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3편 계2:4 모두 펀 글
◑1. 장인은 공방에서 일어난 일을 함부로 발설하지 않는다
이상 문학상은 우리나라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 중의 하나입니다.
한 해 동안 발표된 중편이나, 단편 소설 중에서
예술성이 가장 빼어난 작품을 쓴 작가에게 주는,
비교적 공정하다는 평판을 듣는 문학상이지요.
좀 오래 됐지만, 1991년도의 이상 문학상은 소설가 조성기 씨가 받았습니다.
수상작품은 <우리 시대의 소설가>라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의 수상작가는 양귀자 씨였는데
<숨은 꽃>이라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두 작가의 공통점은, 작품 속의 주인공이 모두 소설가였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소설가가 소설가의 이야기를 쓴 것이지요.
여러분도 종종 이런 류(類)의 작품을 접해 보셨을 겁니다.
이런 경우 필연적으로 자기 일에 관한 애환을 쓸 수 밖에 없고,
그 중 상당부분은 작가 본인이 경험한 얘기를 썼으리라는 것은 예상하기 그리 어렵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연달아 이태를, 소설가들 자신의 얘기를 쓴 작품이 수상하게 되자
그 상의 심사를 맡았던 한 원로소설가가 불만 어린 심사평을 쓴 것을 봤습니다.
너무 오래 돼서 정확한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대략 한 줄로 요약하면,
‘장인(匠人)은 공방(貢房)의 일을 함부로 까발리는 법이 아니다’ 라는 거였습니다.
무슨 얘기일까요?
“‘지금 당신들의 작품은 소설 한 편 쓰기가 너무 힘들다’라는 얘기를 이리저리 돌려서 말한 게 아니냐?
세상에 힘 안 드는 일이 어디 있냐,
그것은 소설가 아니라, 다른 어떤 일 하는 사람도 그만한 고통과 대가를 다 치루는 건데,
왜 유독 당신들만 힘들어 죽겠다고 푸념을 하는 거냐?
그런 얘기는 우리끼리나 지나가면서 하면 그뿐이지
그것을 (소설로) 까발려서 좋을 게 뭐냐?
오히려 숨기면 더 잘 알아줄 것을,
왜 굳이 밝혀서 스스로 가치를 떨구는 짓을 하느냐?” 그런 불만일 겁니다.
▲저도 거기에 상당히 공감했습니다.
작품을 통해서 자기 하는 일이 얼마나 힘들고 대단하고 위대한가라는 것을 알리려고 하면
그 순수성을 의심받게 되고, 감동 역시 반감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우리 교회 형제자매들의 연주를 들으면서 놀라는 것도 바로 그겁니다.
그런 소리를 낼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이 연습을 했겠으며,
잘 안 돼서 좌절했다가 다시 힘내는 일이 또 얼마나 많이 반복됐겠습니까?
그럴 때마다 관두고 싶고, 다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가서
다른 일을 찾아볼까 했던 순간들은 또 얼마나 많았겠어요?
그런데 여러분 중에 누구 하나, 그런 어려움을 얘기하는 분이 없습니다.
다들 혼자 그 힘든 것을 끌어안고 이겨 나가는 것을 제가 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그런 ‘자기와의 싸움’,
그리고 그 극복하는 모습에 제가 늘 감동받고 그래서 여러분을 존경하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우리 중에 그 책망을 들어야 할 사람이 한 사람 생긴 것을 알았습니다.
누구겠습니까?
바로 저였습니다.
그 원로소설가의 권유대로 하자면
설교자인 저는 정말 설교에 대한 이야기는 가급적 삼가야 되고,
설교를 준비하는 데 따르는 괴로움이나 어려움 따위는 입 밖으로 발설해서는 안 됩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이 일에 있어서는
오직 성령께 의지하고, 기도하면서 과정 전체를 맡기는 수 밖에 없는데,
어느 순간엔가부터 제 스스로가 거기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꺼내는 것을 본 겁니다.
저의 의도가 뭐겠습니까?
“이 설교가 얼마나 힘들게 나오는 줄 아느냐?
얼마나 큰 괴로움과 고통 가운데 말씀이 만들어지는 줄 아느냐?
또 영감이 오지 않을 때의 그 막막함을 당신들이 아느냐?”
그런 심경이 숨어 있는 겁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제발 이 모든 것을 좀 알아주시오’
하는 사심이 들어있었던 겁니다.
이런 일이 계속되다 보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어느 순간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해 놓고도
그 영광을 설교자 자신이 가로채게 되는 데까지 빠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이 문제를 놓고 제가 다시 한 번 반성과 회개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출처
◑1. 사랑 없이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1990년 대 초반의 일로 기억하는데,
어느 날 당시 잘 나가던 소설가 한 분이 절필을 선언했습니다.
더 이상 소설을 안 쓰겠다는 것이지요.
신문에 연재도 많이 했고, 소설도 많이 팔리고,
당시로서는 꽤 드물게 팬클럽까지 있던 작가였는데
갑자기 일간 신문에 절필 발표를 해 버렸습니다.
김주영이라는 분이었는데, 그의 인터뷰 기사를 보니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실려 있더군요.
그가 소설쓰기를 그만 두려고 하는 이유는
첫째, 영혼이 메말라 버린 까닭이고
둘째는 더 이상 독자를 속이기 싫어서였다는 겁니다.
기자가 그게 무슨 얘기냐 그랬더니, 글을 오래 쓰다 보니까
어느 순간 자기는 기능인이 되어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사실이 아닌 것도 얼마든지 독자를 속일 수 있을 만큼
글 쓰는 기술이 능숙해져 있더라는 거지요.
*사랑 없이도 글쓰기가 익숙해져서, 기계적이 되어버렸다는 거지요.
그러면서 더 이상 글 쓰는 일이 기쁘지 않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펜을 꺾어야겠다고 결심했답니다.
그러자 기자가 묻기를, 당신 자녀들이 아직 어리고
부양해야 할 부모도 있는 걸 알고 있는데,
소설을 안 쓰면 어떻게 생계를 이어갈 거냐 그랬더니,
공사판에 나가서 육체노동을 해서라도 돈을 벌겠다고 대답했더군요.
그러면서 대성통곡하는 사진이 실린 그 소설가의 기사를
꼼꼼하게 읽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이 사건을 두고 일각에서는 공감을 하기도 했고,
반대로 작가가 너무 쉽게 절필 선언을 한 것 아니냐 하는 얘기도 터져 나왔습니다.
결국 1년 후엔가 그 분은 다시 문단에 복귀해서 일은 단발성 에피소드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듯이
글 쓰는 사람이 글 외에 다른 세상에서 살기는 어려운 일이겠지요.
어쨌든 당시 그 사건을 접하면서 느낀 생각은,
그땐 제가 아직 어려서였는지, 아니면 세상 물정을 몰라서였는지,
마음을 담지 않아도 독자들이 믿을 만큼,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자못 충격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일도,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즉 음악을 싫어하면서도 연주는 할 수 있고,
조상을 좋아하지 않아도 제사는 드릴 수 있고,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결혼은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사역을 할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런 일이 실제 일어난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언제든 마음이 실려 있어야 행복하고,
그래야 해피 엔드로 끝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2:4 출처
◑3. 미국이 강한 이유, 발론티어 정신
<한국이 미국에게 당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이상한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이 오연호씨는 대학생 때부터 철저 하게 반미주의자입니다.
항상 대모 앞에 서요. 대모 주동자였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때 그는 좀 더 미국을 알아야겠다고 생각을 해서 미국 유학을 하게 됩니다.
거기서 그는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됩니다.
소련도 망하고, 사회주의도 망하고, 구라파도 엉망이고
일본도 저렇게 시들어 가는데
도대체 미국은 왜 8 년 동안 계속 호황을 이루냐.
내가 이것을 좀 알아야겠다.. 그래서 그는 열심히 연구합니다.
그 결과로 쓴 책이 이겁니다. 이 책에서 그는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미국은 발론티어 정신이 있기 때문에 망하지 않는다.'
그랬습니다. 자원봉사자입니다.
적어도 미국사람이라면 일주일에 몇 시간, 한 달의 며칠은 자원봉사 해야 되는 줄 압니다.
이것을 못하면 사람 구실을 못하는 겁니다.
그래서는 교회마다 가면 거기 큰 게시판이 있고
거기에 보면, 어디 가서 언제 어떻게 봉사할 수 있는지, 자원자를 모집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스스로
정한 시간에 가서,
심지어는 어떤 때는 봉사하기 위해서 훈련을 받아 가지고 가서 봉사합니다.
적어도 내 생애 중에 살기가 팍팍하고 어렵거나, 뭐 가난하거나 상관없습니다.
적어도 몇 시간은, 그리고 며칠 동안은 꼭 자원봉사 해야만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년에 4천 만 명이 자원봉사에 나섭니다.
생각해 보세요. 자원봉사 정신!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이 훈련을 받습니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자원봉사 성적이 없으면 대학에 못 갑니다.
공부 잘 했다고 가는 게 아닙니다.
자원봉사를 한 훌륭한 성적을 가지고야 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원봉사 정신을 쌓고 난 다음에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해도, 연구를 해도, 무얼 해도
봉사하는 마음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미국은 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미국에서 신앙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쓰게 됩니다.
우리 각자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직업이 무엇이든지 상관없이, 그 바탕에 봉사정신이 깔려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망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잘 되게 되어 있습니다. 출처
'분류 없음 > 2016'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험과 환란 중의 기쁨 P1 / John Piper (0) | 2016.05.19 |
---|---|
임대 인생 / 피터 매스터스 (0) | 2016.05.18 |
힐링에서 사랑으로 (0) | 2016.05.13 |
하나님과 가정과 교회 (0) | 2016.05.12 |
현명한 선택 / 젠센 프랭클린 (0) | 2016.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