에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됨이라.’

 

위 구절에,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는데,

그런데, 우리가 들어온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입니까?

 

어떻게 된 것인지.. 우리는 한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전서 15절에 이는 우리의 복음이 말로만 너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복음은 말로만이 아니라,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달된다고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진정한 복음은 여러분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진정한 복음은 이 뉴욕, 뉴저지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진정한 복음은 온 땅을 변화시키고도 남을만한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믿음은 왜 이렇게 연약하고 시들시들하고 맨날 넘어질까요?

오늘 우리가 한번 그것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그것은 사탄은 이 복음의 능력을 잘 알기 때문에,

이 복음이 그대로 전달되면, 그에게 너무나 위협적인 사실이기 때문에

사탄은 오래전부터 이 복음을 희석시켜 온 것입니다.

 

사탄은 오래전부터 이 복음을 타협시키기 시작합니다.

사탄은 오래전부터 이 복음을 묽게 만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아니 목사님, 정말입니까. 그게 사실입니까. 진짜입니까?’

라고 물어보는 분들을 위해서, 제가 이 글을 읽어드리겠습니다. 한번 들어보시죠.

 

복음을 복음되게 하라.

오늘 교회에서 울려퍼지는 복음은 어떤가.

교회에서 울려퍼지는 복음을 들어보면 대부분 설교자들에 의해 잘 주물러진 복음,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복음,

만사형통의 축복을 약속하는 복음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물론 이것에 복음의 내용이 전혀 없다는 것은 아니죠. 일부분이죠.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주는 복음이 환영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복음을 진정한 복음이라 할 수 있는가?

입은 삐둘어져도 말은 제대로 해야 한다.

그런 복음은, 그들의 복음이지, 진정한 복음이 아니다.

 

그런 복음은, 본 훼퍼에 의하면, 값싼 복음이지 진정한 예수의 복음이 아니다.

 

옥한흠 목사가 한국 복음주의 협회 월례회 발표에서 이런 발표를 했다.

여러분, 교회 안에 가만히 보세요. 목회자로서 할 말 다 합니까.

말씀대로 가르칩니까? 죄를 죄라고 가슴을 치며 설교할 수 있습니까?

 

무슨 설교하려고 하면 앞에 앉아계신 어느 장로님 걸려서 못하고.

무슨 설교하려면 어떤 분이 걸려서 못하고.

어떤 설교하려고 하면 어떤 교인들이 걸려서 못하고.

 

이리저리 걸리다보니까, 우리는 성경의 반 토막은 잘라내고

나머지를 설교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자백하지 않을 수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마치 어린 아이, 버릇없는 아이들.

먹고 싶다는 것을 먹이고, 먹기 싫다면 못 먹이고

그래서 애가 원하는 대로 들어주는 부모와, 그 아이들을 스포일시키는 부모가

오늘날 목회자들의 모습 같아요.’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제는 진실에 눈을 떠야 한다.

교회가 예수 이름으로 외치는 복음이, 다 예수님의 복음이 아니라는 것을!

 

그동안 교회가, ‘교회를 위해서복음을 포장하고 왜곡해왔다는 것을.

관심 있으면 교회의 역사를 한 번 보라.

교회의 역사는, ‘교회를 위해복음을 왜곡한 역사다.

교회를 위해’, 복음을 이용한 역사다.

 

교회가 복음에 충실하면 사람들에게 거부당할까 두렵고

사람들에게 거부당하면 고사될까 두려워한 나머지

교회를 살리기 위해 복음을 반토막내고 포장해왔다.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사탕발림해왔다. 복음에 충실하길 거부해왔다.

 

옥한흠 목사가 한국 교회를 보며 뒤늦은 자책을 했지만

그것은 한국 교회만의 현상이 아니다. 교회 역사 전체가 그렇다.

 

교회는 이제라도 복음을 왜곡한 역사를 인정하고, 자백하며 회개해야 한다.

성도들과 세상 앞에 회개해야 한다.

 

오늘 교회는 복음을 전하는 데 열심을 내기 보다

복음을 반토막내고, 왜곡한 것을 회개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복음을, 교회의 종으로 부려먹은 것을,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난 후 교회는 예수님이 복음의 운명을 예언한대로

사람들이 싫어하는 복음, 사람들에게 거부당하는 복음,

복음 때문에 핍박당하는 복음을 다시 선포해야 한다.

 

교회가 외치는 복음 때문에, 교회가 고사를 당할지라도

교회는 예수의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것만이 교회가 진정으로 살 길이다.

 

그러므로 원수는, 이 복음을 변질시키고 희석시키고 묽게 만들어왔고

그리고 우리는 그런 복음을 들어왔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우리 삶에는 아무런 변화도, 능력도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그렇다면 진정한 복음이란 무엇인가.

성경이 말하는 복음은 무엇인가. 그것에 대해서 살펴보길 원합니다.

 

사실 저도 회개해야 할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교회 일을 하다보면요, 우리 교회가 조금 헤비heavy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어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우리 교회가 좀 뜨겁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어요.

메시지가 좀 부담스럽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교회 오길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분들 때문에, 저는 마음이 무겁고 참 안타깝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들었던 편리한 복음. 그들이 들었던 대중적인 복음.

그 복음을 버리지 못해요. 왜요? 편하니까요.

 

희생을 요구하지 않으니까. 헌신을 요구하지 않으니까.

죽으라고 말하지 않으니까. 교회 왔다갔다 하는 게 너무 편하니까.

여러분, 편안하게 예수 믿다가, 편안하게 지옥 가시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오늘 진정한 복음에 대해서, 여러분과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여러분, 이 주제에 관심 있으신가요? 관심이 없어도 저는 할 겁니다.

 

 

진정한 복음이란?

 

복음이 무엇입니까?

기쁜 소식. 복음은 헬라어로 유한겔리온. 직역하면 굿 뉴스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굿 뉴스가 세상에는 엄청나게 많아요. 그렇죠?

배드 뉴스도 많아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굿 뉴스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굿 뉴스가 아닐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암환자에게 제가 집사님, 내게 굿 뉴스가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 환자가 뭐냐고?’

제가 기가 막힌 약이 개발되었는데, 그 약은 당뇨병을 한 달 안에 고친대요.’

그럼 그 환자에게 굿 뉴스입니까?

그건 실망시키는 일이죠. 그런가요?

 

여러분, 혹시 빚져본 사람 손 들어보세요. 빚더미에 올라앉으면요. 괴로워요.

그렇죠. 참 괴로워요. 이 빚이 너무나 무겁게 나를 눌러서 자나 깨나

어떤 분은 저녁에 자면서 아침에 안 일어나면 좋겠다..’ 빚이 그렇게 우리를 부담스럽게 합니다. 그렇죠?

 

그런데 어떤 사람이 좋은 소식이 있다고 말합니다.

당신 빚 얼마입니까?’ ‘십만 불입니다.’ ‘내가 그 중에 천 불을 갚아드릴게요.’

굿 뉴스입니까? 굿 뉴스가 아니에요.

 

어떤 사형수가 있습니다. 곧 죽을 목숨입니다. 그에게 굿 뉴스는 무엇입니까?

그 사형수에게 굿 뉴스가 무엇일까요? 방금 대통령 사면령이 떨어졌는데

어젯밤에 대통령이 자다가 꿈을 꿨는데.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셔서

지금 달라스 감옥에서 내일 아침에 처형을 당할 아무개가 있는데 너는 그 사형수를 사면시켜라.’

그런 음성이 들려서, 대통령이 전화를 해서 그 사형수를 사면시키시오.

 

그래서 교도관이 그 사형수에게 가서 당신은 오늘 사면됐습니다.’

그게 굿 뉴스 입니디.

 

그런데 교도관이 와서 아침에 굿 뉴스가 있다. 오늘 아침에 거하게 반찬을 준비했다.

맛있게 먹고 잘 죽으라그게 굿 뉴스에요?

 

사람들은 굿 뉴스가 뭔지 몰라요. 굿 뉴스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사람에게

굿 뉴스가 굿 뉴스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과 환경과 처지에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야지 굿 뉴스가 될 거 아니에요. 그렇잖아요.

 

그래서 여러분. 한번 잘 들어보십시오. 복음이란 굿 뉴스인데.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 무엇이냐. 이는 암환자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라

빚진 사람에게 좋은 소식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굿 뉴스는..

 

누가복음 210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천사가 말하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알릴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다.

 

천사가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가지고 왔대요. 그래서 무슨 소식인가 들어봤더니

그 좋은 소식의 내용이 이런 거예요.

오늘날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천사가 가져온 굿 뉴스는 이거예요. 오늘날 너희에게 큰 좋은 소식을 가져왔는데

그 내용은, 구주가 나셨다는 거예요.

너희들을 구원해줄 자, 너희를 건져줄 자가 났는데

근데 그 분은 너의 구원자일 뿐만 아니라 너의 그리스도요 너의 주님이시다.

그 분이 나셨다. 그게 좋은 소식이라는 거예요.

 

그 소식을 들은 사람이 그게 왜 좋은 소식인데요?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냐.

그게 어떻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냐고 과장하지 말라고.

그렇게 들리거나 정말 그것이 그토록 사모하고 기다리고 간절히 고대하던 그 좋은 소식이어서

정말로 감격하며 그 좋은 소식을 받아들이거나. 그렇지 않겠어요?

 

그래서 제가 오늘 여러분들에게 이 성경이 말하는

천사가 전한 이 굿 뉴스가 정말 여러분에게 굿 뉴스가 되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복음이 복음되기 위해서,

정말 이 복음이 기쁜 소식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요?

 

여러분은 이 복음의 필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여러분 자신의 처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게 무슨 뜻이냐면 이런 뜻입니다.

 

마가복음 217절에 예수님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없다. 병든 자에게만 의사가 필요하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죄인에게는 이게 굿 뉴스인 거예요. 의인에게는 굿 뉴스가 아닙니다.

근데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아주 쉽게 설명했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의사가 필요한 거 맞냐. 필요 없어요. 병든 사람은 절박합니다.

 

환자들이 의사 붙들고 제발 살려주세요.’ 애원하지만,

의사는 내가 무슨 재주로..’

 

그런데 우리 교회는 살려주는 의사들이 있어요. 닥터 주는 많이 살린대요. 아멘.

제가 이야기를 들으니까 닥터 주는 기진맥진이에요. 환자들이 줄서서.

환자가 미어터집니다. 왜 미어터질까요? 명의라서, 실력이 있으니 병을 고치기 때문에

환자들이 절박한 마음으로 새벽부터 와서 기다린대요. 의사 보려고.

 

왜요? 그 사람들은 의사가 그토록 필요한 거예요. 자기가 환자라는 걸 알기 때문에.

자신이 고통을 겪기 때문에. 나는 의사가 필요합니다. 잘하는 의사를 쫓아다니지요.

 

성경에 18년동안 혈류병을 앓던 여인이 온갖 의사를 다 찾아가봤는데 다 쓸데없더라.

그 사람에게 그 병을 고칠 수 있는 의사는 가장 필요한 굿 뉴스잖아요.

 

의인에게 나는 필요 없다. 나는 의인을 위해서 온 자가 아니다.

그러나 죄인은 내가 없으면 안된다. 죄인에게는 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왜냐하면 나는 죄인을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 있어요.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시고

그때 복음을 절실하게 받아들이고 절박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픈 사람들이었어요.

고통당하고 소외당하고 병든 사람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치료 받고 구원을 얻었어요.

 

그런데 그 복음을 콧방귀나 끼고, 시큰둥하고 무시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 사람들은 자기에 충만했던 바리새인들입니다.

스스로 의인이라고 착각했던 종교 지도자들. 그래서 결국 영원한 지옥에 가게 되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이 복음을 전하면서 여러분이 확실하게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도대체 내가 복음이 필요한 사람인가?’

성경에서 전하는 복음이 정말로, 내 목숨을 내놓고라도 나는 그 복음이 필요한가?’

 

아니면 한 번 생각해 볼께요.’ 이런 정도인지..

 

아니면 나는 그 복음 없어도 잘 살 수 있어요. 이만한 집이 있고, 이런 직장이 있고.

내가 뭐가 부족해요?’ 혹시 그런 사람입니까.

 

여러분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복음이 필요한 자인가, 필요하지 않은 자인가.

 

에베소서 23절에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여러분 아십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라는 걸 아십니까.

그 진노의 대상이 누구입니까.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는 사람.

육체와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며 사는 사람. 그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인가.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로마서 510절에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우리를 화목케 하셨다.’

무슨 말이죠?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였다는 거예요.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요

우리는 영원한 형벌인 심판을 피할 수 없는 그런 죄인 중에 죄인이었다는 겁니다.

이것을 아는 사람들에게 성경이 말하는 복음은 진짜 복음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생각할 때 목사님, 내가 목사님 말씀은 이해는 하는데

나를 그렇게 죄인 취급하지 마세요. 나 알고 보면 괜찮은 사람이에요.

나 인격적으로 괜찮아요. 나 법 잘 지키고 살아요.

그러니 나한테 죄인 취급하지 마세요.’ 여러분 혹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 계십니까.

 

제가 깨달은 건. 저도 한때 착각하고 살았어요.

아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이만하면!

 

근데 하나님께서 제 눈을 열어주셨어요. 내가 얼마나 죄인인지 보게 하셨어요.
저는 통곡을 할 수 밖에 없었어요. 통곡하며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어요.

주님, 나를 구원해주세요. 나를 건져주세요.’

 

오늘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편리한 복음, 대중적인 복음

이런 복음을 듣고 자기가 구원받았다고 착각하고, 자기가 의인이라고 착각하니까

진정한 복음이 들어갈 자리도 없을 뿐만 아니라

무능력한 삶, 연약한 삶, 타협하는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겁니다.

 

여러분 복음이 복음되기 위해서, 우리는 철저하게 죄인인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그것을 깨달을 때까지 절대로 복음은 여러분을 구원해줄 수 없을 것입니다.

 

바울이 나는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을 때, 그가 초창기에 한 말이 아니에요.

바울이 예수를 믿으면 믿을수록 그 영광의 빛 앞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그 안에 감춰진 그 더러운 것이 드러나니까, 그것을 보게 되면서

그는 하나님 앞에서 신음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복음을 더 사랑하게 되고, 복음을 더 의지하게 되고

복음을 전파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음, 아들에 관한 복음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복음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도대체 이 복음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이 복음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누구의 복음입니까. 로마서 11, 2절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받았습니다.

성경에 복음이라는 말이 72번 나오는데, 그 중 60번을 바울이 썼어요.

 

그러므로 바울은 복음의 대가입니다. 바울이 내가 받은 복음은 주께 받은 것이다.’

그는 주님께 직접 전수받은 복음이라고 말하면서 전합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이 복음은 그의 아들에 관한 것이다.’

이 복음은 누구에 관한 겁니까? 예수님에 관한 거예요.

 

이 예수님에 관한 얘기를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여러 선지자를 통해서 미리 약속해주셨고 미리 말씀해주셨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이 아들에 관해서 뭐라고 썼나요? 성경이 이 아들에 관해서 뭐라고 예언했나요?

누가복음 2444~47절까지.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지리라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을 다른말로 뭐라고 그래요? 구약성경.

예수님께서는 구약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항상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 그건 구약입니다. 구약이 날 가리켜 기록했다.

구약은 나에 대한 이야기다.

그 나에 대한 그 모든 기록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근데 그 내용은 요약하면 이렇다고 했습니다. 구약은 예수님에 관한 얘기입니다.

 

그것이 바로 아들에 관한 복음인데, 그런데 그 내용을 예수님이 요약해줬습니다.

누가복음 2426절에 이같이 그리스도가

그리스도는 신약으로 그리스도, 구약으로는 메시아란 말입니다.

구약 백성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구원자인데

왕으로 오셔서 그 백성을 건져주실 분이다. 그런 뜻이거든요.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이해가 안되는 거예요.

그리스도가 왜 고난을 받아요. ?

왕이 무력으로 우리를 건져주시면 되지 왜 고난을 받냐구요.

유대인들이 가장 딜레마에 빠진. 왜 그리스도가 고난을 당해야 하는가 왜?

 

그들이 이해하는 것은 영광의 왕으로 오시는 메시아예요.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아는 영광의 왕으로 와서

로마의 식민지인 그들을 적을 깨부수고 건져주실

그런 무력적인 정치적인 왕을 메시아로 기다렸기 때문에

구약이 말하는 고난당하는 메시아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는 메시아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겁니다.

 

어쨌든 예수께서 말하시길 성경에 나에 대해 기록되어 있는데

첫번째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와서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만에 죽은 가운데서 살아날 것이다. 이게 첫 번째구요.

 

그의 이름으로 예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모든 족속에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는데 이것이 반드시 다 이루어져야 하리라.

 

그러면 제가 정리해드릴게요. 쉬워요. 이런 얘기입니다.

예수님이 구약은 다 나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나의 복음이다.

그런데 이것이 왜 복음이냐면. 내가, 왕인데.

내가 그리스도인데 내가 이 땅에 와서 너희를 위해서 고난을 당하고

십자가에 죽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3일만에 살아날 것이다.

 

그 이유는 누구든지 나를 믿는 회개하고 믿는 자들은,

그래서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

죄 사함을 얻게하는 이 메시지가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나에 대한 복음이다. 그 말이에요.

 

내가 왕인데 이 땅에 종으로 와서 고난 받고 십자가에 죽었다가 3일만에 살 것이다.

그 이유는 누구든지 회개하고 믿는 자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을 온 세상에 전파되야 한다. 이것이 예수님이 말하는 복음의 내용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그 분은 창조주요, 그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요,

그 분은 왕 중의 왕이요. 그 분은 만유의 주이신데

그 분이 이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셨다는 거예요. 왜요?

 

우리 때문에. 우리가 죽어야 하는데

우리 대신 죽으시고 그리고 사흘만에 부활하셨는데

이것은 회개하고 믿는 자에게 죄 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하고 믿는 자에게 누구나 구원을 얻게하는 하나님의 좋은 소식이다라는 것을

온 땅에 전파하라. 이렇게 말씀하셨다는 거예요.

 

성경에 보면 복음을 그냥 굿 뉴스가 아니라

반드시 굿 뉴스와 연결되어 나오는 말들이 있어요.

복음이라 하지 않고, 누구의 복음. 이렇게 하는데 잘 들어보세요.

 

마가복음 11절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누구의 복음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이 복음의 주체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로마서 19절에 그의 아들의 복음.

로마서 1519절에 그리스도의 복음.

마가복음 114절에 하나님의 복음.

누가복음 1616절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

마태복음 2424절에 천국 복음.

 

제가 이 말씀 읽어드리는 이유는,

복음이라는 단어가 따로 떼어져서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복음이 누구의 복음이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가져오는 복음이다.

그 복음의 내용은 바로 예수님이 죄 가운데 빠진 인간을 건져낼 수 있다는 것이다.

왜냐면 그 분이 그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 이 복음을 복음으로 받아들이느냐.

자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고 회개를 통해서 믿는 자에게 해당되는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

 

그런데 예수님이 이 복음을 얘기할 때 반드시 같이 이야기하시는 게 있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꼭 하나님의 나라를 얘기하셨어요. 그 내용입니다.

 

마가복음 11415절에.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해 가라사대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에요. 예수께서 본인이 복음의 주인공이신데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때가 찼다. 어떤 때가? 구원의 때가 왔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워졌다.

내가 가까이 왔으니 나를 믿어라 그렇게 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했다는 겁니다.

 

이게 예수님이 표현하신 복음의 내용이에요.

예수님이 스스로 표현하신 복음의 내용은 뭐냐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했는데

그래야 하냐면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한 것이

너희가 구원 얻을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면 결코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지금 이 구원의 때요,

내가 바로 이 때가 됐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가지고 왔는데

내가 너희에게 왔지 않느냐. 그러므로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그렇게 표현하신 거예요.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입니까? 킹덤 오브 갓입니다. 킹덤은 왕이 통치하는 곳이에요.

왕이 다스리는 곳이에요. 그 왕은 하나님입니다. 왕이신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왕권과 주권과 그 역사와 능력을 예수께서 가져오셨는데

내가 너희에게 가까워졌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네 앞에 있지 않느냐. 네 주위에 있지 않느냐.

바로 지금이 구원 얻을 때이다. 지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그 말입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에요.

 

그러므로 제가 복음에 관해

오늘 여러분들에게 중요한 말씀을 몇 가지 드리기 원합니다.

 

 

1. 하나님 나라 복음은 첫째로 회개를 요구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반드시 회개를 요구합니다.

바꿔 말하면 회개가 없는 복음은 가짜입니다.

회개 없는 복음은 묽어진 복음이요, 희석된 복음이요, 변질된 복음이요, 인기있는 복음입니다.

 

오늘 성경에 회개하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누가 회개하고 복음을 믿습니까.

회개하라고 말하려면 뭐라고 말해야 해요, 당신이 죄인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당신이 죄인이라고 말하면 좋아할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회개를 통과해서만 받아들일 수 있는 거예요.

마태복음 32절에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워졌느니라.

마태복음 411절에 이 때부터 예수께서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오늘 읽으신 말씀에도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무엇이 먼저입니까. 믿음입니까, 회개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그렇게 배웠느냐는 거예요.

그렇게 들으시고 진짜 회개를 거쳐서 복음을 믿었냐는 거예요.

 

여러분, 오늘날 무능력한 기독교의 첫번째 단추가 여기에 있습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회개가 무슨 뜻입니까. 생각(가치관)을 바꾸는 겁니다. *메타(바꾸나) 노이아(생각)

예수 믿고 생각 바꾼 사람 보셨어요? 자기 생각 그대로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그게 무슨 회개예요. 생각이 안 바뀌면 그 사람 안 바뀝니다.

사람이 안 바뀌니까 교회도 안 바뀌는 거예요.

이게 참 심각한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은 회개를 요구합니다.

 

두번째,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순종을 요구합니다. 해야만 합니다.

도저히 듣기 싫으면 귀를 막아주십시오. 진정한 복음은 순종을 요구합니다.

왜냐면 복음을 믿으면 주인이 바뀌기 때문입니다.

오너십이 바뀌어요. 로드십이 바뀌어요.

 

사도행전 236절에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주님으로 그리고 왕으로 삼으셨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여러분의 죄를 위해서 죽으시고 그 은혜로 말미암아

그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여러분을 죄인에서 건져주시고 용서해주시는 뿐만 아니라

그 분은 여러분의 주님이에요. 그 일을 위해서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거예요.

그 분이 나의 새로운 주인이요, 새로운 왕입니다.

 

이건 내가 복음을 받아들이기 전에는 이 세상 나라에 속해있었어요.

사탄의 나라 말입니다. 이 세상의 신, 임금, 공중의 권세는 마귀요 사탄입니다.

바꿔말하면 우리가 예수님 믿기 전에는 마귀의 종입니다. 마귀의 자식이에요. 아멘.

 

진짜에요. 기분 나빠도 할 수 없어요. 성경이 그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마귀를 섬겼어요. 죄의 종 노릇하면서 세상을 섬겼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어요. 새로운 왕이 나타났어요.

네가 나를 섬기기로 결정하면 내가 너를 그 죄의 사슬에서 끊어주고 너를 건져줄 것이다.

나를 섬길래? 나를 너의 새로운 주인으로 섬길래.

 

그리고 회개는 바로 그 세상과 지금까지 생겼던 모든 것을 과감하게 끊고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섬기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한 다리는 아직도 마귀하고 친하게 지내고 아직도 좋잖아요.

짜릿짜릿하고. 그 재미를 어떻게 놓겠어요.

 

그래도 천국은 가야겠으니 한 다리는 하나님 나라에 걸치고.

그런 건 있을 수 없어요. 그런 건 전부 가짜 복음이에요.

 

 

2. 복음은 순종을 요구합니다.

 

복음이 그렇게 값싼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순종을 요구합니다.

순종을 요구합니다. 사도행전 530

너희들이 나무에 매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구원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 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 주님과 그리고 구원자로 삼으셨습니다.

 

저는 이번에 무슬림 권에서 선교하시는 선교사님의 간증을 듣고

그것이 바로 진정한 성경적인 복음이라고 저는 확신했어요.

 

이 선교사님이 무슬림 권에서 그토록 복음을 전하는데

아무도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거예요.

 

선교사님이 너무 실망해서 내가 뭔가 문제가 있는가.

지금 내가 복음을 잘못 전하는가. 왜 반응이 없는가. 안타까워하며

밤새 부르짖어 기도하며, 주님이 나를 보내서 여기까지 왔는데

나는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는데 왜 한 영혼도 돌아오지 않습니까? 주님!

 

이랬는데 새벽에 누가 문을 두드리더랍니다.

복음을 들었던 한 청년이 그 앞에 서 있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나는 결정했다. 내가 복음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것이고

가족에게 배척당하는 것을 각오하는 것이고

나는 언제든지 돌에 맞아 죽을 것을 각오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결단했습니다.

그게 진짜 믿음이에요. 그게 진짜 회개하고 믿는 겁니다.

 

Americanized gospel? 웃기지 마세요.

여러분 미국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하면 아무도 안 믿어요. 믿겠어요?

 

Americanized gospel 때문에, popular gospel, convenient gospel 때문에

그냥 온 세상이 듣게 된 거예요. 순종을 요구하지 않아요. 책임을 요구하지 않아요.

헌신을 요구하지 않아요. 그냥 믿기만 하면 된대요. 아이고 그렇게 쉬운 거.

그건 복음이 아니에요.

 

여러분, 여러분이 그것을 위해서 기꺼이 목숨을 내놓을 가치가 없는 것이면

믿을 가치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또 다시 오실 주님의 재림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4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세상 끝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오실 주님은

바로 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전파되는 것과 관련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겁니다.

 

다음 내용은 여러분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입니다..

 

 

3. 복음은 심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목사님 아이고 심판 얘기 그만해요. 그러나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은 심판을 말합니다.

 

로마서 216,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는 그 날이리라.

 

진정한 복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반드시 포함하고 반드시 얘기해줘야 합니다.

심판이 없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에요.

 

베드로전서 417절에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하나님의 복음은 지금 우리에게 가능해서

누구나 그 복음을 믿는 자들에게는 복음이지만

그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말하잖아요.

복음은 심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복음을 그렇게 받아들였냐구요.

여러분 한번 잘 생각해보세요.

-복음은 반드시 회개를 요구합니다.

-복음은 반드시 순종을 요구합니다.

-복음은 반드시 심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멘입니까?

 

 

4. 마지막으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무슨 말입니까.

 

내가 전도할 때 지혜의 권하는 말로 말 주변으로 말장난으로

내가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게 아니라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하지 않느냐.

 

오늘날 우리가 듣는 복음에 성령의 나타남이 어디 있고 능력이 어디 있습니까. 왜요,

그 복음은 진정한 복음이 아니기에 성령의 나타남도 없고 능력도 없는 겁니다.

진정한 복음은 희석되지 않는 복음을 믿고 전해야 할 때입니다.

 

여러분, 제가 이 말씀을 드리고 사람들에게 소감을 물었더니 무겁대요.

이 복음이 이토록 여러분 소중한 건데 가벼워야 되겠습니까.

여러분, 진정한 복음을 받아들이시길 부탁드립니다.

 

-복음은 회개와

-복음은 순종을 요구하고

-복음은 심판을 포함합니다.

-복음은 말에 있지 않고 능력에 있습니다.

이게 없으면 여러분이 아는 복음은 진정한 복음이 아닙니다.

진정한 복음으로 돌아오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참 이런 글을 쓰셨습니다.

 

복음은 거친 역사의 파고를 넘고 또 넘어야만 한다.

복음은 세상의 품에 안겨서도 안 되고, 세상을 등져서도 안 된다.

복음은 만민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만민으로부터 외면과 거부를 당해야 한다.

이것이 복음이 당면한 역사적 현실이다.

결코 피할 수 없는 복음의 운명이다.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복음 전파자들이 법정에 섬으로써

총독들이나 임금 앞에 섬으로써 복음이 증거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결박당하고 핍박당할 때

오히려 성령이 말한 것을 말하게 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이 말씀을 묵상하기 전까지

복음 전하기가 이토록 어려운 일인 줄 몰랐다.

뺨 맞으러 가야하는 길인 줄 몰랐다.

 

만민에게 나아가야 하면서도

만민에게 멸시와 미움을 받아야 하는 것인 줄 몰랐다.

 

그러나 이제 알았다, 참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얼마나 소중하고 대단한 자들인지!

그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세상을 구하는 영웅들인지를!

 

그런 영웅 중 한 사람인 바울의 말을 들어보자.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인 우리를 사형수처럼

세상에서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들로 내놓으셨습니다.

우리는 세계와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바로 이 시각까지도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얻어맞고 정처없이 떠돌아다닙니다.

우리는 우리 손으로 일하면서 고된 노동을 합니다.

 

우리는 욕을 먹으면 도리어 축복하여주고 비방을 받으면 좋은 말로 응답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쓰레기처럼 되고 만물의 찌꺼기처럼 되었습니다.'

 

그렇다, 바울과 사도들이 가던 이런 길, 만물의 찌꺼기처럼 되는 길을 갔다.

주님이 말씀하셨듯이 그 길이 복음증거자가 가야하는 길이기에

바울뿐만 아니라 마가도 그 길을 갔다.

 

예수님은 예수 이후의 시대를 살아야 할 제자들을 향하여, 한 말씀을 더하셨다.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사람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입니까.

복음 증거의 길이 이토록 험하고 때로는 죽음 같은 길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견뎌내라는 것이다.

 

중간에 미끄러지지 말고, 끝까지 복음 증거의 길을 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반드시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그렇다. 복음 증거의 길은 비록 세상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역류의 길이요

가족들에게조차 이해받지 못하는 길이지만, 그 길은 약속이 있는 길이다.

 

세상에서 거부를 당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것만이 세상을 구원하는 길이다.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지만, 복음을 전하는 것만이 사람들을 사랑하는 길이다.

 

복음은 세상 마지막까지, 이 길을 가야 한다.

그리고 복음은 이 험난한 여정을 통해서 만민에게 전파될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운명에 대해 주님이 말씀하신 진실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복음입니다. 우리가 들은 복음과 너무나 다른 거죠.

이 문화적인 기독교가 말하는 복음과는 너무나 다른 복음입니다.

그런데 이런 복음을 말하면 교회 오기가 싫은 거예요. 부담되니까. 무거우니까.

 

여러분 복음은 한 번도, 사람들의 편리를 위해서 주어진 적이 없습니다.

복음은 사람들의 영혼을 구원하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영원한 형벌에서 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여러분에게 진짜 복음으로 다가온다면 여러분은 복있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이 복음을 받아들이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 복음을 전하시길 부탁드립니다. 반드시 사람들이 싫어하실 것입니다.

 

그런 복음 너나 믿어라.

천국과 지옥 얘기하면 충격적인 반응이 있습니다.

요즘 세상에 천국 지옥이 어디 있어? 그게 사탄의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성경이 엄연하게 말하고 있는데 무슨 소리합니까.

문제는 이겁니다. 성경을 안 봐요.

성경을 안보니까 성경이 말하는 복음이 뭔지 알 길이 있어야죠.

 

하기는 먹고 살기도 힘든데 성경 볼 시간이 없겠지만. 이해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러하더라도 진정한 복음을 여러분은 오늘 들으셨잖아요.

성경적 복음을 들으셨잖아요.

 

여러분 우리가 이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비록 사랑과 진리 교회가 인기가 없어지더라도.

 

지금까지는 평판이 좋았어요. 굉장히 평판이 좋았어요.

그런데 이 진정한 복음을 전하고나서

아 그 교회는 좀 힘들어.’ 이렇게 될지라도

제가 너무나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복음을 받아들이기 힘들어서 이 교회를 떠난다 할지라도

저는 이 길을 가겠습니다.

 

왜냐면 이 길을 가라고 나를 부르셨기 때문에.

저희 교회가 요새 부흥하고 있잖아요. 계속 사람들이 몰려오고 소문이 나고 있는데

속으로 내가 이 설교해서 줄어드는 거 아닌가.’ 그래도 할 겁니다.

 

여러분 더 이상 희석된 복음 묽어져버린 복음

듣기 편한 대중적인 복음에 귀 기울이지 마십시오.

진심으로 여러분께 말씀드립니다. 그 복음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제가 담대하게 말합니다. 그 복음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진정한 복음만이 구원이 있습니다.

우리 사랑과 진리 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다 같이 이 복음을 위해서 같이 갑시다.

누가 뭐라고 하든 성경이 말하는 것을 믿는 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J.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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