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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수단에 너무 의존하지 않는가요? / 짐 심발라

LNCK 2016. 5. 10. 10:29

www.youtube.com/watch?v=R5RIImpdENo

우리의 수단에 너무 의존하지 않는가요?            1:15~16                출처, 편역

Trusting In Our Own Means Or The Power Of The Holy Spirit

by Jim Cymbala

     

본문 설명

 

1:14절에,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을 바다의 고기 같게 하시며

 

이어지는 15절에, '그들이 낚시로 모두 낚으며, 그물로 잡으며, 투망으로 모으고,

그리고는 (많이 잡았다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

16. 그물에 제사하며 투망 앞에 분향하오니

이는 그것을 힘입어 소득이 풍부하고 먹을 것이 풍성하게 됨이니이다.'

 

하박국에서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도구로 해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하박국은 주께서는 어찌하여 더 악한 백성을 택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벌주시느냐고 묻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은 하나님과 이런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망대에 올라가서,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실 것을 보고 기다리겠습니다.’ 합니다.

 

그런데 제 짐 심발라가 하박국서를 읽다가,

한 재미있는 구절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위에서 읽은 합1:15~16절인데요, 바벨론 사람들을 가리켜 하는 말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자기 수단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는다는 구절입니다.

 

우리가 비록 바벨론 사람들은 아니지만,

오늘날 우리 캠퍼스 사역, 교회 사역도, 그리고 우리 각자의 현재 삶도..

그와 마찬가지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수단을 의지하고,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위 본문 합1:15~16절에서 보여주는 것은,

바벨론 사람들이 사용하는 온갖 수단들입니다.

 

, 낚시, 그물, 투망 등입니다.

온갖 도구를 총 동원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저인망 식으로 싹 쓸어담았는데요,

 

이렇게 세상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은 자기의 수단을 총 동원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는 15b절처럼, 그 결과를 기뻐하는 것이지요.

 

그 나아가서는 16절에, 그 수단을 경배하고, 우상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16. 그물에 제사하며 투망 앞에 분향하오니

이는 그것을 힘입어 소득이 풍부하고 먹을 것이 풍성하게 됨이니이다.

 

왜냐하면, 그 수단들 때문에, 돈을 많이 벌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선지자 하박국은, 이렇게 바벨론으로 대표되는 세상 사람들의 방식을 예언으로 선포하면서,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렇게 세상 수단만을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17절에 이렇게 하박국은 하소연하는데요?

그가 그물을 털고는 계속하여 여러 나라를 무자비하게 멸망시키는 것이 옳으니이까

 

고기를 새로 잡으려면, 현재 그물을 털어야 합니다.

그런 식으로 바벨론이 여러 수단을 이용하여, 즉 여러 전쟁 신무기들을 사용해서

지금 전쟁에서 대박을 터트리며, 나라들을 차례로 무너뜨리며 정복해가고 있다는 증언입니다.

 

세상 사람들, 세상 나라, 세상 기업, 세상에 힘있는 세력들은

이렇게 자기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서,

밑바닥까지 샅샅이 훑듯이, 세상 일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소위 실적을 높이고, 더 높이는 일에.. 자기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 성공과 번영의 신입니다.

그러면서 자기 수단(신 발명품), 자기 능력을 과시하는데요.

 

하박국은 한 마디로,

그보다 더 강한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는 뜻이지요.

 

이렇게 자기 수단과 새롭게 계발한 무기로,

마치 저인망 그물 식으로, 고대 근동의 나라를 차례로 정복해 갔던 바벨론은

그 나라의 위세가, 80년밖에 지속되지 못했습니다.

 

자기 제국의 성공과 번영을, 대대로, 세세에 과시하고 싶었겠지만,

그 위에 하나님이 계시므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바벨론의 치세는, 80년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페르시아에 멸망당하고 말았죠.

 

 

제 짐 심발라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제가 본문 하박국 1장을 읽을 때, 우리들의 교회가 제 생각 속에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신도시나 대도시에 가면, 마치 본문의 바벨론처럼

교회가 각종 수단들을 이용해서,

그 신도시의 사람들을, 바닥에서 훑듯이 싹 쓸어 모아가는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간적 수단들을 자랑하고

인간적 수단들을 칭송하고, 예배하고

 

만약 그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의지하지 않는다면,

마치 바벨론이 속히 쇠잔해 버렸듯이, 모든 거대한 제국들이 속히 쇠잔케 될 것입니다.

 

제가 왜 이런 말씀을 드리느냐 하면,

무슨 목회자들이 모이는 세미나 같은 곳에 가 보면,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수단, 방법론같은 것을 강조하면서,

마땅히 강조되어야 할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을 무시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오늘날 현장의 일선 목회자들은,

여러 가지 인간적 수단에 더 신경을 쓰고, 온갖 정신을 다 거기에 집중합니다.

 

그래서 진짜 신경을 쓰고, 온 정신을 집중해야 할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 기도의 깊은 경지등은 간과되고 있고,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처럼 심판 받을 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오늘날 우리가, 여러 도구들과 테크닉과 방법론과 아이디어에 주력할 때,

그것들을 경배하고 찬양할 때,

우리는 본의 아니게, 본문 16절처럼,

그 도구(신무기)들에 경배하는바벨론 사람들처럼 되어버리는 거지요.

 

적용

 

지금 (20년 전 설교) 미국에서 마치 전염병처럼

교회성장에 관한 테크닉과 이론들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제 짐 심발라 가 미국을 순회하면서 설교하러 다니다 보면,

이렇게 사람의 수단을 의지하는 인간적인 방식이 미국을 휩쓸고 있고

심지어는 미국을 넘어서, 일부 다른 나라에까지 전파되고 있습니다.

 

무슨 세미나 같은데 가서도 보면, 목회자가 이러 이러 해야 한다면서

정작 우리가 주목해야 할 주님에 대해서는, 거의 침묵하고 있습니다.

 

세미나 중간에, 참석한 목회자들이 서로 대화하는 것도 들어보면,

그들은 주님에 대해, 성령님에 대해, 말씀의 능력에 대해 대화하지 않습니다.

그저 교회성장방법론에 대해서만, 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본문 16절에 바벨론인들이 그들의 그물에 분향하고 제사하는것과 똑같이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물에 제사하며 투망 앞에 분향하오니

이는 그것을 힘입어 소득이 풍부하고 먹을 것이 풍성하게 됨이니이다.” 1:16

 

그 방법론은, 2년이 지나면 또 진화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방법론이 등장하는 거죠.

 

그래서 교회가, 구령에 대한 진지한 열정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경외함과 경배함으로 섬기기,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기 등의

교회 고유의 색채들이 점점 더 변질되어 감으로써,

또한 거기에서 실망하고 낙심하는 성도들도 늘어나고 있는 현실입니다.

 

 

파워포인트 등 영상물이 교회와 예배에 유용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경외함과 예배의 모든 순서 중에

가장 중요한 시간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 새로운 시도들이, 현대인들에게 반짝 관심을 끌 수 있는 어떤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교회가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등한시하고, 여러 새로운 방법론에 매달릴 때

그게 길면 2년입니다. 2년만 지나면 사람들은 식상해서 또 등을 돌리고 떠나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그게 현재는 고리타분할지 모르나

신앙 중심으로 방향을 잡아갈 때, 그 교회는 꾸준히 오래 지속될 것입니다.

 

비전 선포도 중요합니다.

그리고 목회자들이, 온 교회에 비전을 선포 vision casting하는 것도

목회방법론적 비전, 교회성장 측면의 비전 선포는, 별로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봅니다.

신앙의 내면적 본질을 추구하는 비전을 제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입니다.

 

한창 교회성장학이 유행할 때는, 너도 나도 성장 측면의 비전을 제시했지만,

이제는 성경이 가르치는 바대로, ‘성숙적 측면의 비전을 제시해야 할 것입니다.

 

성숙이 빠진 성장은.. 우리가 잘 쓰는 말 그대로 거품이니까요.

거품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꺼져 버립니다. 잠시는 부풀어 오르지만 결국은 꺼져 버립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시스템을 아무리 잘 갖추어도

결국 거품은 꺼져 버릴 것입니다. 교회는 시스템이 필요하지만, 본질은 아닙니다.

 

유용한 방법론도 반짝 효과는 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반짝 효과도 점점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교회가 본질적인 신앙을 등한시 할 때

기도회를 모여도, 예배로 모여도,

항상 냉랭합니다. 싸늘합니다. 무기력합니다.

 

우리 미국교회가 목회방법론, 시스템 개선 등 여러 수단을 의지하고 치중하는 동안

그래서 교회가 아주 최첨단 현대적이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 결과, 교회가 무기력하고, 전체적으로 힘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기도회로 모이고, 예배로 모이는데.. 주님이 떠나신 것 같습니다.

 

교회 건물도 열심히 짓고, 증축해서 현대식으로 다 갖췄는데,

꼭 있어야 할 하나님의 영광이, 교회에 별로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는, 성도들이 자기 목사님 이름을 내세워, 어떤 방법론을 삼으려 했습니다.

그 이름에 지명도가 있으니까, 그 이름을 걸고 나갔던 것입니다.

잠깐은 그게 되었는데, 결국은 그것도 본질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누구 이름을 내세워서, 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사실 교회가 주님의 이름을 앞세우지 않고,

누구 이름을 앞세우면, 그건 성령님을 근심되게 하는 일입니다.

 

과거에는 무슨 교단 이름을 앞세워서, 나아가기도 했습니다.

자기들이 최고 정통교단 교회라는 것이지요. 이게 교만으로 오히려 역효과가 났습니다.

그런 수단들을 의지하지 말고, 복음과 성령의 능력으로 정면승부를 걸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교회 이름을 앞에서, 나아가려는 시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파트나 회사 이름에 가치가 있듯이, 교회 이름에도 가치가 있어서

그 이름을 걸고, 그 교회의 지교회로 나아가면.. 반짝 효과는 있습니다.

그런 게 효과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다 반짝 효과 라는 것입니다.

 

복음, 말씀, 기도, 구령의 진지한 열정, 하나님의 영광.. 이게 결여되면

그 반짝 효과는.. 길면 2~3년이라는 거죠.

 

그런데도 여전히 못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한 방법론이 안 되면, 다른 방법론을 찾고,

한 지역에서 안 되면, 다른 지역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나중에 하다 하다 안 되면, 교회를 매물로 팔려고 내놓게 되죠. 성물을 다 포함해서요.

 

 

신앙의 본질을 추구하지 않으면.. 뭘 해도 다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게 또 1, 2년 만에 획득 되는 것도 아니거든요.

목회자 자신이 먼저 영적으로 성숙되어져야 합니다.

 

정말 영혼 구원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 들어야 되고,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늘 사모하는.. 준 성자가 되어야 하는 거죠.

그런 분은, 반대로, 뭘 해도 된다는 거죠. 아무리 여건이 안 좋아도요.

 

그러니까 성경 한 권만 들고, 금식을 하든지

능력을 받든지 (옛날에 이런 표현 많이 썼습니다)

목회자가 완전히 새 사람으로 변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어떤 래디컬한 변화의 모멘트(순간)가 있어야 되고,

그러나 그 순간만, 그 체험만 있어서는 안 되고

그 이후로 마치 거북이걸음같지만, 꾸준한 영적인 성장이 있어야 되는 거죠.

 

현실적으로 목회 행정에 너무 바쁜 나머지,

그렇게 경건의 훈련을 쌓아갈 시간과 여건이 안 되는 면이 있지만요.

 

토끼처럼 빨리 가려고 하면, 결국 못 가게 되고, 늘 다시 시작하게 되고

비록 거북이처럼 느리지만, 기도와 말씀으로 자기 경건의 훈련을 쌓아가며

자기 스스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때.. 그는 다른 제자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럴 만한 실력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많이 배운 사람들, 똑똑하신 분들은 특히 명심하실 사항은

자기 지식과 똑똑함 때문에, 그걸 스스로 자랑하고 또한 칭송을 받다보면,

그것 역시 하나의 수단이 되어서, 성령님을 근심하게 할 수 있습니다.

자기가 바리새인 적인 의를 가졌다고 자랑하는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자기가 사회에서 출세했다는 분들도,

대기업의 이사급이거나, 법조인, 교수, 억대 연봉자, 이런 분들도,

자기 지위에서 오는 존경과 자랑 때문에, 성령님을 근심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말씀, 기도, 하나님의 영광, 임재, 회개.. 이런 게 거의 안 나타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종종 우리에게 환란을 주셔서, 우리를 결국 낮추어서 쓰시긴 하지만요.

 

그래서 보통은 절박한 낭떠러지에 처한 사람,

완전히 밑바닥에 내려간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일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진실로 자기 수단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만 간절히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가 의지할 만한 수단이, 물질, 건강, 경력, 인맥..

이런 게 아예 깡그리 없으니까요!

 

그래서 완전히 맨손으로, 맨바닥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뭘 하는데..

신기하게 거기에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임하시고 부어져서

무슨 일이 되어지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진정한 사역은, 이렇게 해서 출발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자 이제 오늘 우리는, 나 자신을 겸허하게 돌아봅시다.

나는 무엇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위에서, 우리가 주님 한 분만 간절히 의지하지 못하게 하는

여러 수단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 그물, 낚시, 투망들을 다 내어버리고,

그게 반짝 효과는 있지만, 2~3년 지나면 다 도루묵입니다.

 

오직 주님, 말씀, 기도, 영광, 임재, 구령의 진지한 관심을 사모하고 의지해서

비록 거북이처럼 느리더라도,

나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의 제자로 성숙해 가는 가운데,

나를 따르는 성도들에게, 똑같은 본받음이 생길 줄 믿습니다.

그래서 반석위에 든든히 세워질 줄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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