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6

예수님의 피 값

LNCK 2016. 3. 22. 14:15

◈예수님의 피 값                    마27:3~10                      16.03.21설교녹취, 출처

                                                                                         

 

▲도입

네덜란드에 가면, '공포의 집'이란 이름의 집이 기념으로 남아있다고 합니다.

사연인즉 16세기에 스페인이 침략해 옴으로, 네덜란드 국민들이 이에 항거하여 싸웠습니다.


이때 스페인 왕 필립2세가, 알바 공작의 지휘 아래

네덜란드에 많은 군대를 보내서 집집마다 뒤져서, 사람들을 찾아서 죽이곤 했는데

한 주택가 귀퉁이 집에 남녀 여러 명이 숨어서 공포에 떨고 있었습니다.


군인들이 몰려오는 소리를 멀리서 듣고는 어쩔 줄 몰라하고 있을 때

한 젊은이가 기지를 발휘합니다.

그는 집 앞에 있는 염소를 잡아서, 그 피를 쏟아서 빗자루로 그 피를 집 현관과 대문 근처에 뿌렸습니다.


스페인 군인들이 그 집에 도착해서 이렇게 늘려진 핏자국을 보고는

'아 이 집은 이미 다 죽었구나' 하면서 그 집을 지나쳐 버렸다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죗값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심판을 받고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했는데,

우리의 죗값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흘리신 피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자마다 값없이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 이후에 부활주일까지 한 주간을

   '고난주간' 또는 '거룩한 한 주간'으로 부르고 지킵니다.

   그것은 이 주간에 인간 역사상 단 한 번뿐인 가장 소중한 인류 속죄의 대 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해 완성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바로 이 십자가의 피로 탄생한 생명의 종교입니다.

초대교회의 뜨거운 생명력도,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있었습니다.


아니, 성경 전체가 누군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성경 전체를 짜면, 그 안에서 피가 나온다.'

인류 최초의 복음도, 바로 피에 있었고, 마지막도 피에 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모일 때마다 성만찬을 통하여, 속죄의 피를 기념했고

사도들은 십자가의 피와, 승리의 부활만을 전파했습니다.

오늘도 이 예수님의 피는, 우리에게 놀라운 역사를 가져옵니다.

 

◑본론

 

자 오늘 종려주일이면서, 고난주간을 시작하는 첫 날,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이 점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자 여러분은, 예수님을 얼마나 가치 있는 분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예수님은 여러분 자신에게 얼마만큼 가치가 있는 분이십니까? ←문제 제기, 설교의 주제

 

기독교신자라면 '예수님은 내게 가장 소중한 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이 대답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나의 소중한 것을 버려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때 내가 예수님의 값을 얼마로 매겼는가를 이렇게 확인하게 됩니다.

 

슬프게도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이 체포되는 과정에서 두 단어가 계속 나옵니다.

입니다.


저들은 예수님의 몸과 피의 가격을 놓고, 돈을 흥정했습니다.

가룟 유다와 유대 대제사장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값싸게 팔고 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의 피가 어떤 가치가 있는가를

구원 역사의 관점에서 알려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피 값이 얼마인지, 우리는 얼마로 매기고 사는 지를 점검할 수 있습니다.

 

갸룟 유다는 예수님의 값을 은 30에 팔고, 그것 때문에 후회했습니다.


27:3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이 말씀의 배경은, 26장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한 여인이 아주 값진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이 분개해서 막 비난합니다.

   '이렇게 값비싼 향유를 한 개인의 머리에 붙다니..

   차라리 이것을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주는 것이 훨씬 나을 뻔 하였도다' 하면서 비난했습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예수님은, 여자의 행동을 비난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향유를 부은 것은, 내 장례를 위한 것이며,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기억될 것이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이 복음은, 예수님의 죽음을 가리킵니다.

   왜냐면 예수님의 죽음, 그 대속물은 많은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이 복음이 예수님의 죽음에 가장 가치 있는 길임을 알았기에

   바로 그 향유를 아낌없이 부었습니다.


   그때 그 자리에 있던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인 가룟 출신의 유다는

   대제사장에게 찾아가서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 줄 터이니, 얼마 주겠느냐?'

   그리고는 팔아버렸습니다.


왜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버렸을까요? 여러 가지 추론이 있습니다.

아마도 가룟 유다는 자기 생각에 '예수님이 혁명가로 뭔가 일을 낼 것이다' 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예루살렘에 도착하고 나서도 전혀 그러한 혁명적인 일을 할 것으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의 죽음을 얘기하고 있고, 그리고 향유 쏟은 것을 보시고, '저가 내 장례를 예비했다..'

그 얘길 듣고, 그냥 자기가 생각한대로 되지 않으니까, 그 길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가 돈에 연루되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유다는 제자들의 공동체에서 돈궤를 맡고 있었습니다.

12장에 '그는 도적이라.' 즉 그 돈궤에서 돈을 슬금슬금 자기 호주머니에 넣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까 유다에게는 돈에 대한 욕구가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제사장들을 찾아가서, 내가 예수를 넘겨 줄 터이니 얼마를 주겠느냐고 흥정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제시한 금액은 은 30 개이었습니다. 

유다는 그 돈으로, 예수님을 팔아버렸습니다.


유다는 예수님이 이루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자신이 기대한 나라가 아니라고 확신했고,

실망과 분노와 탐욕으로 예수님을 팔았습니다.


유다가 이렇게 돈을 받고 스승을 판 것으로 보아서,

그는 이제까지 예수님을 순수한 의도로 따르지 않았습니다.

자기 인생의 미래에 대한 투자의 목적으로, 예수님을 따랐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는 자리에서 여자가 향유를 부었을 때,

이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들은 다음에는,

'아 이분을 더 따라가봤자, 내가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없겠구나' 생각하고는,

그냥 달려가서 예수님을 팔아버렸습니다.


충격적이게도 이 유다가 받은 은30, 21:32에 보면,

가축이 남의 집 종을 들이받았을 때, 그 가축의 주인이 종의 주인에게 배상금으로 지불하는 액수였습니다.


또한 은 30은 슥11:12절에 보면, 양떼를 치는 목자에게 지급한 금액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스가랴 당시에 은30, 노동자의 넉 달치 월급이었습니다. *1년 중 넉달만 목동에게 맡겼나 봅니다.


*아니, 어떤 사람들의 눈에는, 예수님의 가치가, 그 소중한 피 값이.. 완전 헐값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치를, 그 피 값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이지요. 가룟 유다 같은 사람입니다.


만왕의 왕 하나님의 아들이, 넉 달치 노동자의 월급으로 가격이 매겨졌습니다.

혹시 오늘 우리 모습은 아닙니까?


이같은 유다의 모습은, '예수님을 이렇게 따르면 무엇인가 이렇게 얻게 될 것이다' 라는

욕심을 갖고 따른 사람들의 전형적인 유형입니다.


그런 목적으로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예수님을 헐값에 배신하고 버릴 수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 우리 주변에는 이러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 믿고 영생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예수 믿고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복 같은 것을 기대했다가,

그 기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미련 없이 예수를 버리는 사람들,

바로 가룟유다와 같은 유형의 사람입니다.


또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돈을 사랑하고, 돈을 위해 예수 믿는 것을 수단화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어떤 이득을 챙기려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교회의 공동체를 이용해서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사람들,

바로 그 배후에는 가룟유다와 같은 그러한 모습이 숨겨져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이런 모습이 없는지, 한 번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시 물어봅시다.

나에게 예수님은 얼마의 가치가 있는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내게 어떠한 가치의 대상이십니까, 혹시 은30 개는 아닙니까?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 앞에 예수님을 판 값을 도로 갖다줍니다.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다'고 했습니다. 마27:4

유다가 지금 후회하고 있죠.


그런데 그들은,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 그것은 네가 책임져라'하며 대꾸하지 않았습니다. :4b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의 책임을 가룟유다에게 뒤집어 씌우려한 것입니다.

'우리는 유다 너의 제안을 받은 것 뿐이다' 라는 식입니다. 그러면서 전혀 죄의식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때 유다는 받은 돈 은30을 그들 앞에 던져놓고 나가서, 목을 매달아 자결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27:6


그들은 유다가 반납하고 간 은30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합니다.

'아 이것은 깨끗한 돈이 아니니까, 성전 금고에 넣어둘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왜냐면 피값/생명값을 치른 돈이었기 때문입니다.


▲은30은 예수님의 피값이었습니다. 그 피값에 대해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27:9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일렀으되

그들이 그 가격 매겨진 자 곧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가격 매긴 자의 가격 곧 은 삼십을 가지고

10 토기장이의 밭 값으로 주었으니, 이는 주께서 내게 명하신 바와 같으니라 하였더라.


여기에 보면 은30에 대해서 '값이 매겨진 자의 값이라..' 이렇게 말씀합니다.


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얼마만큼의 가치로 여겼습니까?

얼마만큼 존엄하게 여겼습니까?

유다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예수님을 은30이라는 가격을 매겼습니다.


아니, 유대인들이 얼마나 예수님을 우습게 생각했으면


27장에서 빌라도가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 무죄하다, 책임이 없으니 여러분들이 알아서 하시오'

라고 얘기합니다. 그때 그들이 유대인들이 뭐라고 얘기합니까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소서'

이 얘기는 '그거 아무 것도 아니야' 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존엄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가치 있는 분으로 생각했다면, 함부로 그런 막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소서' 라고 이야기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예수님의 피()에 대해서 하찮게 생각했습니다.

   그 하찮게 여긴 피 값을, 그들은 2천년이 지나도록 그 후손이 대대로 계속 치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피 값이 얼마나 될까요?

예수님의 피의 값! 그것을 인간적으로 한 번 계산해 보면,


왕상3장에서, 솔로몬이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릴 때

한 번 제사드릴 때 양1천마리를 잡아서 드렸습니다.


왕상8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화목제물을 드릴 때, 소가22천마리, 양이 12만 마리,

그것도 이등품은 빼고, 흠이나 저는 것, 눈먼 것, 상처 있는 것을 다 뺐습니다.


그리고 매년 유월절마다 가족 수대로 15명당 1마리씩 양을 잡아서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출애굽 때는 250만 정도 되니까, 16만 마리를 잡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솔로몬 당시 인구가 6백만 정도였으니까, 40만 마리의 양이 피를 흘려야 했습니다.

매년 유월절에만 잡았던 양이, 50만 마리가 더 된다 할지라도,

2천년 동안이라면 적어도 10억만 마리의 양들이 피를 흘렸습니다.


그밖에도 이스라엘에 얼마나 많은 제사제도가 있었습니까.

그러니 셀 수 없는 많은 짐승들이 피를 흘려 죽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보혈의 값, 예수님의 피값에 견줄만한 가치가 아니었습니다.


구약에 잡았던 수많은 양들은, 예수님의 보혈의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예수님의 그림자였던 것이었죠.

 

자 그렇다면 왜 긴긴 세월 수천년 동안, 그렇게 수많은 양들이 피를 흘려야 했을까요?

그 모든 짐승의 피보다 더 값비싼 단 한 번의 속죄 제사로 드려진

예수님의 피의 가치는, 돈이나 양으로 계산할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 소중한 보혈을, 우리에게 거저 은혜로 주신 보혈!

   주님의 은혜를 우리가 감사하며, 그 은총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특별히 이 고난 주간에, 주님의 보혈의 피값과 그 공로를 늘 되새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값비싼 보혈의 공로를 찬송합시다 


예수님은 피조물이 아니십니다. 그분은 천지창조 때 함께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창조주되신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셨습니다.

바로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피는, 어마어마한 값어치가 있는데, 바로 우리를 위하여 부어주셨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그 피를 사용하라고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이 보혈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십니까?


우리 주변에 그런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내가 옛날에 운전면허 땄는데, 장롱면허 된지 지금 10년 되었다'고 말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에게 부어졌는데

그것으로 우리 죄가 사함 받았을 뿐 아니라

우리가 그 보혈 안에 거하고, 그 보혈을 능력있게 사용하라고 주셨는데

우리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용하면 사탄이 무너집니다. 사용하면 견고한 진이 파해집니다.

사용하면 질병이 떠나갑니다. 사용하면 악한 영들이 우리를 괴롭히지 못합니다.

사용하기만 하면 하늘의 넉넉하고 부요한 것들이 우리의 몫이 됩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은, 아무 많이 사용해도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없습니다.

아니, 우리가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우리는 능력있는 크리스천이 됩니다.

 

▲미국에서 유명한 신유의 바람을 일으킨 래리 리 목사님은

39세때 귀가 들리지 않아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었습니다.

병원에 입원해서 어느 날 밤2시쯤 되었는데,

소리를 듣지 못하는 그의 귀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래리야, 나가서 전하라. 내가 고쳐 줄 게!' 그의 마음속에 주신 하나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래리는 '하나님, 저는 지금 귀로 듣지 못합니다. 듣지 못하는데 어떻게 전합니까?

저를 고쳐주시면 나가서 전하겠습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하나님과의 대화가 이어졌습니다. '먼저 가서 전해라. 그러면 내가 고쳐 줄게'

'아니에요. 고쳐주시면 나가서 전하겠습니다.'

밤새도록 하나님과 이렇게 대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아침이 되었습니다. 의사의 회진이 왔습니다.

의사는 래리 리 목사가 있는 병실에 들어온 순간, 그에게 이사야의 말씀이 들려졌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자 이 말씀이 자기 마음에 새겨진 리 목사는, 확신을 가지고 의사에게 말했습니다.

'의사 선생님, 저 퇴원시켜 주십시오.'

의사는 '만약에 당신이 수술을 받지 않고 그대로 병원에서 퇴원하면,

당신은 이제 영구히 귀가 먹게 될 것입니다.' 그것을 종이에 써서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리 목사는, '나는 당신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겠습니다.' 하고는 병원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곧장 공원으로 갔습니다. 공원에 가니 수많은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리 목사는 큰 소리를 지르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그 귀가 뻥 뚫어졌습니다.

그 길로 그는 나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더 담대하게 전했습니다.


그 후로 그는 치유사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위하여 채찍에 맞으시고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공로로

모두가 나음을 입을 수 있다는 확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능력 있는 치유의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에 때때로 두려움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 심신이 가라앉을 때도 있습니다.

때때로 자신도 모르게 삶에 지쳐 쓰러질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 그때 어떻게 일어나십니까?

그런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영적 침체에 빠졌습니다.

아무 의욕이 없습니다. 두려움이 찾아옵니다.


제 삶의 여정에도 그런 때가 가끔씩 있었습니다.

제 삶에 가장 크게 두려웠던 때는, 교회에 새 성전에 입당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있었던

어마어마한, 생각도 하기 싫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몸이 떨리기 시작했습니다.

부정맥(맥박 급증)이 나타나면서 심근경색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밤에 자다가 두려워서, 벌떡 벌떡 일어날 때도 있었습니다.

그 두려움을 이겨보려고 제가 몸부림을 쳐 봤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보혈의 찬양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보혈을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보혈로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덮는 기도를 드리고, 기도로 보혈을 뿌리고

보혈을 의지하고 나갔을 때, 어느 순간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을 경험케 되었습니다.


이것은 제 이야기만 아닙니다.

우리 삶의 여정에, 때로는 지난 밤의 꿈이 매우 불안하고, 예감이 오늘 안 좋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그 스트레스를 이기시겠습니까?


보혈의 찬양을 부르십시오. 예수님의 보혈을 부르십시오.

 

주의 보혈 능력있도다 주의 피 믿으오

주의 보혈 그 어린양의 매우 귀중한 피로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예감이 불안한 때든지

밤에 잠에 악몽에 시달린다든지

아니면 우리의 삶에 두려움이 찾아온다든지

그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우리에게 보혈의 능력을 부어주신 예수님

예수님의 피를 찬양하십시오. 그리고 그 피의 공로를 의지하여 회개하십시오.

그리하면 두려움이 떠나가고

우리에게 보혈의 능력이 지금도 임합니다.

 

이제 대제사장들은 유다에게 받은 돈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가족묘가 없이 죽은 나그네들을 위한 용도로 쓰기로 결정합니다.

그것이 본문 6~8절에 나오죠.

 

27:6 대제사장들이 그 은을 거두며 이르되 이것은 핏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고

7 의논한 후 이것으로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으니

8 그러므로 오늘날까지 그 밭을 피밭이라 일컫느니라

 

그 밭을 '피밭'으로 불렀습니다. 피밭이란 이름은 렘19:4절에 보면

무죄한 자의 피, 힌놈의 골짜기에 한 지역에 붙여졌던 이름입니다.


힌놈의 골짜기는 토기장이의 옹기를 만드는 흙을 가져오는 곳이어서

'토기장이의 밭'이기도 했습니다.

이 힌놈의 골짜기를 히브리어로 게헨놈이라 했습니다.

한글성경에는 게헨나로 나옵니다. 지옥으로 번역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아들의 피'와 '게헨나', 지옥이 어울립니까?

어울리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숨어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피 값으로 피밭을 산 것은,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주신 예언의 성취라고 해석합니다. 마27:6~8


마태복음 곳곳에 보면, '이는 선지자 누구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

이런 표현이 많이 나오면서,

그런데 이 공식을 사용할 때마다 예수님과 관련된 어떤 사건을

하나님의 계획과 주권에 따라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이 말씀은, 마태가 스가랴 본문을 인용하면서, 예수님과 비슷한 메시지를 전하고,

예레미야 선지자가 전한 심판과 회복을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서 바벨론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에 포위되었을 때, 예레미야가 땅을 구입했습니다.

그 행위는 언젠가 예루살렘이 이렇게 회복될 희망을 보여준 예언적 행위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의 피값으로 이스라엘에서 가장 혐오스런 땅을 이렇게 샀지만,

이 사건은 예수님의 피흘리심으로 일어날 심판과 재앙과, 결국은 구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관련글 : 나그네의 무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또한 가족과 공동체와 나라의 소망과 미래는

많은 사람을 위해 피흘리신 예수님의 희생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각자의 심장에 예수님의 피가 묻을 때,

예수님은 우리의 운명을 바꾸어 주십니다.

예수의 보혈은 우리에게 주어진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어놓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 가운데 흐르는 죄를 차단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두려움을 막아줍니다.

이제 이 엄청난 보혈의 능력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우리 가슴에 이 피를 바르고, 적용하십시오.

그리고 그 능력을 선포하십시오. 하나님의 계획은 그 아들 예수님의 피를 통해서

우리를 모든 죄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깊은 뜻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피, 거기에서 우리의 죄가 다 씻어졌습니다.

이 땅에 예수님의 피보다 더 값진 대상은 없습니다.

그 피가, 그 피의 은혜가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


오늘 우리가 종려주일, 우리에게 이 피를 흘려주신 주님을 기억하며 감사드리십시다.

요일1:7,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기도/ 주님, 주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피 흘리셔서

   그 피의 공로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그 피에 보혈의 능력이 있음을,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 주셨습니다.

  

   우리 삶에 때때로 영적 침체가 다가올 때, 두려움이 다가올 때

   또 죄악에 헤맬 때, 이 피를, 보혈찬송을 부를 때마다

   이 피의 능력이 우리를 구원시키는 것을 경험케 하여 주시옵소서.

   이 보혈의 능력을 부어주신 주님을 찬양하오며,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분류 없음 > 2016'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왕바리새인 입니다 / 허운석  (0) 2016.03.24
인생의 3가지 십자가  (0) 2016.03.22
묵상글 스크랩  (0) 2016.03.21
고난의 의미  (0) 2016.03.19
신자의 말  (0) 2016.0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