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의 생각을 하는 사람 롬8:5~7 16.01.24.출처
승리하는 인생 시리즈 4번째 주제 "성령의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지난 주 우리는 우리 마음을 그리스도의 평강이 다스리게 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마음과 생각이 서로 아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거든요.
좋지 않은 생각을 하면, 반드시 좋지 않은 감정을 갖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함께 다스려 주셔야만 합니다.
빌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여기서 '지킨다'는 말은 군사용어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호시탐탐 노리는 마귀의 군대가 있다는 얘기죠.
그래서 하나님의 지키심이 없이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잠시라도 안전하게 만들 수가 없어요.
◑서론/ 육신의 생각
파스칼은 인간을, 생각하는 갈대라고 말했습니다. 무엇을 생각하는가가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합니다.
오늘의 본문, 로마서 8:5~7절입니다.
롬8:5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의 생각은, 세상의 생각이죠. 영의 생각은 성령의 생각이죠.
세상의 생각의 핵심에는 "내가" 있죠.
자기 중심주의적 생각을 하는 사람, 세상의 영이 지배하는 세상적인 생각입니다.
그런 육신의 생각을 계속하고 있으면, 내가 사는 것 같아도, 사실은 죽어가게 됩니다.
영적인 죽음의 그림자가, 내 영혼을 서서히 잠식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6절, 육신의 생각의 결과는 사망이라는 겁니다. 삶은 생각의 결과입니다.
허망한 생각은, 허망한 인생을 낳습니다. 육신의 생각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점점 마음이 완악해지고,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되고, 이웃을 함부로 대하게 됩니다.
▲이 잘못된 생각의 폐해는 자기만 망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대를, 한 역사 자체를 병들게 하기도 합니다.
생각이 어떤 줄에 꿰어져서 모이게 되면, 이것이 사상, 이데올로기가 되는데요.
잘못된 이데올로기의 타락이, 인류 역사를 병들게 합니다.
18세기 아담 스미스라는 사람이, 각자가 알아서 자기 욕심대로 자기 이익대로 최대한 몸부림치면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에서 작용해서, 세상은 어떻게 해든 잘 발전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명한 시장경제논리죠.
굉장히 그럴 듯해 보이지만, 이것이 잘못 오용되어져서 황금만능주의, 무분별한 자본주의를 낳았습니다.
이 황금만능주의에 빠진 서구열강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제3세계에 식민지 계발에 나섰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인도, 그리고 아시아, 남미 여러 나라들을 착취하면서
그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나라들은, 지금까지도 엄청난 정치적인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의 지구촌의 환경과 생태계의 심각한 파괴가,
그 황금만능주의적 무분별한 자본주의로부터 많이 비롯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반항으로 칼 막스는 마르크스 주의를 만들었습니다.
세상이 이토록 살기 힘든 것은, 가진 자들이 민중을 착취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 가진 자들에게 명분을 주는 것이, 기독교 종교라 그랬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상류층이 서민들을 순종케하는 아편같은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므로 유토피아를 만드는 길은, 폭력적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일으켜서 지주 계급을 축출하고,
기독교를 말살한 뒤, 하나님 없는 인민들의 낙원을 건설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마르크스 공산주의 혁명입니다.
이 사상으로 인해서, 소련과 중국과 북한과 베트남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습니까.
우리 나라도 동족상잔의 끔찍한 한국전쟁을 이 마르크스 사회주의 사상 때문에 겪어야만 했습니다.
사상의 힘이 이토록 무섭습니다.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사상의 힘은, 포스트모던주의입니다.
포스트 모던주의의 핵심은, 내 감정에 충실하라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선과 악이 없고, 내 느낌대로, 내 주관적인 판단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혼과 직장도 좋으면 시작하고, 싫증나면 그냥 그만둬 버립니다.
절대적인 선과 악의 가치가 없으니까, 아무도 책임지지 않습니다.
미국은 이것을 조금 더 유화시켜서, 긍정주의적 사고방식, '내 안에 신이 있다.
너희 안에 있는 신적 잠재력을 계발하라'라는 자기계발의 사상을 불붙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놓은 이 서구문명이, 얼마나 오늘날 정신적으로 피폐해 있습니까?
이 사상들의 원산지는 서구 유럽과 미국이며, 한때 기독교국가였다는 사실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축복을 그토록 많이 받은 아들이, 아버지의 사랑을 팽개치고 도망쳐 탕자가 되었듯이,
서구 유럽과 미국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롬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이게 한때 하나님을 알았던 서구 여러 문명의 정신적인 타락입니다.
그래서 서구 유럽의 교회들은 이미 텅텅 비어버렸고, 미국의 기독교도 계속해서 침몰해가고 있습니다.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현대화라는 것이 서구화이고,
우리가 한국 근대화를 주도한 세대가 30년 동안
주로 유럽이나 미국의 명문대에 가서 유학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로 인해서 좋은 점도 많았지만, 이 잘못된 인본주의 세속주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제가 아는 한 기독교 집안에서도, 미국의 동부의 유명한 여자명문대에 자녀를 유학되었더니,
레즈비언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그런 겁니다. 아이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확실한 신앙을 심어주지 않고,
이 세속주의 엘리트 문명에 그대로 노출시키면, 아이들은 똑똑해진 악마가 될 것입니다.
생각이 그토록 무서워요. 사상이 이미 그토록 무서워요.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만들고,
습관은 인격을 만들고, 인격은 운명을 만듭니다.
이를 너무나 잘 아는 사탄이, 태초부터 인간의 생각을 집중적인 타깃으로 오염시켜 왔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그 의심의 말 한 마디가 인간의 생각을 병들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기 시작하니까, 인간은 모든 권위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서로를 불신하는.. 그래서 모든 것이 붕괴되는 파멸의 시작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을, 성령의 생각을 해야 됩니다.
육의 생각을 하면 파멸되기 때문입니다.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합니다. 성령이 원하시는 생각을 합니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했어요. 성령의 생각을 해야 여러분의 인생에 거룩한 생명력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평온함이 올 것입니다. 성령의 생각의 시작은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히3: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여기서 '깊이 생각하라'는 말은, 원어적인 의미는,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완전히 네 생각이 구체적인 행동으로 바뀔 때까지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생각은 우리 영혼에 찍는 '큰 바위 얼굴'입니다.
집중적으로 그걸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우리가 닮아가게 되어 있어요.
항상 돈만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얼굴이 오백원 짜리 동전 비슷하게 변해가게 되어있고
아이돌 스타를 몇 년 동안 좇아다니는 팬들을 보면, 그 외모와 목소리까지 비슷해져 가는 것을 볼 수 있어요.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납니다. 생각하는대로 닮아갑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의 입구에 파수꾼을 세워야 됩니다.
▲생각은 항상 어떤 것들이 새로 들어오면서 형성되는 것이거든요.
수많은 것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통해서 들어오는데,
이때 더럽고 악하고 추한 것들이 걸러져 나가도록, 우리는 성령의 필터 장치를 딱 달아야 됩니다.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필터시킬 수는 있어요.
너무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TV나 영화를 보지 말아야 합니다.
어쩌다가 갑자기 나오면, 순간 눈을 감으십시오. 그래야 잔상이 남지 않습니다.
경건치 않은 사상이 담긴 책이나 잡지들을 읽을 때, 기도하면서 읽어야 합니다.
남을 험담하거나 불평하는 대화를 오래 나누게 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멀리하셔야 됩니다.
그래서 생각을 필터 시켜야 합니다.
제가 어렸을 때, 아주 감동 깊게 어떤 주일학교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을
보고 배운 찬양이 이런 것이 있어요.
♬네 눈이 보는 것을 조심해 네 눈이 보는 것을 조심해
위에 계신 주께서 조심스레 보시니 네 눈이 보는 것을 조심해♪
2절은, 내 귀가 듣는 것을 것을 조심해
3절은, 네 발이 가는 곳을 조심해
4절은, 네 손이 하는 일을 조심해
이 모든 것이 생각의 in put을 필터 시키라는 것입니다.
마귀가 온갖 더러운 것들을 우리 생각속으로 침투시키려고 얼마나 애를 씁니까.
그래서 우리는 이에 단호히 맞서서, 생각의 파수꾼을 세워놓아야 됩니다.
바울은 고후10:5절에서,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라고 했습니다.
밀려드는 수많은 생각들을, 성령의 능력으로, 말씀으로, 기도로 필터 시키라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학부때 다닌 대학은, 60~70년대 미국 히피운동의 원산지였습니다.
그 대학 전체 인문학부 교수들이 반정부, 반기독교, 사회주의 사상이 아주 심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동성애에 대해서도 굉장히 관대하고, 합리적이라는 식으로 우리에게 가르쳤습니다.
저는 특히 서구 역사 정치를 전공했는데, 날마다 우리 교수들이 우리에게 읽히는 책이 그런 것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신을 바짝 차리고, 고등학교 때부터 하던 큐티 생활을 대학에서 더 열심히 했습니다.
매일 아침 말씀과 기도생활을 한 시간씩 하고, 하루 공부를 시작했고
밤에 자기 전에 어떤 일이 있어도, 한 시간씩 성경을 읽고 기도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제가 돌이켜 생각해 보니까, 그 사상을 분석했지만, 그 사상에 물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이 세상속에 살면서, 세상의 생각들이 밀려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으나,
말씀과 기도로 생각의 틀을 제대로 만들면, 여과 장치를 제대로 달면, 우리는 세상을 이길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을 유학 보낼 때, 그래서 거룩한 생각의 틀을 만들어서 보내야 됩니다.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훈련을 만들어서 보내면, 자녀가 그 학문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사람이니까, 바벨론의 학문을 배웠지만,
그 학문의 타락됨에 그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생각의 힘, 묵상의 힘이 약하면, 세상의 생각의 매력을 이길 수가 없어요.
그 힘을 버텨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말씀을 통해서, 거룩한 생각의 힘을 길러야 되는 겁니다.
▲생각의 틀을 건강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세상을 압도할 수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가 고난을 통과할 때, 더욱 예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지금 이렇게 힘든데, 예배드릴 여유가 있느냐?'고 합니다.
힘드니까 더 예배하셔야죠.
문제를 문제화시키지 말고, 조금 떨어져서 이때 예수님을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영어성경에 보니까, fix your thought on Jesus 아예 예수님께 생각을 붙들어 매 놓고 살아라고 합니다.
여러분, 정말 힘드세요? 지금 정말 예수님을 생각할 때입니다.
아주 그냥 기도에 깊이 들어가야 하는 때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이 원하시는 고민, 고난 돌파 방법입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는, 이 말씀을 받는 수신자들인 초대교인들은 당시 어떤 상황이었습니까?
로마정부의 기독교 핍박이 극에 달했던 때입니다.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잡혀가서 짐승의 밥이 되고, 죽이고, 부모 형제를 잃는 시련속에서
교회의 내부분열도 일어나는 이 고통 속에서, 주님은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괴롭고 외로울 때 주님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희한한 것은, 별은 낮에도 떠있는데 밤에 빛납니다.
우리 주님은 항상 내 곁에 계신데, 내 인생이 고난속에 있을 때 빛나십니다.
그러므로 고난 속에 있을 때는, 기도할 때입니다. 예수님을 깊이 바라볼 때입니다.
같은 고난이라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면서 고난을 당하면, 이 고난속에 숨겨있는 하나님의 변장된 축복이 보입니다.
▲이사야55: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우리가 어렵다고 하는 게 우리 수준으로 보니까 어려운 것입니다.
바둑 초보가 볼 때는, 너무나 난해하고 힘든 문제인데,
바둑 프로 9단이 보면, 초보가 보지 못하는 돌파구가 수 십 개 보입니다.
우리는 길이 없다고 말하지만, 우리 수준에서 길이 안 보이는 것이지, 하나님 수준에서 길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르는 수를 굉장히 많이 갖고 계십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수가 많은가 하면,
시편 139:17절에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하나님은 수가 많으십니다. 내가 모르는 절묘한 수가 많으십니다.
그러니까 내 수준에서 하나님한테 걱정해 드리지 마세요.
'하나님이 바쁘실텐데, 이것을 어떻게 푸시겠어요?' 라고 하지 마세요.
하나님의 그 거대한 엄청난 절묘한 수를, 생각하게 되면 우리는 거기에 압도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지 못하는 수를, 하나님이 갖고 계심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의 생각입니다. 성령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하나님 수준으로 인정합니다.
그래서 인생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아도, 결코 낙담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단언컨대, 인생은 우리가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꼭 가고 싶었던 대학에 떨어질 수도 있고, 들어가고 싶던 기업에 못 들어갈 수도 있고,
평생 같이 가고자 했던 사람이 배신하고 떠날 수도 있어요.
그 당시는 끔찍한 일입니다. 원하지 않았던 일이고, 하늘이 원망스런 일인데,
세월이 지난 후에 그것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내가 알지 못하는 축복을 더하기 위해서, 내가 지금 맞긴 어떤 것을 빼앗았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과거를 해석할 때도,
원망하고 후회하면서 그렇게 땅을 치며 통곡하지 않습니다.
내가 실수했고 실패했지만, 나의 실수와 아픔까지도
우리 주님께서 절묘한 하늘의 수로 바꾸실 것을 우리는 믿는 겁니다.
오래 전에, 프랑스의 한 염색공장에서, 한 가정부가 식탁보를 세탁하다가,
그 고급식탁보에다 그만 실수로 기름을 엎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기름이 묻은 자리가 오히려 새하얗게 변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어이없는 실수로 인해서, 인류는 드라이크리닝이라는 새로운 세탁법을 발견하게 됩니다.
실험실에서 발견한게 아니라 가정부가 기름(솔벤트)을 엎어서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실패도 하나님은 새로운 축복의 시작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엎었습니다. 어떻게 하겠어요?
내가 열심히 살았지만 엎어버리는, 망치는 때가 있습니다.
내가 원했던 문이 열리지 않아서, 할 수 없이 다른 문을 열고 들어가야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들어가보니까 더 좋은 문이었습니다.
오히려 지난 번에 들어간 그 문으로 갔으면 큰 일 날 뻔 했을 그런 일을 하나님이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실수가 없으십니다.
그것을 믿는 것이 성령의 생각입니다. 이 예수님의 눈으로 인생을 보고 자기 자신을 봐야 됩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성령의 생각
▲롬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원문에 보면, 자신에 관해서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
네 자신에 대해서 오버해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해서 오버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습니다.
자신을 오버해서 생각하는게 어떤 사람은, 위로 오버하는 사람이, 밑으로 오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위로 오버하는 사람은 자신을 과대평가 합니다. 자기가 제일 잘났습니다.
어떤 사람은 밑으로 오버합니다. 자기가 제일 못났습니다. 이걸 교만이라고 하고, 이걸 열등감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위로도, 밑으로도 오버하지 말고, 생각하지 말아야 될 이상을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눈으로 자기 자신을 건강하게 보라고 합니다.
건강한 생각의 시작은, 하나님의 눈으로 자기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두 가지 버려야 될 게 있는데, 하나는 열등감이고, 또 하나는 교만입니다.
▲박대리는 평범한 월급쟁이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신발이며 옷을 비롯해서 각종 전자제품은 최신 명품만 구입했습니다.
구입한 명품은 반드시 자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에 올려서 자랑하기를 즐겼습니다.
동료들끼리 밥 먹으러 가도, 항상 박대리는 비싼 집으로 가자고 우기고는, 호기롭게 자기가 계산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 그가 부잣집 아들인줄 알았고, 그도 그런 척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알고 보니 지극히 평범한 집 아들이었고, 쓰는 돈은 모두 카드빚이었습니다.
이 카드로 저 카드를 돌려막고 하다가, 마침내 신용불량자가 되었고, 직장도 잃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아주 열등감이 심한 사람이었습니다.
소위 품위유지비는 박대리의 열등감을 숨기는데 소용된 비용이었죠.
명품을 걸치지 않고서는, 결코 부끄러운 자기 자신을 남 앞에 내놓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열등감이 심한 사람은, 자기 과시가 심합니다. 일부러 있는, 강한 척하는 것입니다.
서울은 뛰어난 사람들이 한꺼번에 굉장히 많이 모여 사는 대도시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항상 자신의 외모, 학벌, 재산, 인맥, 능력 등을 남과 비교하고, 비교당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서울 사람들이 상대적인 열등감이 제일 많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남보다 가진 것이 조금 없다고 생각하니까, 남들이 자기를 무시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항상 남의 눈치를 많이 봅니다.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도, 상처를 깊이 받습니다.
자기에게 던진 말이 아닌데도, 그것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상처를 받습니다. 남의 실수도 막 확대 해석합니다.
남자 친구가 데이트 시간에 늦게 왔습니다. 그러면 차가 막혔나보다.. 하면 될 것을,
'내가 없는 집 딸이라고 무시하는 거야!' 열등감을 가지고 생각하니까, 인생이 불행합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공통점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으려 합니다. 이것이 마귀의 전략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사람에게 어떤 사명을 주시고, 어떤 일을 맡기시는데
'나는 안 될 거야' 라는 생각을 계속 주입해서, 마귀가 동기부여를 깨버리는 겁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성령의 생각을 해야 합니다. 열등감에 사로잡히면 아무리 좋은 대학을 가고,
아무리 뭘 이루어도 끊임없이 불행해집니다.
그래서 어느 순간에 스톱하고, 여러분은 성령의 생각을 해야 합니다.
성령의 생각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눈으로 자신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떻게 보십니까?
엡2:10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바라', 어떤 영어성경에서는 이 구절을 masterpiece 걸작품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이 헬라어 단어에서 영어단어 poem 시 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하나님의 시 같은, 한 폭의 걸작품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사실을 우리가 믿고 생각에 선포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각자 독특한 개성을 가진 다른 재능의 열정을 가진 걸작품으로 만드셔서,
우리를 통해서 죽어가는 누군가를 살리고, 어떤 사람의 꿈을 깨우며, 복음을 전하며 살게 만드셨어요.
그러므로 세상이 사람들이 그 시대의 기준을 가지고 여러분을 뭐라고 평가하든, 신경 쓰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긴다는 사실을, 생각속에 선포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서, 남들과는 다른 어떤 일을 하실 것이라는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열등감과 함께 여러분, 교만을 경계해야 됩니다.
사실 열등감과 교만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내가 남보다 잘낫다 하는 생각은, 내가 남보다 못하지 않나? 하는 두려움의 다른 측면입니다.
그래서 열등감 많은 사람, 교만한 사람은 둘 다 자기 과시가 심합니다.
그리고 자기 약점, 남들에게 뻔히 보이는 약점을 잘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 사람들은 I am sorry가 없습니다. 사과가 없습니다. 남이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막 화를 냅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남한테 받은 상처만 얘기합니다.
자기는 남에게 10배로 상처 주면서도, 자기는 모릅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기 중심적으로 세상을 봅니다 남의 성공을 칭찬해 줄줄 모릅니다.
TV보면서 자기 친구가 성공한 사람이 나오면, '아 쟤는 초등학교 때 내 부하였다'고 합니다.
굉장히 한심한 사람이죠.
교만한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문제가 생깁니다.
회개가 제대로 안 되니까 기도가 안 됩니다.
▲성령의 생각은 교만을 버리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겸손한 자를 높이신다고 수없이 많이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겸손하신 주님을 끊임없이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난 척해도, 우리는 주님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영원한 멸망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죄인이었음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지금도 단 한 순간도 주님이 붙들어주시지 않으면 쓰러질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지금 나의 나 된 것은 하나임의 은혜고, 주변 형제 자매들의 기도와 사랑과 헌신이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생각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가득해 집니다.
비교의식을 경계하십시오. 열등감가진 사람이나 교만한 사람이나 둘 다 공통점은
끊임없이 남과 자기를 비교하며 불안하게 산다는 점입니다.
여러분, 머피의 법칙 아시죠? 항상 내가 하는 선택은 잘못된 것 같아요.
마트에서 계산할 때 내가 선 줄은 항상 느린가,
왜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민첩하게 빨리 나가는 줄에 서지 못하고,
저 느린 계산원이 있는 줄에 내가 줄을 섰을까?
어떤 사람이 나보다 더 싸고 좋은 물건을 샀는데, 나는 잘 몰랐어,
나는 내 돈을 잘 투자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사람을 잘못 사귄 것이 아닐까? 결혼 약속 해 놓았는데,
보니까 더 좋은 사람들이 옆에 보입니다. 이거 어떻게 뒨 거지?
나는 우리 교회보다 더 좋은 교회가 있는데,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만 시대에 뒤쳐져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합니다.
MIT 대학의 셔리 토크 교수가 이 증상에 이름을 붙였습니다. fear of missing out (FOMO)
'내가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다는 두려움'입니다. *다른 말로, 늘 후회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이 FOMO를 불 지르는 것이 SNS 자랑질입니다.
자기가 뒤떨어지는 것을 만회하기 위해서, SNS에 막 오버해서 올리는 겁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또 FOMO에 걸립니다.
여러분 그러니까 SNS를 너무 많이 보지 마세요. 거기에 안 좋은게 많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다 독특하게 아름답게 만드셨어요.
우리는 다른 것뿐이지, 더 못하지 않습니다. 다른 것 뿐이지, 더 잘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나와 다른 재능과 열정과 사명을 주신 이웃과 나를 비교하지 마세요.
돌고래가 독수리를 보면서 왜 나는 못 날까?
독수리가 돌고래를 보면서 왜 나는 수영을 못할까? 이러면 안 되죠.
하나님은 독수리에게 수영 시키지 않고, 돌고래에게 하늘을 날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있는 그대로 자기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됩니다.
'나는 걸작품이다. 나는 비교할 수 없는 걸작품이다.'
그래서 내 이웃도 마찬가지로, 나와 다른 길을 갈 뿐이지, 틀린 것은 아닙니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축복하는 생각을 하셔야 됩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자기를 잘 본 사람은, 이웃도 예수님의 눈으로 잘 해석하게 됩니다.
병든 생각을 가지고 세상의 눈으로 다른 사람을 보면, 항상 다른 사람을 이용해서
내 욕심을 채우거나 내 야망을 이룰 생각을 합니다.
▲베니스의 카사노바는 백명이 넘는 여인들과 로멘스를 즐긴 희대의 연애군입니다.
그는 24시간 어떻게 하면 여인들을 유혹할까 하는 생각만 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어떤 대상을 사기칠 생각만 합니다.
밥먹고 자면서도 계속 그 생각만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증오하고, 복수하겠다는 생각만 거의 24시간 합니다.
어떤 분이 김일성을 증오하면서, 평생을 살았습니다. 낮이나 밤이나 김일성을 증오하면서 살았는데,
어느 날 김일성이 죽었다는 뉴스가 나왔습니다. 동네사람 다 불러놓고 잔치 했는데,
며칠 있다가 그게 오보라는 사실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이분에게 홧병이 생겼습니다.
여러분, 어떤 대상을 미워하면서 생각을 하면서 살면, 자기 인생이 불행해 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형제를 보고 미움을 품으면, 이미 살인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으면, 이미 마음으로 간음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에 이웃을 향해서 악한 생각을 품는 그 순간부터,
그 생각을 끊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눈으로 사람을 생각하면, 인간을 사랑할 수 있어요.
인간을 믿어서는 안 되지만, 인간을 사랑할 수는 있어요.
'사랑했다가 그 사람이 나를 배신하면, 그 사람이 나를 이용하면 어떻게 하지?'
그것은 하나님이 알아서 하실 것입니다.
그렇지만 상처 받았다고 해서, 여러분,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과 관계를 끊을 것입니까? 상처 받았지만, 용서하고 또 우리는 사랑하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셔야 됩니다.
▲우리는 사람을 긍정적으로 보고, 사랑해야 되고요. 그리고 사람을 미래지향적으로 봐야 됩니다.
그 사람의 현재 상태를 보고, 마음을 닫지 말고, 자녀를 볼 때도 그렇고, 동료를 볼 때도 그렇습니다.
앞으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손 안에서 장차 될 수 있는 모습과 마땅히 되어야 될 모습으로 그 사람을 대하십시오.
그러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처음에 베드로를 만났을 때 그의 상태는 안 좋았습니다.
요즘 대기업 입사시험 치면, 반드시 베드로는 떨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성격 칼칼한 베드로를 보면서 예수님은 사람 낚는 어부로 선포하셨습니다. 그 베드로는,
불과 3여년 후에 3천명~5천명을 한 번의 설교로 주님께 돌아오게 하는 사람 낚는 어부가 되었습니다.
왜 우리 주님이 베드로의 미래 그림을 선포해 주셨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를 볼 때도, 그렇습니다. 특별히 애들 중에서 공부 못하는 애를 사랑하십시오.
다가올 미래를 향해서 선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람을 보는 생각은, 이렇게 항상 긍정적이고 미래지향적이었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성령께서 생각을 바꿔주시면,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지고, 이웃을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지난 11월 우리 교회 큐티지에 실린 청년부 어느 형제의 간증,
"나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라는 제목의 간증문을 제가 읽고 참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형제는 중국에서 태어나서 성장한 조선족 동포입니다.
"저는 청소년 시절, 친구들과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로 왼쪽 머리를 다쳤습니다.
그 뒤로부터 오른쪽 손과 발을 잘 못 쓰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한국에 먼저 와서 일하고 계셨기에, 사고 난 아들 소식을 듣고도 달려오시지 못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러, 저는 한국에 오게 되었는데, 와서 여러 가지로 제 장애 때문에 마음이 힘들던 중에,
우리 새로운 교회를 통해 장애우 밀알 선교단 모임에 가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저보다 몸이 더 불편한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밝고 평안한 표정이라는데 또 제가 놀랐습니다.
앞을 못 보는 자매들이 기쁘게 찬송을 부르고,
거동이 불편한 형제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감사한 마음으로 찬양하는 모습을 보고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내 장애가 가장 크고, 제일 힘들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제 장애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도 저보다 힘든 사람에게 사랑을 주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이 형제가 몇 달 전에 중국으로 돌아갔는데, 신앙을 가지니까 성령의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예수님의 눈으로 자신을 보게 되었고, 이웃을 보니까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인생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2부예배 설교가 끝나고 이 형제의 어머니가 제 손을 꼬옥 잡으면서
아들 생각이 나시는지, 눈에 눈물이 글썽하셨는데,
저는 정말 성령께서 이 형제의 생각의 틀을 바꾸셨기 때문에,
그 인생을 승리하는 인생으로 바꾸시리라고 확신합니다.
▲성령의 생각을 하십시오. 성령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비전을 생각합니다.
세상적 생각을 하는 사람은, 항상 과거지향적인 생각을 해요. 옛날이 좋았지,
그러면서 잘 나가던 시절에 과거만 그리워하던지,
아니면 과거에 받은 상처와 자기가 한 실수 때문에 자꾸 되씹어 생각하면서, 무기력한 인생을 살던지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미래지향적입니다. 과거에 상처가 있었지만, 지금도 힘들지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최고의 축복을 준비하셨다고 믿고 선포합니다.
그 광야 속에서, '새벽을 깨우리로다'고 했던 다윗의 비전이, 바로 성령의 생각을 하는 사람의 언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의 문제를 넘어서, 현실을 넘어서, 과거의 아픔을 넘어서,
축복의 미래를,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는 우리의 미래를 꿈꾸기를 원하세요.
▲OM (Operation Mobilization)의 이것은 둘로스 호와 로고스 라는 거대한 선교선을 띄워서
세계 86개국에 사역자 청년들이 가서 활동하고있는 유명한 국제적 선교단체입니다.
이 OM의 설립자 조지 바워는 어렸을 때, 지구의 2/3가 바다로 덮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아, 그러면 이 바다를 왕래하며 선교하는, 선교선에 젊은이들을 가득 태워서 선교하는 꿈을 꾼 것입니다.
여러분, 같은 바다를 바라봐도, 바다를 보고 요트를 타야겠다는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다에 배를 띄워서 온 세상에 여러 나라에 젊은이들을 태워서
복음을 전하고 다니겠다는 꿈을 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OM의 거대한 비전이 전세계를 덮게 됩니다.
저는 조지 바워의 집회 통역을 한 번 한 적이 있는데, 저보다 훨씬 연세가 많으신데,
그 분의 에너지가 저보다 한 10살이나 젊은 분 같앗습니다.
강단 위를 얼마나 뛰어다니시는지 통역인 제가 좇아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이분이 입고다니는 점퍼는 세계지도가 앞 뒤로 그려진 것입니다.
이 분의 강의 소품은 세계지도가 그려진 지구본 공을 퉁퉁 던지면서,
저보고도 해 보라고 그러셨는데, 제가 민망해서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오대양육대주를 젊은이들을 배에 태워서 선교하는 그 꿈을 꾼 것입니다.
꿈을 꾸니까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업그레이드 시키신 것입니다.
▲1970년대 우리 한국이 모든 것이 암울하던 시절에,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가난하던 시절에,
CCC총재 김준곤 목사님이 민족복음화의 꿈을 꾸셨어요.
'민족의 가슴에 피묻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
그것을 위해서 전국의 대학교 캠퍼스 젊은이들이 일어나서, 전국을 순회전도하면서 돌아다니고,
서울에 엑스플로 74 대회로 20~30만이 모여서 밥을 먹으면서 이렇게 훈련을 받는
그런 거대한 민족복음화의 꿈을 꾸셨습니다. 그 가난하던 시절에요!
저는 김준곤 목사님을 80년대 초반에 만났습니다. 그때부터도 그 분의 가슴은 거대한 비전이 불타고 있었어요.
저는 80년대 중반에 목사가 되기로 헌신하면서, 그 비전에 전염되었습니다.
'아, 목사가 된다는 것은 그것이구나. 그것은 하나님의 이 비전을 내 자신의 가슴에 심고, 교인들에게 심고,
젊은이들에게 심고, 민족의 가슴에 불태우는 것이구나.' 그 비전에 나를 헌신한 것입니다.
▲저는 이 교회의 담임목사로서, 이 시대에 우리 교회가 어떠한 역할을 해야 되는가를 끊임없이 생각합니다.
세상 속으로 열방 속으로 미래 속으로 가는 이 비전을 현실화 시키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성도들이 영성이 충만해져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 저는 이 시대 최고의 강사들을 모셔다가, 우리 교인들에게 설교를 듣게 하고,
이 시대 최고의 목회자들의 설교를 제가 듣고 기도하고 연구해서 말씀의 최고 잔치를 날마다 베풀어 드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또 일대일로 영성교육을 하는 CES를 만들고, 또 그러기 위해서 GBS를 만들고,
커피 브레이크를 만들고, 온 교회에 기도의 3백용사를 일으켜서,
한국교회 겨울이라는 이 시대에 사도행전적 교회,
한국교회에 소망이 있음을 보여주는 교회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24시간 하고 있습니다.
앉으나 서나 그 생각, 밥먹으면서도 항상 그 생각을 합니다.
제가 휴가를 갔다오면 우리 부목사님들이 더 괴롭습니다. 휴가가서 그 생각을 하고 오니까요.
요새는 우리 뉴젠 New Generation과 차세대들을 많이 생각합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이렇게 많이 교회로 몰려오는데, 우리 주일학생들이 이렇게 많은데,
이 아이들을 어떻게 하면 통일한국 시대를 감당할 글로벌 코리아를 이끌고나갈 이 시대의 다니엘 같은,
에스더 같은 인물로 만들까, 그것을 위해서 교회는 어떤 준비를 해야 되는지, 이런 꿈을 끊임없이 꿉니다.
저는 그것이 담임목사인 제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이고, 성령님이 기뻐하시는 성령의 생각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은, 요즘 무엇을 주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오늘은 어디 맛집을 찾아가서 먹을까?'를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생각이 여러분의 인생을 조각해 나갈 것입니다.
지금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할지라도, 성령의 생각을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인생을 바꾸실 것입니다.
기도/ 사랑하는 아버지, 은혜를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자기 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나를 보는 눈이 뒤틀려 있었고, 이웃을 보는 눈이 잘못되어 있었고,
너무나 현실중심의 과거 중심의 생각을 했는데, 이제 예수님께서 우리의 생각을 바꿔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주님의 꿈을 꾸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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