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 지옥, 세상 끝 요3:13, 계12:11 대강 번역, 출처
Heaven, Hell and the End of the World by David Platt
*한국어 녹음입니다
▶우리는 잠시 멈추고 쉬면서,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우리는 계속적으로 이 세상의 일시적인 것들에 의해서
눈이 멀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눈만 멀은 게 아니라, 이제는 그런 사소한 세상적/일시적 일들 때문에
우리 영혼에 마비가 왔습니다. 무감각하게 되어버렸습니다.
너무 바쁜 나머지, 정신없이 살아가는데.. 눈은 멀고, 감각은 마비되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고난주간 이 성 금요일에 교회에 나오셨지만,
평소에 얼마나 바쁘게 사십니까.
직장일, 사업 일이, 매일 매주간 정말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갑니다.
그런데 오직 그 일에만 몰두한다면, 직장과 사업이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그건 일시적(현세적)일이요, 어쩌면 사소한 일입니다.
영원한 가치가 아니란 뜻입니다.
그런데 꼭 직장 일로만 바쁜 것은 사실 아닙니다.
친구 만나야죠. TV봐야죠. 인터넷 해야죠. 영화도 보고
스포츠를 하기도 하고, 그래서 바쁘게 다들 정신없이 살아갑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더 많이 가지려 하고, 더 새로운 오락거리를 찾아다니는데요,
또 요즘 사람들이 시간을 많이 쏟는 일은 ‘운동’입니다.
적당한 운동은 해야 되는데, 무슨 몸짱을 만들려고 과도하게 시간을 허비합니다.
그리고 스포츠 마니아들도 있습니다. 적당한 스포츠를 해야 하지만,
영적이고 영원한 가치가 있는 일들은, 모두다 등한시 하고, 멀리 밀쳐버리고
그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헬쓰, 스포츠 마니아가 되는 일은,
우리가 자신을 깊이 돌아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 일, 일시적인 일’에 바쁜 일상을,
자기 자녀에게 고스란히 되물려주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어린 자녀들을 차에 태워서, 스포츠클럽, 음악 레슨,
이런 것을 가르치느라 특히 엄마들이 정신이 없습니다. 애들도 혹사시킵니다.
그런데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가르치는 것들이 영원한 가치들이 아닙니다.
모두 다 일시적이고, 세상에서 잠시 있다가 다 지나갈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중간에 멈춰 서서,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한 번 “영원 eternity”을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런 시간을 가지는 것이, 현대 크리스천들에게 절실히 필요합니다.
오늘 지금 우리가 정말 관심을 갖고, 정열을 거기에 쏟는 것들이
어쩌면 10년만 지나면, 아무 것도 아닌 일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영원의 시간에, 예를 들면 100억년이 지나서,
그게 뭐가 하등 중요하겠습니까.
*100억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중요한 그 일에,
우리가 오늘의 소중한 시간과 정열을 쏟아 붓자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금요일인 오늘 밤에, 성경을 통해서 우리가 살펴보길 원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0억년(즉 영원)동안에, 정말 중요한 일이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 A. W. 토저가 한 말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내세에 대해서, 심하다 싶을 정도로 강력하게 강조해서
성경과 교리를 가르치는 것을, 아무도 미안해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계속적으로 이 세상을 받아들여서, 세상과 동화되려는 유혹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받아들이면, 나중에 결국 세상에 이용당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교회가 현명하다면, 자기가 어디에 서있는지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는 두 산봉우리 사이에 서 있는데,
한 봉우리는 ‘영원한 과거’요, 또 한 봉우리는 ‘영원한 미래’입니다.
*즉, 영원이란 일직선상에, 그 중 일부로, 그 중 한 순간으로 존재하지요.
과거는 영원 속에서 지나갔으며,
현재는 아하스의 해시계처럼 빨리 지나가고 있습니다.
만약 이 지구가 멸망되지 않고, 앞으로 1백만 년을 더 지속된다 하더라도,
우리 중 누구도, 이 세상/지구에 계속 머물며 즐길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지구를 떠나, 영원으로 돌아가서, 영원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미래가 아주 아주 길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사는 것이 좋습니다.”
※이 설교의 주제는, 당신이 오늘 심혈을 기울여서 하고 있는 그 일이
1백만 년 후 미래에, 즉 영원 속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일인가?
그걸 살펴보고, 만약 아니면,
장래 50년이 아니라, 영원 1백만년 미래를 위해서, 당신의 인생을 투자하십시오..입니다.
그래서 오늘 밤에, 우리는 바쁜 일상에서 잠시 멈추어서,
먼 미래와 영원을 쳐다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면서,
한 번 깊이 생각해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늘과 땅은 없어지되, 나의 말은 없어지지 않는다” 마24:35 막13:31
하늘과 땅, 즉 이 세상은 사라지고 없어지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결코 영원한 진리가 되십니다.
그래서 오늘 밤 우리는, 우리 생각을 최소화시키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최대화 시켜서,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영원한 가치인 <천국과 지옥, 세상 끝날>에 대해서
살펴보기 원하는데요,
먼저 여러 가지 비성경적인 주장들이, 교회에 범람하고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 세상 끝날>에 대해, 성경적인 가르침은 거의 안 보이고,
개인적 체험들을 기록한 책들이 유행하고 있는데요. 이것들은 성경적 진리와는 거리가 멀죠.
과거 10년 사이에, 기독교 서점에서 제일 많이 팔린 책 중에
1) <천국에 다녀온 소년 Heaven is for real> 이란 책이 있습니다.
*자막 영화로 2014년에 한국에 소개되었으나, 책은 다행히 번역되지 않은 것으로 보임.
만 4살짜리 소년 콜튼이, 병을 앓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그러는 사이에 천국에 가서, 자기가 경험한 것을 책으로 만든 것인데요.
*아마 4살이니, 아이가 무슨 거짓말을 하겠나.. 하고 사람들이 좀 더 잘 믿었겠죠.
그런데 ‘임사체험’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죽을 고비가 되면,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합니다.
그런데 모르죠. 실제로 정말 천국에 갔는지.. 설령 0.1%의 가능성이 있다 하더라도,
우리는 성경보다 더 자세한 것은, 믿으면 안 되지요.
콜튼 소년은, 자기가 예수님의 무릎 위에도 앉았고,
천사들이 자기에게 노래를 불러주었고,
성령님도 만났는데, 그는 성령님을 푸른색의 어떤 존재로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7백만 부나 팔렸습니다. *미국사람은 아직도 독서를 하나 보네요.
이런 비성경적인 책이 수백만 부나 팔리다니요..
그래서 사람들은 천국과 지옥에 대해, 잘못된 지식을 습득하는 것입니다...
2) 또 다른 책은 캐빈 멀라키가 쓴 책인데,
저자 이름(멀라키)이 흥미를 유발하네요. 혹시 일부러 그렇게 지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에게 6살짜리 아들이 있는데, 그의 주장에 의하면,
그 아들이, 자동차 사고를 당한 후에, 천국에 여러 번 다녀왔다는 것입니다.
그의 아들 알렉스는, 사탄도 여러 번 보았고,
그 사탄의 입이 아주 우스꽝스럽게 생겼다고 책에 진술했습니다.
사탄은 입 냄새가 났으며, 코도 없고, 귀도 없고,
팔과 다리는 사람처럼 두 개가 있는데, 바짝 야위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책들이, 우리가 천국을 향해 가는 길에
혼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도움을 주기 보다는, 오히려 해를 끼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이죠.
그리고 이런 개인적 신비적 체험을 담은 책들을 보면,
또 서로 책과 책이 충돌합니다. 서로 맞지도 않습니다.
3) 천국으로 비행 Flight to heaven by Deo Black,
4) 천국에 갔다 오다 To heaven and back, a true story by Mary Neil,
5) 천국에서의 90분 90 minutes in heaven by Don Piper,
6) 천국에서의 9일 9 days in heaven by Dennis Prince,
7) 지옥에서의 23분 23 minutes in hell by Bell Wise.
이런 책들이 미국의 서점가에서 팔리고 있는데,
사람들이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뭔가 궁금하니까 사서 보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들은, 그런 책에 절대 현혹되어선 안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고, 성경에서 가르치는 바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알아야 하며,
성경보다 더 자세하고 상세한 내용은, 궁금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내용이라면, 그걸 가르쳐 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의심스러운 것은, 출판사가 뭔가 영리를 목적으로
그런 책을 기획해서 출판할 수도 있으니, 신자들은 현혹되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아무리 실화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저 데이빗 플랫이 우려하는 것은,
일부 이러한 책이 많이 팔리는 것을 보면서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들의 수준이 염려되는’ 것입니다.
이런 책들이 오히려 천국과 지옥에 대해 혼란을 일으킬 뿐인데,
거듭난 기독교인들이, 그걸 사서 본다는 것이죠.
이 사실은 적어도, <천국, 지옥, 마지막 때>에 대한
우리 기독교인들의 수준과 지식이 아주 낮다는 증거다.. 저는 이렇게 봅니다.
*교회에서 많이 언급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요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성경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개인적 체험’들이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지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결국은 책을 쓰거나, 간증을 많이 함으로써,
자신을 높이고, 자신을 홍보하고, 자기나 출판사의 이득을 취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물론 성경에도, 에스겔이나 사도요한이 천국의 환상을 보았는데요.
그들은 맨 정신으로, 건강한 상태에서, 환상을 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책들은, 거의가 죽기 직전에,
즉 의식이 가물가물한 상태에서, 본 것들이지요.
성경의 저자들은, 천국을 ‘환상’으로 보았지, 그곳을 무슨 ‘여행’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건강한 상태에서, 또한 환상을 보는 사람도 소수 있겠지요.
그런데 마귀가, 또한 그런 환상을 보여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주의해야 합니다.
*개인적 환상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으면 됩니다.
사도바울도 삼층천에 갔다 온 체험을, 시시콜콜 때마다 말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 환상과 체험을, 간증집회로 수차례 반복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봅니다.
하나님께 포커스가 맞춰져야 하는데, 자꾸 자신에게 포거스가 맞춰지기 쉽거든요.
10년에 한 번 정도는, 사석에서 말할 수 있겠지요. ‘내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그리고 성경 전체에서, 천국 환상도 아주 드물게 나옵니다.
성경에 4명의 저자가 천국 환상을 보았는데요, 이사야, 에스겔, 바울, 사도요한입니다.
그들 모두는 환상을 본 것이지, ‘임사체험’이 아니었습니다. *near death experience
그리고 신구약 성경에,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 소수 있죠.
그들 중에 아무도 간증집이나 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베다니 동네의 나사로도, 죽은 지 나흘 있다가 다시 살아났지만,
자기가 그동안 어디에 가서, 뭘 보았는지..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그의 증언이 한 마디도 나와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 아무도,
천국과 지옥을 제집 드나들 듯이 수 십 번 갔다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일생에 한 두 번 정도 뿐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매일 밤 천국과 지옥을 갔다오고,
자기가 예수님을 수 백 번 만났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른 분을 만난 것이죠.
고후12장에, 바울이 삼층천에 갔다온 경험을 잠시 언급했습니다.
거기까지가 다 였습니다. 바울이 뭐 상세하고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단 3절로 짧게 끝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천국 환상을 본 사람들은,
모두 공통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 압도적이 임재의 영광, 그 영광과 그 거룩함 앞에 눌려서
꼼짝도 못하고, 감히 말도 못 꺼내고, 입마저 꾹 다물고 있어야 하는 상태.
말을 해도 지극히 짧은 말.
이런 점이 그들 체험의 공통점이지요.
*천국을 즐겁게 이곳 저곳 여행하면서, 또한 주님과 대화를 많이 나누는 것과 다르지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께 묻습니다.
“당신은 정말 성경책을 믿으십니까?”
만약 믿으신다면,
지금 이 지구상에 70억 명이 살고 있는데,
그 중에 최소 47억 이상의 사람들이, 지옥 길에 올라서서 지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
그 중 절반은, 아직 한 번도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정말 이 성경책을 믿는다면,
그리고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영원한 삶, 1백 억년 이상의 삶을 믿으신다면,
지금 우리가 어디에 나의 시간을 사용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기껏해야 50년~1백년 동안에 중요한 일에, 우리 시간을 쏟아버리고,
여러분이 이 교회에 다니시면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는 안정적인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하신다면,
그게 정말 성경을 믿는 사람입니까?
저는, 성경을 믿는다고 하면서, 대충대충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지금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성경을 진실로 믿는다면,
우리 주님은 ‘래디컬한 희생과 선교’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성경에서요.
성경은, 긴급하고 급박한 환경 속에서,
우리에게, 그런 긴급하고 급박한 가운데 살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저 편안하게 놀면서, 쉬면서.. 안일하게 사는 게 아니라요.
▶조나단 에드워즈 목사님은, 그의 글에 의하면,
‘천국의 행복과 지옥의 고통을 정말 내가 인식했다면,
나는 최선을 다해서, 내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러니 설렁설렁이 아니라, 결사적으로 사역을 하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왜요? 천국의 영원한 행복과, 지옥의 영원한 고통을 보니까,
대충 해서는 안 되겠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런 관점을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영원 중의 한 순간에 살고 있습니다.
지금 앞으로 우리가 살 날은, 고작 수 천 년이 아닙니다.
수 십 만년도 아니고, 수 백 만 년도 아니고, 수십 억 년보다 더 긴 세월(영원)이 남아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수 십 억년 후에, 과거 지구에 살았던 우리 삶을 되돌아봅니다.
‘내가 그때 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상류층으로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걸 원할까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그때 좀 더 편하게, 더 부자로 살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런 것을 결코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 ‘그때 내가 좀 더 급박성을 갖고서,
그리스도를 위해 죽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자세로 살 걸!’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서라면, 그는 자기 목숨을 내어놓아도 좋다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자기를 강권한다고.. 그렇게 영원한 가치를 위해 살았습니다.
롬9:1~3절을 보십시오.
그는 ‘잃어버려진 자들의 구원을 위해서는, 자기의 구원을 포기해도 좋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사도바울과 같은
잃어버려진 영혼들을 위한, 열정과 사랑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한 번 자세히 보십시오. 그들이 누구입니까? 동족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바울을 핍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를 때리고, 감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자기를 돌로 치고, 죽은 줄 알고 버려두고 갔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이 있다면, 오늘날 우리도
그 호전적인 중동의 무슬림들에게도, 나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바울과 같은 자세가 있다면,
오늘 이 세상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그런 용기로 살고/사역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관점으로 쓴 책이 바로 요한계시록입니다.
복음을 전파하는데 있어서, 기꺼이 목숨을 잃을 각오를 하라는 것입니다.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그게 슬픈 일, 손해 보는 일만은 아닌 것입니다.
계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오늘 성금요일 밤에, 지금 우리는 네트웤을 연결해서
6만 명이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요.
제가 여러분께 도전을 드립니다.
‘당신의 목숨 보다,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계2:10절처럼요!
계12:11절에도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초대교회 당시 성도들의 고백이, 오늘날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보십시오. 오늘날 세상의 최고 목표는 자기 목숨을 보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생명을 더욱 높이는 것입니다. 상류층으로요.
그러나 그것은, 크리스천들에게 가장 최고의 목표는 아닙니다.
우리의 최고의 목표는, 하나님께 순종하며
심지어 자기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도, 그들은 이 땅에서 안락하게 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땅에서 ‘행인과 나그네’로서 지냈습니다. 벧전2:11
자기 집도 없이, 이리 쫓기고, 저리 떠돌아다니면서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구약시대라, 약속을 받지 못했는데도, 믿음으로 그렇게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신약을 사는 우리, 약속을 받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편하게만 살려고 한다면,
그런 사람이, 장차 영원 속에 들어가서는, 과연 어떻게 될까요?
▶그래서 그들 중 일부는, 고문당했지만, 타협해서 풀려나는 것을 거부했고,
그건 영원한 미래를 내다보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주님이 지시를 해 주셨겠죠. 그렇게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 고난을 당하라고요.
또 다른 사람들은 모욕을 당하고, 채찍질과 투옥을 기꺼이 당했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돌에 맞기도 하고, 톱으로 켜지기도 했지요.
그래서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살 곳도 마땅히 없어서, 광야로, 산속으로, 동굴로 피신하는 사람들이 되었고요.
히브리서에 이런 핍박받으면서도 믿음을 지킨 사람을 쭈욱 나열하면서
마지막에 아주 재미있는 말씀으로 끝냅니다.
“만약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하게 되지 못할 것입니다.”입니다. 히11:40
릴레이 경주에서, 마지막 주자가 끝까지 완주해야, 이기는 것이지요.
앞에서 경주를 잘 했는데, 마지막 주자가 실패하면.. 망치는 것입니다. 지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이 경주를 잘 했습니다. 히11장에, 그 예가 잘 나타나 있지요.
신약의 사도들도 경주를 잘 했습니다.
‘우리는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옳다’라며 담대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고난을 당하는 것을 기꺼이 감당하며, 영광으로 여겼지요.
그러면서 이렇게 증거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란을 겪어야 하느니라’ 행14:22
사도바울도 행20:22절에서 이렇게 말씀했지요.
‘내가 성령에 강권하심을 받아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고 하는데,
거기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감옥과 고통이 내게 닥친다 하더라도,
주님이 내게 맡기신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기까지,
나는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 레이스의 주자로 달려야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이런 담대한 주자들이 반드시 나올 것입니다.
그래서 교부 터툴리안은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지요.
“순교자의 피는, 교회를 낳는 씨다”
2천년 교회 역사상, 교회를 지키고, 교회의 순수성과 정통성을 이어온 사람들은,
예수 믿어서 크게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모두 핍박받고, 고난당했지만, 영생을 생각하며,
도망가지 아니하고, 기꺼이 자기 자리를 지킨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에도 주기철, 손양원 등의 목사님들이 계시죠. 살아서 순교적 삶을 사신 분들도 계시고요.
사실 예수님도, 예수님을 따르는 대가가 엄청날 것임을, 미리 말씀하셨습니다.
마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영원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은, 정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거죠.
행1:8절에,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명하셨을 때,
그 ‘증인’이라는 말이, 사실 ‘순교자’라는 말과 어근이 같습니다.
예수의 증인, 복음의 증인은, 필연적으로 ‘순교’를 포함하고 있는 거죠.
복음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앞으로 ‘고난’을 당한 것을, 예약하는 거죠.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네 목숨을 버리면, 도로 찾으리라’입니다.
영생의 관점에서 보면, ‘잃는 것이 유익함이라’는 말씀이 진리입니다.
내 생명이 한없이 소중한 것이지만,
주와 복음과 하나님께 충성하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영생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미안해하지 않으신다’는 말이 있잖아요.
▶말씀을 정리합니다.
그래서 지금 하루에도 수십만의 사람들이 지옥의 불구덩이로 떨어지고 있는데,
지금 당신에게 중요한 일이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교회를 유지하는 데만 혈안이 되어있습니다.
교회를 유지는 하겠지만, 세상에 사람들이 지옥으로 떨어지는 일에는
아무 관심이 없어합니다.
그런데 정작 ‘영생의 시간에 가장 중요한 일에 헌신하려면’
희생이 필요합니다. 희생 없이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그게 ‘교회(시간, 재정, 프로그램)’라도 기꺼이 희생해야 합니다.
개인과 교회의 우선순위가.. 예수님의 관심이 1위로 맞춰져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우선순위 명령은, 마28장에 명확히 나와 있습니다.
그 일에는 대가가 따를 것이라고, 마24장에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죽은 후에, 그 영원의 시간에 들어가서
당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 보았다면, 그때의 만족을 생각하신다면,
그 믿음이, 오늘날 당신을 “자유”하게 할 것입니다.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에서 오는 자괴감으로부터의 자유!
이 땅에서 죄로 잠깐 얻는 쾌락의 유혹에서부터의 자유!
사역과 선교에 헌신했을 때, 치르는 대가가 억울한 것처럼 느끼는 데서 자유!
예수님이 언제 오실지, 종말의 때를 분변하는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진정한 종말론적인 신자는, 영원eternity을 바라보며 매일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야 언제 오시든지 크게 상관없습니다.
내 삶을, 내 인생을, 진짜로 주님께 내가 드리고 있느냐.. 그게 중요한 거지
<천국, 지옥, 세상 끝>에 관한 어떤 지식을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꿈, 당신의 야망, 당신의 퇴직 후 계획, 당신의 인생, 당신의 가족, 당신의 소유 등
그 모든 것을,
‘영원’의 관점에서, 한 번 재점검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게 50년 후부터 ~ 100억년 이상 영원의 시간에, 거의 쓸데없는 일 아닙니까?
*나는 천국만 들어가면 되지, 그 외 것에는 관심 없다.. 는 사람은
어쩌면 천국에도 못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영원의 시간에, 영원히 가치 있게 남아있을 일은,
세상에 복음 전파를 위해서, 선교를 위해서
자기 삶을 드리고, 희생의 대가를 지불하는 일입니다. 웰빙이 결코 아닙니다!
이 성금요일 밤에,
이 영원한 가치를, 저와 여러분이 한 번 심각하게 고민하면서
기도로 하나님과 대화의 시간을 갖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그 ‘영적 무감각증’에서 벗어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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