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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잘 사는 비결

LNCK 2016. 3. 7. 11:23

가장 잘 사는 비결               8:48~50                  16.02.07.스크랩, 출처


적당히 세상과 세속에 타협해서 무난하게 사는 것보다,

손해, 불이익, 핍박을 당하더라도, 신앙의 지조를 지키는 것이 "잘 사는 비결(설교제목)" 이라는 주제의 설교입니다. 

설교의 일부만 발췌 했습니다. 설교 전체를 다 보실 분은 출처 를 보십시오




대가를 지불할 때, 특별한 주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여러분, 겉으로는 어려워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내가 지금 바르게 맺고 걸어가고 있기 때문에

내 마음에 주시는 평강을 경험할 때,

우리는 진정한 신앙의 맛을 그때 누리게 됩니다.

그런 경험을 해 보셨나요?

 

뭔가 어려운 상황 속에 처했는데, 내가 신앙 때문에 손해 보는 선택을 했는데

내가 그 선택을 함으로써, 뭔가 좀 불이익을 당했는데,

그런데 내 영혼은 속에서 기쁨이 막 샘솟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입니다.

 

지난 목요일, 가평에 있는 한 대학교에서 제가 청년집회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제가 두 시간동안 사력을 다해서, 소리 소리 지르면서 설교를 했고,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밤11시가 훌쩍 넘어갔습니다.

씻고 정리하고 늦게 잠이 들었죠.

너무 피곤하니, 내일 새벽예배는 못 갈 수도 있겠다..’

 

그런데 새벽에 잠이 싹 깼어요. 1분도 안 되어서 알람이 울렸어요.

대형아, 새벽기도 가자는 싸인 같았습니다.

그냥 잠자리에 계속 누워 있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가자는 마음이 자꾸 들어서, 제가 벌떡 일어나서 새벽기도회에 갔습니다.

 

그래서 한 시간 반 가량 기도하고, 또 올라가서 성경을 읽기 시작하는데

-여러분, 성경을 읽을 때 머리에 안 들어오는데, 눈으로 읽을 때가 있고


-‘아 이제는 좀 이해가 된다, 재미있다할 때가 있고,

 

-어떤 단계는 말씀을 읽는데, 그냥 성령의 은혜가 막 마음에 깨달아져서

이 심령이 마치 그냥 진액을 빨아들이듯이, 말씀 자체가 내 안에서 실제가 되는

성령의 역사로 말씀이 열리는 때가 있거든요.


이 마지막 단계에 가면, 말씀이 성령의 능력으로 충만하게 깨닫게 되는 그 때가 있습니다.

 

항상 성경을 읽을 때마다, 그런 단계에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매일 한 두 시간 성경을 계속 읽으면서 애를 쓰면

그때 성경이 열려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 두 시간을 먼저 읽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날은, 그 전날부터 아주 피곤한 날이었죠.

새벽기도를 마치고 시편을 읽는데, 막 성경이 열리는 것이었습니다.

와우 주님!’

제가 무릎 꿇고 손도 들고 경배하고,

노랑 형광펜으로 줄도 긋고,


그 전에 그 시편을 백 번 넘게 읽었는데도,

그날 아침에 그 말씀이 새롭게 깨달아지는 것은, 성령의 역사였습니다.

이게 되어야 말씀이 비로소 내 것이 되는 구나!’

 

그 날 새벽 420분에 일어나서, 새벽기도 마치고

성경을 읽고 나서 보니 오전11시였습니다.

그 시간 내내 너무나 충만한 은혜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그 충만한 은혜를 누릴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인데요,

제가 하나님이 새벽에 깨우실 때, 그 인도하심에 순종하면서

제 안일한 그 잠자는 시간을 포기한 값을 지불했을 때, 그게 제게 임한 것입니다.

 

제가 신병 때, 군대 내무반에서, 앞에 나와서 음담패설을 하라고 해서

제가 2~3일 고민하다가 고참에게 저는 못하겠습니다.’

 

너 죽을래?’

네 죽여주십시오!’

그러자 다른 고참들까지 몰려와서 저를 구타했을 때

여러분 보세요, 저는 그때 신병입니다. 아무 힘이 없어요.

 

정말 무시무시한 고참들이 몰려와서,

신병이 죽여달라고, 고참에게 대든다고 하니 난리가 난 거죠.

 

그런데 제가 딱 맞는 순간

제 마음속에서 이겼다!’ 하면서

속에서 평강이 막 올라오는데요,

그 감정을,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기억합니다.

그냥 마음이 자유로웠어요.

 

, 이게 그 고난받는 성도들이 이런 것 때문에 이기는 거구나.’

그거 같았습니다.


스데반이 막 돌이 날아올 때, 막 그렇게 이길 수 있었던 것이

자기 제정신은 아니었고요, 하나님 뜻에 서 있었을 때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로 맺어졌을 때

하나님이 그 속에서 그 마음을 보호하시고, 평강을 주셨던 것입니다.

 

물론 어려움이 옵니다. 그때부터 군 생활이 꼬였습니다.

욕도 많이 먹고 힘들었지만, 그런데 하나님의 뜻을 선택했을 때

내 영안에 주시는 평강!

저는 잘 살았던것입니다.   *설교제목이 가장 잘 사는 비결

 

잘 사는 것, 150명 앞에서 제가 더러운 얘기를 하고,

그래서 제 마음이 뭔가 불편한 가운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틀어진 가운데

150명 앞에서 그 낄낄대는 그 소리로, 그 무마하고 지나가는 게 잘 사는 게 아니고요.

 

진짜 잘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어렵지만 그 길을 택하여

비록 핍박을 받는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는 게, 잘 사는 길입니다.

 

 

대가를 지불하고, ‘잘 사신예수님                 *설교제목이 가장 잘 사는 비결

 

오늘 예수님의 삶을, 그 측면에서 한 번 살펴보십시다.

물론 예수님은 당연히 그런 분이지만, 그분은 완전한 인간으로서의 본을 보이셨거든요.

 

여러분, 예수님이 이 땅을 사시면서, 주님의 가치관은 하나였습니다.

뭔지 아시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만만치 않은 대가를 지불하셨습니다.

 

만만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어마어마한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하늘 영광을 버리셨죠.

이 땅을 사시면서 엄청 욕을 잡수셨어요.

 

본문에도 보면, 어떻게 예수님이, 이런 말을 들으셨을까요?

 

8:48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너를 사마리아 사람이라.

또는 귀신이 들렸다 하는 말이 옳지 아니하냐.’

 

유대인들, 신앙인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주님에게

귀신이 들렸다는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본체가 오신 것인데, ‘너 귀신 들리지 않았느냐.’

이러한 모멸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그 당시에 개 취급한 겁니다.

 

너 개 같은 자 아니야?’

아냐, 너 귀신 들렸지?’

도대체 네가 하는 짓거리가 뭐냐?’

 

만약에 주님께서 타협하셨다면

유대인들의 비위를 맞추셨다면, 아마 이런 소리 안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셨거든요.

너희들은 회개하라. 너희 속은 더러운 것들로 가득하다.’

 

성전 안에서 장사하는 상들을 뒤집어엎으시면서,

하나님의 집으로 강도의 굴혈로 만들지 말아라. 이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있겠는냐?’


막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시니까,

그것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보고 너 사마리아인, 개 같은 자구나. 너 귀신들리지 않았느냐?’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8:50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아니하나 구하고 판단하시는 이가 계시니라.

51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5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내게 영광을 돌리면, 내 영광이 아무 것도 아니거니와

내게 영광을 돌리시는 이는 내 아버지시니 곧 너희가 너희 하나님이라 칭하는 그이시라.

 

주님은 명확히 대답하세요.나는 귀신 들린 것이 아니다.

나는 내 아버지를 공경하며, 그 뜻을 따라가는 것이다.

 

나는 내 영광을 구하지 않고,

나의 삶을 인정하시는 분, 나의 삶을 판단하시는 이가 계신데

그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내 삶을 인정하신다. 왜냐하면 내가 그분의 뜻을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게 잘 사는 삶이죠. 설교제목.

 

나는 내 삶에 유일한 길이 있다.

손해 봐도, 어려워도, 하늘 영광 버리고 이 땅에 온 것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을, 나는 구한다.

나는 그 분의 기뻐하시는 뜻을, 순종하여 따라가는 것이 내 삶의 목적이고 내 삶의 결론이다.’

 

이게 예수님의 가장 핵심적인 삶의 가치기준이었습니다.

 

결국 이것 때문에, 주님은 죽음으로 내몰리셨습니다.

만약 타협했더라면, 안 돌아가셨을 것입니다.

 

 

적용

 

여러분, 이게 주님의 삶인데, 우리의 신앙은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거든요.

과연 내 인생에 복된 건 무엇일까요?

과연 내 인생이 잘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과 등진 채, 내 삶을 살아가면서 주님, 이것 도와주세요.’

내가 내 길을 걸어가면서, 하나님과는 그렇게 하나님의 뜻은 그렇게 이루지 않은 채

주님, 이거 제 문제 어려운 것 도와주세요!’ 이게 복이겠습니까?

 

아니면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뜻을 택하여, 그것에 순종하면서

주님처럼 그 길을 따라가는 게 복이겠습니까?

 

진짜 잘 사는 길은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신다고 여겨지면,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입니다.

? 기꺼이 먹는 것입니다.

 

그런 삶에는 반드시 어려움이 옵니다. 핍박이 오고, 손해도 봅니다.

그러나 잘 보세요. 신앙에 진짜 은혜가 언제 오는지 아세요?

 

내가 주님을 섬기다가, 어려웠어요.

기도하면 눈물밖에 안 나잖아요.

 

그런데 그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깊이가

그러한 희생의 대가 지불 없이, 그냥 내 길을 걸어가면서

예배당에 앉아서 하나님 앞에 은혜 받으려고 하는 것과, 그 깊이가 엄청 다릅니다.

 

진짜 은혜는요, 힘들고 핍박 받아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그 아픔가운데 주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은 더 깊은 은혜를 그에게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에 핍박받는 그러한 여러 교회들이 있죠?

예전에는 아프리카 수단에서, 기독교인들이 엄청난 핍박을 받았습니다.

 

또 지금도 중국지하교회는,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기독교 역사학자가, 한 번 그런 곳을 방문해 보았답니다.

감옥에 갇혀 있는 핍박받는 크리스천들,

그 환경은 너무나 열악한데요, 그들을 만날 때마다 어김없이 느껴지는 느낌이 있었대요.

 

그것은, 분명히 감옥 안에 있고, 분명히 어려운데

그들의 깊은 곳에,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가 있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과 소망과 기쁨이

한결같이 어느 곳에서나, 그 어려운 환경을 뚫고 그들 안에 평강과 기쁨이 있더랍니다.

 

   여러분, 주님을 섬기다가 욕도 먹고, 손해도 보고, 핍박도 받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택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때 비로소 하나님의 진정한 은혜가 있고요,

   그때 하나님과 더 가까워집니다.

 

   제 신앙생활 여정을 돌아보면, 제가 언제 하나님과 가장 가까웠느냐 하면,

   언제나 그 (핍박을 감내하면서도 믿음을 지킬) 때였습니다.

 

신앙성장도 똑같습니다.

성도들이 제자훈련하면서, 신앙수준이 갑자기 확 뜁니다.


식물도어떤 생장점에서 딱 발아가 되고, 딱 자라는 생장점이 있습니다.

그 생장점이 안 생기면,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발아가 안 됩니다.

 

그런데 어느 상황이 되면, 갑자기 쭉 발아가 되어서 신앙이 쭉 올라가거든요.

제자훈련 때, 갑자기 그 생장점이 터지는 분이 많더라고요.

 

그런데 다 동일합니다. 그 전까지는 타협했다가

이제 진리 앞에 서면서, 과감하게 포기할 것 포기하고, 정리할 것 정리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딱 택하는 그 지점부터


신앙이 생장점이 탁탁 터지면서,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고, 하늘의 기쁨이 임합니다.

그때 신앙성장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 받는 자는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상이 크니라5:10~12

 

저는 제가 지내왔던 지난 날의 삶을, 제가 설교준비 하면서 한 번 돌이켜 보았습니다.

 

인간적으로는, 저는 참 척박한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하나님 없는 환경이었으니까요.

영적으로 보면, 그냥 사막과 같은 곳에서 10대 시절을 보내다가

정말 복음 되신 예수님께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진짜 복음이더라고요. 주님이 얼마나 좋은지, 그 분이 얼마나 소망되시는지요!

 

그런데, 이러한 환경에서 주님이 찾아오셨기 때문에, 제가 주님을 꼭 붙잡았습니다.

 

모태신앙이 어려운 게, 모태신앙인들은 환경 자체가 그래도 안정적이다 보니까

주님이 꼭 붙잡아지지가 않습니다. 그게 좀 아쉬움입니다.

 

저희 아이들도 보면, “(간절한) 주님!”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아빠가 채근해야 주여!” 나오지, 제가 그 주님, 이 속에서부터 나오는, 그 깊이가 달라요.

왜요? 아이들이 신앙생활 하는데, 어려움이 별로 없으니까요.

 

그래서 얘들을 좀 고생을 시켜야 되나?’

제가 그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주님을 간절히 찾을 것 같아서요.

 

아무튼 저는, 주님을 꼭 붙잡는 그런 마음이었거든요.

3때 제 심각한 고민이 뭐냐면,

주님을 위해서 순교하는 것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나님, 북한이 열리면, 제가 들어가서 죽겠습니다.’

 

그리고 20대를 지내면서

아무튼 교육전도사로 섬기면서, 당시 제 마음의 기준은 딱 하나였어요.


이게 주님의 뜻인가, 아닌가?’

이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인가, 기뻐하지 않는 것인가?’


그 부분을, 제 안에 굉장히 치열하게 또 민감하게 좇았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청소년들을 이끌 때에도, 잘했습니다.

왜 잘했느냐면, 청소년들이 세상/학교 나가서 영적으로 유지를 못합니다.

그 당시에도 뭐 뉴키즈 온 더 블락이라는 가수도 있었고, 문화가 다 그랬거든요.

그런 아이돌 좋아하고, 그런데 그런 식으로 가면 신앙이 죽거든요.

 

그러니까 아이들 데리고 맨날 회개시키고, 맨날 기도시키고

그래도 안 되면, 막 잡아당기다가 수련회가서 또 막 한 번 더 뒤집어엎고

막 이렇게 하고 또 어른들께 설교하더라도, 저는 자꾸 영혼들이 보이니까

그 영혼들이 이렇게 하나님 앞에 뭔가 무너져있는 이게 보이니까

 

이것을 세우려면 회개시켜야 되고, 진정한 신앙은 무엇인지 가르쳐야 하고,

이 마음 때문에, 제가 늘 안타깝고, 늘 괴로웠어요.

 

제가 20대 중반 때, 무슨 생각을 했냐면

나는 나이가 먹어서, 이러한 식으로 목회하면 아마 사람들이 많이 안 모일 것이다.’

왜요?

나도 힘든데, 누가 오실까?’

나는 편안하게 하는 게, 나는 왜 안 되지?’

 

저는 그게 되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이 제게 하소연도 좀 했습니다.

놀고 싶다고요. 그런데 제 신앙양심상 그렇게 못했습니다.

 

영혼이 죽어서 왔는데, 어떻게 학생들 데리고 놀아요?

죽어가는 학생들 데리고, 무슨 축제를 합니까? 회개시켜야지요.

그래서 장래에 나는 목회하면 쉽지 않겠다.’

 

아무튼 그렇게 엎치락뒤치락 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금 와서 보니까, 힘들어도 하나님의 뜻을 붙잡으려 하고,

사람들이 좋아하냐/싫어하느냐가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입장에 서서, 그것을 택하면서 나름대로 대가 지불을 하니까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면

하나님이 그곳에 도장을 찍어주시더라고요.

내가 너를 인정한다.’

 

제가 군대에서 중대병력 150명 앞에서

제가 만약에 그 곤경을 모면하느라고, 그 더러운 음담패설을 앞에 나가서 했다고 가정해 봅시다.


군인들이 낄낄 댔겠죠. 또 어떠한 교회다니는 군인은

저 사람, 신학교 다니다가 왔다는데.. 에이 좀 그렇다.’

그렇게 저를 바라본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둘째 치고, 그런 제 모습을, 저 하늘 위에서 하늘 아버지가 내려다보시고

마음이 어떠셨겠습니까? 만약 제가 그렇게 했다면요.

 

그런데 제가 죽여주십시오. (저는 신앙양심상 못합니다.)’ 하고 고난을 택했어요.

 

그리고 구타를 당했어요. 핍박을 받았어요.

그 순간 하나님께서 위에서 저를 보실 때, 어떠한 마음이셨겠습니까?

 

하나님도 아버지이십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요,

그 감수성이 굉장히 예민하고 깊으세요.

하나님은 뭐 무지막지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아파할 때, 함께 아파하시고

우리가 핍박당할 때, 그 분도 굉장히 같이 어려워하시는 것 같아요, 마음이.

그런데 그 길을 택했을 때, 주님이 위에서 어떻게 보셨겠냐고요?

 

그래, 네가 나를 택했구나.

그래, 너는 젊은데, 네 마음에 가치가 나구나

그래, 알았다. 내가 인정할게. 내가 너를 들어서 쓸게

 

그렇게 사는데, 군생활 처음 1년 간은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드시기 시작하는데요.

정말 부대가 들썩 하는 역사로, 하나님께서 일하셨어요.

1년 지나니까 인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욕했던 크리스천/넌크리스천 고참들,

1년이 지나니까 정말 너는 진짜다. 너처럼 믿어야 돼!’

불신자가 그렇게 말을 하고,

 

뭐 하사관들, 지휘관들도

네가 하면, 다 허락이다

너 외출이 필요하면 나갔다 와라. 관심 (문제) 사병인데, 네가 같이 간다고 하면,

그래 그를 데려고 가서 좀 잘 타일러라.’

 

그리고 찬양집회든 예배든 초소방문이든,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축복하시는데요,

그때 황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왜 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택해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면,

내 용량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량/수준/크기로 우리 길을 열어주십니다.

 

여러분, 언제 언제까지 내가, 내 수준으로 살겠습니까?

하나님의 손을 들게 하는 인생이, 내가 되어야죠.

그러려면,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을 택하면서,

희생도 감수하셔야 됩니다.

 

여러분, 그 사람의 신앙의 척도는, 그 신앙의 퀄리티(질적 수준),

내가 하나님의 뜻을 택하면서, 희생도 감수합니다.’ 라고 하는 그 만큼

그 사람의 신앙의 퀄리티고, 척도입니다.

 

교회는 열심히 다니는데, 막상 나의 삶을 보면, 그러한 대가 지불이 없다면

그게 그 분의 영적수준입니다.

 

자 그 눈으로, 우리 삶에 잘 사는 것, ‘잘 살지 못하는 것을 한 번 분변해 보기를 원하는데요.

성도님들의 상황으로 제가 한 번 적용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직장 다니시면서, 사업을 꾸려나가시면서

이 세상에서 진급해야 되잖아요. 아무튼 자녀 부양하려면, 경제적으로도 유족해야 됩니다.

자 그러면, 그 키가 누구에게 있습니까? 상사, 거래처, 상대편에 있습니다.

 

자 그러니까 상사 비위를 잘 맞춰야 되기 때문에

많은 크리스천들이 신앙인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것도 타협해서 해 버립니다.

접대하는 곳에 가서, ‘나는 그래도 선은 넘지 않아야지하지만,

솔직히 내가 은근히 즐기는 면도 있습니다.

 

나는 그래도 선은 안 넘어하지만, 가만히 보면, 어쩔 수 없이 가는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서 하는 면도 있습니다.

 

접대도 하고, 노래방에 가서, 탬버린 흔들면서, 넥타이로 머리 동여매고

또 비위 맞추면서, 또 술을 따르면서, 도우미들 왔다갔다 할 때 힐껏 힐껏 쳐다보기도 하면서,

가끔은 부딪히는 척도 하면서

아 그래도 나는 교회 다니니까 이거는 하지 말아야지하면서도, 짜릿한 것도 내심 즐깁니다.

 

왜요? 그래야 사회에서 배겨 나잖아요.

그때 하나님은, 위에서 그 모습을 어떻게 보고 계실까요?

인간적으로는 지혜로운지 모르지만, 그 행태를 하나님이 인정하실까요?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과연 그게 잘 사는것일까요?

승진은 혹시 했을지 모르지만, 수주는 따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이 인정하지 않는 삶에 평안함이 있을까요?

 

가장 무서운 것은, 그렇게 사시다가 천국에서 주님의 보좌 앞에, 심판대 앞에 가면,

여러분 천국가실 수 있겠습니까? 구원 받을 수 있겠습니까?

 

안 됩니다.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신앙은, 매일매일 예수만 나의 주인이라고 하는 것을 입술로만이 아니라,

나의 삶에서 대가 지불을 하면서, 그렇게 살아내는게 신앙이지,

 

세상에서는 죄악 속에 살면서, 내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그 진리를 이해했다고/동의했다고 신앙생활인가요? 아닙니다.

여러분, 절대 속지 마십시오. 천국에 못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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