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youtube.com/watch?v=CQ4h81M5_Jg
◈선지자의 그림 암8:11 번역, 출처 설교 모음, 연속재생
Picture of a Prophet By Leonard Ravenhill
자기가 살던 시절에 선지자들은, 하나님께는 온전히 받아들여졌지만,
사람들에게는 완전히 거절 받은 사람들입니다.
수년 전에, 그레고리 맨틀 박사가 이렇게 말한 것은, 옳았습니다. *Gregory Mantle
“사람들에게 거절당하기 전까지는,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주님이 보내신 선지자들은 이 두 가지 경험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에게 거절당함과
-하나님께 인정받음.. 말입니다.
사람들에게는 거절을 당하지만, 그들은
진정 하나님이 자랑하고, 사람들 앞에 내놓고 싶은.. 참 하나님의 종들이었습니다.
선지자들에 의해 공격 받았던 그룹의 사람들은
거만하고 거드름을 피웠기 때문이며
그들은 그저 불완전한 자기들의 신학을 신봉하며, 세상에서 평안하게 살기만 바랬습니다.
그런 그룹은, 선지자 같은 사람들을, 절대로 지지하지 않았죠.
왜냐면 선지자들은 그런 그룹을 ‘사탄의 회당’이라고 지적했기 때문입니다. 계3:9
선지자들이 바로 세우려 했던 일은, 그들을 분노하게 하는 일들이었습니다.
선지자들은, 정상적인 길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정로로 돌아오라고 촉구했습니다.
선지자들은, 당대의 유명하고 인정받는 사람들을 대항했던
무명하고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얼굴이 뻔뻔한 정치가들과,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설교자들이 가득한 시대에는,
하나님께 ‘선지자를 이 나라에 보내주소서!’ 라는 간구보다
더 중요하고 긴급한 일이 없습니다.
오스틴 스팍스에 의하면, 선지자의 역할이란
“항상 회복이었다.” 라고 말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이 세우신 탐정들인데,
그들은 언제나 잃어버린 복음의 보화들을 다시 찾아내어
그것을 회복시키고, 원상복구 시키는 일을 했습니다.
선지자가 얼마나 자기 역할을 잘 감당하는가 하는 것은,
그의 ‘무명성’의 정도에 따라 결정됩니다.
즉, 선지자가 커지고 유명해질수록, 자기 역할 감당은 반대로 줄어드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에게 있어서 ‘타협’이란 있을 수 없었습니다.
▲선지자는 어떤 사람인가요?
-그는, 가격표가 아예 붙어있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주 싸구려다’는 뜻도 되지만, ‘가치를 매길 수 없다’는 뜻도 됩니다.
-그는 정말 ‘딴 세상을 사는’ 부류입니다. 현실적이지 않고 이상적입니다.
-그는 대단히 논란에 휩싸이는 인물이며, 대단히 공격적입니다.
-그는 다른 장단을 맞추는 사람입니다.
그 시대의 주류와 흐름을 같이하지 않습니다.
-그는 남들이 마시지 못하는 영감 inspiration의 공기를 호흡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즉 남들과 차별된 영감 inspiration을 지닌 사람입니다.
-그는 ‘선견자, 보는 자’입니다. 미래를 내다보기에, 눈먼 자들을 인도합니다.
-그는 높은 곳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지내다가
낮은 곳으로 내려와서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는 일부 하나님의 뜻을 미리 아는 능력이 있으므로,
‘임박한 심판이 닥칠 것’이라는 징조를 파악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황홀한 고독’속에 삽니다.
-그는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출신배경이 불분명한 사람입니다.
(그의 말은 맞지만, 그에겐 신뢰가 가지 않습니다.)
-선지자의 메시지는 주로 ‘회개하라. 하나님과 화목하라’ 이런 것들입니다.
‘잘 하고 있습니다!’가 아니라, 주로 ‘잘못하고 있으니, 고치시오’라고 하지요.
-사람들은, 그의 메시지를 보통 슬쩍 피해 버립니다.
-그의 메시지는 사람들을 괴롭게 합니다.
하지만 그의 말은, 빈소리가 아닙니다.
-그는 당시에는 ‘악인’으로 여겨지지만, 나중에는 ‘영웅’으로 인정됩니다.
-그는 살아있을 동안에는 축출당하지만, 죽어서는 존경받습니다.
-그가 숨 쉴 동안에는 여러 별명과 악명이 뒤따르지만,
죽어서는 아름답고 존경스럽게 묘비에 기록됩니다.
-그는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학교 선생님과 같지만,
그러나 그 선생님이 매기는 점수가 언제나 짭니다. ‘넌 언제나 낙제점이야!’ 합니다.
-그는 사는 동안에는 친구가 없지만, 죽고 나면 유명해지고 많은 친구가 생깁니다.
-그는 사역의 외적 규모를 크게 확대하는 것을 반대하고,
대신에 사람을 성자로 세우는 일에 헌신합니다.
-그가 사역하는 동안 매일 먹는 양식은, ‘고난의 빵’이지만,
그러나 그가 사람들에게 먹이는 양식은 ‘생명의 빵’입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 가끔씩 나타나지만, 그는 하나님 앞에서 오래도록 행합니다.
-그는 나라에 채찍과 심판을 선포하고서, 결국 그는 나라로부터 채찍과 심판을 받습니다.
-그는 선포하고, 지적하고, 결국 탄핵당합니다.
-그는 화산과 같이 폭발적입니다. 그의 음성도 불같고 천둥 같습니다.
부드럽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알리는 사람입니다.
-그는 비진리에 대항해서 진리의 등불을 비추지만,
사람들에게는 조롱을 당합니다.
-그는 사람들 앞에 나타나 보이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앞에 나타나 보입니다.
그는 보통 표면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는 은밀한 장소에서 하나님과 교제하며 숨습니다.
그러다가 나타날 때는,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시장 같은 곳에서 나타나고
자신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는 매우 민감한 사람이며, 초자연적으로 영적인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은, 현실감각이 현저히 떨어집니다.
-그는 열정적이며, 목적이 뚜렷하며, 이에 위배되는 것과 싸우기 좋아합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임직을 받지만, 사람으로부터 임직을 받지는 못합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미국의 긴급한 필요는,
달러가 약세에서 강세로 돌아서는 것도 아니고,
혹은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실추된 체면을 살리는 것도 아니고,
파괴되는 생태계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날 미국의 가장 긴급한 필요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입니다.
사람들은 빵 걱정, 석유고갈 걱정, 에너지나 경제 문제를 늘 걱정합니다.
어떤 언론에서는, 미국의 경제를 요셉의 꿈에 빗대어
‘7년 풍년이 끝나고, 앞으로 7년 기근이 닥칠 것이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 레너드 레이븐힐이 걱정하는 기근은, 경제적 기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기근’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암8:11
▲지난 25년 동안, 아마 수백만의 사람들이 복음을 증거했을 것입니다.
미국에는 매일 수백 편의 설교들이, TV와 라디오를 통해 방송되고 있습니다.
전도집회나 수련회도 열리고 있습니다.
특별히 신유집회가 교회 안 나오던 신자들을, 교회로 끌어내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일들, 어쩌면 가시적인 성과라고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었지만,
그렇지만 미국에 신앙적 부흥이 일어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회를 규합하여 거대한 단체를 잘 만드는 사람들도 우리 가운데 있고,
또한 숙련된 설교자도 우리 주위에 제법 많습니다.
수백만 달러의 헌금을 모금하기를 잘 하는 기관들도
미국에는 여럿 떡하니 버티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외형적인 성장 말고,
내면적으로 부흥을 외치고 이끌 선지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대면하고 나서 거룩한 빛을 발하는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우리의 딱딱하게 굳어진 도덕성과, 정치적 불신과, 냉소적이며 병든 영성의 문제를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가서
금식하며 간구하는 모세와 같은 지도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나타내실 때까지
보통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반드시 나타날 것입니다.
그렇지만 선지자들은, 자기가 사역하는 동안에는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후에 역사는, 종종 그들을 알아보고, 하나님의 종으로 인정합니다.
오늘날 기독교 복음주의 진영에, 큰 진공상태가 있습니다.
즉 신실한 선지자들이 실종된 현실입니다.
전적으로 헌신되어 있고, 전적으로 딴 세상을 사는 것 같은,
사람들에게 거절 받는 사람,
심지어 선한 사람들조차도 그들을 못 알아 볼 때가 많습니다.
왜냐면 선한 사람들이라도, 그들을 너무 엄격하거나, 과도하게 헌신적이며,
너무 부정적이며, 너무 비사교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여러 선지자를 예로 들어서, 선지자를 설명해 보겠습니다.
-그는 오늘날 현대 신학계가 ‘광야’와 같이 되어 버린 가운데서,
‘예수교 Christianity’가 아니라 ‘교회교 churchianity’가 되어버린 현실 가운데서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를 발합니다.
-그는 사도바울처럼, 자기는 완전히 죽어버린 사람입니다.
-그는 ‘내게는 한 가지 소원이 있다’고 말하고, 그대로 삽니다.
빌3: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this one thing I do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그는 교회조직에 보탬이 되는 일을 거부합니다.
-그는 자기를 추구하지 않으며,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며, 자기를 의롭다고 여기지 않으며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으며, 자기를 높이지 않습니다.
-그는 사람들로 자기를 따르게 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따르도록 인도합니다.
-그는 매일 하나님의 보좌 앞으로 가서, 그 날에 행할 일을 지시 받습니다.
-그는, 지금과 같은 물질주의에 함몰된 시대에
눈과 귀가 물질주의로 마비된 신자들의 눈과 귀를
다시 보고, 다시 듣게 하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비전을 보았으므로, 외치는 사람인데
이 세대 사람들은 그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보내서
황량하고 건조한 물질주의의 광야 가운데서,
정욕의 불뱀이 도사린 광야길에서 우리를 인도하려 하시는데,
무지한 사람들은 오히려 영적인 소경들을 따라가서, 아마겟돈으로 인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주소서!
'분류 없음 > 2016'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음이란 무엇인가? P1 (0) | 2016.06.01 |
---|---|
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P1 / 짐 심발라 (0) | 2016.05.31 |
환란 중의 견딤 / 잭 푸닌 (0) | 2016.05.29 |
다음 세대는 우리의 희망 (0) | 2016.05.27 |
영광의 행진 (0) | 2016.05.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