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P1 렘23:15~29 출처, 대강 번역 P2
Is Not Your Word A Fire? by Jim Cymbala
▲주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생각해야할 2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말 내가 사역으로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실이 확실합니까?
부르심이 확실하지 않으면, 사역이 외롭고 힘듭니다.
만약 부르심이 불분명하면,
사역하다가 만나게 되는 어려움과 괴로움을 뚫고 나가지 못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그런데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라도, 제자리에 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부르신 자리가 아닌, 엉뚱한 곳에 가 있으면 안 됩니다.
주님의 부르심이 있지만, 그 길을 벗어나서 엉뚱한 곳으로 가서
엉뚱한 일을 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룰도 잘 지켜야 합니다.
뛰어난 농구선수는, 코트에서 위치선정을 잘 해야 합니다.
공이 오는 타이밍도 잘 맞추어서 자기 위치를 잡아야 합니다.
그래야 효과 만점의 플레이를 펼칠 수 있는데요..
오늘 이 점에 대해서, 제가 이 목회자 세미나에 모이신 여러분에게
말씀을 나누기 원합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부르심을 분명히 받았지만, 그래도 사역이 실패 수준으로 저조할 수 있습니다.
자기 사역을 통해, 주님을 알고 믿게 되는 사람들이 거의 없게 될 때
얼마나 낙심하게 되는지요.
그러면 성경을 파고 그 이유를 찾아야 되는데,
주님께 기도하며 그 이유를 물어야 되는데,
많은 사람들은, 또 다른 장소에 가서, 또 다른 사역을 시작하려 합니다.
내적인 요인의 개선보다는, 외적인 환경을 개선하는..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농구선수가 올바른 위치를 선정하고, 올바른 자리에 가 있어야 하듯이,
우리 사역자들은, 성경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깊이 파고, 기도에 더 깊이 빠져야 한다는 것이죠.
그것이 부름 받은 사역자가, 사역이 저조할 때, 해야 되는 가장 중요한 문제해결 방식입니다.
그런데 사역자가, 사역에 저조하면,
다른 성공하는 사역자들이 하는 사역 방식을 그대로 흉내 내어 해 보는데,
그 사람은 성공하지만, 자기는 그대로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좌절하기를 반복하는데요..
저 짐 심발라는, 순회 강사의 사명이 있어서
미국의 여러 지방이나, 해외의 여러 나라로 늘 다니면서 집회를 인도합니다.
거기서 사역하다가 좌절한 사역자들을 수없이 만납니다.
그들이 좌절하면, 내부적인 면으로 이유를 찾아서 해결해야 될 터인데,
제가 보니까, 그들은 항상 외부적인 면으로,
예를 들면, 사역지를 바꾼다든지, 사역의 분야를 바꾼다든지 하는데..
그들의 좌절은 또 계속되는 것을, 금년에도 저는 봅니다.
◑예레미야의 메시지
렘23:15절을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선지자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리니
이는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로부터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
이어서 16절에서 주님은 심하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이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17절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그러면서 여기에 재미있는 말씀이 나옵니다.
예레미야가 거짓선지자들을 조롱하듯이 말하는데요.
렘23:18. “누가 여호와의 (어전)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냐”
25절.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꿈을 꾸었다 꿈을 꾸었다’고 말하는 것을
내가 들었노라”
*자기 개인적 야망의 비전을 선포하는 것을 뜻함.
26절.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28절이 중요하니, 귀담아 들으십시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꿈을 꾼 선지자는 꿈을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
‘꿈을 꾼 선지자’와 ‘내 말을 받은 자’가 대조되어 나옵니다.
꿈을 꾼 (가짜) 선지자보다는, 말씀을 받아서, 그것을 성실하게 증거하라고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합니다.
29절도 중요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29
▲저는 이 예레미야서 23장의 말씀을 평소에 늘 읽기 좋아합니다.
여러분도 그러하시죠?
여러분, 성경 읽는 습관을 포기한 채,
설교 자료를 이곳 저곳 뒤지는 습관은, 아주 좋지 않습니다.
그건 하나님을 존경하지 않는 삶의 자세이며, 자기 영혼의 건강에도 좋지 않습니다.
저는 구약성경을 읽어가면서, 동시에 신약성경을 두루 읽어나갑니다.
성경 말고 무슨 책을 더 열심히 읽겠습니까?
저는 지난 몇 주간 동안에는 <예레미야서>를 읽고 연구했습니다.
읽어보니 기가 찼습니다.
예레미야가 ‘주님의 입’이 되어서 신실하게 말씀을 전달하는 사역을 했지만,
사람들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말을 지어내어 전하는 거짓선지자를, 대중들은 따라갔습니다.
그래도 예레미야는, 신실하게 자기 사명을 계속 감당한 것을 보면서, 제가 도전을 받았습니다.
예레미야서를 보노라면, 마치 바울서신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가 당한 고난과 위험이, 사도바울이 당한 고난과 비슷했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가
감옥에도 갇히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고, 멸시를 당했지요.
그리고 예레미야를 죽이려는 음모도 있었습니다.
진흙구덩이(우물)에 던져지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께 계속 충성했습니다.
소명 받은 사역자란 바로 그런 모습입니다.
그에게 왜 갈등이 없었겠습니까. 하나님께 대한 하소연이 많았지요.
한 번은 그가 하나님께 이렇게 하소연합니다.
‘주님이 저를 속이셨습니다.’ 렘20:7
사역자로 부름 받은 것이, 이렇게 고생길이라면,
미리 처음에 부르실 때, 그걸 알려주셔야지.. 자기를 속이셨다는 뜻이지요.
▲예레미야서를 살펴보면서 한 가지 가슴 아픈 일은,
당시에 대중들은, 거짓선지자들을 더 따랐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은 많았습니다.
그리고 참 선지자인 예레미야를 따르는 사람은 적었습니다.
예레미야가 보니까, 그 거짓선지자들은
여호와의 (어전)회의에 가서 들은 말도 아니고,
자기 마음에서 지어낸 말을, 즉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을 전하는데도
사람들이 거기에 매료되어, 군중들이 많이 따르더라는 것입니다.
*마23장에, 예수님이 신랄하게 종교지도자들을 공격하신 것처럼
렘23장에, 예레미야가 신랄하게 거짓선지자들을 공격합니다. 똑같이 23장이라 외우기 쉽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면
대중들의 반응은 ‘누가 이 사람을 좀 입 다물게 해 주세요.
누가 이 사람을 좀 치워주세요. 우리는 그의 말을 듣기 싫습니다.’ 했습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왕이나 권력자들에게 말하여
예레미야를 가두거나 제거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고난을 겪은 예레미야는
오늘날 사람들에 의해서 ‘눈물의 선지자 the weeping prophet’ 로 불리지요.
사람들의 눈이 감겨져서,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거짓선지자의 메시지에 더 귀를 기울이는 현실을 보면서,
또한 하나님 말씀을 옳게 전하면서도 배척과 감금을 당하는 자기 처지를 보고서,
그는 울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선지자들은 ‘내가 거짓선지자입니다. 우상을 섬기십시오!’ 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말합니다. 그들은 출애굽 때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라 등
그럴 듯하게 성경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전혀 거짓선지자로 안 보입니다.
다만 하나님 편에 서지 않고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자기 인간적 생각을 가르친 것이지요.
▲요한계시록에 보면, 7교회에 보낸 편지가 나옵니다.
예수님은 불꽃같은 눈으로, 각 교회의 잘한 점과/ 잘못한 점을 정확히 짚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도, 겸허하게 주님께 여쭈어 보아야 합니다.
‘주님, 오늘 우리 교회는, 계시록의 7교회 중 어느 교회와 같습니까?
우리 교회의 장점은 무엇이며, 또한 우리 교회의 단점은 무엇입니까?’
저는 종종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목회하는 부룩클린 터버너클 교회가 지금 잘 하고 있습니까?
지금 우리가 실패하고 있는 부분은 어떤 것입니까? 가르쳐 주십시오.
제가 설교할 때, 우리 교회가 지금 실패하거나 잘못하고 있는 부분을 다루기 원합니다.
우리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할 때, 우리는 그 점을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도 아멘이시죠?
여러분이 이 같은 목회자 세미나에 참석하셔서 강의를 듣는 것도 필요하지만,
은밀한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직접 여쭈어보십시오.
‘하나님, 지금 우리 교회의 온도는 몇 도입니까? 미지근하지는 않습니까?’
사람들의 평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주로 ‘양적으로’ 평가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대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숫자가 모였느냐?
얼마나 많은 시간을 사역에 투신했는가.. 그런 양을 보지 않으실 것입니다.
실제로 7교회를 평가하실 때도, 양적으로 평가하신 적은 한 교회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했는가? 그 질적인 평가를 내리실 것입니다.
저 심발라와 아내 캐롤은, 항상 그 점에 대해 서로 대화를 나눕니다.
우리의 사역에 숫자가 아니라, 우리 사역의 현재 ‘온도’ 말입니다.
▲제가 이 시간에 감히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예레미야 시대에 예루살렘에 수많은 거짓선지자들이 활개쳤듯이
지금 미국에도 비슷한 현상이 만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설교자의 메시지에, 여러 불경건한 요소들이 섞여서 전파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지금 저는 세상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있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제멋대로 살고, 죄를 짓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소금이 맛을 잃고, 등불이 빛을 잃는 것입니다.
계시록에 7교회에 대한 편지도, 세상 사람들에게 주신 메시지가 아니라,
교회들에게 주신 메시지입니다.
계시록 2~3장뿐만 아니라, 성경전체가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물론 그렇게 하면 안 되지만)
세상 사람들을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교회와 교인들을 주목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정작 교회는 돌아보지 아니하고
그저 세상이 타락해간다고 탄식하는데요, 물론 그런 애통함도 필요하지만
교회의 문제를 간과한 채, 세상의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우선순위상 옳지 않습니다.
예수님도 바울도, 로마 정부가 얼마나 잘못하는지, 거의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심지어 그들 황제들은, 스스로를 신이라고 높이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백성들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교회 바깥의 일은 하나님께 그 심판을 맡기고,
우리의 관심은, 교회를 더욱 교회 되게 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지금도 사회적 이슈가 많이 거론되고 있고, 정치인들을 공격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그러나 제 관심은, 저희 부룩클린 터버너클 교회가, 진정한 예수님의 교회가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 지역을, 복음으로 섬기고 뒤집어엎는 일입니다.
그런 일을 도외시하면서, 사회적/종교적 이슈에 너무 몰두해서는 안 됩니다.
Let the church be the church.
교회가 교회 되게 하십시오.
우리의 진정한 관심이, 여기에 있어야 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사회적/종교적 이슈에 너무 민감하지 마시고
대신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내가 맡은 양떼들을 돌본 일에 대해
하나님앞에서 어떻게 심판을 받을 것인지를 생각하며.. 지금 그 일에 먼저 몰두하시기 바랍니다.
▲렘23장에서,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탄식하시는 것은
거짓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판다/빙자한다’는 점입니다.
자기 야망, 자기 개인적 비전, 자기 생각을 말하면서도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는데, 렘23:17
이에 대한 예레미야의 말씀은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냐’ :19
그러니 미국에서 설교자들이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이 예배시간에,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라는 표현을
남발하는 것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꿈을 꾸는 자들도 ‘주님이 내게 이런 꿈을 주셨습니다’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팔지 말라는 것입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요.
*진짜 요셉처럼 신령한 꿈을 꾸는/받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함부로 발설해서, 자기가 신령한 사람인 것처럼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조용히 자기 마음에 품고서, 기도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그 꿈대로 이뤄지기를요.
여러분, 대중, 숫자, 군중은.. 성경에 보면
항상 하나님의 뜻과 그 길에, 정반대 편에 섰던 적이 많았습니다.
혹시나 여러분의 회중의 숫자가 많으면, 성령의 역사로 많아질 수도 있겠지만,
그 숫자가, 하나님이 당신을 인정하셨다는 증거가 아닐 수도 있으므로,
너무 숫자만 믿고 안도하지는 마십시오.
그렇다고 전도할 줄 모르고, 전도하지 않아서 작은 교회를
제가 좋은 교회다고 말하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그런 교회는, 큰 교회를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Numbers do not validate a ministry.
숫자가 내 사역의 진정성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란 말입니다.
미국 텔레비전에 나오는 일부 설교자들 가운데,
거기에 운집한 숫자를 카메라로 비춰주면서
마치 ‘숫자가 내 사역의 진정성을 증명한다. 내 열매를 봐라’는 식으로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기에, 제가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마치 예레미야의 시대처럼
많은 우매한 대중들이, 그런 잘못된 방송설교자들에게 수표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헌금을 모은 그들은, 사역을 더 크게 확장해서 자꾸 사람들에게 보여줍니다.
‘우리 사역의 규모를 보시오. 이게 하나님이 은총을 주신 결과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을 모르는 우매한 군중들이 더 따라가는 거지요.
▲그건 또 그렇다고 칩시다.
거짓선지자들은 모든 시대마다 있었고,
그들을 비난하는 것이, 이 강의의 목적은 아닙니다.
이 강의의 목적은 ‘그럼 참된 선지자는 과연 우리 가운데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어전회의에 참석해서
거기서 받아서 전하는, 그런 선지자/설교자가 우리 가운데 얼마나 있습니까?’
이것이 관건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꿈을 꾼 선지자는 꿈을 말할 것이요
(거짓선지자들에게 너무 주목하지 말고, 내버려 두라. 다만 중요한 것은 너희다.)
내 말을 받은 자(너희)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 렘23:28
예레미야는 여기서 재미있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겨가 어찌 알곡과 같겠느냐”
여러분, 겨straw는 가볍고 바람에 날려가 버립니다. 거기엔 아무런 영양분도 없습니다.
겨를 먹여서, 사람들을 살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오는 주일에, 저와 여러분이 설교단에 서서
우리는 회중들에게
겨를 먹일 것입니까, 알곡을 먹일 것입니까?
겨를 먹이는 사람이 얼마나 많건, 얼마나 많은 군중들이 그들을 따를 것인지.. 그건 관건이 아닙니다.
알곡을 먹이는 사람이 얼마나 되느냐.. 하나님의 관심은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도 거기에 있어야 될 줄 믿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런 열망을 품고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겨나 짚을 먹이지 말고, 알곡을 먹이게 하옵소서.
선지자 사무엘처럼, 그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삼상3:19
오늘날 공부를 많이 해서, 똑똑한 설교자들도 많습니다.
저는 지금 똑똑한 것 이상을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인간적인 똑똑함 이상으로, 성령으로,
그의 설교말씀이 회중의 심금을 찔러 쪼개는.. 그런 예레미야와 같은 종들이
오늘 이 시대를 살리게 될 줄 믿습니다. 이것이 관건입니다. ( P2 에 계속)
'분류 없음 > 2016'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음이란 무엇인가? P2 (0) | 2016.06.02 |
---|---|
복음이란 무엇인가? P1 (0) | 2016.06.01 |
선지자의 그림 / 레너드 레이븐힐 (0) | 2016.05.30 |
환란 중의 견딤 / 잭 푸닌 (0) | 2016.05.29 |
다음 세대는 우리의 희망 (0) | 2016.05.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