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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글 스크랩

LNCK 2016. 3. 21. 11:17

◈묵상글 스크랩                      요8:23                     인터넷에서 스크랩 편집


※일년에 이번 고난주간 만큼이라도 '내 문제', '온통 내 관심'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주목하고 묵상하는 가운데서, 나를 재발견 하는 시기로 삼으려 합니다.



◑1. 내가 뽑힌 이유

      

맞은쪽 동네로 가거라. 그곳에 들어가면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어린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을 풀어 끌고 오너라.”

 

저는 어린 나귀여서 몰랐습니다. 

나귀란 등에 뭔가를 태워야 할 존재라는 것을 진정 몰랐습니다.

 

저는 어린 나귀여서 맘껏 뛰놀고 여기저기 뛰어다니기만 좋아했지

짐을 지거나 사람을 태워야 될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또 저는 어린 나귀여서 힘도 없고

누구를 한 번도 태워본 적이 없어서, 누구를 태울 기술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나귀여서 무거운 짐을 져야 하는 것이 운명이고,

사람을 태워야 하는 것이 운명임을 오래지 않아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누가 와서 저를 끌고 갔고, 저는 생전 처음 사람을 등에 태웠는데

그분은 나를 타고 예루살렘 성읍으로 입성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별로 볼 것도 없고, 사람도 많지 않은 시골에서 살던 제게

예루살렘 풍경은 이것저것 못 보던 것들이 많아 매우 낯설었고,

무엇보다도 사람이 많아 정신이 없었는데

왠지 그날은 사람들이 더 많이 나와 소리소리 지르며 우리 일행을 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소리를 들어보니 제가 태운 분이 보통 분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보고 환호성을 지른 것이 아니라

진정 제가 주님을 태운 것이었습니다.


아무 짐도 지고 싶지 않았던 제가,

아무도 태워본 적 없던 제가, 처음 누굴 태웠는데 그분이 주님이었던 겁니다.

 

두 가지 감정이 같이 있었습니다.

-제가 주님을 태웠다는 우쭐하는 마음도 있었고,

-그런 자랑스러운 마음과 더불어 감사하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주님이 다른 훌륭한 말들도 있고,

수없이 많은 사람을 태웠던 노련한 나귀들도 있는데

그들을 놔두고 저를 선택하신 것이, 너무 과분한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님께 왜 저를 뽑으셨는지 여쭈었습니다.

주님, 훌륭한 말과 어른 나귀들도 많았는데

그런 것들은 다 제쳐놓고, 하필이면 왜 어리고 약한 저를 뽑으셨습니까?’

 

그러자 주님은 나는 지금 죽으러 가는 것이기에

거기에는 멋진 말이 필요치 않고, 너 같이 힘없는 나귀가 제격이야.’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거였습니다.

      

멋진 말은 세상 임금이나 귀한 사람들이 타는 것이고,

곧 죽으실 주님께는 제가 필요하다는 말씀에, 저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비참하게 죽으실 거라는 것이 너무 충격이었고,

제가 그런 현장에 필요한 존재라는 것도 너무 충격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힘도 경험도 없어서, 짐을 지거나 누굴 태운다는 것이 너무 버거운 저이지만

저는 버거운 짐을 지는 것도 아니고, 다른 누구를 태우는 것도 아닌

주님을 등에 업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수난의 현장엔 정말 비실한 제가 제격입니다.

저는 힘이 없고 경험도 없기에 권력을 등에 업을 수는 없고,

 

비틀거리면서 주님을 업고 다닙니다.

저는 비틀거리지만, 그래도 저는 주님을 업은 사람인 겁니다.

    

이것이 저의 자랑이고,

이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2. 사랑해야 '안다'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안다.

나는 그분을 알고 또 그분의 말씀을 지킨다. (8:55)

 

우리는 누구를 안다는 소리를

쉽게 합니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사람은

우리가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안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말과 같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니까, 그분의 말씀을 충실히 잘 지킵니다.

사랑하니까 그 말씀을 지키는 일이 힘들지 않습니다.


    나는 주님을 '아는' 사람입니까?

    즉 사랑하는 사람입니까?


    주님은, 사람을 '인공지능'으로 만드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인공지능이 머리는 좋지만.. '사랑'을 못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죽고 나면 훌쩍 변화되어  *요일3:2참조

    완전한 인격체가 되어,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게 되리라 .. 상상하는데요.

    그건 인공지능이나 가능한 거지요.


    주님은, 인공지능의 사랑을 받기 원하지 않으십니다.

    부족하고 서툴러도, 인격체의 사랑을 받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참으로 내가 알고, 즉 사랑하고

그 분을 위해 내 모든 것을 바치는

그런 주님이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하지만 나는 그분을 안다.”  요8:55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는 알지만,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그 말씀이 맞는 것은, 

우리의 모든 생각과 관심의 중심은 오직 "나"입니다.

내 생각, 내 관심, 내 현실, 내 미래, 내 가정, 내 건강  


그러나 '나는 그 분을 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을 아시고, 사랑하신 분이었습니다.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요6:38 
   

예수님의 생각 속에는, 늘 '아버지의 뜻'이 온통 자리잡고 있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예수님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답은, 사랑함으로써! 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사랑을 하면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만큼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욕심 없이 사랑하면, 더 순수하게 하나님을 알고, 

   원수까지 사랑하면, 더 깊이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아침, 저녁 기도시간에

'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과연 행했는지'

'내 삶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그 일이 무엇인지'

여쭈어 봅니다.


매일 매 시간, 내가 사랑하는 진짜 대상이

'나 자신'인지

'주님'이신지

정직하게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고난주간에!



◑3. 혼자 버려두지 않는다.

 

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누군가와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고 기댈 곳이 있다면 다행입니다.

신뢰를 가지고 만날 수 있고, 말하지 않아도 통할 수 있다면 복입니다.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호소하지 않아도,

공감해 주고 나를 배려하는 친구가 있다면 행운을 잡은 것입니다.


소유하지 않고 지배하지 않으며, 나의 있는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이웃을 만나는 것은

더할 수 없는 큰 기쁨입니다.



더군다나 침묵 중에 나를 바라보시는 주님을 만난다면, 더 없이 행복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시간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아래에서 왔고,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8:23


그렇다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는,

마음과 열성을 다하여 위의 것, 즉 천국을 추구하는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고

그것이 진정한 행복의 길입니다.


세상 것을 추구하면서, 주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속하지 않으셨고, 위에서 오셨으니까요.


  

예수님을 믿고 그분이 원하는 일을 함으로써 마침내 그분과 하나 된 바울은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갈2:20


그러므로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마음을 두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분은 언제나 나를 버려두지 않으신다는 것에 감사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8:29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나는 항상 그가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4.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나를 지키시는 주님


성경 곳곳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주신다는, 놀라운 약속들이 나옵니다.


시91: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2.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1절을 영어로 읽으면 더 멋있습니다.

He who dwells in the shelter of the Most High will rest in the shadow of the Almighty.

 

또한 하나님은 우리를 지키시되,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시편 121:4,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지키신다'는 Keep (지켜 보호하신다)도 되지만

Watch over(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지켜주신다)로 번역한 성경도 있습니다.


'졸다'를, 보통은 slumber(졸린다)로 번역하지만,  

not tire (지치지 않으신다. 피곤해하지 않으신다)로 번역한 성경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늘 위에서 내려다 보며 지켜주시는데,

지치지 않고, 피곤해 하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고

24시간 주야로, 철통 같이 지켜보고 계시며, 보호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요즘 '캡스' 같은 각종 사설 보안회사가 뜨고 있는데,

주님의 24시간 보호에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는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인데,

그런데 우리가 종종 이런 주님의 보호하심을 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주님을 사랑하지도 않고,

   주님을 알려고 하지도 않고,

   늘 자기 생각에만 몰두하며,

   자기만 바라보고, 쳐다보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 자신만 바라보는 시선을 거두어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생각하는 한 주간이 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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