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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자가 깨달은 사명

LNCK 2015. 8. 28. 08:24

흩어진 자가 깨달은 사명                 8:1~6                    출처보기

   

서론

 

이 세상에 고난은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가 다같이 겪는 대로,

매일 같이 느끼는 대로 고난이 분명히 있습니다. 여러모로 말입니다.

이 고난의 성격을 우리가 바로 분석해야 합니다.

 

벧전2:18절 이하에 보면, 거기에 암시된 바가 있습니다. 고난이 3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 죄 때문에 당하는 고난, 어디까지나 그건 내 죄 때문입니다.

내가 잘못한 것, 내가 젊었을 때 잘못한 것, 내가 인간관계에서 잘못한 것,

내가 사회에서 혹은 가정에서 부모님께 잘못한 것,

 

모든 잘못한 것으로 인해서, 내가 오늘 고난을 당하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내 죄 때문에, 내 허물 때문에, 내가 당하는 당연한 고난입니다.

이것이 첫째이고,

 

두 번째, 애매한 고난이 있습니다. 왜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왜 이렇게 까지 고난을 당해야 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만 아시는 고난입니다. 어쩌면 먼 훗날에나 알 수 있지요.

현장에서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왜 이런 고난을 당해야 하나.. 잘 모르는 애매한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생각하고 참으면, 은혜가 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세 번째 고난은, 의를 위한 고난입니다. 자원해서 당하는 고난입니다.

의를 위하고, 선을 위하고, 사랑을 위해서, 높은 뜻을 위해서,

자신해서 당하는 그런 고난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자체 3가지를 옳게 분석하기가 참 어렵고,

이것을 똑부러지게 설명하기는 사실 어렵습니다.

그러나 좀 더 높은 뜻을 생각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9장에 보면, 참 어려운 수수께끼가 나옵니다.

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면서부터 시각장애인입니다.

이 사람이 눈앞에 딱 나타나는 순간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이 사람이 장님 된 것이 뉘 죄 때문입니까?

 

자 생각해 보세요. 본인의 죄라면, 나기 전에 무슨 죄가 있으며,

또 부모의 죄라면, 본인은 억울하지 않습니까.

이 사람이 장님 된 것이 뉘 죄 때문입니까 하고 물어봅니다.

 

예수님께서 참 우주적인 대단히 신비롭고 중요한 대답을 하십니다.

본인이나 그 부모가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죄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이 소경으로 태어난 그것과 관련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

 

원인이 과거에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원인이 놀랍게도 미래에 있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그 위대한 일을 이루기 위해서,

저 사람은 40년 동안 장님으로 태어나서, 오늘까지 고생을 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대단히 중요한 대답입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일!

 

 

본론

 

오늘 본문에 보면,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흩어진 사람들특별한 호칭입니다.

안정된 생활에서 떠나서, 강요된 현실로 몰려가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초대교회는 성령충만한 교회입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다음에,

오순절 성령이 강림해서, 교회가 부흥되고 은혜로 충만한 상태였습니다.

 

, 한 번에 3천명이 회개하고 예수님께 돌아오는, 베드로의 설교의 위력도 있었습니다.

온 예루살렘에 이렇게 은혜로 충만한 오순절 거룩한 교회에

하필이면 왜 핍박이 있어야 합니까?

왜 고난이 있어야 합니까? 왜 순교가 있어야 합니까?

 

그들은 스데반이 순교당한 다음에, , 그 스데반을 죽인 사람들이

계속해서 예수 믿는 사람을 다 잡아 죽이려고 발악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서 집을 떠나서 난민이 됩니다.

흩어진 사람, 이건 다른 말로 난민입니다.

 

이건 강요된 현실입니다. 왜 이런 일이 있어야 합니까?

은혜 충만한 교회인데, 왜 그 속에 핍박이 있고, 환란이 있고,

흩어진다고 하는 이런 괴로운 사건이 있어야 하는 겁니까?

 

초대교회에 스데반이 순교한 것도, 이해하기 어렵고,

그로 인해서 그 여파로 계속 핍박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끌려가서 고생을 하게 되고, 순교하게 됩니다.

왜 이런 일이 있으며, 아니 누구 때문에 이런 일이 있느냐고 끝없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 고통에서 헤매고 있을 때, 이제 해답을 얻어야 합니다.

본문에는 귀중한 해답이 나와 있습니다.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의 말씀을 전할새8:4

 

흩어진 사람들이 이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깨닫게 됩니다.

아니, 좀 더 나아가서, 왜 흩어지게 되었는지, 이 고통이 있어야 했는지 깨닫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놀라운 신비로운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이 깨달음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고통을 당할 때, 물론 죄가 생각이 나지요. 내 잘못인 것도 압니다.

세상에 왜 이런 일이 있어야 하나, 왜 내게만 있어야 하나? 여러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만,

우리는 결정적인 시간에, 마지막 깨달음을 가져야 합니다. 왜 이 사건이 여기에 있느냐고요,

 

선교적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저들이 흩어졌다.. 아주 중요한 겁니다.

 

여러분 행1:8절에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땅끝까지! 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예루살렘 교회 사람들은 땅끝까지 갈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요?

 

여기가 좋으니까요. 예수 믿고, 충만하고, 이적이 나타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사건들 속에서, 안주하려고 했습니다.

평안하려고 했습니다. 만족하려고 했습니다.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이제 핍박이 있습니다. 꽝 하고 순교자가 나옵니다.

또 모든 사람을 잡아서 감옥에 집어넣습니다. 이때 저들은, 도망을 하게 됩니다.

난민이 됩니다. 그래서 먼저는 흩어졌다 하는 말은, 고향을 떠났다는 말이죠.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

이 떠나라는 말이 참 중요합니다.

 

우리를 어딘가 모르게 안일하고 안주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평안하게 사는 것.. 그것만 바라지요.

나도 그렇게 되고, 자식도 그러기를 원하는데요, 평안함, 만사형통,

 

그러나 그렇게 바라는 평안함은, 우리에게 없습니다.

그리고 고향을 떠나도록 강요하십니다.

 

고향을 떠나도록, 안일한 생활에서 떠나도록,

하나님은 강권적으로 역사하십니다.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귀한 선교적 의미가 들어있습니다.

 

여러분, 고향을 떠나는 마음,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

이지 고잉 easy going 편안한 것, 순탄한 것..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고향을 떠나는 마음!

 

그 다음에 고향을 떠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낯선 곳으로 가게 됩니다. strange land에 가서, 낯선 사람들을 만나야 합니다.

 

가고 싶지 않은 곳으로 갑니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원치 않은 현실 속에 들어갑니다. 강요된 현실 속에 삽니다.

 

여러분, 여기에 선교적 의미가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는 함께 생각해 봅시다.

조금 우리는, 생각이 좁아요. 그래서 언제나 우리가 흔히 말할 때,

단일민족 백의민족! 하고 자랑했죠?

 

요즘은 다문화가족입니다, 여러분!

그 단일민족이란 게 좋기는 한데, 속이 좁을 수 있습니다. 마음이 협소할 수 있어요.

세계로 뻗어나가야지요.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낯선 곳으로!

낯선 사람을 만날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자녀교육을 시킵니까? 낯선 사람,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을 보고도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이걸 할 줄 알아야 되는데,

전부 마마보이가 되어서 아무도 만나지 못해요.

이리 도망 다니고, 저리 숨어 다니고..

다들 우울증이나 자폐증 비슷하게 되어 버릴 수도 있습니다.

 

이게 바로 기가 막히는 겁니다. 헤어나질 못합니다. 우리가 좀 약점이 있어요.

확실히 우리에게는 파이오니아십/개척정신이 이 부족해요.

 

고향을 떠난다는 것은 모험입니다. 신앙은 모험입니다.

낯선 곳으로 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게 아주 중요합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종종 합니다.

왜냐하면 제가 625전쟁 때문에 결국 남쪽으로 오지 않았습니까.

생전 처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어요.

그런 곳에 와서 이렇게 이렇게 살아오면서 느끼는 겁니다.

 

제가 만일 전쟁이 아니었다면, 제가 고향을 떠났을까?’

고향을 못 떠나고, 거기서 뱅뱅 돌았다면, 내가 무엇이 되었을까?’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낯선 지방으로 보내져야 합니다. 보냄을 받아야 합니다.

이방사람이 되는 거지요.

 

유대인들은 그렇게도 편견이 심해서,

성경에 보면 재미있는 얘기가 있어요. 사마리아 땅을 지나가기 싫어서,

유대인들은 갈릴리로 갈 때, 멀리 돌아서 갔어요.

이 불결한 땅을 지나가지 않는다.’

 

그러다가 핍박이 있으니까 할 수 없이 사마리아로 들어갔죠.

여러분, 이걸 생각해야 합니다. 핍박이 낯선 사람을 만나게 해 줍니다.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것을 경험하게 해 줍니다.

 

협소한 자기 중심적 생각을 넓히게 해 줍니다. 이걸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낯선 곳으로 보냄을 받고, 낯선 사람들을 만나서,

거기서 새로운 역사를 창조합니다.

 

그런가하면, 그들은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8:4

왜요? 이젠 가정은 떠났고, 직업도 떠났고, 할 일이 없습니다.

이젠 전도밖에 없습니다. 강요된 현실속에서 그들은 전도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여기 아주 중요한 일이 있어요.

이렇게 핍박과 환란속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메시지는, 절대로 기복사상이 아닙니다.

 

이렇게 피난민이 되어서, 고생을 하고 다니면서, 자 상상해 보세요.

예수 믿으면 잘 삽니다. 부유하게 됩니다그러면 사람들이 뭐라고 그러겠어요?

 

이렇게 핍박속에서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메시지는 절대로 번영신학이 아니에요.

순수한 영적인, 그리고 천국 중심의 복음을 전하게 되요.

예수 믿고 구원받읍시다. 예수 믿고 천국에 들어갑시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 믿으면 잘 삽니다. 예수 믿으면 병도 낫고, 출세합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교회가 안 되는 겁니다.

 

이 생각을 버리게 하는 것이 바로 핍박과 환란입니다. 핍박과 환란!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렇게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면서 복음을 전할새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순수한 복음이었어요.

협소한 민족주의에서 벗어나서, 유대적인 우월감에서부터 벗어나서,

온전한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잊지 못할 중요한 제 제자 한 사람이 있습니다.

중앙의료원에서 원목으로 환자들을 위해 전도하며 오래 시무하시다가

소천하셨습니다. 그 목사님은 특별한 분입니다.

 

그분은 폐결핵이 잘못 몸에 번져서, 무려 병원에서 3년동안 입원해 있었습니다.

그동안 수술을 10번이나 받았습니다.

받고 또 받고 하면서, 마지막에 3년 후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냉동고에 갖다 넣어야 되는데, 냉장고가 꽉 차서 들어갈 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내일 아침에 시신 하나 나가면, 그 자리에 넣을 생각으로, 그냥 냉동고 앞에 두었어요.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가 보니까, 그 분이 살아났어요.

그래서 이후에 건강해졌어요.

 

아 내가 이렇게 구원받았는데, 내가 이 목숨을 가지고 뭘 할까? 전도해야지.

바로 이 환자들을 위해서 전도해야지.’

 

, 이분은 원목으로 최고입니다. 원목회 회장까지 했습니다. 왜요?

이런 환자가 있었어요. ‘아이고 목사님, 저는 3개월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나는 3년 있었어요.’

 

환자가 나는 이렇게 아프고 외롭고..’ 이러면

나는 냉동고 앞에까지 갔다 왔어요.’

 

그 누구도 이 분 앞에서는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가 가서 설교만 하면 전도가 됩니다.

그래서 환자들을 위한 선교를 성공적으로 하던 그런 목사님이 한 분 계셨습니다.

 

여러분, 환란과 핍박, 흩어졌다는 것, 이 사건이 굉장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이게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위대한 역사를 있게 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 말씀하시기를,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으라.’

 

그런데 우리가, 순순히 자기가 자기를 부인할 수 있습니까?

부자가 가난한 척 할 수 있습니까?

아는 자가 무식한 사람처럼 살 수 있습니까?

넉넉하면서, 스스로 가난해진 마음으로 살 수 있습니까?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내가 나를 부인하기가 어려운데, 하나님이 하십니다.

 

그래서 유명한 말씀이 있잖아요.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처럼 어렵다.’

 

그러자 제자들이 그러면 누가 들어가겠습니까?’

예수님은 간단하게 대답하십니다. ‘하나님은 하시느니라.

 

무슨 뜻입니까?

이 부자를 낮추고 낮추고 낮추어서 바늘구멍으로 쏙 들어갈 때까지,

하나님은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십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것, 하나님이 하시고요,

내가 게으른 것, 하나님은 해결하시고요,

내가 약한 것, 하나님은 강하게 하시고요,

그래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위대한 역사를 창출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자기를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핍박과 환란을 통해서,

다시 말하면 실패와 질병을 통해서, 강요된 현실을 통해서

하나님은 위대한 역사를 이루십니다.

 

여러분, 다시 한 번 봅시다. 흩어진 자가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하더라..

흩어진 자들이 두루다니며 복음을 전하더라.

 

여기에 추가하고 싶어요.

흩어진 사람들이 이제야 비로소두루다니며 복음을 전하더라.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 오늘 거룩한 주일을 당해서,

저희들이 주님 앞에 모였습니다.

우리 앞에 어려운, 알 수 없는 고난과 핍박과 어려움이 많습니다만,

이것들이 왜 있어야 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주께서 여기까지 인도하셨으며, 또 내일을 통해서 위대한 역사를 이루어자 하시는,

하나님의 귀한 섭리를 깨닫게 하시고, 고난을 통하여 환란을 통하여,

핍박을 통해서, 이루시는 주님의 선하신 뜻을, 밝히 알고,

흩어진 사람들이 두루 다니며 복음을 전한 것 같이,

우리가 우리에게 향한 하나님의 귀한 선교적 사명을, 다 하게 도와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