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형상의 정체성이 무너진 인간 신6:1~7 15.01.18. 출처보기
◑2. 제5계명이 그 근본 밑바탕입니다.. 는 꼭 읽어보세요.
오늘은 하나님의 형상의 정체성이 무너진 인간의 마지막 결과인
살인, 간음, 도적질.. 에 대해서 살펴봅니다. (6, 7, 8계명)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신명기에 십계명이 나옵니다.
이 내용을 한꺼번에 살펴보겠습니다.
◑서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자기 정체성이 무너져 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강조드리는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뭐냐 하면,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알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아는 것입니다.
다 ‘정체성’에 관한 것입니다.
진실로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 정체성이 튼튼해집니다.
그래서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겁니다.
사실 우리 삶의 모든 것은, 사실은 그 근본 밑바탕에 ‘정체성이 문제’가 깔려 있습니다.
십계명은, 전부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이고,
또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법입니다.
하나님이 인간/우리를 지으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간단하게 정리하면,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말은, 다시 해석하면 이런 뜻입니다.
가장 영광스런 존재로, 여러분을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우리를 가장 영광스러운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살아갈 동안에 이것을 깨달으면
가장 존귀하고 가치 있는 일에, 우리가 동참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우리는 이제 쓰임 받게 된 것입니다.
신나시죠? 저도 너무나 신납니다.
생각만 해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신 정체성을 깨달으면,
인간이 자신이 속한 영역, 자기가 처한 환경과 땅을 아름답게 합니다.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일을 발견한 인간은,
자기가 처한 모든 환경을, 아름답고 소중하게 경작해 나갑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도 알았고, 내가 누구인지도 알았어요.
그러면 내가 속한 영역,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일을 경작해 나가게 되는지요. 정체성이 뚜렷하니까요.
그래서 예수님을 올바로 믿으면, 자기 삶이 바뀌어지게 되고
우리 가정이 변화되게 되고, 우리가 속한 곳이 변화되게 되어집니다.
자기가 그런 존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안에서, 부모라는 자기 정체성을 깨달은 사람은요,
자신의 가정을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경작해 나갑니다.
그걸 못 깨달았기 때문에, 깨어진 가정들이 생기고, 아픔들을 겪는 겁니다.
제 주변에 많은 일들을 보면,
그 정체성이 무너지니까..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으면
교회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곳으로 경작해 나가겠습니까?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교회가 아니라
아름다운 교회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컬티베이트를 그런 방향으로 하게 되니까요.
사람들이 오고 싶어하는 곳으로, 경작해 나가게 됩니다.
◑본론1. 무너진 정체성의 회복을 위해,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이런 인간의 정체성이, 인간의 죄로, 완전히 무너져 버렸습니다.
그때부터 인간은, 혼돈, 무질서, 흑암 가운데 거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죠. 원래 이렇게 창조되지는 않았는데, 말입니다.
이런 정체성이 무너진 인간의 결과는,
분열, 깨어진 관계, 상처, 고통 뿐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존재로 창조를 받았지만,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수치스러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인간의 정체성이 무너졌기 때문입니다.
창조의 형상이 무너졌기 때문에
더 이상 창조의 일들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을 이롭게 하는 존재가 된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에, 해를 주는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게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현주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인간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도록
법을 주셔야 했습니다.
그 무너진 비전을 다시 새롭게 새워주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방인들과 구별된 삶을 살게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이런 정체성을 가지고
그 무너진 정체성을 세우게 해 주는, 그 법을 지키면서 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그런 정체성에 아무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 법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거나, 오히려 그 법을 무겁게 짐처럼 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 십계명을 주신 이유입니다.
십계명은, 철저히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 관련된 법이고,
이 법은, 또한 우리와 이 땅/세상과 관계된 법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 삶에 캐논(규범, 표준, 질서)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과, 이방인을 구분하는 어떤 특징, 기준입니다.
그 질서가 무너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최소한으로,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하는 질서, 그것이 무너진다면
혼돈과 무질서와 공허가 일어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너희가 적어도 이것을 지키는 것이, 인간이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겁니다.
적어도 이것을 지켜내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겁니다.
그래서 십계명에 의거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생활’을 살게 됩니다.
기독교는 공허한 사상이나 관념이 아닙니다. ‘삶’입니다.
▲사람들이 자꾸 착각하는 것은,
예수 믿고 나면, 신기한 일들이 자꾸 펼쳐지고, 공중에 붕붕 떠다니기를 원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말씀을 보면 볼수록,
‘삶의 현실’이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보면 볼수록, 이 땅의 고통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진짜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자기 개인주의 신앙에 빠져서, 무슨 신기한 일들이 자기에게 일어나기를 바라는 분은,
사실은 성경도 모르고, 기독교가 뭔지를 모르는 분입니다.
‘목사님 내 안에 문제도 감당하기 버거운데, 남의 고통을 쳐다볼 시간이 어디 있습니까?’
이런 분들은, 주님을 대면하여 만나셔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자기 문제 해결이 그 목적이 아닙니다. *현실은 주류가 이런 식으로 하지요.
성령을 받고, 그 ‘자기 문제 해결’이란 묶임에서, 벗어나셔야 합니다.
그래서 참 신앙인은, 하나님의 형상이 진정 회복된 사람은,
여기서 말하는, 십계명을 자기 삶의 캐논으로 삶은 사람은,
자기 정체성이 정립된 결과, 즉 자기 문제를 ‘초월’한 결과, *해결이 아니라 초월입니다.
자기 주변의 이웃을 보게 됩니다.
이웃을 돌아보는 일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그 일 가운데, 여러분이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생활에 밀접한 법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죄악의 본성은, 인간의 삶을 멸망으로 내몰았습니다.
원래 창조된 형상은, 죄악의 본성이 없었는데,
타락한 인간은, 죄악의 본성을 유전 받아서, 자기 삶을 멸망으로 내몰게 되었습니다.
창6:5~7절에 보면, 노아의 홍수, 첫 번째 심판 사건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왜 심판하셨습니까?
창6: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후회하신 겁니다.
얼마나 어그러져 있으면, 얼마나 무너져 있으면, 얼마나 그 질서가 파괴되어 있으면,
아름다웠던 그 세상이 얼마나 더럽게 되어버렸으면,
가장 영광스런 존재가, 가장 추악한 존재가 되어버렸기에
‘하나님이 후회하셨다’고 했습니다.
‘내가 창조했지만,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후회함이니라.’
▲여러분, 우리 인생도 혹시 후회되지 않으십니까?
자기 인생이 무너져 있는 사람은, 후회되실 것입니다.
그런데 무너지지 않는 것이 어렵죠, 사실은.
그래서 우리가 인생 길을 잘 가야 하는데요.
아름답게 가셔야 하고, 축복 속에 가셔야 하고, 행복하게 인생 길을 가셔야 하는데요..
여러분의 가정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더 그렇게 되셔야 해요.
이 땅도 그렇게 되어야 되요.
그런데, 우리 인생 가운데, 과거에 또는 잠시 무너졌던 시간들이 있지 않습니까.
단추를 잘못 끼웠던 시간들이 있지 않습니까.
뭐가 남습니까? 후회가 남지요. 속으로 ‘후회된다, 후회된다’하며 자기 가슴을 치지요.
▲제가 전에 암센터 병원에 많이 가봤어요.
그 죽음 앞에서
정말 잘 살았던 분들도 후회이고,
못 살았던 분들도 후회이고.. 모두 다 후회 일색이었습니다.
잘 살았던 분들은, ‘그래도 내가 조금 더 잘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후회이고,
못 살았던 분들은, 장차 심판의 두려움 속에 후회합니다.
그러므로 제가 여러분께 강조드리는 것은,
‘진짜 우리가 예수 믿고 잘 사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루 하루를 보람되게 사셔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사람이 맞이하게 되는 그 시간에, 후회하지 않게 됩니다.
그때 후회해봐야, 그 지나간 시간을 돌이킬 수 있나요? 없지요.
▲하나님이 보시고, 후회하셨습니다.
무너진 것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만약 오늘날, 여러분의 삶이 무너져 있다면,
하나님도 똑같이 후회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직 늦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에게, 다시 한 번 무너진 인생을 재건하고
잘 살 수 있도록, 그 규범을 주셨는데,
그게 바로 십계명이요, 쉽게 말해서 ‘생활 규범’입니다.
이 법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가지게 되고,
무너진 삶이 회복되게 되고, 그러면서 자기 삶과 주변을 아름답게 경작 cultivate하게 되지요.
물론 신약의 우리는, 성령의 인도로, 이 법을 지키게 되지만요. 어떤 자기 의지가 아니라!
그런데 내 삶을 다스리는 이 기준, 질서가.. 바로 이 계명입니다.
◑2. 제5계명이 그 근본 밑바탕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난 주에,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를 살펴보았는데요.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 왜 중요합니까?
땅의 질서를 잡는데, 가장 기본이 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것이 땅에서의 가장 기본적인 질서입니다.
다시 말해서, 제5계명이 잘 지켜지면
나머지 6계명부터~10계명까지가 잘 지켜지고,
뒤집어서 말하면, 5계명에서 어긋나면, 나머지 6~10계명도 삐끗하게 된다는 것이죠.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다른 말로,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습니까?
가정, 패밀리입니다. 그게 가장 중요합니다.
가정에서 정상적으로 교육이 이루어진 사람은,
6~10계명을 자연히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그 패밀리 속에서 정체성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므로 지금 현실 세상의 회복.. 여러분, 이상한 거 꿈꾸지 마세요.
막 스타디움에 사람이 수 만 명이 모여서, 대형집회를 한다고..
부흥이 일어나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합니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현실적인 부흥은,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은
각 가정이 회복됨을 통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혼동하시면 안 됩니다.
저 어느 남도의 도시에서, 10만명이 모여서 연합집회를 했습니다.
네 당연히 함께 모여서 집회를 해야지요. 필요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그런 것 너무 꿈꾸지는 마십시오.
왜냐면 하나님 나라의 근본적인 회복은, 각 가정이 회복되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5계명부터 주님이 말씀해 주시는 겁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게 바로 카보드(임재, 존재)인데, 다시 말해 존재감입니다.
그 임재, 그 속에서,
자녀가 자녀됨을 언제 알 수 있어요?
아버지의 임재 안에서, 부모님의 존재 안에서..입니다.
▲저희 자녀가, 자녀됨으로서의 건강함을, 어디서 가질 수 있습니까?
부모의 임재 안에서, 부모의 테두리 안에서입니다.
보이진 않지만, 그 따뜻한 공기,
보이진 않지만, 그 격려가 느끼는 공기,
이게 무너지면, 이 비중감 있는 공기가 무너지면, 이 환경이 무너지면
정체성은 그대로 무너져버립니다.
그때부터 어려워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때 상처를 입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5장에서, 십계명을 말씀하시고
신명기 6장에 가서, 구체적으로 얘기하십니다.
이 계명을 누구에게 가르쳐 주라고 하십니까?
-가정의 자녀들에게 가르쳐 주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은, 신명기 5장의 십계명에는 주의를 기울입니다.
그런데 (6장에서) 그 계명을, 어디에서 지켜야 하는 지를, 명령하신 것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데요. 5장과 6장을 연결해서 보면,
가정에서, 네 자녀에게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신5장도 중요하지만, 신6장도 어떤 각도에서 보면 정말 중요합니다.
신6:1 이(5장의 십계명)는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가르치라고 명하신 명령과 규례와 법도라.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에서 행할 것이니
2. 곧 너와 네 아들과 네 손자들이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 또 네 날을 장구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
우리 자녀들이 그 법을 지키면,
그 결과가 이렇게 나옵니다.
신6:3 이스라엘아 듣고 삼가 그것을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복을 받고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허락하심 같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네가 크게 번성하리라
우리와 우리 자녀의 삶의 실제 영역에서, 이 약속이 그대로 성취나게 될 것입니다.
즉 우리가 천국을 다른 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오늘 우리 삶의 현장이 천국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6:3절의 성취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마음이, 먼저 천국이 되어야 하는 겁니다. 십계명을 지킬 때 그렇게 됩니다.
반대로 안 지키면, 지옥이 되고요.
그런데 우리의 죄성과 육신의 본능은,
자꾸 자기 삶을 지옥의 환경으로 만들어 갑니다.
죄를 사랑하고, 죄를 지음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자기 정체성을 완전히 무너뜨립니다. 스스로.
▲우리는 복음을 똑바로 알아야 합니다.
복음은, 죽어서 천국을 가는 면도 말씀하지만,
오늘 우리 삶의 현장을 천국으로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그건 ‘계명을 지킴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고통 받는 자들이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이 ‘나중에 보자’하고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셨어요.
그 자리에서 그를 고쳐주시고, 그를 자유케 해 주셨습니다.
복음은 Now and Here 입니다. 바로 삶의 현장에서 그 능력이 나타납니다.
저 미래 천국만 아니라요.
오늘 이 예배가, 여러분께 그런 예배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뭐라고 권면합니까?
신6: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7
저는 이 말씀이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봅니다.
제5계명의 뜻은, 단순히 ‘효’를 강조하신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가정에서 자녀를 잘 말씀으로 가르치고,
그 부모님의 말씀(성경 교육)에 순종하는 자녀가 되게 하라’ .. 이런 뜻이라고 봅니다.
5계명을 중심으로 해서, 즉 가정에서 교육을 중심으로 해서
1~4계명도 가르쳐 지고,
6~10계명도 가르쳐지는 것입니다.
즉, 자녀에게, 모든 하나님의 법도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물론 거기엔 부모의 경건한 삶이 밑바탕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건 부모의 삶으로, 가르쳐지는 것이지요.
▲이 5계명이 가장 기본적인 질서요, 이게 무너지면 안 됩니다.
이게 무너지면, 6,7,8계명이 그대로 무너지게 됩니다.
5계명의 질서가 무너지면.. 살인하게 됩니다.
여러분 건강한 자기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살인이나 상해를 하지 않습니다.
마음속으로 누구를 죽도록 미워하지 않습니다.
가정에서, 건강한 정체성을 형성한 사람이
간음하겠습니까?
여러분, 지금 우리 사회/교회의 문제는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가장 근본바탕이 흔들려버린 것입니다.
지금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는 살인, 간음, 도적질의 죄성을 보십시오.
이게 자기 내면의 죄성, 무너진 자아, 무너진 형상 때문에 생긴 결과들인데요.
자기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규율이 없고, 질서가 없다는 것입니다.
정체성이 없고, 자존심/프라이드가 없는 거죠.
그래서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충동이 일어나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자존심은 온데 간데 없으니까,
철저히 자기 죄악된 본성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그 결과 consequence of his sin도 고스란히 자기 몫이 되는 거죠.
이것이 질서가 다 무너진 인간의 실상입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에서 있어서, 질서/규범/캐논/스탠다드
다시 말해서, 십계명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걸 지킴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프라이드, 품위를 유지하는 겁니다.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거룩한 정체성이 확립되는 겁니다.
여러분의 내면의 질서가 세워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십계명이 바로 그 질서입니다.
이게 무너지면 안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살인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간음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도적질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결론은 불 보듯이 뻔해요. 불행한 겁니다.
왜 그런 일들을 합니까?
죄악의 본성 그대로 살도록, 노아의 시대처럼,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셨다가
내버려 둔 바 되었다가, 나중에 심판의 날에 심판을 받게 하시는 겁니다.
괴물이 될 때까지, 아무도 컨트롤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복음을 전해야 되는 것입니다.
죄악의 본성은, 계명으로 잡아놓지 않으면, 결국 멸망의 길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기도하시고,
듣든지 아니 듣든지 복음을 말하시고,
결과에 신경쓰지 마시고, 복음을 말하시고, 선포하시는 일들이
여러분 가운데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보십시오. 죄악에 무너진 본성, 그 정체성이 흔들린 본성은 뭐냐면
이런 거라고 상상해 보시면 됩니다.
큰 배가 있는데, 그 영혼에 닻이 없는 배입니다. anchor
그래서 물결 따라, 이리 저리 흔들리는 겁니다.
5계명은 무엇입니까? 영혼에 닻과 같습니다.
큰 배의 닻을 보십시오. 정말 그 무게가 수 톤이 넘습니다.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와 자녀의 관계.
이 비중감 있는 관계가 무너지면..
여러분, 화려한 것을 부러워하지 마세요.
뭔가 커져 있는 것을 부러워하지 마세요.
영혼의 눈을 갖고, 영의 안경을 쓰고 보시면,
너무 크고 화려한 타이타닉 배 같은데,
거기에 닻 anchor이 없습니다.
닻이 내려져 있으면, 폭풍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이리저리 떠돌지 않습니다.
이 닻이 없으면, 아무리 큰 배라도
바다에 나가 보십시오. 바다가 얼마나 큽니까. 거기서는 장난감 배에 불과합니다.
추풍낙엽처럼 떨어지는 거죠.
이리 가서 흔들리고, 저리 가서 쳐 박히고
‘중심’ 없는 삶이라는 겁니다.
제가 이 십계명을 여러분께 강의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설교하는 이유는,
인생을 이리 저리 떠돌며, 방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비중감/무게 있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 가운데, 이 비중감이 회복되어야 됩니다.
이 카보드(임재)의 삶이 회복되어야 되요.
하나님의 임재가, 내 속에 비중감 있게 장착이 되었어요.
그러니까 내가 죄성으로 흔들리고 싶어도, 안 된다 이겁니다.
이게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분 안에 비중감 있게 임하시면,
여러분이 이제는,
가벼운, 경박한 것으로부터 도망치시게 됩니다.
여러분이 주님께 순종하시더라도
비중감 있고, 영광스러운 차원으로, 여러분을 이끌고 가십시오. 아니, 그렇게 됩니다.
더 이상 혼적인 경박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안에, 이 영적인 사고가 열려지기를 축복합니다.
십자가의 사건이 얼마나 영적인 사건입니까.
그 비중감이, 내 삶 속으로 파고 들어서, 나타나야 되는 겁니다.
깃털이 아니라, 그 비중감을 내가 받아들인다면,
그게 내 영혼에 닻과 같이 된다는 것입니다.
히6:19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그래서 내 안에 죄악의 본성이 이리로 움직이고 싶고, 저리로 움직이고 싶어도
이 카보드, 하나님의 임재 자체가 무겁기 때문에 (닻 같아서)
못 움직인다 이겁니다.
이게 하나님의 은혜라 이겁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임재, 하나님의 존재 자체가
그게 내 안에 없기 때문에
내 정체성 자체가 없는 것입니다. 닻이 없어서, 표류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여기 죄악의 본성을 보면, 여기에 쑥 빠져들었다가
저기 죄악의 본성이 끌리면, 저기에 쑥 빠져들었다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 그런 사역자도
그렇게 넘어지고, 결국은 그 쓴 열매를 먹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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