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youtube.com/watch?v=hiKxWD4ZZh0
여러분, 앞 단원에서 우리는 모세를 얘기했습니다.
그가 인생의 마지막 한주에, 요단강 기슭에서 진을 칠 때
새 세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세 번의 설교(위 도표)를 한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 첫 번째 설교
신명기의 3편 중 첫 번째 설교는 신1-4장인데, 지난 일을 회고하며,
모세는 시내산 이후의 날들을 돌아봅니다.
당시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그들 부모와 언약을 체결하셨고,
시내산에서 약속의 땅까지 사실 11일이면 되는데, 그들의 부모가 15,490일이 걸렸습니다.
왜요? 답은 바로 그들이 믿음이 없어서였습니다.
그들이 약속의 땅을 향해 처음에 가데스 바네아 까지는 곧장 똑바로 나아갔습니다.
거기는 가나안 땅의 남쪽 국경이었지요.
그들은 거기서 잠시 머무르면서, 매 지파에서 한 사람씩 뽑아 그 땅을 정탐하라고 보내서,
그 땅에 어떻게 들어가면 제일 좋을지를 알려달라고 보냈었지요.
그때는 그들이 시내산에서 떠난 지 4일도 아직 안되었습니다.
정탐꾼들이 돌아와서 ‘그 땅이 너무 좋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이 그 땅에서 생산된 거대한 포도송이를 가지고 왔습니다.
가나안은 꿀과 젖이 흐르는 땅입니다.
(큰 포도송이가 그려진 이 메달은, 이스라엘 관광국의 홍보용 로고 그림이 되었습니다.
거기 가 보신 사람은 아실 것입니다.)
정탐군들이 돌아와서 보고하기를 ‘그 땅의 식물은 너무 훌륭합니다.
하지만 그 땅의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욱 큽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거인이고, 유대인들은 그다지 크지 않고, 키가 작았습니다.
정탐꾼들은 말하기를 ‘그 땅의 사람들 몸체가 아주 크며,
게다가 그들의 성을 둘러싼 성벽은 하늘에 닿을 듯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절대로 점령하지 못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12명 정탐꾼들이 투표했는데, 그 중 10명은 ‘절대 들어가지 못한다’라고 했고,
두 사람만 ‘물론 우리가 들어갈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보다 더욱 크시기 때문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모세가 말하기를 ‘우리는 하나님의 어깨 위에 타고 왔다’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 아버지의 어깨 위에 탔던 기억이 납니다.
여러분도 아버지의 어깨 위에 타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크고, 높은 담벽 안도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너희들은 무엇을 걱정하냐?’라고 말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민주주의적으로 투표했는데, 결국 대다수 사람들이 10명 정탐꾼의 의견을 지지하고,
두 명의 정담꾼을 따르지 않았을 때, 모세는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
너희는 아무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하였습니다.
후에 보니 과연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모세가 가나안에 못 들어간 이유는 아니고요,
그것은 모세가 한참 후에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고, 인내심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 너도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여호수아와 갈렙만 들어갈 수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250만명 중 두 명만 약속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신약 성경에서 세 성경 저자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두 명만 들어간 사건을 경고합니다.
중점은 출발선에 누가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고, 누가 끝까지 달렸는가 입니다.
바울, 히브리서, 유다서에서, 2백만 중에서 두 명만 들어간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로서, 끝까지 잘 믿을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끝까지 인내해야 하고, 반드시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약속의 땅이 이미 그들 눈앞에 펼쳐져 있었지만,
하지만 그들의 사기가 바닥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어떤 전쟁이든지, 전략이 필요하고, 전술과 사기가 필요한데,
멀리 보면, 그 중에 사기가 제일 중요합니다.
만약 그들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이기고,
만약 그들이 이기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지는 것입니다.
많은 위대한 지휘관들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중에 몽고메리 장군이 바로 아주 좋은 예입니다.
그가 애굽으로 후퇴해 온 제8군단에게 사기를 올려주었어요.
군인들에게 격려하기를 “우리는 반드시 저 독일군을 이길 수 있다” 하였습니다.
결국 정말 승전했습니다.
중점은, 당신이 할 수 있다고 믿는냐..에 달려 있는데, 아쉽게도 그들은 믿지를 못하였습니다.
비록 하나님이 계속하여 신실함으로 그들을 대하였지만, 그들은 믿음이 없었습니다.
신4장은 새 세대에게 권면하는 말인데,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부모와 같은 죄를 범하지 말라.
그들은 당시 믿음이 없어서, 약속의 땅을 잃었다.
하지만 너희들은 믿음을 지키면, 그 약속의 땅을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 설교는 아주 간단합니다. 제가 더 설명하지 않아도, 여러분들이 잘 이해하실 것입니다.
◑두 번째 설교
지금 우리 함께 이 책의 주요 부분을 봅시다.
사실 읽으면 정말로 그다지 재미있는 것은 아닙니다.
재미있기는, 스토리가 재미있지요. 그런데 신명기는 주로 율법입니다.
이것은 마치 전화번호부를 읽는 것 같아요. 읽으면 확실히 재미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또한 이 율법 부분이 사실 아주 재미있어요.
두 번째 설교가 제일 긴 설교입니다.
아마 이 설교는 모세의 마지막 한주간의 세 번째 날에 한 설교일 것입니다.
그들에게, 땅을 차지한 후에, 거기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하나님이 주신 땅을 잘 보존하는지를 가르쳤습니다. *그러려면 율법을 잘 지켜야 합니다.
▶모세는, 우선 의로운 삶에 대한 <기본 원칙>을 가르쳤습니다.
의로운 삶을 사는 원칙, 즉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이 의로운 삶의 핵심이고, 여러분은 열 손가락을 세면서 배우셨을 것입니다.
이것이 제일 기본적인 원칙이고요, 이 10개의 계명은 한 가지를 공통적으로 추구합니다.
그건 바로 <존중>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하고,
-그 분의 거룩한 이름을 존중하며,
-그분의 날을 존중하고,
-당신의 부모를 존중하며,
-생명을 존중하고,
-혼인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의 재산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의 명예를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사회를 파괴하는 제일 빠른 방법은, 바로 존중/존경심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지금 영국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는데, 특별히 TV 코메디가 그렇습니다.
한 유명한 코미디언은, 이름은 모르겠고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삶에 특별히 신성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모든 존경심을 배격하고, 나라에 대한 충성심, 법률 존중,
정부 존중, 인간 상호 존중 등의 가치의 파괴를 추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십계명은 모두 ‘존중의 원칙’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에도 십계명이 먼저 나오는 것입니다.
▶모세 율법과 함무라비 법의 비교
-모세 율법과, 당시 세계에서 제일 최악의 법을, *가나안 원주민 아모리 족속(무법사회)
-모세 율법과, 당시 세계에서 제일 최고의 법을, *함무라비 법
한 번 각각 그 차이를 비교해 보면, 재미있습니다.
1) 먼저 모세 율법의 기준과, 당시 세계에서 최악의 법과 비교하면,
우리가 앞서 살펴봤지요, 가나안 원주민 아모리 사회는 법제도가 엉망진창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 율법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알고,
그 법을 따라 살면, 얼마나 사회가 건강해지고, 행복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2) 하지만 또 하나의 아주 재미있는 비교가 있는데,
바로 모세 율법을, 고대 세계에서 최고로 꼽히는 함무라비 법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함무라비는, 고대 바벨론의 왕인데, 고대 아모리 족속의 왕입니다. *느부갓네살은 신 바벨론
만약 당신이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가시면, 쇠기둥 혹은 돌기둥을 꼭 찾아가서 보십시오.
그 기둥은 페르시아 수산 성에서 발견되었는데, 지금 루브르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 돌기둥에는 282조항의 함무라비 법이 새겨져 있습니다.
이 법들은, 모세의 법보다 3백년 앞서 제정되었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두 법률을 비교하기 좋아하며, 실제로 비교해 보면,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증거하지 말라 등의 십 계명이
3백년 앞서 제정된 함무라비 법전에 다 그대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그 유명한 ‘탈리오니스 법’ 즉 ‘보복의 법’,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역시
이 돌기둥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이 법들은 아주 흔히 있는 율법이며,
당시에 함무라비 왕도 알고 있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법으로 제정했지요.
하지만 아주 재미있는 것은 바울이 로마서 2장에서
‘하나님이 율법을 이방인의 마음에 새겼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롬2:15 이방인도,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하나님은 율법을, 함무라비처럼 돌기둥에 새기지 않고, 사람의 마음에 이미 새기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로 사람마다 이런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압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일찍이 사람의 마음에 새기셨고, 사람들은 그 법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 세계의 어느 사회에서나 근친상간은 안 좋은 것이라고 모두 알고 있지요?
하나님이 이미 이것을 그들의 마음에 새기셨습니다.
하지만 모세 율법에 더욱 명확하게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본능적 지식보다 더 명확하지요.
함무라비 법과 모세 율법에, 아주 다른 차이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함무라비 법의 징벌은 단 한가지인데, 바로 사형입니다. *무슨 죄든지 다 사형
하지만 모세 율법에서는, 사형을 아주 적게 규정했고,
단 15가지 죄만, 사형으로 규정했습니다.
두 개를 비교해본 결과, 모세 율법이,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야만적이지 않고,
그다지 엄하거나 잔혹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의 큰 차이는, 모세 율법은 노예와 여자를 사람으로 대하였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함무라비 법에는, 노예와 여자를 그저 재산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함무라비 법에는, 여자들은 권리가 없고, 존중 받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 율법에는, 여자들도 권리가 있었고, 존중 받았지요. 매우 흥미로운 비교입니다.
또 다른 점은, 함무라비 법에는, 사회적 신분계급이 나누어져 있었고,
즉 귀족과 평민으로 나누어져 있고, 계급에 따른 법 집행이 달랐습니다.
하지만 모세 율법, 하나님의 율법에는, 사회계급의 구분이 없고,
그래서 모든 사람이, 모두 평등하게 율법의 적용을 받았습니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어떤 학자들은
‘모세 율법은, 당시 세계에 있었던 여러 법전 중의 하나’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모세 율법은 다른 법들과는 아주 다릅니다.
비록 하나님이 그의 율법을 이방인의 마음 판에도 새기셨고,
그래서 그들은 일찍이 이러한 일을 하면 안 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더라도, 모세 율법은 다른 법들과는 아주 다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재미있는 전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전문용어를 들어서 설명하겠습니다.
함무라비 법은 소위 말하는 ‘사례법’이며, 조건 형식인데, *Casuistic laws
‘만약 당신이 이렇게 행하면, 사형에 처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렇게 한다면..’ 이것은 조건적인 법입니다.
하지만 모세 율법은, 소위 ‘필연법’이며, *Apodictic manner
이것은 조건적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이러한 일을 절대로 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두 개의 차이를 보셨습니까?
모든 함무라비 법은 ‘만약 당신이 이렇게 하면, 징벌을 받는다’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모세 율법은 ‘당신이 이렇게 하면, 절대로 안된다’라고 말합니다.
하나님만이 이런 말씀을 할 권리가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법은, 보통 ‘조건적(사례법)’입니다.
만약 당신이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되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이렇게 명령하실 권리가 있으십니다.
‘너는 절대로 이렇게 하면 안 된다. 내가 네가 이렇게 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왜냐면 그는 만왕의 왕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차이가 있습니다.
▶신12~26장의 나머지 부분은, 크고 작은 사례들을 포함하는데, 내용이 정말 놀랍도록 광범위합니다.
제가 소제목만 읽어드릴 테니, 여러분이 여기에 포함된 범위가 얼마나 큰지 한번 보십시오.
1) 우선 <종교적 율법>이 많이 나옵니다.
-이방 우상을 섬긴 죄는 사형에 처합니다.
-강신술은 사형에 처하는데, 죽은 사람을 불러내 대화하는 것, 주술 같은 것입니다.
-신성모독
-매 삼년마다 거기에 거주하는 사람을 위해 처음 곡식과, 제일 좋은 과실과, 십일조,
그리고 그 땅에 사는 고아와 과부를 위해 특별한 십일조를 드려야 했습니다.
안식일의 율법은 하나의 새로운 율법입니다.
모세 전의 아담,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두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어요.
안식일 법은, 칠일을 쉬지 않고 일한 노예를 위한 새로운 율법이었습니다.
그들더러 매주 하루씩 쉬는 날이 주어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안식일 율법이, 처음 에덴동산 부터 있었던 줄 압니다. 아닙니다.
사실 모세 때부터 주어졌고, 그리스도 오실 때까지 지속되었습니다.
(지금 그게 이 강의의 주제는 아니고요.)
2) 그리고 <절기법>,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에 대한 규례가 나오고요.
또한 제사 드리는 율법, 맹세하는 율법,
하나님께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며,
만약 지키지 못하면, 영원한 구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율법에 ‘구별’을 요구하는데, 지금 저는 옥스팜(브랜드) 양복을 입고 있습니다. 15파운드 주고 샀는데요,
원단이 양털과 폴리에스터의 혼방입니다. 양털은 15%만 있어요.
그러니 제가 모세 율법을 범했어요. 이 브랜드는 유대인이 창립했기 때문에
이 유대 가족이, 제게 모세 율법을 위반하게 했습니다.
옷을 짤 때, 다른 재료를 혼합해서 짜지 말아야 하는 법이 있으며,
한 밭에 다른 종류의 종자를 섞어서 뿌려서는 안 됩니다.
혼합하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인데,
밭을 갈 때도, 소와 나귀를 동시에 멍에 매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규정이 있을까요?
아주 간단한데, 이것은 당시 사람들의 ‘풍요다산의 신’과 관련 있기 때문이었어요.
그들은 서로 다른 것을 혼합하여야만, 풍요/다산한다고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만일 옷 재료를 혼합하면 많은 옷을 생산한다는데, 전부가 풍요로운 생산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풍요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고, 물건을 혼합하는 이방우상숭배로 얻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신명기의 종교법 부분에서, 혼합을 금하는 율법이 있게 된 것입니다.
3) 사회법/시민법
다음으로 <나라와 왕의 치리하는 율법>인데, 이 점이 아주 재미있습니다.
당시 그들의 왕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들 또한 몇 세기를 지나서야 왕이 있었는데,
사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왕이 있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나중에 그들이 언젠가는 왕을 원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왕에 관한 율법을 정해 주셨습니다.
그 중 어떤 규정은 아주 재미있는데, 왕이 등극할 때
그는 반드시 모세 율법을 친히 손으로 기록하여, 정기적으로 낭독해야 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영국 여왕이 반드시 친히 성경을 기록해야 한다는 규정이 상상이 됩니까?
혹은 오늘날로 치면 왕이 산상수훈을 친히 손으로 기록하여, 정기적으로 낭송하는 식입니다.
그 목적은 왕은 반드시 율법에 익숙해야 했으며, 왕은 많은 아내, 많은 군마와 많은 돈을 두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다음으로는 <재판관의 율법>인데,
억울한 사람은 법정에 소송할 수 있으며, 법정을 멸시하면 사형에 처해 집니다.
사법적 율법(시민법)에 관해서는, 뇌물을 주고받지 말고, 재판 때 절대 공정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외국인과, 고아와 과부는, 재판에서 부자와 똑같이 공평하게 대우하라는 것입니다.
이 율법이 아주 멋지지 않습니까?
또한 <증인을 세우는 율법>인데, 어떤 일을 보았거나 들었다고 할 때,
적어도 두 세 증인이 똑같은 증언을 해야만 성립이 되며,
위증한 사람은, 그 위증으로 유죄 판결을 받을 사람과 똑같은 양의 형벌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라는 법이 생긴 것입니다.
만약 내가 위증을 해서, 어떤 사람이 일천 파운드 벌금을 냈어요.
내가 위증했다는 것이 나중에 밝혀지면, 나도 일천 파운드 벌금을 내야 했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이지요. 아주 공평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형벌에 관한 율법>인데, 채찍으로 40대까지만 때리게 되어 있습니다.
채찍질할 때, 최대 40대니까, 보통 안전하게 39대까지만 때리지요. 잘못하면 율법을 범할까봐 그러는 것입니다.
만약 40대 이상 때렸다면, 이것은 사람의 존엄성을 짓밟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고깃덩이로 본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또한 시체를 일몰 후에, 나무 위에 남겨두면 안 되는 규정인데,
이것도 남에게 조롱받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바울이 갈3장에서, 이것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사건에 적용해서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살인> 같은 특수한 범죄에 대한 법률도 있습니다.
실수로, 과실로 사람을 죽인 것은 제외하고, 일단 사람을 죽인 자는, 반드시 사형에 처합니다.
실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은, 6곳의 도피성이 있어서,
거기로 도망쳐 사형을 면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또한 사람을 <납치>하면, 이 죄도 사형입니다.
<강간>에 관한 법도 나옵니다.
<폭력>에 관한 법, 절도에 관한 법도 규정되어 있고요,
특히 이웃의 <지계표>를 옮기는 죄를 명시했습니다.
당시에는 돌로 자기 밭의 지경을 표시했는데,
어떤 사람들은 밤중에 나가서, 지계표 돌을 1~2 야드씩 움직이면, 이것도 범죄였습니다.
그리고 또한 <건강>에 대한 율법(공중보건법)도 있습니다.
치료할 수 없는 피부병 같은 병에 걸렸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성경에 나오는 ‘나병’은, 광범위한 피부병을 포함하는 단어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그런 나병뿐만 아니라, 여러 피부병도 포함합니다. *꼭 한센병으로 볼 필요 없어요
죽은 짐승을 먹는 것을 율법에서 금하며, <음식규례>
율법에는 깨끗한 음식과, 깨끗하지 않는 음식을 율법으로 규정되어 있는데,
낙타, 토끼, 돼지 혹은 새를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또 한가지 아주 신기한 율법인데, 유대인들이 이 규정을 오해하고 있는데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우유로 삶지 말지니라’.
이 한 구절 때문에, 유대인들은 아주 복잡한 요리 만드는 규정을 세웠어요.
그래서 주방에 두 개의 가마솥과, 두 개의 프라이팬이 구비되어야 하며,
이는 유제품(우유, 치즈, 버터)과 고기류를 나누어 조리해야 하고,
두 재료를 절대로 같이 혼합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이 구절의 뜻을 완전히 오해했습니다.
사실 이 율법도, 풍요다산 신을 경배하는 이방의식에 관련된 것입니다.
이방인들은, 염소새끼를 어미젖에 넣고 삶아서, 그게 일종의 근친간 섞음이 되면서,
그렇게 하면 풍요다산이 온다고 믿고서, 그런 풍습을 행했는데요,
너희는 그런 풍요다산 의식을 행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방의 풍요다산 신을 섬기지 말라는 뜻.
그런데 유대인들은, 결국 이 한 구절에 근거하여, 아주 복잡한 조리 규정을 세웠습니다. *의미를 모르고 형식만 지킴.
또한 <사회복지> 법도 있습니다. 추수할 때, 밭모퉁이의 곡식 단은 반드시 남겨서
가난한 자들이 와서, 뽑아갈 수 있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웃의 잃어버린 <가축>을, 찾아주는 율법을 규정하였습니다.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아야 했습니다.
소가 사람을 위해 일을 할 때, 마음껏 곡식을 먹게 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바울은, 이 율법을 저같은 설교자에게 적용하였습니다.
그 설교자가 너희에게 영의 양식을 먹이니, 너희들은 돈을 헌금하라고 하였어요.
이렇게 율법을 적용하니 아주 재미있습니다.
율법에, <새>의 보금자리에서 알은 취하되, 어미새는 취하지 말라고 하였지요.
그 어미가 계속 알을 낳도록 놔두는 것이 더 좋지요.
<전쟁>에 관한 율법에 규정하기를, ‘전쟁 때 나무를 찍지 말라’고 하였는데,
이는 너희들이 나무와 싸우는 것이 아니고, 사람과 싸우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미국이 베트남 전쟁 때, 고엽제를 뿌려서 밀림의 나무들을 말려죽일 때,
저 파슨은 그 율법을 기억했습니다.
하나님이 ‘너희는 나무와 싸우는 것이 아니고, 사람과 싸우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전쟁할 때도, 룰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제네바 협약’에서, 바로 이것(전쟁 규정)에 대해 이미 논했습니다.
매우 흥미로운 것은, <군인>의 화장실 규례이고,
갓 결혼한 병사의 징집 규정도 흥미롭습니다.
신혼의 병사는 집에서 1년 지내다가 다시 전쟁터로 나갔는데,
이 율법이 아주 훌륭하지 않습니까?
그에게 아내를 ‘아는’ 시간을 주어서, 결혼의 기초를 튼튼히 쌓게 하는 것이지요.
신혼을 희생하면서까지 전쟁에 나가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율법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19:56~
총 몇 백가지 율법인데, 제가 다 설명할 수 없어서 뛰어넘으면서 언급했습니다.
1) 우선 이 율법이 포함한 법위가 아주 광대하다는 것인데,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커버합니다.
화장실 규정에서부터, 예배 규례까지,
복장 규정에서부터 요리 규정까지, 삶의 모든 영역을 커버합니다.
이렇게 율법은, 하나님이 당신의 생활 전부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온전한 삶으로 행한다는 것은, (즉, 의로운 삶은) 주일날에 교회에서 무엇을 하느냐에 있지 않고,
당신의 생활 전부를 포함합니다.
모세 율법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 삶의 모든 면에 대해, 올바른(의로운) 길을 말씀해 주신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삶의 모든 방면에서 의롭게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2) 두 번째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이 율법들이 사실 일체로 연결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쉽게 설명을 위해서 이 율법들을 몇 종류로 나누었는데, 사실은 모두 하나로 연결됩니다.
낙타 고기를 먹지 말라는 율법에서, 절기 경축의 율법까지
사실 각종 율법 모두가 함께 혼합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현대 서구인들의 사고구조와는 맞지 않지요.
서구인들은 뭐든지 분류하고, 정리하고, 소제목 붙이고.. 이런 것을 좋아하죠.
그렇지만 모세 율법은, 모두 함께 믹서 되어 있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온전한 생명’은, 구분해 자르면 안 된다는 것을 알려주려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속한 신성한 것과, 세상에 속한 것을 구분하는데,
하나님은 이렇게 구분하지 않습니다. 생명은 전체로 한 덩어리입니다. 삶의 모든 영역이 함께 연결되어 있고,
이 율법은 생활 모든 각각의 측면을 다 포함할 뿐 아니라, 또한 전체로 온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용어로 ‘전인적인 holistic’입니다.
생명은 전인적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앉아서 밥을 먹든지, 혹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든지,
하나님은 어디든지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식사나 예배나 그런 의미에서 같은 것입니다.
전에 제가 유대인들의 기도책 중에, ‘화장실 기도문’이 있다고 언급했어요.
이것은 아주 실제적인데, 우리는 이것을 보고 웃긴다고 생각하지만
유대인들은 이것이 웃기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기도문은 이렇습니다.
‘주님, 저의 몸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잘 보게 해주셔서..
제가 일을 다 보고 온몸이 편안하고 쾌적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할렐루야!’
제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집에서 숙박했기 때문에, 많은 집들의 화장실을 사용해 보았어요.
보통은 변기 옆에 항상 묵상 책들이 놓여있고, 벽에 성경 구절이 붙여져 있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그 묵상 책들과, 벽에 붙은 성경 구절들이,
제가 용변을 보는 일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들입니다. *별 도움 안된다는 뜻
당신이 나이가 들어 소대변이 조절 안 될 때, *요실금 될 때
건강할 때, 하나님을 제대로 찬양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온전한 생명은 모든 삶의 혼연일체이며, 그것은 전인적입니다.
거룩한 삶은, 삶의 모든 방면에서 의롭게 행하는 것입니다.
3) 세 번째에서 제가 눈여겨 본 점은, 이 율법 모두가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인생의 즐거움을 감소시키지 않습니다.
사람에게 불필요한 제재를 가해서 속박을 목적하지 않습니다.
신명기에 끊임없이 나타나는 말씀이 있는데,
‘그렇게 하면 네가 잘 되리라. 그 주신 땅에서 장수하리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우리더러 건강하고 기쁘게 살라는데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저기 위에 가만히 앉아서,
우리를 내려다보시며, 이건 하고, 그다음에 저건 하지 말고.. 이렇게 하나님을 귀찮게 여깁니다.
마치 어떤 남자애가 첫날 학교에 갔을 때, 선생님이 “네 이름이 무엇이니?”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대답하기를 “자니, 그러면 안 돼”
선생님이 “그럴 리가?”라고 하니
그가 “하지만 어머니가 항상 저를 ‘자니, 그러면 안 돼’라고 불렀어요.”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은 저 위에 앉으셔서
항상 ‘그렇게 하면 안 돼. ~하지 말지니라’라고 말한다고 상상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을 주셨습니까?
성경 말씀 그대로입니다. ‘그리하면 너희가 잘 되리라’
그래서 우리는 서로 물어보아야 합니다. ‘당신은 율법을 잘 지키십니까?’
우리가 ‘복지 welfare’라는 말을 잘 쓰는데요, 바로 그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복지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이 율법을 읽으면 우리에게 유익이 있습니다. (진도 나갑시다.)
◑3. 다음으로 세 번째 설교를 살펴보겠습니다.
모세가 마지막 설교에서, 두 부분으로 나누어 말씀했습니다.
그 처음 부분은, ‘지금 너희는 반드시 직접, 이 율법을 비준/계약해야 한다.
지금 하나님이 너희를 위해 이 강물을 갈라서, 너희들을 데리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실 것이다.
당시 너희 부모세대를, 바다 물을 갈라서 그들을 애굽에서 데리고 나왔듯이
하나님은 너희들을 데리고 들어간 후, 너희들은 산에 가서
이 축복과 저주를 모두 선포하여, 확실하게 지킬 것을 약속해야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산은, 에발 산과 그리심 산입니다.
▶제가 한 번은 그리심 산에 갔었습니다. 소수의 사마리안 인들이 여전히 거기에 살고 있었어요.
그들은 다른 성경책은 없었고, 다만 모세 오경만 갖고 있었어요.
그들이 (보여주며) 낡은 깡통으로 작은 두루마리를 만들었어요.
거기에 사마리아어로 율법을 써 넣었는데, 이것은 모세 율법의 일부분입니다.
그들은 방문객들에게 오래된 두루마리를 보여줄 겁니다. *Samaritan Torah
그것은 오래된, 천년이 넘은 성경 사본입니다. 제 손에 든 것은 모형이고요.
그 사본은 크고, 세로로 4피트에요.
만약 여러분이 구경하려면 그들이 비용을 받을 것입니다. 아주 가난하기 때문이지요.
어떤 사마리아 여자가 예수님께 ‘우리가 어디에서 예배해야 합니까?’라고 여쭈었지요.
‘이 그리심 산에서 입니까, 아니면 저 산에서 입니까?’
예수님은 ‘모두 아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 산에서 예배하느냐가 아니고,
영과 진리로 경배하면 된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기억하십니까?
실제로 사마리아에 가면, 두 산이 있습니다.
그 두 산이 아주 훌륭한 음향 효과를 나타내지요.
두 산은 서로를 마주보고 있는데, 그 중간에 움푹 들어간 공간이 있지요.
마치 하나의 거대한 원형 야외극장 같지요. 그 주위에 두 산봉우리가 있고요.
그래서 한쪽에서 축복을 외치면, 다른 한쪽에서는 저주를 외쳤지요.
축복이나 저주를 선포하면, 회중은 모두가 ‘아멘’이라고 화답했습니다.
▶어느 주일 밤 제가 성공회 교회에서 설교할 때, 회중들과 이 축복과 저주를 한 번 선포해 보았습니다.
‘제가 이제부터 저주를 선포하겠으니, 여러분은 아멘이라고 말하십시오!’
(신27:16~26절의 에발산 선포를 실제로 시행해 본 것)
-파슨: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사람은, 반드시 저주를 받을 것이다.
회중 일동: 아멘.
-이웃의 지계표를 움직이는 자는 반드시 저주를 받으리라. 아멘.
-맹인에게 길을 잘못 인도하는 자는 반드시 저주를 받으리라. 아멘.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의 재판을 억울하게 하는 자는 반드시 저주를 받으리라. 아멘.
-이웃의 아내와 눕는 자는 반드시 저주를 받으리라. 아멘.
-무고한 사람을 상해하고, 돈을 받는 자는 반드시 저주를 받으리라. 아멘.
-음행, 간음, 탐욕, 우상 숭배, 사람을 상하게 하고, 술취함과 토색(착취)하는 사람은 반드시 저주를 받으리라. 아멘.
그날 주일 밤 우리가 이 단락을 읽을 때, 회중들은 갈수록 조용해지고,
아멘 소리도 갈수록 작아졌습니다.
설교 후 어떤 사람이 저에게 말했어요. ‘왜 우리 소리가 갈수록 작아졌는지를 아십니까?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저주하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어요.’라고 하였습니다.
금방 그 단락은 신명기 28장에서 온 것입니다. *혹은 27장
하지만 그것이 <성공회 회중 기도집>에 나와 있고, 그들은 사순절마다 교독합니다.
매년 사순절마다 낭독하는데, 회중들은 뭐가 뭔지 잘 몰라요.
그날 저는 <성공회 회중 기도집> 중에서 선택해서 낭독했고요.
하지만 현재 많은 성공회 교회에서 사순절 기도회 모임을 감히 개최하지 못하는데,
이는 회중들의 미움을 받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그런 저주 기도문을 싫어함
그런데 만약 영국의 성공회 교회마다, 매년 사순절 때,
모두 주님의 이름으로, 이렇게 사람을 저주한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얼마나 큰 영향이 있겠습니까?
바울이 갈라디아서 1장에서도 말하기를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어떤 설교자들이 복음을 왜곡되게 전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신도 그런 설교자들을 저주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저주할 능력이 있고, 말씀에는 큰 능력이 있습니다.
축복과 저주의 말 모두에는 큰 능력이 있습니다. 저주의 말은, 재앙을 가져옵니다.
모세가 말하기를
‘너희들은 그 곳에 들어가면 그 두 산에 올라가서
한쪽 산에서는 축복을 외치고, 다른 한쪽 산에서는 저주를 외치되,
백성들은 아멘이라고 말하고,
그렇게 해서 너희들은 정식으로 이 언약을 체결하라. *시내산처럼 정식 계약
너희들이 만약 이 율법을 지키면 그 땅에서 복을 받고 즐거워 할 것이지만,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구약 성경의 나머지 역사는, 전부 이 계약처럼 그대로 되었습니다.
▶그래서 신명기 28장을 읽으면 마치 이스라엘의 4천년 역사를 읽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너희들이 악행을 계속하면, 내가 하늘에서 비를 내려 주지 않을 것이고,
그래도 너희들이 불순종하면, 내가 적을 보내어 너희 땅을 점령하게 할 것이고,
그래도 너희들이 여전히 듣지 않으면, 내가 너희를 세계 각 곳에 흩어지게 하여,
너희들은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그리고 유대인의 역사를 아시지요?
사실 이러한 상황이 일어날 것을, 신명기 28장에서 일찍이 예언했습니다.
신명기 28장을 읽으면, 당신은, 오늘까지의 이스라엘 전 역사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그는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셔서, 복도 주시고, 또한 저주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은 복을 받기도 했으며,
또한 저주도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이 받기도 했습니다. *신28장 언약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진실로 존재하시고, 그분은 이스라엘 하나님이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신32장에서 모세가 노래를 불렀어요. 120세에도 그의 눈이 조금도 흐리지 않았으니,
아마 그의 목소리도 아주 좋았을 것입니다.
모세도, 많은 선지자들과 같이, 음악을 잘 했을 것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예언과 음악은 항상 같이 갔습니다.
다윗은 선지자였고, 그는 성경에, 누구보다도 많은 노래를 남겼습니다.
모세도 노래를 아주 잘 했습니다.
홍해를 건넌 후 모세와 미리암이 합창하였지요.
모세는 아름다운 노래를 하나 썼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끝까지 불러, 이스라엘 대회에 모여 온 모든 사람의 귀에 들려주었다. 신31:30~
아래 찬송은 매년 한 번씩 영국에서 불려지고 있어요.
♬예부터 도움 되시고 장래에도 내 소망 되신 주. (71장)
이 세상 풍파 중에도 늘 보호하시리.♪ *당신의 팔만으로, 우리 보호는 충분히 안전합니다.
우리는 정전(협정) 주일에 이 노래를 부르는데, 이것은 참으로 속이는 노래입니다.
‘당신의 팔만으로, 우리 보호는 충분하고 안전합니다.’라고 찬송하면서도,
혹시나 해서, 우리는 소매 속에 원자폭탄을 감추어 놓고 있습니다.
이 노래는 모세가 쓴 시라는 것을 여러분 아십니까?
시편 90편에서 취한 것입니다.
모세가 여기서 부른 노래는,
하나님은 절대로 견고하고, 의지할 만 하고,
영원히 변치 않고, 신뢰할 수 있고, 그는 우리의 반석이며,
그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는 불공평이 없다는 점을 노래했습니다.
(어느 노래가 이것인지 볼 수 있습니까?
우리 아주 빠른 속도로 한번 불러 보겠는데, 맥스 형제, 반주 부탁합니다.
몇 번이지요? 12번. 제 시간이 많지 않아서 빨리 합시다. 악보주세요. 좋습니다.)
♬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 행하신 모든 것 완전하시네. (시편90, 모세의 노래)
나의 생명이신 하나님, 내게 행하신 일 찬양합니다.
신실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좋으신 나의 주
신실하신 하나님, 실수가 없으신, 좋으신 나의 주♬
여러분들이 방금 부르신 노래는 모세의 노래였습니다.
계시록에서 말하기를, 우리가 천국의 영광에 들어가면, 다시 모세의 노래를 듣게 된다고 하였는데,
이 노래는 아주 훌륭한 찬양입니다.
하나님이 아모리 사람 모두를 죽이라는 것에 대해, 모세는 그게 무슨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는 ‘하나님은 공의롭고, 하나님은 불의가 없으시고, 좋으신 분’이라고 노래하였습니다.
▶33장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12지파를, 한 지파씩 축복해 주었습니다.
모세는 정말 선지자라서, 각 지파의 미래를 볼 수 있었고, 그래서 각 지파를 축복했습니다.
다만 한 지파를, 모세는 축복하지 않았는데, 그 지파가 후에 사라졌습니다. *단 지파
성경에서 볼 수 있는데, 그 12지파가 후에는 변동이 있었어요.
12지파가 모두 생존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포로와 귀환 후에 더욱 그러했습니다.
마치 12사도 중에도, 한 사도가 사라진 것처럼.
12지파 중에서도 한 지파는 생존하지 못했는데,
이것은 구약과 신약 성경의 아주 재미있는 공통점입니다.
▶신34장에서 모세의 죽음과 매장에 대해 기록하였습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리는데, 이 부분은 모세가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죽음이니, 모세가 기록할 수 없지요.
신명기에서 단지 이 작은 부분만, 그가 기록한 것이 아닌데,
이것은 아마 여호수아가 보충한 것일 것입니다.
모세가 죽을 때, 고독하게 혼자서 느보 산을 등지고 앉아
요단강 맞은편의 약속의 땅을 멀리서 바라만 보았어요. 들어가지는 못했지요.
그런데 결국 그가 들어갔어요. 아주 오랜 세월 후에, 그가 가나안에 한번 들어갔어요.
신약에서 그가 가나안의 한 산의 정상에서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어요. *변화산 (그러니까 들어간 것이지요.)
그가 느보 산에서 죽어 거기서 매장 당했는데, 아무도 그의 무덤을 찾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를 매장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가 자기 자신을 매장하였다는 것입니까? *불가능하지요
그 답은 신약 유다서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어떤 천사가 와서 그를 매장했고, 당시 천사가 모세를 취하려고 할 때
마귀가 모세 시신 옆에 서서 말하기를 ‘이 시신은 내 것이다.
그가 애굽 사람 한명을 죽여서 그는 내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천사장 미가엘이었습니다. 미가엘이 마귀보고
‘주님이 너를 책망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취해서 매장하였어요. 유1:9
아주 특별하고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당연히 그의 육신만 매장되었고, 모세의 영혼은 주님과 함께 있었지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의 죽음을 한 달 동안 애곡했습니다.
그들도 모세의 시체를 찾고 싶었지만, 찾지 못했지요.
신명기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마치는 말
신명기는 구약 성경 전체에서 가장 기초를 이루고 있는 책입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 전체 역사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이후 역사서는, 신명기 율법의 순종/불순종의 결과를 보여주며, 선지서는, 신명기 율법을 remind시켜 준 것입니다.
그들이 그 곳에 들어간 후, 산지만 점령해서 살았고,
계곡 지대는 아모리 사람들에게 남겨 주었습니다.
어느 토요일 밤에, 한 젊은이(삼손?)가 산지에서 계곡으로 내려가서, 여자를 찾아 다녔는데,
이렇게 가나안에 들어간 지 얼마 안 지나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의 방식이, 다른 민족들과 별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선지자들이 계속해서 나타나서 ‘너희가 그렇게 행하면,
하나님이 너희를 저주하신 그 언약을 지키실 것이다’라고 경고했습니다.
선지자마다 모두 신명기 언약으로 돌아가서, 이스라엘에게 호소했지요.
그들은 천년을 지나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근근이 지켰습니다.
아브라함에서부터 다윗까지요. 약속한 땅을 받아서 겨우 어렵사리 지켰습니다.
그런데 그후 5백년 후에, 이 모든 것을 상실하였어요.
나중에 우리 열왕기서를 공부할 때, 이 내용을 살펴볼 것입니다.
당신은 이스라엘 전체 역사를, 두 문장으로 귀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공의를 행하면.. 너희는 축복을 받으리라.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를 행하면.. 너희는 저주를 받으리라.
▶신명기가 신약 성경에서도 아주 큰 역할을 했어요. 34:43~
신약 27권에서 신명기 말씀을 80번이나 인용하였습니다.
예수님도 신명기 말씀을 아주 익숙하게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시험 받으실 때, 거기가 바로 모세가 죽기 전에 바라본 유대 광야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 광야에서 시험 당하실 때,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자신을 지켰으며,
그리고 3번 인용한 구절 모두가 신명기인데, 아주 재미있지 않습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신명기 말씀이지요. *8;3
신명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십시오.
산상수훈에서도 신명기 말씀을 가득 인용하였어요. *살인 말라, 간음 말라 등
앞서 말씀드린 사마리아 여인도
‘우리가 우리의 성산인 그리심 산에서 하나님을 경배해야 합니까?
아니면 유대인들의 성산인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 예배해야 합니까?’라고 여쭈었습니다.
예수님은 ‘둘 다 아니다. 때가 오리니 신령과 진정으로 경배해야 한다’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 모세 율법을 요약해보라고 하니,
예수님은 신명기 말씀을 인용하여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6:5
▶또 한 가지 놀라운 점이 있는데, 제가 잊어버렸는데, 지금 말씀드릴게요.
매우 중요한 내용인데, 신명기 율법은 다소 딱딱한 내용이지만,
그 속에서 제일 자주 나타나는 단어가 ‘사랑’이었습니다.
신명기 율법 가운데 ‘사랑’이라는 단어가 의외로 31번이나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만일 나를 사랑하면, 나의 명령을 지키리라’고 하였습니다.
율법과 사랑에는 충돌이 없습니다.
너희가 만약 주님을 사랑한다면, 그분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롬13:10
그래서 중점은 율법주의에 있지 않고, 사랑에 있다는 것입니다.
신명기의 율법 선포 부분에서 ‘사랑’이라는 단어가 31번 나오고,
‘순종’이라는 단어도 31번 나오는데, 이는 사랑이 바로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시각으로는, 사랑은 충성이고, 사랑은 누군가에게 진실한 것입니다.
당신이 그들을 매우 사랑한다면, 당신은, 그들이 당신에게 원하는 대로 행할 것입니다.
이 점이 아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때때로
‘율법과 사랑은 서로 반대 된다’라는 말을 듣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을 준수하는 것은, 당신이, 그 율법을 주신 분을 사랑한다는 표시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율법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예수님은 ‘율법은 사랑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두 개의 큰 계명이 있는데, 이는 바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대화한 것을 우리 모두 기억할 것입니다.
그들이 무슨 얘기를 나누었는지 아십니까?
그들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출애굽 임무를 곧 완성하려 것에 대해 논했습니다.
출애굽은 바로 사람들을 노예 생활에서 이끌어 내는 것이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때, 바로 우리가 출애굽한다는 것입니다.
▶바울도 신명기 내용을 여러 번 인용하였어요.
특히 바울이 ‘신앙의 관건은 마음에 있다’고 가르칠 때였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육신이 할례 받았느냐가 아니고, 우리 속마음이 할례를 받았느냐 이며,
원래 우리 속마음은 악했는데, 그것이 할례로 잘려 나가고,
이제 우리 속마음이 자유롭게 주님을 사랑하여 의롭게 살게 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는 여기까지 논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강의가 여러분에게 신명기를 읽고 싶은 의욕을 돋우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그 세 번의 설교를 잘 읽고, 생각하고, 느껴보세요.
이 모두가 우리의 역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이스라엘의 감람나무에 접붙여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와 동떨어진 다른 사람의 역사를 읽는 것이 아니고,
바로 우리 자신의 역사를 신명기에서 읽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여전히 변함이 없으시고,
하나님이 당시에 어떻게 이스라엘을 대하셨으면,
오늘날 우리도 똑같은 방식으로 대하실 것입니다.
축복도 받았고 저주도 받았으며, 순종이 있었으면 거역도 있었고,
의롭게 행했다가도, 악을 행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주위의 나쁜 사람과 어울려 함께 못된 짓을 해도
별일 없으리라고 생각하면, 신명기를 읽으면서 그건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너희는 그 땅을 점령하되, 하지만 그들의 생활 방식은 본받지 말라.
만약 그들을 본받으면, 내가 다른 사람들을 보내어, 너희 땅을 점령하게 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진리입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거울이 되어, 우리를 유익하게 하려고 기록되었다.
우리가 그들의 잘못으로부터 교혼을 배워서, 똑같은 잘못을 범하지 말라고 기록되었다.’
그 경고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거룩한 백성이기 원하시고, 또한 우리가 건강한 백성 되기를 원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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