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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구원을 거절하게 되는 이유

LNCK 2016. 3. 10. 12:58

사람이 구원을 거절하게 되는 이유               14:25-27               16.03.06 출처


  

위 동영상의 126초부터 ~ 끝까지 녹취              

 

◑주님께 축복 받고, 구원에서 탈락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도 주님보다는 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이 말씀이 너무 심한 것 같습니다.

왜냐면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라'는 말씀이

너무 심한 것 같아서, 교회에서는, 이 구절을 거의 설교하지 않습니다.

 

대신에 아래 구절을 설교합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을 돌아보지 않으면, 불신자보다 악한 자니라.' 딤전5:8

 

위 두 구절이 서로 완전히 모순이죠?

 

그런데 대부분 교회에서 열심을 내는 분들을 보면, 가정이 사이가 안 좋은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나 인정을 받아보려는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딱 알고 설교를 한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을 돌아보지 않으면, 불신자보다 악한 자니라.'

 

그런데 미국에서는 상담학을 하면서, 이 구절(딤전5:8)만 강조하는데

정작 예수님의 말씀(눅14:26)은 강조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듣는 사람들이 안 좋아할 것 같아서요.

 

눅14:26,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본문의 이 말씀을 하시게 된 배경은, 그 앞의 사건인데

예수님의 아래 설교 때문입니다.  

 

▲눅14:16절부터,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었는데, 많은 사람을 초청했습니다.

잔치가 시작될 즈음 종들을 보내서

'오소서 모든 것이 준비되었나이다.' :17

다 일치하게 사양했다는 겁니다. :18

 

마태복음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왕이 자기 아들의 혼인잔치를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을 잔치에 초대했는데, 그들이 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마22:2~5

 

여러분, 이거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왜냐면, 잔치할 것 같으면, 한 달 전에 미리 광고해야되지요.

그런데 말씀을 보니까, '잔치할 시각에' 종들을 보내서 초청했다는 겁니다. :17

*그런데 왕의 잔치면, 미리 알리지 않아도, 온 나라 백성이 다 알았을 것입니다. 

     

거절한 사람들의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한 사람은 '나는 밭을 샀습니다. 아무래도 밭에 가봐야 되기 때문에

청컨대 나를 양해해 주십시오.' 말투가 겸손합니다.

 

두 번째 사람은, '나는 소를 다섯 겨리를 샀습니다.

'겨리'는 한 마리가 아니라, 한 쌍을 말합니다. 그러니 10마리입니다.

팔레스틴은 땅이 안 좋아서, 한 마리로 못 갈고, 적어도 두 마리 소를 매서 땅을 갑니다.

소를 샀는데, 시험해 봐서, 잘못된 소면 반품해야지요.

그래서 피치 못해서, 잔치에 못 간다는 겁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더합니다. 결혼했어요.

그래서 못 간다는 양해도 안 구합니다. 당연하니까요.

 

   여러분 저는, 이 주님의 설교를 쉽게 못 받아들일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 설교를 통해,

   구원의 잔치를 준비했는데, 사람들이 다 안 온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교회에 오는 많은 사람들은, 그저 하나님을 찾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내 인생은 왜 이런가..?' 하며 자기에게 도움되라고 찾는 겁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주님이 구원의 잔치를 준비했는데,

   아무도 안 찾는다는 겁니다.

   이게 현실적으로 받아들여지십니까?

 

이 말씀이 응하는 것은, 십자가 사건 뿐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했을 때도, 많은 사람들이 따랐습니다.

산상수훈을 전했을 때도, 사람들은 놀라며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모든 인간이, 예수님을 버린 적은 딱 한 번밖에 없습니다.

십자가입니다.

 

잔치가 예비된 시각은 십자가입니다. 사람들이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구원의 잔치에 제물로 죽여버리신 겁니다.

유대인들의 손을 빌어서요.

 

십자가에서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합니다. "다 이루었다."

뭐가 준비된 것입니까? 구원이라는 잔치에, 예수님이 유월절 어린 양으로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시자마자 곧 해가 지고 유월절이 시작됩니다.


그래서 유월절이 시작되기 때문에
, 급히 예수님을 무덤에 넣어서 장사했습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명절에, 사람들이 먹어야 될 어린양(고기)로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잔치가 준비되었을 때, 모두가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십자가 아래서, 다 도망갔잖아요.


하나님은 구원을 우리가 쉽게 알 수 있도록

예수님을 십자가에 벌거벗긴 채로 6시간을 모진 고생을 하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먹어야 사는 유월절 어린양을, 십자가에 매달아서 다 보여주셨습니다.

 

그때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잔치할 시간이다.'

구원의 시작은 유월절 잔치입니다. 예수님 죽으신 날 밤부터, 유월절이 시작되었으니까요.

 

그런데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버렸습니다.

사람들이 초청을 거부한 이유가 나오는데요,

이게 지금 우리 시각으로 보면, 우리가 그렇게 고대하는 '축복들'입니다.

 

밭을 사고, 소를 사고, 결혼하는 것

3가지는 신명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신명기에, '너희가 전쟁을 나가는데, 집을 지은 사람이 있다면

그 집을 다 지었는데, 전쟁이 나는 바람에 그 안에서 살아보지 못한 사람은

전쟁에서 빼라. 집으로 돌려보내라.'

 

결혼했으면 당연히 뺍니다.

주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주님은, 나라의 전쟁 중에도

우리 인생의 개인의 행복을 챙기십니다.

 

여러분, 이스라엘은 전 역사 속에, 적군보다 군인의 수가 많은 적이 없었어요.

언제나 적군이 많았어요. 이스라엘의 모든 전쟁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어요. 숫자가 적었어요.

 

문제는, 구약의 역사와 2천년 교회사가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은,

이런 주님이 주시는 행복 때문에,

우리가 주님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 세상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모든 것을 다 가졌습니다.

지혜, 권력, 쾌락, 물질, 부동산.. 다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우리가 부러워할만한 모든 것을 누리게 한 샘플입니다.

그런데 그는, 그것 때문에 주님을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2천년 교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이 교회에 축복을 부어주셨을 때, 그 축복을 관리하느라고

주님을 잃어버렸습니다.

 

신자에게는, 신이 둘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주님보다 '성공'이 높아질 때, 우상입니다.

-가정에서는 '가족'이 우상이고요.

 

본문의 메시지는

마귀가, 세상 사람들을 다 죄를 짓게 해서 지옥에 데려가는 것보다

사실은, 남에게 피해 안 입히고, 남에게 부담 안 주고

그렇게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소시민들이.. 세상에 아주 많이 살고 있죠.


그런데 마귀는 우리를, 뚜렷한 죄를 짓지 않게 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지옥에 데려갑니다.

그게 뭐냐면, '가정의 행복이란 우상'입니다.

'가정의 행복'이 필요하죠. 그러나 주님보다 더 높아지는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밭을 사게 되었고, 새 집을 산 것이고

소를 사게 되었고, 새 차를 뽑은 것입니다.

그리고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다 놀라운 신명기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축복 받아서, 하나님의 구원의 잔치에

초대를 받고도, 못 들어간 것입니다. 가정의 행복이란 우상 때문에요.

 

이 설교 후에, 사람들이 계속 따라오니까

예수님이 돌이켜서 그들을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눅14:25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처자식과 부모를, 형제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합당치 아니하니라.' (그 왕의 혼인잔치 비유 설교의 주제란 뜻이지요)

   

    

◑적용


하나님이 물질을 주셨는데, 물질을 더 사랑하면 그는 타락하는 거 아시죠?

저는 교회에서 너무너무 많이 봤습니다.

 

갑자기 돈이 많이 생기면, 교회 일을 더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성경은 전체가 증명하는 것이, 정말 내가 생각도 못한 그런 부를 맡기시잖아요.

그럼 그것을 누리려하다가, 주님을 못 바라봅니다.


당장 보세요. 대박이 나서 돈을 많이 벌어보세요.

돈 계산하느라, 성경 볼 시간이 없습니다.

돈 많이 버느라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 점점 줄어듭니다.


돈이 많기 때문에, 탁 다 맡기고 '주님 나에게 이런 물질을 왜 많이 맡기셨습니까?'

이렇게 새벽기도하는 사람은 제가 못 봤습니다. 이게 인간입니다.

인간은요, 죽을 때까지 죽여야 할 죄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갑자기 물질의 복을 받아서, 솔로몬처럼, 주님을 놓친 사람이 주위에 보면 많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했는데도, 재물의 임재 앞에서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가정이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결혼한다고, 잔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 가정이 행복할수록, 가정이 너무 행복해서

주님께 감사해서 주님께 헌신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만나는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저희 교회에 오시는 분들을 보면, 어디 소설에 나올만한 비극을 몸소 체험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이거 말하면 누가 믿을까?' 하는, 그런 기구한 인생들이 많이 나오십니다.


그래서 그들은 전심으로 주님께 나아갑니다.

집에서 남편한테 구타당하는 사람, 남편에게 맞아서 팔 부러진 사람,

남편은 일을 안 해요, 그러면서도 팔 부러진 아내에게 나가서 돈 벌어오랍니다.

이 정도 되면, 아내는 오직 주만 바라보게 됩니다.

 

이런 사람도 있습니다. 남편이 너무 패니까, 애가 무서우니까 애가 아빠 편에 섭니다.

아빠 앞에서 애가 엄마를 팹니다. 자기가 살려고요.


정말 제가, 책에 안 나오는 경우를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합니까?

그들은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전심으로 주만 바라보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다 해결되나?' 하며 제가 속으로 놀랍니다.

주님이 하시는 일이죠.

제가 그것을 지켜보는 기쁨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전심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모든 시간에 빠지지 않습니다.

교회에도 일찍 나오고, 교회에서 자면서 철야기도도 하고, 예배에도 빠지는 법이 없습니다.

 

놀라운 것은, 여러분, 어떤 상황속에서도 주님만 바라보면,

주님은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반드시 알아보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가 사탄에게 빼앗긴 영역을 회복해 주십니다.

문제가 해결되는 거지요.

그리고 얼마 후에 남편까지 교회에 나오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아 진짜 대단한 분들 많이 보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런데 이제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의 한 마디에, 그만 무너집니다.


남편이, 교회에 자고 있는 아내 집사님에게 찾아와서 '이제 그만 집에 가자

그러면 매일 교회에 나오던 집사님이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미안해요. 고마워요. 사랑해요!' 그리고 이제부터는 주일날만 나옵니다.

그리고 몇 날이 못 되어 또 집에서 맞기 시작하더라고요.

 

제가 배운 것은, 인간의 죄성입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문제가 해결되면 주님을 더 섬겨야 될 것 같은데

해결되면, 사람들은 나의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동안 밀린 나의 행복까지 다!

 

처음엔 배신감에 제가 씁쓸합니다.

'문제가 다 해결되니까 모르는 척 하고 떠나?'

제가 잠을 쉽게 못 이룰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제/목사가, 주님만 바라볼 차례가 됩니다.

(두 팔을 높이 들고) '주님, 아무도 소용없습니다. 저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나이다!‘


이렇게 기도하면, 제가 회개가 나옵니다. 왜요?

'너는 그 사람의 문제만 해결해 주려고 했지, 그 사람에게 너는 '회개'를 전하지 않았다.'


제가 할 말이 없었습니다.

맞습니다. 그 문제가 있는 동안에는, 제가 전한 것은

'주님은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었지

그 분을 문제 속에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회개의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쉽게 말하면, 기복주의를 전한 것입니다.


'주님은 어떤 문제든지 해결할 능력이 있습니다!'며 능력을 전한 것입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결심하면서도, 또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주님만 바라보세요!'라고 또 권면합니다. 그가 간절히 매달려서,

주님이 그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것을 보면, 너무너무 기쁩니다.

 

그런데 문제가 해결된 분들은 거의 (안 그런 분들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 다 주님을 떠나고, 교회를 멀리합니다.

'목사님 고마워요!'하며 가 버립니다.

이렇게 제가 10년을 허비했습니다.

 

   그런 경험을 지난 10년간 학습한 제가 이제 깨달았습니다.

   문제가 많으신 여러분, 저는 여러분의 문제가 쉽게 해결되기를 정말 원치 않습니다.

   여러분은 기도하죠. 속히 해결해 달라고!

   빚도 속히 갚아주시고, 아픈 것도 속히 낫게 해 주시고

   속썩이는 자녀들도 속이 돌아오길 바라실 것입니다.

 

   저는 정말 기도합니다.

   '주님, 제발 저들의 기도에 속지 마세요! 쉽게 해결해 주지 마세요.'

 

왜냐면 주님의 뜻과 우리를 향하신 진짜 주님의 사랑은, 문제 해결이 아닙니다.

그 문제속에서 우리가 회개하고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에게 문제가 해결되면요,

문제 있을 때는 잘 못 섬겼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주님을 섬깁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을 보기가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지난 12년 동안에요.

 

결국 누가 회개합니까?

제가 그 사람들을 비난하고, 판단하고, 배신감에 괴로워하고, 허탈해하다가

제가 주님만 바라보고,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아 모두 제 죄입니다. 제가 복음을 올바로 전하지 않았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주님

저 사람이 넘어지는 역할을 한 것은, 바로 목사인 제 자신입니다.'

 

이게 자아ego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문제가 해결되어도, 예수님이 주인인 사람은, 문제를 통해 회개에 이르는 은총을 받습니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은,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내가 주인이 됩니다.


하나님보다 철저하게 나만을 위해 사는 사람.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이 중요한 사람.


   여러분, 교회에서 회의를 할 때도, 그 말이 맞냐/틀리냐를 확인하려고 하면 마귀에게 속습니다.

   하와도 선악과가 정말 먹으면 지혜로운지 맛있는지,

   그거 맞는지/틀리는지 확인하려다가 마귀에게 당했습니다.


   어떤 의견이 나오면, 저 의견을 주님을 위해서 낸 의견인지,

   저 의견을 주님이 기뻐하시는 건지 or 자기가 기뻐할 건지.. 이것을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은 뭐냐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로 찾는 뜻은 뭐냐면,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나도 기뻐하는 의견입니다.


그런데 보통의 경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내게는 싫은 일입니다. 그게 딜레마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옮겨 주시옵소서'

죄가 없는 예수님도, 자아는 하나님은 기뻐하시는데, 나는 싫은 것입니다.


여러분도 매일 매일 주님의 뜻을 찾을 수 있습니다.

주님만 기뻐하시는 것을 찾으면 쉬운데,

우리는 뭘 찾습니까? 주님도 기뻐하시고, 나도 기뻐하는 일을 찾습니다.

 

제일 담대한 사람은, 주님도 기뻐하고, 나도 기뻐하고, 예수 안 믿는 내 남편도 기뻐하는 일.

차라리 잭팟(슬롯머신의 777)을 바라십시오. 거의 불가능합니다.

 

여러분, 이건 신앙이 아니라, 영적인 욕심입니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에덴동산만 꿈꾸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도 기뻐하시고, 집안에서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도 기뻐하고,

집안에서 교회 나오는 것 엄청 싫어하는 사람도 기뻐하는 뜻을 찾는 것은

거의 99% 불가능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사람들은, 내가 죽을 죄인임을 알고, 예수님이 나의 죽음을 대신 죽으시고,

나의 죄를 씻으려고 그 피를 흘리신 것을 믿는다면,

나는 기뻐하지 않아도, 주님만이 기뻐하시는 뜻을 찾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됩니까?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세요.

'내가 온 것은, 평안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 마10:34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가족들이 자식과 서로 원수니라.'


우리는 살면서, 이 문제의 어두운 밤을 안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현대 교회의 위험한 점은, 이 회개의 과정은 숨기고,

주님이 행하실 결과(문제 해결)만을 얘기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래요?

여러분, 주님이 풍랑을 잔잔케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풍랑을 잔잔케 해 주세요!' 하며 주님을 깨웁니다.


그러면 주님의 첫마디는, 풍랑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폭풍속에서 주님이 '우리'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내 '문제'(풍랑)를 해결할 수 있을까?'

내 문제를 해결하는 비결을 묻지 마세요.


그게 아니라, 내가 해결하지 못하는 이 문제가 왜 생겼는지

'나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옵소서!


여러분, 우리에게 만약 축복을 맡겼다면, 왜 맡겼는지 뜻을 발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주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신다면, 먼저 승용차부터 바꾸지 않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주님이 우리에게 축복을 주신다면, 먼저 주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사실은 축복과 성공을 주셔도, 나부터 사용하면 안 되겠죠?

 

여러분, 실패와 고통도 마찬가지입니다.

실패와 고통 속에서, 내가 먼저 기뻐하는 것을 구하지 말고,

실패와 고통과 눈물 속에서, 주님만이 기뻐하는 것을 찾으세요.

이게 회개의 완성입니다.


여러분, 주님은 그런 사람과 반드시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문제속에서 회개하려고 하기 보다는,

문제만 해결되기를 바라니까,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주님을 버립니다. 주님과 멀어진다는 뜻입니다.

곧 자기가 주님의 자리에 올라 앉습니다.


제/목회자가 괴로운 것은, 성도들이 간절히 주님을 부르짖지만 그 안에 회개가 없다면

주님만 바라보지만, 그 주님은 왕이 아니라, 자기 목발입니다.

여러분, 다리가 아플 때는, 아내들이 남편보다 목발을 의지합니다.

그렇게 하듯이, 우리가 주님을 목발바라보듯이 나를 도와달라고만 하는 겁니다.

회개하지 않을 때는요. 그저 자기 다리만 빨리 낫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전심으로 주님을 바라보면, 해결되면 그래도 좀 오래동안 주님 바라볼 줄 알았어요.

아니예요. 즉시 기도가 식습니다. 예배가 뜨겁지 않게 됩니다.


주님이 왕이시면, 문제가 해결되는 순간, 이제는 뒤돌아보지 않고 주님만 위해 살 줄로 믿습니다.

이것을 여러분, 주님이 여러분이 지금 어려울 때 보고 있어요. 문제가 해결 안 되었을 때 보고 있어요.

  

정리하면,

여러분, 내가 주인일 때는 마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 문제가 해결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신앙'도 잘 하는 것이지만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런 문제 속에서 내 인생을 향하신 주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제가 고쳐야 될 점이 무엇입니까?' 하며 회개할 점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이럴 때 주님이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면, 우리가 넘어지지 않고, 더 아름다운 사람이 됩니다.

주님이 잔치를 베푸셔도, 우리가 매일매일 놓칩니다.

사실 주님이 매일매일 잔치를 베푸셔도, 본문의 사람들처럼 우리가 늘 놓칩니다.

왜냐면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그 일이, 첫째로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두 번째로 따르려고 합니다.

 

여러분, 지금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주님의 뜻과 주님의 기쁨을 먼저 찾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구원의 잔치를 준비한 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주님이십니다.

문제가 많으십니까? 걱정마세요. 문제를 해결하는 잔치를 준비하신 분은 주님이십니다.


문제는, 내가 주인된다면, 우리는 매일매일 이 잔치를 놓칩니다.

풍랑치는 배에서 힘들어하는 여러분, 주님은 풍랑을 물 위에서 지나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인이신 사람은, 풍랑의 잔치에 나아갑니다.

그는 배 안에 있지 않습니다. 풍랑 속 주님께 나아갑니다. 구원은 주님을 따르는게 구원입니다.


   바벨론 제국에서 다니엘은,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는 당시 온 땅이 우상숭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가 있을 곳이 없었습니다. 우상 숭배가 없는 곳은, 불가마 속과 사자굴이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비록 불속이라도 주님을 택했습니다.

   그들이 주님을 택한 곳은, 문제였습니다. 즉 사자굴과 불속이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세 친구가 예배할 때 주님을 만났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런데 죽을 줄 알았던 불가마 속에서/문제 속에서 세 친구는 주님을 만났습니다.


구원은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구원은 안정이 아닙니다.

회개하지 않은 사람이 구하는 구원은, 안정입니다.

구원은 주님이 풍랑 속에 계시면, 풍랑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구원은 주님이 사자 굴에서 기다리시면, 사자 굴에 가는 것입니다. 다니엘처럼!


다니엘은 사자 굴을 택했습니다.

그랬더니 결국은 다니엘이 섬기던 왕이, 다니엘에게 절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네가 섬기는 너의 하나님 때문이다. 너의 하나님은 온 땅의 하나님이다'라며 다니엘에게 절합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주님께 절하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로 선택하게 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마귀를 주님이 이기십니다.


나를 죽이려고 하는 사자굴을 만든 마귀가 도리어 당합니다.

세 친구를 불태우려고 했던 용광로에 마귀가 오히려 타 죽습니다.


여러분, 하와가 마귀에게 속았던 이유는 하나입니다.

주님께 먼저 반응하지 않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능력으로

이 선악과가 정말 그런건지 이것을 분별하려고 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분별하는 것은, 내 문제가 아니라, 문제를 향하신 주님의 마음,

그 뜻을 분별하는 것이 구원입니다. 이것은, 내가 주인이 아닌 사람만 가능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결단과 기도/ 이 시간에 진짜 여러분이 기도할 때, 여러분이 제물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하세요. 여러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여러분이 저지른 문제속에서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회개하십시오.


   "주님, 내가 주인된 삶을 보여주시옵소서. 고통과 실패속에서 내가 얼마나 나를 위해서 살았는지,

   내 판단만 믿고 살았는지, 가르쳐 주시옵소서."


   사실 이것은 나의 고통과 실패 외에는, 내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을 감사할 수 있다면,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주님 그렇습니다. 고통과 실패속에서 얼마나 내가 자기애에 빠져있는지

   나의 기준, 내 판단만 신뢰하는지, 감사합니다, 주님.

   그 판단이 맞건, 틀리건, 나로 말미암은 판단인 것을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실패도 고맙습니다. 아픔도 고맙습니다.'

 

   이렇게 여러분이 기도할 수 있다면, 여러분의 인생이 달라질 것입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 전혀 다른 인생을 시작하게 하십니다.

   "주님, 이 시간에 저희가

   주님 저희가 마귀에게 속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주인되었기 때문입니다.

   라고 고백할 때, 오 주님 도와주시옵소서.

   문제 해결을 바라는 것보다, 문제속에서 주님께 돌이키는 교회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전심으로 주님께 돌이키고, 먼저 주님께 충성함으로

   주님, 저주를 복으로 바꾸시는 부활의 주님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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