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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4

행악자

LNCK 2015. 9. 7. 11:04

행악자             26:17~26                     14.09.21.출처


 

 

 

우리가 자라면서 가정교육에 대해서 많이 들었습니다.

 

사람 됨됨이가 제대로 된 분들을 보면, 가정교육이 아주 훌륭했다는 말들을 합니다.

사회에서 자기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과 가정교육과의 관계를 담은 책이 나왔습니다.

 

어떤 분은, 자기가 어릴 때 학교에서 소풍을 갈 때마다, 어머니께서 도시락을 하나 더 싸주시면서

얘야, 혹시 도시락을 못 싸오는 아이가 있으면, 이것을 주거라

매번 소풍을 갈 때마다 그랬다는 겁니다.

 

그 분은, 늘 소풍을 가면, 자기 도시락을 먹기 전에

주위에 혹시라도 도시락을 안 싸온 사람이 없는지를 늘 살피는, 그런 습관을 가졌다는 겁니다.

 

어렸을 때 자그마한 일이지만, 크면서 계속해서,

남을 배려하는 귀중한 마음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가정에서 우리 자녀들을 잘 키워서, 그들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인물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을 잘 키워내면, 그 사회는 아주 건강한 사회가 됩니다.

잘못 키워낸 사람들이 많이 모인 사회는, 많은 어려움과 짐을 안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잠언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인가? 어떻게 자녀들을 키워야 할 것인가에 대해 교훈을 줍니다.

특히 잠26장은, 신기할 정도로, 잠언 전체의 내용을 잘 요약했습니다.

 

거기에 아래 3부류의 사람 처럼 되지 말라고 교훈합니다.

 

1) “미련한 자가 되지 말라.”

미련하다는 것은 세상 지식이 부족하거나 생각이 느린 사람이 아니라,

자기만 잘났다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를 잊어버리거나,

아니면 부인하거나, 그래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학자가 깊이 연구하면 할수록, 오히려 겸손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투성이입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신앙에 대해서

자기가 다 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배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2) “게으른 자가 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행동이 느릿느릿한 게 아니라, 게으른 자란, 꼭 해야할 일을 뒤로 미루고,

의미 없는 일에 분주하게 빠져있는 사람이 게으른 자입니다.

 

게으른 자는 인생을 값지게 살지 못하고, 삶에 분명한 목적과 방향이 없기 때문에,

결국 인생을 살고 나서, 돌아오는 것은 후회뿐입니다.

 

게으름을 피지 말라. 그러면서 게으른 자에게 가서 개미에게 배우라고 말합니다.

개미가 철을 따라서 일을 할 줄 알고, 식량을 저장할 줄 아는,

그런 개미의 부지런함을 배우라고 말합니다.

 

3) 이제, 잠언26장 뒷부분에, 세 번째 부류의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는데, 오늘의 본문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겁니다. 이 내용을 아래에서 자세히 살필 것입니다.

 

가정에서 행악자를 키워내면, 그 가정만 어려운게 아니라 온 사회가 어려워집니다.

미련하거나 게으른 사람은 자기 문제이지만, 그러나 행악자는

주위의 많은 사람을 어렵게 만들기 때문에 이런 사람을 키워내지 말라는 겁니다.

나아가서 그가 속해 있는 공동체를 파괴하고, 사회에 커다란 문제를 일으킵니다.

 

여러분, 요즘 전 세계를 공포와 경악으로 몰아가는

소위 이슬람 국가 ISIS’라는 테러집단이 있습니다.

미디어에 엄청난 ISIS의 만행이 저질러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ISIS가 여러 나라에 청년들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서, 대원들을 리쿠르팅 하고 있는데, 참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서방국가에서 ISIS에 자원입대하는 청년들이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ISIS에 자원입대하는 청년들은, 무슨 생각을 갖고서 그런 일을 하는 것일까요?

 

그래서 어떤 기자가, 토론토에 근거를 두고, 한 동안 캐나다에서

탈레반멤버를 리쿠드트 했던 자이크 란 사람에게 질문을 했더니

이런 답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찾고 있는 젊은이는,

   첫째, 종교에 대해 무식하고,

   둘째, 회교에 개종을 함으로써 뭔가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는 사람이고,

   셋째, 가정에서 부모와 문제가 있어서,

   우리와 함께 있기를 원하는 그런 사람을 찾고 있다.. 이런 답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이슬람 국가ISIS에 가서 싸우고 있는 캐나다인, 영국인을 보면,

그들은 가정에 문제가 있어서, 일종의 도피를 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슬람 국가라는 결속력이 강한 집단이, 그의 대체 가족이 되어주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이슬람 국가에 전폭적으로 내 생명을 바치겠다는 서약을 하면,

그러면 모든 것을 이슬람 국가가 책임져 줍니다. 마치 가족처럼요.

 

이렇게 저렿게 해서 온 세계 사람들을 모집해서,

시리아의 전쟁터로 사람들을 다 데리고 오려면, 막중한 예산이 들어가는 겁니다. 비행기표부터 시작해서.

 

그래서 서구인들을 인질로 잡아서, 천문학적인 몸값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것도 사실 다 근원적인 문제를 찾아보면, 가정이 안정적이고,

가정에서 불만이 없고, 부모와 사는 것이 전혀 문제가 없는 사람들은,

나가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중요한 것은, 가정이 올바라야 하고요,

또 우리 부모가 먼저 내가 죽고, 내가 좀 더 주님 앞에 올바로 살면,

우리 가족이 살고, 자녀가 살고, 사회가 산다는 것입니다.

 

본문 잠언26:17 이하 에서는 악행자를 다루고 있습니다.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서, 이런 자들이 되지 말라고 말씀하는데요.

17절부터 21절까지 보시면,

 번째 부류의 악행자는, 다투기를 좋아하는 자들입니다.

두 번째 부류의 악행자는 22~28절까지,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입니다.

 

 

1. 다투기를 좋아하는 자들

 

26:17 “길로 지나가다가 자기와 상관없는 다툼을 간섭하는 자는, 개의 귀를 잡는 것과 같으니라.”

 

이렇게 이상한 짓을 하는 사람이 있어요. 다툼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길을 지나가다가, 남이 두 사람 싸우고 있는데, 뭔가 거기 매력적으로 끌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싸움이 나면, 한 복판에 자기가 있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다툼 그 자체에 이상한 매력을 느끼고, 시비꺼리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입니다.

왠만한 사람이면 피해 가는데,

다투기를 좋아하는 사람, 거기에 가서 자기가 뭔가 거들어야 되는 겁니다

 

나서지 않아야 될 때 나서고, 해가 되는 그런 언행을 함으로써 피해를 입힙니다.

왜 그럴까요? 뭔가 자기 마음속에 우쭐 대는 게 있습니다.

'내가 해결을 해야 된다. 내가 한 번 손을 보면 문제가 다 해결된다'는 심리입니다.

 

이렇게 하다가 본문에서 한 단계 더 잘못 나가면,

18절에 횃불을 던지며, 화살을 쏘아서 사람을 죽이는 미친 사람처럼 된다고 말씀합니다.

 

아니, 지나가는 사람을 봐서 괜히 공격하고, 거기에서 그런 걸 보고

이상하게 거기서 쾌감을 느끼는 그런 사람이 되는 겁니다.

 

19절에 보시면 이웃을 속입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내가 희롱하였노라.”

자기는 그냥 장난 쳐 봤다는 겁니다.

남은 속임을 당해서 화가 나고 상처를 입었는데, 자기는 그냥 장난친 것이라고,

그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20절에, 다툼이 없어지려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요?

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장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그러니까 이런 사람은, 아예 사라져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야 주위에 다툼이 없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다툼을 좋아하는 사람은, 행악자입니다.’

 

자 그럼 다툼의 반대는 뭘까요? 다툼의 반대는 화평입니다.

어디를 가나, 화평을 도모하는 사람은 정말 그 사회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살아가면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귀중하게 여기고,

사람들을 다 하나로 묶어주는 사람, 이런 사람은 꼭 사회가 공동체가 필요로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가정에서 화목을 중요시하고,

가정에 화목을 통해서 기쁨을 누리는 그런 자녀들이라면,

그런 자녀들은 사회에 나가서도, 어떻게 해서든지 화목을 중요시하고,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려는 일을 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가정에서도 다투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투지 마시고, 화목을 늘 추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한 번 돌아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 안에 혹시 다투는 기질이 있지 않는가요? 괜히 누구랑 싸우고 싶은 마음, 혹시 없으세요?

 

누가 말싸움할 상대가 없을까, 심심하다. 왜 저 사람들은 화목하게 살지?’

그래서 가서 시비 걸고, 합니다.

 

내 안에 남들이 편안한 걸 보면, 혹시 화가 나는 사람이 계십니까?

싸움을 하기를 좋아하고, 다툼을 즐기는 그런 마음이 혹시 있는가요?

 

왜 그런가 하면, 내 마음속에 뭔가 지금 남비가 끓듯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가 있고,

억제하지 못하는 그런 뭔가 불만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불만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잘 살펴봐야 됩니다.

최근에 일어난 일의 원인으로, 불만인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이것은 오래 전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아직 자기 속에 들어있다 이겁니다.

 

아직 치유받지 못한 어린아이가 자기 속에 들어있어서,

계속 자기 속에 부글부글 끓으면서, 언젠가 한 번 터지기를 원한다는 겁니다.

 

여러분, 내가 성령의 치유를 받아야 합니다. 내가 치유를 받지 못하면,

우리 가정이 편하지 못하고, 내 가정이 편하지 못하면,

우리 자녀들이 그걸 보고 자리서, 나중에 커면, 바깥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됩니다.

 

싸우는 사람은, 직장을 오래 한 곳에서 못 다닙니다.

어디를 가든지 싸우기 때문에 계속 옮깁니다. 뭘 하나 잘 되는 게 없습니다.

결혼을 해서도 불행합니다. 헤어지기도 합니다.

 

가끔 보면, 교회에서는 천사인데, 신사인데, 집에 가면 난폭하게 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말 믿기 힘들 정도이지요.

교회에서 웃으며 악수하면, 너무 신사숙녀로 보이는데,

또한 타인에게도 대단히 신사적인데, 가정에서, 자녀들앞에서 난폭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상처를 받습니다. 그러면 자라서, 그들이 바깥에 나가서,

본인도 모르게 자꾸 다투게 됩니다. 난폭하게 되는 겁니다.

 

자 그러면, 내가 만일 내 속에 아직도 해결 안 된게 있다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정말 기도제목으로 삼고, 주님께 매달리고,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하나님 치유 받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자기 문제를 드러내야 합니다. 그러면 비교적 쉽게 치유 받습니다.

 

내가 먼저 치유 받고, 내가 온전히 나아야만, 우리 가정이 사는 겁니다.

그리고 자녀가 살게 됩니다. 부모를 은연 중에 따라 하니까요.

 

 

2. 두 번째 악행자는,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자입니다.

 

22~28절에 계속해서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자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요, 겉으로 드러내서 싸우지는 않지만,

뒤에서 수군수군 대고, 온갖 문제를 일으킵니다.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데,

그걸 하는게 이상하게 그렇게 재미가 있는 겁니다.

 

22절에,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고 말씀합니다.

 

별식은, 평상시에 먹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먹으면 맛있는 음식입니다.

남의 말을 하면, 아주 순간적으로 맛이 있고, 희열을 느낍니다.

마치 가끔 먹어서 맛있는 음식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서 안 되는 것입니다. 겉보기에는 문제가 없지만,

굉장히 공동체를 파괴하고, 사람과 사람사이에 금을 가게 하는 것입니다.

 

보니까 말이죠, 남의 말 하는 것도 버릇, 습관입니다.

버릇은 계속해서 하는 것이고, 중독성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오늘은 남의 말 하지 않기로 작정하고, 하루 종일 잘 참았습니다.

그래서 잠자리까지 성공적으로 잘 참았는데, 도저히 못 참아가지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서 전화를 해서, 남의 말을 하고 자는 겁니다.

그래도 거의 자기 전까지 참은 것은, 잘 참은 겁니다만..

 

남의 말을 꼭 해야 된다면, 칭찬만 하면 됩니다. 격려하고, 좋은 이야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남의 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입이 근질근질해서, 입을 열면,

해서는 안 될 말까지 하고, 그 다음에 온갖 비밀을 누설하고,

뭐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사실과 무관한 근거 없는 내용들을 자꾸 유포해서,

많은 사람들을 어지럽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요즘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서, 댓글을 다는 문화가 있습니다.

댓글을 달고, 거기에 또 답을 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대부분 예의를 갖추어서 잘 하고 있지만,

댓글이 익명성이다 보니까,

일부 사람들은, 수준 이하로 남을 비방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에 타깃이 되는 사람들은, 정치인, 연예인 또는 유명인사들입니다.

그래서 있지도 않는 루머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루머가 돌아도 무대응으로 나가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대응하면, 괜히 말싸움만 증폭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18:21

 

우리 자녀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하느냐에 따라서

그 자녀가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적이 좋지 않은 자녀를 보고 부모가 안타까워서, ‘너는 바보야한 마디하면

그때부터 아이는 정말 바보가 되는 겁니다.

너는 참피온이야하면, 그 아이는 참피온이 되는 겁니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왜 괜한 말을 하면서 꾸미고 속이고 할까요?

그 근본적인 의도는 결국 남을 헤치고, 남을 죽이겠다는 것입니다.

함정을 파고 돌을 굴리는 겁니다.

 

그런데 그것의 반대는 무엇일까요?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습성이 나에게 있다면,

이제 나는 남을 세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내가 사람을 세우겠다는 겁니다. 생명을 넣어주겠다는 거죠.

그래서 본문에는 악행자는,

-다투기를 좋아하고,

-또 남의 말 하기를 좋아한다 그랬는데,

결국 두 가지다 공통점은, 남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좋은 것은 흠집을 말하고, 흠집을 자꾸 찾아내기 보다는,

허물을 덮어주는 자, 사람을 세워주고 사랑하는 사람이야 말로, 주님이 원하시는 제자인줄 믿습니다.

 

사실 이것은 신앙의 문제를 떠나서,

이것은 마땅히 믿는 사람이건 믿지 않는 사람이건,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마땅히 가져야할 도리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배려할 것인가요?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 한국 문화는, 이미 오래동안 유교의 좋은 가르침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공자의 가르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사상인데, *어질 인

그 한자를 보시면, 사람 인자에 두 이자입니다.

그러니까 인이라는 뜻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올바른 도'입니다.

 

그러니까 인자人者는,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올바르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

올바른 도를 행하는 자입니다.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인자입니다.

 

그러니까 그 어머니가 딸에게 소풍을 갈 때마다 도시락을 하나 더 싸주셨다는 겁니다.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아주 귀중한 마음을 불어넣어주셨기 때문에,

그 사람이 사회에 나가서도, 인정받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배려를 할 줄 아니까요.

 

늘 소풍을 가서 먼저 주위를 돌아보고, 나보다 지금 도시락이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이 없는지 먼저 남을 돌아볼 줄 아는,

얼마나 작은 것이라도, 큰 것을 가르치느냐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기독교가 들어오기 전에도,

이렇게 공자의 가르침을 통해서, 사람답게 사는 것을 배웠는데,

요즘 와서는 정말 도덕적인 공허감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왜냐면 적어도 유교정신도 다 버려버리고, 기독교 정신도 받아들이지 않다 보니까,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법을 점점 더 멀리하고 있습니다.

 

    악을 행하는 자가 되지 말라. 이걸 반대로 바꿔보면,

    지혜로운 자가 되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가 되라, 부지런한 자가 되라! 입니다.

 

 

3. 악한 일을 행하는 자가 되지 말고, 선을 행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한 번 우리 자신을 돌아볼 수 있기 바랍니다.

'혹시 나는, 악을 행하는 사람이 아닌가? 나는 다투기를 좋아하고,

또 남의 말을 하면서 남을 괴롭히는 사람은 아닌가?'

'혹시 내가 알게 모르게 남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가?'

 

우리 말을 보면, 우리의 표현 중에서 한국인의 사고 체계가 그대로 드러나는 그런 표현들이 있습니다.

영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모르는 말들인데요.

 

이런 표현 자체가 있다는 것은, 우리의 행실 가운데 이런 일들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남의 발목을 잡다괜히 트집을 잡고, 일이 되지 않도록,

느리게, 더디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런 개념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그런 일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이 생긴 것이지요.

 

딴지를 걸다딴지란, 씨름할 때 상대방을 걸어 넘기는 건데,

인간사회에서도 이미 동의를 하거나, 약속을 한 일에 대해서, 딴전을 부리는 것을 뜻합니다.

 

좀 더 저속적인 표현이지만 양해하고 들어주세요.

엿을 먹인다남에게 은근히 골탕을 먹이는 겁니다.

이런 게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게 악행입니다.

 

남의 뒤통수를 친다믿음과 의리를 저버리고,

이해타산 적으로 순간적으로 배신을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 크리스천은,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옛 모습을 버려야 됩니다.

좋지 못한 생각, 좋지 못한 방법, 좋지 못한 동기를 다 버리고,

우리는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천은 남의 발목을 잡거나, 딴지를 걸거나,

엿을 먹이거나, 뒤통수를 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4:22절에 너희는 썩어져가는 구습을 버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고 되어 있습니다.

 

생각부터가 우리는 곱고 올바라야 됩니다.

너희는 거짓을 버리고,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내가 진실한 크리스천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험담도 중독성이 있으므로 조심해야 합니다.

험담을 하면, 자기 입이 더러워지며, 계속해서 험담을 하게 됩니다.

싸움을 그칠 줄 모르고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제일 손해를 보는 사람은, 내 자식입니다.

그것을 보고 자란 내 자식은, 결코 사회에 나가서, 인정 받는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는 가정에서 화평을 선포하고,

하나님 나라가 바로 이 화평이라는 것을, 가정에서 먼저 선포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에게,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살면서 우리를 헤치는 사람들을 만나고, 악행자를 만나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원수 갚는 것을 주님께 맡기고, 화평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가장 혜택을 받는 사람은, 우리 자녀들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그걸 보고 배우며, 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소풍갈 때 깁밥 한 개 더 싸주는 것보다,

더 값진 교훈과 신앙유산을 자녀에게 남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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