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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터치

LNCK 2015. 8. 16. 08:51

침묵 터치                                 막6:45-52                              출처보기

 

 

요즘에는 설교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집니다.

모두 생중계가 되기 때문에 아주 신경이 많이 쓰입니다.

특별히 대전 부천 수원 남양주는 바로 생중계가 됩니다.

 

시대가 인공위성 시대이고 인터넷 시대이기 때문에

인터넷으로 예배드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루에 수 만 명이 클릭 합니다.

우리 인터넷에 들어옵니다.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많은 분들이 인터넷을 이용합니다.

그런 분들에게도 동일한 성령의 역사가 있기를 위해서

여러분이 기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사역가운데

항상 도사리고 있는 유혹과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기적과 성공과 사람들의 환호성 뒤에

숨어있는 승리감과 도취감입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모든 것이 어렵고 힘들고

가진 것이 없고 가난할 때는 겸손합니다.

 

허리를 동이고 이마에 구슬땀을 흘리고

최선을 다해서 이 고난의 벽을 뚫고 나가려고 애를 씁니다.

 

이럴 때는 이혼 안합니다.

부부 싸움도 비교적 적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여유가 생기고, 돈이 좀 생기고, 편해지고, 환경이 좋아지면

그때부터 겸손은 교만으로 바꿔지고

감사는 불평으로 가난할 때는 불평을 덜했는데

잘 살면서 불평이 많아졌습니다.

 

목소리가 커지고 목이 굳어지는 것을 경험합니다.

어렸을 때 그렇게 다정했던 부부는 다투는 일이 자주 생기고

이혼이라는 말을 자주 입에 내뱉게 됩니다.

 

인간의 위기는 실패할 때가 아니라 성공할 때입니다.

가난할 때가 아니라 부유할 때입니다.

 

병들 때는 괜찮습니다.

건강해질 때는 위기가 옵니다.

 

무명할 때는 괜찮습니다.

모든 사람이 알아주지 않을 때는 괜찮아요.

모든 사람의 시선을 받고

그 이름이 오르락내리락하고 박수갈채를 받을 때가 위기입니다.

 

예수님의 생애의 위기는

기적을 베풀 때였습니다.

사람들의 환호성을 받을 때였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두 가지 터치를 보았어요.

 

성령터치를 통하여 사역이 시작되었고, 기적적인 사역이 시작되었고

말씀터치를 통하여 사탄의 어둠의 세력을 꺾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성령의 기름부으심이 나타나고

사탄의 세력을 꺾을 때부터 기적이 일어나지요.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마태복음 4:23-25에 보면 예수님이 얼마나

기적과 능력을 행했고 예수님이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가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4:23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의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24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 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그들을 고치시더라.

25 갈릴리와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 강 건너편에서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우리는 예수님의 인기와

백성들의 환호성을 짐작할 수 있어요.

 

이렇게 4장 마지막 절에 기록되고

5장에 들어가서 예수님이 산상설교를 하시려 산에 올라갑니다.

 

그것이 마태복음 5.6.7장인데

그 설교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설교였어요.

왜냐면 예수님의 성령터치와 말씀터치가 있고나서의 설교였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의 사역도

성령터치와 말씀터치가 있고 난 후부터는

성경 가르치는 게 달라지고, 설교하는 것이 달라지고

말하는 것이 달라집니다.

 

마태복음 7:28-29을 보면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사람들이 충격을 받아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 같고

저희 서기관과 같지 아니하였더라.’

이게 왜냐면 성령터치와 말씀터치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실 성령과 말씀이라는 이 두 날개만 가지면

독수리가 창공을 날아가는 것과 똑 같아요.

 

성령만 가지고도 안 되고

말씀만 가지고도 안 되고 두 날개에요.

 

저는 여러분에게 성령터치가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말씀터치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사탄의 어둠의 세력들,

여러분을 죽이고 파괴하고, 이 민족을 죽이고 파괴하는

사탄의 모든 음모들이 드러나고, 사탄의 세력들이 박살나는 그 역사들을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서 보는 것이지요.

 

8장에 들어가 보면

예수님이 산상수훈을 마치고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문둥병자를 고칩니다.

 

백부장의 하인의 병을 고쳐줍니다.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줍니다.

뿐만 아니라 바다를 잠잠케 하고

귀신들려 소리 지르며 다니는 사람을 고쳐줍니다.

 

이것이 8장 한 장에 다 있습니다.

참 재미있습니다.

 

3장에서 성령터치가 일어나고

4장에서 말씀터치가 일어나고

5.6.7장에서 설교하시고

8장에 내려오면서 엄청난 기적들이 막 일어나는 것이지요.

 

우리는 계속해서 성경에서

이 기적들이 연속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야이로의 딸이 죽었다가 살아나고,

12년 동안 혈류 병 걸렸던 여인이 치유 받고,

소경이 눈을 뜨고 귀머거리의 귀가 열리는

사건들이 소개되고 있지요.

 

이게 다 무슨 원인일까요?

성령터치, 말씀터치입니다.

 

저는 다시 한 번 여러분에게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과 세례와

성령의 터치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소유하는 말씀의 사람,

말씀의 터치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난 이후부터

설교하실 때, 기도하실 때, 기적을 베풀 때,

안수할 때 이런 일들이 막 일어나는 것이지요.

 

여기까지 생각해 보면, 그 좁은 사회,

팔레스타인 유대지역이라고 하는 좁은 사회에서

이런 일들이 옆 동네에서 일어났을 때

입에서 입으로 신문과 방송이 없어도 얼마나 빠른 속도로 이 뉴스가 전해졌겠습니까?

 

그리고 그들이 이 소식을 듣고 얼마나 호기심과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분명히 하나의 신드롬이 생겼을 겁니다.

이 사회가 갑자기 패닉현상이 생겨가지고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인기가 예수님에게 집중되고

환호성소리가 높아지고 박수소리가 높아졌겠지요.

이것이 위기였습니다.

 

마귀의 시험보다 더

어떤 면에서 더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마귀는요, 마귀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공격(또는 방어)하기가 쉬워요

 

공격하기 어려운 게 인기입니다.

성공이에요.

공격하기 어려운 것이 천사를 가장한 것입니다.

 

3년 동안 예수님을 계속 뒤쫓았던

시험은 바로 성공이었습니다.

기적이었고, 사람들의 환호성이었습니다.

 

그때마다 자기 안에 찾아오는

이 위기를 어떻게 관리 하셨는가요?

 

성경 사복음서에 보면 눈에 보이지 않게 간간히

예수님이 자기를 관리하는

인기와 성공에 빠지지 않도록 하는

자기 관리 시스템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중의 하나가 마가복음 135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35.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서 거기서 기도하시니..’

예수님은 35절 한 구절을 보면

재미있는 단어 세 가지를 끄집어 낼 수 있습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여러분 다윗이 어떻게 범죄 한 줄 아십니까?

저녁때까지 잠자다 그랬습니다.

늦잠을 잤다고요. 늦잠 자는 사람에게 시험이 옵니다.

 

새벽을 깨는 사람들은

그 시험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새벽 오히려 미명에

 

저는 여러분들이 잠은 푹 자십시오.

그러나 지나치게 자거나 늦잠 자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기 35절에 보면

한적한 곳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시간이 나오고 새벽 오히려 미명에그 다음에 장소가 나와요.

사람 많은 곳이 아니라 인기가 집중 될 수 있는 곳이 아니고

아무도 사람이 보지 않는 곳, '한적한 곳'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 다음에 거기서 기도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거기에서 홀로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언제나 조용하고, 한적한 곳을 찾으셨고

사람을 떠나서 홀로 고독한 자리를 만들었고

그리고 많은 말을 하기 보다는, 침묵을 선택하셨습니다.

 

이것이 침묵터치입니다.

예수님은 성공을 어떻게 이겼는가요?

 

고독터치, 침묵터치, ‘홀로홀로라는 단어를 쓰는데

홀로 사람을 떠나서, 박수소리를 떠나서, 함성소리를 떠나서

자기 안에 있는 이 칭찬받고 싶은 소리를 떠나서

그가 하나님 앞에 홀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3년을

끌고 갈 수 있는 엄청난 비밀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도 아주 재미있습니다.

오늘 본문 전에 마태복음 635절에서 44절까지

그 유명한 오병이어 기적의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수많은 무리들이 남자만 오천 명이니까

아이들과 아녀자들을 합하면, 최소한 만 오천 명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이 저녁 늦게까지 하나님말씀을 들었다가 굶주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무리들의 배고픔을

그냥 보시지 아니하시고 너희들이 가진 게 뭐 있느냐?

 

그때 똑똑한 제자들은 아니 예수님 무슨 말씀하십니까?

여기서 언제 이 음식을 사며, 그런 가게는 어디 있으며 돈은 어디 있습니까? 라고 말할 때

안드레가 어린아이가 가져온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소개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이 그걸 축사하시고 축복하시고 나눠주니까 몇 명이 먹었습니까?

남자만 오천이니까, 최소한 만 오천에서 이만 명은 먹인 거예요.

먹이고도 몇 광주리가 남았어요?

열두 광주리가 남은 사건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기적과 사건을 베풀었을 때

제자들은 얼마나 흥분했겠어요.

역시 예수님이시다. 짱이다.’했겠지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와 예수님이 임금이 되셨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 했겠지요.

 

그런 일종의 패닉현상이 생길 그 무렵이에요.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 어떻게 하셨느냐 하는 것이 45-46절이에요.

 

우리의 생각과 기대를

뒤집는 행동을 예수님이 하십니다.

 

마가복음 6:45-46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건너편 벳세다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

 

, 기적의 현장이 금방 끝났습니다.

환호성이 끝났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이 단어를 잘 보세요.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였어요.

즉시, 여유를 두지 않았다는 말이지요.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제자들이

얼마나 흥분했겠습니까?

 

'예수님이 임금 되시면 나는 좌우정하고 우의정할거다.'

뭐 그런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니까 군중들 보다

더 흥분한 사람들이 제자들이었을 것 같아요.

 

그걸 아신 예수님께서 즉시 재촉하여

제자들을 빨리 배타고 내보내는 것입니다.

저쪽으로 가라는 말이지요.

이게 예수님이셨어요.

 

우리는 성공에 도취되고, 흥분에 도취되고

그럴 즐기려고 합니다. 그 권력을 즐기려하고

그 승리를 만끽하려고 합니다.

 

요즘 우리사회에

제일 위험한 것이 촛불 시위입니다.

저걸 하면요, 기득권세력과 반대하는 사람들이

또 결집을 합니다.

그러면 이 나라가 아수라장이 됩니다.

 

사람들은 어떤 힘의 과시를,

힘의 과시 안에 있으려합니다.

 

내가 힘세다.’ 이거에요.

내 목소리 크다. 이거에요.

그걸로 남을 제압하려해요. 제압이 안 됩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합니다.

사랑만이, 용서만이,

화해만이, 영원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법보다는 주먹이 가깝고

이성보다는 감정이 가깝고,

그래서 우리는, 오랜 기다림보다는 성공이 더 중요하고

이 유혹을 우리는 끊임없이 받는 거예요.

 

이것이 비단 예수님의 제자뿐만이 아니라

보통 우리들도 똑같이 그런 유혹은 계속되는 것입니다.

유혹은 계속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제자들을 내보냅니다.

빨리 배 타고 가라 이겁니다.

 

두 번째 무리들을 또 보냅니다.

흩어지게 하는 것이지요.

 

성공을 자기 손으로 흩뜨리는 거예요.

인기를 자기 손으로 흩뜨리는 거예요.

환호성 소리를 자기 스스로 막는 것이지요.

 

그리고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습니까?

제자들도 보내고 무리들도 다 보내고

홀로 예수님은 산에 남으셨습니다.

 

그 얘기가 47, 48절에 있습니다.

6:47 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48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하나 나옵니다.

홀로라는 단어입니다.

 

흥분해 있는 제자들도 내보내고

충격 받은 군중들도 다 흩으시고

예수님이 홀로 남았다는 것입니다.

 

홀로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단독자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단독자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남습니다.

 

침묵 속에 계십니다.

그리고 고독을 선택하셨습니다.

 

우리 생애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순간은

귀신들려 고독하거나

우울증에 빠져 고독한 것하고는 다릅니다.

 

그것 말고 단독자로 고독하게 서 있는 것

내가 어떤 결정을 할 때,

어떤 선택을 할 때

처음에는 참모들에게 물어보고 사람들에게 물어봅니다.

 

내가 이렇게 하면 좋겠느냐.

저렇게 하면 좋겠느냐하고 질문하지만

결국은 단독자로 섭니다.

 

내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은

참모들이 이렇게 말했기 때문에

결정했다고 말하는 리더는 믿을만한 리더가 아닙니다.

따라갈 만한 리더가 아니지요.

 

자기가 결정한 것은 자기가 결정해야지요.

여론이 이렇더라.’든지 사람이 이렇게 말해서

내가 이렇게 결정했다든지 이건 아니지요.

 

여론도 들을 수도 있고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수도 있지만

결정적인 결정은 자기가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자기가 책임지는 것이지요.

이게 단독자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무섭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안하려합니다.

그래서 다 투표해보고 모두 다수결에 의해서 했다. 이거예요.

자기가 싹 빠지는 거예요.

 

예수님은 그 인기 속에서도

그가 홀로 하나님 앞에

침묵을 선택했고 고독을 선택했고

단독자로 섰다는 것이지요.

 

이것이 예수님의 침묵터치예요.

 

첫 번째 성령터치

두 번째 말씀터치

세 번째는 침묵터치입니다.

 

이 침묵 터치를 그가 선택했기 때문에

그가 고독하게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섰기 때문에

그가 어떤 기적과 어떤 능력과

어떤 박수갈채와 환호성이 있었을지라도

피해 갈 수가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고

시험 들거나 유혹에 빠지거나

사람들의 그 환호성 속에

놀아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당신의 길을 가신 거예요.

성령터치가 예수님 사역의 비결이요

말씀터치가 사탄의 세력을 꺾는 비결이라고 한다면

 

침묵 터치는

예수님의 성공과 인기와 사람들의 환호성을

시험을 유혹을 꺾는 비결입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보호 받고 싶은 거예요.

 

아무리 훌륭하고 아무리 권력이 많고

아무리 많은 것을 가진 사람이래도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누군가가 인정해주기를 바래요.

 

누군가 인정해주기를 바라고

누군가 나를 사랑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들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것이 진짜인데

그것은 고독한 일이요. 외로운 일이고

견딜 수 없는 투쟁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는 자꾸 사람에게 동의를 구하는 거예요.

사람에게 인정받으려 하고

사람에게 보호받으려 하고

사람에게 사랑받으려고 하는 본능이

우리를 지배한다는 말이지요.

 

여러분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 앞에 서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 서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뭐가 중요할까요?

하나님 앞에 엎드려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독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오랜 침묵과

기다림을 갖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금식하는 것입니다.

 

밤새워 기도하고 새벽에 피곤한 몸을 이끌고

교회 와서 엎드려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렇게 중요한 거예요.

그러나 그게 그렇게 중요해 보이지 않아요.

 

뭐 새벽기도 좀 빠진들 뭐 문제냐 이거에요.

나 뭐 금식 안 해도 다 기도한다고..

뭐 그리 중요한 것이냐.

율법적으로 믿어야 하는 거냐?

 

율법이 아니라니까요.

이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내가 고독하게 있는 것,

외롭게 있는 것,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는 것,

침묵하는 것, 금식하는 것,

 

현대인의 특징이 뭔가요?

Busy 바쁘고. Noisy 시끄럽고,

사람 많고, 피상적이고, 결과주의 적이고,

이것은 마치 우리가 지하철을 타는 것과 같아요.

끊임없이 피곤하게 지하철 속을 다니는 거예요. 그냥 속도를 내고,

그러다보니까 내가 왜 일 하는지,

내가 왜 결혼 했는지, 내가 왜 사는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덜 중요한지

내가 돈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판단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눈에 좋은 것 다 사고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생각 없이 그거 사는 거예요.

 

시간을 그냥 보내는 거예요.

그저 재미있으니까,

즐거우니까 쾌락을 주니까

그걸 하는 거예요.

 

그래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껍데기가 되어가고 있는 거예요.

 

48절 보시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언제까지 기도하신지 아십니까?

 

밤 사경.

기도 시작한지가 저녁 먹을 때쯤 시작하셔서

밤 사경이면 요즘 시간으로 말하면

새벽 3-6시 사이를 밤 사경이라고 해요.

 

가장 잠이 많이 올 때예요.

그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배를 타고 건너가고 있었는데

예수님은 산위에서 그걸 보면서

기도하시다, 제자들을 보시다 (둘 다)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밤이 맞도록 기도하셨고

새벽 미명에 기도하셨어요.

 

때로는 춥고, 때로는 배고프고,

때로는 춥고 때로는 무섭기도 해요.

 

산 기도가 보면 어떤 때는

성령 충만해서 땀이 막 나고 하다가도

어떤 때는 갑자기 무서워요.

혼자 있는 게 무서워요.

 

어떤 때는 피곤하고

어떤 때는 잠을 이기지 못해요. 너무 피곤해서

그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 고독한 침묵터치, 이 홀로 서있다는 것.

이런 것이 예수님의 생애에 계속 있었기 때문에

삼년동안 예수님은 흔들림 없이,

십자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

 

금식,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홀로 있는 것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단독자로 있을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병들 때가 있어요.

 

저는 예수 믿고 첫 시련이

대학 때 폐병이 걸려서

일 년 휴학을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제가 연수원에 그 당시에는 격리 수용이 되었어요.

 

혼자서 독방을 사용했어요.

그게 제가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축복이었어요.

 

그때 제가 정독한 것이 성경하고

파스칼의 팡세를 줄 쳐가며 읽었어요.

 

그것이 내 영적 자양분이 되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나는 하나님을 독점했었어요.

 

아무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하나님과 단 둘이 만나는

그런 시간을 가졌던 것이지요.

 

누가복음 22:3절에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에 이런 표현이 있어요.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쫓아 감람산에 가셨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감람산을 처음 간 것이 아니고

늘 익숙한 것이 감란 산이었다는 것이지요.

 

좋은 일이 생기든 어려운 일이 생기든

그저 시간만 나면, 기회만 나면 산에 가셔서

기도 하시는 예수님을 여기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곳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지요.

이것이 예수님의 고독이요.

예수님의 침묵이요. 예수님의 홀로예요.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메시지가 3가지 있습니다.

 

1) 첫째는 우선순위를 선택하라.

 

군중 앞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사역이 아니라 예배라는 거예요.

 

여러분 모든 사역자들은

사역을 하면서 순간순간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해요.

 

봉사하다가도 잠깐 코너에 들어가서 예배해야 해요.

예배가 없는 사역은 탈진하고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마르다처럼 돼요.

 

사역이 아니라 예배입니다.

 

"우선순위가

군중이 아니라

하나님이다.

 

환호성이 아니라

침묵이다.

 

피상성이 아니라

깊음이다.

 

열매가 아니라

뿌리이다.

축제가 아니라

고독이다.

 

성취가 아니라

포기이다."

 

포기가 있고 난 다음에 성취.

고독이 있고 난 다음에 축제는 괜찮아요.

고독이 없는 축제는

정말 고독한 것입니다.

 

2) 두 번째 두려워하지 말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거예요.

 

김 사무엘 목사님이 우리교회에 주고 간 메시지인데요.

빌립보서 1:20-21

1: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여러분, 고독터치, 침묵터치, 홀로 터치는 뭐에요?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에요.

자기의 죽음.

 

포기보다 위대한 선택은 없습니다.

나눔보다 더 큰 소유는 없습니다. 그것을 배우는 것이죠.

죽음보다 더 위대한 삶은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 치사하게 구차하게 살려고 하고

작은 이익에 눈이 멀고

작은 욕망에 우리가 헤어나지를 못하기 때문에

영원한 기쁨, 영원한 진리

그 영원한 축복을 얼마나 놓치고 사는 것인지요...

 

3) 세 번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이지요.

 

인기가 집중될 때 사람을 피해

하나님과 독대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이지요.

 

당신이 외롭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으로 가는 것입니다.

 

당신이 배고플 때,

당신이 비참해졌을 때

사람들에게 배신을 당했을 때,

사역의 의욕을 잃었을 때,

당신은 이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드디어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시간이 된 것이에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시간

 

새벽 미명에 기도하시던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던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40일 금식하시던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십자가 앞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기도하셨던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분이 얼마나 고독했고,

그분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침묵으로 보냈고

그분이 얼마나 많은 기다림 속에 있었던가를

 

여러분의 그 작은 침묵, 작은 기다림,

여러분이 당하는 작은 고통,

이것이 커 보이지만 그것이 여러분이

하나님을 만나는 접촉점이에요.

 

그 시간이 필요해요.

그런 시간이 만약 주어졌다면

그것이 축복이라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게는 화려한 일보다는

주님을 만나는 침묵과 고독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삼년동안

기적 속에서도 승리했던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때로는 홀로가 되고,

때로는 가진 것을 다 잃어버리고

건강도 잃어버리고,

그 많던 재산도 다 잃어버리고

그 많던 친구들도 다 떠나고

우리는 홀로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침묵터치임을

알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