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감사해야 할 사람들 눅10:25~37, 마25:35 13.02.24 출처
▲얼마 전에 제가 속이 상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새벽기도 때문에 일찍 잠을 잡니다.
10시쯤이면 잠자리에 들어 한참 자고 있는데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습니다.
저는 평생 동안 24시간 휴대폰을 늘 옆에 두고 삽니다.
언제 어떤 일로 교인들이 전화를 할지 모른다,
급한 일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늘 휴대폰을 옆에 두고 살아갑니다.
목사로서 당연한 일입니다.
제가 후배목사들에게도 늘 강조하는 말이
‘목사는 평생 언제든지 연락이 되는 곳에 있어야 하고
두세 번 벨이 울리면 전화를 꼭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목사들은 하루 24시간을 긴장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밤중에 휴대폰이 울리자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누가 죽었거나, 사고가 났거나 급한 일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고 전화를 받았는데
평소에 듣지 못하던 어떤 아주머니의 목소리였습니다.
“목사님,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제가 30년 전에 어떤 공장에 다니던 누구입니다.”
제가 가물가물 생각해보니, 기억이 나는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일로 전화를 했는가 물었더니, 지금 자기 아들이 경찰서에 잡혀 갔는데
목사님이 좀 알아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30년 넘게 연락이 없던 사람이, 한 밤중에 전화를 해서
경찰서에 잡혀 간 자기 아들을 좀 빼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그 말을 듣고 황당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런 눈치를 챘는지 그 아주머니가 말하길
“갑자기 어려운 일을 당하니, 목사님밖에 생각이 나지 않아 전화를 드렸습니다.” 하였습니다.
사실 제가 그런 전화를 받는 일은 자주 있는 일입니다.
평생 연락도 없던 사람이 갑자기 전화를 하든지, 찾아오든지 하면
어려운 일이 생겨 저에게 이런저런 부탁을 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사람들이 한결 같이 하는 말이
‘어려운 일이 생기니까 목사님 생각이 났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려운 일만 생기면 저를 찾아오거나 전화를 합니다.
그런 일을 당할 때마다 저는
‘아니 이 사람들이 좋은 일이 있을 때는 한 번도 연락을 안 하다가
왜 어려운 일만 생기면 나를 찾아오는가?’ 하는 섭섭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제가 산업선교회를 하면서 수천수만 명의 어려운 여성노동자들과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를 찾아오는 사람이 없습니다.
제가 어떤 때는 내가 학교에서 학생을 가르쳤다면,
그 많은 사람 중에 때로는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텐데..
하는 생각에 허망할 때가 있습니다.
제가 평생을 수고하고 애를 쓰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돕는 삶을 살았는데
은혜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제게는 여간 섭섭한 것이 아닙니다.
평상시 그런 섭섭한 마음이 있는데, 그날도 곤히 자던 저를 깨운 것도 화가 나고
또 어떻게 자신들의 이해관계에서만 나를 찾는가..
하는 그 사람의 이기적인 마음에 화가 났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한 밤중에 그 아주머니에게 화를 낼 수도 없는 터라
나는 경찰서에 아는 사람도 없고, 연락할 사람도 없다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아주머니께서 “죄송합니다. 그래도 어려운 일만 생기면
목사님 생각이 나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습니다.
▲시계를 보니 새벽 한 시 삼십분쯤 되었는데 생각할수록 화가 났습니다.
평소에 제가 새벽기도를 하기 위해 3시 30분에는 일어나는데
이제 다시 잠이 오지 않으니까 새벽기도는 어떻게 하는가,
또 잠을 못자면 졸려서 하루 일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화났습니다.
그러나 더 화가 나는 것은, ‘사람들이 몰염치해도 너무 몰염치하다,
은혜도 모르고 자기 아쉬울 때만 시도 때도 없이 전화를 하다니
내가 자신들 어려움을 평생 도지(소작) 맡은 줄 아는가?’
‘옛날에야 전문적으로 어려움을 돕는 일을 하였지만, 지금은 할 일이 따로 있는데...
어떻게 사람들이 이럴 수가 있는가?’ 하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시시때때로 평소에는 소식조차 없다가 아쉬운 일이 있으면
“저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하고 연락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기억력이 좋아서 그 사람들의 이름까지 다 기억합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 인생이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가,
어떻게 좋은 일이 있다고 찾아오는 사람은 없고 어려운 일만 있으면 찾아와서
부담을 주는가?’ 하는 생각에 저 자신에 대해서 화가 납니다.
▲사실 제 인생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세상에서도 어떤 사람이 좋은 자리가 있으니 맡아달라고 찾아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곤란한 일이 있을 때 저를 찾아옵니다.
몇 년 전에 용산에서 철거문제로 농성을 하다가 5명이 불에 타서 죽었는데
정부와 여러 가지 해결하지 못한 일이 있어서 1년 가까이
이 사람들의 장례를 지내지 못한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보통 용산참사라고 말합니다. 그분들이 12월에 죽었는데
반년이 훨씬 지나 (2012년경) 6-7월쯤 되었을 때, 이 일을 맡을 사람이 목사님 밖에 없다면서
사람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제가 한편으로는 저를 알아주는 것이 고맙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떻게 이렇게 어려운 일만 있으면
자신들이 처리하지 못하고, 나를 찾아오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난해에는 부산 한진중공업에서 김진숙이라는 여성노동자가 타워 크레인에 올라가서
몇 달간 항의를 하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사람들이 저를 찾아와서 이 일을 맡아달라고 하였습니다.
자신들이 할 일인데 하지 못하고, 김진숙이라는 사람이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데
저한테 찾아와서 이런 부탁을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쌍용자동차 노사간에 큰 충돌이 있었을 때도
사람들이 저를 찾아와서 목사님이 해결해달라고 부탁을 하였습니다.
▲제가 그런 부탁을 받을 때마다
‘좋은 자리는 자신들이 다 차지하고,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은 왜 다 나에게 맡기는가?’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에게 희생하라는 것입니다. 고생하라는 것입니다.
그런 일은 손을 대보아야 욕을 먹기 십상입니다.
‘그런 궂은일은 왜 하필이면 나에게 맡아달라고 하는가,
내 인생은 도대체 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또 사실 그런 일들을 애써서 해결하고 나면, 자기의 공이라고 나타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인생을 살면서 최근에 이르러 뼈저리게 깨닫는 것이, 사람이 공적도 빼앗아 갑니다.
공적도 훔쳐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도둑질이 돈만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해놓은 일을 자기가 한 것처럼
가져가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이것이 굉장히 속이 상한 일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제 마음속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딴 놈이 번다더니.. 그런 경우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저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 사람들, 옛날 노동자들이나 후배들이나
평상시에 저를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한테 온갖 욕을 다하는 사람들입니다.
변절자라고도 하고,
옛날에는 가난하게 살더니 요즘에는 너무 잘산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평상시에 욕을 하다가, 어려운 일이 있으면 저를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더 화가 나고 속이 상할 때가 있습니다.
욕을 하려면 끝까지 하고,
어려울 때 찾아오려면, 평상시에도 존경심을 가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제가 평생을 살면서, 지금까지 좋은 자리를 차지해본 적이 없습니다.
좋은 자리에 초청을 받아본 적도 없고
제가 평생을 살면서 해온 일은 다 제가 시작해서
저 스스로 만들어서 해온 일이었습니다.
물론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을 했지만, 사실 그 자리가 좋은 자리가 아닙니다. *아마 MB정권 때
아무도 안 맡으려고 하니까 저한테 온 것입니다.
그 자리는 욕먹고 원수지는 자리입니다.
돈도 생기고 권력도 생기는 좋은 자리라고 하면, 저한테 까지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제가 그렇게 어리석고 바보처럼 한평생을 살았습니다.
최근에도 어느 시민단체에서 저에게 어려운 책임을 맡아달라고 해서
‘제가 그런 좋은 자리면 당신들이 하라, 이제는 나도 지친다’고 화를 냈습니다.
◑본론
▲그런데 제가 요즘 크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나를 귀찮게 하고 속상하게 하는 사람들이, 사실은 고마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나를 힘들게 하고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신 축복이고,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으면, 제가 한번이나 선한 일을 하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저도, 다른 사람이 말하길 머리가 좋고 계산이 빠른 사람이라고 하는데
제가 자발적으로 선한 일을 하고 좋은 일을 하고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할 사람이었겠습니까?
그 사람들 때문에 제가 억지로 좋은 일을 한 것입니다.
▲세상에서 자발적으로 자기 돈을 들여서 좋은 일을 하는 것,
다른 사람에게 욕을 먹어 가면서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구레네 시몬의 경우처럼, 할 수 없이 억지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선한 일을 자발적으로 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선한 일을 하는 것, 좋은 일을 하는 것 억지로 하는 경우가 많고
상황에 몰려서 하는 경우가 많고
때로는 체면 때문에 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체면 때문에 상황에 몰려서, 억지로 할 수밖에 없었던 선한 일, 좋은 일이
나중에는 좋은 일을 한 사람이라는 결과로 돌아오게 됩니다.
다시 말해 그 사람이 나에게, 좋은 일을 하게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지난날 내가 한 좋은 일은 억지로 한 일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좋은 일도, 사실은 체면 때문에 억지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지나놓고 보면 그 사람 때문에, 내가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입니다.
결국 애먹이는 그 사람이, 내가 좋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참 고마운 사람이라는 깨달음을, 제가 최근에 갖게 되었습니다.
▲제가 감옥을 네 번 갔는데, 감옥가고 싶어서 자발적으로 갔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습니다. 자발적이기 보다 억지로 할 수 없이 갔습니다.
무슨 좋은 곳이라고 나서서 갔겠습니까?
억지로 할 수 없이 갔고 그래서 운명에 대해 한탄했고
나를 그런 상황에 몰아넣은 사람들을 원망했습니다.
감옥에 가서 많은 고생을 했지만
지금은 ‘내 평생에 나라를 위해서 좋은 일을 했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중요한 일을 했다’는 자랑스러운 업적이 되어
누구를 만나도 떳떳합니다.
자발적으로 원해서 그런 삶을 산 것이 아니라
나를 억지로 그 상황에 몰아넣은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그 사람들을 원망했고 그 사람들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그 사람들 때문에 대단한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저에게 ‘민주주의를 위해서 많은 고생을 했다’는 말을 할 때
양심에 찔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제가 상황에 몰려서 갔다고 고백하지 않고
그냥 내가 훌륭한 사람인척 지냅니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억지로라도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했던 그 사람이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고 은인인 것입니다.
▲사실 저는 그런 것을 깨닫지 못하고 그 사람들을 원망했습니다.
사람들에게 내가 얼마나 많은 은혜를 베풀었는데,
그 사람들이 왜 은혜를 알지 못하고 고마워하지 않고 감사하지 않고
왜 한 번도 찾아오지 않는가 섭섭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 사람들이 감사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제가 오히려 감사해야 할 사람인 것입니다.
그 사람들 때문에 좋은 일을 하게 되었고,
그 사람들이 나에게 그런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기 때문에
제가 인생을 잘 살 수 있었고, 좋은 일을 하면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내가 그 사람들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난날들 왜 내 주위에는 나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은 없고
내가 도와주어야 할 사람들, 힘이 없는 사람들만 있는가..
불평하고 원망하고 살았던 제가
얼마나 어리석고 잘못된 사람인가 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제 인생길에서 만난 저를 힘들게 했던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
억울한 사람들, 힘이 없는 사람들이야말로
제 인생에 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선한 일을 하며 살 수밖에 없도록
제 인생을 선한 길로 인도해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감사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읽은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우리가 잘 아는 말씀입니다.
보통 우리가 당연히 상식적으로 강도 만난 사람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사마리아 사람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냥 지나갔습니다. 이 사람도 그냥 지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냥 지나가지 않고 멈추어 서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기름과 포도주로 상처를 싸매어 주었습니다.
다시 강도가 나타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
자신이 사용할 기름과 포도주를 사용하고 주막으로 데려가 돈까지 주었습니다.
이런 고마운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강도 만난 사람이 깨어나면 사마리아 사람에게 “목숨을 건져주어 감사합니다.
평생의 은인으로 삼겠습니다.” 이렇게 말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바꾸어서 생각해보면,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강도를 만난 사람이 아니라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주었던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 선한 사마리아 사람은 그가 행한 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만나지 못했으면, 그 사마리아 사람은 구원받지 못했을 지도 모릅니다.
이 사람이 구원받은 것은 강도 만난 사람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교회가 다니기 어려운 교회라고 말합니다.
주일이면 십일조나 주일헌금만이 아니라 이주노동자 헌금, 이산화탄소 헌금,
베트남 송아지 보내기 헌금, 사랑의 도시락 헌금, 북한 어린이 돕기 헌금 등
여러 가지 헌금을 챙겨야 합니다.
이 일로 여러분의 주머니가 비고 가계에 부담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주일이나 수요일에 예배드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토요일 새벽에 나와서 봉사해야 하고, 주일에는 늦게까지 이주노동자를 위한 봉사를 합니다.
이주노동자 선교 20년 째 하고 있는데, 이 사람들 때문에 꼼짝을 할 수가 없습니다.
토요일마다 <사랑의 도시락> 봉사를 하지만,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른 교회를 다니면 편안하게 다닐 수 있고, 힘들게 봉사를 하지 않아도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그렇게 안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 사람들도 늘 마음에 부담이 될 것입니다.
봉사를 하는 사람들 자발적으로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부득이해서 하는 사람도 있고, 체면 때문에 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최근에 <사랑의 도시락> 봉사에 장로님들이 다 나오시고 있습니다.
물론 자발적으로 나오시겠지만, 체면 때문에 나오시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제가 한편으로는 미안하기 합니다.
그러나 체면 때문에 나오신다고 해도, 이것은 하나님의 큰 축복입니다.
이주노동자들을 섬기는 일 힘든 일이지만
이 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서 하나님께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 너희가 나를 맞아주었고 나를 보살펴주었다’고
큰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마25:35
이 사람들이 아니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가서 하나님 앞에 섰을 때
그런 칭찬을 어떻게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주노동자 선교는 사실은 짜증나고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일입니다.
제가 때로는 이제는 다른 곳에서도 이들을 돌보는 곳이 많으니까
우리 교회에 안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그네 되었을 때 왜 돌보지 않았느냐?’고 하시더라도
‘우리 교회에 안 오셔서 못했다’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한 20년 했으면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하는 것이 있습니다.
지금 이주노동자 숫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살아갈 방법이 없었습니다.
어디 가서 병을 고칠 곳도 없었고 말 붙일 곳도 없었습니다.
상담을 받을 곳도 도움을 받을 곳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 곳에 많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 안 와도 됩니다.
우리 도움을 받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줄어듭니다.
이주노동자들을 섬기고 싶어도 섬길 수 없는 날이 올 것입니다.
저는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억지로라도 짜증스럽더라도 이 일을 하지만
이들이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 가서 큰 칭찬을 받을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입니까?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고맙다고 하지 않아서 화가 날 때가 있지만
바꾸어서 생각해보면, 정말로 고맙다고 할 사람은 우리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서 칭찬을 받을 수 있는 일을
우리가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니
정말로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베트남에 송아지를 보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농촌에 송아지를 준다고 하면 누가 고마워하겠습니까?
시간문제입니다. 우리에게 필요 없다고 말할 때가 곧 올 것입니다.
북녘의 어린이들을 돕고 있지만, 북녘의 어린이들이라고 늘 그렇게 살지 않을 것입니다.
언젠가는 우리가 돕고 싶어도 필요 없다고 할 날이 올 수 있습니다.
사실 가난한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있는 것이 참으로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들을 통해서 그들을 돕는 것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 힘없는 사람이 주위에 있다는 것은
힘이 있는 사람, 권력자들에게는 고마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힘으로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그들이 만들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밤중에 전화하는 것은 짜증내고 불평을 할 일이 아니라
저에게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신 기회입니다.
짜증내고 원망하고 불평할 일이 아닙니다.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이, 내 주위에 있다는 것은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교회가 있고 봉사의 기회가 있다는 것은 최고의 축복입니다.
갈릴리교회가 있어 봉사할 기회가 있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곽 목사님 말씀 제가 여러 번 여러분에게 말씀드린 기억이 있습니다.
제가 평생에 곽목사님을 만나면 꼭 무엇을 달라고 했습니다.
저도 염치가 있으니까 곽목사님에게 하도 미안해서 하루는
“목사님, 제가 만나자고 전화드리면 부담되시죠?
저 사람이 또 뭐달라고 할까 가슴이 덜컹 내려앉으시죠?” 라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곽목사님이 재미있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는 말이야. 인목사가 무엇을 달라고 할 때 너무도 기쁘고 즐거워.
이 돈을 바르게 쓸 수 있는 것이 쉽지 않은데
인목사는 이 돈을 바르게 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하시는 것입니다.
그냥 훌륭한 목사님이 아닌 것입니다. 보통 교회 목사님 같으면
‘이제 그만 좀 전화해라. 이번에는 또 무엇을 얼마나 달라고 할까 가슴이 덜컹한다.’고 했을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옆에 있을 때 또 무슨 일을 부탁할까 가슴이 덜컹해서
못 본 척 하면 안 됩니다. 가난한 사람이 우리 주위에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일을 하라는 축복의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난한 사람을 보면 기뻐하십시오. 도와주어야 할 사람이 생기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선한 일, 좋은 일을 할 기회를 주신다,
축복을 받을 기회를 주신다고 생각하고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누구를 위해서 돈을 쓰고 도와주고 시간을 낼 수밖에 없는 경우가 생기면
원망하고 짜증내지 말고 못 본 척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좋은 일을 할 기회를 주신다고 생각하고,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냥 두면 그런 좋은 일을 할 사람이 아니니까
억지로라도 그런 좋은 일을 하게 해서
하나님 나라에 가서 큰 상급을 받을 수 있도록 축복의 기회를 주신다고 생각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부담스러운 교회이지만, 우리 교회를 만나서
하나님나라에서 큰 상급을 받을 수 있는 봉사의 기회,
축복의 기회를 주신 것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 가운데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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