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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가르치신 원칙대로 살기 P1 / 잭 푸닌

LNCK 2016. 4. 27. 17:18

예수님이 가르치신 원칙대로 살기 P1    11:35, 1:1, 요10:27    출처

 

Living by Christ’s Principles by Zac Poonen

 

◑내 속에 빛이 어둡지는 않는가요?

 

11:35 ‘그러므로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한가 보라.말씀하셨지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한 가지는

-복음의 증거가 선명한 것이고,

-우리에게 있는 복음의 빛이 어둡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슬픈 현실은,

교회가 증거하는 복음의 빛이 점점 어두워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복음에 물을 타서 희석시키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현상은, 모든 시대마다 다 있었고

심지어는 계시록2장과 3장을 읽어보는 바, 초대교회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거기 나오는 7교회 중 5교회가, 빛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5교회를 여전히 교회라고 부르고 있기는 합니다.

 

예수님은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하고 말씀하기도 하셨죠. 3:1

 

그렇지만 그 중 두 교회는 아주 강력하고, 능력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보십시오. 예수님은 그 때에도 그렇게 하셨다면,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각 교회를 바라보며 점검하고 계신다’,

즉 교회를 examine 하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틀린 점을 지적하고 말씀해 주고 계신다는 점입니다.

 

오늘날에는 수 천 수 만의 교회가 세상에 있지만,

그래도 주님은, 여전히 교회를 바라보며 점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가 소원을 품어야 하는 것은,

우리의 교회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누가 더 크냐며 서로 비교하기도 하고

누가 더 앞서 가느냐고 유치한 비교를 하지 말고,

정말 우리 교회가, 주님을 만족시키는, 칭찬 듣는 두 교회와 같은가?

그것이 우리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구원 + 제자를 삼으라

 

그러면 실제로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주님께 인정받는 계시록의 두 교회처럼 될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전도가 중요하다. 전도를 열심히 하면 된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나가서 전도하고, 그들을 교회로 데려오면

주님이 그 교회를 기뻐하실 것으로 여깁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지옥의 형벌로부터 구원해서

그들을 천국으로 데려가면.. 주님이 기뻐하실 것이다..

그런데 그게 전부일까요? 그게 주님이 신자들에게 원하는 것의 전부일까요?

 

아닙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더 중요한 점도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 즉 닮는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 오기만 하면 천국에 간다는 식으로 가르치는데

저 푸닌은 그게 잘못된 복음이라고 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요, 곧 제자가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지옥에서 건져내는 것에서 더 나아가

천국에 들어가도록 인도해야 하는데, 그건 제자도를 가르치고, 제자로 살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10장에 보면, 예수님이 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오늘날 우리는, 누구든지 교회만 다니기만 하면,

다 자기가 예수님의 양으로 알고 있는데요, 정말 그런지 성경을 한 번 찾아봅시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에워싸고 뭘 따지듯이 묻자, 예수님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10: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예수님의 양은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며, 예수님을 따른다(제자가 된다)고 했습니다.

그들에게 영생 천국이 주어집니다.

 

28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오늘날의 잘못된 복음은

신자더러 그저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따르기제자도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27절을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그저 믿어라고 하지 않고

나를 따르는 자가 참 나의 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양들을 보면, 목자를 졸졸 따라 갑니다.

오늘날 매일의 삶에서,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서, 제자의 삶을 살지 않으면서

자기가 예수님의 양이요, 천국에 들어갈 줄로 생각하면, 큰 오해입니다.

 

*다른 성경구절에서 믿는사람은, 구원을 얻는다고 했는데

믿음의 정의가.. 그저 지식적으로 믿고 인정하는 것을 뜻하지 않고요,

신앙의 총체적 전 영역을 포함하는 단어가 믿음입니다.

우리 한국 신자들도 그렇게 잘 씁니다. ‘저 사람은 믿음이 좋다

 

오늘 나는, ‘내가 정말 예수님의 양떼인가?’를 진지하게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그것은 그저 머리로 믿는게 아니라, ‘예수님을 자기 삶으로 따르는데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의 모든 기독교계에서, 이 점에 대해 오해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교회마다 강조점이나 특색이 다르긴 합니다.

 

어떤 교회는 음악을 매우 중요시 여겨서, (힐송처럼) 찬양을 아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또 어떤 교회는, 교회 음악을 하지만, 그렇게 중요시 여기지는 않습니다.

 

저희 교회도, 성가대나 찬양팀 등 교회 음악에 그렇게 치중하지 않습니다.

왜냐면 제가 성경을 읽어보니까, 예수님은 그렇게 음악에 치중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윗이나 다른 인물은 치중했지요. , 예수님만 놓고 볼 때 그렇습니다.

 

교회에 의자가 놓여있으면 편리해서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에는 반드시 의자가 있어야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성경이나 예수님 말씀에, 그런 내용이 없으니까요.

 

교회음악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은혜스런 음악팀이 있으면 좋습니다.

그러나 그게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라고 봅니다.

 

제자 양육은 필수적인 요소라는 뜻이죠.

예수님이 명령하셨으니까요.

그런데 오늘날의 교회는, 빛이 어두워가는 것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제자 양육이란 필수적 요소는 등한시하고,

예수님이 직접 명령하지 않으신 주변 요소, 찬양이나/ 교회 장식/ 교회 직제 편성

등에 많은 관심과 정력을 쏟고 있다는 것이, 제 푸닌의 우려입니다.

 

저는, 우리 인도의 교회들이, 의자를 마련하는 것에 동의하지만

지금도 인도의 시골 교회들은, 대부분 땅바닥에 앉아서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교회 의자 마련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음악도 마찬가지고요. 초대교회는 악기가 없었습니다.

키보드 사고, 음향장비 마련하고, 찬양팀 양성하는 일이 필요하지만

그게 만약, 더 중요한 본질적인 일(제자도)을 등한시한 채 음악에만 몰두한다면

그래서 교회의 빛이 점점 더 어두워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진실로 잘 따르기 원한다면,

성경을 펴 놓고, 예수님이 정말 강조하신 점이 무엇인지.. 진지하고 정직하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생전에 어떻게 행하셨고, 무엇을 가르치셨나요?

 

또 하나의 예를 들어볼까요?

어떤 분은 제게 와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푸닌 목사님, 왜 당신은 신유 사역에 대해서 설교하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그런데 저는 예수님을 따르기 원합니다.

형제님, 성경에, 예수님이 신유 사역에 대해 가르치신 설교가

단 한 편이라도 있으면, 제게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신유에 대해 가르치신 설교가 없으면,

신유에 대해 짧게 다섯 문장이라도 가르치신 적이 있으면, 제게 알려 주십시오.’

 

저 푸닌은 예수님을 그대로 따르기 원합니다.

예수님은 많은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신유사역에 대해서, 한 번도 설교로 가르치신 적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예수님의 신유사역에 대해서 동의는 하고, 예수님처럼 시행도 하지만)

그걸 설교로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은 수 천 명을 고치셨지만, 신유에 대한 설교는 한 번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정확하게 그 반대로 하는데요.

우리는 한 명도 잘 고치지 못하면서, 신유에 대해 설교는 너무 자주 하고 있습니다.

 

*해외의 시골교회에서는, 은사주의 영향으로 신유가 자주 강조되는가 봅니다.

잭 푸닌 목사님은, 신유사역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의 일부 교회들이 주술적 치유사역으로 변질되는 것을 염려하신 것이지요.

 

▲'제자'는 함께 '그리스도의 몸'을 이룹니다.

 

성경에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데요,

거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그 외에도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 ‘나라와 제사장’, ‘그리스도의 신부등으로 불리는데요.

오늘날 21세기의 이스라엘 나라, 히브리 민족도

자기들을 하나님의 백성’, ‘나라와 제사장’, ‘그리스도의 신부등으로 똑같이 부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자기들을 스스로 가리켜 부르지 않는 명칭이 하나 있는데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으니까, 당연히 그렇겠지요.

 

그들이 믿는 구약성경에는, 이스라엘을 그리스도의 몸이라 표현한 구절은 없습니다.

회중이런 말은 나오지만요.

 

회중, 수많은 사람들을 가리키지만, 그들은 서로 붙어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모래알갱이처럼 떨어진 존재들이 다 함께 모인 것이 회중이지요.

 

출애굽 당시 광야의 장정 60, 여자와 어린아이를 합치면 모두 2백만의 사람들이

그들은 회중이었지, ‘그리스도의 몸은 아니었습니다.

한데 모여서 살긴 했지만, 그들 각자는 다 각각 떨어져 따로따로 존재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인들이 지체가 서로 붙어있는 것처럼 서로 붙어서 교제해야 교회이지

교인들이 모래알처럼 서로 한데 모여 있는 것은, 진정한 의미로 교회가 아닙니다.

 

*유명한 예화가 있지요. 어느 목사님이 서울의 큰 교회에 설교 초빙을 받아갔는데,

잠시 환상이 보이는데, 덤프트럭이 와서 수많은 벽돌을 와르르 쏟아붓고 가더라는 겁니다.

같은 목사님이 태백의 탄광촌 어느 교회에 갔는데,

새벽기도 때 광부 성도들이 한 명 한 명 들어오는데, 환상으로 보니까

벽돌이 따다닥 서로 맞춰서 붙더라는 것입니다.

 

은 서로 상합하고 연결되어서 작용합니다.

손을 예로 들면, 핏줄, , 신경, 관절, 피부, 근육, , 영양분 등

그 모든 요소들이 서로 연합해서 작동할 때.. 손이요, 몸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혼자 존재하는 것은 결코 이 될 수 없습니다.

떨어져 있는 순간, 그는 몸의 지체가 아니라, 다른 어떤 존재가 되는 거죠.

 

1장에 보면, 누가가 썼는데, 데오빌로에게 썼습니다.

누가는, 유대인이 아니면서 신약을 쓴 유일한 인물입니다.

욥은 구약에서 유대인이 아니면서 성경을 쓴 인물이고요.

 

 

◑행하고 to do, 가르치신 to teach 예수님

 

누가가 행1:1에서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all the Jesus begin to do and teach

이게 사도행전의 주제입니다.

 

자세히 읽어보십시오. ‘to do’ ‘to teach’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행하시지 않은 것은, 결코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자신이 행하지 않은 일은, 가르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 자신이 행하지도 않은 것을 뻔뻔스레 가르친다면, 그건 외식하는 자입니다.

 

80분짜리 긴 설교를, 서두 15분만 번역해 보았습니다.

다음 호에 계속 번역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