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David Pawson's Unlocking the Bible

사사기, 룻기 P1 / David Pawson

LNCK 2015. 7. 16. 10:57

 

사사기, 룻기 P1                   영어 녹취록                           source

 

 

 

범죄한 사람의 최후와 그 비참한 결과(삼손), 그리고 그를 생각하며 지은 시..

 

사람은 <범죄징벌부르짖음구원>의 악순환을 계속한다는 점, 그 악순환이 사사기에 7번이 반복되며,

 

죄악은 점점 더 악독한 결과로, 갈수록 심해진다는 점 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성경은 도서관처럼, 그 안에는 서로 다른 종류(장르)의 책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앞에서 레위기를 보았는데, 레위기는 율법 장르 이었습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역사서를 살펴보겠는데, 이것은 아주 다릅니다.

 

 

 

성경은 아주 독특한 점이 있는데, 바로 역사서를 아주 많은 분량으로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의 다른 종교의 경전들을 보시면, 거기에 역사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코란, 베다(힌두경전) 안에는 역사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역사서입니다. 하지만 다른 역사책들과 달리

 

아주 일찍 역사를 시작하고, 끝나는 시간 또한 다른 역사서보다 늦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역사 기록은, 어떤 역사학자도 이렇게 기록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도 우주가 시작될 때, 그 현장에 없었고,

 

또한 어떤 사람도 우주가 끝날 때, 그 현장에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우주의 시작부터, 우주가 끝나는 역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타난 역사의 제일 최초 부분과, 제일 마지막 부분은

 

-하나님이 계시해 주셨다는 것이든지,

 

-사람이 상상해 낸 것이든지,

 

둘 중 어느 부분을 믿을 것인지는, 스스로 결정하십시오.

 

 

 

성경의 역사는, 당시 현장에 있었던 역사학자가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 성경의 역사는   현장에 있었던 역사학자가 없을 때 기록된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대부분은  다른 역사책처럼
사람의 일을 기록하였고 사사기가 바로 역사서입니다 

.

 

역사를 연구하는 방식에는 크게 4개 측면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도서관의 역사학 서고에서, 아래 4방면보다 더 많은 관점으로 쓴 역사서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 그 한 가지 관점은 인물 중심 역사 연구입니다.

 

위대한 인물들, 뛰어난 사람들 중심으로 나열해서 역사를 연구하는 방식이지요.

 

영국의 경우에서 보면, 왕과 왕비에 초점을 맞추어, 그들의 통치 기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살핍니다.

 

 

 

 

 

2) 두 번째로 역사를 연구하는 방식은, ‘나라들과 민족들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즉 세계의 정치사를 보면, 어떤 나라는 갈수록 크고, 어떤 나라는 갈수록 쇠퇴해 가고,

 

그 약소국이 결국 강대국에게 점령당합니다.

 

이 측면은, 개개 인물보다는, 역사상의 나라와 민족들을 연구합니다.

 

 

 

3) 세 번째 측면은, ‘역사의 패턴과 리듬을 찾는 것인데,

 

바로 경제적 침체와 성장 등의 주기적 사이클이 번갈아 교체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역사학자들은 역사의 흥망성쇠의 패턴을 찾고 싶어 하는데,

 

이로써 문명의 흐름이 어떻게 발생해 왔는지를 이해하려는 것이지요.

 

 

 

지금까지 이미 모두 21개 문명이 흥왕하였다가 쇠퇴하였습니다.

 

그들 모두의 발흥과 쇠락의 패턴이 매우 비슷한데, 마치 로마제국의 발흥과 쇠락의 패턴과 같습니다.

 

 

 

4) 네 번째 측면은, 토인비라는 역사학자가 쓴 역사책처럼,

 

바로 역사의 목적을 찾아내는 것이지요. ‘역사는 어디로 가는가?’

 

역사는 다만 반복되는 패턴뿐일까?

 

아니면 역사는 수 세기를 지나면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나아가는 것일까?

 

 

 

역사의 배경에는 뭔가(목적이) 있고, 거기에는 플롯(작가의 구상)이 있고,

 

어떤 명확한 끝맺음이 있지 않는가?

 

 

 

역사에 어떤 목적성이 있는가?’라는, 토인비의 질문에는 두 가지 답이 있습니다.

 

 

 

1) 어떤 사람들은 역사에는 목적성이 없고, 역사는 방향성 없이 흘러간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끊임없이 순환하며, 모든 일들은 다시 반복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는 속담을 들어보셨지요? 이것은 순환하는 역사관입니다.

 

어떤 방향성을 갖고 흐르는 것이 아니라,

 

역사는 끊임없이 계속 순환하여, 돌고 도는 것뿐이라는 관점입니다.

 

 

 

좋은 시대가 있다가, 어려운 시대가 올 것이고,

 

그러다 또 좋은 시대가 왔다가, 또 어려운 시대가 오면서.. 이렇게 반복합니다.

 

 

 

제국도 이렇게 흥왕하였다 또 쇠퇴할 것이며,

 

역사는 어떤 목적성, 방향성이 없고, 끊임없이 순환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순환 역사관은 인간의 시각에서 본 역사입니다.

 

 

 

2) 하지만 하나님의 시각에서 보는 역사관이 있습니다.

 

이것은 끊임없이 순환하는 것이 아니라, 일직선상으로 전진하는 방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역사는, 향하여 가는 어떤 목적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흐르지만, 역사는 어떤 한 방향을 향하여 줄기차게 흐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역사관입니다. 역사는 일직선상의 개념입니다. *순환이 아니라요

 

역사는 그 목적이 있습니다. 출발점이 있고, 과정이 있고, 종착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계획하신 종말로 향하여, 역사의 방향을 움직이고 계십니다.

 

그래서 역사는 그분의 이야기이고, 하나님이 기록하여 나가고 계시는 이야기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성경의 인물들이 매번 하나님을 떠나면,

 

모두 똑같은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사기를 읽으면, 하나의 패턴이 반복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사기에 일곱 번 반복되는 사건이 나오지요.

 

이렇게 똑같은 이야기가 반복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우리 개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난 생명은, 순환구조로 변한다는 것이에요.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집으로 오고, TV를 보고, 잠자리에 들고,

 

다시 아침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집으로 오고, TV를 보고, 잠자리에 들고,

 

이 일을 40년을 순환하고, 그리고 퇴직하고, 죽고, 이렇게 떠나서 왔던 곳으로 돌아가지요.

 

 

 

이러한 인생은 그냥 하나의 순환뿐입니다. 목적지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당신이 하나님과 정렬(동행)하게 되면,

 

당신의 인생은 목적이 있게 되고, 어디론가 향해서 가게 되고, 일직선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해하시죠?

 

 

 

사사기에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났고,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그들은 레위기 율법과, 모세의 율법을 지키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인생은, 어떤 순환이 시작되어서 돌고 돌았고,

 

그들은 죄악들이 한번, 두 번, 세 번씩 재연되었습니다.

 

 

 

하지만 룻기는 직선으로 가는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왕의 족보로 끝이 났는데, 이로써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앞서 역사는 어떤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고 했지요.

 

 

 

그렇다면, 당신의 인생이 돌고 있어요? 아니면 직선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이것은, 당신이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의 구속이, 당신에게 미치는 큰 영향은, 당신을 순환에서 떠나

 

어딘가를 향해 직선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신이 그 목적지로 전진하게 합니다. 역사에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사사기와 룻기는, 두 책이 원래는 한권입니다.

 

오늘날 히브리 성경에는 여전히 한권입니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데, 두 권이 서로에게 속해있으며, 사실상 한권으로 봐야 합니다.

 

 

 

다음으로 이 한 권을 누가, 왜 기록하였는가 입니다.

 

성경의 각권마다 제일 중요한 질문 한 가지는, ‘왜 이 책을 기록하였는가?’입니다.

 

일단 그 답을 알면, 그 책을 풀 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책을 기록하였을까요?

 

사사기-룻기라는 책이 기록되었을까요?

 

누가 기록하였습니까? 언제 기록하였습니까?

 

 

 

놀랍게도, 이 문제의 답을 찾아 낼 수 있습니다.

 

비록 그 답은, 다른 성경에 없어요. *이 책 속에 있어요.

 

우리는 마치 탐정처럼, 성경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합니다.

 

 

 

 

 

먼저 사사기를 봅시다.

 

 

 

아쉽게도 많은 사람들이, 사사기의 내용을, 대부분 주일학교에서 배운 초보 수준으로 알고 있어요.

 

여러분, 제 말뜻을 이해하시겠습니까?

 

 

 

그들은 바우들러 판의 사사기만 아실뿐인데,

 

이 단어가 아마 여러분께 익숙하지 않을 것입니다.

 

 

 

바우들러는 유명한 사람인데, 그는 셰익스피어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그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많은 장난 같은 부도덕한 내용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잘라내고, 장난 같은 부도덕한 내용을 다 삭제해 버렸습니다.

 

그리고 바우들러 판의 셰익스피어 작품을 남겼습니다.

 

이로써 그는, 욕을 먹는 이름으로 역사에 내려오게 되었지요.

 

 

 

저는, 여러분들이 주일학교에서 온전한 사사기를 가르치지 못한다고 봅니다.

 

사실 사사기에는 꽤 무서운 사건들이 너무 많아요.

 

첩의 시체가 토막 나는 이야기 있고, 그리고 강간과 살인,

 

또한 남자 생식기의 상징들이 나와요.

 

 

 

그래서 주일학교에서 가르칠 때, 이 내용들을 편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지요.

 

그런데 저는 여러분이 그럴까봐 염려합니다.

 

그래서 이 책의 진정한 뜻은 이해하지 못한 채, 사사기의 인물들만 배우고 끝날까봐 걱정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아주 보편적입니다.

 

 

 

여기에 삼손의 만화그림이 있어요. 사실 삼손은 만화처럼 그렇게 근육질로 생기지 않았고,

 

아마 저를 닮았을 거예요. 왜냐면 한번 생각해보세요.

 

만약 삼손이 근육질이라면, 들릴라가 삼손보고 당신의 힘이 어디서 왔느냐?’고 묻겠습니까? *당연한 걸 왜 묻겠습니까

 

 

 

사실상 삼손은 키가 크지 않고, 그의 힘은 그의 이두박근 근육에 의지한 것이 아니며,

 

그가 또한 보디빌딩 세계챔피언 같은 몸매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아쉽게도 주일 학교에서는 모두 이러한 근육질 마초 삼손을 가르칩니다.

 

모두 귀가 솔깃 할만큼 모험스러운 이야기들입니다.

 

이것은 편집된 바우들러판입니다.

 

 

 

아쉽게도 대다수 사람들은, 사사기를, 이러한 수준으로 이해하는데서 멈추고 있습니다.

 

그들은 삼손, 기드온을 알고, 그들이 여권주의자라면, 여선지자 드보라를 아실 것입니다.

 

그리고 사사기의 다른 이름이 나오면, 우리는 난처해지는데요.

 

 

 

그건 참 가련한 일입니다. 왜냐면 사사기는 인물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거든요. *전기나 위인전이 아님.

 

사사기는 주일학교의 재미있는 이야기나 민간에 내려오는 옛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동화도 아니고,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민담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당연히 민간으로 전해졌으며,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기억하고, 반복해서 얘기하고, 기록까지 하였지요.

 

 

 

성경이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기록되어졌고,

 

어떤 얘기들은 기억되어졌고, 들은 이야기를 전하고 또 전하였고,

 

마지막에는 어떤 사람이 펜과 잉크로 기록하였고,

 

그래서 오늘날 우리들을 위한 기록이 되었습니다.

 

 

 

 

 

이제 사사기의 영웅 인물들을 살펴봅시다.

 

 

 

인물 기록은, 평등하게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삼손 한 사람은 4장에 걸쳐 기록되었고, 기드온은 3장을 차지했어요.

 

하지만 어떤 인물은 단 몇 구절만 기록되었어요.

 

 

 

마치 더 큰 파동을 일으킨 사람일수록, 더 많이 기록된 것 같아 보입니다.

 

이것은 솔직하게 마치 타블로이드판 신문 기사와 같습니다. *스캔들이 많이 나오는 신문

 

 

 

드보라와 바락이 적지 않은 분량으로 기록되었고,

 

기드온이 더욱 많은 분량을 차지했는데,

 

그래서 저는 기드온에게 별표 두 개를 주고,

 

삼손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해서, 그에게 별표 세 개를 줍니다.

 

 

 

사사기의 첫인상은, 넬슨제독이나 웰링턴장군 같은, 민족적 영웅들 같다는 것입니다.

 

그들 영웅들이 어려운 시기에 나타나, 나라의 위기 상황을 구했습니다.

 

사사기를 계속 읽어나가면, 사사마다 제각각 얼마나 독특한지요! *지금부터 살펴봅니다.

 

 

 

1) 옷니엘은 갈렙의 동생인데, 성경에는,

 

그가 치리할 때 이스라엘이 40년 평안하였다고만 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것은, 그게 전부입니다.

 

 

 

2) 에훗은 아주 눈에 띄는 사사이지요.

 

그는 왼손잡이이고, 항상 길이가 한 규빗되는 칼을, 자기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차고 다녔어요.

 

일반적으로 오른손잡이들은 칼을 찰 때 왼쪽 허벅지에 차는데, 그래야 칼을 바로 뽑죠.

 

그는 아주 영리해요. 칼을 오른쪽 허벅지에 차니, 왼손잡이라서 바로 칼을 뽑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가 모압 왕을 찾아가서 말했습니다. ‘제가 당신께 드릴 비밀스런 소식이 있으니,

 

신하들을 이 방에서 모두 나가게 하십시오.’

 

모압 왕은 매우 비둔한 자입니다. 모든 신하들이 나간 후, 에훗이 칼을 뽑았어요.

 

 

 

전에 그는 오른쪽 다리에 차고 다니다가, 이제는 왼쪽 다리에 숨겼던 칼을 뽑아서

 

모압 왕의 배를 찔렀지요.

 

그는 매우 비둔해서, 기름이 그의 칼과 손을 덮었지요.

 

 

 

이 이야기는 참으로 교훈적이네요. *농담으로

 

에훗이 모압 왕을 죽인 후 달려 나가서 호위병에게

 

왕이 볼 일을 보고 있으니, 15분 안에 누구도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그는 안전하게 이스라엘로 돌아 왔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성경에 왜 이런 것을 기록하고 있을까요?

 

 

 

3) 삼갈은 회오리바람처럼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백명을 죽였다는, 요약된 설명만 나옵니다.

 

 

 

4) 다음으로 드보라와 바락입니다. 드보라는 여 선지자이고, 그 이름의 뜻은 바쁜 꿀벌이라는 뜻이고,

 

그는 불꽃이라는 남자와 결혼했어요. 그 사람의 히브리 이름은 랍비돗(불꽃)입니다.

 

 

 

드보라는 하나님의 음성만 듣고 분규를 해결하였습니다. *평소에 선지자로서

 

하지만 큰 전쟁이 일어났을 때, 그는 무작정 백성들을 거느리고 전쟁터로 가지 않았어요.

 

대신에 그는 바락을 불러서, 백성을 거느리고 싸우러 나가라고 했어요.

 

 

 

바락은 정말로 남자답지 못해요. 그가 드보라에게

 

만약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않으면, 나는 최전방에 나가지 않겠다고 하였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군대는, 높은 지휘관이 직접 최전방에 나가서 군대를 지휘하는 관습이 생겼어요.

 

오늘날 이스라엘 군대도 여전히 이러한 관습이 있는데,

 

그래서 많은 지휘관을 전투에서 잃습니다. 그들이 진정한 군대지요.

 

영국 군대는 이렇지 않습니다. 미국과 다른 나라들의 군대도 이렇지 않지요.

 

 

 

그래서 바락이 당신이 나와 함께 가야, 내가 선두에서 백성들을 거느리고 싸울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면 드보라가 위험하지요. 그래서 하나님이 화가 나서,

 

적장 시스라를 한 여자의 손에 죽게 하겠다고 하셨는데,

 

이는 그 겁쟁이 바락을 모욕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스라의 죽음이 과연 뜻밖이었어요.

 

그도 자신이 이렇게 죽으리라고는 생각 못했지요.

 

 

 

여러분이 이 이야기를 읽어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만약 읽지 못하였다면

 

집에 가서 한번 읽어 보세요. 그러면 제가 이야기한 내용을 알게 될 것입니다.

 

 

 

5) 다음으로 겁쟁이 기드온을 봅시다.

 

그가 고기를 제단에 올려놓으니,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제단 위에 고기를 태웠습니다.

 

그걸 보고도 그는 주님, 하늘에서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참으로 웃기지 않습니까?

 

 

 

그는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의 제단 위의 고기를 태우는 것을 친히 보고도

 

하나님께 또 표적을 구했어요. 양털에 표적이 있게 해 달라고 구했어요.

 

 

 

제가 뉴질랜드에 사는 친구가 있는데, 어느 날 밤에 그 친구가

 

말레이시아에 선교사로 와 달라고 요청을 받았어요.

 

 

 

그래서 그가 하나님께 제게 양털 표적이 필요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기드온처럼

 

이튿날 아침 그가 차에 탔을 때, 운전하다가 보니까

 

그의 차 지붕 위에 양가죽(양털)이 덮여있었고,

 

거기에 이슬까지 가득히 내린 것을 발견했어요.

 

 

 

지금까지 그는 누가 그것을 거기에 두었는지 몰라요.

 

그의 이웃사람들도 그걸 두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후로 그는 다시는 양털 표적같은 것을 보여 달라고 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양털 표적을 구하는 것을 보았어요. *어떤 신기한 증표

 

 

 

그때마다 당신이 정말 이것을 구하느냐?’고 물어 보지요. *그러지 마세요

 

뉴질랜드의 제 친구만, 기드온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양털 표적을 구해서 얻은 사람입니다.

 

 

 

기드온은 그가 구하는 양털 표적을 얻었어요.

 

하루는 말라 있던 양털이, 다음 날에는 젖었어요.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힘과 전략으로만,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워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이십만 명의 군대를, 삼백 명으로 줄였어요.

 

이는 기드온더러, 사람의 힘과 자원을 의지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다른 재미있는 사건은, 기드온이 그의 병사들을 데리고, 시내로 물 마시러 가서,

 

누가 혀로 물을 핥아 먹는가를 보면서, 가려내었어요.

 

 

 

여러분, 여기가 바로 하롯 샘입니다. *7:1

 

기드온이 여기로 데려갔어요.

 

수 백 명씩 이스라엘 병사들이, 엎드려서 물을 먹는 것을 한번 상상해보세요.

 

 

 

머리를 물까지 숙이고, 물을 핥아먹는 자는 돌려보내고,

 

다만 손으로 물을 떠먹으면서, 눈은 여전히 사방을 볼 수 있는 사람은 선택 되었는데,

 

마지막에 3백명만 남았습니다.

 

 

 

(사진을 보여주며) 아까 드보라와 바락이 바로 다볼 산에서 병사를 모집했고, *4:12

 

적군 시스라의 군대는 그 산 아래에 집결했어요.

 

거기는 늪지대인데, 그의 말병거들이 거기 진흙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여,

 

시스라가 걸어서 도망가야 했어요.

 

당시 그 전쟁이 바로 여기(사진)에서 발생했습니다.

 

 

 

여러분이 성지에 가시면 생생한 교육이 됩니다.

 

저희의 동역자 크리스털이 이 방면에 제일 적임자입니다.

 

 

 

좋습니다. 우리 계속해서 보겠는데, 기드온 후에는

 

 

 

6) 돌라, 야일이지요.

 

 

 

7) 야일은 아들 삼십 명이 있고,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가졌는데,

 

아주 재미있어요.

 

 

 

8) 그리고 다음은 입다이지요. 그는 길르앗 사람들의 지도자입니다.

 

그에 대해선, 자세히 살피지 않습니다.

 

 

 

9) 다음으로 입산인데, 그가 아들 30명과 딸 30명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 모두가 유다 지파 이외의 여자들을 아내로 맞았어요.

 

 

 

그는 베들레헴 사람인데, 이 점이 아주 재미있어요.

 

기억하십시오. 베들레헴이 살고 있는 이 가족 모두가, 자기 종족 이외의 여자를 아내로 맞았어요.

 

그들은 여전히 이스라엘 사람이고요. 하지만 지파만 다를 뿐입니다.

 

조금 있다가, 룻기에서 이 점을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10) 다음으로 엘론인데, 우리는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릅니다.

 

 

 

11) 다음으로 압돈인데, 그가 아들 40명과 손자 30명이 있었고, 70마리의 나귀가 있었어요.

 

자손이 70명이라서, 나귀가 70마리 있었습니다.

 

 

 

12) 다음으로 삼손인데요,

 

 

 

 

 

삼손

 

 

이 이름은 햇살이라는 뜻이에요. *sunshine

 

햇살이 삼손의 히브리 뜻인데, ‘햇살은 나실인으로 자랐습니다.

 

 

 

한번은 제가 설교 때, 삼손을 이야기 했어요.

 

그는 술을 마시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회중 중에 어떤 사람이 할렐루야라고 소리쳤습니다.

 

 

 

제가 또 그는 반드시 머리를 깎지 말아야 했습니다라고 말하니,

 

회중들은 어느 때보다 더욱 조용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왜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 중에 일부분만 동의하십니까?’

 

 

 

삼손은 나실 인이었습니다. 그의 출생이 기적이었습니다.

 

모두들 그가 맨손으로 사자를 죽였고, 또한 사자에게서 꿀을 취한이야기를 아시죠?

 

 

 

후에 그가 결혼식에서 수수께끼를 내었는데,

 

바로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는 수수께끼였습니다.

 

 

 

현대인들은 Tate & Lyle 의 소설 <골든 시럽>만 보면 답을 알 수 있지요.

 

왜냐하면 답이, 테이블 위에, 그 꿀단지에 있고, 그걸 사는 사람은 그 답을 압니다.

 

하지만 삼손 당시에는 이런 것들이 없었지요.

 

 

 

후에 사람들이 삼손의 신부에게 가까스로 설득해서, 그 퍼즐의 답을 얻게 하지요.

 

삼손이 아주 화가 났습니다.

 

후에 신부가 다른 남자 아마 신랑 들러리 와 도망했어요.

 

 

 

이 사람의 이야기가 아주 특별합니다.

 

그는 결혼해서 신혼여행도 가기 전에, 혼인이 파기되었어요.

 

 

 

후에 그가 이름 없는 어떤 기생을 찾아 갔고,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그가 정부를 찾았는데, 그의 이름이 바로 들릴라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슬픈 이야기이지요. 한 약한 남자의 이야기입니다. 강한 남자가 아니었어요.

 

그가 여러 차례 신기한 큰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완전히 은사적 기름부으심 때문이지,

 

그의 근육이 강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후에 하나님의 영이 그를 떠나시니, 그의 눈이 뽑혀 소경이 되었고,

 

그리고 그를 옥에 갇혀서 거기서 맷돌을 돌리며, 블레셋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어떤 분은, 혹시 저의 널리 알려진 한편의 설교를 아실 것이에요.

 

제목은 삼손의 머리카락이 다시 자랐다입니다. 제가 전에 1982년에 한 설교에요.

 

 

 

후에 이 설교가 뜻밖에도 영국 전국에 불길처럼 전해졌어요.

 

어떤 젊은이가 이 설교를 듣고, 시 하나를 지었어요.

 

 

 

삼손의 눈이 멀어, 어떤 어린 남자 아이가 삼손을 신전의 기둥에 데리고 가니,

 

그가 그 기둥을 뽑아, 궁전 전체가 파괴되었다는 묘사입니다.

 

아주 감동적인데, 제가 여러분께 읽어드릴게요.

 

이 시의 제목은 <그의 손을 이끈 작은 아이>에요. 한번 들어보세요. *아이의 관점에서 보는 시입니다.

 

 

 

그들이 그의 눈을 뽑았다.

 

(소년)는 처음에는 차마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의 눈은 텅 비었고, 그는 울부짖었으며, 그 잔혹함이란!

 

나는 그 폭 파인 두 눈을 주시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다시는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밀린 머리가 푹 떨구어진 것을 보았다.

 

맷돌이 땅바닥과 마찰하는 곡조의 움직임에 따라,

 

그는 돌고, 돌고, 또 돌았다.

 

 

 

그의 묵직한 족쇄를 보니

 

바늘이 달려 있지 않는데도, 그의 살을 심하게 물어뜯었구나.

 

족쇄를 채울 필요도 없는 것 같았다. *그의 마음이 이미 묶여있었다

 

 

 

이젠 두 눈을 잃은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내가 그의 두 눈이 되어서, 그가 나를 통해서 본다. 다른 선택이 없다.

 

 

 

나는 항상 그가 흘리지 못하는 눈물을, 그를 위해 흘렸다.

 

과거의 세월에 너무 방종했던 것을 회개한다. *소년이 삼손의 회개를 보며 자기도 회개?

 

 

 

나는 이 깨어진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배웠다.

 

그가 자기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마침내 배우는 동안. *신자가 경건해지면 이방인이 배웁니다

 

 

 

나는 마지막 순간에, 그의 눈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보통처럼 그의 손을 잡고, 그를 한 걸음 한 걸음 인도하여,

 

그가 기도하는 곳까지 왔다.

 

 

 

주님, 지극히 높으신 주님

 

기둥이 무너졌고,

 

나는 높이 외쳤다. 아멘.

 

 

 

아주 감동적인 한편의 시이지 않습니까?

 

불쌍한 삼손이 죽기 5분 전에 동족을 위해 한 일이

 

그가 생전에 한 것보다 더욱 많았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사사기의 인물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은 아주 정직한 책입니다. 사람의 연약함을 숨기지 않았어요.

 

 

 

사실 많은 인물들이 연약하고, 겁쟁이였어요.

 

그들은 용감한 자들이 아니고, 또한 거룩하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그들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들은 모두 성령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비밀은, 성령이 그들에게 내리신 것입니다.

 

 

 

비록 사람의 연약함이 있었지만, 그 연약함이, 성령의 기름부으심으로 얻게 되는 신적인 능력으로 연결되었습니다.

 

구약시대엔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 소수의 몇 사람에게만 임했던 것이었습니다.

 

엄격히 말해서 200만명 중 다만 12명에게만 기름부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은 잠시만’(구약) 그들에게 임했던 것이지, ‘계속적으로’(신약) 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그들을 터치(구약)했지만, 그들 안에 내주(신약)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이 점이 아주 중요합니다. 구약성경의 성령은 모두는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들 모두는 누구였습니까? 영어로 그들은 판사들로 불리는데요,

사사기가 영어로 재판관들입니다. *Judges

 

 

 

아쉽게도 판사(사사)’란 번역이, 사실 아무런 도움이 안 되고, 원래 뜻과도 맞지 않아요.

 

사실 판사라는 명사가 그들에게 쓰이지 않았고, 동사“judged”가 쓰였는데요.

 

 

 

성경에서는 삼손이 이스라엘을 재판했고’, 기드온이 이스라엘을 재판했다고 말씀합니다. *동사로

 

성경에서는 그들을 심판관이라고 칭하지 않았고, 그들이 심판을 행했다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사사기에 실제로 그들이 판사처럼 재판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을 문제 해결사로 부르고 싶네요. *한글 사사 士師는 고대 중국에서 재판관을 뜻함.

 

 

 

그들은 위기 때마다 백성들을 구했고, 혹은 앞서 말했던 것처럼 곤경에서 구원하는 일을 했지요.

 

그래서 그들은 구원자로 부를 수 있지요. *영혼의 구세주가 아니라, 위기에서

 

 

 

이 동사 judge 의 원뜻은, ‘곤경에서 구해 내다는 뜻입니다. *, 샤팟 : judge, govern

 

사사마다 모두 위급한 상황에 빠져 있는 나라를 거기서 구원(구조)해 내었고,

 

 

 

또한 이러한 영웅이 나타난 것은, 나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적들이 공격해 올 때, 그들은 하나님께 기름부음을 받아서, 그 상황에서 나라를 구해냈고,

 

 

 

 

 

제 말의 요지는 사사기에서 오직 하나님만, 명사로 재판관이라 칭함을 받을 수 있어요. 흥미롭지요?

 

사실상 하나님만 구원자이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도구로 백성들을 위기에서 구해냈어요.

 

 

 

그래서 명사는 하나님이시고, 이 영웅들은 동사였습니다. 이해하셨죠?

 

 

 

성경의 하나님은 이러한 방식으로 일하십니다. 그분은 구주입니다.

 

하지만 일하시는 방식은, 사람을 통해서 입니다. 보셨죠?

 

 

 

하나님은 구원자이시고, 그분만이 구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사람을 통해서 구하시는데,

 

이 방식이 대부분,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성령으로 기름부으시고, 그 하나님이,

 

사람들이 하는 일을 통해서 나타나시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치료자이시지만, 그 치료는, 그가 기름부으신 사람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역사하심은, 성령충만한 사람을 통해서 되어지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아말렉, 암몬 같은 많은 적이 있었는데,

 

이들은 가나안의 사방팔방에서 흩어져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인구가 밀집된 땅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들어올 때, 이 곳은 빈 공터가 아니었고,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땅이었습니다.

 

그 곳의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환영하지 않았는데, 오늘날의 상황과 너무 흡사합니다.

 

1948년 이후 구약성경과 동일한 상황이 또 발생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기에 사는 것을 정당화 시켜 주는 이유는, 단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그 땅을 그들에게 주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까지도 정당성은 그 이유뿐입니다. 다른 정당성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땅과 그 위의 만물은 하나님의 것이고, *10:14

 

하나님은 그 땅을, 누구에게 주시기로 작정한 자들에게 주십니다.

 

 

 

그래서 적이 사방팔방에서 공격해 왔는데,

 

이미 우리는 이 구약이 처음부터, 이스라엘 민족 위주의 책인 것을 보고 있습니다.

 

 

 

몇몇 인물들의 이야기만이 아니고, 어떤 영웅적 이야기를 모아서, 그들을 숭배하라는 책도 아니고,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있는 한 민족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왜 그 모든 민족들이 와서, 이스라엘을 공격하게 허락하셨을까요?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의 범죄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금 사사기 본론으로 들어가 살펴볼 내용입니다.

 

 

 

 

 

만약 이 사사들이 치리한 기간을 전부 합하면

 

 

어떤 사사는 40, 어떤 사사는 80, 이런 식으로 모두 합하면 총 400년입니다.

 

하지만 사사기에는 200년만 포함되었어요. 여기에 계산적 문제가 발생하지요?

 

 

 

보십시오. 이 사사가 40년간 평화를 가져왔고, 저 사사가 80년동안 평화를 지켰습니다.

 

삼손도 20년간 평화를 가져왔어요. 16:31

 

전부 다 합하면 400년이에요.

 

 

 

하지만 성경 전체로 계산하면, 이 책이 200년 역사만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지도의 도움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각 지파가 이 때는 이미 서로 다른 지역에 정착했고,

 

보세요. 갓 지파가 여기에, 르우벤 지파가 여기에, 작은 베냐민 지파가 여기 있고,

 

여기는 유다 지파가 정착한 곳입니다.

 

 

 

단 지파는 본래는 여기에 거처해야 하는데,

 

하지만 사사기에는, 그들이 그 곳을 차지하지 못했다고 하였습니다. *18:1

 

 

 

그들이 분배받은 땅의 남은 적들을 제압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북쪽으로 이동해서, 헐먼 산 근처에 자리 잡았습니다.

 

 

 

스불론, 므낫세 등 두 지파 반은 이미 요단강 동쪽에 정착했고,

 

다른 모든 지파들은 요단강 서쪽에 거처했습니다.

 

 

 

요지는, 우리가 기드온과 삼손의 이야기를 읽을 때,

 

그들이 이스라엘 모든 나라를 구원했다고 보는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이때 나라 12지파는, 3 그룹으로 나누어져 사방으로 흩어져 있었어요.

 

그래서 사사기의 40년은, 북쪽 지방을 가리킬 수도 있고,

 

같은 시간에 어떤 곳의 40년은 남쪽 지방을 가리킬 수도 있는데,

 

이렇게 서로 겹치는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시죠?

 

 

 

바로 각 지방의 년대를 합하면 총 400년이지만, 하지만 실제 시간은 총 200년입니다.

 

여러분 아시겠습니까? *사사의 치리기간이 중복되었기 때문

 

 

 

여기에 두 개의 큰 골짜기가 가로 놓여서,

 

이스라엘 민족을 북부, 중부, 남부로 나누었습니다.

 

 

 

이스르엘 골짜기가 가장 큰데, 여기 지도의 위쪽에 있고요,

 

그래서 12지파가 이로 중심하여 북부, 중부 그리고 남부로 그룹으로 나누어져 거주하고 있습니다.

 

 

 

당시 삼손은 남부 지파를 구하였고, 기드온은 북부 지파를 구원하였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한 사사가 구원할 때, 전국을 구원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리적으로, 그들은 분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 두 계곡이 잘려져서, 그 계곡으로 적들이 들어와서,

 

그룹으로 나눠진 지파들의 안전을 위협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지리적 요인이 있었고요,

 

 

 

그리고 그들이 고통을 당한 데는, 정치적 요인이 있었는데,

 

이는 바로 그들에게 지도자 한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모세와 여호수아가 그들을 인도해서 다녔고,

 

모세가 그들을 인도해서 출애굽 했고, 여호수아가 그들을 약속의 땅에 들어갔지요.

 

그들은 한 지도자를 쳐다보는 게 습관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 이후로 계승자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기저기에 사사들을 세워서, 그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 사사도 전국적인 지도자가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사실 정치적 공백기가 생겼어요.

 

 

 

당시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고,

 

또한 어느 누구도 전국을 이끌만한 지도자로 충분히 갖추어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정치적 요인이, 그들에게 고통을 주었고요,

 

 

 

그 외에 또 도덕적 이유도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사기의 중심 메시지입니다. *나중에 아래에서 살펴봅니다.

 

 

 

 

 

이제 사사기의 전체 윤곽과 개요를 살펴봅시다.

 

 

 

사사기는 세 부분으로 아주 명확하게 나눠집니다.

 

이렇게 나눠지는 것은 명확해서, 그다지 머리 쓸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 제가 여기에 소제목 몇 개를 붙였는데,

 

이것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1) 1:1~3:6절까지는, <변명할 수 없는 타협>이라 제목을 정했어요.

 

그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 그들은 크게 타협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 조금 후에 다시 자세히 논하겠습니다.

 

 

 

2) 중간 단락은 3:7~16:31절까지인데, 사사기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지요.

 

이 단락의 소제목은 고질적인 소행이라 정했어요. (강의에 없지만, 도표에 나옴)

 

   

 

네 단계가 끊임없이 순환하지요. 그 네 단계란

 

 

 

-백성들의 난동,

 

-적들의 침범

 

-주님께 간구

 

-구원자에 의한 구원

 

 

 

이 사이클이, 사사기 중간 단락에서 7번 반복해서 발생합니다.

 

 

 

3) 마지막 단락의 제목은 <불가피한 부패>라고 정했어요.

 

악이 순환된 결과는 바로 불가피한 부패를 낳았지요.

 

 

 

그 결, 북방지역에서는 우상을 섬겼고,

 

남방지역에서는 부도덕의 죄를 범했습니다.

 

 

 

북부의 단 지파는 우상을 섬겼고, 남부의 베냐민 지파는 음란 죄를 범했습니다.

 

제가 베냐민에 밑줄을 그었는데, 여러분들이 특별히 주의하시라는 것입니다.

 

 

 

사사기는 한 선언으로 마치는데,

 

이 마지막 선언 한 문장이, 사사기에서 끊임없이 반복해서 나타나는데,

 

바로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입니다.

 

 

 

 

 

좋습니다. 우리 지금 먼저 첫 번째 단락을 봅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두 방면에서 타협했어요.

 

 

 

첫째, 하나님이 그들을 들여보내서, 그 곳의 모든 주민을 죽이라고 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곳 주민들의 삶이 얼마나 사악했고, 얼마나 정도에서 벗어났고, 얼마나 부패했습니까.

 

그래서 가나안 온 땅에 성병이 기승을 부렸고,

 

이렇게 그들을 알면 알수록, 그들은 응당 그 땅에서 쫓겨나야할 존재임을 느낍니다.

 

 

 

그들은 정말 가증했습니다. 하나님이 유대인들을 애굽에서 300년을 머물게 한 것은

 

아모리 사람들의 죄가 극도에 차기까지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들의 죄가 가득 차서 넘칠 때까지요.

 

 

 

-그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장 빗나간 사회에 대한 그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시키신 대로 하지 않고,

 

그 사람들을, 계곡 지역에 일부 남겨서, 계속 살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을 다 점령했지만 산 위의 지역만 점령했고, 골짜기는 남겨두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산 위에 살게 되었고, 이방인들, 빗나간 사람들은 골짜기에서 살게 된 것이지요.

 

 

 

결국 이스라엘 사람들과 이방인들과 친해지기 시작했고,

 

특히 이스라엘 젊은이들이 밤이면 골짜기로 놀러 내려갔습니다.

 

 

 

전에 롯이 소돔과 고모라가 있었던 골짜기로 내려간 이후로,

 

그 결과를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위에 산지에 거주하는데, 반대편 골짜기에서는요..

 

위에는 거룩이 있었고, 아래는 더러움이 있었지요.

 

 

 

당시 이스라엘이 그곳을 완전히 깨끗하게 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게 사사기에서 끊임없는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 결과, 위에서 살펴본바 4단계의 괴로운 악순환이 반복된 것이지요.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면,

 

바로 깨끗함과 부정함이 함께 있으면,

 

거룩함과 부정함이 함께 있으면 무슨 결과가 있을까요?

 

누군가 말했어요. 만약 당신이 마귀의 자녀와 결혼하면,

후에 당신은 장인과 굉장한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요.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 자매들이 믿지 않은 남자에게 시집을 갔어요.

 

정말로 그들의 남편이 언젠가 주님을 믿기를 바랬지요. 그래서 많은 자매들이 남은 평생 후회하며 삽니다.

 

신약 성경에서도,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당신은 반드시 믿는 사람과 결혼해야 합니다. 결혼하면 변함없이 이렇게 되는데요,

 

믿는 사람과 믿지 않는 사람이 결혼하면, 마치 나는 식탁 위에 서 있고, 당신은 바닥에 서 있고요,

 

그래서 내가 당신을 상 위로 잡아 끌어당기려 하고, 당신은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려 합니다.

 

누가 이기겠어요? 당신은 중력의 법칙을 아시죠? 그게 문제입니다.

 

 

 

만약 당신이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하면,

 

영적 중력의 법칙이 발생해서, 아래로 끌려가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이런 악순환의 사이클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머지않아 불순종하고, 반역했고,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벌하여,

 

대적들이 골짜기에서 올라와 그들의 땅을 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그 괴로움 가운데, 3단계로 들어갔지요. *범죄-침입-간구-구원의 4단계 악순환

 

그들은 주님을 향해 부르짖기를 주님, 죄송합니다. 우리가 잘못했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여 주십시오.’

 

주님은 그들을 구원하여 주셨고, 그들은 하나님과 관계를 올바로 회복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강물에 빠진 누구를 구해내니, 인공호흡을 해서 살렸어요.

 

그러자 그는 감사해요, 당신이 내 생명을 구했군요.’ 그리고 다시 물속에 뛰어들면,

 

당신은 다시 그를 꺼내주었고, 그는 당신이 나를 두 번이나 구했군요, 갑절로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뒤돌아 또 강에 뛰어들면,

 

이러면 당신이 그를 몇 번이나 끌어올리겠습니까? 70x7번입니까?

 

 

 

저 파슨은 구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당신은 구원 받기를 원하지 않는군요.’라고 말할 겁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상황이 일곱 번 반복해서 사사기에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이 사이클을 반복했고, 하나님은 기름부음 받은 지도자를 일으키셔서

 

그들을 다시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반복적으로 범죄하지요.

 

 

 

저는 지금 이 마지막 부분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이 부분에 아주 익숙하기 때문이지요.

 

만약 당신이 사사기를 공부할 때 삼손 혹은 기드온의 일생만 본다면,

이 악순환의 사이클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사기는, 당신에게 이 반복되는 사이클을 똑똑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러한 사이클에 쉽게 빠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개개인의 신자들이 이러한 반복되는 악순환의 사이클에 쉽게 빠지지요.

 

 

 

범죄하고 - 고통에 시달리고 - 그래서 주님께 구해 달라고 간구하고 - 그러면 주님은 또 그를 구해주시고,

 

그러면 12개월 지나서 또 범죄하고 또 고통에 시달리게 되지요. 이러한 사람들을 알고 계시죠?

 

 

 

사람은 쉽게 하나님을 떠나, 이런 악순환에 빠집니다.

 

이러한 악순환은 끝없이 계속될 뿐만 아니라, 점점 아래로 향해 나아가는 악순환입니다.

 

일단 이 악순환에 빠지면, 그냥 사이클이 아니라, 아래 지옥 으로 향하는 악순환입니다.

 

 

 

 

 

막장 이야기

 

 

 

사사기의 마지막 부분의 이야기는, 당시 백성들에게 일어났던 가장 사건들 중에 가장 비교훈적 입니다.

 

그 이전 범죄의 결과가, 시간이 갈수록 더 끔찍한 범죄로 발전함을, 사사기가 보여주지요.

 

 

 

17장부터 두 이야기가 나오지요.

 

 

하나는 북쪽의 단 지파이고, 하나는 남쪽의 베냐민 지파인데,

 

두 상황 모두는 어떤 한 레위인이, 각각 하나님의 백성을 미혹했지요.

 

한 영적인 지도자가,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도탄에 빠뜨리는 비극적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제 강의가 5분만 남아서 조금 빨리 하겠습니다. 성경은 여러분이 스스로 읽어보세요.)

 

 

 

이 두 예 모두가 퇴폐, 불순종, 부패, 도덕적 오염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주일학교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1. 북방에 미가 라는 사람이, 그가 자기의 어머니의 은전 1,100세겔을 훔쳤어요.

 

후에 어머니가 은 훔친 자를 저주하니, 그가 무서워서

 

그 은을 어머니에게 되돌려 드리니, 어머니가 착한 아들이라고 칭찬하면서,

 

내가 그 은으로 작은 은 신상을 만들어 줄 테니, 아들아 네가 소장품으로 보관하여라.’

 

당시 아들인 미가는, 이미 신상을 수집해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어머니가, 아들이 돌려준 은으로 신상을 새겨서, 그에게 주어 수집하게 하였습니다.

 

여러분, 어머니가 이렇게 아들이 타락하도록 인도하고 있는데, 이는 고난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미가는, 이제 자기 아들로 자기의 제사장을 삼고, 그에게 말하기를

 

아들아, 이 신상들을 보아라. 네가 제사장이 되어서 이 신상들을 지켜라고 하였어요.

 

 

 

이 남자아이는 본래 레위인이 아니었습니다. *제사장 자격이 아예 없지요

 

이 즈음에 어떤 레위인 제사장이, 유대 베들레헴에서 사고를 치고 도망했지요.

 

 

 

그가 이곳저곳 다니다가 북방까지 도망하여, 미가의 집에서 하루 투숙하게 되었는데,

 

그가 소년에게 말하기를 네가 여러 멋진 신상들을 수집하고 있구나하였지요.

 

 

 

그러자 미가가, 그 레위인 제사장에게 제안했어요.

 

내가 매년 너에게 은 열 세겔을 주고, 먹여 주고 재워줄 테니,

 

네가 우리 집의 개인 제사장이 되어 주시오

 

 

 

미가가 생각했어요. ‘이제 우리는 진짜 레위인 제사장을 갖게 되었다.’

 

그 레위인 제사장도 그 제안을 받아 들였어요.

 

 

 

그런데 후에 단 지파가, 남쪽에서 하나님이 주신 분배 받은 땅을 점령하지 못하고,

 

그래서 북쪽으로 이주해 왔어요. 그들의 지도자들이 미가의 집에서 밤을 새게 되면서

 

그 집에 있는 신상들을 보고, 또한 그 레위인도 보았지요.

 

 

 

그에게 물어보기를 당신은 이 한 집안의 제사장이요?

 

당신이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면 어떻겠소? 사례비도 더 많이 받게 될 거요.’

 

이 레위인이 그 제안을 받아 들였어요.

 

 

 

여러분, 단 지파는 이렇게 우상을 섬기는 지파가 되었습니다.

 

마치 12사도 중 가룟유다 한 사람이 없어져 버렸듯이,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단 지파도, 사라져 버립니다.

 

 

 

이 모든 일의 주범은 바로 한 레위인이지요.

 

이 사람은 본래는 제사장이요, 영적지도자었는데, 돈 때문에 한 가족의 개인 제사장으로 있었고,

 

후에 또한 돈 때문에,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었는데, 이는 참으로 슬픈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 이야기는, 더 심합니다. (이 이야기를 끝으로 강의를 마칩니다.)

 

 

 

2. 또 다른 한명의 레위인이, 그는 에브라임 산지에서 온 사람입니다.

 

그가 첩이 있는데, 그 첩이 유대 베들레헴 사람입니다. *아까 레위인도 베들레헴 출신

 

 

 

참 묘한 이야기인데, 이 첩이 그 레위인에게서 도망쳐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4개월 후에 그 레위인이, 그 첩을 자기 집으로 데려가려고 찾아 왔는데,

 

그의 장인이 모든 방법으로 시간을 끌었어요. 마지막에 할 수 없이 딸을 가게 했습니다.

 

 

 

그날 그들이 너무 늦게 출발하여, 예루살렘까지밖에 가지 못하였어요.

 

당시 여기는 아직도 이방인(여부스)의 성이어서, 레위인이 말하기를

 

우리는 이방인 땅에 머물면 안 되고, 반드시 이스라엘 사람들 있는 곳에서 밤을 지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베들레헴까지는 못 되돌아가도, 베냐민 지파의 땅까지 가려고 애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어둠이 내릴 즈음에 베냐민 기브아에 도착해서, 텐트를 치려고 했습니다.

 

 

 

그때 기브아 마을의 어떤 노인이 지나가면서, 그들에게 말하기를

 

텐트에서 지내지 말고, 우리 집에서 밤을 지내라고 하였습니다.

 

 

 

이로써 그들을 데리고 갔어요. 레위인과 첩이 그 집으로 들어가자 얼마 안 있어,

 

남자 동성애 무리들이 와서 그 집 문을 두드리며, 이렇게 말했어요.

 

네 집에 들어온 사람이 매력적이니, 우리가 그와 관계하리라

 

 

 

기브아의 노인이 말했어요. ‘안 된다. 그 분은 나의 손님이다.

 

너희들에게 이 첩이나, 혹은 내 딸을 주겠다라고 하였어요.

 

 

 

그리고 그 첩을 집밖에 밀쳐 내니, 그들이 밤새 그 여자를 능욕하였고,

 

새벽 미명에 그 첩은, 그 집 문 앞에 엎드려 죽어 있었습니다.

 

 

 

매우 무서운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레위인은 첩의 시체를 거두어

 

그 마디를 잘라 열 두 조각으로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12지파에게 보냈는데,

 

이것이 바로 베냐민 지파의 땅에서 발생한 일입니다.

 

 

 

웃기는 것은, 12지파가 처음으로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함께 모였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뭉치는 이유가 참으로 신기하지요?

 

 

 

모든 지파가 미스바에 모여서, 베냐민 지파를 혼내려고 결심했는데,

 

이것은 이스라엘 민족에게서 처음으로 발생한 내전이에요.

 

 

 

그 원인은 이 무서운 사건 때문이었고,

 

그 근원은 바로 첩을 취한 제사장 때문이었습니다.

 

 

 

참 무서운 것은, 한 사람으로 인해, 민족의 내전을 초래했어요.

 

그들이 베냐민 지파를 학살했는데, 내전 과정에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었는데,

 

이 내전에서 이스라엘 사람이 십분의 일이 죽었습니다. *10명 중 1사람이 죽은 꼴입니다.

 

 

 

베냐민 지파는, 자기 지파의 내부 문제에,

 

다른 지파들이 이 일에 끼어들어서 사태가 커지자,

 

화가 나서, 그들과 싸웠습니다.

 

그 결과, 성경을 읽어보면, 결국 베냐민 지파의 남자들은 거의 다 죽었습니다.

 

남자 600명만 남았어요. 그 외 여자들, 아이들도 다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들 남자 600명은 도망쳤지요.

 

이 때 모든 사람들이 우리 민족이 도대체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원래 12지파였는데, 지금은 11지파만 남았네, 우리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인가?’

 

그들이 마침내 제정신을 되찾았어요.

 

 

 

그래서 그들은 길르앗 야베스를 공격하여, *요단 동편 이방 땅

 

젊은 처녀 4백 명을 납치해 와서, 남은 베냐민 남자들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고, 그 지파가 계속 유지되게 했어요.

 

 

 

하지만 아직도 200명이 부족하여, 그들이 당시에 행하던 습관대로,

 

실로에서 다음 축제가 열릴 때, 베냐민 사람들이 거기 가서 이스라엘 여자를

 

각자 한 명씩 납치하도록, 주선합니다.

 

 

 

11지파들이 한쪽 눈을 찔끔 감고 받아들였지요.

 

전에 그들이 베냐민 지파에게 우리의 딸을 아내로 주지 않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맹세 때문에 우리가 딸을 주지 못하니, 너희들이 가서 납치하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참으로 전형적인 강제 결혼 방식입니다. *사사시대니까요

 

 

 

이러한 이야기 모두는 내리막길로 치닫는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악이 점점 커진다는 뜻.

 

단 지파가 우상 숭배하여, 그 이름이 제외되는 결말을 가져왔어요.

 

 

 

더 무서운 것은 베냐민 지파의 결말이에요.

 

한 사람의 음란으로 인해, 하마터면 하나님의 전체 백성에서 한 지파가 소멸될 뻔 했습니다.

 

 

 

사사기는 이런 비극적 이야기로 끝납니다. 보십시오.

 

그때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습니다.’

 

 

 

틀린 게 아니었습니다. 자기들 눈에는, 그게 옳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보십시오. 거룩이란 하나님의 눈에 올바른 것을, 우리가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사기의 결국이 아주 혼란스럽습니다.

 

이 점을 기억하십시오. 아주 중요한데, 결말이 너무 비참했습니다.

 

 

 

결국은 한 지파가 악한 것이 극에 달했다가, 하마터면 소멸될 뻔 했어요.

 

다른 이스라엘 지파 사람들도 십분의 일이 죽었고요.

 

각자 소견대로 행한 결과가 아주 슬프지 않습니까?

 

 

 

감사한 것은, 히브리 성경에서는 이 비극적 결말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히브리 성경에는 사사기와 룻기가 두 권이 아니라 합쳐서 한 권, 바로 룻기로 연이어짐.

 

 

 

책이 만약 이렇게 종결짓는다면, 참으로 무서운 책이지요.

 

아쉽게도 영어성경에는 이 책의 결말이 바로 이렇게 비극적입니다. *사사기로 끝나지요.

 

 

 

좋습니다.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다음 단원에서는 비교적 좋은 일을 논하겠습니다.

 

아직 사사기를 다 끝내지 못했습니다.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사사기의 다른 중점들을 보충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책의 다음 절반도 보겠습니다. 소위 말하는 룻기입니다.

 

   

*영타 Chris

번역 LCY

교정 및 자막 KJ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