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말이 불같지 아니하냐? P2 렘23:29, 고전2:4, 3:15, 눅11:13 출처, 대강 번역
Is Not Your Word A Fire? by Jim Cymbala P1
<한글 녹음. 출처 동영상의 17분~43분 끝까지 번역, 요약>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렘23:29
“Is not my word like as a fire? saith the LORD;
and like a hammer that breaketh the rock in pieces?”
망치로 내리치면, 모든 것을 부쉬뜨립니다.
여러분, 이건 설교자가 교회에서 호통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정말 우리 심령을 내려치는 망치와 같고,
병든 우리 영혼을 불사르는 불과 같은 설교로,
저는 구세군의 창시자인 윌리엄 부스의 전기나, 그에 관한 책을 읽기를 추천 드립니다.
그 책들은, 정말 여러분의 메마른 심령에, 영감을 불어넣어줄 것입니다.
거기에 나오는 내용인데요, 미세스 부스가 남편 윌리엄 부스보다 설교를 더 잘 했다고 합니다.
그들 부부는, 런던에서, 당시 교회가 받아주지 않던 성도들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당시 교회는, 교회당 좌석 장의자를 하나씩 임대해서, 돈을 받고 가족석을 배정했습니다.
그러니 자연히 가난한 신자들은, 교회의 좌석을 살 여유가 없어서, 교회에 가지 못했지요.
그래서 교회는 오직 겉으론 나이스하고, 신사 숙녀들만 모이는 곳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당시 교회가 타락한 것이지요,
그래서 윌리엄 부스 부부는, 그런 도시 빈민들, 거리의 여인들, 부랑자들, 술주정뱅이들 등
이래 저래 교회에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해, 노방전도를 했습니다.
노천 옥회 집회를 연 것입니다.
때때로 남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은, 아내인 캐서린 부스가 설교했습니다.
찰스 스펄전을 위시하여, 당대의 많은 설교자들이,
윌리엄 부스 와 더불어 그의 아내, 설교자 캐서린 부스를 존경했습니다.
*캐서린 부스의 설교 http://blog.daum.net/urmymt/1822, *윌리엄 부스의 설교 ☞ 당신은 너무 빠른 거야
그녀는 남편보다 일찍 소천했는데요.
그녀는 정말 하나님에 대한 갈망과 가난한 마음을 가진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그들에 관한 책들을 읽어보십시오.
정말 읽는 사람들의 무릎을 꿇게 만드는, 책들입니다.
당신은 반드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말씀처럼요.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바위를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렘23:29
캐서린 부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순회전도사역을 하면서, 영국 전역의 교회를 다 다녀보았습니다.
저는 정말 그런 교회를, 그런 설교자를 진심으로 찾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 ‘심령을 불 지르는 말씀’을 찾아다녔습니다.
저는 제 심령을 꿰뚫고 지나가고, 나를 부쉬뜨리는 그런 어떤 설교를 듣기 원했습니다.
내 속에 불을 지르는 그런 설교 말입니다.
물론 제가 들은 설교들은, 꽤 잘 하는 설교들이었습니다.
아주 웅변적인 설교도 있었고요,
똑똑한 설교자도 있었습니다.
고상한 설교도 들어보았습니다.
세련된 언어로 구성된 설교도 들었고요.
그렇지만 제가 찾고 다닌 것은, 예레미야가 말했던 것처럼
‘불을 지르는’ 말씀과, 설교자였습니다.
그러나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세례요한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리라”
여러분, 불은 심령 깊은 곳까지 뚫고 들어갑니다.
어떤 신자는 실족해서 넘어졌고, 어떤 신자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일반 설교로, 안 통할 때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자기를 변명하고, 합리화하고, 숨고.. 돌이키라는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불과 같은 말씀이 선포되면, 그의 심령 깊은 곳까지 뚫고 들어갑니다.
그래서 그 사람을 회개시키고, 다시 회복시킵니다.
여러분, 부흥이란 어떤 것입니까?
‘대 각성 great awakening’ 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미국에 1, 2차 대각성 운동이 있었고, 뉴욕 풀턴가에서도 부흥이 있었고,
해외에서도 웨일즈의 부흥 등이 있었는데요, 무엇이 부흥입니까?
부흥이란.. 말씀에, 하나님이 보내시는 불이 함께 하는 것입니다.
말씀, 말씀 하지만, 말씀 하나만 갖고는 불충분 합니다.
말씀이, 하늘에서 부어지는 성령의 능력과 함께 선포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딱딱한 교리적 말씀,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면,
우리는 오래 전에, 온 세상을 말씀으로 바꾸었을 것입니다.
불이 없는, 딱딱한 교리적 말씀만 갖고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감정적 흥분’이 아닙니다.
미국의 일부 부흥사들이, 마이크와 고성능 스피커 등 전자 장비를 동원해서
감정적 심적 동요를 일으키려고 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그건 ‘성령의 불’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를 돌아보고, 목회자인 나 자신을 돌아보십시다.
우리 교회에 ‘불’이 있습니까?
부쉬는 방망이 같은 말씀이 과연 선포되고 있습니까?
신자들 속에 깊이 감춰진 죄를 드러내며,
하나님께 불손한 모든 더러운 것들을, 스스로 잘라내고 돌이키게 하는
그런 불과 같고, 방망이 같은 말씀이 정말 있습니까?
어떤 분들은, ‘우리는 흐느낍니다.’
네 좋습니다. 그런데 성령의 역사로 흐느끼는 눈물이어야 합니다.
어떤 분은 ‘우리 교회는 통성기도 소리가 큽니다.’
그것도 어느 교회의 전통이요, 문화일 수 있습니다.
소리 없이 흐느끼거나, 반대로 큰 소리를 지르거나..
그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게 성령의 불로 태우는 말씀의 역사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 것입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고전2:4)
“My message and my preaching were not with wise and persuasive words.”
무슨 뜻입니까?
오히려 사람들은 지혜로, 설득적인 말로 설교하는 것을 자랑하지 않습니까.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학생들이 배우는 것이 '지혜와 설득의 설교' 아닙니까?
바울이 의미하는 바는, 당시 명 연설가들이 하던 것처럼,
명 문장을 구사하거나, 논리적 완벽성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계속 이어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고전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이게 도대체 뭡니까? *이에 대한 데이빗 월커슨의 설교 ☞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
이건 단순히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다리 저는 사람을 기적적으로 고친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후서에, 그런 기적적인 신유의 은사가 나타났다고, 한 구절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건 바로, 예레미야가 말씀한 바 '불 같은 말씀' 아닐까요?
고전2:4절을 보십시오. 서두에 '내 설교가' 이것이 주어이고,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전해졌다' 이것이 술어입니다.
개역에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여기서 전도는 케리그마, preaching인데,
'설교, 복음 설교'입니다.
그래서 렘23:29절의 '내 말이 불같이 아니하냐?‘
는 고전2:4절의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의 설교'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그럼, 지난 주일 우리 교회 강단은, 내 설교는 과연 어떠했습니까?
현명하거나 똑똑한 설교이면 좋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무식하더라도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의 설교'인 것입니다.
성령의 기름이 부어진, 심령들을 불사르는, 불로 태우는 설교인 것입니다.
▲지난 주에 저 짐 심발라와 아내 캐롤은
고든 콘웰 신학교 학위수여식과 졸업식에
설교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거기 가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고든 콘웰 신학교는 1890년 경, D. L. 무디의 절친한 친구였던
침례교 목사 A. J. Gordon 박사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분의 서적이 여러 권 출판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의 명 설교 “the twofold life.”가 팜플릿으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정말 감동을 주는 설교입니다. 저도 그걸 읽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를 '불로 사르는 설교' 였습니다.
저는 그 신학교 졸업식에 참석하러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제 서재에서 <고든 콘웰의 전기>를 찾아서, 읽으면서 갔습니다.
그 책에 A. J. 고든 박사가 사용한 재미있는 예화가 나와 있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시베리아에 사는 사람들은, 겨울에 물이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강에 가서, 얼음 덩어리를 잘라서 썰매에 실어 마을로 가져옵니다.
그 얼음덩어리를, 각 집에 배달해 주는데,
그러면 각 집에서, 얼음을 불로 녹여서, 식수 및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고든 박사는, "오늘날 (19세기 말 당시의) 교회가 그와 같다"고 했습니다.
교회에서 물을 주는데, 내용물은 물이긴 물인데,
얼음덩어리 같이 싸늘한, 얼어붙은, 먹을 수 없는, 쓸 수도 없는 물을 준다는 것이지요.
네, 사람들은 성경말씀을 그대로 인용하고, 교리적으로 올바른 설교를 합니다.
그렇지만 불이 없으면,
그건 내용적으로는 물이 맞는데, 꽁꽁 얼어버린 얼음과 같아서,
목마른 사람들이 해갈하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불로 녹이기 전에는요.
우리 설교에는 불이 필요합니다.
▲종말에, 모든 사람이 '불로 시험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고전3:13
저 짐 심발라와 제 아내 캐롤도, 그 날에 우리가 한 사역에 대해서
불을 통과하는 심판 test 을 받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런데 그 '불의 테스트'를, 지금 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여러분이 '불 같은 메시지'를 전해서, 신자들의 심령을 불로 태워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구원은 받을 것이지만, 불 가운데서 구원 받는다(건져진다)'고 했습니다. 고전3:15
겨우 구원을 받았지만, 자기 사역, 자기 헌신, 자기 희생이
하나도 남지 않는 것입니다. 짚이나 나무로 세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불 같은 메시지'를 전할 때,
지금 그 '불'의 테스트를 받은 성도, 그 '불'을 통과한 사역은
금과 은과 보석으로 천국에서 영원히 남게 될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이 오늘날 '불의 메시지'를 전하지 못해서,
지금 불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않고 지내다 보면,
그 날 마지막 날에, 불의 테스트를 통과할 때..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불 가운데서 다 그을려서.. 아주 초라하게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렘20장에서,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한참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선지자 사역을 못 감당하겠다고,
다 때려치우겠다는 식으로 하소연합니다.↓
"내가 말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 거리가 됨이니이다" 렘20:8
그러면서도 그는 이렇게 고백하는데요.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렘20:9
'마음을 불붙는 것 같은' 예레미야의 심정을, 여러분도 느껴보고 있습니까?
조용히 골방기도 가운데서, 혹은 서재에서 말씀과 씨름할 때,
여러분도 '마음을 불붙는 것 같은' 예레미야의 심정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설교는 그저 '첫째, 둘째, 셋째 대지'가 아닙니다.
'마음을 불붙는 것 같은' 심정을 전달하는 것이, 설교인 것입니다.
저 짐 심발라는,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불붙는 심정으로 석 달 설교하고 죽는 것을 택하지,
지루하거나 농담 같은 설교를 10년 하면서, 오래 사는 것을 택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주일 예배 후 집에 돌아가서 이렇게 말하기를 바랍니다.
"내가 설교자가 누군지, 그의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는데,
그런데 말이야, 하나님이 오늘 내게 말씀하셨어!“
여러분, 이 '남부 목회자 연합 세미나'도 마찬가지고, 여러분의 주일 예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참석자들이 집에 돌아가서, 하는 말을 들어보면 딱 압니다.
주일 예배 후에 집에 돌아와서, 남편과 아내가
'와우, 오늘 설교가, 내 심령을 때렸어'
그러면 '불과 같은 설교'가 맞습니다.
그런데 주일 예배 후에, 신자들이 집에 돌아가서 하는 말이
'오늘 성가대가 어땠어, 오늘 누가 어땠어' 하고 딴소리를 하면,
그 설교에는 불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의 교인들은, 주일 날 예배 후에 집에 돌아가서
무슨 말을 나누는지.. 한 번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그것도 한 주, 두 주가 아니라
그렇게 헛된 말을 1년, 2년 계속 반복한다면,
마지막 심판대에서, 그들 설교자들은 '불 가운데서 겨우 건짐 받은' 자들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릴 것은, 지금 '불'을 강조해서 말씀드리는 중인데
그 불은, 무슨 컨퍼런스에 가서 받는 것도 아니고, 어떤 사람이 여러분에게 주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주님만,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소위 잘 나가는 다른 사람을, 흉내 내거나 카피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이 불을 주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렇게 공을 들일 시간에, 우리는 골방이나 서재에서,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저 짐 심발라도, 목회 초년병일 때는 잘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설교하면서, 제가 졸릴 때도 있었습니다.
또 저는 좋은 신학교를 나온 것도 아니고,
누구처럼 훌륭한 목회자의 아들도 아닙니다.
목회자로서 누구처럼 은사를 많이 받은 것도 아닙니다.
또 저는 부모님이 폴란드 이민자 출신입니다.
여러 가지로 볼 때, 저는 목회자로서의 자질을 많이 갖추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저와 비슷한 처지인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의 처지가 어떠하더라도, 한 가지 꼭 사모하실 것은
설교자로서 불을 가지는 것입니다.
한 가지 희망적인 것은,
우리가 불을 가지기를 소원하는 것보다 더
하나님은 우리에게 불을 내려주시기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God wants to put the fire on us more than we want the fire.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눅11:13
또 다르게 설명하면,
-불은 번지는 것입니다.
-불은 태워서 사람의 마음 속 본질을 드러나게 합니다.
-불은 빛을 줍니다.
여러분에게는, 불이 있습니까?
불이 없다면, 우리는 지금, 중요한 뭔가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교단 신학의 입장이 어떻다는 핑계를 대지 마십시오.
어떤 교단은, 우리는 성령 같은 것은 잘 모르고,
말씀만 열심히 가르친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성령의 불'에 대해
동의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이 빠진 말씀, 설교는.. 그 자체가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이 설교 서두(P1)에서
부르심을 받은 사람도, 사역에 실패하는 현실이 있다고 말씀드리면서,
올바른 장소에 가 있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건 바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왜냐면, 성령의 불은, 오직 '주님만' 우리에게 내려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함께 머리 숙여 기도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모이신 목회자, 그리고 사모님 여러분,
저는 이 시간에, 제가 평소에 갈급해하고, 제 심중에 있던 것을
여러분과 나누었습니다.
저와 캐롤은, 하나님은 내년에 *아마 설교 시점이 연말인 모양입니다.
지금까지 부룩클린 터버너클 교회에서 행하신 일보다
더 큰 일을 행하시리라 기대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못하시겠습니까?
아니죠. 지금까지도 놀라운 일들을 행해 오셨지만,
내면에는 충분히 더 큰 일을 행하실 수 있으십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사모하고, 성령의 불이 내리면,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불은 우리의 잡동사니들을 태워버립니다.
불은 우리가 받은 은사들을 정결하게 해서, 하나님께 잘 쓰임받게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의 불에 대한 목마름이요, 갈급함입니다.
지금이 목회자 수련회 마지막 시간입니다.
여러분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강대상 앞으로 달려 나오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함께, 하나님이 불을 나에게 주시고, 우리교회에 내려 주시기를
하나님께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하십시다.
어떤 감정적 열광주의가 아니라, 메마른 정통교리가 아니라
기름부음 받은 말씀, 설교의 불을 간구하십시다.
불은, 기도모임을 시작하게 합니다.
불은, 모든 사람을 순결한 사랑으로 사랑하게 만듭니다.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내가 말씀을 전하지 않으면, 내 속에서 불이 나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말씀!
"주님, 우리는 교단에 관계 없이 한 몸이며, 한 교회입니다.
우리는 한 주님을 섬기며, 우리의 믿음도 하나입니다.
우리는 서로 지체로서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함께 은혜의 보좌앞으로 나아갑니다.
주님, 지금 우리는 큰 차를 구하지 않습니다.
유명해지는 것도 구하지 않고, 책을 쓰는 것도 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주님께 성령의 불을 간구합니다.
주님은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성경에 주님은 불과 성령으로 세례주시는 분이지 않습니까.
주님, 불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를 정결케 하시고, 성결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있는 불로, 우리 주위 다른 사람들을 불붙이게 하소서.
주님, 불이 꺼진 설교를 했던 것을 용서해 주시고,
사람의 지혜와 설득의 설교가 아니라,
사람의 기분을 맞춰주어서 박수 받는 설교가 아니라,
'불 같은 설교'를 하게 하옵소서.
주님이 불을 우리에게 내려 주셔야, 우리가 불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주여, 우리가 설교를, 성경 여기서 조금, 저기서 조금 인용해서 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죄와, 이기심과 교만과 편견과 자아 추구를 모두 불태우는
그런 말씀의 불을 가지게 하소서,
오직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말씀을 전하게 하소서."
우리 이 시간, 두 세 사람씩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모두 자기 주위의 두 세 사람과 함께 손을 잡기도 하시고,
서로의 교회와 가정을, 영혼을 위해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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