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3가지 십자가 마26:31~46 설교스크랩, 출처
▲도입 일화
폴란드의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지기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야루젤스키 정권이 공장, 병원, 공공건물, 학교 이런 곳에서
모든 십자가를 철거하라는 명령을 법으로 제정했습니다.
그래서 학교 교실에 있던 십자가까지 다 제거되게 되었는데,
폴란드 교회들은 반정부 운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국민들이 그에 대해 저항운동을 하게 되니까
야루젤스키 정권은 타협안을 제시했습니다.
'그러면 학교 안에 있는 십자가는 그대로 두겠다’
법은 모두 제거하기로 했지만, 학교는 예외로 남겨두었습니다.
그런데 가르볼린 지역의 학교행정을 담당하는 공산당원이
아주 열렬한 당원이었습니다.
'법은 법이다'라면서 어느 학교에서 십자가 7개를 모두 다 제거해 버렸습니다.
학생들은 그 조치에 대해 크게 반발했고, 다음 날 학부모 여러 명이 와서
7개보다 훨씬 더 많은 십자가를 달아놓았습니다.
그랬더니 그 지역 공산당원들이 와서, 또 제거를 했습니다.
이 일 때문에, 6백 명의 학생 중에서 2/3가량이 십자가를 들고 데모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천5백명 이상의 교인들이, 이 조치에 대해 항의하는 기도집회를
한 교회에 모여서 갖게 되었습니다.
그때 경찰들은 기도회가 열리고 있던 교회를 봉쇄하고 포위했고
십자가를 머리위로 높이 들고 눈물을 흘리는 그런 군중들이 가득 모여들었고
또 경찰 진압대가 그들을 향해 있었습니다.
그때 폴란드 교회 성직자 한분이 소리 높여 외쳤습니다.
'십자가가 없다면, 폴란드도 없습니다!'
여러분, 십자가가 없으면, 교회도 없습니다.
십자가가 없으면, 교회는 교회되지 못합니다.
십자가 신앙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은, 교인되지 못합니다. 교인이 아닌 것입니다.
요즘 교회에, 명예와 금력, 권력, 이런 것들이 우상화되어서
점점 십자가가 흐려지고 있고,
십자가에 대한 신앙이 약화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를 놓친 크리스천은,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십자가 신학이 없으면, 우리의 신앙은 헛것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붙들기 위해서
십자가를 당당하게 지시기 위해서, 피땀 흘리며 눈물의 기도를 하십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 진정한 의미의 십자가 신앙을 세우기 위해서
진정한 십자가를 지기 전에 이미 벌써 십자가를 (겟세마네에서 기도로) 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바울사도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고전1:22.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여러분, 십자가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거리끼는 것입니다.
연초부터 십자가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니, 제 마음에서부터 꺼려졌습니다.
'성도님들께 편안하고, 번영하고, 잘 되고, 긍정적인 이야기만 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습니다.
십자가 설교는 왠지 꺼려지는 거죠.
또 십자가의 도는 미련하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합니다.
여러분 새해에, 하나님 앞에 소원으로 아뢸 때,
어떤 기적을 올해도 일으켜 달라고, 지혜를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지,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깨닫기를 원합니다. 십자가 붙들고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그런 기도를 하셨습니까?
여러분, 왜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부흥할 때
왜 십자가를 잃어버렸나요? 왜 크리스천들이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습니까?
십자가 없는 크리스천은, 이미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오늘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붙들기위해서
얼마나 고군분투하시는지 살펴보면서,
우리 인생에 꼭 필요한, 끝까지 우리가 붙들어야 되는 3가지 십자가를
주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이 십자가로 승리하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1. 첫 번째 우리가 져야하는 십자가는 <고독의 십자가>입니다.
마26:36~38절을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는 죽음보다도 더 힘겨운, 고독의 십자가였습니다.
▲여러분, 외로움은 현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가장 심각한 감정적인 고통입니다.
외로움이 얼마나 힘든가 하면, 보통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보다
외로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 질병에 걸릴 확률이 2배로 높다고 합니다.
어떤 유명한 의학자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심각한 질병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그는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외로움입니다.'
왜냐면 외로움을 느끼면, 쉽게 모든 병균이 침입한다는 것입니다.
면역력이 약해진다는 거죠.
▲여러분, 외로움처럼 견디기 힘든 것이 없습니다.
1960년대 가장 유명한 록 그룹인 비틀즈가 부른 인기있는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Ah look at all the lonely people. Ah look at all the lonely people.
아, 저 외로운 사람들을 보라. 아, 저 외로운 사람들을 보라♬
그 노래에 이 가사가 계속 반복해서 나옵니다.
우리 인생의 외로움을, 인생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로 지적하고 있는 노래입니다.
여러분, 노인이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이기 이전에 외로움입니다.
죽기 전까지 홀로 있어야 되는 외로움입니다.
심지어 그 유명했던 아인슈타인은,
도저히 아인슈타인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을만한 고백을 했습니다.↓
"이상한 일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주는데도 나는 사무치게 외롭다."
여러분, 결국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결국은 감당해야 될 게 뭐냐면
"외로움의 십자가"입니다.
▲이 외로움이 얼마나 우리를 집요하게 무너뜨리고 파고드는지
그 유명한 샹숑의 여왕인 에디뜨 피아프(1915~1963)
142센티밖에 안되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감동적인 노래를 불렀던 여인입니다.
그녀의 노래를 기억하십니까?
목소리를 들으시면, 다 기억이 나실 것입니다.
빠담빠담, 사랑의 찬가, 라비앙 로즈 등 정말 세계적인 감동을 주는 곡들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떠도는 거리의 마법사 아버지와, 가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이 부모가 아이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너무 외롭게 자랐습니다.
불행했습니다. 그녀의 삶은 늘 이별을 연습해야만 했습니다.
교통사고로 인한 휴유증과 많은 이별, 술에 절어진 삶, 간암으로
결국 그녀는 48세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어느 날 그녀에게 기자가 물었습니다.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입니까?'
그녀는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외로움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말은, 그녀의 생애를 그린 라비앙 로즈(장미빛 인생)에 나오는 대사인지
정말 그녀의 말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모든 사람이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목소리로 감동을 주는 최고의 인기스타임에도 불구하고
자기에게 가장 큰 두려움을, 외로움으로 규정합니다.
▲여러분, 결국 우리는 혼자인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정말 사랑하고 귀하게 키운 자식도, 결국은 내 마음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갈 길을 갑니다.
평생을 함께 한 배우자도, 내 마음을 이해 못하고 때로는 내 마음에 원수같이 보일 때도 있고요,
결국 사별을 통해서 헤어져서 홀로 남게 됩니다.
얼마나 우리 인생이 외로운지 모릅니다.
주님은, 이 외로움을 자기 온 몸으로 지금 느끼고 계십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홀로 있는 것, 이 외로움
이 중차대한 정신적인 압박과 무거운 짐을 지고가는 것이 너무너무나 홀로 지기가 힘들어서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함께 깨어 있으라'고 말합니다.
주님은 제자들이 이미 당신 자신을 버리고 떠날 것을 다 아시면서도
부탁을 합니다.
마26:31.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이 다 버리고 떠날 줄 아시면서도, 제자들에게 부탁하십니다.
'나와 함께 좀 깨어있어 달라'고요.
마26: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아니 떠날 줄 아시면서, 뭐하려 제자들을 붙으십니까.
여기 머물러서 나와 함께 깨어있어 달라고,
그렇게 안타깝게 세 명이 특별히 사랑했던 제자들에게 부탁을 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이 어땠습니까?
결국은 다 잠들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처절한 고독감을 느끼셨습니다.
아무도 그 마음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정신적인 그 중압감이 컸는지
그 고독, 외로움으로 인한 그 사무치는 아픔을
누가는 의사였기 때문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눅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이것은 그냥 '간절히 기도해서 땀이 많이 났다'고 일부 신학자들은 해석하고 싶어하지만,
실제로 이것은 피+땀방울이 섞여서 떨어지는 현상이랍니다.
마틴 로이드존스 목사님은, <십자가는 하나님의 입증, 그리고 현대의학으로 본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
이라는 책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의학서적을 찾아보면, 굉장히 희귀하기는 해도 헤마티으로시스(피같은 땀) 현상이 잘 기록되어 있다.
극도의 감정적인 과로 상태에서는 작은 모세혈관이 땀샘에서 파괴될 수 있는데,
이 현상으로 말미암아 피와 땀이 섞이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아주 극도로 감정적인 과로 상태에 계셨습니다.
혼자서 이 모든 인류의 죄악을 감당해야 되고
인류의 모든 죄의 가시들이, 예수님의 모세혈관까지 다 찌르는 것 같은 그런 고통을 느끼는데,
그 아픔과 그 절망과 두려움을 이해해주고, 함께 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니
홀로 그 고통을 다 당하셨습니다.
삼위일체 중에 한 분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그 죄짐이 무거웠으면
나와 함께 좀 깨어있어 달라고, 제자들에게 부탁을 했겠습니까.
그런데도 아무도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모세혈관이 다 터져서, 땀샘이 흥건히 젖어서 피땀이 솟아나온 것입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정말 사랑했던 제자들인데, 그리고 내가 자기들의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지금 피땀을 흘리는 그 길을 가고 있는데,
내가 그렇게 위하는 그들마저도 깊이 잠들어 있습니다.
제발 깨어있으라고 세 번이나 가서 부탁을 했는데도.. 계속 잠들어 있습니다.
"고독의 십자가"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사랑한다고.. 내 마음을 이해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교회를 사랑해서, 교회를 위해서 헌신한다고
교회가 나를 알아주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평생을 거룩하고 숭고하게 내 몸을 바쳤다고
나라가 내 노후를 보장해주거나, 내 헌신을 이해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역적으로 몰 수도 있습니다. 한 두 가지 실수 때문에, 나를 내팽개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직장을 위해서 20~30년을 수고해도,
그 직장이 한 가지, 두 가지 잘못한 것 때문에
나를 내팽개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인생은 외롭고 고독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게 바로 십자가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는 사랑하지만, 헌신했지만, 나를 알아주지 못해도,
그래도 그 십자가 여전히 붙들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위해서 사랑하고, 그들을 위해서 대신 십자가를 지는 것,
그게 <고독의 십자가>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러분 이 결심이 없으면,
반드시 앞으로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내가 사랑했는데, 내가 그렇게 섬겼는데, 이 직장이/교회가/민족이/그 사람이
어떻게 내게 이를 수 있는가?' 하면 넘어집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그걸 당하셨어요.
그게 우리 인생의 십자가입니다.
그게 위대함입니다.
내가 사랑했는데도.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십자가 질 때, 위대한 승리자로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높이실 줄 믿습니다.
◑2. 두 번째 우리가 져야 하는 십자가는 <사명의 십자가>입니다.
마26:39~43절에 보면, 주님은 지금 아버지의 뜻과 자기의 뜻 사이에서
엄청난 갈등,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뜻은 뭐냐면,
아버지의 사랑으로 이 십자가를 면케 되는 것입니다.
마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처음에는
'아버지 나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세요. 나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나의 육신의 간절한 소원은 정말 이 십자가를 피하고 싶습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나에게 사랑을 베풀어주세요.'
그런데 나중에 결국은, 그걸 선택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내려놓고, 결국 아버지가 주시는 사명을 붙드셨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꼭 중요한 결단의 순간이 한 번은 있는데
그게 뭐냐면, 평생 하나님 앞에 사랑 받는 존재로만, 어린아이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녀의 특권과 영광과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다가
어느 날엔가는 내 인생이 사랑만 받기에는 너무나 죄송해서
'너무나 힘들지만, 내가 이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비전을 이루기 원합니다. 사랑을 접어놓고, 내 소원을 접어놓고,
아버지가 나를 이 땅에 보내신 그 사명을 감당하며 살겠습니다.' 하며
자기 사명을 결단할 순간이 옵니다.
자기의 개인적인 사욕을 내려놓고, 사명을 붙드는 순간이 오게 되어 있고,
또한 그 결단이 있어야 됩니다. 그래야 내 인생이 업그레이드 됩니다.
늘 우리는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저를 사랑해주세요.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이렇게 도와주세요'
이렇게 늘 내가 원하는 바를 하나님이 이루어주시기를,
내 소원을 이루어 달라는 것이 내 기도제목이었고, 내 삶의 목적이었고, 우리의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언제까지 그렇게만 사실 것입니까?
'내 소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나님의 꿈이 내 삶을 통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그렇지만 어느 날엔가 사랑 때문에 사는게 아니라,
사명 때문에 사랑을 접을 수 있는 그런 순간이 와야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느 날 내 삶의 현장에서
불현 듯 '아,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살았나? 계속 사랑받기만 하고, 하나님께 사랑을 요구만 했구나.
하나님이 내게 원하시는게 뭘까? 내 남은 생애에 내게 주신 그 사명 감당하며 살겠습니다.'
이런 결단의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릭 워렌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명을 완수하려면, 우리의 목표를 버리고,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것을 그저 우리가 삶을 통해 하고 싶은 모든 일들에 가져다 붙여서는 안 된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마음대로 하면서, 거기에 하나님의 계획을 빙자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라고 말해야 한다.'
즉 자기의 소원, 자기의 목표를 내려놓고
어느 날엔가 하나님이 참으로 원하는 그 일을 위해서
내 인생을 드리는 순간이 있어야, 사명의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41절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여러분, 사명 붙잡으려면, 깨어서 기도해야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욕에 사로잡혀 살다보면,
개인적인 욕심이 결국은 사악한 욕심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그것이 더 발전하게 되면, 치욕스럽게 인생이 끝나게 됩니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자기 인생이 끝나는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저는 여러분들이 인생의 쓸데없는 시험들에 빠져있지 않기를 바라고
정말 위대한 사명자들로, 위대하게 살기를 바랍니다.
▲2005년 세계 장애인 선수권대회에서, 수영 200미터 배영 에서 금메달을 딴 김진호 선수가 있습니다.
그의 엄마 유현경 씨는, 자기 아들이 자폐 장애아 임을 발견하고, 너무너무 절망했습니다.
11층아파트에 사는데,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아들 진호와 함께 뛰어내려 죽어버릴 생각을 수 백번도 더했습니다.
뛰어내려서 죽는 꿈을 꿀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절망의 맨 밑바닥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진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그 아이는 내 것이다.
사랑하는 나의 자녀이니, 네 소유라는 생각을 버리고
내가 맡겨준 대로 키워라. 나의 계획이 그에게 있단다.'
그날 내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이며, 내 마음대로 키워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때부터 사명을 발견하고, 그날부터 자폐아를 키우는 일이, 괴로운 일이 아니라
숭고한 자기 삶의 목적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여러분, 사명을 깨달으면
나를 가장 힘들게 한 그 십자가가
나의 숭고한 사명이요, 사명의 십자가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내 사욕, 내 평안도,
내 것을 원하면 그것은 영원히 시험에 들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십자가 지는 것이 훨씬 위대한 삶입니다.
여러분 부디, 시험에 들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지워주신 그 고난의 십자가를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고백하며
사명의 십자가로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3. 세 번째, 우리 인생에 피할 수 없는 십자가는 <섭리의 십자가>입니다.
마26:44~46절에 보면, 예수님은 희생의 제물이 되는 그 과정이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 진행되는 것을 깨닫습니다.
여러분, 예로부터 한 공동체에 문제가 있으면,
희생의 제물을 누구나 다 찾게 되어 있습니다.
이집트의 어느 통치자는, 자신이 희생의 제물로 바친 어마어마한 그 희생의 규모를 자랑했습니다.
11만3천4백명의 노예, 49만3천마리의 가축, 88척의 배
2750개의 금으로 된 형상들, 33만병의 꿀과 기름.
이런 식으로 엄청난 희생의 제물을 삼아서, 우상 신에게 바쳤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님은 오히려 당신 자신을 희생의 제물로 바치시면서,
그 바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억울한 일을,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의 십자가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마26:45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6.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이 말씀에 보면, 사명의 십자가를 감당하려고 했는데,
걸리는 것이 하나 생겼습니다. 그게 뭐냐면
제자들은 다 자고, 더 이상 그들이 내 마음을 이해할 희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린다는 것입니다.
그 사명을 감당하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이, 죄인의 손에 팔리는 것입니다.
위대하고 큰 일을 하면 멋있겠는데,
내 마음대로 칼을 휘저으면서 세상을 호령하면서 사명을 감당하는 게 아니라
무기력하게, 그것도 사랑하던 죄인에게 팔려서
그 죄인의 손에, 하나님의 아들 의인이 팔아넘겨지는 일을 겪는 것,
그것이 사명의 성취 방법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주님은 자신이 팔아넘겨지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그것도 죄인의 손에,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믿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기억해야 될 일이 있습니다.
억울하고, 분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을 우리 인생에는 겪게 됩니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저런 나쁜 놈한테 이런 험한 꼴을 당해야 하나..‘
그런데 여러분, 그것 안에, 그 원수의 손길 안에, 그 죄인의 손길 안에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만
여러분이 십자가를 진짜 지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다니고,
내가 호령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면
그게 무슨 십자가입니까. 자기 의를 이루고, 자기 잘난 맛에 사는 것이지요.
정말 십자가는 뭐냐면
내가 원하지 않는 데로 끌려가고, 내가 팔리고, 내가 억울하게 당하는데도
그것을 묵묵히, 하나님의 섭리라고 믿을 때
거기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발견할 때
진짜 십자가를 지는 것인줄로 믿습니다.
▲주님은 왜 '당신이 팔린다' 라고 표현했을까요?
그것도 하필 '죄인의 손에 왜 팔린다'고 했을까요?
그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죄인의 죄 값으로 팔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결국 우리들이 주님을 우리 죄값 때문에 넘긴 것입니다.
롬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여러분,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습니다.
죄인의 손에 팔리는 것이, 우리(내) 손에 팔리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값을 주고 샀다, 해방시켰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죄인의 손에 넘겨지지만, 그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죄값을 치르는, 하나님의 지불행위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이 억울한 일을 당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어떤 죄과를
누군가를 위해 치르기 위해서, 내게 희생을 당하게 하시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믿어야, 진짜 십자가를 지는 것인줄 믿습니다.
아래 구절에 정확하게 이 사실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전6:20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독생자의 피) 값을 치르고 사들인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몸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십시오.
예수님이 죄인의 손에 넘겨졌는데,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이고,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믿을 때, 진짜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머지 생애를 살아가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방식대로, 내가 호령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게 일어나는 나는 모든 일 속에, 내가 원치 않는 일을 당하지만
그 속에 섭리의 십자가가 있는 줄 믿습니다.
주님은 그것을 기뻐하셨습니다.
그것을 다 승리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성취하기 위해서, 그는 십자가 당당하게 지셨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승리를 믿었습니다.
▲<기도의 손>이라는 유명한 그림이 있죠?
알프레히드 뒤러(1471~1528)라는 화가 그린 그림입니다.
뒤러와 자기 친구가 화가가 되기 원했는데, 워낙 가난하니까
한 사람이 열심히 일해서 다른 친구를 밀어주고,
그 친구가 성공하면 나머지 친구를 밀어주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뒤러의 친구는, 접시닦기 등 궂은 일, 험한 일을 하고
뒤러의 학비를 대어줬습니다.
그래서 뒤러는 유명한 화가가 되어, 자기를 뒷바라지해 준 친구를 찾아갔습니다.
마침 그 시간에 그의 친구는, 간절히 이렇게 기도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손이 굽고 감각을 잃어서 도저히 그림을 그릴 수 없습니다.
그러니 뒤러 만이라도 훌륭한 화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자기를 희생해서 친구가 잘 되기를 바라는, 거칠어지고 상처투성이의 손을 보면서
뒤러는 너무나 큰 감동을 받고, 영원히 그 손을 잊을 수 없어서
그 자리에서 '기도하는 손' 그림을 그렸다는 것입니다.
그 그림은 인류의 가슴속에, 친구의 우정과 사랑을 그린 최고의 명작으로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뒤러의 손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친구 뒤러를 위해서 기도했던,
자기를 희생하고 십자가의 길을 홀로 간 그 친구의 손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기념비로 인류가운데 남겨두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외롭고 고독하게 십자가를 질지라도
사명의 십자가를 지느라고, 주님께 받는 사랑을 다 포기했을지라도
섭리의 십자가를 믿고, 자기는 희생할지라도
세상 사람들은 잊어버려도, 우리 하나님은 영원토록 우리 이름이 빛나게
우리를 기념하시고, 축복하실 줄 믿습니다.
여러분 올해 한 해에도, 십자가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십자가 붙들고 살아야 됩니다.
이 3가지 십자가의 의미를 마음에 깊이 새기시고, 여러분 일생동안
십자가를 놓치 않는 그리스도인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시며, 주님 앞에 결단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기도/ 그동안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십자가의 은혜를 받고 살면서도
우리는, 너무나 십자가를 멀리하고 살았습니다.
주님 고독하고 외로운 그 십자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무시하더라도
고독의 십자가를 달게 지게 해 주십시오.
주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사명의 십자가를 지기를 원합니다.
사욕을 내려놓기 원합니다. 어느 날엔가 그 사명 한 번 붙들게 해 주십시오.
주님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해도, 섭리의 십자가를 믿고
승리하게 해 주옵소서. 주님 이 십자가, 내 마음에 새기고
금년에 영광스럽게 하나님께 칭찬 받고, 하나님이 기념하실만한 인생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이 민족 가운데 직장 가운데
그 십자가로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오늘 십자가를 다시 한 번 붙들기 원합니다.
다시 한 번 십자가로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아버지, 그 동안 너무나 이기적이었습니다. 사랑받기만을 갈구했습니다.
늘 하나님, 너무나 많은 것으로 이해받기만을 바랬습니다.
그리고 나를 인정해주고, 알아줘야 십자가 진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십자가는 외로운 십자가임을 알았습니다.
주님, 사랑만 간구할 게 아니라, 사명 때문에 주님 그 길을 가기를 원합니다.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고
내 원을 죽이고, 내 육체의 소욕을 죽이고, 내가 원하는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를 주시기 원합니다.
주님, 사랑하는 우리 성도들에게 섭리의 십자가를 지게 하여 주시옵시고,
희생을 기꺼이 달게 지며 승리하게 하여 주옵소서.
다시 한 번 한국교회에 잃어버린 바 되고 흐려져버린 십자가신앙이
다시 한 번 선명하게 세워지는, 귀한 날이 오게 하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분류 없음 > 2016'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와 함께 먹는 자 (0) | 2016.03.25 |
---|---|
내가 왕바리새인 입니다 / 허운석 (0) | 2016.03.24 |
예수님의 피 값 (0) | 2016.03.22 |
묵상글 스크랩 (0) | 2016.03.21 |
고난의 의미 (0) | 2016.03.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