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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후손이 묻거든

LNCK 2016. 6. 13. 21:14

너희 후손이 묻거든            4:5~8                 16.06.05 스크랩, 출처


※중간에 장로 문답과, 마지막 5분은 꼭 들어보시기를 추천드립니다./편


    

 

여러분, 오늘을 우리 갈릴리교회가 세워진 지 30주년을 맞아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길을 지나다 보니 이곳저곳에 빨간 줄 장미가 피어 있었습니다.

 

빨간 줄장미를 보면서 갈릴리교회의 생일이 다가오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30년 전 창립예배를 드리던 그때도 저희 집 담장에 빨간 줄장미가 피어 있었습니다.

 

비교적 살만한 사람들이 살던 목동에서 시작한 갈릴리교회가 어쩌다가

목동 갈릴리교회가 아니라 구로동 갈릴리교회가 되었을까요?

 

여기 계신 여러분 가운데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먼 훗날 갈릴리교회의 역사를 공부하는 우리 믿음의 후손들도

그런 의문을 가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느 날 우리 후손들이 왜 우리 교회가 구로동 갈릴리교회냐?’고 묻는다면

그때 서슴없이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교회를 시작한 신앙의 선조들이 교회란 본래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눈물과

고난의 현장에 있어야 한다는 확실한 신앙고백 때문이었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우리 교회가 그 어느 곳의 갈릴리교회가 아니라

구로동 갈릴리교회라는 것을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 신앙의 전통을 연연히 이어오기 위해 애를 썼다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구로동 갈릴리교회여야 합니다.

우리가 1986년 구로구청 사거리 지독하게 화장실 냄새가 나던 허름한 건물 3

사글세방에서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구로 6동 희망의 집, 그리고 200011월 이곳에 아름다운 교회당을 짓고, 이사를 했습니다.

사글세방에서 시작한 갈릴리교회가 10여년 만에 이런 아름다운 교회당에서

예배를 드리게 된 것 참으로 꿈만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더 말할 것도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축복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자랑스럽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그런 축복을 주신 것은

우리 갈릴리교회가 하나님께서 축복하실만한 좋은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축복하실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잘 아시는 대로 구로 6동에 있을 때 우리 갈릴리교회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처음으로 이주노동자를 섬기기 시작했고

주일마다 600-800명의 이주노동자가 전국 이곳저곳에서 몰려왔습니다.

 

우리는 교회 관리비나 목회자의 사례비조차 줄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이주노동자를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 사람들이 예수님이다. 저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하고 많은 교회들 중에서 이 이주노동자들이 위로를 받고

사람대접을 받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교회가

우리 갈릴리교회라고 생각하시고, 그들을 우리 갈릴리교회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갈릴리교회에 이들을 맡겨야겠다고 생각하시고

저 수원에서 일산과 안산, 의정부 등 곳곳에서 우리 갈릴리교회를 찾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 재정이 부족해서 그들에게 대접한 것이라고는 닭튀김 두 쪽과

바나나, 콜라가 다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배를 곯던 이주노동자들이 양이 차지 않아 닭고기를 더 달라고 하면

봉사자들이 닭고기가 없다고 노 치킨이라고 했습니다.

 

주일예배가 끝나면, (인명진 목사)는 닭고기 값을 얻으러 이곳저곳을 큰 교회를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주일 설교시간에 제가 앞으로 이주노동자들에게 노 치킨이라고 하면

이주노동자 봉사를 하는 여 집사를 튀기겠다고 했습니다. *반드시 치킨을 대접하겠다는 뜻

 

그러니까 그 집사가 설교 시간에 큰 소리로 저보다 목사님을 튀기는 것이 더 좋겠습니다.”

라고 했던 유명한 일화가 있습니다.

 

사실 그 여 집사는 몸집이 작아서, 살찐 저를 튀기는 것이 훨씬 낫긴 나을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들으셨죠? 잘못하다가 제가 튀겨지게 되겠습니다.

이주노동자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시든지 아니면 이들을 감당할 수 있는 길을 주십시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이 교회를 주신 것입니다.

 

200011월 추수감사절에 이곳으로 이사를 하고, 전교인이 특별새벽기도회를 했습니다.

우리 갈릴리교회가 어떤 교회가 되어야 할 것인가를 하나님 앞에 다짐하는 기도회를 했습니다.

 

셋째 날 새벽 저는 사도행전 31-10절 말씀을 읽고 이렇게 설교를 했습니다.

성경에 보는 대로 예루살렘 성전 앞에 미문, 아름다운 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문 앞에 하필이면 앉은뱅이 거지가 앉아서 구걸을 했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지만 이것이 바로 진정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 문 앞에는 늘 거지가 있어야 합니다.

문 앞에 거지가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교회를 지었는데

이 교회에 가난한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재앙입니다.

교회를 짓지 않은 것보다 못합니다.

 

우리 갈릴리교회가 아무리 아름다워도 우리 교회 문 앞에 거지가 없으면

이 아름다운 교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우리 교회 문 앞에서 거지가 떠나가지 않도록,

우리 교회 안에 가난한 사람이 가득 넘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가 막힌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갈릴리교회가 이사하고

태영아파트도 같이 입주를 했습니다. 그때 제가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닭튀김 값이 모자라 늘 걱정이었는데 태영아파트에 사는 부자들이

우리 교회에 등록해서 재정이 넉넉해지고 부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갈릴리교회의 첫 번째 등록교인이 신도림역 앞에서 호떡을 파는 과부 아주머니였습니다.

제 생각과는 너무도 달라서 큰 충격과 당혹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한편 감격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저는 이 과부 호떡 장사 아주머니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보내주신 천사다.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나에게 보내주신 하나님의 사자가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좋은 예배당 생겼다고 교만하지 말고 딴 생각하지 말아라.

돈 많은 사람들과 웃고 떠들라고 이 교회를 준 것이 아니다.

이 교회는 가난한 이들이 차고 넘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가난한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위로해주는 가난한 사람들이 어깨를 펴고

사람대접을 받을 수 있는 그런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우리 교회에 보내주신 천사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집사님 어느 날 온데간데 없어졌습니다.

제가 이 분이 하나님이 맡기신 심부름 하고 나서 홀연히 사라졌구나 하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이분이 갈릴리교회의 첫 번째 등록교인이었습니다.

우리 교회는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천사를 첫 번째 등록교인으로 보내주신 교회입니다.

 

얼마 전 우리 갈릴리교회가 장로 선거를 통해

세 분의 피택장로를 선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온 교회가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꾼을 뽑으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장로선거를 하는 과정에 제가 하지 않았던 일을 새롭게 한 것을 보았습니다.

 

여덟 사람의 후보자들의 프로필을 책자로 만들어, 모든 교인이 볼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그 프로필의 내용 중에 예수를 믿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를 왜 믿는가?’

우리 갈릴리교회는 어떤 교회인가?’

갈릴리교회 장로는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 등등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여덟 사람 모두가 이 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으로

제가 신앙을 지도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의 대답이 제 30년 목회의 성적표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분들의 대답을 읽으면서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갈릴리교회가 큰일이 났구나. 내가 잘못 가르쳤구나. 목회를 잘못했구나.’

하는 자책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여덟 사람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갈릴리교회가 어떤 교회인지, 장로는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제대로 핵심적인 대답을 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제가 30년 동안 귀가 닳도록 가르친 기독교신앙, 갈릴리 신앙고백과는 거리가 먼

중언부언 하는 말만 적어놓았습니다.

 

제 눈에는 그냥 보통 교회에서 보통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가진 신앙과

비슷한 신앙을 가진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장로가 되어서 교회를 이끌어간다 하면

우리 갈릴리교회가 머지않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동네교회가 되는 것이

시간문제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 교회에 처음 오신 분들이 흔히 듣는 이야기가 갈릴리정신, 갈릴리정신 하는 말입니다.

이게 갈릴리정신이다 저것이 갈릴리정신이다 하면서 간혹 논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누가 이기느냐 대부분 갈릴리교회에 오래 다닌 사람이 이깁니다.

그렇다면 갈릴리정신이 무엇입니까? 사실 갈릴리정신이 별 것이 아닙니다.

갈릴리정신은 성경이 가르치는 정신, 예수의 정신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받았다는 말을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우리 갈릴리교회는 성령을 받았다는 말을

예수의 정신으로 세뇌가 되었다는 말로 이해합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예수의 정신으로 물들었다는 뜻입니다.

성령은 예수의 영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의 정신으로 물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을 제일로 여기며 살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입니다.

내 인생에서 하나님보다 귀한 것은 없다, 하나님이 일등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어떤 가치관을 가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은 무엇입니까?

세상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까?

황금만능주의 세상에서 돈이 제일이다, 돈이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것이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입니다.

 

내 인생의 가장 귀중한 것은 자식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어떤 사람들은 권력 때문에 산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갈릴리교회 교인들은 아니다,

우리는 돈도 자식도 권력도 아니고 하나님이라고 선언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제일이다, 하나님보다 더 귀한 것은 우상이며

그것은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짓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과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한국교회 교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오히려 왜 교회를 다니고 왜 예수를 믿느냐고 물으면 사랑하는 자식이

더 잘 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돈을 더 많이 벌고 잘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부탁하려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제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제일로 여기는 것은 따로 있고

그것을 잘 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고 매어달리는 것입니다.

 

갈릴리교회는 다른 것을 더 사랑하면 그것은 우상숭배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제일주의의 확실한 가치관을 가지고 우상이 판치는 이 세상에서

영적인 싸움을 하는 사람이 예수 믿는 사람이고 이런 사람이 모인 교회가 갈릴리교회입니다.

 

따라서 우리 갈릴리교회 교인들은 죄가 무엇인지 확실히 아는 사람들입니다.

죄를 지으면서도 죄인줄 모르고 우상숭배를 하면서도 우상숭배인줄 모르고

돈과 권력을 좋아하고 자식을 최고로 여기며

오히려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문제입니다.

 

이렇게 수많은 십자가가 있고 예수 믿는 사람이 있지만

제대로 된 가치관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교회가

우리 사회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한국사회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 교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갑니다. 한 가지 다른 것은

돈을 위해서 하나님이 도와주시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둘째로 갈릴리교회의 신앙고백은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갈릴리에 계시고

우리는 그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갈릴리로 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갈릴리로 가서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삶이라는 것이 우리 갈릴리교회의 신앙고백입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를 만나지 못했다고 하면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우리가 요즈음은 영성의 시대라고 하고, 영성훈련을 한다, 경건의 훈련을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최고의 영성이 무엇입니까? 최고의 영성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니까 예수님은 병든 자, 나그네, 감옥에 갇힌 자, 가난한 자,

눈물 흘리는 자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계신다고 했습니다.

이들을 보살피는 것이 바로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갈릴리교회의 신앙은 우리 교회에 찾아오는 나그네,

가난한 자를 예수님으로 생각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저는 이주노동자들이 올 때마다 입버릇처럼 예수님이 오신다.’

예수님이 다른 교회로 안 가시고 우리 교회로 오시는구나.’

다른 교회가 알면 이들을 데려갈 테니 비밀로 지켜야지.’ 하면서

이주노동자들을 섬기고 보살피고 사랑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하루에 세끼를 챙겨먹지 못하는 독거노인,

베트남의 가난한 농민들 다 예수님입니다. 북한의 굶주린 아이들도 예수님입니다.

그들을 만나서 그들을 돌보는 것이 예수님을 돌보는 것입니다.

 

저의 이야기가 아니고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이런 성경의 가르침을 확실히 믿고 이렇게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

하늘의 큰 상급을 주시겠다고 하신 주님의 약속을 믿고 사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갈릴리교회입니다.

 

그리고 지나간 30년 동안 우리 갈릴리교회는 실제를 모든 선교의 사역을 통해서

예수님을 만나는 감격과 은혜를 생생히 경험한 교회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감동과 은혜를 평생 경험하지 못한 신앙의 공허한 신앙입니다.

그런 신앙고백이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종교집단입니다.

우리가 토요일 새벽마다 사랑의 도시락을 주변의 어려운 노인에게 배달하고 있습니다.

 

아침을 먹지 못하고 도시락을 기다리는

예수님을 대접한다는 마음으로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과 신앙고백을 가지고 이 일을 해야지 그냥 가난한 사람을 돕는다는

마음으로 한다면 그것은 자선사업이나 사회사업이지 선교가 아닙니다.

 

우리 갈릴리교회가 당분간은 토요일마다 도시락을 싸고 일요일 오후에는

이주노동자들을 위해 닭튀김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섬기는 감격스러운 마음을 가지고 이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 갈릴리교회는 다른 교회와는 다른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는 방언을 하는 사람도 없고 주여 삼창도 하지 않습니다.

30년 동안 부흥회, 간증집회, 총동원주일을 한 번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가수나 연예인 불러놓고 이벤트 해보지 않은 교회입니다.

여섯 명이 시작한 교회가 30년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했던 것일까요? 하나님을 만나는 감격스러운 경험을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감사를 통해서 우리 갈릴리교회가 오늘에 이른 것입니다.

이것이 없어지면 갈릴리교회는 없어지는 것입니다.

 

셋째로 갈릴리교회는 우리 일상의 삶, 밥 먹고 옷 입고 직장에서 일하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장례를 치르는 이 모든 일을 예수님과 함께 한다는

신앙고백을 가진 공동체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가장 일상적인 일 중의 하나가 밥 먹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밥을 먹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밥을 먹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 갈릴리교회는 밥 먹는 것을 두 식구면

예수님도 한 식구로 쳐서 세 식구로 생각하고 삽니다.

예수님도 우리의 식구입니다. 네 식구는 예수님까지 다섯 식구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식비 계산할 때 예수님 몫도 계산하는 것이 예수님과 함께 밥을 먹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과 평생 동안 밥 한 번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 교회가 토요일 아침마다 주위의 가난한 독거노인의 가정에 사랑의 도시락을 배달합니다.

이때 나와서 예수님이 드실 밥을 준비하는 것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갈릴리교회의 신앙입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 중에 잔치를 치러보신 분을 것입니다.

이 잔치 자리에 대통령이 온다면 극진하게 대접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장 귀한 손님으로 이 잔칫집에 오셨다면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신앙을 가지고 하루하루를 살아야 합니다. 주일날만 교회에 오는 것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이런 신앙을 가지고 밥 먹고 잔치도 하고 자식 기르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삶이어야 하고

이것이 갈릴리교회의 신앙고백입니다.

이런 믿음으로 갈릴리교회를 세우고 지난 30년 동안 이 일을 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저는 갈릴리교회를 세울 때 많은 기도를 했습니다.

30년 전만 해도 한 자리에 서서 열 개의 십자가를 셀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요즈음은 한 자리에서 30개 쯤 십자가를 셀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교회 가운데 왜 또 하나의 교회를 세워야 하는가?

교회가 없다면야 당연히 교회를 지어야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없어서 예수님을 못 믿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교회가 있는데도 목회자들 직장을 위해서 교회를 세우는 것은 아닌지 정말로 고민했습니다.

 

우리 갈릴리교회는 그런 고민 속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다른 교회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하려는 새로운 신앙의 고백으로

교회를 하기 위해 이 교회를 세웠습니다.

 

저는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후서 213절 이하에서

바울은 전통을 굳게 지켜야 한다고 말합니다. 초심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초심을 변치 않고 지킨다는 것 쉬운 일 아닙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으로 시작한 일도 30년이 지나면 변하게 됩니다.

우리 갈릴리교회가 30년이 되었습니다. 변할 때가 되기도 되었습니다.

문제는 초심이 변하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30년 전 우리 갈릴리교회가 했던 신앙고백을 다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변질된다면 하나님께서는 여지없이 촛대를 옮겨가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신 것을 역사를 통해서 보았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보십시오.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이 세운 교회지만 지금 없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신 것입니다.

 

세계 선교에 앞장을 섰던 안디옥교회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사도 바울이 세웠던 빌립보교회, 에베소교회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처음의 신앙고백을 버리고 변절할 때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신 것입니다.

 

갈릴리교회는 예외일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어떤 분들이 때때로 목사님께서 애써서 지켜온 갈릴리교회가 혹시 변할지도 모릅니다.’

하면서 걱정하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제가 대답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도 사라졌는데 우리 교회가 뭐라고 안 없어지길 바랍니까?”

 

사명을 제대로 못하면, 신앙의 전통을 제대로 못 지킨다면 없어지는 것이 마땅합니다.

빌립보교회도 안디옥교회도 없어졌는데 갈릴리교회라고 예외는 없습니다.

하나님이 판단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 앞에서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걱정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 갈릴리교회에 대해서 사람들이

구로동에 이런 교회가 있었다는데...’ 하는 전설 속에서만 이야기되는 교회,

현실 속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교회가 되면 어떻게 할까 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그런 교회가 있었다면서 현실적으로 연구대상이 되는 교회로

남아 있으면 어떻게 할까 하는 염려를 합니다.

인명진 목사는 떠났고 이 모든 책임이 여러분의 몫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렸던 이 신앙의 전통 위에 세워진 교회가

아름다운 신앙의 전통을 잘 지켜나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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