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의미 | 신명기 8:2-3 | 김준식 목사 (남가주 샬롬 교회) - YouTube
◈고난의 의미 신8:2~3, 렘15:16, 시31:15 스크랩, 출처
◑서론 / 고난의 의미를 알면, 그래도 어느 정도는 쉽게 통과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습니다.
교회일로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건강으로 어려움, 자녀들 때문에 속 썩을 때도 있고,
사업으로 인해서 고전할 때도 있고, 인간관계속에서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셔서, 우리를 그 능력으로 사랑해주시는 하나님께서
때때로 우리가 고난을 당하도록 허락하시는 것일까요?
신학적으로 그것을 "The Permissive Decree 허용하시는 뜻"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에 살면서 고난을 당하도록 허용하시는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난 자체도 어렵지만, 여러분 고난을 겪어보시면 얼마나 고난이 괴롭습니까?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입니까?
그런데 고난도 괴로운 일이지만, 그 고난 속에 담겨져 있는 뜻을 우리가 깨닫지 못할 때,
그 고난을 견뎌내기는 더 어려운 것입니다.
Why me? 어째서 내게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이런 한탄과 자기연민과 피해의식 속에 빠져 들게 되는 것이죠.
고난의 의미를 알지 못할 때 그렇게 됩니다.
만약에 고난이 닥쳐와도, 그 고난속에 뜻이있다. 고난 속에 길이 있다고 믿고
그 고난의 의미를 깨달은 사람은, 마침내 그 고난을 극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난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문제 제기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계시해 주시고 계십니다.
◑1. 고난을 통해, '나를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길을 40년 동안 걸어오면서, 많은 고난을 겪었는데
'그 고난의 의미가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왜 고난을 허용하셨는가요?
그 허용하신 뜻이 무엇인가요?' 본문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신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우리 말 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죠.
다른 사람 속만 아니라, 내 속을 내가 모릅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어떤 동기가 숨어있는지
나의 삶을 추진하는 내 인생에 동인과 동력이 무엇인지를, 나 자신도 간파 못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고난을 당하다 보면, 내 마음 깊은 곳에 무엇이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마음의 비밀을 아시는 하나님, 내 인격의 비밀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내가 고난을 통과하는 가운데
내 속에 있는 것을 드러내 주시고, 나타내 주시고, 나로 하여금 그것을 깨닫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얼마나 연약한 자인지, 내가 얼마나 하나님께 반역하는 죄인인지
내가 얼마나 원망 잘 하고, 잘 대들고, 미성숙한 신자인지..
얼마나 하나님이 말씀에 불순종적인지.. 그게 다 드러나는 거죠.
고난과 시험을 당하기 전에는, 내 진면목, 생얼(민낯)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험이 닥치고, 위기가 닥치면.. 내 본성이 드러나게 되고.. 그러면서 회개의 길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게 고난과 시험이 주는 첫 번째 축복이요 은총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이런 기도가 필요합니다.
시139:23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24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이 기도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고난을 통해 내 허물을 깨달고 회개한 후에,
'하나님, 저를 영원한 길로, 생명길로, 의의 길로, 평강의 길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시편 중의 시편이라는 시23:3절에도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소생시켜 주실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의의 길로, 평강의 길로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시139:23~24
이런 시편기자의 기도가 나의 기도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 두 번째 고난의 이유는 "나를 낮추시며"입니다.
신8:3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너를 낮추시며'란 표현은, 2절에도 나오고, 3절에도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런데 16절에 세 번째로 계속 반복해서 나옵니다.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신8:16
고난의 의미, 그것은 우리를 "낮추시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왜 내게, 이런 고난을 허락하실까요?
그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아, 고난은 바로 나를 낮추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거구나’
C.S.루이스는 오래 독신남으로 살았습니다.
그가 처음 한 여성을 만나서 너무나 열정적으로 사랑하게 되었고
또 결혼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그의 나이 58세 때였습니다. 만혼이죠. *늦은 결혼
그렇게 사랑하고 기뻐하고 그의 삶이 달라질 정도로
그런 뜨거운 사랑을 했었던 그 아내가, 뼈 암에 걸려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습니다.
그의 나의 62세였습니다. 4년동안 결혼생활을 한 것입니다.
그 아내가 죽어가는 그 과정 속에서, 그가 겪었던 슬픔, 그것을 책으로 써서 출판했는데,
<A Grief Observed 슬픔의 관찰>라는 책입니다.
자기 이름으로 그 책을 내지 않고, 너무 개인적/사적인 얘기라서 필명(가명)을 썼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잃고, 상처입은 슬픔 가운데 있었던 C.S.루이스에게
누가 그 책을 자기에게 선물해 주었다고 합니다. '이 책을 좀 읽고, 위로를 받으세요'
그가 쓴 책인줄 알지 못했던 것이지요.
나중에 그가 죽은 다음에, 그 책의 저자는 바로 C.S.루이스인줄 뒤늦게 알려졌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C.S.루이스에게 누군가가 다가와서 위로하는 말로이렇게 얘기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왜 이 세상에는 이렇게 고난이 많은 것일까요?'
그때 C.S.루이스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교만한 우리인데, 만일 그 고난마저 없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교만해졌을까요!'
처음이자 마지막의 사랑을 했었던 C.S.루이스였지만,
아내 잃은 상처의 슬픔속에서, 그가 한 가지 발견했던 고난의 의미,
그것은 바로 자기를 낮추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 교만해지기가 쉬운 존재입니다. 제가 제 자신을 들여다봐도 정말 교만해지기 쉽고,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것들로 우쭐해지고, 자랑하기 좋아하고,
교만해지기 쉬운 제 마음을 제가 관찰하게 됩니다.
그러한 우리들을 향하여 롬12:3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뜻을 품지 말라' 무슨 뜻입니까?
결국 자기자신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자기 과신, 과대평가를 언급하는 말씀입니다.
갈6:3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우리는 다 자기 자신이 썸바디 인 것으로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자기 자신이 대단한 존재인 것으로 생각하고, 자기 존재감을 그렇게 과시하기를 애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때때로 고난을 허락하시는가요?
그렇지 않아도 오만해지기 쉬운 우리들의 마음을, 낮추시기 위해서요!
그래서 내 마음속에 나의 삶을 추진시키는 그 동기와 동인이 무엇인지를,
나로 깨닫게 하기 위해서 내 마음이 어떠한지, 과연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살려 하는지,
아니면 여차하면 세상 낙을 좇아서 하나님을 버리고 말씀을 버리고 세상으로 치닫으려 하는지,
고난을 통과하면서 내 마음에 실상을 깨닫게 하려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나를 낮추셔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임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신8:3절에 말씀합니다.
우리는 밥/떡/빵이 없으면 못 삽니다.
그러나 빵만으로는 결코 살 수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온통 육체덩어리라면, 빵만으로도 살 수 있겠죠.
그런데 우리는 육체+영혼의 존재이므로, 우리 육신이 밥을 먹고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우리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어야만 힘을 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의 무서운 시험, 40일 주야로 금식하셨으니까,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이 변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라고
시험하는 자가 예수님을 시험했을 때, 뭐라고 대답하셨나요?
'기록하였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느니라'
예수님이 신8:3절을 인용하셨죠. 사람은 떡으로만 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영혼육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어야만 살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는, 고난을 통해 절실히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역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순종하려다가 많은 고난을 당했습니다.
자기 동족으로부터 배반자, 반역자라는 그런 누명을 씌움 당하고
많은 핍박과 고통을 당하며, 소위 '슬픔의 선지자, 눈물의 선지자'로 살아갔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에게는 남모르는 기쁨과 즐거움의 근원이 있었습니다.
렘15:16b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고 살았던 예레미야, 그 말씀을 늘 마음속에 간직하고 살았던 예레미야,
비록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다가 고난과 핍박을 당했을지라도,
그러나 말씀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이 그를 든든히 세워주었던 것입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행20:32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교회는 말씀의 교회입니다.
따라서 어떤 형태로든지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고자 하는 자는,
그 말씀에 익숙치 않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심령, 나의 휘청거리는 연약한 믿음을 든든하게 세워주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너희를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케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
기업은, 회사를 뜻하지 않습니다. inheritance인데, 그 기업이 무엇인가요?
여러분이 경영하시는 사업체가 있다면, 또 여러분이 운영하시는 가계가 있다면
그 가게가 이 세상에 정말 기업이죠. 꾀할 기企의 company 또는 firm(회사) 말고,
하나님이 여러분과 자녀들을 위해 주신 기업 터 기基의 기업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 세상에 살면서 어려움을 당할 때도, 믿는 구석이 있습니다.
내가 열심히 일할 수 있는 내 사업장이 잇는 것, 이게 정말 내 기업이다.
이렇게 자부심을 갖고 사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특별히 내게 주어진 독특한 기술, 지식, technology, business를 기업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에게 영원한 기업이 되지는 못합니다.
우리들의 영원한 기업이 무엇인가요?
애3:24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한 기업이 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눈으로 볼 수 없다고 쉽사리 불신앙가운데 떨어지는 연약한 우리들을 위하여,
눈에 보이는 형태로 우리에게 주신 기업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이 손에 들고 계신 성경책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말씀,
그것이 우리의 영원한 기업입니다.
시119:111주의 증거들로 내가 영원히 나의 기업을 삼았사오니 이는 내 마음의 즐거움이 됨이니이다
하나님과 말씀이 우리들의 영원한 기업과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세상적/육신적/가시적인 것들 그것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안정되고 더 든든하고 더 영원한 기업이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기업이 내게 있으니,
그 기업은, 바로 하나님과 말씀이 나의 영원한 기업입니다.
그런 고백과 경험이 여러분의 마음과 삶속에 임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세 번째로 고난의 의미는 <마침내 복을 주기 위함>입니다.
신8:18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비록 내가 일정 기간동안에 고난을 통과하고, 역경을 통과하고
내 인생이 곤경에 처했을지 모르지만,
'This too shall pass 이것 역시 지나가리라'
그리고 하나님이 예비하신 복을 받아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소망과 비전이 여러분께 임하게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렘29:11.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렇게 약속하고 계십니다.
신8장에서 고난의 의미 3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2절, 3절, 16절에 공통적으로 나온 고난의 가장 중요한 의미
그것은 바로 '나를 낮추시기 위함'입니다.
나를 낮추셔서,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나의 영원한 기업과 기쁨으로 삼고 살게 하시고
비록 지금은 고난을 통과하고 있지만, 이것 역시 지나가게 될 것이고
마침내 하나님의 위대하신 풍성한 복을 받아 누리게 하심이신줄 믿습니다.
◑4. 고난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가는 길이 지금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기억하십시오.
우리보다 훨씬 신앙이 훌륭했던 예레미야 선지자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
렘10:23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니 걸음을 지도함이 걷는 자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
무슨 뜻입니까? 걸음은 내가 걷지만, 그 걸음을 지도하고 계신 분은 따로 계신다는 것입니다.
나는 내가 가는 길을 다 알지 못합니다. 내일 일을 알지 못하고,
내 인생의 종착역에 무엇이 놓여있을지도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나보다 더 높으신 전지하신, 지존하신, 영원하신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내가 가는 모든 길을 예비하시고, 주관하시고,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섭리 providence'입니다.
미리 보시고, 예비하시고, 주선하시고, 준비하신다는 뜻입니다.
섭리를 한자어로 풀면 섭 '붙들 섭攝, 끌어당길 섭'입니다.
하나님께서 펴신 팔, 강한 손으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을
붙드시고 끌어당기시고 지켜주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
여러분의 삶속에 순경과 형통이 다가오든, 역경과 고난이 다가오든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합력하여, 결국은 선을 이루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 하나님이 섭리의 손에 여러분이 지금 붙들려 있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시대가 주의 손 안에 있는 것입니다.
시31:15,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사오니
My times are in thy hands
70인역에서는 시대를 '카이로이'로 번역했는데, 카이로스의 복수형입니다.
즉 내 삶의 중요한 고비, 생사가 결정되고 승패가 갈라지는 내 인생에 중요한 순간들,
그 계기들은 남에게도 있지 않고, 나에게도 있지 않고, 주님의 손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 시대가 주의 손에 있습니다. 남의 손에, 대적의 손에 있지 않습니다.
연약한 나의 손에도 있지 않습니다.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손에 있고, 여러분의 삶과 인생의 중요한 고비들이,
중요한 결정적 순간들이 다 주님의 손 안에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고난을 통과하시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전달해 드리고 싶은 하나님의 말씀은 이것입니다.
시37:23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시나니
24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걸음을 정하시고 그의 길을 기뻐하십니다. 여러분을 그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 길을 가던 우리가, 실수할 때가 있죠. 오판할 때도 있습니다. 패착을 둘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넘어지고 쓰러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생 길에,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시고,
특별히 여러분의 교회가 가는 고난의 길 가운데,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혹시 여러분이 어려움을 겪으셔서 넘어지는 일이 있을지라도,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드심인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도/아버지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저희 연약한 인생이
광야와 같은 이 세상 길에 고난을 당하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이는 다 하나님 앞에서 저희들을 낮추시기 위함인줄로 믿고,
하나님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의 길로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저희들의 영원한 기업과 기쁨으로 삼으며,
마침내 하나님께서 저희들에게 복을 주실 그 날을 소망하며 살아가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연약한 저희들이 믿음의 길을 가다가,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그 길을 행하다가,
혹시 어려움을 당할 지라도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손으로 붙들어주심인줄 믿사옵나니,
하나님 그 긍휼과 권능의 손으로 이 교회를 붙들어주시고,
모든 성도님 한 분 한 분을 붙들어주셔서,
이 믿음의 길, 의의 길, 생명의 길을 다 가고 거기서 주님 앞에 경배드리며,
영원토록 주를 섬길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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