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에는 희생이 선행된다 행8:1 출처보기
◑1. 희생의 피 위에, 부흥이 꽃 피웠습니다.
▲1907년 이 땅에 있었던 부흥사건이 다시 우리에게 임하기를 바라보면서
몇 가지 영적 교훈을 얻을 필요가 있습니다. *2006년경 설교
첫째, 우리가 1907년 사건을 조명하면서, 모든 학자들이 다 말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그 사건이 일어나기 40년 전에
대동강변에서 토마스 선교사가 참수를 통해 순교했다는 사건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 분은 26살에 순교하셨습니다.
런던 대학을 졸업하고, 22살에 결혼해서 신부를 데리고 중국으로 갔는데
토마스가 23살 때, 임신한 자기 부인이 중국에서 풍토병으로 죽습니다.
절망에 빠진 토마스가, 잠시 영국에 나왔다가 또다시 중국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조선말 통역사로, 제너럴 셔먼 호를 타고, 조선에 들어옵니다.
*중국 세관 통역사로 있을 때, 조선인을 만나면서, 한국어를 조금 배웠다고 합니다.
이때 그는 중국어(한문) 성경책을 들고 들어왔습니다.
그러다가 대동강변에서, 조선의 정부당국과 마찰이 붙어서, 그 배가 불에 탑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배에서 탈출해서 물밖으로 나왔는데,
결국 조선 병사에 의해 참수 당해 죽습니다. 그때가 그의 26살 때였습니다.
그래서 대동강에, 토마스가 피를 뿌려 죽는 사건이 있었고, 이때가 1866년인데,
꼭 40년 후에, 그 순교의 피가 흐르는 대동강 평양에서 대부흥이 일어난 거죠.
이때 토마스는, 자기를 죽이려는 병사에게, 성경책을 한 권 건네줍니다.
그가 성경책을 읽고 예수를 믿게 됩니다.
그 조카도 예수를 믿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평양에, 교회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아주 간단한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이 계기가 되어서,
정확하게 40년 후인 1907년 정초에 평양의 대부흥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여기서 발견하게 되는 사실은,
모든 부흥은, 순교자를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나라 한국교회가 이렇게 부흥하게 된 것도
주기철,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의 피가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 믿다가 처절하게,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순교는, 온 인류를 구원하였고,
스데반의 순교는, 초대교회의 부흥을 가져왔습니다.
사도바울만 있어서 된 게 아니라,
스데반과 같은 사람의 순교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부흥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프리카 케냐도 마찬가지고, 남미의 모든 부흥운동을 다큐로 보면,
전부 희생의 제물로 누군가 죽게 됩니다.
저는, 이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굉장히 중요한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아 그렇구나. 진정한 부흥에는 반드시 순교가 따르는구나!
순교라는 대가를 통해서, 영적 부흥은 일어나는 구나!’
미국 교회가 외로운 것은, 마틴 루터 킹 목사 이후에
우리가 기억할만한 순교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비극은 뭐냐하면, 초대교회에 순교자가 있었지만,
최근에는 그런 것이 없어요. *2006년 설교임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누리기만 했지,
우리가 희생하고 순교하고, 피를 뿌리는 그런 일들은, 없었다는 것이죠.
▲저희 교회가, 창립 20주년이 넘었습니다.
짧은 시간에, 우리 교회가 이렇게 부흥을 하게 된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제가 이렇게 생각해 보니까,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저희 교회는 지나치게 선교합니다.
잘은 못하지만, 선교하나 만큼은 목숨을 걸고 하려고 애를 씁니다.
분수에 넘게 재정을 지출합니다.
그것은 저희들의 여유가 있거나, 능력이 있어서 하는게 아니에요.
이것이 우리 교회의 존재 목적이기 때문에 합니다.
현재 저희들이 선교사로 파송하고 있는 사람은, 6백명이 넘어요.
지나치게 저희들은 이 일에 충성하고 있어요. 또 그렇게 하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 가운데, 저희 교회에, 하나님께서 순교자를 받으시더라고요.
제일 먼저 우리가 박승철 선교사님이 중국에서 돌아가셨어요.
단동에서, 중보기도 하려고, 1월1일에 부인과 더불어 기도하려고
대동강변으로 가다가, 차가 전복되어서,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그 후에 김사무엘 선교사님, 저는 그 분을 생각하면 목이 멥니다.
이라크에 가서, 사역을 하시다가, 백혈암으로 돌아가셨어요. *백혈병, 혈액암
<왕의 초대>라는 책이 있습니다. 김용숙 사모님이 쓴 책인데,
너무 눈물나게 감동적인 책입니다.
김사무엘 목사님 얘기를 쭈욱 그 책에 실었습니다.
이런 분들의 죽음, 희생, 순교가 있었기 때문에
선교는 가능하구나 하는 것을 요즘 제가 느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나서 된 게 아니라, 그분들의 죽음의 대가입니다.
김사무엘 선교사님이 이라크에 갈 때, 제가 아직도 기억합니다.
어느 날, 제가 그 분을 일본에서 만났는데
‘하목사님, 저는 북한과 중국에 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일본 사역을 마치고, 한국으로 오셨거든요.
북한과 중국에서 계속 사역을 하시다가
어느 날 또 제게 ‘목사님, 하나님이 절 보고 이라크로 가라고 그러셔요’
그런데 그때가, 이라크에서 한창 테러가 나고, 전쟁이 나던 때였거든요.
그래도 가시겠대요.
그렇지만 이라크에 들어가셨어요. 열심히 일하셨어요.
굉장히 위험한 상황에서요.
그런데 하루는 허리가 아프시대요.
그래서 잠깐 서울에 진찰하려고 들어왔는데, 그게 백혈암인지 몰랐어요.
그걸 아시고 난 후, 두 달만에 돌아가셨어요.
수술을 마치시고, 워싱턴에서 눈을 떴는데,
그가 본 것은 워싱턴이 아니고, 바그다드였어요.
그래서 간호사에게 이렇게 물어봐요.
‘여기가 바그다드 입니까?’
‘아닙니다. 워싱턴입니다.’
‘아닙니다. 제 눈앞에는 바그다드가 보입니다.’
그렇게 바그다드를 사랑했던 것입니다.
김선일 선교사의 참수를, 저는 늘 생각합니다.
제가 그 장례 주례를 했습니다.
무참하게 참수를 당했지만,
그 분은 정말 이라크를 사랑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신분을 속이고, 거기에 들어가서 일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분들..
최근에 우리 선교사님 한 분이, 중국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정광호 박사는, 창조과학회 선교사이신데,
인도네시아에서 백혈암으로 돌아가셨습니다.
터키에 있는 우리 선교사님의 아이는, 풍토병에 걸려서 죽었습니다.
누가 자녀 교육을 잘 시키고 싶지 않겠어요?
아이를 잃고, 부인을 잃고, 남편을 잃고...
오늘도 이런 희생이 계속 뒤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 위험한 지역에 들어가서 풍토병과 싸우고..
그 젊음을 불태우면서 대가를 치르는 겁니다.
.
▲제가 웩WEC 이라는 선교단체에서 1년 동안 훈련을 받았는데요.
이재환 선교사님과 함께 받았습니다.
거기에 가면, 조그만 강당에 사진 액자가 23개가 붙어 있습니다.
다 선교하다가 순교한/죽은 선교사들입니다.
나이들이 20대, 30대입니다.
의사, 항공기 조종사, 이런 분들입니다.
죽은 사유는, 낭떠러지에서 떨어져서 죽기도 하고,
풍토병에 걸려서 죽기도 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고,
먼 얘기들이 아닙니다.
오늘날 선교현장에서 지금도 있는 얘기들입니다.
중앙아시아에서, 어떤 선교사는 외출 중이었는데,
자기 부인이, 집에 침입한 강도의 칼에 찔려 죽었습니다.
여러분, 이게 선교입니다.
선교라는 것은, 이런 죽음의 대가를 치르면서 하는 것입니다.
이 죽음의 대가를 치를 때
부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부흥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값싼 부흥이 결코 아닙니다.
▲한국에 초대교회에 오셨던 모든 선교사님들은, 여기에 놀러온 게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때 시대적 상황으로 놓고 보면,
한국은 죽음의 땅이었어요. 절망의 땅이었어요.
우리가 ‘언더우드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어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무지와, 고집과,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가득찬..
환영받지도 못하는 그런 곳으로 와서, 그들은 묵묵히 복음을 전하셨던 것이죠.
예, 우리는 부흥을 원하지만, 대가는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정 중요한 것은,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오늘 우리 시대에, 1907년의 부흥이 재현되기를 원한다면,
우리 교회는, 우리 크리스천들은,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해야 됩니다. 대가를!
‘주님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희생하셨기 때문에 온 인류가 구원받은 것처럼,
교회는 이 세상을 위하여, 무슨 대가를 치를 것인가요?
우리 크리스천들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썩어질 것인가, 어떻게 희생할 것인가?
어떻게 수모를 당할 것인가, 어떻게 어려운 일들을 스스로 자처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부흥이 있을 수 있느냐/없느냐의 갈림길입니다.
지금도 우리 선교사님들 가운데, 중앙아시아에 있는 최모 선교사는, 대장암 말기입니다.
터키에 있는 구선교사는, 눈이 거의 실명 직전에 가 있습니다.
어떻게 그 분들을 도와드리고 싶은데, 아 이럴 때는 제가 신유 의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기도해서 그분들을 고쳐드릴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래요, 우리들이 선교한다는 것은, 그런 분들을 끼고 같이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과 같이 아파하고, 같이 눈물을 흘리고, 같은 마음을 가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가 그 지역을 찾아가고, 그 사람들을 찾아가고
그 사람들을 가슴에 품는.. 이것이 부흥입니다.
그런 부흥, 그런 대가를 토마스 선교사가 치러주셨고,
초창기 한국에 왔던 선교사들이 희생의 대가를 치러줘서, 오늘날의 한국 교회가 있게 되었습니다.
◑2. 1907년 부흥에는 외국 선교사들의 공헌이 컸습니다.
(우리도 나가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 1907년의 배경을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 두 번째 이유가 뭐냐면
외국인 선교사들이 와서 해 줬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한 것이 아닙니다.
한국 사람을 대표해서는 길선주 목사님이 계셨지만,
하디 의료 선교사, 캐나다에서 오신 분인데
이런 분들이 미리 불타는 마음으로 한국 조선 백성들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고, 통곡하고
한국교회를 위해서 희생을 하셨습니다.
그것 때문에 우리들이 복음을 받은 것입니다.
여러분, 이 논리를 보면,
우리가 다른 나라,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우리도 거기에 가서, 하디가 되어줘야 하고, 언더우드가 되어줘야 하는 것입니다.
알렌이 되어줘야, 그 민족이 사는 것입니다.
그 민족은 자체 스스로 살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게 선교입니다.
그 당시, 미국과 영국과 캐나다.. 이런 곳에서
선교사들이 주의 이름으로 한국에 와서 썩어지지 않았다면,
우리들이 눈을 떴겠습니까?
이화학당, 배제학당, 숭실대학이 생겼을까요?
다 그들이 오셔서, 우리가 교육에 눈을 뜨게 되었고
우리의 눈을 뜨게 하고, 근대화의 눈을 뜨게 하고
여성의 눈을 뜨게 하고,
그래서 우리의 생각을 다 바꿔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눈을 뜬 것입니다.
우리들 스스로 눈을 뜬게 아니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부흥은, 그런 관계가 있더라고요.
◑3. 부흥은 연쇄적으로, 쓰나미처럼 일어나는 특성이 있습니다.
(다른 교회가 부흥해야, 그 여파가 우리에게도 미칩니다.)
또 이 부흥의 역사를 조명해 보면,
시대적 상황과 연결되어 있어요.
평양 사건만 독립해 있지 않습니다.
원산 대부흥이 그 전에 있었습니다. 하디 선교사가 주도했죠
그 전에 웨일즈의 부흥사건이 있었고,
인도의 부흥 사건이 있었고,
주변에서 이런 소문들이 계속 들려오는 것입니다.
부흥은, 먼저 이런 소문이 들려와야 합니다.
한 사람,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여러 곳에서, 하나님의 바람이 부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것이 몰려서 부흥으로 역사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두 교회만 잘 된다고 좋아할 게 아니라
대한민국의 교회들이 모두 다 잘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교회도 잘 되고, 우리 교회도 잘 되고
거기서도 부흥이 일어나고, 우리도 부흥이 일어나고
섬에서도 부흥이 일어나고, 시골에서도 부흥이 일어나고
곳곳에서 부흥의 소리가, 파도처럼 들리는 것이
그래서 이것이 쓰나미를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흥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지
누가 한 사람이, 영웅적인 사람이 태어나서,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결과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눈을 뜨게 됩니다.
그리고 한국교회 초대 토종 목사님들이 배출되기 시작합니다.
그 분들이, 이제 한국교회의 영적 부흥을 인도하기 시작합니다.
이 부흥은, 영향을 받고,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1920년대에는 김익두 목사님을 중심으로 부흥운동이 전개되었고
1930년대에는 성결교회 부흥운동과 더불어
이용도 목사님의 신비주의 운동이 시작되고
1950년대에는 김치선, 한경직, 김준곤 목사님 중심으로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1970년대에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오셔서 여의도에서 대형집회를 여셨고,
이 시기에 CCC가 한국 전도에 큰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한국교회가 지금 여기까지 온 것입니다.
◑4. 연합
그런데 지금은 한국교회가 부흥이 정체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분열 때문입니다.
진짜 부흥이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키 중의 하나는
연합입니다. 연합!
제가 요즘 이 주제를 가지고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한국교회가 다 있는데, 하나가 없어요. 그건 바로 연합입니다.
이번 부활절 날이 큰 축복이었던 것은
NCC(진보)와 한기총(보수)이 연합해서 부활절 예배를 함께 치른 것입니다.
제가 뒤에서 얘기를 들어보니까, 연합이 굉장히 어려웠다고 합니다.
회의를 뭐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행사에 하나가 되기 위해서!
헤어졌다가 깨어지고, 헤어졌다가 깨어지고 했는데
드디어 연합이 되어서, 이번 부활절 연합집회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자체가, 마귀가 기절할 일입니다.
보수와 진보가 서로 만났다는 것
큰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원수가 서로 만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서로 만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한국교회가 교회와 교회 사이가 다 경쟁관계이지
협력관계가 아닙니다.
교파와 교파가 다 경쟁관계이지, 협력관계가 안 됩니다.
여기에 부흥은 있을 수 없습니다.
평신도, 목회자가 협력 관계이어야 합니다.
교회와 교회가 협력관계이어야 합니다.
선교단체와 교회가 협력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될 때 부흥이 일어나는 겁니다.
크다 작다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협력하느냐, 못하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하나가 되느냐/안 되느냐가 중요한 겁니다.
작은 일에도 하나가 되면, 큰 일을 하는 거고요,
커도 분열하면, 아무 일도 안 되는 겁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에 남겨진 숙제입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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