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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것과 아는 일

LNCK 2016. 1. 30. 18:26

믿는 것과 아는 일                  4:13-16                          출처보기

 


수년 년 외국의 한 동물원에서 어떤 사람이 성경의 다니엘서를 읽고

자신도 다니엘과 같이 되기 위해서 사자 우리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렇게 외쳤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제가 사자 앞에 있지만

분명히 하나님께서 저를 구해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사자에게 물려 죽을 뻔 하다가 겨우 구출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과연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서 이 사람이 사자에게 물린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이 하나님을 시험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참 의미를 알지 못하면 이 사람과 같이

무지해서 하나님을 시험하거나, 자신의 믿음을 사람들에게 과시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성도의 삶이란 사자 우리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그러한 삶이 결코 아닙니다.

 

이러한 사람은, 구원 받고 천국을 가는 것만을 신앙의 전부로 생각합니다.

 

분명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행하여야 할 성도의 삶이 있는데

이것은 무시하고 오로지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얻은 구원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구원만 강조한 신앙의 문제는, 구원 받는 것만을 강조하다보면

그 외의 것에 대해서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천국을 가기 위해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단지 천국만 가면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외로 우리 주변에도 이러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문제도 구원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에

구원받은 백성으로서의 삶을 고민하지 않으니

교회와 믿는 자들이 세상에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해 우리에게 이에 대한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 말씀은 우리가 믿음만 강조할 것이 아니라

믿음과 더불어 주님을 알기를 힘쓰고, 온전한(, 성숙한) 삶이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믿음과 더불어 삶과 그 행위도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삶에 균형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사람이 건강하다는 것도 몸의 균형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뜻이며

반대로 병들었다는 말은 몸의 균형이 깨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아서 조화와 균형이 잘 맞아야 건강한 신앙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균형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균형을 어떻게 잘 이룰 수 있는가요?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으며 이것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계신데

바로 성령께서 이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을 온전히 의지할 때에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와 삶도 균형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인격의 영이시며 균형을 이루게 하시는 영이시며

회복시키시는 영이 되십니다.

 

그런데 이 균형이 우리에게 잘 잡혀 있으면

내적으로 자신감이 충만해지며 믿음과 소망이 솟아납니다.

 

그런데 13b절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신앙이란 무엇으로 말할 수 있겠습니까?

 

신앙이란 단순히 믿는차원을 뛰어넘어 보다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깊게 하고,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이란 단순히 우리가 믿고 천국 가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 것을 뛰어넘어 예수님을 따르는 것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

내 삶을 희생하고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따라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원하기는 이러한 자리에까지 이를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그래서 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이 말씀은 신앙이 구원과 천국을 얻는 일회적인 것만이 아님을

더욱 분명히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참된 신앙은 사랑 안에서 참된 일을 하며

주님의 모습을 따라 자라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과정보다는 결과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주어진 것에 감사하지 않고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불평하고 원하는 것만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하게 여기시는 분이십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공하는 것보다

어떤 목적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성숙해지는 것을 더욱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구원받은 것으로만 만족하지 말고

그 신앙이 날마다 업그레이드 되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예배와 기도생활, 헌금생활, 전도와 봉사생활 뿐만 아니라

모든 생활이 더욱 성숙해져야 합니다.

 

원하기는 그러한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바로 이러한 자리에 이르기 위해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첫째로 목표가 분명해야합니다.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라고 말합니다.

 

또한 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고 말씀합니다.

 

즉 삶의 목표를 주님께 두고, 주님처럼 생각하고, 주님처럼 살고,

주님처럼 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고 천국 간다는 것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라 이 땅에서 주어진 사명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원하기는 이 목표가 분명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두 번째로는 요동하지 말아야합니다.

 

14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어린아이는 순수하지만 반면에 연약하여 작은 유혹에도 잘 넘어 갑니다.

그래서 어린아이와 같은 사람은 목적한 곳을 끝까지 가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누가 뭐라 하더라도 무슨 말을 듣더라도 요동하지 않습니다.

 

결국 세상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원하는 것을 이루게 됩니다.

 

우리는 어떠한 일에도 흔들리거나 요동하지 않으며

기도와 감사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세 번째로는 사랑으로 행동해야합니다.

 

15-16절 두 구절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씀이 있는데 바로

사랑 안에서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이 사랑 안에서라는 말씀에

여러분들에게 잠시 근래에 있었던 일을 나누려고 합니다.

 

여러분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어렸을 때는 주로 일방적인 사랑을 받다가 철이 들면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 성숙의 증거입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드리고 나누는 것을 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사실 낭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께 향유를 부었을 때

가룟 유다는 왜 이렇게 낭비하느냐?’ 화를 내었습니다.

 

사랑이 낭비라는 의미를 깨달으면 마리아처럼 되겠지만

그 의미를 모르면 가룟 유다처럼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후12:15 ‘내가 너희 영혼을 위하여 크게 기뻐하므로 재물을 사용하고

또 내 자신까지도 내어 주리니 너희를 더욱 사랑할수록 나는 사랑을 덜 받겠느냐

 

언제나 사랑엔 낭비가 있고 손해가 따릅니다.

 

그러나 사랑은 논리와 계산을 초월해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은 잃어버리는 것이고, 빼앗기는 것이고, 바치는 것입니다.

오히려 손해를 보고도 행복한 것이 사랑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빼앗겨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신앙의 진수를 아는 사람입니다.

 

교회를 위해 눈물과 물질과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해 본 체험이 있는 사람이

진정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도 그렇습니다.

   초신자일 때에는 지난 일주일 동안 나를 지켜주신 은혜가 감사해서 예배를 드리지만

   성숙해지면 그냥 예배 시간에 하나님 품 안에 있는 것 자체가 좋고,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서 좋고, 하나님께 더 많이 드릴 수 있어서 좋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낭비하는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는 마리아처럼 계산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낭비할수록 행복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나의 모든 것을 드리고,

나의 생명까지 쏟아 부어도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힘들고 바쁜 상황에서 힘써 주일성수하고, 심지어 새벽기도까지 하는 모습은

마리아처럼 옥합을 깨뜨리는 모습일 것입니다.

 

때로는 교회의 일을 하다보면 사랑이 상처로 돌아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때에도 조용히 주님 앞에 나와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모습도

마리아처럼 옥합을 깨뜨리는 모습이 될 것입니다.

 

어떤 분은 너무나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내가 침체한 모습을 보이면 다른 이들도 같이 힘들어하겠지라는 생각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예전과 같이 변함없이 밝은 얼굴과 목소리로

주위를 즐겁게 해주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 그 고통을 모르겠습니까? 얼마나 고통이 크겠습니까?

바로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마리아처럼 옥합을 깨뜨리는 모습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마리아처럼 옥합을 깨고, 주님을 위해 전부를 낭비하고도 행복해 할 수 있다면

그 향기가 우리 함께하는 교회에 진동해서 서로가 힘을 얻게 될 것이며

그 향기를 하나님께서도 받으시며 상상하지 못한 놀라운 은혜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원하기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오늘 말씀처럼 끝까지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