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이란 무엇인가? P2 롬1:1~5, 막1:14~15 16.03.23.출처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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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복음
그리고 또 이 <이신칭의 복음>은, 십자가 중심의 복음입니다.
그러면 부활은 무엇입니까?
여러분, 부활이 우리의 신앙에 왜 중요한가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부활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의로운 죽음이었다는, 하나님의 인정이었습니다.
-나아가 십자가에 담겨 있는 복음 사건을, 부활이 입증해 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렇다면, ‘부활’을 빼고, ‘십자가’만 갖고서도 복음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지는 않을까요?
‘예수님의 속죄의 복음’ 또는 '이신칭의의 복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해결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발칙한 상상입니다만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고 해도, 우리가 구원 받는 거잖아요.
‘십자가 복음’에서 부활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성경이 말하는 그 복음의 중심적 위치로부터는, ‘부활’이 멀어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도행전 전체를 요약하는 말씀이 1:8절입니다.
이 말씀이 대위임령 또는 요절이라서가 아니라,
문학적 양식으로 볼 때, 이 구절이 책의 전체 내용의 요약이라 봅니다.
즉, 사도행전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성령이 제자들에게 임하여, 그들이 능력을 받아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으로, 증인으로 흩어진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했는데,
무엇의 증인입니까?
‘나의 증인’이 되라고 했는데, 구체적인 그 내용은 ‘나의 부활의 증인’입니다.
행1:22, 2:32, 3:15, 4:33. 5:32절 등, ‘증인 or 증거’라는 말이, 한 장에 한 번씩 나옵니다.
그건 다름 아닌 부활의 증거요, 증인입니다. *여기선 ‘십자가’가 약간 약화되네요.
▲그럼 구체적으로 ‘부활의 증인이 된다’는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그것은 행2~5장에 걸쳐 이어지는 베드로의 설교를 통해서, 반복해서 나타나는데요.
그것은 바로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다시 살리셔서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설교에, 반복해서 선포되는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므로 ‘예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의 부활의 증인이 된다.’
즉, 사도행전에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핵심은 ‘부활’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부활의 복음, 그 복음의 핵심성을
우리가 신봉하는 ‘십자가 복음’이 다 담아내지 못하고 있지는 않나요?
하나의 문제 재기였습니다.
◑'십자가 속죄의 복음'의 문제를, 한 가지 더 재기하면,
예수님의 공생애는 우리 구원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까?
‘십자가 복음’에는, 예수님의 공생애와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왜냐면 십자가는, 예수님의 마지막 1주일, 더 좁히면 마지막 하루를 담고 있으니까요.
만약 그렇다면, 복음서의 절반~2/3 분량을, *십자가를 제외한 부분
아무런 의미 없는 부분으로 만드는 것은 아닐까요?
복음서에 대속 사상이 들어 있습니다.
막10:45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특히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대속 사상이 들어 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대속이 있느냐/없느냐가 신학자들 사이에 논란입니다.
*대속 : 죄의 형벌을 누가 대신 치러서 없애주는 것. 대신 속죄한다는 말.
그런데 공관복음이 수난사화를 전개하는 방식을 보면,
대속이 수난사화에 핵심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예를 들면, 막11~16장에 예수님의 수난 사건이 계속 이어지는데,
그 가운데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셨다’는 말이,
명시적 또는 암시적으로 얼마나 나옵니까?
막10:45절 외에는, 별로 안 나옵니다.
오히려 복음서 수난사화의 관심은 ‘누가 예수를 죽였느냐?’
또는 ‘무엇이 예수를 죽음으로 몰고 갔느냐?’
‘왜 예수께서 십자가를 질 수밖에 없었느냐?’ 입니다.
이런 내용들을 설명하는데, 대부분의 내용이 할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위 모든 (검은색) 내용들은 다 우리의 ‘구원’과 관련이 없고,
오직 마지막에 나오는 십자가 죽음과 부활만, ‘구원의 복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바울의) 십자가 속죄의 복음'은, 즉 이신칭의의 복음은,
사복음서를 주변으로 물러나게 합니다.
이런 현상이 개신교 역사 속에 계속 잠복되어 왔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 복음’이 성경 전체를 대변한다고, 과연 말할 수 있나요?
십자가 복음이 성경에서 말하는 복음 그 자체, 또는 복음의 전부인가요?
*혹시 우리는, 복음 아닌 것을, 복음으로 믿고 있지는 않는가요?
발전을 위한 극단적 질문이었습니다.
혹시 우리는
‘복음의 일부’인 것을, ‘복음의 전체’로 믿고 있는 것은, 혹시 아닐까요?
*설교자 안용성 목사의 생각은, 이 점에 많이 기울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해하는 바 왜곡된 의미로서의) 십자가 속죄의 복음,
이것은 복음의 핵심이지만, 일부라는 것입니다.
매우 중요한 내용인 것은 확실하지만, 복음의 일부이지, 전부는 아니란 말입니다.
*일례로, 부활도 빠져 있습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십자가 복음은 ‘십자가’로 충분하니까요.
왜냐하면 이 십자가 복음이, 성경의 복음의 내용을
전부 다 담아내지 못하고, 일부만 십자가만 담아내고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온전한 복음’은 무엇입니까?
그럼 ‘복음이 무엇인지’ 그 정의를 내리고 있는 구절을, 찾아보겠습니다.
‘복음이 무엇인가?’ 하는 목적으로, 성경을 읽어 나가보자는 것이죠.
사실 제가 유학하는 동안에 ‘복음이 무엇인가?’를 살피는 것이
제 전공의 핵심 주제는 아니었습니다.
저 안용성 목사는 복음서를 전공했는데, 그 이유는
장신대 다니면서 들었던 불트만에 대한 강한 영향력
이것으로 인하여, ‘바울은 재미없다’ 이런 생각이 강했거든요.
그래서 복음서를 전공했는데, 그러다가 한국에 돌아와서
신학교에서 강의할 때, 제게 처음으로 배정된 과목이 <바울서신>이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바울을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그제야 제가 바울을 전혀 잘못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오, 바울이 이런 놀라운 분이셨구나’
그래서 바울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복음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위기의 원인이 어디에 있을까?
하는 질문과 관련해서, 이 복음의 문제를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복음을, 뭐라고 정의하고 있습니까?’
복음에 대해 알아보려면, 가장 먼저 던져야 되는 질문입니다.
▲제가 ‘복음의 정의’로 가장 먼저 찾은 성경은, 막1:14~15절이었습니다.
막1: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14절에, ‘복음’이 나오고, 그 내용이
15절에, ‘가라사대 saying’ 이후로 나오고 있습니다.
즉 복음의 내용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입니다.
‘때가 찼다’는 말은.. 하나님 나라가 도래할 때가 찼다는 뜻이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부터가 진짜 복음의 내용입니다.
이 구절은, 마가복음에 처음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약성경에 예고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사52:7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사40: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위 구절의 밑줄을 벌써 70인역에서 ‘유앙겔리조마이’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복음’(유앙겔리온)의 동사형이, 구약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우리말 ‘좋은 소식, 아름다운 소식’이, 70인역에 ‘복음’(유앙겔리조마이)으로 번역되어 있답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신다. 하나님의 나라’ .. 이게 복음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왜 복음인가요?
이사야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 있어서 *사40, 52장이 제2이사야 시기로 봤을 때
포로상태로부터 해방되니까, 복음,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자, 이렇게 볼 때
하나님 나라 복음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은, 사전적으로 ‘왕되심, 주되심, 다스리심’ 이란 뜻입니다. 주1)
kingship 왕됨, 이게 ‘나라’라는 말의 사전적인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주되심, 하나님의 다스리심 이란 말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나라가 온다는 말은
하나님이 오셔서 다스리신다..인데, 이게 복음입니다.
그럼 그 복음을 믿는다는 것은,
그 다스리심을 받아들이는 것이,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되심을 받아들여서, 하나님께서 내 삶에 실제적인 주님이 되시게 하는 것,
그것이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지적 동의가 아닙니다
구원은, 그 결과로, 하나님이 우리의 주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 분의 백성이 되는 것.. 그것이 구원입니다.
▲그렇다면 회개란 무슨 뜻입니까?
믿음의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신다는 얘기는,
우리가 그전에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주 lord로 섬기고 있었는데,
그 주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전향하는 것입니다.
죄의 지배로부터 떠나서, - 이것이 회개이고
하나님의 주되심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참고로, ‘천국’과 ‘하나님 나라’의 관계를 잠시 말씀드립니다.
천국은 하나님 나라의 한 양상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전히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히 이루어진 상태가,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하나님의 나라의 한 양상이요, 완성입니다.
그러면 이것이 복음서에 담겨있는
그리고 구약성경으로부터 예고된 복음입니다.
◑그러면 “바울의 복음”은 어떤 것입니까?
바울서신에 바울이 복음을 정의하고 있는 구절들이 몇 개 있습니다.
이 부분, 바울의 복음을 가장 잘 설명해준 분이 김세윤 교수님입니다.
그 분이 쓰신 <복음이란 무엇인가?> <구원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최근에 나온 <칭의와 성화>
이 책들이 '바울의 복음이 하나님 나라 복음'이라는 것을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서신에 보면, ‘복음이 이것이다’며 명확하게 나와 있지는 않지만
‘바울이 복음을 설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여러 구절들이 있습니다.
아마도 바울이 가장 의도적으로 복음을 정의한 곳은, 이 구절이라고 생각되는데요.
롬1:1~4절입니다.
로마서는, 바울이 로마교회에 보낸 편지인데, 로마교회는 바울이 세운 교회가 아닙니다.
바울은 아직 로마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서바나로 가는 선교후원을 요청해야 되는 상황에서,
바울이 내가 누군지를 소개를 먼저 해야 하는 가운데,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을, 자기와 함께 소개하고 있습니다.
▶롬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롬1:1절, 편지의 서두로 시작하며, ‘복음’이란 말이 나옵니다.
2절부터 관계대명사로 1절에 나오는 ‘복음’의 내용을 설명합니다. 5절까지요.
이것은 지금 바울이, 아직 자기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정리한 문장이기 때문에,
아마 상당히 심혈을 기울여서 썼을 것입니다.
‘복음’에 대해서, 바울이 하고 싶은 내용을 가장 잘 반영한 본문이라 생각됩니다.
▶1:2.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바울의 복음은, 바울이 고안해낸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복음을 변질시키거나 왜곡시키거나
혹은 그리스의 무슨 종교의 모티프를 받아들여 바울이 새로 고안한 것이 아니라,
‘내가 전하는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이다.’
이미 구약성경에서부터 예고된 것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구약성경에서 복음이 어떻게 예고되고 있는지, 우리가 이사야서를 통해 살펴보았습니다.
구약성경에서부터 예고된 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시작부터 ‘내가 전하는 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다’를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약속하신 것이라’
약속하셨다는 말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언약관계를 암시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언약관계가 무엇인지 아시죠?
시내산 언약으로 인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전적인 보호자가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만 유일신으로 섬기고, 그 율법을 지키기로 약속한 것이죠.
이런 언약관계에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우리가 오늘날 ‘믿음’이라면 ‘어떤 교리에 대해 동의함’ 이런 의미로 사용합니다만,
구약의 ‘믿음’(에메트, 에무나)은 ‘신실함 faithfulness’이란 의미입니다. 주3)
진실함, 성실함이, '믿음'이란 단어의 원래 의미입니다.
그래서 믿음이란 말은, 언약에 대한 성실함이지. 어떤 지적 동의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 언약에 대한 책무를 다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실함
그러면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 되십니다.
또 이스라엘이 언약상 하나님께 해야 할 일을 다하는 것, *언약 상대인 인간의 성실함 또는 믿음
그 언약적 신실함.. 이것이 믿음 faith입니다.
그럼 ‘의’는 무엇입니까?
그 결과로써, 완전한 언약 관계가 형성되어 있는 것이 의로움입니다.
우리는 의로움이라 그러면 .. ‘성품적 의로움’으로 이해하는데요,
예를 들어 욥은 당대에 의인이라
그러면 욥의 마음속에 죄악된 성품이 하나도 없었겠습니까?
요셉이 의인이라. 요셉의 마음속에는 아무런 폭력도 없고..
아무리 맞아도 상대를 미워하지도 않고, 그런 죄성이 하나도 없다는 의미입니까?
그게 아니라, 하나님과 완전한 계약/언약 관계속에 있다는 뜻입니다.
언약적 개념으로 의롭다고 이해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뜻으로 볼 때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말은
언약적인 신실함을 통해, 온전한 언약관계가 맺어진다.. 이런 뜻입니다. 주2
아까 하나님 나라란 무엇이냐면 포로로 잡혀 가 있는 이스라엘에게 이사야가 예고하기를,
하나님께서 오셔서 너희를 다스리신다. 하나님께서 오셔서 통치하신다.
이 얘기는 바벨론이 더 이상 못 다스린다. 그게 복음인 거죠.
여기서 하나님께서 ‘오신다’는 말은, 언약관계에서 보자면 ‘돌아오신다’는 뜻입니다.
자 언약적 신실함 관계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늘 신실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신실하지 못했어요.
자꾸만 다른 신을 따라갔습니다.
출애굽한 이후에는 계속 파라오를 따라가려했고
여기서 말한 다른 신은, 부처, 마호멧이 아니라 출애굽 상황에서는 파라오입니다.
파라오를 섬기지 말고, 하나님을 섬겨라는 얘기입니다.
가나안에 들어와서는 바알신을 따라갔습니다. 바알신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농경신이었으니까요.
이스라엘 왕국이 건립된 다음에는 강대국의 신들을 따라갔습니다.
계속 다른 신들을 따라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언자들을 보내서 돌아와라고 계속 호소하는데, 쉽게 안 돌아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결국 멸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떠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일방적으로 시내산 계약을 파기해 버려서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보호해주실 의무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바벨론에 포로가 되고 말았죠.
그렇게 떠나셨던 하나님께서, 다시 돌아오신다. 이런 뜻입니다.
다시 돌아오셔서 너희의 주님이 되신다.. 이것이 "하나님이 오신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의 의미입니다.
그리고 3절에서 바울은, 복음에 관한 설명을 계속 이렇게 이어갑니다.
▶3.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예수께서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는 말은, 그 분이 왕, 메시야란 뜻입니다.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위 밑줄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대행하는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다.’로 번역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그 분이 왕으로 선포되셨다는 의미입니다.
‘바울의 복음’이란 무엇이냐면
예수께서 우리의 왕이 되셨다. 예수께서 우리의 통치자, 주님이 되셨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뒤에 이어지는 내용이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여기서 ‘주’라는 말이 하도 자주 나오니까, 우리가 무의미하게 읽는 습관이 있는데,
‘주’라는 말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주님이시다. 예수는 우리의 통치자이시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어받아서,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가 되셨다.’
이것이 바울의 복음입니다.
즉, 바울의 복음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라는 뜻입니다. ←강의 전체 주제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사복음서에서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분’이셨다면
바울의 복음에서는.. ‘예수는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은, 하나님의 통치권을 이어받은 통치자로 선포되신 분’.
그 차이입니다. *별 차이가 없네요.
그런 미세한 차이는
전체적으로 보자면,
복음서의 복음이나, 바울서신의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가 복음의 핵심이라는 점은 동일하다’입니다. ←강의 전체 주제
바울의 복음도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이어지는 5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5.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헬라어 원문에는, ‘믿음의 순종에 이르게 하나니’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신칭의의 복음으로 이해하자면
믿은 다음에 순종이 따르는 거죠.
그래서 개역은 ‘믿어 순종케 하나니’로 번역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 롬1:2~4절까지 배운 ‘바울의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믿음은 곧 순종입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우리의 주님이 되시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예수께 순종하는 말과 동의어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니까요.
그러므로 믿음과 순종은 동의어입니다.
‘믿음의 순종’ 이 속격은, 동격적 의미의 속격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1) 믿은 다음에 순종이 따르는 게 아니라, 즉 믿은 다음에 믿음대로 사는게 아니라,
2) 더 정확히 말하면, 믿는 것 자체가 순종이란 말입니다. (그게 그거지만)
믿음과 순종이 동의어란 뜻입니다.
믿음과 삶이 동의어란 말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복음이고, 예수님의 복음입니다.
즉, 바울의 복음도 (지적 동의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그런 뜻입니다.
(다음 시간 P3에 계속될 내용)
계속해서 그것을 확인해 주는 구절이 로마서 10:9~10절입니다.
..................
주1)
왜냐면 ‘나라’가 히브리어로 마코트, 헬라어로 바실레이아 인데
왕 멜렉 에서 마코트가 오고, 바실루스 king, 에서 바실레이아 kingdom 가 나옵니다.
주2)
이게 주로 바울의 새관점에서 새관점 쪽에 있는 많이 이야기하는 이신칭의적인 의미입니다.
논란이 될 수 있습니다.
주3)
에메트의 동사형이 아만이고, 아만에서 아멘이 나왔습니다.
아멘은 진실로 라는 뜻이죠.
요한복음에 진실로 진실로 내가 말하노니, 그게 '아멘 아멘 레고 에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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