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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되

LNCK 2016. 3. 17. 11:20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되           66:10~14         16.03.10.출처


  



◑1. 아무나 시험하지 않고, 충성된 자를 시험하십니다.

      

시험을 통과할 때, 우리는 주님 앞에 헌신하게 됩니다.

시험을 통과했는데, 자기 길대로 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본문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기도문에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그 구절 하나 가지고 평생을 삽니다. *시험에 대해 잘 모르고 살아갑니다.

 

'시험'이란 말이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주님은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22:1절,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주님만을 의지하며 나아갈 때,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여러분, 주님이 시험을 아무나 안 하십니다.

여러분, 시험이 나쁜 게 아닙니다. 주님이 시험을 아무나 안 하십니다.

 

1. 아브라함이 얼마나 충성된 종입니까.

충성된 종을, 하나님은 시험하십니다. 모리아 산에서 아들을 제물로 바치라는 시험이었습니다.


2. 주님이 히스기야를 시험하셨습니다.

앗수르가 쳐들어오는 시험입니다.

히스기야 같은 선한 왕이니까, 시험을 주신 것입니다.

아무나 시험하셨다면, 거기에 굴복당하고 말았을 것이나, 히스기야니까 그 시험을 이겼습니다.

   

3. 여호사밧 왕 때도, 주님을 충성되게 따른 왕에게, 모압과 암몬이 연합해서 쳐들어왔습니다.

그때 그가 전심으로 주님께 나아간 것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역대하 20: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하고 


여러분, 시험을 온전히 통과하는 것은,

시험의 때에 오직 주님만 간절히 바라보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는데,

그 시험은 우리 힘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가십니다.

 

본문에, 주님이 우리를 시험하시되

시66:11.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매어 두셨으며

 

하나님은 우리가 빠져나갈 수 없는 그물에 들게 하십니다. '우리를 끌어 그물에 걸리게 하시며'

누가 하시는가 하면, 주님이 하십니다.

 

물론 우리의 부족함으로 생기게 되는 일이기도 하죠.

그런데 위에서 큰 손이 움직여서, 우리를 끌어서 그물에 걸리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시험에 들었을 때, 그 아버지 야곱이 요셉만 사랑해주어서 요셉만 채색옷을 입었는데

요셉은 형들의 잘못한 것을 아버지에게 고자질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을, 주님이 시험에 들게 하십니다.


형들의 시기를 받아서, 죽임을 당할 뻔 했다가 보디발의 집에 겨우 팔려갑니다.

이 과정에서, 요셉이 죽든지 보디발의 집에 팔려가던지

요셉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여러분, 시험이란 내가 뭘 해도 내 결정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고민합니다. '아 어떻게 해야되지?' 하며 고민합니다.


여러분, 주님이 주시는 시험, 우리가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뭘 해 보려고 하면, 더 꼬일 뿐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그물에 들게 하십니다. 그러면 못 빠져 나옵니다.

그리고 어려운 짐을, 우리 허리에 두십니다.  :11

그래서 우리가 거동하기가 아주 힘들게 하십니다.


더 어려운 것은,

사람들이 우리 머리 위를, 마치 짐승처럼, 타고 가게 하십니다.

시66:12. 사람들이 우리 머리를 타고 가게 하셨나이다


여기서 '타다' 란, 말을 탈 때 쓰는 말입니다.

우리 머리 위로 말이 지나간다는 뜻입니다.

 

시험은, 무거운 짐이 우리 허리에 있는 것 같은 환경의 연단도 있지만,

더 어려운 것은, 사람의 연단입니다.


▲그런 일이 여러분은 전혀 없는 듯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시지만

사람이 남을 연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평생 어떻게 사시렵니까? 사람에게 연단을 받으실래요?

아니면 살면 살수록, 남을 연단시키는 도구로 전락하겠습니까?


교회 안에 많습니다. 남을 연단시키는 인생을 사는 사람들요.

그런 사람들은 반드시 불 가운데 버림을 받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이 차라리 연단 받는 것을 감사하십시요.

부족한 우리가 연단 받는게 감사한거지요,


만약 내가 에서처럼, 이스마엘처럼, 모압과 암몬처럼

이스라엘을 연단시키는 도구로 산다면.. 그건 큰 재앙입니다.


인간은 두 종류밖에 없습니다.

-남을 연단시키는 도구로 쓰이는 사람

-연단을 받는 사람,

  그는 주님만 바라보고, 자기 뜻을 내려놓고 나아감으로 오히려 나중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여러분, 주님은 아무나 연단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은같은 사람을 연단하십니다. 더 정결케 하시려고요.

그러니까 연단을 감사해야 됩니다. 왜요?

낮추시고, 정결케 하시려고요.

주님이 자기의 수고를 쏟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시험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은, 주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열심 후에' 시험이 있습니다.

교회적으로 여러분, 어떤 어려움이 와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시험이 오면 단 하나, 주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역대하 20:12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징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사사로운 내 지혜를 쓰지 않는 것입니다.


▲누가 나를, 시험에서 끌어내신다고요?

    

시66:12b 우리가 불과 물을 통과하였더니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주님이 그물에 들게 하신 후에, 주님이 끌어내십니다.

주님이 시험에 들게 하셨으면, 주님이 끌어내십니다.

우리가 제발로 나오는게 아닙니다.


시험을 통과하는 것은, '내가 열심히 사느냐, 내 힘으로 나올 수 있느냐' 이걸 보는 게 아닙니다.

나의 지혜, 나의 능력을 내려놓고

주님만 바라보는 것,


이것이 주님 보시기에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자는, 주님이 정금같이 나오게 하십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만드시는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팔려가게 하십니다. 이게 보통 인생입니까.

인신매매단에 의해 딴 나라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요셉은 거기서 또 억울한 일을 당합니다. 그 나라에서 감옥에 보내집니다.

고국의 집으로 돌아갈 길은 더욱 더 멀어졌습니다. *주님이 그를 그물에 잡히게 하셨습니다.


모든 시험은, 주님께서 또 빼 내십니다. 시66:12b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그러면 우리들은 우리가 나온 옛날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길 바랍니다.

아닙니다. 다시는 나온 집으로 갈 수 없습니다. 어디로 가요?

풍부한 곳에 들이십니다.  '주께서 우리를 끌어내사 풍부한 곳에 들이셨나이다'


요셉은 시험에 들 때는, 야곱의 집에서 나왔는데, 그 시험에서 나올 때

세상에! 바로왕의 왕궁에 들어갑니다. 풍부한 곳에 들이십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습니다. ↓



◑3. 주님께 순종함으로써 시험을 이깁니다.


에스더는 처음에 페르샤 왕을 순종함으로 왕비가 됩니다.

그 전 왕비 와스디는 자기 마음대로 했습니다. 그래서 왕이 폐위시켜 버립니다.

하나만 봅니다. 왕이 화장품을 주고, 왕이 준 것만 쓰냐? 딴 것을 더 쓰느냐?

왕이 '너희 마음대로 해라' 그랬더니 다들 진짜 자기 마음대로 합니다.


모든 여자들이 한 일은, 자기가 보기에 예쁘게 하려고, 화장품을 더 청구한 것입니다.

에스더는요? 왕이 준 것만 발랐습니다.


왕이 누굴 찾아요? 자기가 준 것만 바른 사람,

즉, 왕이 원한 것은 예쁜 게 아니라 순종이었습니다.


왕은, 와스디 때문에 왕비가 불순종하는 것에 질려버렸습니다.

왕이 본 것은 하나였습니다 순종하는 자!


에스더는 왕이 준 것만 바르고, 다른 것은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시험에서 나오는 길은 순종 뿐입니다.


그렇게 되었는데, 왕에게 순종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인생이 그렇지 않습니다.

페르샤 왕에게 순종할 수 없는 상황이 옵니다. 왜요?

에스더가 왕비로서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자기가 유대인인 것입니다.

왕비로서의 삶보다 더 중요한, 하나님의택한 백성으로서의 삶이 등장했어요.

이것은 지금까지 페르샤 왕께 순종했기 때문에 행복했는데,

이제부터는 왕을 순종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게 시험입니다.


남편을 순종해 왔는데, 자기가 유대인인 것입니다.

그래서 왕의 명령을 어기고, 왕의 뜰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은 와스디보다 더 위험한 행동입니다.

와스디는 왕이 마련한 잔치에 왕이 준 옷을 예쁘게 입고 나오라 그랬는데,

그 옷 안 입고 나왔다가 폐위 당했어요. 어떻게 합니까.


이제 잔치가 아니에요. 왕의 뜰에 들어가, 왕에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에스더 인생에 시험이 찾아왔어요. 왕을 따르느냐, 하나님을 따르느냐?


3일 금식을 하고 이렇게 말했어요. '내가 죽으면 죽으리라

이 말은 신약에서 이렇게 바뀝니다. '죽으면 살리라.

즉, 살고자 하는 자는 죽으리라,

그러나 나와 복음을 위하여 죽고자 하는 자는 살리라


▲시험에서 나오는 길은 하나입니다. 시험에서 나오는 길은, 살고자 하면 죽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살 길, 편안한 길, 안정된 길을 택합니다.

안타깝지만 교인들도 거의 다 자기가 사는 길을 택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과, 이 땅의 권세자가 기뻐하는 길 중에서 하나를 택할 때

거의가 이 땅의 안정과 행복을 위해서, 이 땅의 권세를 택합니다.

이걸 보는 목회자는 진짜 슬픔에 잠깁니다.


주님이 사람을 찾습니다.

여러분은, 이 땅의 안정과 이 땅의 행복을 위해서 택한 다면 자기를 위하여 택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반드시 죽습니다.

혹시나 살까, 헛된 생각을 품지 마십시오. 반드시 죽습니다.


왜요? 주님이 버리시면 죽습니다. 내게 달려있지 않습니다.

에스더가 말합니다. 그가 금식을 했던 것은, 주만 바라본 것입니다. 상황을 바라보지 않고요.

금식하는 이유가 상황에 집중하려고 금식하는게 아니라,

주님께만 집중하려고 금식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요? 죽으면 죽으리라!


주님만 바라볼 때, 순종이 나옵니다. 결국에는 안 죽습니다.

주님은 주님을 따르려고 죽고자 하는 자에게, 죽음에서 예수를 다시 살리신 것처럼,

살리신다고 약속했습니다.


여러분, 내가 살기 위하여 이 땅의 안정과 행복을 택하신 것을

여러분은 회개할 기회를 얻게 되길 바랍니다.


시험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너무너무 많은 사람들이 시험에서 드러납니다.

자신이 누구를 위하여 사는 자인지요.


결국은, 주를 위하여 선택하지 않아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은, 결국은 모든 일에 자기를 위하여 선택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택하는 자는, 결국은 안정과 행복을 택합니다.

여러분, 그럼 내 인생에 누가 주인입니까?


시험을 통해 나타나 보이는 것은 단 하나입니다. '누가 주인인가?'

죽을 때까지 안정되게 사십시오. 그런 사람은 주님이 버리십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 진리를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풍랑이 쳐도, 풍랑위에 주님이 서 계시면, 배를 나와서 풍랑속으로 나아가십시오.

시험은 하나입니다. '내 인생에 누가 주인인가?'


어떤 어려움도 괜찮습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에스더처럼요.

나와 복음을 위하여, 죽고자 하는 자는 반드시 살리라.

 

▲이 시간에 이 말씀을 붙잡고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회개의 역사 정말 회개의 역사를,

주의 말씀에 비추어 회개의 역사를 주소서.

시험을 감사합니다. 연단을 감사드립니다.

주님, 여러 가지 시험을 감사드립니다.

오직 주님만 바라봅니다. 오 주님!"

 

시험에 감사하세요. 시험을 주신 것을 감사드리시고

주님만 바라보십시오.

 

"주님, 나는 죽고 그리스도만, 죽으면 죽으리라!

주여, 나와 복음을 위하여 죽고자 하는 자는 살리라!

이 말씀에 순종하게 하소서.

주님만 증거되게 하옵소서. 주님이 진정 나의 주님이심이 증거되게 하소서.

아버지.."

 

이 시간 교회를 위해서 기도합시.

성도들 가운데 죽음에 이르는 병을 갖고 싸우는 분들이 있습니다.

 

어제는 우리 교우 가운데 한 사람이 자살하려고 했습니다.

너무 절망적인 상황이니까 그럴 수 있습니다.

주님 우리 교회가운데 절망의 영, 자살의 영, 우울한 것도 영적인 역사일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이 다 주님앞으로 나아올 수 있도록 중보하며 기도하십시다.

 

"주님, 주님 앞에 나아오게 하옵소서.

회개하고, 주님 앞으로 나아오게 하옵소서.

죽음의 영은 떠나갈 지어다!

주님의 승리, 주님의 회복, 주님의 부활을 보게 하옵소서

주님의 부활에 속한 자가 되게 하옵소서.


죽고자 하는 자는 살리라 하셨으니

모리아 산으로 나아가게 하옵서서. 죽으면 죽으리라의 믿음을 주소서.

오직 주님만 바라보게 하소서.


아버지 하나님, 저희가 주님의 군사가 되게 하소서. 깨어있게 하소서.

이땅의 행복과 성공과 안정적 삶에서 깨어나게 하소서.

주님만 바라고, 주님만 따르게 하소서. 마귀에게 속아서 나를 위한 어리석은 인생을 살지 않게 하소서.

오늘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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