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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선택 / 젠센 프랭클린

LNCK 2016. 5. 11. 14:34

www.youtube.com/watch?v=BMgPKby3Vp0

현명한 선택                  24:15                       출처, 180강 녹취 후 정리

 

Wise Choices by Jentezen Franklin

     

여호수아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섬길 자를 택하라"라고 말합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선택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최고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삶을 살며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가장 큰 축복을 받기 위해서도 그러합니다.

 

우리의 현재 삶은 대부분 우리 과거의 선택 때문에 나타난 현실입니다.

우리의 미래 삶은 우리의 오늘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우리가 선택을 할 때 특별히 인생에서 중요하고 힘든 결정을 하는 것은

이상적인 환경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반대로 어렵고 힘든 경우에 꼭 중요한 선택이나 결정을 하게 되는데요,

어렵고 힘든 경우에 내리는 선택이나 결정은.. 잘못될 경우가 아주 높습니다.  

 

예를 들면,  연애하다 실연했을 때, 또는 이혼 전후에 내리는 결정은.. 아주 잘못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현명한 선택은, 평소에 감정이나 정신이 평온한 상태에서 ..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선택을 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 그런 선택을 해봤지만요.

하지만 어떤 경우에 이러한 선택은 되돌릴 수도 없으며 삶을 망가뜨리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람에게 이렇게 질문하게 됩니다.

"왜 그랬어? 무슨 생각으로 그랬어?"

 

그럼 그 사람은 보통 이러한 대답을 합니다.

"화가 나서 그랬어." "두려워서 그랬어." "열정이 잠깐 너무 과도해서 그랬어."

 

또한, 이러한 대답을 하기도 합니다.

"아주 힘든 시기여서 그랬어." "감정적인 선택이었어."

"주위에서 그러라고 압박하길래 순간적으로 그렇게 선택했어."

 

사정이 나쁠 때, 좋은 선택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는 나쁜 시절에, 여러분에게 좋은 선택을 하는 방법을 가르치시길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좋은 시절에 좋은 선택을 하기란 쉽거든요.

 

사람들은 나쁜 시절에 끔찍한 선택을 하기 마련입니다.

병원에서도 여러분 가족이 생명유지장치를 달거나, 죽음이 임박하기 훨씬 전에

최후의 힘든 선택들을 미리 하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러 가지 선택을 어떻게 할지 미리 생각해야 합니다.

 

병원에서도 가장 나쁜 때에 선택을 하길 기다리기 보다는

미리 마음속에 선택을 해 놓고, 그때가 오면 재고해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좋은 방법임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골로새서 1장이 선택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1: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잘 들어보십시오...'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22

바로 다음 구절이 아주 핵심적입니다. “만일

 

모두 따라 하십시오. "만일".

"만일"이란 조건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 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여기서 바울은 뭐라고 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굳게 서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 위에 굳게 서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진리가 우리 안에 뿌리내리지 않았다면,

굳게 선다는 것은 뿌리내렸다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진리가 흩뿌려져 있고,

도덕적인 것과 부도덕한 것이 무엇인지 뿌리내려 심기지 않았다면

우리 생각으로도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확정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분위기에 따라 행동하고 상황에 따라 휩쓸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비치지 않을 것입니다.

 

핵심은 바로 진리 위에 굳게서는 것입니다. 믿음 위에 굳게 서는 것입니다.

굳게 서는 것이란 확고히 고정한다는 것이며

무언가가 중요하다고 마음속에 정해 놓는 것입니다.

 

차 뒷좌석에서 아이들이 장난을 치며 놀 때 "가만히 있어"라고 말씀해보신 적 있으십니까?

바로 그러한 뜻입니다. 무언가 위기의 상황에 봉착하기 훨씬 전부터

진리를 마음에 받아들이고 생각 속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이 무엇인지 도덕적이고 부도덕한 것이 무엇인지를요.

 

유혹을 당하기 전 정신 나간 짓을 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 전부터

그렇게 하십시오. 여러분 안에 굳게 서 있는 진리가 있어야 합니다.

 

진리 위에 서는 것이란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무엇이 도덕적이고 부도덕한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내 안에 이미 있으며

사회와 사람이 바뀌거나, 상황이 달라졌다고 바뀌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한 것을 우리 안에 굳게 세워야 합니다.

이렇게 했을 때는 가장 나쁜 시절에도 가장 좋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진리가 우리 안에 뿌리내렸을 때 그러합니다.

 

완벽한 상황에서는 좋은 선택을 하기가 쉽습니다.

 

따라서 여러분 배가 고플 때 장을 보러 가지 않을 것을 권해 봅니다.

 

제가 장을 보러 마트에 간다고 가정해 봅시다.

제 아내는 이 정도 되는 쇼핑 목록을 줬을 거예요.

아마 저는 25달러 정도를 들고 나왔을 겁니다.

저는 우유, 달걀, 빵을 사야 해서 나온 거죠.

 

그런데 매대 사이로 걷다가, 가는 길에 바나나 푸딩과 초콜릿 푸딩이 눈에 들어옵니다.

과자와 다른 음식도 눈에 들어옵니다.

원래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인데 말이예요.

 

하지만 저는 배가 너무 고파 그러한 것들을 장바구니에 넣기로 선택합니다.

저는 마트를 쭉 돌며 도넛과 아이스크림, 쿠키 등이 너무 맛있어 보여 다 바구니에 넣습니다.

"정말 맛있어 보여."

 

드디어 이제 계산대 앞에 도착합니다.

계산대 앞에 도착했을 때야 문제가 하나 떠오릅니다.

제가 25달러밖에 안 갖고 나왔다는 사실이죠.

 

이제 계산을 해야 하는데 말입니다.

이때 보통 우리는 계산대 근처에 집어온 물건을 밀쳐놓습니다.

반납하는 것이죠.

 

이 오븐 즉석조리 빵은 도대체 왜 가지고 왔는지 모르겠네요. 필요도 없는데.

또 왜 초콜릿 칩 쿠키를 샀는지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실 그렇게 먹고 싶은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에요.

 

그때 저는 너무 배가 고파서나쁜 선택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배가 불렀을 때 선택을 해야지, 배가 고플 때 해서는 안 됩니다.

 

인생도 이랬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바구니 안에 삶의 모든 양상을 집어넣어 놓고

영원에 들어가기 전, 계산대에서 계산하기 직전에 이렇게 말하고 싶겠죠.

이것, 저것들은 반납할게요.’

그러나 마트에서는 반납이 가능하지만, 영원에 들어가서는 반납이 불가능합니다.

 

내 인생이라는 바구니에 이러한 잡다한 것들을 넣어 두고 살다가,

영원의 계산대 앞에서, ‘내게는 필요 없는 물건입니다. 제가 잘못 골랐습니다.’라며

우리는 그걸 내팽개칠 수는 없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거듭난 크리스천이라도

여러분의 바구니 안에, 있으면 안 될 것들이 있다면

여러분은 구원을 받겠지만, 그에 대한 대가를 계산대에서 지불할 것입니다.

완전히 회개하지 않은 경우에 그럴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0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이 구절을 가장 단순하게 해석하면,

선한 일이든지, 악한 일이든지

선악간에 자기 행위에 대한 심판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관련글 : 한 웅큼의 재

 

그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도대체 저것이 왜 네 바구니에 있는 것이냐?"

 

"저는 사실 별로 원치 않았는데요. 다시 두고 와도 될까요?

배가 고파서 넣어둔 거예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이 여기 있는 건, 그때 제가 배가 고팠기 때문이예요, 주님."

 

하나님께서는 그때 여러분을, 배가 너무 고팠던 나머지

'한 그릇 팥죽을 위해 자기 장자의 명분을 팔아버린 에서'처럼,

바라보실 수도 있습니다.

간절히 회개하고, 그 회개가 주님께 받아들여졌다면, 그런 일은 없겠지만요.

 

제가 말씀드리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여러분도 나중에 계산대에 섰을 때,

바구니에 담은 것들의 대가를 지불해야 할 것입니다.

육신의 욕망에 따라 산다면, 나중에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방금 읽은 고린도후서 5:10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또한 죄는 용서 받아도, 죄의 결과를 치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죄를 용서 받아서, 죄의 결과까지 면제되는 경우도 있지만요.

 

예를 들면, 욱한 성질에 남에게 상해를 입히면,

회개해서 그 죄는 하나님께 용서를 받아도

그 상해를 입힌 자기 죄의 결과는, 자기가 치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걸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만약 치르게 된다면,

아주 후회하게 될 터이니

우리 각자가 살아있는 동안에,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이 죄의 결과까지 면제해 주시도록, 기도해야 되겠습니다.

(가톨릭에는 보속개념이 있는데, 자기 선행으로 일부 갚는 것입니다.)

 

    쉽게 예를 들면, 철수가 같은 반 친구를 때리고 괴롭혔습니다.

    선생님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습니다.

    선생님은 쿨하게 철수를 용서해 주실 때도 있고,

    또한 벌청소를 시키면서 용서해 주실 때도 있지요. 교육적 목적으로요.

 

    그 힘든 벌청소가 죄의 결과입니다.

    죄를 용서 받아도, 결과를 치를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가급적 죄를 안 짓는 것이, 이래 저래 제일 낫죠.                ☞죄의 결과 / 론 솔로몬

 

개신교는 회개하면 무조건 다 용서해 주신다는 너무나 단순한 논리를 갖고 있습니다만,

그 말은 맞지만, 그 속에는 많은 경우의 수가 들어 있습니다.

 

지금 이 설교의 주제는, ‘내가 선택을 잘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라고 선택했듯이

우리도 내 선택에 책임과 결과가 따르게 될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성령님이 도와주시지만,

내가 내 육신의 정욕/안목의 정욕/이생의 자랑을 따르면

이 세상에서도 결과를 책임져야 하며

회개를 안 하면, 저 천국 심판대 앞에서도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하므로,

가급적 성령을 좇아서 선택하라입니다.

 

지금 저 젠센 프랭클린은

지금 설교시간에 구원을 받았느냐 거듭났느냐?’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 장바구니(카트)에 넣는, 여러 육신의 일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선택의 결정에 따라

장래에 여러분은 상급을 대가로 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영원에서 그 결과를,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믿는 사람들로서

주님 앞에 서서 잘한 일과, 못한 일을 심판받게 될 것이며

우리가 한 일들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마트에서 장 보는 것처럼,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지상의 마트에서는 되돌려도 천국에서는 못 되돌립니다)

 

바로 이것이 중요한 논지입니다.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들을, 여러분의 인생 카트에 두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왜 여러분의 카트에 술이 있습니까?

왜 여러분의 카트에 포르노 음란물이 있습니까?

육신의 자랑 같은 것도 왜 그곳에 담겨 있습니까?

나중에 다 갚을 치러야 한다니까요. (마트를 연상해 보세요)

 

그런데 그 계산대에서는, 물리지를 못합니다.

내가 고른 물건은, 다 계산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크리스천으로서 때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구원받아 천국에 간다는 사실이며

천국만 가면 된다고!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는 바는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서 두려워 떨며, 자기 카트를 정산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걸 다 돌려놨으면 좋겠어." 아마도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카트 : 마트에 물건 담는 끌차

 

하나님의 예정, 성령의 인도하심, 주님의 은혜

이런 것들은, 내가 의로운 결정을 내리도록 도와주는 가이드 들입니다.

 

그런데 최종 결정을 내리는 주체는 이며,

거기에 대한 책임도 내가 지는것입니다.

 

제발 배고픈 채 엉뚱한 선택을 하시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배불리 거하시길 바랍니다.

 

성령으로, 말씀으로, 우리는 배가 불러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거룩한 자로 여김 받습니다.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여김 받게 됩니다.

 

하나님으로 배가 부르니까,

다른 세상 것에 허기져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 신자들은,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자기 인생의 카트에, 잔뜩 쓰레기로 채우고 있는데

나중에 이 모든 것을 정산해야 한다는 것을 완전히 잊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동성 결혼을 지지하는 정책 입안자들은,

그 결정에 대한 아무런 대가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천국의 계산대에서, 모두 자기 결정에 대한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미국에서 매년 수 십만 명의 아이가 가족계획 때문에 낙태되고 있습니다.

그 결정에 대한 아무런 대가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기가 카트에 담은 모든 결정들은, 계산대에서 모두 값을 치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자기 육신의 정욕대로, 마구잡이로 자기 인생이란 카트에 넣어둔 채 살지만

계산대 앞에서 대가를 치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천국의 계산대에 이르렀을 때, 여러분의 카트에 들어있는 것은, 모두 대가를 치르셔야 합니다.

선악간에요.

 

그러므로 너무 계산을 너무 부정적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선한 일에 대해서는 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계산 상 받는 날을 오히려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저는 지금 지혜로운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해 나누고 있는데요.

여기에 대한 적절한 예화가 한 가지 떠올랐습니다.

인터넷에서 본 상당히 흥미로운 사실을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펩시콜라와 코카콜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1972년에는 코카콜라가 전체 탄산음료 시장의 18%를 차지했습니다.

단연 업계 1위였습니다.

그리고 4%만이 펩시콜라를 마셨습니다.

 

펩시콜라는 결국 코카콜라를 따라잡기로 결정하고

"펩시 챌린지"라는 놀라운 마케팅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그들은 마트든, 쇼핑센터든 어디든지

펩시와 코카콜라의 상표를 가린 채, 시식용 종이컵을 앞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참가자가 마시게 하고, 어느 쪽이 더 맛있었는지 정하도록 했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예상을 뒤엎고

 

57%의 사람들은 펩시가 코카콜라보다 맛있다고 답했습니다.

43%의 사람만이 코카콜라를 선택했습니다.

 

"펩시 챌린지"의 결과는 펩시콜라의 월등한 우승으로 끝났습니다.

 

1980년이 되자 코카콜라는 수백만 달러를 광고에 썼음에도

시장 점유율이 17%대로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펩시콜라의 시장 점유율은 11%로 올랐습니다.

 

당황한 코카콜라 임원들은 긴급회의를 소집해 말했습니다.

과학자들은 곧 코카콜라 제조법을 변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음료를 더 달고 좀 더 부드럽게 만들기로 한 것이죠.

 

그래서 새로운 콜라를 만들어 시장에 출범하기 전

나라 전역에서 시음 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시음 행사의 반응은, 잠시 좋은 듯 했습니다.

 

그래서 코카콜라 사장은 기존의 콜라를 모두 회수하고

"-코크"라는 콜라를 새로 발매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아주 놀랍게도 뉴 코크는 슬프도록 참패했습니다.

소비자들은 새로운 콜라를 좋아하지 않았고,

기존의 클래식 콜라를 다시 판매하라고 분노하며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는 동안 코카콜라는 탄산음료 시장에서 1위로 치솟았으며

30년 이상의 시간 동안 그 자리를 지켜 왔습니다.

 

그런데 제 말의 포인트는 바로 이것입니다.

 

상표를 가리고 시음을 하는 블라인드 테스트에서

펩시는 코카콜라보다 분명히 더 맛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시장에서, 코카콜라는 기존의 콜라로 점유율 1위를 계속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겠습니까? 그 대답은 이렇습니다.

잘 들어 보십시오.

 

테스트에 참가한 사람은 한 캔을 마신 게 아니었습니다.

한 모금을 마셨을 뿐입니다.

 

사람들이 한 모금을 마셨을 때엔, 펩시가 더 달고 맛있지만

한 캔을 다 마실 경우에는, 펩시가 너무 달다고 말했습니다.

 

한 모금을 마셨을 때는, 펩시가 더 맛있지만

한 캔을 다 마셨을 때는, 코카콜라가 더 상쾌하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죄의 특성입니다 

우리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있는 한 모금의 달콤함에 자주 속습니다.

그러나 결코 인생길의 선택의 기로에서

죄를 한 모금만 마신 채 선택하지 마십시오.

전체를 보셔야 하고, 한 병을 다 마셔보셔야 합니다.

 

죄는.. 한 모금, 한 순간의 쾌락입니다.

한 모금, 한 순간은 달고 맛있지만,

전체가 다 달고 맛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죄는, 그 전체 결과는, 여러분을 항상 실망시킵니다.

바로 이것이 죄입니다.

 

여러분, 선택할 때는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불륜을 저지르기로 선택했다면

마귀는 상처받을 자녀들을 뺀 채, 그 불륜의 달콤함만 보여줍니다.

 

마귀는 십대 아이에게, 성병으로 망가진 삶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에이즈나 기타 다른 성병으로 고통 받는 것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마귀는 여러분에게 혼전 성관계에 대한 아름답고 유혹적인 모습만 보여줍니다.

전체 그림은 엉망인데, 그 순간의 달콤함만 생각하라는 것이죠.

 

마귀는 십 대 아이에게 그냥 담배를 피우라고 말합니다.

마귀는 폐암을 보여주지 않고, 담배를 피우면 멋지게 보인다는 것을 어필합니다.

 

마귀는 술을 마심으로 얻는 간 질환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음주운전의 결과로 오는 교통사고의 결과로

누군가를, 또는 나 자신을 파멸하는 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마귀는 코카인을 했을 때 얻는 아름다운 면만 강조해 보입니다.

마귀는 코카인의 결과로, 깨어진 가정,

가족이 마약 복용자 때문에 고통받는 것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마귀는 탕자에게 호텔 스위트룸만 보여줄 뿐이지

그가 나중에 처할 돼지우리는 보여 주지 않습니다.

 

마귀는 유다에게 은 30닢만 보여줬지

그가 목매달아 죽은 나무의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죄는 결국 나를 살인하는 것입니다. 죄는 여러분의 친구가 아닙니다.

죄는 여러분을 파멸로 몰아넣기 위해 존재하지만

그 첫 한 모금은 달콤할 수 있습니다.

 

죄를 지을 때도 한 시즌 정도는 쾌락이 있습니다. 죄의 쾌락은 한때입니다.

이 말로 오늘 설교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첫 모금이 달콤했다면, 나머지는 쓰디 쓸 확률이 높습니다.

 

욥기 20장에는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는 비록 악을 달게 여겨 혀 밑에 감추며 아껴서 버리지 아니하고

입천장에 물고 있을지라도

그의 음식이 창자 속에서 변하며 뱃속에서 독사의 쓸개가 되느니라.' 20:12-14

 

놀라운 말씀 아닌가요? 바로 이것이 죄입니다.

첫 모금은 달겠죠. 그러나 그것이 창자에 닿았을 때는

송곳니가 날카로운 독사와 같이 변합니다. 바로 마귀와 같은 것입니다.

죄는 저와 여러분을 파멸로 몰고 갑니다.

 

모두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으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보좌 아래에 있는 계산대 앞에 서게 됩니다.

 

여러분 중 일부는 아직 20~30년은 더 산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그렇길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 죽을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오늘이 끝나기 전에 영원 속으로 들어갈 수도 있죠.

오늘 계산대 앞에 설 수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의 바구니에는 무엇이 들어 있습니까?

여러분의 입에 무엇이 달콤했습니까?

 

그것이 창자 안에서 독사가 될 것이며,

(인생의) 한 병을 다 마셨을 때는 아주 쓸 것입니다.

 

회개하십시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남은 인생,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십시오.

 

바로 여호수아의 말과 같은 선택입니다.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 2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